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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성 바벨론의 정체와 멸망의 선언
오늘의 본문 말씀
(계시록 18:1~8)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큰 성 바벨론'은 계시록 17장 1절의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와 짝을 이루는 것으로,17장의 음녀가 정치와 종교적인 면으로
묘사되고 있는 반면 계시록 18장의 음녀는 정치,종교,문화,경제적인 면으로
확대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따라서 '큰 성 바벨론'은 계시록 17장 18절의 '여자는 땅의 임금들을 다스리는
큰 성'이라는 말씀을 좇아 '큰 음녀'='큰 성 바벨론'(계시록 18:2)=두 증인의
시체가 버려진 큰 성길(계시록 11:8)로 보며,이것은 마지막 대 환난 때에
비진리를 좇으며 배도하는 교회를 예표하고 있습니다.
사실 개국 이래로 역사 속에 나타났던 하나님을 배도하는 세력들은
세월을 따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갔으나,배도를 일삼는 사탄의 역사는
계속 이어져 마지막 대 환난 때가 되면 '큰 성 바벨론 음녀'를 통하여 더욱
크게 역사할 것이지만 그 결과는 돌이킬 수 없는 처참한 멸망만 있을
뿐입니다.
첫째, 다른 천사가 멸망을 선언합니다.
오늘 본문 1절에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라고 하였습니다.
* 여기서 '이 일 후에'란 광야에 있는 큰 음녀(바벨론)가 짐승들로부터 버림을
받고,멸망당할 환상을 본 이 후(後)를 말합니다. 큰 음녀는 자기의 권세와 능력을
주어 일곱 머리를 가진 짐승과 열 뿔을 도와 일했건만,결국엔 그들에게 버림받고
아주 망하게 됩니다(계시록 17:16,17). 그리고 '다른 천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印)을 가지고 있는 자요(계시록 7:2) 모든 성도(聖徒)들의 기도를
금 향로(香爐)에 담은 자요(계시록 8:3) 영원한 복음을 가지고 있는 자(계시록
14:6)를 다른 천사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큰 권세를 가지고 있으며,
다른 천사가 가지고 있는 영광으로 인해서 땅이 환하여졌습니다.
* '큰 권세'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큰 권세를 말합니다. 즉 다른 천사는
큰 성 바벨론의 완전한 멸망을 선포하는,큰 권세를 가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마치 소돔성에 온 두 천사의 손에 구원과 멸망이 들려 있던 것과 같은 것으로,
두 천사는 우리가 이 성을 멸하러 왔다고 하였습니다(창세기 19:13).
한편 '다른 천사'의 '영광스러운 광채'로 인해 땅이 환하여진 것은
'큰 성 바벨론'의 권세를 압도하는 하늘의 권세를 나타낼 뿐 아니라,
큰 성 바벨론이 멸망당한 후에 새로운 세계가 도래할 것에 대한 밝은
소식임을 암시합니다.
둘째, 큰 성 바벨론은 왜 멸망하는가
본문 2절과 3절에 "2 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3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를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고들도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하여 치부하였도다 하더라"라고 하였습니다.
* 여기서 '큰 성'이란 구약시대 느브갓네살에 의해 지배를 받은 그 바벨론 성을
상징하며,종말론적으로는 적그리스도에 의해 지배되는 성(城)으로써 음녀교회 뿐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 전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다른 천사는 '큰 성 바벨론'이 무너진 원인에 대하여,'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를
인하여 만국이 무너진 것'(3절)임을 밝히고 있는데,이 음행의 포도주란 음녀가
세상에 퍼뜨려서 먹인 가증한 거짓 복음을 의미합니다(계시록 17:2,4).
여기의 음녀는 교회의 배도 세력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음녀는 '바다에서
나오는 짐승'(다니엘 7:3~8/계시록 13:1,2)을 세상에 증거함으로,결국
적그리스도를 인류의 메시야로 등장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하여 세상은 이 음녀와 더불어 짝하고 음행하므로써,음녀가 주는 음행
(포르네이아스)의 포도주에 완전히 취하게 됩니다.
1) 큰 성 바벨론이 멸망하게 된 것은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1) 바벨론이 귀신(鬼神)의 소굴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2장 28절에 "네가 만든 네 신들이 어디 있느뇨 그들이 너의 환난을
당할 때에 구원할 수 있으면 일어날 것이니라 유다여 너의 신(神)들이 너의
성읍(城邑) 수(數)와 같도다"라고 하였습니다.
