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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12월 29일 송년주일예배 설교 +
+ 제 목 : “우리에겐 시작이 있고 끝이 있습니다.”
+ 본 문 : 마태복음 24장 32절 - 51절 (신약 42쪽)
32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33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34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35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36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37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38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39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40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41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42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43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44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45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
46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4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의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
48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49 동무들을 때리며 술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50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51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아멘!
2024년 한 해를 보내고 새로운 2025년 새해를 맞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모두에게 잘 되고 행복이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옆의 분들과 인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우리 인생에 마지막이 있고, 역사에도 마지막이 있다는 것은 불변의 진리입니다.
그렇습니다.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 있고, 이 세상 역사의 끝인 종말은 반드시 있습니다.
이 땅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공통된 신앙고백인 사도신경에서는 이 종말에 대해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 여러분! 아멘입니까? 사도신경의 3분지 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이 과거형의 신앙고백으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너무나 이 땅에 오셔서 이미 이루신 사역에 대한 고백입니다.
그런데 현재형이 딱 한 번 나옵니다.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미래형도 한 번 나옵니다.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예수님이 온 인류를 구원하러 오시리라는, 구약의 모든 예언은 다 성취되었습니다.
그리고 신약성경에 천국을 예비하신 후 다시 오시리라는 주님의 재림과 심판도,
반드시 이루집니다. 심판을 받는다는 것은, 사실 기분 좋은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 사도신경은 하나님 믿지 않는 불신자들만 심판하신다고 말씀하시지 않고,
모든 사람들이 다 심판을 받는다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3장에서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고 말씀합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 - 18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분명히 예수 믿으면 심판받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심판하러 다시 오신다는 이 고백은, 악인들이 멸망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와 정반대로 우리 예수님을 믿는 모든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심판을 받지 않는다는 말은, 이미 용서받는 죄에 대해서,
회개한 하나님의 자녀들의 죄에 대해서는 주님께서 다시는 묻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천국으로 인도함을 받아서, 하나님이 주시는 선한 보상받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심판하러 오시리라.” 는 심판에 대한 말씀은,
불신자들에게 벌주기 위해서 오실 뿐 아니라, 우리 눈에 눈물을 닦아 주시고,
우리 마음의 모든 소원을 풀어주시고, 보상하러 오신다는 의미의 말씀입니다.
세상에 많은 종교들이 있지만, 우리 기독교만큼 종말론이 정확하고 종말론이,
강한 종교는 없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기독교에는 하나님의 창조가 있고,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있고, 하나님 나라가 있기 때문입니다. 창조와 십자가와,
부활과 천국이 없다면, 죄와 허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종말론 혹 말세론이라는 말을 하는데, 잘 알아야 할 것은 종말과 말세는,
같은 말이 아닙니다. 말세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초림과 다시 이 땅에 오실,
재림 사이에 있는 기간을 말합니다. 그래서 1세기에도 말세이고, 천 년 전에도,
말세이었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도 말세입니다. 영어로 last days. 입니다.
그러나 종말은 말세 중 인류역사의 마지막 시점, 오메가 포인트 - 말세지말,
The Last Day 를 말합니다. 그리고 이 종말은 예수님의 재림의 때, 최후 심판의 때,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는 때를 말합니다. 성경에 재림에 대한 말씀이 많이 나오는데,
신약성경에만 무려 13절에 한 번 꼴로 300회 이상이 언급되고 있을 정도입니다.
우리 한국교회 성도님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성도들은 이 종말에,
깊은 관심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예수 재림이라는 종말이 언제 오는가?
심지어 그 오시는 날의 년 월 일 시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가집니다.
오늘 본문 24장 36절에 “그러나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 우리 예수님은 그 날과 그 때는,
하나님 아버지만 아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은 하늘의 천사들도, 심지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을 하다가 어떤 사람이, 어떤 단체가, 어떤 책이 - 예수 재림의,
날짜를 예언하면, 앞 뒤 재 볼 것도 없이 무조건 이단이라고 생각하면 틀림없이,
맞습니다. 그건 백발백중 이단입니다. 그리고 누군가 나는 예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재림의 날짜를 계시 받았다고 말하거나, 이미 예수님은 재림했고,
그 재림예수가 누구라고 말하면 무조건 이단입니다.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성경구절을 갖다 대고, 신천지처럼 비유풀이로 이만희를 재림주라 말해도 가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예수님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반드시 재림하십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나, 믿지 않는 사람들이 다 볼 수 있도록 구름타고 공중으로 재림하신다고 했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변화된 몸으로 신혼 단장한 신부로서,
신랑 되신 부활의 주님을 영광 중 맞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은,
바로 그 날에 결박된 사탄 마귀와 함께 저 무서운 지옥으로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 날이 반드시 옵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릅니다. 안다고 말하면,
그건 이단입니다. 우리는 그 날을 알 수 없기에,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말씀과 기도로 항상 깨어 있어야 하고, 언제 다시 우리 예수님 오실지라도,
다시 오실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계획하고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기록한 마태는 예수님은 언제 재림하는가? 천국과 지옥은 어떤 곳인가?
