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엄마와 2박3일 앵콜 공연을 보고
큰 딸아이가 주말에 표를 예약해 둔 덕분에 “친정엄마와 2박3일” 공연을 보기 위해 동국대학교 이해랑 예술극장으로 향했다. 뮤지컬 블루 사이공을 보고 난 이후 처음 보는 공연이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공연장 밖, 나무 그늘이 드리운 원형 벤치에서 커피를 마시며 기다렸다. 공연을 보러온 모녀와 가족 그리고 친구인 듯이 보이는 사람들이 먼저 자리해 도란도란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정겨워 보인다. 시간이 되자 공연장 문이 열리고 두 줄로 길게 늘어진 줄 뒤에 서 안으로 들어가니 배경음악이 마음을 가라 앉혀 준다. 진행 요원이 공연을 위해 핸드폰을 꺼줄 것과 공연 중에는 음식 섭취가 불가함 등 몇 가지 주의 사항을 알린다.
과거와 현재 생과 사를 넘나드는 구성으로 진행되었다, 권미영의 배역을 맡은 전미선 씨가 저승사자 옆에서 넋두리처럼 읍 조리는 나지막이 흐느끼는 듯한 노랫소리로 막을 연다. “엄마, 엄마 나죽으면 뒷동산에 묻지 말고 앞산에다 묻어 주, 비가 오면 덮어주고 눈이 오면 쓸어 주” 어둠 속에 흐른 애잔한 음률이 죽음의 비애를 예고한다. 이내 장면이 바뀌어 가난하고 어려웠지만 행복했던 미영의 유년, 가족들의 일상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가축을 길러 중학교 교복을 사겠다는 미영의 꿈. 처남이 오자 대접할게 없는 아빠는 미영의 꿈을 삶아 내 놓는다. 우리네 농촌의 인심이 향수로 가슴에 울컥 다가오고, 외삼촌은 본의 아니게 미영의 꿈에 상처를 주는 원인 제공자가 되었다. 뼈가 시리도록 아픈 가난 그 가난을 자식들에게 만큼은 대물림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오직 미래의 꿈을 자식 농사에 걸었던 우리에 부모님 들,
학교 다니는 내내 1등을 하며 부모를 기쁘게 하던 미영의 유년이 지나고 세월이 흘러 서울에서 일류 대학을 나와 대기업에 다니고 있는 잘난 자식이 항상 엄마의 가슴엔 자랑단지요 훈장이었다. 모든 고통을 해소해 주고 기쁨으로 승화시켜 준 자식이 전부였던 우리들의 엄마! 자식 공부 시키느라 가난의 무게에 눌려 치료다운 치료한번 못해보고 사랑하는 남편과도 사별해야 했던 한 많은 돈, 그래서 엄동에도 얼음장 같은 방에서 미영이 입었던 옷을 걸치고 겨울을 전기장판 하나로 지새우는 엄마의 생활을 보며 가슴이 미어진다. 엄마는 네 냄새가 밴, 우리 딸 냄새가 밴 옷이 좋아서 입는 다고 가난을 변명해 보지만, 아니 어쩌면 정말 자식이 그리워 그랬는지도 모른다.
오빠와 미영은 서울에서 일류 대학을 나와 좋은 직장에 다니며 결혼했지만 살갑게 엄마를 모시진 못했다. 그리고 시집과는 너무 기운 두 집의 격차는 미영이 매운 시집살이 속에 희생하면서도 기 한번 펴지 못했고 친정 걸음 한번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런 딸의 갑작스런 방문은 엄마를 기쁜 한편 불안하게 한다. 어려운 살림에 교육시킨 자식들을 동네 사람들은 남의 자식이 잘 된 만큼 부러움을 독설로 담아 비아냥거렸는데, 꿈에도 보고 싶던 딸이 왔으니 엄마는 싱글벙글 얼굴 가득 기쁨이 넘친다. 정성껏 차린 밥상머리에서 당신은 아무것도 먹지 않고 자식의 입만 바라보며 흐뭇해한다. 미영은 엄마가 만든 반찬은 왜 이렇게 맛있는지 모르겠다며, 엄마도 드시라고 억지로 엄마 입에 반찬을 얹은 밥 한술을 떠 넣어 주며 해맑은 웃음을 날린다.
