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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제 7장
========7:1절
내 앞에서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 여기서 '보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아'는 '인정하다'는 뜻이다(왕상 21:29). 즉 비록 불완전한 존재이긴 하나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했기 때문에 이를 그의 의(義)로 인정해 주셨다는 뜻이다(6:9). 한편, 죄인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을 우리는 신학 용어로 '칭의'(稱義)라 한다. 그런데 구원에 이르는 칭의는 오직 그리스도의 피 공로에 근거하여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다. 따라서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로 인해 죄사함을 받은 성도들은 모두 이러한 하나님의 칭의의 은혜를 받은 자들이다(롬 5:1-9).
========7:2절
얼핏보아 6:19,20과 모순되는 듯한 구절이다. 그러나 이는 앞의 것이 개괄적인 지시였던데 반해 본절의 것은 세부적인 지시인데서 나타난 차이일 뿐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홍수 심판을 일주일 앞둔 시점(4절)에서 보다 구체적이고도 세부적인 지시를 내릴 필요성이 있었던 것이다.
정결한 짐승...부정한 것 - 당시는 짐승의 정,부정 규례가 주어지지 않았던 시점이기에 짐승의 정결과 부정을 구분할 근거가 무엇인지 분명치 않았겠으나 아마 제사 제물로서의 효용성(8:20)에 근거했던 것같다(1-12절강해).
암수 일곱씩 - 학자들에 따라 이견을 보이고 있는 구절이다 칼빈이나 랑게같은 이는 '일곱씩'을 '세 쌍과 한 마리'로 보는 반면 70인역은 '일곱 쌍'으로 보고 있다. 만일 전자가 합당하다면 여분의 한 마리는 후일 하나님께 번제물로 드리기 위한 것으로 추측된다(8:20).
==========7:3절
공중의 새도 암수 일곱씩 - 70인역이나 사마리아역 등은 '정한 새는 암수 일곱씩,부정한 새는 암수 둘씩'으로 번역하였다. 이러한 번역은 비록 2절과 호응을 이루긴 하지만 그러나 이처럼 개역할 원문상의 근거는 없다.
유전케 하라 - 하나나님께 있어선 심판보다 보존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이는 생태계의 온전한 보존이란 측면(9:9-12)과 함께 홍수 이후 인간 생활을 돕기 위한 배려라는 의의(9:1-4)를 지니고 있다
========7:4절
지금부터 칠 일이면 - 심판을 위한 준비가 최종 완료된 상태에서 회개를 촉구하는하나님의 최후 통첩이다. 하나님께서는 지은 죄로 인해 마땅히 심판당하여야 할 타락한 인간들에게 120년이란 긴 회개의 기간을 허락하시고서도(6:3) 이처럼 마지막 한 주간을 특별히 구별지어 인간을 경성시키셨다. 이는 그 어떠한 경우에라도 인간이 심판을 당하는 것은 자신의 완악함 때문이지 결코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시지 않으셨기 때문이 아님을 확실히 증거해 준다(욘1:2). 아마도 노아는 이 7일 동안 더욱더 간곡히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의 품인 방주 안으로 들어오라고 외쳤을 것이다.
사십주야 - 성경에 나오는 숫자들은 때때로 상징적 의미를 지니는데 그중 40은 특별히 '시련'과 '연단'의 의미를 지닌다. 대표적인 예로는 이스라엘의 광야 40년간 방황(민14:33), 모세의 40년간 광야 생활(행7:30), 예수의 40일간 금식 기도(눅4:1,2)등이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시련과 연단의 끝은 승리와 기쁨인데 이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선을 행하는 성도들이 세상과의 싸움에서 궁극적 승리를 거두게 될 것이라는 심오한 진리를 보여 준다(요 16:33).
생물(예쿰) - '쿰'(일어나다, 일어서다)에서 파생된 말로 '호흡하는 생명체'란 점을 강조하는 '네페쉬 하야'(생물, 1:20)와는 달리 생물의 '활동성'을 강조해 주는 단어이다(신 11:6).
=====7:5절
명하신 대로 다 - 노아가 하나님의 말씀에 한 치도 벗어남이 없는 철저히 순종하였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순종은 참된 믿음에서 나오는 신앙의 열매이니(갈 5:22, 23)이에 히브리서 기자는 노아를 가리켜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히11:7)라고 칭하였다(6:21,22).
======7:6절
홍수가 땅이 있을 때에 - '있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야'는 '존재하다'(31:5)는 뜻과 함께 '발생하다'(왕상 12:24)는 뜻도 갖고 있다. 따라서 본절은 '홍수가 땅에 발생했을 때에'로 번역함이 보다 적절하다.