(2) 바벨론이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더러운 영이란 성령의 은사가 마귀의 도구로 변해 조잡하고 천박하고
더럽게 사용되는 것을 가리킵니다.(참고 마태복음 7:21-23).
(3) 바벨론이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가증한 새'란 입으로는 하나님을 찬양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는 자들을
상징합니다(디도서 1:16). 새는 하늘을 나는 날짐승으로,영적인 세계를
누비는 가증한 영들의 세상이 되었음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이 모든 것이 '모이는 곳'이 되었다는 것은 '큰 성 바벨론'이 귀신들과
더러운 영들이 모여든 처소가 되고, 가증한 자들이 모여든 세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벨론은 회칠한 무덤이요,강도의 굴혈(掘穴)이요,
장사하는 집이 되어 망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2) 음행의 포도주로 인해 만국이 무너졌습니다.
본문 3절에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를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淫行)하였으며 땅의 상고들도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하여 치부하였도다"라고 하였습니다.
(1) 큰 성 바벨론이 멸망을 당하는 이유는,음행입니다.
'음행'은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예레미야 3:2/호세아 4:10). 그런데 우상은 '거짓 스승'(하박국 2:18)이라고
하였으니,하나님보다 거짓 종들을 더 따르고 사랑하는 것이 우상숭배요
음행(淫行)이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큰 성 바벨론은 거짓 종인 음녀가 주는
음행의 포도주를 마시고,그 포도주에 취하여 음란한 백성의 나라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예레미야 51장 7절에 "바벨론은 여호와의 수중의 온 세계로 취케 하는
금잔이라 열방이 그 포도주를 마시고 인하여 미쳤도다"라고 하였고,계시록
14장 8절에는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이던 자로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계시록 17장 2절에는 "땅의 임금들도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거하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라고 하였습니다. 음행의 포도주란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진리가 아니라,우상처럼 거짓 종들을 더 신뢰하고
섬기도록 가르치는 사람의 계명을(이사야 29:13) 가리킵니다.
그래서 음행의 진리로 인하여 큰 성 바벨론은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되었고,
하나님의 진노가 작정된 것입니다.
(2)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습니다.
이 구절은 계시록 17장 2절을 반복하여 말씀하시는 것으로 땅의 왕들이란
종교 지도자들을 가리키며,이들이 음녀(淫女)인 큰 성 바벨론과 음행을 일삼고
바벨론과 야합하여 부(富)와 사치(奢侈)를 즐기는 자들이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3) 땅의 상고들도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하여 치부하였습니다.
상고(商賈)들이란 상인들을 말하는데 이것은 영적으로 교회의 복술(卜術)
목회자들이 영적 장사꾼이 되어 하나님의 교회를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 뿐
아니라(요한복음 2:16) 하나님의 은사(恩賜)를 팔아 분에 넘치는 부(富)와
사치(奢侈)를 누리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 땅의 상고(商賈)들을 이렇게 보는 이유는, 본 계시록 18장 13절에 땅의
상고(商賈)들이 취급하는 상품 중(은사들을 상징) "종들과 사람들의 영혼들'을
사고 파는 행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을 에스겔 13장 17절~19절 말씀으로 조명해 보면 '두어 웅큼 보리와 두어
조각 떡과 자기의 영혼을 위하여 하나님의 백성의 영혼을 사냥하는 거짓 선지자'와
같기 때문에,땅의 상고(商賈)들은 말일에 참된 복음의 진리 전파에는 관심이 없고
큰 종교 단체를 등에 업고 음녀와 연합하여 예수를 팔아 장사하는 삯꾼 목자들이요
'복술로 만국을 미혹하던 왕족들'(계시록 18:23)이 분명한 것입니다.
예컨대 이들은 "죽지 아니할 영혼을 죽이고 살지 못할 영혼을 살리는 마음에서
나는 대로 예언"(에스겔 13:19)하는 거짓 선지자들인 것입니다.
셋째, '내 백성아 거기서 나오라'는 '다른 음성'이
들렸습니다.
오늘 본문 4절에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 본문 1절에서 3절까지는 큰 성 바벨론의 멸망에 대해 선언하였는데,4절부터
8절까지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멸망할 그 바벨론이 짓는 죄악에 참여하지 말고
나오라는 권면과 경고의 말씀이 주어지고 있습니다.
다른 음성이 하늘로부터 직접 들려왔기 때문에,이 음성은 하나님의 음성이거나
그리스도의 음성입니다. 그런데 이 음성은 사도 요한이 듣고,또한 보고 증거한
'반드시 속히 될 일'을 하나님의 종들이 다시 예언해야 하는 사명이 있기에,
이 음성은 말일의 종들이 하나님의 음성처럼 들려주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의 음성은,두 증인의 예언의 메시지로 나타납니다.