딸이 파리한 얼굴로 시골집에 내려온 후로 사위는 전화 한통 없고 계속 누워 잠만 자는 딸이 엄마는 걱정스럽다. 사위와 불화해서 왔나 무슨 일이 있어 왔나 하고, 미영의 눈치를 살피며 물어 보지만 딸은 어미의 가슴에 상처를 주는 말만 쏟아낸다. 그러면서도 미영은 속으로 엄마에 대한 고마움과 연민으로 그동안 살아오면서 사랑하는 엄마에게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어 마음아파 하며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엄마와 함께 해보고 싶었던 것을 실천하기로 한다. 엄마와 함께 사진 찍기, 함께 여행하기, 사랑한다고 말하기, 뒤에서 껴안으며 엄마 냄새 맡기, 앞에서 환하게 웃기 등 우리 엄마여서 고마웠었다고 하나 둘 되 뇌이며, 자신이 엄마에게 잘못한 일들을 회상하며 반성한다.
장날 사진 찍으러 가는 엄마는 잘난 딸이 왔음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각설이에게 딸을 위해 춤을 추어 달라하며 자신도 신바람에 어깨춤을 둥실거린다. 원로 연기자 강부자의 병신춤은 관객을 애잔한 슬픔의 눈물을 흘리게 하다 일순 웃음바다로 전환하며 이제까지 국민 엄마로 생각하던 연기자 중 또 한사람의 국민 엄마를 추가로 각인 시켰다. 각설이 타령과 기쁨의 춤사위가 그치고, 동생이 간암으로 시한부 인생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해들은 오빠는 급히 시골집으로 내려와 어떻게든 치료를 받도록 설득해 보지만 무위로 돌아가고 오히려 엄마에게 딸이 얼마 살지 못하는 시한부임을 들키고 만다. 하지만 딸은 오열하며, 엄마 이젠 오빠 집에 가서 살아 자식들 욕 먹이지 말고... 아들도 엄마 오기를 며느리가 학수고대 하고 있다고 한마디 거든다. 그러자 피식 웃음을 날리며 엄마는 넋두리처럼 말한다. “세상천지 어느 며느리가 시부모와 함께 사는 것을 좋아 하냐고 모든 귀 가진 사람들에게 외친다.” 미영이 다시 후회스러운 듯 읍 조린다.
그 고생하지 말고 그냥 가까운 곳에서 엄마 옆에 살며 적당한 놈과 눈 맞아 살 껄 그랬다고, 엄마 보고 싶을 때 자주 볼 수도 있고 그렇게 살 껄 그랬다며 운다. 그리고 엄마에게 다시 오빠 따라 살 것을 권하자 나는 너 때문에 이사 못했다. 기우는 우리 형편에 과분한 집으로 결혼한 네가 가슴에 고이는 설움 있을 때 아무 때나 찾아와 토해내는 대로 들어줄 어미가 이사 가면 내 새끼 서러운 이야기는 누가 들어 주느냐고 그래서 여기서 살았다고 길게 오열한다. 장면이 바뀌고 딸과 함께 찍은 마지막 사진을 눈물로 닦으며 내뱉는 넋두리는 우리의 메마른 가슴에 촉촉이 단비를 내리게 한다. “내 새끼 보고 싶은 내 새끼 너한테 참말 미안하지만 나는 네가 내 딸로 태어나 줘서 고맙다. 내가 이 세상에 와서 제일 보람된 것은 너를 낳은 것이다. 그리고 제일 후회되는 일은 그것도 이 무식하고 못난 내가 너를 낳은 것이다. 사랑한다. 내 딸아”
관람을 마치고 나오는 발걸음이 무겁다. 우리 부모님도 오남매 자식들을 저리 길렀는데 나는 이 나이 먹도록 부모님께 해준 것이 없어 양심이 저려 온다. 그리고 강부자씨의 독백이 마음 저편에서 메아리로 울린다. “부모는 배우지 않고, 노력하지 않아도 자식 사랑하는 것을 안다고,” 오늘 딸 덕분에 좋은 공연을 보았구나, 고맙다 우리 딸 나는 부모님께 제대로 못하는데 자식들에게는 지금까지 기쁨만 받았으니 고맙고 또 미안하다. 지금부터라도 자주 찾아뵈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