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한(안재모)은 시바루(이세창)와 막상막하의 대결을 펼친다. 한참 공격을 하던 두한은 일본인 중에 당신같은 사람이 있다는 게 놀랍다며 더 이상 싸우고 싶지않다고 말한다. 이후 두한은 나미꼬(이세은)가 종로에서 계속 영업할 수 있도록 허락한다.
두한은 인애 부(김기현)를 찾아가 인애(정소영)와 결혼하기로 약속했다며 자신들을 갈라놓을 수 없다고 당당히 말한다. 화가 난 인애 부는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노발대발한다. 며칠 후 박인애가 말도 없이 집을 나가자 인애 부는 두한한테 간게 틀림없다며 경찰에 납치신고를 한다. 그 시간 두한도 행방불명된 박인애를 찾다가 뚝섬에서 박인애를 발견한다. 박인애는 두한이 자신의 운명을 걸어도 될 만한 사람이라며 죽는 날까지 마음이 변하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종로경찰서에 부임한 강직한 마루오까(최재성) 경부는 종로에서 우미관 일대가 우범 지대라는 보고를 받고 순찰을 나간다. 마침 지나가던 와싱턴(김세준)이 담배꽁초를 길바닥에 버리자 마루오까가 노려보며 호통치자 와싱턴 일행은 모두 어이없어 한다.
한편 종로경찰서 김태서(김호진) 형사는 두한을 거주지 이탈 및 부녀자 납치 혐의로 체포하는데….
씬 1 우미관 광장
지난회의 연결이다. 김두한과 시바루가 원을 그리며 돌면서 서로를 탐색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시바루의 공격을 시작으로 결투가 벌어진다. 용호상박의 팽팽한 대결이다. 무용을 하는 듯 그들의 몸놀림은 흐르는 물처럼 유연하고 또한 송곳처럼 날카롭다. 구경꾼들이 숨죽이며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 묘기에 가까운 발차기가 연속으로 터지자 관중들이 탄성을 자아낸다. 어느새 그들의 이마에서는 땀이 비오듯 쏟아지고있다. 두한이 미소를 짓는다.
두한/대단하구나... 시바루라고 그랬나?
시바루/...
시바루는 대꾸없이 다시 두한을 공격한다. 다시 일진일퇴의 공방전이 치열하게 벌어진다. 그러다 어느 순간 두한의 발차기가 시바루의 가슴팍에 정통으로 꽂힌다. 시바루가 충격을 받고 서너 발자국 뒤로 물러선다. 그러나 두한은 공격을 멈추고 자세를 푼다.
두한/그만하자. 더 이상 싸울 이유가 없는 것 같다.
시바루/...?
두한/일본인 중에 당신 같은 사람이 있다니 놀랍군. 내 부하의 실수를 사과하지. 승부는 다음 기회로 미루도록 하자.
두한이 외투를 걸친다. 시바루는 여전히 멍한 표정이다. 두한이 들어가며 삼수에게 한 마디 던진다.
두한/삼수야, 사쿠라에 가서 영철이랑 애들 철수하라고 해라.
삼수/예? 예...
두한이 그렇게 안으로 들어가면 시바루가 비틀한다. 군중들이 웅성거리며 돌아선다. 그 때 김태서가 헐레벌떡 뛰어오지만 이미 상황은 종료된 상태다. 김태서가 부하 형사들에게 다가간다.
김태서/어떻게 된 거야?
형사1/벌써 다 끝났습니다.
김태서/벌써...? 긴또깡이 사고를 치지 않았나? 누구를 다치게 하지 않았느냐는 말이다.
형사1/글쎄... 멀쩡한데요...
김태서/...(시바루를 보면)...?
시바루는 넋이 나간 듯 멍하니 서 있다. 절망적으로 눈을 감는다. 그 모습에서...
씬 사쿠라 앞
삼수가 문영철과 뒷짐을 진 채 문을 가로막고 있는 성석에게 다가온다.
삼수/영철이 형님... 저 큰형님께서 돌아오시랍니다.
문영철/왜...? 무슨 일 있어?
삼수/모르겠습니다, 저도.. 갑자기 왜 그러시는지...
문영철/알았어. (성식에게) 넌 여기 잘 지키고 있어.
성식/예. 걱정 마십시오, 형님.
삼수/형님만 오시라는 게 아니라.. 전부 철수하라고 하셨습니다.
문영철/철수...?
삼수/예.
문영철/아니 얼마나 됐다고 벌써 철수야?
성식/그러게 말입니다.
문영철/... 어쨌든 오야붕의 명령이니까 따라야지... 자 철수해!
그들/예, 형님...
씬 혼마찌깡 외경
씬 동 안
하야시와 나미꼬, 가미소리, 미우라가 모여 있다.
하야시/그런 일이 있었군. 그예 그런 일이 벌어지고 말았어.
나미꼬/죄송해요, 형부. 다 제 불찰이에요.
하야시/처제의 잘못이 아니야. 사쿠라는 포기하도록 해. 이미 그 곳은 우리에게 큰 의미가 없어.
나미꼬/형부?
하야시/그렇게 해. 하지만 영영 그만 두라는 것은 아니야. 언젠가는 우리 모두 종로로 가는 날이 오게 될 거야. 그 때를 기약하라구.
나미꼬/...?
그 때 시바루의 소리가 들려온다.
시바루/오야붕, 시바룹니다.
하야시/들어와.
시바루가 안으로 들어와 조아린다.
하야시/무슨 일인가?
시바루/오야붕께 보고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하야시/해봐.
시바루/지금 우미관에 다녀오는 길입니다. 사쿠라의 일은 잘 해결이 되었습니다.
나미꼬/(놀라)해결이 되다니요? 어떻게요?
시바루/....
하야시/해결이 됐다면서 표정이 왜 그런가?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가?
시바루/김두한과 결투를 했습니다.
모두들/...?
나미꼬/그럼... 김두한을 이겼다는 말이에요? 그런 거에요?
하야시/...?
시바루/... 아닙니다. 제가 졌습니다.
나미꼬/졌다구요? 그런데...?
미우라/자세히 말을 해보게.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소상히 말이야.
시바루/....
하야시/경솔한 짓을 했구나, 시바루..
시바루/죄송합니다, 오야붕...
하야시/됐다. 그만 돌아가 쉬도록 해라.
시바루/...
하야시/나가봐.
시바루가 다시 밖으로 나간다.
나미꼬/도대체 어떻게 된 거죠? 형부는 아시겠어요?
하야시/...글세...사나이들의 세계에선 때론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종종 벌어지곤 하지. 처제도 차츰 알게 될 거야.
나미꼬/...?