그것을 설명하려고 오늘 본문을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마태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무엇일까요? 마태가 하고 싶은 메시지는 오늘이 종말인 줄로 알고,
깨어 거룩하고 경건한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오늘 이 설교를 듣고 예수님께서,
홀연히 재림하신다 해도 부끄러움 없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오늘이 종말이라,
할지라도 후회가 없는 준비된 삶을 살라는 것이 마태가 말하려는 핵심입니다.
이 핵심 메시지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려고 오늘 본문 32절 이하에서,
무화과나무 비유를 통해 설명합니다. 이스라엘에서 무화과나무가 잎사귀를 내면,
곧 여름이 온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너희도 종말의,
징조들이 보이기 시작하면, 종말이 임박한 줄로 알고 깨어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젊을 때에는 영원히 살 것처럼 살아갑니다. 그러나 나이가 한 살 한 살 먹어가면서,
중년이 지나고 나면, 여기도 아프고 저기도 아프고, 병원에 가서 검사해 보면,
여기도 약하다 저기도 문제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덜커덕 쓰러져 입원도 하고,
수술도 하고, 그러다 ‘아 나도 죽는 날이 있겠구나.’ 알게 됩니다. 성도님들의 병문안을,
하면서, 큰 병으로 고생하는 분들을 보면 참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나는,
분들의 장례식을 집례 할 때마다, 아 이게 인간이로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오늘 본문 앞에서도 종말의 징조로 이단들이 많이 나올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거짓 선지자들과 적그리스도들이 나타나, 할 수만 있으면 우리 믿는 사람들을,
미혹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난리와 기근과 지진이 일어나고, 그런 재난이,
강해지고 많아지면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된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대로 성경이,
말하는 종말론적인 징조들이 나타남과 동시에 복음도 급속히 전파되고 있습니다.
이 지구상에는 약 2만 4천 종족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대부분 큰 부족들,
큰 종족들은 거의 100% 다 복음이 들어갔고, 100% 성경이 다 번역되어졌습니다.
성경이 번역되지 않고 복음이 아직 들어가지 않은 곳은, 2만 4천 종족 가운데,
약 7000종족 정도 됩니다. 인터넷이 발달되어지고, 정보화가 이루어지고 있고,
교회들에서도 물질적인 지원이 많아지고 있어서, 문자가 없는 종족에는 문자를,
만들어 성경을 번역해 주어, 복음이 급속히 전파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복음이 급속히 전파되고 있다는 것은 무화과나무 잎이 무성한 여름,
곧 종말이 가까웠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종말에 일어날 일들이,
성경에서 예언한대로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37절 - 39절에서 보면, 노아 때에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실 때에,
노아처럼 깨어 있어야 합니다. 노아는 홍수로 멸망하시겠다고 예고하신,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믿었고, 그 말씀대로 순종했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맞든지,
안 맞든지, 지금 자신의 상황에 맞든지 안 맞든지, 손해가 되든지 유익이 되든지,
심지어 마을 사람들로부터 미친놈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다 순종했습니다. 결국 산위에 배를 지었습니다. 그래서 노아와 그의 가족은,
다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래서 노아를 의인 - 구원받은 의인이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 해를 보내고 또 한 해를 맞는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고 있는 여러분들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을 확신하십니까?
그러면 구원받은 확신의 근거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노아의 홍수 심판 때에는,
홍수 심판을 믿었느냐 안 믿었느냐가 구원받느냐 못 받느냐의 갈림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재림 때에 이루어질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것을 믿으며, 그때에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으니, 예수님께서,
나를 천국으로 인도해 주실 것도 확실하게 믿으며, 예수님께서 내 인생의 구세주요.
그리스도라고 믿는 것만큼이나 분명히 종말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오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예수님은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반드시 재림하십니다.