* 두 증인이 외치는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罪)에 참여(參與)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는 메시지는,음녀의 음행의 포도주 뿐만 아니라
땅의 상고(商賈)들의 거짓 가르침으로 더러워진 세계에서 어서 속히 나오라는
사자같은 부르짖음입니다(계시록 10:3).
이것은 바벨론을 향하여 예레미야 선지자가 선포했던,메시지와 같습니다(예레미야 50:8/51:6-9).
* '두 증인'의 예언의 말씀은 '영원한 복음'(계시록 14:6)이고,이 예언의 말씀
선포의 절정은 계시록 11장 3절에서 보면,1260일 동안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는'(계시록 10:11) 것으로 나타납니다.
2) 마음으로 온전히 바벨론에서 빠져 나오라는 경고입니다.
* '거기서 나오라'는 말씀은 단순히 실제적 장소에서 떠나라는 의미보다는,
바벨론이 저지르는 죄악에 더 이상 참예하지 말라는 것이 참 뜻입니다.
롯의 아내는 죄악의 성 소돔과 고모라를 떠나왔으나,뒤를 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되어 죽었습니다(창세기 19;24~26).
몸이 떠나왔으면 마음도 떠나야 하는데,마음은 두고 온 것에 계속 머물러 있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1) 그 죄(罪)는 하늘에 사무쳤기 때문입니다(5절).
큰 성 바벨론의 죄는 하늘에 미칠 정도로 극에 달하였으며 그들의 죄는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이미 관영(貫盈)하고 악해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준 그대로 그에게 주고 그의 행위대로 갑절을 갚아 주고 그의 섞은
잔에도 갑절이나 섞어 그에게 주라"(6절)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바벨론이 행한대로 갚으시겠다는 선언이십니다. 저희들의 행위대로
국문(鞠問)하시되,갑절로 응징하시며 보복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큰 음녀(淫女)인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을 대적하여 저지른 죄는 말할 것도 없고, 만국을 미혹하여
음행의 포도주를 마시게 함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어린양을 대적하게
하고 우상 숭배에 빠지게 하였으니 그 죄는 결단코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더우기 큰 성 바벨론은 그동안 분에 넘치는 사치와 향락에 빠졌고,그 교만이
하늘에까지 이르렀으니 이제 그 죄에 대한 응당한 심판을 받게 하시겠다는
선언인 것입니다.
(2) 음녀는 스스로 여황이 되었으나,영적 과부에 불과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7절에 "그가 어떻게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사치하였든지
그만큼 고난과 애통으로 갚아 주라 그가 마음에 말하기를 나는 여황(女皇)으로
앉은 자요 과부(寡婦)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을 당하지 아니하리라"라고
하였습니다.
* 음녀인 '큰 성 바벨론'의 죄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자기를 영화롭게 한 것'이었고,다른 하나는 '사치'입니다.
'사치하였든지'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스트레니아센'은, 극에 달한 방탕한
생활을 의미합니다. 예컨대 바벨론은 스스로를 하나님의 위치에 올려놓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보다는 자신에게 영광을 돌렸으며,사치와 방탕한
생활로 악이 극에 달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바벨론의 교만과
사치를 간과하지 않으시고,고난과 애통으로 되갚아주겠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자신의 신랑으로 모시고 있지 않은 자는,영적 과부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스스로 '나는 여황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을 당하지 아니하리라'라고 한 음녀의 말은 거짓이요 기만이요 어리석음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음녀(바벨론)의 교만과 물질의 풍요는, '하루 동안'에 망할
것들입니다.
오늘 본문 8절에 보면 "그러므로 하루 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르리니 곧 사망(死亡)과
애통(哀痛)과 흉년(凶年)이라 그가 또한 불에 살라지리니 그를 심판하신 주 하나님은
강하신 자이심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하루 동안'은 아주 짧은 시간을 의미하는 것으로, 바벨론이 순식간에 재앙을
당할 것을 말하며 그 재앙은 네 가지입니다.
(ㄱ) 사망(死亡)입니다. 이것은 생명이 사라져버리는 재앙입니다.
바벨론이 스스로 '과부가 아니다'라는 자랑에 대한 보응(報應)으로,사망이란 이름을
가진 적그리스도(짐승)에게서 나오는 재앙입니다.(계시록 6:8).