씬 우미관 사무실
사쿠라에서 철수한 문영철들이 들어온다. 두한과 나머지 부하들이 그 곳에 모여 있다.
문영철/어떻게 된 거야? 갑자기 철수를 하라니?
두한/앉아..
문영철/어떻게 된 거냐구? 삼수한테 들으니까 시바루랑 싸웠다면서...?
두한/생각이 바뀌었어. 그것 뿐이야.
문영철/응?
두한/간만에 상대다운 상대를 만났다. 굳이 끝을 봐야할 싸움은 아니었어.
문영철/...?
정진영/잘한 거야, 두한아. 무조건 힘으로 제압하려 드는 건 하수들이나 하는 짓이야. 너 정도라면 아량을 베풀 줄도 알아야 돼..
두한/...(미소)...고맙다. 이해해 줘서.
박인애(E)/두한씨가 그런 사람 이라니... 아니야.. 믿을 수 없어. 아버지가 나와 두한씨를 떼어놓으려고 한 번 해보신 말일 거야. 그래.. 그럴 리가 없어.
도리질을 친다. 하지만 박인애는 여전히 혼돈스럽다.
씬 회상 인서트1
두한이 싸우는 장면..
씬 회상 인서트2
미스터박 극장으로 찾아갔는데 정말 대단한 사람인가 보더라. 그 사람 앞에선 모두들 기를 펴지 못하고 굽신대더라구. .... 지나가는 사람들이 하도 인사를 해대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을 정도였다.
씬 다시 현실
여전히 박인애가 생각에 잠겨 있다.
박인애(E)/아버지 말씀이 사실 일지도 몰라. 하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아버지가 말하는 그런 사람은 아닐 거야. 내가 아는 두한씨는 누구보다 선량하고 순수한 사람이었어.
그 때 미스터 박이 안으로 들어온다.
미스터박/인애야...
박인애/(놀라며) 오라버니...?
미스터박/노크 소리도 못 듣고 대체 무슨 생각에 그렇게 깊히 빠져 있는 거냐?
박인애/아니에요. 아무것두...
미스터박/그 김두한씨 때문이냐?
박인애/...
미스터박/아버지 말씀에 너무 신경 쓰지 마라. 너하고 김두한씨를 떼어놓기 위해서 하신 말씀일 거야. 또 주먹패가 맞다고 해도 그 사람에겐 뭔가 이유가 있을 거야. 김좌진 장군의 아들이 라고 하지 않았냐?
박인애/...
씬 우미관 사무실
두한이 봉투를 탁자에 내려놓고 진영이 앞으로 밀어놓는다. 정진영이 의아한 눈으로 보다가...
정진영/이게.... 뭐야?
두한/열어봐.
정진영/(봉투 속의 문서를 보며) 이거 집문서 아니니?
두한/너희 집이야.. 다 쓰러져가는 집이라는데 그래도 거지촌 보다는 나을 거다.
정진영/두한아?
두한/항상 마음에 걸렸어. 너희 어머니 말이야.. 몸도 편치 않으신데..
정진영/... 아니야.. 이건 받을 수 없어.. 번번히 너한테 신세질 수는 없어. 됐어, 두한아..
두한/받아.. 안 그러면 화낼거다.
정진영/두한아...
두한/신세를 진 건 오히려 내 쪽이야.. 벌써 옛날 일 다 잊어버린 거야? 우리와 함께 있느라 자주 들여다보지도 못하잖아? 조금이라도 편한 곳에 모셔.. 알았지? 그렇게 해.
정진영/...
씬 다방
김무옥과 문영철, 개코, 와싱턴, 번개, 성식, 영근 등등이 모여있다.
개코/도대체 뭐가 뭔지 이해가 안돼. 분명히 두한이가 이길 수 있었는데 말이야..
번개/언제는 뭐 이해되는 게 있었수?
개코/뭐야?
와싱턴/그 놈이야. 그 놈이 날 아사히마찌에 찌른 게 분명해..
문영철/이제 와서 분통을 터뜨려봤자 뭐하겠소? 이미 다 지난 일인데..
와싱턴/(한숨)그래... 내가 미_치_인 놈이지. 내가 정신 나간 놈이야. 계집한테 정신 팔려가지고 거기가 호랑이굴인 줄고 몰랐으니... 그나저나 무옥 아우에게 정말 미안하게 됐네..
김무옥/...(역시 한숨)...
문영철/그만 인상 좀 펴라.. 두한이도 인정한 싸움꾼이 아니냐? 그 놈에게 졌다고 해서 기죽어 있을 필요 없어.
김무옥/그려두 쪽발이헌티 얻어 터졌다는 게 분해 죽겄다.. 에이...
번개/자자 형님들,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기분 전환도 할 겸 경성 운동장에나 가실래요?
와싱턴/경성 운동장? 거긴 뭣하러?
번개/거기서 오늘 경평축구대회를 한 대요. 경성하고 평양하고 하는 축구 시합 말이에요.
개코/축구? 축구가 뭣인디?
번개/아 축구도 몰라요? 하여간 뭐 아는게 없다니까..
개코/뭐여?
문영철/그만 해라. 너희들은 왜 만났다하면 서로 못잡아 먹어서 안달이냐? 나도 축구라면 환장을 하는 놈이지만 오늘은 아닌 것 같다. 다시 사쿠라 문을 열게 해줬다고 해서 다 끝난 게 아니야.. 혼마찌패하고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구..
김무옥/그려.. 그건 영철이 말이 맞어.. 그만 노닥거리고 한바퀴 돌아보자잉..
무옥이 모자를 쓰며 일어나면 모두들 일어나 궁시렁대며 나간다. 그 한쪽 테이블에서 신문을 보던 신사가 신문을 접는다. 김태서의 부하형사1이다.
씬 종로서
미와가 김태서의 보고를 받고 있다.
미와/긴또깡이 이제 하야시패와 싸우기 시작했다..? 하야시패와
김태서/이번에는 조용히 끝났지만 조만간 크게 걸려들 것 같습니다, 경부님...
미와/주먹으로 독립운동 어쩌구 하더니... 결국 그 녀석의 궁극적 목표가 그거였구만.. 더 이상 놔둬서는 안되겠어. 긴또깡의 주변은 계속 감시하고 있겠지?
김태서/예, 제 부하 형사들이 밤낮 없이 교대로 감시하고 있습니다.
미와/생각할수록 겁이 없는 놈이야. 천하의 하야시패를 넘보다니..
문달영/차라리 잘된 것 같습니다, 경부님. 아무리 긴또깡이 싸우는 데 날고 기는 재주가 있다고 해도 하야시패에게 되겠습니까?
미와/...글세...