육백 세 - 4절에 나온 '40'과 더불어 성경상에서 '6'이란 숫자가 갖는 상징적 의미도 대체적으로 '혹독한 시련'과 '엄청난 고난'이다(계 6:12-17; 9:13-21; 16:12-16). 사실 노년에 이른 노아가 1년 동안이나 제한된 공간과 물 위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 같은 시련을 통과한 노아에게 새 인류의 원조로서번성할 수 있는 축복이 주어진 점(9:1)은 '환란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라는 진리를 확신케 해준다.
=========7:7절
노아가 아들들과...함께 - 본절은 6:18의 단순한 반복이 아니다. 이 말 속에는 두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1)라멕(4:19)과는 달리 노아 및 그의 아들들은 일부 일처제의 혼인을 준수하였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실은 방주 안에 들어간 자의 수가 8명이었다는 베드로의 증거(벧전 3:20)에 의해 분명히 드러난다. 즉 그들은 중혼, 축첩등 당시의 타락한 사회상을 본받지 않았던 것이다. (2) 8명이 모두 방주에 들어갔다는 것은 가족 전체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음을 의미한다. 이는 후일 롯의 처와 사위들이 보여준 불신의 행동과는 좋은 대조를 이룬다(19:14,26).
========7:9,10절
방주로 들어갔더니 칠 일 후에 - 홍수 심판이 이르기 전에 충분하고도 안전하게 구원을 얻었음을 보여 준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최후 심판시에 있어서도 성도들은 머리털 하나 상치 아니하고 다 구원받게 될 것인데(눅 21:18) 예수께서 성육신(成肉身)하신 목적은 바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자 중 한명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함이었다(요 18:9).
========7:11절
노아 육백 세...그 달 십 칠 일 - 이스라엘의 종교력은 훗날 출애굽 사건과 관련되어, 제정되었으니(출 12:1,2) 이 당시는 단순히 민간력으로 계산된 것일 것이다. 아뭏든 이처럼 홍수가 일어난 날짜를 분명하게 명기한 것은 그사건이 분명한 역사적 사건이었음을 강조하기 위함인데, 이는 오늘날 많은 고고학적 자료에 의해서도 입증되고있다.
큰 깊음의 샘들 - 여기서 '깊음'에 해당하는 '테홈'은 원래 지하수의 근원을 가리킨다. 그런데 시 104:6; 욘2:5 에서는 '큰바다'를, 창 49:25에서는 '아래원칙'을 가리키는 머리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본절은 대홍수 때 폭우와 함께 해일(海溢), 지하수의 범람까지 발생했음을 의미한다.
터지며 - 본래 땅은 물로 뒤덮여 있었으나(1:20) 창조 둘째 날 궁창으로 말미암아 궁창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구분되었다(1:7). 이어 창조 세째 날 궁창 아래의 물로부터 물이 융기되어 나왔다(1:9). 따라서 지구는 물 가운데, 그리고 물 위에 이룩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고대 히브인들은 이 모든 물들이 언제든지 땅을 덮치려하고 있으나 하나님의 제어로 말미암아 그 경계를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였다(욥 26:10; 시104:9). 그러나 마침내 물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그 제어의 재갈을 풀어 주자 일시에 엄청난 양의 물이 위.아래 할 것 없이 사방에서 쏟아지는 현상을 묘사한 말이다.그리고 지질학적으로 이 말은 깊은 바다 내에서나 혹은 지각에서 급격한 변화 현상이 일어남을 가리킨다(Lange).
하늘의 창들이 열려 - 여기서 '하늘의 창'이란 말은 고대인들의 우주관을 반영하고있는 말인데, 즉 그들은 대기권너머 2층천에는 비, 우박, 눈 등을 엄청나게 보관하고있는 하늘 창고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것들은 하늘 창문을 통해 지상에 내려진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대홍수는 이러한 하늘 창문들이 한꺼번에 열려진 것으로 생각했고 또 그렇게 묘사했다. 여하튼 본절은 댐의 열린 갑문을 통해 물이 갑자기 쏟아져 내리듯 엄청난 양의 비가 한꺼번에 땅에 쏟아진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하늘과 지상의 모든 물을 모두 동원, 일시에 지구를 물로 덮은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초자연적 역사이다(사 51:10).
======7:12절
비(게 쉠) - '가솽'(격렬하게 퍼붓다)에서 파생된 말로 보통의 비를 가리키는 '마타르'(신 11:14)와는 달리 세차게 쏟아지는 폭우를 의미한다(왕상18:41).그런데 광야에서 만나가 내리는 것을 묘사할 때도 이 단어가 사용된 점(출16;4)으로 보아 이는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로 이루어지는 이적적인 현상을 강조하는 말인 것 같다.
