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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축복사역(30) / “큰 걸음을 걷는 복을 받으라!”
+ 본 문 : 창 세 기 12장 1절 - 9절 (구약성경 14쪽)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5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6 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8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9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 아멘!
오늘 함께 예배드리는 사랑하는 여러분 모두의 가정과 생업, 사랑하는 모든 자녀 손들에게,
넘치는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의 축복이, 항상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옆의 분들과 인사하겠습니다. “잘 되고 있습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기도한 대로 됩니다.” “축복한 대로 됩니다.”
1969년 7월 21일, 오전 10시 56분 20초는 우주 역사에 길이 남을 역사적인 시간이었습니다.
아폴로 11호, 닐 A. 암스트롱이 달나라에 발을 디딘 날입니다. 달에는 공기가 없기에 바람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닐 A. 암스트롱의 발자국은 50억년은 갈 것이라고 합니다. 그는 첫 발을 내디디면서 말했습니다.
“이것은 한 인간에게는 작은 발걸음에 불과하지만, 우리 온 인류에게는 거대한 도약의 발걸음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우리 교회 모든 성도님들의 매일매일의 인생 발걸음이,
의미 있는 발걸음이 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도약의 발걸음이 되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특별히 오늘 이 시간은 오늘 본문 말씀의 주인공 아브라함, 믿음의 거인인 아브라함을 생각하면서,
우리들의 인생의 발걸음이 믿음의 거성인 아브라함의 발자국을 따라 가는 복 있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믿음의 사람이요. 복의 근원이었던 아브라함의 발걸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발걸음이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하나님께서는 갈대아 우르에서, 우상장사의 아들로 살아가는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1절부터 3절 말씀까지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아멘!
우리는 그 다음 4절 말씀에 관심을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은 말씀을 따라갔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에는 무조건 아멘이었습니다.
싫던지 좋던지 상관없습니다. 어렵든지 쉽든지 관계없습니다. 할 수 있든지 못 하든지 따지지 않았습니다.
“무조건 무조건이야.” - 그렇습니다. 무조건 무조건이었습니다. 정말로 믿음의 사람은 무조건 순종입니다.
모두가 인정할 만큼 화목한 어느 가정에, 아버지 말이라면 무조건 순종한다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순종 잘 하는 아들의 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 말이라면 무조건 순종한다면서요?”
그러자 그 아버지가 조용히 대답하였습니다. “내 아들은 내가 말하면 무조건 순종합니다. 보시겠습니까?”
그리고 자기 아들을 불러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들아! 지금 당장 소를 끌고서 지붕 위로 올라가거라.”
그러자 아들은 무조건 그렇게 하겠다고 말한 다음, 즉시 소를 끌고 지붕위로 올라가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 아들은 왜 올라가야하느냐고 묻지도 않았습니다. 어떻게 소를 지붕에 올리느냐고 따지지도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무조건 무조건 순종입니다. 그렇습니다. 정말로 믿음의 사람은 이처럼 무조건 순종합니다.
아브라함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발자국은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따라가는 큰 발걸음이었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설교가요. 전도자인 무디가 높은 곳에서 설교를 하면서 성도들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주님이 지금, 이 높은 곳에서 아래로 뛰어 내리라고 하시면, 지금 당장이라도 뛰어 내릴 것입니다.”
말씀을 따라 살겠다는 각오의 말씀입니다. 우리들의 믿음의 발걸음도 그래야 합니다. 무조건 순종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급에서 400년 동안 종살이하다가, 하나님의 기적적인 인도하심으로 광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40년 동안이나 그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으며,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따라서 움직였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셨을 때에 별을 연구하던 동방박사들은, 별을 따라 움직이다가 드디어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이렇게 우리 예수님을 위시하여, 성경에 등장하는 많은 믿음의 사람들의 믿음을 한 마디로 말하라고 하면,
모두가 “말씀을 따라간 사람들” 이었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큰 사람들은 큰 발자국을 남겼음을 보게 됩니다.
어부였던 시몬 베드로를 보겠습니다. 시몬 베드로는 밤새도록 고기를 잡으려고 그물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한 마리도 잡지 못 하였습니다. 아침이 되었습니다. 고기잡이를 포기하고,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베드로의 배를 빌렸습니다. 배를 강대상 삼아 배위에서 말씀을 다 전하신 예수님께서는,
빈 그물을 씻고 있는 어부 시몬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깊은 곳에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맟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물고기를 잡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놀란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르라. 내가 너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베드로는 말씀을 따라갔습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인류 역사상 최대 사도가 되어 큰 발자국을 남겼습니다.