오무라/그런데 말입니다, 경부님. 마루오까가 오게 된 데에는 그 하야시상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후문입니다.
미와/그건 또 무슨 소린가?
오무라/하야시상이 마루오까 경부를 조선으로 불러 달라고 요청을 했다는 겁니다.
미와/그래? 거 이상한 일이구만.. 하야시가 왜...?
미와의 궁금한 표정에서...
씬 부산항
여객선이 정박해 있다. 승객들이 줄을 지어 뭍으로 내리고 있고, 그들 중에 덩치가 산만한 마루오까가 위압적인 검은 경철복을 입고 내리고 있다. 미리 기다리고 있던 미우라가 다가가 고개를 숙인다.
미우라/실례하겠습니다. 혹시 마루오까 경부님이십니까?
마루오까/그렇다.
미우라/아 그러십니까? 처음뵙겠습니다. 전 혼마찌깡 하야시 오야붕의 비서 미우라라고 합니다.
마루오까/혼마찌깡... 하야시...?
미우라/예, 저희 오야붕께서 경부님을 편히 모셔오라고 해서 이렇게 마중을 나왔습니다.
마루오까/오야붕 운운하는 것을 보니 야쿠자가 아닌가? 야쿠자가 왜 나를 마중 나온단 말인가?
미우라/저는 지시만을 따를 뿐입니다.
마루오까/꺼져라. 난 경찰이다. 너희들 같은 쓰레기들을 청소하는 경관이란 말이다. 알겠나?
마루오까가 그렇게 사라져 간다. 뻥한 표정을 짓는 미우라의 모습에서...
씬 혼마찌깡 외경
전화벨소리가 울리고 있다.
씬 동 안
가미소리가 전화를 받고 있다.
가미소리/...알았네. 어쨌든 수고가 많았네.. 조심히 올라오도록 하게. (전화를 끊고) 오야붕, 마루오까 경부가 조선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하야시/그래...? 잘됐구나..
가미소리/그런데 뭔가 잘못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하야시/뭐가 말이가?
가미소리/마루오까가 미우라의 마중을 거절했다고 합니다. 야쿠자의 마중을 받을 수 없다고 말입니다.
하야시/그래?.. 하하하하.. 마음에 드는 친구구만. 경찰이라면 당연히 그래야지.
가미소리/그런 자가 우리 뜻을 쉽게 따르려 하겠습니까?
하야시/굳이 우리가 이래라 저래라 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야. 그자의 별명이 라이온이라고 하더군. 사자 말이야.. 그런 맹수를 들판에다 풀어 놓았으니 사냥은 저 스스로 알어서 하겠지.
가미소리/...?
하야시/그 마루오까가 부임한 지역마다 야쿠자들이 거의 초토화되다시피 했다고 한다. 누가 시켜서 한 일이 아니야.
가미소리/아..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하야시/아마 볼만한 구경이 될 게야.
하야시의 묘한 웃음에서..
씬 어느 국밥집
두한과 김영태, 정진영이 국밥을 먹고 있다.
김영태/아무래도 뭔가 이상해.. 너무 조용하단 말이야..
두한/뭐가 말입니까?
김영태/지금쯤이면 무슨 움직임이 있어야 하는데 도무지 조짐이 보이지 않는단 말이야... 하야시패 말일세..
정진영/맞습니다. 두한이가 사쿠라 문을 다시 열게 해줬다고 해서 가만히 있을 저들이 아닐 텐데요.
두한/뭐가 그렇게 걱정이냐? 조용한 것두 걱정이야?
정진영/뭔가 있긴 한데 그게 뭔지 모르니까 그러지. 예감이 별로 좋지 않아.
두한/걱정 말고 밥이나 먹어.. 일이 터지면 그 때 가서 생각하면 되는 거야.
두한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국밥을 떠넘긴다.
씬 그 앞 거리
미스터 박이 두리번거리며 오고 있다. 그 위로 삼수의 소리가 들려온다.
삼수(E)/두한 형님이요? 요 앞 국밥집에 가 계실 거에요. 요 앞이에요.
마침내 미스터박이 국밥집을 찾았다. 유리문 안으로 두한의 모습이 보여온다. 미스터박이 안으로 들어간다.
씬 동 안
미스터박이 들어온다. 두한은 아랑곳 않고 밥을 먹는데 열중하고 있다.
미스터박/저...
정진영/누굴 찾아 오셨습니까?
김영태/두한이, 손님이 오셨네..
두한/예?(돌아보면)...
미스터박/안녕하십니까?
두한/(반색) 아 예.. 웬 일이십니까, 여기까지?
미스터박/우미관으로 찾아 갔더니 여기 가 계실 거라고 해서요...
두한/예... 앉으십시오. 점심은 드셨습니까?
미스터박/아, 아닙니다. 천천히 마저 드십쇼. 여기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두한/아닙니다. 저두 다 먹었습니다. 형님, 좀 다녀오겠습니다.
김영태/(끄덕이며) 알았네.. 가보게..
두한/(일어나 나가며) 가시죠. 요 앞에 다방이 있습니다.
두한과 미스터박이 밖으로 나간다.
정진영/누굽니까? 아시는 사람이에요?
김영태/두한이가 결혼을 하겠다는 그 여자의 오라비일세.. 그래서 저렇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가는구만...
정진영/아 예..
씬 다방 외경
씬 동 안
두한과 미스터박이 마주해 있다. 두한의 표정이 어둡다. 두 사내는 잠시 동안 말이없다. 미스터박이 한참만에 묻는다.
미스터박/저희 아버님 말씀이.... 사실입니까?
두한/...그렇습니다. 내가 하는 일을 다른 사람들은 주먹패라고 하더군요.
미스터박/그렇군요..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습니다.
두한/속일 생각은 없었습니다. 다만...
미스터박/괜찮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김두한씨를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건 인애도 마찬가지구요.
두한/인애씨도 ... 알고 있군요..
미스터박/(끄덕인다)...예..
두한/잘 있습니까?
미스터박/(도리질) 집안에 갇혀있다시피 지내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외출을 일절 금지시키셨거든요.
두한/...그런 일이 있었군요..
미스터박/실은 그래서 찾아온 겁니다. 혹시 인애가 찾아오지 않는다고 오해를 하실까봐 염려가 돼서요.
두한/고맙습니다.
미스터박/인애는 김두한씨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 두 사람이 잘 됐으면 하는 바램이구요.
두한/...
미스터박/힘내십시오. 두 사람의 마음만 변치 않는다면 잘 될 겁니다. 이 정도 역경은 헤쳐나가실 분이라 믿습니다.
두한/...
