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덕유산 산행스케치
새벽 04시 30분. 나만의 훈훈한 공간을 살포시 빠져나왔다. 어슴푸레 어둠을 밝히고 있는 가로등불빛 따라 사부작사부작 산본역을 향해 걸어갔다. 역사에 도착하니 길 건너 우뚝 솟은 빌딩의 모텔 간판만이 길손을 유혹이나 하듯 밤새 깜박거리고 있다. 한 겨울의 전철역은 소름끼치도록 춥고 을씨년스럽다. 한참 추위가 속살을 파고 들어와 그와 깊은 대화를 나누고 있을 쯤에 적막을 깨뜨리는 지하철, 특유의 신호음과 함께 미끄러지듯 전철이 도착했다. 일요일의 첫 열차는 한산하기만 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스마트 폰을 꺼내 함께 하기로 한 언제나 그리운 친구에게 모닝콜 수필메시지를 전송해본다.
[오랜만의 장거리 외출이다.
첫사랑이라도 만나는 양, 설레기만 하구먼.
친구!
내게도 어느 날, 열병처럼 첫사랑이 찾아왔다네.
대간 길을 걷다, 스치듯 만난 하얀 미소처럼 말이네.
오늘은 사십 년 전의 흐릿한 기억을 찾아 흘러간 추억 속에 푹~ 빠져보고 싶으이.]
사당역 1번 출구에서 U친구가 기다리고 있다는 문자를 받고 보니 마음이 더 부산해졌다. 사당역에 도착하여 친구와 함께 약속했던 장소에 가보니 오늘 우리를 태울 애마와 k친구가 먼저와 기다리고 있었다. 시원하게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다 죽전간이휴게소에서 A친구를 태우고 다시 서논산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S친구를 태우고 다시 길을 나섰다. 계룡휴게소에서 아침을 간단히 해결하고 오늘의 목적지인 무주로 달려갔다. 무주시내로 진입하여 군청부근에 있는 파리바게트에서 알싸한 케이크를 준비했다. 오늘 모임을 준비해준 J친구가 기다리고 있는 매표소로 달려가 곤돌라에 몸을 부렸다. 우리를 태운 곤돌라는 눈 덮인 산야를 거침없이 가로질러 올라 설천봉에 도착하니 이른 시간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있었다.
적당히 몸을 풀고 서서히 향적봉 정상을 향해 오름을 시작했다. 좁다란 산길이어서 사람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진행이었다. 가끔씩 정상에서 불어오는 상큼한 바람이 코끝을 간지럽힐 때쯤에 향적봉에 도착하였다. 흔적을 남기기 위해 인증 삿을 마치고 다시 중봉으로 이동했다. 대피소를 지나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걷다보니 수많은 세월을 버티며 서있는 한 그루, 고사목이 한 눈에 잡혔다.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 이라 했던가.
[그대는
나와 운명을 달리하는 까닭에
아직 내 마음은 불타오르나
다만,
그대 가슴에 평화만이 있으라.]
이 시는 이태의 수기 <남부군>에서 발췌한 글이다. 왠지 그가 슬퍼보였다. 죽어서까지 고등한 세계를 살아가고 있는 얄팍한 인간들에게 간단없이 화두를 던지고 있었다.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그곳에서 한참을 머물다 다시 중봉으로 이동하여 다른 친구들과 합류하여 작은 능선 길로 내려섰다. 오늘의 가장 중요한 행사를 치르기 위해서였다. 모두가 함께 모여 준비한 케이크를 자르고 U친구의 영예를 축하하는 산상 퍼포먼스를 연출했다. 친구는 고등학교 교과서에 친구의 글이 게재되어 수필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영예를 안은 것이었다.
작년 삼월 찬바람이 솔깃하게 부는 날에 인천 주안역에서 모였던 친구들이 다시 신년 첫 만남을 덕유산에서 갖게 되었으니 어찌 기쁘다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한 사람 한사람을 그저 마음으로 읽고 가슴으로 느꼈던 하루였다.
수필문단에 문을 두드렸지만 아직도 어둔 밤길에서 헤매고 있었다. 아무도 어떤 표지도 없는 나만의 길을 찾아 가려하니 목이 몹시 마르고 침마저 삼킬 수가 없었다. 그래서 찾아든 덕유산이었을까....
머리로 쓰지 못한 글을 몸으로나마 써야한다는 마음으로 택한 덕유산산행 길에서 뜨거운 우정을 확인하였으니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그래. 내가 좋아하는 시 한 편을 옮겨본다.
[날이 저무니 나그네 발길은 정처 없고
가을이 깊으니 가난한 이 수심도 깊어라
북풍에 실려 날아든 철새는 둥지를 트나
인간사 헐벗고 배고픔은 그 누가 가려주랴.]
-조정래 소설 <아리랑>에서-
묵묵히 함께해주었던 친구들에게 감사함과 옥수골에서 우리들을 위해 닭 모가지를 비틀어 홀쭉하게 비어있던 창시를 채워준 법륜친구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다시 한 번 심천에게 축하에 말을 전하고 글이면 글, 사진이면 사진으로 풍요로운 카페산맥을 꾸미고 있는 Y친구에게 감사하다는 말과 나뭇가지에 물이 오르고 풀냄새가 코끝에 전해져 오면 수고한 친구에게 보리밥이라도 한 그릇 사야할 성싶다.
첫댓글 덕유산 캠프 한번 가본적 있는데 산행 스케치 잘 봤습니다^^
육십령에서 향적봉까지 걸어볼 만 합니다.
그간 다녔던 산들이 스크랩 되는듯 합니다..가슴에 열이 납니다.
멋진 글 솜씨 입니다..
많이 다니셨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