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주먹], 2013.
폭력이 미화 되어서는 절대 안된다.

초등학교 때부터 영재 소리를 듣던 중학생이 친구들의 따돌림과 폭력에 시달려 정상적인 생활도 못하고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한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문을 열고 뛰어내리려는 시도를 하며, 부모님께 보험금을 타게 해드리는 것이 마지막 효도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아이의 부모 뿐만아니라, 나 역시 그 또래의 자식을 키우는 아버지로써 억장이 무너지는 듯한 먹먹함이 찾아온다.
아이는 같은 중학교 1학년 생 12명에게 따돌림과 폭력을 당했다고 한다. 아이의 부모는 평소 절대 다른 아이들을 때리지 말라고 가르친 것을 후회한다고 인터뷰 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는 미화된 폭력이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여지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그것도 남성들의 폭력을, 그들 세계에서 남자다움으로 혹은 숭상받아야 할 능력으로 간주되면서 말이다.
2001년 개봉되어 전국에서 8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끌어모은 영화 [친구]가 불러일으킨 사내들 사이에서의 폭력이 정당화되거나 조직 폭력배들 사이의 의리가 아름답게 비춰지는 일이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모습을 여실히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신조어로 대변되 듯이 보통의 사람들은 쉽게 해결하지 못하는 것들을, 폭력을 동원한 물리력이 너무나 쉽게 해결하는 데서 오는 카타르시스가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에게 후련함을 선사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폭력이 정당화되거나 아름답게 포장되어서는 안된다. 감독도 그런 생각은 있었던지 결국 등장인물들의 죽음과 살아남은 자들도 과거의 폭력 때문에 고통받는 모습을 보여주며 마무리했다.
2013년 또 하나의 폭력이 미화된 영화가 개봉되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연재되어 인기를 모았던 <전설의 주먹>이 [투캅스], [실미도], [이끼], [공공의 적] 등을 만든 강우석 감독에 의해 동명의 영화로 제작되었다.
웹툰에서는 한 때 싸움짱으로 불리던 고교생들이 우연히 저지르게된 살인 때문에 공소시효가 훨씬 지난 장년기까지도 괴로움을 이기지 못한다는 내용이다.
그 괴로움 때문에 장년이 된 그들이 한 때는 싸움짱이었던 전국의 주먹들을 불러 모아 이종격투기 무대에서 겨루게 한다는 TV 프로그램 <전설의 주먹>에 나타나게 된 이유다.
영화 [전설의 주먹]이 만화와 똑같지는 않다. 아니, 만화의 잘 짜여진 스토리와 독자에게 준 감동을 다 까먹었다.
우리는 때때로 원작보다 못한 영화를 만나게 된다. 그럴 때마다 '괜히 봤다'는 후회를 하게 된다.
영화 [전설의 주먹]을 연출한 강우석 감독 정도의 지명도라면 충분히 기대감을 지닐 수 있었다. 영화는 임덕규(황정민 분)를 개과천선해서 딸 아이 하나 두고 어렵게 국수집을 운영해 사는 마음 여린 인물로, 이상훈(유준상 분)을 가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굴지의 기업가 손자이자 이제는 경영자인 손진호(정웅인 분)의 오른팔 역할을 하고 있는 인물로, 신재섭(윤제문 분)은 폭력조직에 몸 담게 되어 아직도 그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물로 그렸다. 원작 만화와 비슷한 설정이다.
하지만 원작에서 이들이 철 없던 시절에 자행했던 폭력 때문에 괴로워 하고, 자멸해 가는 과정을 영화 속에서는 과거의 폭력은 이제 별 일 아니라는 것처럼 그려냈다.
오히려 마지막 결승전을 앞두고 재섭이 있는 힘을 다해 덕규를 도와 준다거나, 덕규와 재섭의 아름다운 양보와 화해가 그려져 미화된 폭력의 완성을 보여준다.
마치 남자들의 끈끈한 우정을 보여주는 듯했다.
이래서는 곤란하다. 아무리 영화가 현실에 두 발을 디디고 있으면서도 현실과는 다른 모습을 그려낸다지만 이건 아니다 싶다.
나치 전범들을, 일본 전쟁광들을 세월이 흘렀다고 해서 용서할 수 있는가?
과거 철없던 시절에 저질렀던 폭력이 용서되고, 그들끼리 서로를 끌어안고 화해하는 모습은 영화 속에서라도 그려져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