씬 박인애의 집 외경 (밤)
씬 동 거실
정혼자 이군이 와 있다. 인애부와 인애모가 소파에 앉아 사람 좋은 웃음을 짓고 있다.
인애부/그래, 댁내 어르신들은 두루 평안하신가?
이군/예, 아버님... 다들 건강하십니다. 아버님, 어머님께서도 별고 없으셨습니까?
인애부/우리야 뭐 늘 그렇지. 허허허.. 한데 이 아이는 뭐하고 있는 게야? 어서 내려오지 않구. (이군에게) 워낙 숫기가 없는 아이라서 말일세. 자네가 좀 이해하게.
이군/예...
인애부/부인이 한 번 올라가 보시구려.
이군/아닙니다. 놔두십시오. 오늘은 아버님, 어머님께 문안인사 드리러 온 것입니다.
인애부/문안이야 핑계지. 우리 같은 늙은이들이 뭐가 반가워서... 허허허....
이군/아, 아닙니다. 정말입니다, 아버님..
인애부/허허허. 됐네, 이사람아... 어서 데려 오시구려.
인애모/예..
모친이 인애의 방으로 올라간다.
인애부/(찻잔을 들며) 차 식네.. 어서 들게..
이군/예...
씬 동 박인애의 방
박인애가 멍하니 창밖을 내다 보고 앉아 있는데 인애모가 안으로 들어온다.
인애모/인애야.. 뭐하구 있어? 어서 아래로 내려오지 않고..
박인애/...
인애모/(달래듯) 인애야..
박인애/전 그 사람하고 결혼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만날 필요없어요.
인애모/인애야...?
박인애/...
인애모/그게 무슨 소리냐? 결혼을 하지 않겠다니..?
박인애/말씀드린 그대로에요.
인애모/너 지금 제정신으로 하는 말이냐?응? (울먹이며) 도대체 왜 그러니? 어쩌려구 그래? 이 에미를 말려 죽일 작정이냐?
박인애/그만 내려가세요.
인애모/그 청년 때문이냐? 김두한인가 뭔가 하는 그 사람? 안된다.. 그 사람은 절대로 안된다고 하지 않아... 아버지한테 무슨 경을 치려구..
박인애/피곤해요.. 좀 자야겠어요.
박인애가 이불 속으로 들어가 모로 눕는다.
인애모/인애야..인애야...?
난감한 인애모의 모습에서..
씬 동 거실
인애부와 이군의 자리는 웃음이 그치지 않고 있다.
인애부/하하하. 그게 그렇게 된 일이었구만... 밖에서 뵙기에는 그렇지 않은데 꽤나 예민한 분이셨구만. 총독각하 말일세..
이군/예, 예민하고 또 섬세한 분이시죠. 예술 분야에도 조예가 깊으신 분이십니다.
인애부/오 그런가? 허허허 (어느새 다가온 인애모를 보고는 ) 인애는? 왜 데리고 내려오지 않았소?
인애모/그게 저... 몸이 많이 아프다네요.
인애부/(굳어지며)아퍼? 갑자기 어디가? 아니 어디가 얼마나 아프길래 제 신랑될 사람이 왔는데 내다보지도 않는단 말이오? 내가 가봐야겠구만..
이군/놔두십시오, 아버님... 많이 아픈 모양인데요.
인애부/아닐세. 그래두 그렇지.. 이건 예의가 아닐세.
인애부가 일어서려는데 초인종 소리가 들려온다.
인애모/큰 아이가 온 모양이네요..
인애모가 현관으로 다가가면 집사가 들어온다.
집사/웬 남자분이 회장님을 뵙겠다고 찾아왔는뎁쇼?
인애모/남자?
그때 두한이 안으로 들어온다. 경악하는 인애모. 인애부도 놀라기는 마찬가지다.
인애부/뭔가? 자네가 여긴 웬일인가?
이군/...?
두한/드릴 말씀이 있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잠시 안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인애부/이게 무슨 짓인가?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들어오는 게야!
그러나 두한은 성큼성큼 들어와 선다.
인애부/이, 이런 무례한 사람을 보았는가?
이군/누구신지는 모르겠지만 주인의 허락도 없이 이게 무슨 짓입니까?
두한/..? 여기 두 분과 할 이야기가 있어서 온 사람이오. 당신은 잠자코 있으시오.
이군/뭐요?
두한/인애씨가 집에 갇혀있다시피 지낸다 들었습니다. 인애씨를 자유롭게 해 주십시오.
인애부/뭐야? 자네가 뭔데 남의 집 일에 이래라 저래라 하는가?
두한/제 여자이기 때문입니다. 인애씨와 나는 이미 장래를 약속했습니다.
이군/...?
인애부/뭐, 뭐라? 지,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고 있는 게야?
두한/사실입니다. 결혼을 하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인애부/닥치지 못할까! 내 집에서 썩 나가거라 이놈...! 나가지 않으면 경찰을 부를 것이야... 부인은 뭐하고 있소. 어서 경찰에 신고를 하시오.
인애모/...(어쩔 줄을 몰라한다)...
두한/아무리 반대하셔도 우리 둘 사이를 갈라놓으실 수는 없을 겁니다. 그 말씀을 드리려고 이렇게 찾아 온 겁니다.
인애부/ 나가.. 내 집에서 당장 나가지 못해!
두한/인애씨를 만나야겠습니다.
인애부/나가라 하지 않느냐? 이런 천하의 날강도 같은...
이군/이보시오. 알만한 사람이 이러면 되겠소? 무단가택 침입은 형사처벌 대상이라는 것도 모르오?
두한/당신은 빠지라고 했을텐데..
이군/뭐요? 좋은 말로 할때 그만 나가시오. 나가서 나랑 얘기좀 합시다.
이군이 두한의 팔을 나꿔챈다. 그러나 두한은 끄덕하지 않는다.
두한/이거 놓치 못해?
두한이 무섭게 노려보는데, 박인애의 소리가 터져나온다.
박인애/두한씨...
두한이 뒤돌아 보면 박인애가 계단을 내려오고 있다.
박인애/그만하세요, 두한씨. 이제 됐어요.
두한/...나와 함께 갑시다. 여긴 인애씨가 있을 곳이 못됩니다.
박인애/(눈물) 오늘은... 오늘은 그냥 돌아가 주세요.
두한/인애씨...
박인애/그렇게 하세요. 부탁이에요, 두한씨.
두한/...
박인애/두한씨....
두한/(한참보다가)알았습니다. 그렇게하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인애씨.. (돌아서 나간다)...
인애부/기다리다니, 뭘 기다려 이놈아? (인애에게) 넌 어서 네 방으로 들어가지 못해!