다음으로 기도의 어머니 한나를 봅니다. 엘가나와 결혼한 한나는 아이를 낳지 못하였습니다.
둘째 아내 브닌나가 아이를 낳으면서 한나를 무시하자, 한나가 하나님 앞에 나가서 미친 듯이 기도하였습니다.
원통함은 한이 되었고, 그렇게 한 맺힌 한나의 기도는 술 취한 것같이 보일 정도로 몸부림치는 기도였습니다.
엘리 제사장이 그런 한나의 모습을 보고, 술 마시고 기도하는 줄 알고 술 마시지 말고 기도하라고 충고하였습니다.
그러자 한나가 말했습니다. “나의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나의 심정을 통한 것 뿐이오니, 당신의 여종을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옵소서.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동됨이 많음을 인함이니이다.” 라고 고백했습니다.(삼상 1;15-16)
그러자 엘리가 말했습니다. “평안히 가라. 하나님이 너의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결론은 이것입니다.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수색이 없으니라.” 제사장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고,
기도응답으로, 한나는 이스라엘 역사를 바꾸어 놓을 큰 발자국을 남긴 아들 사무엘을 낳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말씀을 따라 간다는 의미가 무엇일가요? 성령 충만할 때 내게 주는 말씀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할 때에 우리 마음에 소원이 일어납니다. 그 소원이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역사상 위대한 일들은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음성이나, 소원의 음성 둘 중에 하나로 이루어졌습니다.
순천 왕지교회 반봉현 장로님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여수 앞에 섬들이 많이 있습니다.
장로님이 어느 날 조그만 섬에 외롭게 살고 있는 이들을 보았습니다. 16개 섬에 204명이 살고 있습니다.
한 섬에 열 명 가량 사는 곳도 있습니다. 샘물이 없는 섬이라, 빗물을 받아 마시고 사는 곳도 있었습니다.
논이 없어 육지에서 쌀을 사다 먹습니다. 여객선이 아예 다니지 않는 섬도 있어서 육지에 나오기도 힘듭니다.
배를 불러 타고 나오려면 10만원이 넘게 듭니다. 돈도 없습니다. 옷도 없습니다. 고기를 먹을 수 없습니다.
반봉현장로님은 그들을 보는 순간 불타는 소원이 올라 왔습니다. 재산을 정리하여 2억 상당의 배를 샀습니다.
그 배로 한 달에 두 번 16개 섬을 돕니다. 한번 도는 데 기름값이 300만원, 두 번 돌면 600만원이 들어갑니다.
갈 때마다 돼지를 잡습니다. 물, 쌀, 옷가지 등을 실고 16개 섬을 돌면서 다 무료로 나누어 주고 다닙니다.
그리고 집도 고쳐 줍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전했는데, 섬 주민 204명중에 184명이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한 달에 그들을 위하여 1400만원 가량이 들어가는데, 놀라웁게도 다 채워주신답니다.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일하느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성령님이 자꾸만 강권하십니다.” 라고 대답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할 때에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소원이 있습니다. 그것이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그 말씀대로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십니다. 아름다운 발자국을 남길 수 있습니다.
남아메리카 칠레라는 나라에는 늪지대에 리노데르마르라는 특이한 개구리가 살고 있다고 합니다.
암컷이 알을 낳으면 옆에 숫컷이 알을 받아 모두 삼켜서, 소리를 내는 소리 주머니에 알을 모두 담아 둡니다.
그리고 알이 부화되기까지 입을 벌리지 않습니다. 물론 금식입니다. 알에서 올챙이가 나오기까지 기다립니다.
피눈물 나는 고통입니다. 그런 고통 속에서도 알이 올챙이로 부화되면, 토해 내고 나서야 먹기 시작합니다.
개구리도 창조질서에 자기를 제어합니다. 하지 않을 것을 하지 않고 해야 할 것을 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믿음으로 세 가지 결단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아무리 어려워도, 내 마음에 안 맞아도, 힘들어도 따라가는 것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 아브라함은 오직 믿음으로 말씀을 따라 나아갔습니다.
첫째로, 아브라함은 60 평생 살아온 고향을 떠나라고 할 때, 오직 믿음으로 말씀을 따라 나아갔습니다.