그러나 그날은 모릅니다. 노아는 몸이 아파도, 먹을 것이 없어도, 몸과 영혼이,
항상 피곤해도, 순종하여 방주를 지었습니다. 온전히 하나님만 의지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오직 믿음으로 온전히 그날을 소망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병이 들어도 암에 걸려도 이 신앙은 가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신앙, 예수님 다시 오신다. 나는 부활한다. 천국이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사업이 어려워서 부도가 나도, 이 신앙만큼은 흔들리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직장에서 쫓겨나서 너무너무 억울해도 이 신앙만큼은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 세상일이 잘되면 신앙에도 불이 붙고, 세상일이 어려우면,
신앙이 식어지는 신앙이 아니라, 세상 일 때문에 내 신앙이 흔들리지 않는 믿음,
이것이 노아의 신앙입니다. 자녀가 실패해서 속을 썩여도 하나님 앞에 예배하고,
신앙만은 변하지 않는다. 흔들리지 않는다. 이 신앙이 종말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노아의 홍수가 최후 심판의 모형이라면, 노아의 방주는 구원의 모형입니다.
심판을 믿지 않던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조롱했습니다. 노아와 믿고 순종하는,
노아의 가족들을 비웃었습니다. 그러면서 38절 “홍수 전에 노아와 노아의 가족이,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그냥 살았습니다.
방주를 지을 때도 비웃었습니다. 소낙비가 쏟아지는데도 ‘이러다 그치겠지’ 했습니다.
그러나 비가 오고 물이 산꼭대기까지 차오르고, 산꼭대기보다 더 차고 넘쳤습니다.
노아 당시 사람들은 노아가 방주에 문을 닫고 들어간 날까지 믿지 않았습니다.
그때까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었습니다. 종말에 무관심했습니다.
누가복음 17장 28절에서는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 소돔과 고모라의 종말에 무관심 했다는 말입니다.
먹고 마시는 일상생활이 잘못되었다는 얘기인가요? 시집가고 장가가는 가정을 꾸리는,
생활을 하면 안 된다는 얘기인가요? 사고파는 장사행위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인가요?
먹고 살기 위해 심고 집을 짓는 사업을 하지 말라는 얘기인가요? 이 소리가 아닙니다.
여기 “먹고” 라는 “트로곤테스” 라는 이 말은 욕구에 푹 빠져 다른 일에,
무관심한 상태를 뜻합니다. 일상성에 도취되어 영원에 대해 잃어버린 상태,
천국과 종말 신앙을 상실한 상태, 죄에 빠져 하나님 말씀을 듣지 못하는 상태,
세속적인 일이 전부가 되어버린 상태, 육적인 일이 인생의 목적이 되어 버린 상태,
세상 사람들이 거기에 빠져서 그 일이 너무나 중요해서, 모든 가치를 대신하고도,
남은 시간의 가치들이 반드시 오게 될 것이다. 그때 예수님이 오신다는 것입니다.
상당히 오늘의 세상하고 너무나 가깝습니다. 지금까지 인류역사 가운데,
그 어떤 때보다 이런 가치들, 먹고 마시고 입고 장사하고 잘살고 국민소득 올리고,
집을 크게 짓고, 자동차를 큰 것 사고, 이런 가치들이 모든 가치를 대신하고도 남는,
이것이 너무 중요해서 어떤 것보다도 소중히 여겨지는 이런 때가 되면 세상의,
마지막 날이 된 줄로 알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알든 모르든 여기에 오염되어 있고,
세상 사람들은 말할 나위도 없는 것이지요. 바로 이때가 종말이라는 것입니다.
얼마 전 초등학생 학생들에게, 꿈을 가져라 그랬을 때 너희는 무엇을 생각하니?
성공하라 그랬을 때 너희는 무엇을 생각하니? 물었을 때 돈과 관련된 대답이,
70%를 넘어섰다고 합니다. 때 묻는 기성세대들에게 물은 것이 아닙니다.
어린 초등학교학생들에게 물은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가르친 것입니다.
종말의 때는 나누어지는 때입니다. 40절 “그때에 두 사람이” 남성입니다.
직장 생활을 함께 하던 두 남자가 밭에서 일하다가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한다고 그랬습니다. 41절 “두 여자가” 한 집안에서,
살던 두 여인을 말합니다. 두 여자, 며느리와 시어머니, 어머니와 딸.
그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한다고 그랬습니다.
우리말은 성경을 번역하시는 분들이 벌써 해석을 가지고 번역을 했습니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하고. 버려두는 사람이 이 땅에 남는,
사람이 지옥 갈 사람이고 데려가진 사람이 천당 가는 사람이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그러나 원문에는 그렇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하고” 데려감을 당한 사람이 구원받은 사람일까요? 여기에 남은 사람이,
구원받은 사람일까요? 당연히 데려간 사람을 구원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요.