두한은 그대로 밖으로 나가버린다. 박인애가 눈물을 흘리며 그렇게 두한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씬 동 밖
두한이 현관문을 나서고 있다. 미스터박이 우울한 표정으로 서있다.
미스터박/만나... 보셨습니까?
두한/예.. 그럼..
두한이 미스터박을 지나쳐 대문으로 간다.
씬 동 대문 밖
두한이 대문을 나선다.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은 듯 그렇게 빠르게 걷는데 저만큼 뒤에서 이군이 따라나온다.
이군/이보시오! 잠간 거기 서시오.
두한/...(멈춰선다)
이군/(다가와) 잠시 나와 이야기 좀 합시다...
두한/(돌아보며) 난 당신 하고 할 말이 없는데...
이군/(어이없어 웃고) 이봐... 보아하니 나이도 얼마 안되는 것 같은데... 예의가 너무 없구만...
두한/예의?
이군/인애씨에게 언젠가 자네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네.. 전문학교 학생인가? 젊은 패기는 좋지만 이런식으로 억지를 부린다고 인애씨와 어떻게 될 수 있을 것 같나?
두한/지금 억지라 그랬나?
이군/자네가 방금 저 집에서 하고 나온 행동을 잘 생각해봐. 그게 억지가 아니고 무엇인지..
두한/난 내 방식대로 살아.. 당신이 참견할 일이 아니야.
이군/못 말릴 친구로구만.. 자네와 내가 상대가 될 거라 생각하나?
두한/그래서...?
이군/앞으로 다시 이런 일이 벌어지면 그땐 용서치 않을 것이야. 철없는 불장난은 이쯤에서 끝내도록 해. 알겠나?
두한/지금 협박을 하는 건가? 이 김두한에게 협박을 해?
이군/...?
두한/당신이 건달이었으면 당신은 이미 죽은 목숨이야. 말을 그렇게 함부로 하는 게 아니야.
애란/내가 이럴 줄 알았어. 이럴 줄 알았다구. 며칠 동안 물 한방울 입에 안대더니... 앓아 누워도 싸지. 앓아 누워도 싸.
설향/...
애랑/설향아... 미음이라도 끓여 올테니까 억지로라도 좀 먹어봐, 응? 먹는 시늉이라도 해보라구, 이것아...
설향/괜찮아.. 괜히 너만 고생시키는 구나... 미안해...
애란/미안한 줄 알면 어서 자리를 털고 일어나란 말이야. 왜 아프고 지이니... 잘못은 두한 오라버니가 했는데 왜 니가 아프냐구?
설향/...그 이야기는... 그만 하기로 했잖아....
애란/답답하니까 그렇지... 내 복장이 다 터진다구, 이것아...
그때 권번선생의 소리가 들려온다.
권번선생(E)/설향이 있느냐?
애란/어머니가 오셨나봐.. (문을 열어주면)
권번선생/어떠냐? 차도는 좀 있는 게냐?
설향/...어떻게 여기까지... (일어나려 하는데)...
권번선생/아니다. 누워 있거라..
설향/(일어나 앉으며) 많이 좋아졌어요, 어머니..
애란/ 좋아지긴 뭐가 좋아져? 아직도 펄펄 끓는데...
설향/죄송해요. 어머니...
권번선생/...그래... 앓고 나면 개운할 게다. 그러면서 조금씩 마음이 여물어 가는 게지...
설향/...
씬 종로서 외경 (아침)
택시 한 대가 달려와 그 앞에 선다. 차에서 거구의 사내가 내린다. 마루오까다. 휘날리는 일장기를 잠시 바라보다가 안으로 향하는 마루오까. 그위로....
서장(E)/ 오 이게 누군가? 어서 오게, 마루오까 사범..
씬 동 서장실
마루오까가 서장에게 거수경례를 부치고 있다. 서장이 다가가 가볍게 포옹을 한다.
서장/하하하... 이게 얼마만인가? 응? 자 이리로 앉게..
마루오까/하이...
그들 자리에 앉으며...
서장/반갑네.. 정말 반가워.. 이렇게 조선에서 자네와 다시 만날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참으로 반갑네, 마루오까 사범...
마루오까/이토록 환대를 해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서장님...
서장/무슨 소리? 자네는 대일본제국 유도의 영웅이 아닌가? 그리고 나에게는 둘도 없는 스승일세...
마루오까/지금도 유도를 하십니까?
서장/아... 요즘은 좀 바빠서 말이야... 하지만 자네가 왔으니 다시 시작해야겠지.. 허허허...
마루오까/...
서장/그래.. 조선에 온 소감이 어떤가?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나 이 조서땅은 아직 미개한 곳이야. 적응을 하려면 아마 시간이 좀 걸릴 걸세...
마루오까/사람 사는 곳이야 다 매한가지 아니겠습니까?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제 직분에만 충실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서장/그래, 그러면 되는 것일세.. 역시 듬직하구만.. 과연 마루오까답네 그려. 하하하..
마루오까/헌데 서장님, 한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서장/뭐가 말인가? 말해보게..
마루오까/갑자기 조선으로 부임하라는 통보를 받고 솔직히 의아했습니다.서장님께서는 혹 그 이유를 아시는지요?
서장/...어차피 알게 될 일이니 내 털어놓음세. 실은 말이야. 누군가의 요청이 있었네.. 내게는 물론 본토의 고위 경찰 간부에게도 손을 쓴 모양이야.
마루오까/그게..누굽니까?
서장/혼마찌깡의 하야시군일세.
마루오까/...하야시...? 그자는 야쿠자가 아닙니까? 야쿠자가 왜 저를..?
서장/야쿠자라기 보다는 사업가지. 그 사람은 도오야마 미쯔루 어른의 직계 수제자일세.
마루오까/아, 그렇습니까? (끄덕이며) 그래서 그 사람의 부하들이 마중을 나왔던 거군요..
서장/자네를 왜 이리로 불렀는지 그 이유는 나도 잘 모르고 있네.. 오늘 오후에 하야시군이 자리를 마련하다고 했으니 자네가 직접 물어 보도록 하게..
마루오까/...?
씬 혼마찌 거실
미우라가 보고를 하고 있다.
미우라/죄송합니다, 오야붕.. 지시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용서해 주십쇼.
하야시/아니야, 아니야...그건 미우라 자네 잘못이 아니지.. 그만큼 성의를 보였으면 된거야.. 어쨌든 수고가 많았다, 미우라..
미우라/하이...
가미소리/조금 전에 종로서에서 연락이왔습니다. 마루오까 경부가 도착을 했다고 말입니다.