사실 고향을 떠나 전혀 알지 못하는 곳으로 가라고 하였을 때, 말씀만 따라 가나안까지 거의 2000km를 걸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간 그 곳이 오늘날 온 세계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우주의 중심은 지구이고, 지구의 중심은 이스라엘이고, 이스라엘의 중심은 예루살렘이고, 예루살렘의 중심은,
성전이고, 성전의 중심은 지성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을 따라 간 곳이 곧 지구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만 따라가면, 하나님께서 다 책임져 주십니다. 여러분! 믿습니까? 아멘!
아일랜드라는 나라의 유명한 역사가 네필이라는 분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그분이 길을 가는 데 조그만 소녀가 깨진 병을 들고 울고 있어서, 울고 있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주인 심부름을 가다가 넘어져 주인이 아끼는 병을 깨뜨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돈을 주려고 했는데 돈이 없습니다.
이 사람이 약속했습니다. “내일 내가 돈을 줄 테니 걱정하지 말아라. 그 돈으로 새 병을 사서 드려라.”
그리고 집에 와서 보니, 다음 날은 그의 후원자가 엄청난 후원금을 가지고 오기로 약속한 날이었습니다.
‘소녀와의 약속을 지킬 것인가? 후원자를 만날 것인가?’ 고민하는데, 하나님은 소녀와의 약속을 지키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그분은 돈을 들고, 그 소녀의 집으로 갔다가 돌아 왔습니다. 그 때 후원자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오늘 못 가서 미안합니다. 오늘 하루를 기다리게 한 대가로 내일 배의 후원금을 가지고 가겠습니다.”
후원자도 약속을 못 지킨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면, 하나님이 축복하여 주십니다.
두 번째로, 아브라함은 100살에 난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할 때도 오직 믿음으로 말씀을 따라 나아갔습니다.
기도의 어머니 한나처럼 20년 만에 난 아들을, 성전에 살게 하라고 하면 차라리 쉬웠을 것입니다.
고난의 사람 요셉처럼 먼 나라로 팔아 버리라고 하였으면, 차라리 순종하기가 그래도 쉬웠을 것입니다.
감옥에 넣으라고 하였으면 지킬 수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아들을 죽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마음은 아마 찢어질 것 같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순종하였습니다. 말씀을 따라 갔습니다.
그렇게 믿음으로 드려진 이삭을 하나님께서는 살리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조상이 되게 하셨습니다.
만일 그 때 아브라함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면서, 이삭을 바치지 않았다면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아! 네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내게 바치지 아니하였으니, 나도 하나밖에 없는 내 아들 예수를,
너의 가문에 주지 않겠다. 저 한국 땅끝에 사는 김대용목사의 가문에 주겠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가정을,
메시야 가문으로 삼으시려던 계획을 바꾸어, 김대용 가정을 선택했다면 예수님은 ‘김 예수’ 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하나님께 드리므로, 너무나 소중한 아들을 아브라함의 가정에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어렵고 힘들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면 반드시 은혜와 기적이 일어납니다.
어느 교회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한 믿음 좋은 분의 아이가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그 무렵 집에 불이 나서 아내마저 불에 타서 죽었습니다. 목사님이 그분의 귀에 대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지금 하나님을 원망하려면 얼마든지 원망할 수 있습니다. 원망할 조건이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고 감사하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선택은 당신이 할 수 있습니다.”
가만히 생각하던 아이의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며 목사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편을 선택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굳굳히 이겨 나갔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브라함이 그랬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오직 믿음으로 큰 발자국을 걸은 것입니다.
세 번째로, 아브라함은 175세에 세상을 떠나면서도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 중심의 행동을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175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긴 생애동안에 세 아내와 함께 살았습니다.
사라, 하갈 그리고 그두라였습니다. 아브라함은 바로 이 세 아내를 통하여 여덟 명의 아들을 낳았습니다.
86세에 하갈에게서 이스마엘을 낳았고(창 16;16), 그리고 100살에 사라에게서 이삭을 낳았습니다.(창17;17)
그리고 137세에 그두라라는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여, 무려 여섯 명의 아들을 낳았습니다.(창 25;2)
그 후 아브라함은 175세가 되어 인생을 정리할 때가 되었음을 알고, 하나님 말씀으로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선택하실 때에, 가나안 땅을 주시면서 이 땅이 네 후손에게 줄 약속의 땅이요.
