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추는 예전에는 4월 말쯤 밭에 씨를 바로 뿌렸대요. 그러면 가을에 붉어졌겠지요.
* 지금 마을 어른들은 2월초에 집안에서 씨를 뿌리기 시작합니다. 하루라도 일찍 붉은 고추를 거두기 위해서인데요, 우리 마을은 5월초까지 서리가 오니 5월 5일 밭으로 나가게끔. 그때가 되면 고추 모종에 꽃 몽오리가 맺힐만큼 자랍니다. 이런 모종은 밭에 옮겨심으면 바로 꽃이 피고 열매가 맺겠지요. 이걸 어른들은 '나이 들게 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려면 2월초에 스티로폼 상자에 상토흙을 담고 거기에 고추씨를 촘촘히 뿌립니다. 1센티 간격으로요. 이 스티로폼 상자는 따뜻한 방안에 놓고 기르는데, 한 달쯤 지나면 싹이 올라와요.
그러면 3월초. 바깥 수도가 녹으니 이 고추싹을 비닐집으로 옮깁니다. 방법은 두 가지, 비닐집 땅에 10센티 간격으로 옮겨 심는 방법. 다른 하나는 모종 상자에 옮겨심는 방법이 있어요.
이 비닐집에서 고추를 두 달을 삽니다. 여기는 4월초까지 눈이 올 때도 있고, 3월에는 영하로 떨어지는 날이 많으니 고추가 얼지 않게 온갖 노력을 한답니다. 커다란 모종회사에서는 불을 때거나 바닥에 열선을 깐다고 하지만, 이곳 어르신들은 그렇게 시설투자를 못하니까 몸으로 때웁니다. 비닐 집 안에 자그마한 비닐 터널을 하나 더 만들어요. 그리고 그 위에 보온덮개를 더 덮어줍니다. 아침이면 일어나 그걸 걷어주었다가 저녁이면 다시 덮어주기를 4월 초까지 해야 하지요.
*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
<언제> 일단 우리 고추씨는 토종이라 일찍 씨를 넣어도 잘 싹이 트지를 않아요. 가을이 되어야 고추가 붉어지는 프로그래밍을 가지고 있는 거지요. 또 마을 어르신들처럼 하려면 품이 너무 많이 들어요. 밤에 날이 차면 고추가 얼어죽을까봐 전전긍긍..... 실제 고추 모종이 얼어죽는 해가 있으니까요. 이렇게 하고 싶지 않답니다. 그래서 남들보다 한 달 늦게, 그러니까 남들은 고추싹을 비닐집으로 옮길 무렵, 그제서야 비닐집에 고추씨를 넣지요. 예전처럼 밭에 직접 고추씨를 넣는 것도 해 본 적이 있는데요, 그러면 고추 싹이 풀하고 함께 올라오니 어릴 때 손이 많이 가요. 그리고 정말 거둘 게 별로 없어요. 고추가 붉어지면 서리가 오는 식이지요. 그래서 잡은 게 딱 중간선인 3월초 바깥 수도가 녹으면 심는다 입니다.
이렇게 해서 심으면 5월 본밭에 낼 때까지 그대로 기르다가 본밭으로 옮긴답니다. 그러면 고추가 익는 것도 남들보다 한 달 정도 늦은 8월쯤이에요. 8월 9월 두 달 따니까 100여포기 심으면 4식구 먹을 거는 나와요.
<어떻게> 맨먼저 비닐집에 비닐을 치고 땅을 데워요. 겨우내 비와 눈을 맞은 땅에 비닐을 둘러치고 열흘 정도 지나면 땅이 따뜻하게 녹습니다. 지렁이가 살아움직이고, 비닐 집 속 풀이 파릇파릇해 지면 땅이 녹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고추씨는 받습니다. 고추가 있으면 꼬리쪽 반을 잘라 그쪽 씨는 쓰지 않구요, 고추 꼬투리쪽 씨도 떼어내고 가운데쪽 씨만 발라냅니다. 그 고추씨를 물에 씻어 가라앉는 충실한 것만 고르지요.
면손수건을 물에 적신 뒤 그걸로 고추씨를 폭 감싸고 아랫목에 재우지요. 더운 아랫목에 재우면 하루만에 싹이 날 수도 있더라구요. 근데 싹이 나오면 옮겨 심는 게 너무 조심스러워요. 씨를 만지다가 싹이 부러질 수도 있구요, 옮겨심은 뒤 온도나 습도가 적당하지 않으면 몸살을 앓겠지요? 그래서 우리는 싹이 나기 직전이라 판단되는 싹이 날랑말랑할 때 옮겨심습니다. 땅에 묻혀 싹이 나라고. 그렇게 하려면 물 적신 수건을 아침저녁으로 새 물로 씻어주며 적당히 따뜻한 방에 두어요. 이틀쯤 지나면 발아공이라고 고추싹이 나오는 구멍이 열려요. 싹이 틀라고 하는 거지요. 그러면 딱 좋습니다.
고추씨를 심기 전에 다시 땅을 한번 점검하고요, 땅에 심는 건 모종 상자에 심는 것과 장단점이 있어요. 땅에 심으면 좀더 자연스레 자라요. 물을 조금 못 맞춰주어도 큰 탈이 안 나더라구요. 모종 상자는 물을 아주 잘 맞춰 주어야 해서 어려워요. 너무 주면 싹이 삭아버리고, 안 주면 말라버려요.
우리는 지렁이 때문에 두더지가 돌아다녀 고추 모종 뿌리를 끊어놓아 그걸로 애를 먹지만 땅에 그냥 심는답니다. 대신 모종상자에 심으면 나중에 본밭에 옮겨심기 아주 좋아요. 잔뿌리가 끊기지 않으니까, 모종상자에 물을 흠뻑 주고 나서 옮기면 물을 적게 주어도 다 잘 살아남지요. 땅에 심으려면 먼저 땅을 잘 골라요. 겨울에 재를 미리미리 넣어놓으면 소독효과가 있습니다. 만일 땅이 좀 척박하다 싶으면 겨우내 오줌을 뿌려주면 좋겠지요. 이랑 폭은 1미터 20 정도로 하면 양쪽 고랑에 둘이 앉아서 일하기 좋아요. 이 이랑 둘레에 나무로 테두리를 해 줘요. 물을 주어도 흙이 떠내려 가지 않도록 하는 거지요.
그리고는 이삼일 전에 물을 미리 흠뻑 줍니다. 땅 속까지 젖도록. 그리고 고추씨를 심기 전에 상토흙을 위에 깔아줘요. 싹이 쉽게 올라오라고요. 고추씨를 심는데 이때는 사방 10센티 간격으로 심습니다. 이 모습은 아랫글에 사진과 함께 나와있어요. 만일 싹을 잘 틔울 자신이 없으면 한 자리에 씨를 두 개씩 넣는 방법도 있어요. 나중에 싹이 올라오는 걸 보고 하나는 솎아내면 되니까요.
다 심었으면 물을 흠뻑 주면 되지요. 그리고 하얀부직포를 이불처럼 덮어주어요. 아침이면 걷어주고 저녁에는 덮어주며 문안인사를 시작하면서 싹이 나기를 기다린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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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넘 중요한 글이라 퍼갑니다. 올려주심에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