하야시/(끄덕이며) 그랬겠지.. (사이) 종로가 한 동안 시끄러울 게야. 한바탕 거센 회오리가 몰아치게 될 게야..
하야시의 그 모습에서...
씬 종로서 정문
마루오까가 부하 순사들을 거느리고 정문을 나서고 있다.
마루오까/종로에거 가장 말썽이 많이 일어나는 곳이 어디인가? 우범지대 말이다.
순사1/여러곳이 있습니다만, 그 중에서도 우미관 일대가 가장 시끄러운 곳입니다, 경부님..
마루오까/우미관? 거기가 뭐하는 곳인가?
순사2/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입니다.
마루오까/극장이라... 그래, 극장 주변에는 늘 파리가 끼는 법이지.. 그 쪽으로 안내해라...
순사1/하이 경부님..
씬 종로거리
까페 비너스 앞 길이다. 마루오까와 순사들이 주변을 둘러보며 오고 있다. 그 당당한 풍채가 주위를 압도하고 있다. 마침 잡지를 담은 봉투를 들고 비너스로 오던 최동열이 물끄러미 그들을 보다가 까페 안으로 들어간다.
씬 비너스 안
김이수와 임동호가 최동열이 가져온 잡지 '상록수'를 읽고 있다.
김이수/영화계의 선구자였던 춘사 나운규...삼십년 남짓한 그의 짧은 생애와 예술혼은 사람들의 가습속에 남아 영원히 간직될 것이다.
최동열/...
김이수/그렇구만... 사람은 가도 예술은 남는 것이지. 비록 춘사가 세상을 떳지만 그의 영화는 영운히 살아서 말을 할 게야.
임동호/난 말이야 새삼 '임자 없는 나룻배' 에서 주인공 수삼 역을 맡았던 춘사의 모습이 떠오르는구만.
김이수/그래 아주 감동적인 영화였지. 철로가 세워지면서 주인공 수삼이 생계를 위협받게 되자 행패를 부리던 일본인 철도 공사 감독관을 죽이고 자신 또한 열차에 치어죽는 장면은 그야말로 압권이었어.
최동열/실은 총독부의 검열에 걸려 잘렸지만 수삼이 죽을 때 도끼로 철로를 내려치는 장면이 있었다네..
김이수/그러 게 있었단 말이야?
최동열/(고개를 끄덕이며)나운규는 아마 그 도끼로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을 내려치고 싶었을 걸세.. 모르긴 해도 말이야..
두사람/....
씬 종로거리
와싱턴과 개코, 번개들이 어느 다방에서 나오고 있다.
개코/나도 거지촌에 있었을 땐 한 가락 했다고.. 염천교 거지 왕초 새끼가 내 이 주먹 한 방에 벌렁 나가떨어졌다니께..
번개/참 나.. 아니 누가 그걸 믿겠수?
개코/뭣이여? 니 참말인가 아닌가 나랑 거지촌에 가볼텨? 우리 애기들이 다 봤응께 물어보면 될 거 아니여?
번개/물어보긴 뭘 물어봐.. 아아 혹시 주먹이 아니라 그 입으로 문 거 아뇨?
개코/뭐여?
와싱턴/허허허.. 그 사람들하고는 ... 그만 하고 다마나 치러 가세..
하야시와 서장이 거나한 술상을 놓고 마주해 있다. 한 쪽에는 일본 기생이 앉아 사미센을 타고있다.
하야시/(술을 따르며) 한 잔 받으십시오, 서장님.. 자주 찾아뵈었어야 했는데 오늘에서야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너그럽게 용서하십쇼.
서장/허허허.. 무슨 말씀을...? 이 조선 땅에서 하야시상만큼 바쁜 사람이 또 어디 있겠소? 이렇게 술자리를 하는 것 자체가 영광이지요. 허허허..
하야시/바쁘다는 건 다 핑계겠지요. 이 사람이 게으른 닷입니다.
서장/허허허.. 그래, 사업은 좀 어떠십니까? 듣자하니 나날이 번창하고 있다고 하던데... 정말 그렇습니까?
하야시/소문이야 늘 과장이 섞이기 마련이 아니겠습니까?
서장/하하하 그래요?
그 때 밖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소리/서장님, 마루오까 경부께서 오셨습니다.
서장/오 그래.. 들어오라고 해라.
마루오까가 안으로 들어온다.
마루오까/찾으셨습니까?
서장/어서 오게. 자 이리로 앉지. 내가 말한 하야시상일세. 인사하게.
하야시/처음 뵙겠습니다. 하야시라고 합니다.
마루오까/마루오까요.
하야시/만나서 반갑소이다. 자 한 잔 받으시지요.
마루오까/근무중에는 술을 먹지 않소.
하야시/아 그런가요? 하하하.. 내가 그만 실수를 했소이다.
마루오까/날 이리로 부른 사람이 당신이라고 들었소. 이유가 뭐요?
하야시/그건 차차 알게 될 거요. 이곳 종로는 마루오까 경부가 흥미를 느낄만한 일이 많을 것이오.
마루오까/...?
하야시/이 종로라는 곳이 마루오까 경부를 불렀다는 것이 아마 가장 정확한 답일 게요. 허허허...
마루오까/...?
하야시가 묘하게 웃는다. 그러나 마루오까는 여전히 의문이다.
씬 명월관 외경
씬 동 어느방
일본에서 돌아온 정운경이 설향의 술잔을 받고 있다.
정운경/설향씨도 받으시오.
설향은 술잔을 받아 입만 대고 내려놓는다.
정운경/몸이 좋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많이 수척해졌구려.
설향/...?
정운경/실은 며칠 전 경성에 도착해서 명월관에 들렀었소.
설향/그러셨군요. 죄송합니다.
정운경/아니오. 걱정을 많이했는데 이만하기에 다행이오.
설향/...
정운경/일본에서의 한 달이 꼭 몇 년이 지난 것처럼 느껴지는구려... 일 년에 반은 그 곳에서 지냈는데요 이번처럼 길게 느껴진 적은 처음이었소..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지...
설향/...
정운경이 술을 마신다. 설향이 빈잔에 술을 채우는데 문이 슬그머니 열리며 애란이 들어온다.
애란/실례하겠습니다. 잠시 앉아도 되겠습니까?
정운경/...?
설향/애란아, 너 이게 무슨 짓이야? 손님 허락도 없이...
애란/전 설향이하고는 둘도 없는 단짝인 애란이라고 합니다.
정운경/허허 그래요? 앉으시오.
애란/고맙습니다. (술병을 들며) 제가 한 잔 올려도 될까요?
정운경/그러겠소?
술을 마시고 애란에게 다시 받는다.
