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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동 상류로 내려와, 인왕산을 배경으로 한 컷!
인왕산 복습입니다 ㅎ~.
인왕산은 조선시대 태조 때만 해도 '서산(西山)' 혹은 '서봉(西峰)'이라고 불렸습니다. 세종대왕이 내불당을 인왕산 동편 기슭로 옮기며, 서쪽에서 조선왕실과 한양을 지키는 금강신이 되라고 '인왕산'이라고 호칭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1537년(중종 32년) 명나라 황태자의 탄생을 알리러 공용경이 조선에 사신으로 왔을 때, 중종 임금이 경회루에서 잔치를 베풀며 산이름을 지어달라고 청하자 '우필운용(右弼雲龍, 우측에서 임금을 보필한다)'이라며 인왕산을 필운산, 백악을 공극산이라고 지어 한 땐 사대부 사이에선 필운산으로 불렸으나 일반 백성들은 그냥 인왕산으로 불렸을 뿐입니다. 권율 장군이 물려준 이항복의 집터가 필운대로 호칭된 이유입니다.
인왕산 성곽을 쌓을 때 돌을 떳던 부석소(浮石所) 흔적입니다. 태조 때 한양도성의 일부는 돌로 쌓고, 대부분은 토성으로 쌓는데 주로 산악구간을 돌로 쌓았다고 전해집니다. 인왕산 구간의 부석소는 세종 때인지 혹은 숙종 때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만 인왕산 동편 기슭에 있었습니다.
상기 사진은 돌을 뜰 때 쐐기를 박았던 자국입니다.
사진은 돌에 쐐기를 박았던 결대로 쪼개진 모습입니다. 참고하시라고, 책 속 '부석'에 관한 내용을 옮겨 봅니다.
"성돌은 어떻게 마련했을까? 태조 때 도성축조도감, 세종 땐 도성수축도감이 있었다. 도감들 아래 부석소(浮石所)를 설치한다. 부석소를 책임지는 관리를 '낭청'이라고 했다. 조선시대 돌을 캔다는 의미로 채석이라는 말보다 부석이나 벌석이라는 말을 주로 썼다.
조선전기엔 전체 일을 관장하는 대목(大木)이 있고, 대목아래 도석수(都石手), 도석수 아래 석수가 있었다. 17C 이후 대목이란 용어가 사라지고 변수(邊首)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제일 위에 도변수, 변수, 석수로 위계를 정했다. 조선시대 건축 장인의 기술교육은 도제적인 방식으로 이뤄져 석장(돌 다루는 장인)의 경우 어린 소년을 데려다가 도제적으로 훈련시켜 그가 기술을 습득하면 관청의 장적(장인호적장부)에 올렸다.
부석소에서 어떻게 돌을 깼는지 구체적인 기록은 없다. 현대의 무형문화재 석장의 말은 고려시대까진 돌을 깨기 위해 우선 정으로 쐐기구멍을 파고, 바싹 마른 나무 쐐기를 구멍에 박아 물을 부어 나무를 불게 하여 팽창력으로 돌을 쪼갰다고 한다. 조선시대엔 쇠 쐐기를 구멍에 박아 넣어서 돌을 쪼갰다고 한다.
조선 초부터 성저십리까지는 산림보호를 위해 개발을 제한하여 경작이나 묘 조성, 벌목, 벌석 등을 금했다. 그러나 원경왕후 민씨 능을 조성할 때 부석소는 태종 때 성북구 안암동 종암여중 자리다.
연산군 때는 궁궐 담을 쌓을 때 돌 뜨는 장소로 동대문 밖 조산(造山) 앞, 무악고개 안, 장충단 공원에 해당하는 남소문동, 인왕산 등을 허가하는 장면이 나온다.
광해군 때 궁궐재건을 위한 영건도감이 설치되고 창덕궁 재건 때와 이궁을 조성할 땐 창의문 밖 돌을 떠다가 썼다는 기록이 있다.
숙종 때는 도성보수에 많은 돌들이 필요하자 당시 노원이나 주암이 부석장소였으나 너무 멀어 운반에 시간이 걸리자 ‘비변사등록’ 기록에 좌의정 이여가 정릉 근처 청수동에서 돌을 떠 낼 수 있게 해달라는 기록이 있다. 숙종은 정릉의 금표구역을 대단하게 해치지 않으면 허가하란 명을 내린다. 돌을 운반할 때는 소가 끄는 나무바퀴가 두 개 달린 수레가 운반했다. 도성 아래까지 수레가 운반하면 사람들이 목도로 성돌을 운반한다. 마지막엔 사람들이 운반하고 쌓기에 도성축성 때 압사사고가 많았다.
영조 때 흥인문에서 광희문까지 치성을 설치할 때 사용된 돌은 남벌아(南伐兒, 버티고개, 한남동과 약수동 사이) 고개 바깥 남산 근처에서 채석을 한다."
기장님, 이욱용 선생님, 송기복 선생님, 남궁호 선생님, 하루종일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첫댓글 오늘 해설하시면서도 수고가 많으셨는데 그 내용을 요약하여 정리까지 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이옵니다
독립문역 만남부터 경복궁역 헤어질때까지 재미와 알찬 내용으로 해설해 주시고 세심한 배려로 일관하시더니
복습까지... 감사합니다.
참석못해 아쉬웠는데 이렇게 정리해서 올려주시니 감사합니다 전종현샘 지식의 끝은 어디인가요? 대단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