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메시야를 보내신 이유
본문 : 이사야 53장 1-12절
『오늘 본문에 보면 ‘그’라는 단어가 무려 27번 나오는 것을 봅니다. 그가 누구일까요? 메시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인 53장은 일명 ‘여호와의 종의 노래’라는 말씀으로 ‘이사야 선지자가 700년 후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것과 그분이 겪게 될 고난에 대해 예언하는 말씀’입니다. 세부적으로 나눠보면, 1-3절에선 ‘고난 받는 종, 곧 메시야의 초라한 모습과 사람들의 멸시’에 대해 소개하고 있으며, 4-6절에선 ‘메시야가 당하게 되는 수난의 목적은 우리 죄인들의 대속을 위한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7-9절에선 ‘메시야가 대속 사역을 위해 당하시는 고난’에 대해 설명하고 있으며, 10-12절에선 ‘여호와께서 당신의 뜻을 성취하신 메시야를 존귀케 하실 것’을 말씀하고 있다는 것이 53장 전체의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사야 선지자가 앞으로 오실 예수님과 당하시게 될 고난에 대해 말씀을 하는 것일까요?
1.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을 수 없는 일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절에 이런 말씀으로 시작하는 것을 봅니다.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여기서 ‘전한 것’은 ‘장차 여호와의 종이신 메시야가 오셔서 우리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신다’는 뜻을 가졌고, 또 ‘여호와의 팔’이란 말은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들을 향하신 한이 없으신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고 있습니다. 정리를 하면,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어 고난을 받아 죽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는 말입니다. 문제는 뭐에요? “누가 믿었느냐?” “누구에게 나타났느냐?”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기까지 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데도 사람들이 믿지를 않았다’는 말입니다. ‘당신의 아들까지 내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었는데도 사람들이 믿지를 않았다’는 말입니다. 자. 우리는 이사야 선지자가 왜 이런 말을 하시는지 알아야 합니다. 제가 수없이 말씀을 드렸습니다. 당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며, 수없는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분명 율법대로 한다면, 저들은 벌써 징계를 받았어야 합니다. 저들은 이사야 1장에서 심판을 받아 진작 나라가 망했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50장이 지나도록 저들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타이르기도 하고, 책망도 하고, 다른 나라가 심판을 받는 것을 보여주기도 하고, 때론 징계도 하시면서 회개하고 돌이키길 원하셨습니다. 심지어 회개하면 구원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해주시겠다고까지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저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고, 또한 돌이킬 생각도 없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이시라도 그런 저들을 볼 때 화가 나실 것입니다. 이쯤 되면 그만하셔도 될 텐데, 저들을 버리시고 멸망을 시키시면 될 것인데, 하나님께선 놀랍게도 더 놀라운 계획을 준비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어 저들을 구원하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믿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사야 선지자는 답답해서 말을 하는 것입니다. “어찌하여 너희는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믿지 못하느냐?” 안타까워 하고 있습니다. ‘너희들이 믿지 않을지라도 하나님께선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보내어 너희 죄를 대신하게 하여 너희를 반드시 구원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바로 10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자. 여기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이유가 있는데,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그 씨’는 바로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들’입니다. 그런데 ‘그의 날이 길게 된다’는 말은 ‘구원을 받아 영원한 나라에서 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구원하여 영원한 나라 천국에 들어가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해야 할 것이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상함을 받고, 질고를 당하여 속건제물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사야 선지자는 이 말씀을 전하면서도 자신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사랑이 크시다고 해도, 메시야의 고난과 죽으심까지 하여 백성들을 구원하실 수가 있을까? 놀라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위해서 자신의 외아들을 대신 죽게 하실 수 있단 말입니까? 이것은 인간이 생각하지 못한 것이요 사탄도 생각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이 있었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함을 받았고, 오늘 우리가 구원함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하여 믿을 수 없는 구원 사역을 이루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2.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주님께서 고난을 당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 4절에서 6절까지 보노라면, 많이 언급되는 단어가 나오는데, ‘그’라는 말과 ‘우리’라는 말입니다. 특별히 5절에 보니까 ‘그’라는 말이 네 번씩이나 나오는 것을 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여기서 ‘그’와 ‘우리’ 그리고 ‘고통’과 ‘징벌’을 암시하는 말이 반복되어 나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는 메시야가 당하는 고난이 죄와 연관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고난은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받는 대리적 형벌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당연히 죄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때요? 4절에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말씀이 나오는데, ‘우리가 당해야 할 질고와 슬픔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당하셨기에 마땅히 그 은혜에 감사했어야 하는데, 저들은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징계를 받는 것이라 착각하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데도 당시 유대인들이 그랬습니다. 