애란/손님께서 우리 설향이를 어여삐 봐주신다고 들었습니다. 설향이를 대신해 감사의 말씀을 드리려구요.
정운경/아니오.. 고마운 것은 오히려 내 쪽이오. 설향씨를 만나 그 동안 잊고 살았던 많은 것들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게 됐소. 그 동안 너무 일에만 묻혀 살았던 모양이오.
애란/네...
설향/...
정운경/설향씨는 통 말이 없는데... 애란싸라고 했나요.... 참으로 쾌활한 사람인 것 같소...
애란/호호...그랬나요? (설향을 보며) 혹시나 우리 설향이가 손님을 지루하게 해드릴까봐 제가 잠시 들어온 거에요.
설향/....
정운경/애란씨도... 앞으로 자주 뵈었으면 좋겠소.
애란/어머나.. 저 같은 걸 뭘... 제가 한 잔 더 올리고 나가겠습니다.
정운경/그래요.
애란은 주책없는 웃음을 흘리며 잔을 채운다. 정운경은 여전히 설향을 보고 있다.
씬 우미관 외경(밤)
씬 동 사무실
두한이 창밖으로 보며 생각이 많다. 박인애의 집에 무작정 쳐들어갔던 일이 떠오르는 것이다.
씬 회상
인애부/뭐, 뭐라? 지,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고 있는 게야?
두한/사실입니다. 결혼을 하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인애부/닥치지 못할까! 내 집에서 썩 나가거라 이놈...! 나가지 않으면 경찰을 부를 것이야... 부인은 뭐하고 있소. 어서 경찰에 신고를 하시오.
인애모/...(어쩔 줄을 몰라한다)...
두한/아무리 반대하셔도 우리 둘 사이를 갈라놓으실 수는 없을 겁니다. 그 말씀을 드리려고 이렇게 찾아 온 겁니다.
인애부/나가.. 내 집에서 당장 나가지 못해!
씬 다시 현실
두한이 여전히 생각에 잠겨 있다.
두한(E)/내가 너무 성급했던것이 아닐까? 인애씨를 더욱 어렵게 만든 것은 아닌지.. 하지만...
도리질을 치는데 정진영이 안으로 들어온다.
정진영/두한아..
두한/(돌아보며)으 응.
정진영/무슨 생각이 그렇게 많아?
두한/아니야... 아무 것두... 앉자...
정진영/(앉고)... 영태형님한테 이야기 들었다. 너하고 박인애씨 이야기 말이야.. 정말 결혼을 생각하고 있는 거야?
두한/(끄덕이며) 그래...
정진영/너 그 여자를 정말 좋아하나 보구나...?
두한/(미소) 글쎄... 나도 잘 모르겠어. 하지만 인애씨를 만나면 왠지 마음이 편해져.. (사이) 돌아가신 어머니를.... 많이 닮았어. 그것 때문에 처음부터 끌렸던 것 같다.
정진영/...(끄덕인다)... 그랬구나... 삼청동 어른들께도 말씀을 드려야지...?
두한/...그래야겠지..
이때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어댄다.
정진영/내가 받을게.. (전화를 받으며) 예, 우미관입니다. (사이) 예, 있습니다. 누구시라고 전해드릴까요? 아 예..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두한아.. 박인애씨 오라버니라는데...
두한/그래...? (전화를 받고) 예, 김두한입니다.
미스터박(F)/(다급하게) 저 미스터박입니다. 혹시 저희 인애가 거기 가지 않았습니까?
두한/아니오.. 안 왔습니다. 인애씨에게 무슨 일이있습니까? (사이) 예, 인애씨가요?
놀라는 두한의 모습에서...
씬 우미관 앞
두한이 급히 뛰쳐나오고 있다. 부하들의 인사도 받지 않은채... 그리고 어디론가 급히 달려가는데.. 그 한쪽에서 서성거리던 김태서의 부하형사가 그 모습을 보고 따라 붙는다.
씬 박인애의 집
인애부가 펄펄뛰며 소리치고 있다.
인애부/도대체 어떻게 했길래 그 아이가 집을 나갔단 말이오? 당신은 뭐하고 있었소?
인애모/잠시 다른 일을 하는 사이에 그만...
미스터박이 다가온다.
인애부/알아봤느냐?
미스터박/예... 갈 만한 곳을 다 연락해 봤지만...
인애부/도대체 어디를 간 게야? 혹시 그 김두한이라는 놈에게 간 거 아니냐?
미스터박/아, 아닙니다. 거기에도 연락을 해봤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도 오지 않았답니다.
인애부/그럼 어디에 갔단 말이야? 허 이거야.. (사이) 아니야,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가 없지.. 맞아.. 그 놈일 게야. 그 놈을 만나러 간 게 분명해..
미스터박/아닙니다, 아버지.. 그런 거짓말을 할 사람이 아닙니다.
인애부/아니야, 그 놈이야... 그 놈한테 갔어.
미스터박/아버지...
인애부/이건 납치야.. 납치라구.. 뭐하고 있느냐? 어서 경찰서에 신고를 해! 어서..!
미스터박/아버지?
씬 종로서 외경(밤)
씬 동 고등계
미와가 서류들을 검토하다가 피곤한지 기지개를 켜고 어깨를 두드린다. 그러다 벽에 걸린 시계를 흘낏 보고는...
미와/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자 다들 별 일 없으면 그만 퇴근들 해.
형사들/예
주섬 주섬 주변을 정리하고 있는데, 그 때 사법계 형사가 들어온다.
형사/경부님,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
미와/뭔가?
형사/긴또깡에 관한 일입니다. 일신상회 박회장님의 딸이 긴또깡에게 납치 됐다고 합니다.
미와/뭐라? 긴또깡이 누굴 납치해?
형사/일신상회 박회장님의 딸입니다. 박회장님 댁에서 직접 신고를 해왔습니다.
미와/...? 하 이거야...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긴또깡이 부녀자를 납치하다니.. 뭔가 잘못된 거 아닌가? 긴또깡이 설마하니 그런 일을 저질렀을라구?
형사/신고된 내용은 확실합니다.
미와/...(뭔가 생각하다가)..이봐, 김형사..
김태서/예, 경부님..
미와/긴또깡이 지금 어디 있나 당장 수배해!
김태서/하이...
대답하고 뛰쳐나간다.
미와/긴또깡 이 녀석.. 때가 되니까 스스로 알아서 차고를 치는구만.. 부녀자 납치라니... 허 이거야..
씬 뚝섬 (밤)
두한이 주위를 둘러보며 달려오고 있다. 어느 순간 뭔가를 발견하고 멈춰서는 두한. 멀리 박인애의 모습이 보인다. 두한이 숨을 고르고 그 쪽으로 천천히 다가간다.