그러나 그렇게 해석할 어떤 근거도 없습니다. 그냥 우리가 그렇게 추측을 할 뿐입니다.
알곡과 가라지 비유에서 먼저 데려감을 당한 것은 알곡입니까? 가라지입니까?
가라지입니다. 먼저 데려감을 당해서 가라지를 먼저 타는 불에 집어넣었습니다.
남은 것이 알곡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7절에 보면 공중으로 데려간 자는,
구원받았고 남는 자는 멸망 받았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구원받은 백성과,
구원받지 못한 백성이 분리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철저하게 한 집에,
한 이불 덮고 살다가도 분리되어지고 한 직장에서 함께 일하다가도 분리되어지고,
두 연인이 손잡고 데이트하다가도 분리되어지는 분리를 얘기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이후에 곧바로 재림하실 것이라고 기대했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늦어지자 이들이 조바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어떤 성도들은 곧바로 예수님 재림하실 줄 알고 세상에 나가서 일도 안하고,
농사도 짓지 않고, 오늘은 이 성도 집에 가서 몽땅 밥해 먹고 쌀 떨어지면,
저 성도 집에 가서 몽땅 밥해 먹고 다니며 어지럽히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아예 수도원적인 생활로 예수님의 재림만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때 건강한 기독교 종말 신앙을 가르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종말 설교를,
마태 공동체 안에 마태복음은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몇 가지 교훈이 있습니다.
① 예수님은 반드시 오신다. 모년 모월 모시에 오신다.
② 도둑이 언제 올지 모르듯이 예수는 언제 오실지 모른다.
③ 우리는 다만 깨어 준비하는 것입니다.
④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을 통해서 배고픈 자를 먹이고,
상처받은 자를 싸매고, 영혼이 주린 자에게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는 그의 서신에서 종말에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벧전 4:7-11)
“근신하여 기도하라.” 이 세상 살아가다가 억울해도, 힘든 일이 많이 있어도,
절망하지 말고 근신하여 기도해라.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 구원받은 백성들이 살아가는 동안 기도할 때에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여 주실 것이다. 기도를 포기하지 않는 신앙을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열심히 서로 사랑하라.” 서로 용서하고 죄를 덮어 주라. 마지막 때 우리가 할 일은,
서로 사랑하는 일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비판하고 비난하고 헐뜯는 일이 아닙니다.
“청지기인줄 알고 봉사하라.” 하나님 나라 섬기고 교회를 잘 섬기고,
너의 곁에 있는 연약한 지체들을 사랑으로 잘 돌보아 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말로 복음을 전하라.” 종말을 살아가는 성도의 삶입니다.
이단들이 와서 “여기 있다. 저기 있다. 재림주가 나타났다.” 고 해도 허둥대지 말고,
성령과 말씀 앞에 겸손하고 민감하시기 바랍니다. 이단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시계와 톱밥”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부잣집이 톱밥을 태산처럼 쌓인 곳에서,
놀다가 값비싼 시계를 잃어버렸습니다. 아무리 찾아도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같이 놀던 사람들에게 그 시계를 찾아주면, 후사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아무리 찾아도 그 비싼 시계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서로 찾겠다고 난리법석이 났습니다. 그러다 도무지 찾을 수 없어서,
새참이나 먹고 찾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새참 먹으러 간 사이에 어린 아이가,
시계를 찾아왔습니다. 어떻게 시계를 찾았냐고 물었더니? 사람들이 다 간 다음에,
조용히 귀를 대고 들어봤어요. 그리고 재깍재깍 소리가 나서 시계를 찾았답니다.
신통한 곳에 있는 줄 알고 온 세상을 휘젓고 다니지 말고 예수님 어디서 올까.
언제 임할까? 거기에 관심가지고 휘젓고 다니면서 찾지 말고, 말씀에 조용히,
귀를 기울이면 찾아오시는 성령님에게 조용히 귀를 기울이면 하나님께서 내게,
기대하는 내 비전에, 조용히 귀를 기울이면, 우리는 보석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주님을 찾고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시는 주님을 놓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해의 끝이 있습니다. 한해의 시작이 있습니다.
인생에도 끝이 있습니다. 역사에도 끝이 있습니다. 반드시 종말이 옵니다.
바로 그때 우리 예수님 심판하러 반드시, 꼭 오십니다. 주님 반드시 오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드시 다시 오실 재림 예수님을 소망 중에 기다리며,
그 재림 예수님을 영접하시기를 다시 오실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