얼마나 기가 막히는 일입니까? 그럼에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하셨느냐? 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자 무슨 말입니까? 우리의 허물 때문에 예수님께서 찔리셨고, 우리의 죄악 때문에 예수님께서 그 모진 고난을 당하셨다는 것입니다.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 징계를 받는 바람에 우리가 평화를 누리게 되었고, 그가 채찍을 맞는 고난으로 인해 우리가 나음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은 무슨 죄가 있어서 허물이나 무슨 잘못을 저질러서 당하신 고난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누구 때문이라 말씀합니까? ‘우리’ 때문입니다. 그럼 ‘우리’가 누구일까요? 오늘 ‘저와 여러분’입니다. 내가 받아야 할 형벌을, 내가 져야 할 십자가를 주님이 대신 지셨다는 말입니다. 문제는 우리의 본성이 어떠냐? 6절에 나오듯이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길로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원래 양이란 목자만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목자를 따르지 않고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는 말입니다. 당시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땅히 하나님을 섬기고 따라야 하는데, 엉뚱하게 하나님을 떠나 죄악된 길을 가고 있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그런 저들을 징계하셨어야 했는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느냐? 6절 하반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예수 그리스도께 담당시키셨다는 것입니다. 죄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 모두의 죄악을 뒤집어 쓰게 되었으니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그런데 7절에 보면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말씀하는 것을 봅니다. 얼마든지 못한다고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선 묵묵히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고난을 받으신 것입니다. 나의 허물, 죄악, 교만, 혈기 때문입니다. 내가 받아야 할 형벌을, 내가 져야 할 십자가를 주님이 대신 지신 것입니다. 찬송가 144장에 보면, 이런 찬양이 나옵니다. “♬예수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질 때, 세상 죄를 지시고 고초당하셨네. 예수님, 예수님, 나의 죄 위하여 보배 피를 흘리니 죄인 받으소서.♬” 하여 오늘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해서, 내가 죄 사함을 받았다는 사실을 확실히 믿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화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2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여기서 ‘그러므로’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켄’이라고 하는데, ‘00을 한 결과’를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셨습니다. 그 결과, 어떤 일이 일어났느냐?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그에 맞는 보상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내가 그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말씀입니다. 이는 비유적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병사들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올 때, 왕이 병사들이 세운 전공을 따라, 합당한 상을 줍니다. 또한 병사가 탈취해온 전리품도 하사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존귀한 자와 함께 앉게 하셨고, 그에 합당한 상급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받으셔야 할 영광을 예수님도 함께 받도록 하셨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요한계시록 3장 21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저는 오늘 이 말씀을 여러분에게 적용하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 예수님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앉게 하셨고, 상급을 주셨듯이,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예수님의 보좌에 함께 앉은 축복을 받아야 할 줄 믿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나라에서 영화를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이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영혼을 버리면서까지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또한 오늘 우리들이 충분히 그럴 수 있도록 예수님께서 기도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분명 우리들은 죄가 많은 범죄자들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고, 우리를 위해 기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로 인한 그 결과가 ‘그러므로’입니다. 그리고 앞에서 말씀을 드린 것과 같이 ‘예수님과 같이 하늘 보좌에 앉게 되는 은혜’와 ‘하나님께 상급을 받는 축복을 받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해 받은 은혜와 축복인 줄 믿습니다. 하여 여러분에게 이런 은혜와 축복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70년의 세월 동안 수없이 회개하고 돌이킬 것을 말씀하셨건만, 백성들은 전혀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그런 저들을 끝까지 사랑하시고, 메시야를 보내 주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저들의 힘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면,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악을 대신하지 않는다면, 죄에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아셨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이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기꺼히 사명을 감당하신 것입니다. 그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들까지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과 함께 하늘 보죄에 앉게끔 하시려고,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하여 독생자 아들까지 아낌없이 우리를 위하여 보내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주님의 사랑에 합당한 삶을 살다가 하늘 보좌에 앉게 되는 축복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