씬 그 일각
박인애가 예전에 두한과 함께 왔던 그 자리에 앉아 멀리 흐르는 강물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그녀의 눈엔 눈물이 맺혀있다. 바람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어간다. 잠시 후 두한이 박인애에게 다가온다.
두한/여기 있을 줄 알았습니다.
박인애/...(돌아보며)두한씨..?
두한/많이 걱정했잖아요.
박인애/...
바람이 또 한 차례 박인애의 긴머리를 흐트러뜨리고 지나간다. 두한이 외투를 벗어 박인애의 어깨에 걸쳐준다.
두한/바람이 차갑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그 옆에 앉는다. 한동안 강물을 말없이 바라보는 두한.. 박인애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런 두한의 옆모습을 바라본다.
두한/내가...싫어졌습니까?
박인애/...?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두한/인애씨를 기다린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박인애/....갔었어요... 두한씨를 만나러... 우미관 앞에까지 갔었어요. 그런데...
두한/내가 주먹패라서 싫어진 겁니까?
박인애/...(도리질)아니예요. 그런건 아니에요.
두한/....
박인애/...놀랐어요. 솔직히 처음에는...많이 놀랐어요.. 하지만 전.. 두한씨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걸 믿어요.
두한/...
박인애/제가 그 동안 만난 두한씨는 제 운명을 걸어도 될 만한 사람이었으니까요.
두한/.....(돌아보며)...진심입니까?
박인애/(눈물, 끄덕이며)...죽는 날까지 제 마음은 변치 않을 거에요.
두한/...
박인애/...
두 남녀의 눈길이 서로 교차된다. 그 눈빛의 의미는 서로에 대한 신뢰이다. 박인애가 두한에게 조용히 안긴다. 두한이 그런 인애를 안아준다. 바람이 그들을 스치고 지나간다.
씬 그 또다른 일각
두한을 따라온 형사가 멀리 두한과박인애를 보고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다.
씬 명월관 밖
문을 닫을 시간인 듯 기생들이 빠져나와 지배인에게 인사를 하고 대기한 인력거를 타고 떠나고 있다.
기생들/안녕히 계세요.
지배인/그래.. 수고들 했어...
씬 동 명월관 마당
설향과 애란도 나오고 있다.
애란/그 손님한테 잘해, 이것아.. 쌀쌀맞게 굴지 말고.. 세상에 그렇게 예의 바르고 점잖은 손님이 또 어디 있니? 안 그래?
설향/이제 그 손님 방에는 다시 안 들어갈 거야.
애란/뭐라구?
설향/그러는 게 좋을 것 같아. (먼저 나간다)
애란/너 미쳤니? 굴러온 복을 마다하게... 설향아..
설향과 애란이 나오면 문앞에 서 있던 지배인이 돌아본다.
지배인/설행이랑 애란이도 수고 많았어.
그녀들/예....
그녀들 인력거 쪽으로 가는데 정운경이 설향을 부른다.
정운경/설향씨...
설향/...(돌아보면)...?
애란/어머 아직 안 가셨어요?
정운경/괜찮다면 가시는 곳까지 모셔다 드리겠소.
애란/어머나 고마우셔라. 저기 저 차로 말인가요?
설향/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성의는 고맙습니다만 저희는 인력거로 가겠습니다.
정운경/바람이 차갑소. 아무래도 인력거보다는...
애란/그래 설향아.. 지금가지 기다리셨는데...
설향/죄송합니다, 손님.. 가자, 애란아...
설향이 인력거에 올라탄다. 애란도 하는 수 없이 인력거에 탄다. 그 인력거가 출발하면 씁쓸하게 바라보는 정운경..
씬 우미관 사무실
김영태와 부하들이 모여 있다.
김무옥/아따 뭔 일일까...? 시간이 솔찬히 지났는디 말이여.. 그러니께 거 뭣이냐 그 박인애라는 아가씨가 집을 뛰쳐나왔는디 여근 안 왔고, 그려서 두한이가 찾으러 나갔다, 이 말이제?
정진영/(끄덕이며) 응...
번개/걱정마십쇼. 지금쯤 어디 조용한 곳에서 두 분이 오붓하게 계실 테니까요.
김무옥/니가 그걸 어떻게 아냐?
번개/아 이 번개가 누굽니까? 척하면 삼천리지요. 헤헤헤...
김영태/진영이 자네가 따라 나섰어야 했는데 말이야..
정진영/죄송합니다. 두한이가 워낙 급히 뛰쳐나가는 바람에...
김영태/....(한숨)...별일 없어야 할 텐데..
씬 다시 뚝섬
두한의 어깨에 박인애가 기대어 앉아 있다.
박인애/어머니는 어떤 분이셨어요? 아버님처럼 그렇게 굳건한 분이셨나요?
두한/....어머니는....가녀린 분이셨어요. 목련꽃처럼 순결한 분이셨죠. 한 번도 큰 소리를 내신 적이 없었어요. 늘 웃고 계셨죠.
박인애/어떤 분이실까 궁금했어요. 운면을 건 사랑을... 하신 분이잖아요..
두한/...?
박인애/저도.. 그럴 수 있을까요?
두한/인애씨는 내가 지켜드립니다. 두 번 다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뺏기지 않을 겁니다.
박인애/...이대로...시간이 멈춰보렸으면 좋겠어요. 이대로...
두한/걱정 말아요. 다 잘 될 겁니다.
그때 정적을 깨는 한마디가 들려온다.
김태서/긴또깡!
두한/...?
두한이 일어나 돌아보면 형사들이 후레쉬를 일제히 키며 다가온다. 두한은 눈이 부셔 상대방을 알아보지 못한다.
김태서/긴또깡, 거주지 이탈 및 부녀가 납치 혐의로 너를 체포한다. 체포해!
형사들이 두한에게 달려들면 두한이 뿌리친다.
두한/뭐요?당신들 누구야?
형사1/가만 있어, 임마.
형사1이 수갑을 채우려 드는데 두한이 본능적으로 내지른다. 순식간에 형사들이 나뒹군다. 그리고 김태서를 노려보는데... 김태서가 하늘에 대고 공포탄을 쏘아댄다. 탕.. 탕... 탕...!!! 그리고 두한에게 겨눈다.
김태서/긴또깡. 잘 봐라, 내가 누군지... 그 동안 내 얼굴을 잊어버린 건 아니겠지...?
두한/...?
김태서/너 지금 무슨 짓을 한 줄 알아? 순사폭행은 최소 삼 년이야, 삼년.. 알았나? 삼년 동안 감방에서 썩게 될 거란 말이다.
김두한/...?
박인애/두한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