여기에서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닷가의 모래알과 같이 번성시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기다려도 사라가 아들을 못 낳으니까, 여종 하갈을 아내로 삼아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을 통하여,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줄 알고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라고 자신의 소원을 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른 말씀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정녕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아멘! (창세기 17;19)
그래서 아브라함은 8명의 자녀들이 자기가 죽고 나면, 땅과 재산을 가지고 분쟁을 일으킬 것을 알았기에,
하나님 중심으로 이삭만 약속의 땅에 남겨 놓고, 이스마엘은 어머니 하갈과 함께 바란 땅으로 보냈습니다.
그 곳에서 이스마엘은 사냥군이 되어 정착하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애급 여자와 결혼하였습니다.(창21;20-21)
그리고 그두라에게서 낳은 6명의 아들들과 그 식구들도, 이삭이 살 가나안 땅을 떠나 모두 동국으로 보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 말씀과 계획대로 인생을 정리하는, 아브라함의 고귀한 믿음에 깊은 감명을 받게 됩니다.
한마디로 아브라함이 남긴 발자국은 믿음의 큰 발자국이었습니다. 오직 하나님 중심의 큰 발자국이었습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의 믿음의 발자국은 확고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실 것을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은 없는 것을 있는 하시는 것을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아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전혀 약하여지지 아니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실 줄로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믿는 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의롭다 여기시고, 그를 사랑하여 주셨고, 믿음의 조상으로 세워주셨습니다.
어느 시골 5일 장터 한구석에서, 한 할아버지가 아직 삶지 않은 찰옥수수를 팔고 있었습니다.
한 아주머니가 세 개씩 묶어 놓은 옥수수 한 무더기를 가리키며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이 찰옥수수 얼마예요?”
“예, 한 무더기에 3천원입니다.” “두 무더기는요?” “6천 원입니다.” 그러자 아주머니가 말했습니다.
“두 무더기를 사도 깎아 주시는 게 없으시네요. 그렇다면 가지고 나오신 옥수수 전체를 사면 얼마지요?”
그 말을 들은 할아버지는 말했습니다. “전부는 안팝니다.” 이상하여 물었습니다. “아니, 왜 다는 안 파나요?”
할아버지가 말했습니다. “나는 지금 내 삶을 살기 위해 이 장터에 나왔습니다. 장사하러 나온 것이 아닙니다.
나는 이 장터를 사랑합니다. 물건을 팔고 사기 위해 흥정을 하며 북적대는 사람들, 오랜만에 만났다고 서로,
손을 잡고 반가워하며 떠드는 모습들, 팔러 나온 짐승들의 울음소리, 장터 사람들을 유혹하는 국밥 끊는 소리,
뻥 하고 튀밥 튀는 소리, 시원한 냉차를 사 먹으라는 소리, 복잡한 장터 골목을 헤쳐 나가는 지게꾼 소리,
엿을 팔기 위해 가위로 흥겹게 장단을 맞추며 춤을 추는 엿장수, 나는 이 활기 넘치는 장터 풍경을 사랑합니다.
나는 이 건강한 장터를 사랑합니다. 이곳에서 하루를 보내는 것이 내 삶입니다. 그리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전도지를 주면서 전도하는 것이 내 사명이요. 내 기쁨입니다. 그런데 한 사람에게 옥수수를 몽땅 다 팔면,
나는 여기에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내 삶을 몽땅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 안 팝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일확천금을 꿈꾸는 허황된 삶이 아니라, 말씀을 따라 사는 할아버지의 모습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이제 새로운 거인의 큰 발자국을 남기며,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살아야 합니다.
노련한 사냥군은 발자국만 보고도 무슨 짐승인지 알아냅니다. 몸무게, 걸음걸이, 몸 상태까지도 다 안답니다.
언제 지나간 발자국인지도 다 안답니다. 걸어간 속도도 정확하게 알아냅니다. 물론 방향도 다 알아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하나님도 저와 여러분의 인생의 발걸음을 통해서, 저와 여러분의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 가장 놀라운 예수님의 발자국을 따라가므로, 하나님이 인정하는 발걸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어떤 인생의 발걸음을 걸어오셨습니까?
그리고 지금 어떤 발걸음이십니까?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입니다. 바로 지금부터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남은 인생의 발걸음은, 하나님이 인정했던 아브라함처럼, 믿음의 조상이 되고,
복의 근원이 되는 거인의 큰 발자국을 남기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