결국 적그리스도를 따르다가 당하는 재앙입니다.
(ㄴ) 애통(哀痛)입니다. 이 재앙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풍부한
물질만을 의지하며,사치한 것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ㄷ) 흉년(凶年)입니다. 이 재앙은 물질적 풍요에 대한 하나님의 보응(報應)으로,
7년 환난 가운데서 당할 영육(靈肉)간의 기근과 흉년입니다.
(ㄹ) 불에 살라지는 재앙입니다. 하나님의 소멸(燒滅)의 불로 바벨론이
멸망(滅亡)을 당하게 되는 재앙입니다(계시록 18:9,18).
바벨론은 스스로 가장 강력한 왕(王)이라는 것을 자처했으며, 절대로 자신에게는
애통(哀痛)할 일이 없다고 큰소리치며 자기 도취에 빠져 하나님을 섬기라고 말을
하면서도 실상은 자기를 숭배하도록 미혹했던 자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경멸하고 자신을 영화롭게 한 바벨론이, 하나님께 심판을 받아야 하는 것은
천만번 당연한 일입니다.
첫댓글 말씀이 능력이요 나의 삶의 원동력임을 다시 한번 생각하며 감사하며 읽었습니다, 장차 될 일들을 생각하며 마지막 음녀의 포도주에 취한 바벨론의 멸망받을 운명들을 성경 한 구절 한단어, 낱낱히 일곱눈으로 파헤치며 밝혀주셨습니다. 이 것이 더 밝은 예언의 등불이요, 말일에 우리의 생명을 지켜주는 양식이 되겠습니다.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 '가증한 새'가 지금 이시대 예수님을 주로 모시면서 음녀의 가증한 영들이 모여 성령의 일로 가장한 채 배도의 일을 벌써 부터 자행하고 있슴을 알겠습니다. 우리는 위 말씀을 보면서 영들을 분별하고 내가 몸담고 있는 그곳의 영의 사역들도 감찰할수 있어야겠습니다.
그리하여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라는 하나님의 구원의 음성을 듣고 나와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선 말씀으로 일하시고 감동도 주십니다. 우린 오직 말씀을 보며 하나님의 음성도 듣고 계시록의 종들의 사역을 깨달아 적그리스도의 활동상을 깨닫고 나와 진정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종들의 사역을 큰 눈으로 찾아 보아야겠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종들로 하여금 말씀으로 주 재림의 길을 예비하시고 계십니다. 그리하니 '큰 바벨론의 정체와 멸망의 선언'의 하나님의 종말의 계시를 보며 종교계를 장악하고 많은 물위에 앉아 있는 음녀의 음행에서 속히 빠져나와야 할것입니다
오늘도 변함없이 말씀의 기둥을 세우시며 심판받을 바벨세상속의 하나님의 백성들을 깨우시기 위하여 밤낮 애를 쓰시는 박대산 목사님!! 사랑하시는 성에서의 영원한 영광이 기다리고 있슴을 기억하시고 끝까지 인내하시기 바랍니다! 우린 오직 주의 나라와 주의 영광을 위한 사명으로 이겨나갑시다! 화이팅!!
계시록 18장 2절에 "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큰 성 바벨론은 배도하는 음녀교회가 이미 바벨 세상과 똑같이 되어버렸음을 의미합니다. 여기는 귀신들이 우글거리고 각종 더러운 영들이 모여들어 서로 험담하고 악담하고 시기 질투합니다. 그런 곳에 잠시나마 머물러 있는 구별된 영은 숨 쉬는 것조차 힘들 정도이지만,정체성(正體性)이란 무엇일까요? 본심을 잃지 않고 그런 환경 속에서도 더러운 영들에 물들지 아니하는 순수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남유다 백성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간 것은,두말할 필요도 없이 백성들이 원하는 길이 아니었습니다. 누가 그런 고난과 치욕의 길을 원해서 가고자 하겠습니까? 그렇지만 그 길은 하나님의 섭리가 있는 길이었고,피할 수 없는 연단의 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인류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자이시며,아울러 우리 각 사람의 삶의 길을 주관하며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시편 23편에서 지혜를 얻습니다. 처음엔 목자와 양의 관계로(1절~4절),그리고 나아가서는 주님과 한 밥상에 앉아 음식을 먹는 귀빈으로(5절), 지금의 연단을 잘 이겨내고 승리한 자에겐 주님 보좌에 함께 앉아 왕노릇하는 권세를 누리게 됨을 항상 잊지 마시길(계 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