========7:13절
들어갔고(바) - '보'(가다, 오다, 들어가다)의 과거 완료형으로 노아의 가족들이 '그 날' 곧 홍수가 시작되던 날(11절) 이전에 이미 방주에 들어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구름 한 점 없던 맑은 날에 노아의 가족들이 방주 안에 들어가 있은 것은 당시 사람들에게 미친 짓으로 보였을 것이다(마 24:38,39). 그러나 노아는 이에 개의치 않고 최후의 한 주간 동안 방주 안밖을 들락 날락거리면서 거듭 회개의 메시지를 전한 것으로 추측된다(4절).
=====7:14절
모든 새 곧 각양의 새 - 원문에는 각기 다른 세 개의 단어가 사용되어 모든 종류의 새를 나타내고 있다. (1)'오프':날개를 지니고 있는 모든 생물을 뜻하는 포괄적 단어이다(6:7). (2)'치포르':주로 참새와 같이 몸집이 작은 들새를 가리킨다(시 84:3; 잠26:2). (3)'카나프''오프'와 교호적으로 사용되긴 하나 주로 날개 달린 조그마한 곤충을 의미한다.
========7:15절
둘씩 - 정결한 짐승이든 부정한 짐승이든 둘씩만을 방주 안에 들여보냈다는 뜻이아니다(2절). 이는 각종 짐승들이 '한쌍씩(공동 번역) 짝을 이루어 방주로 나아오는모습을 묘사한 것일 뿐이다.
========7:16절
그를 닫아 넣으시니라 - 원문에 충실하게 직역하면 '그 뒤에서 닫으셨다'. 즉 여호와께서 노아 및 그 가족, 생물들이 방주 안으로 들어간 후 그 뒤에서 문을 닫으셨다는뜻이다. 이는 (1)하나님이 전적으로 방주를 주관하시며 그 속에 있는 생명들을 보호하시겠다는 의지를 표명해 준다. (2)또한 이는 하나님께서 허용하신 은혜와 구원을 받을시기(고후 6:2)가 지난 후 일단 문이 닫히고 나면 밖에 있는 자들에게는 더 이상 기회가 없음을 교훈해 준다(1-12절 강해).
===========7:17, 18절
40일간 계속되는 비로 말미암아 물이 점점 불어나고 있음을 보여 준다. 특히 창일하매(가바르)의 원뜻은 '확립하다', '강하게 되다', '승(勝)하다' 등으로(출17:11; 삼하 11:23) 온 세상을 뒤덮을 때까지 물이 점점 더 불어나도록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강한 능력을 시사해 준다(시 147:17,18).
=======7:19절
천하에 높은 산이 다 덮였나니 - 노아 당시의 대홍수가 일부 지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세계적인 사건이었음을 증거해 준다. 9:11, 15은 이를 뒷받침하는 구절이다(13-24절 강해, 부분 침수설). 따라서 일부 학자들(Poole, Murphy)의 주장처럼 본절을 목격자의 관점에서 기술한 수사학적 표현으로 이해하여, '홍수의 부분 침수설'을 내세우는 것은 불합리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분명 노아와의 언약(6:17; 7:4; 9:11,15)을 통해 거룩한 씨의 보존을 노아와 그의 가족들에게만 국한시켰기 때문이다.
======7:20절
십 오 규빗이 오르매 - 무엇을 기준으로 한 말인지는 분명치 않으나 아마 가장높은 산을 덮고서도 물이 15규빗(약 6.84m)이나 더 불어났다는 뜻인 듯하다. 이는 하나님의 심판의 철저성을 강조해 주는데, 실제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은 그분의 진노의 낯을 피해 숨을 곳이라곤 아무데에도 없다(시 139:7-12).
========7:21,22절
홍수로 말미암아 땅 위의 사람들과 짐승들이 모두 멸절되었음을 간명하면서도 분명하게 증거해 준다. 그러나 세상이 하나님의 진노 아래 멸절되어 가는 절박한 순간에서도 노아 가족만은 하나님의 보호의 날개(신 32:11,12) 아래에서 편해 쉴 수 있었는데(23절). 이는 성도가 어떠한 환난 중에서도 소망을 가질 수 있는 이유이다(시23:4-6). 왜냐하면 하나님의 심판에서 결코 의인은 악인과 함께 멸망당하지 않기 때문이다(18:25).
=========7:23절
홀로 노아와...자만 남았더라 - 사도 베드로는 이처럼 심판의 물만이 온 대지를 뒤덮고 있는 상황 가운데서 노아 가족이 구원받은 것을 '침례'에 비유하였는데(벧전 3:20,21) 이는 바울이 이스라엘의 홍해 도강(渡江) 사건을 가리켜 바다에서 침례받았다고 묘사한 것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고전 10:1,2).
========7:24절
일백 오십 일 - 혹자는 이 기간을 비가 내렸던 40일을 제외한 그 이후의 기간으로만 본다. 그렇다면 물이 땅에 창일해 있던 기간은 총 190일이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150일이란 기간안에 폭우가 쏟아졌던 40일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본다. 이는 8:3과도 조화를 잘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