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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一永 -- 52세. 京城 출신. 일찌기 基督敎계통에서 일하다가 外人 宣敎師의 도움으로 美洲로 유학. 프린스턴 大學에서 哲學博士학위를 받았다고 하나 분명치 않음. 留學期間및 美洲에서의 활동은 전혀 알려져 있지 않음. 5년 전인 1939년 경 中國으로 건너와 갑자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 배후에 美國OSS의 강력한 지원의 받고 있는 것으로 사료됨. 中國 國民黨의 重要人物들과 관계를 맺고 있으며, 臨時政府 내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라고 있음. 美國의 資本主義思想을 신봉한 나머지 極右派의 지도적 人物로 행세. 抗日獨立戰線에 分裂을 획책하고 革命勢力제거에 광분하고 있음. 同志 吳光旭.金祥赫의 暗殺을 직접 지휘한 것으로 사료됨. 그대로 放置할 경우 組織의 붕괴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음.
대치는 눈을 비비고 나서 그것을 유심히 들여다 보았다.
變裝에 能하여 正體를 알아보기 힘듬. 단 한 가지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항상 中折帽에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점. 公席上에는 절대 출현하지 않음. 항상 2명의 警護員을 대동하고 있어 접근하기가 어려움. 住居가 일정하지 않아 所在를 파악하기가 거의 불가능. 전쟁 전까지는 上海 共同祖界내에 있는 外國人 敎會에 주일마다 출현하였으나 현재는 어느 敎會에 출입하고 있는지 알수 없음. 臨政諜報 5號인 尹洪喆(上海거주)과는 친분이 두터운것으로 알려져 있음.
소재가 알려져 있지 않은데다 항상 변장을 하고 다니는 인물을 암살한다는 것은 경험이 풍부한 사람에게도 확실히 어려운 일이다. 하물며 열정만 가졌지 계획적인 암살 경험이 전혀 없고 모든 점에서 미숙하기만 한 그가 그런 일을 해낸다는 것은 십중팔구 실패할 가능성이 많다는 점에서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거절하지 않았다. 어렵다는 내색도 보이지 않았다. "어때? 자신 있겠나?" 김씨는 넌지시 물어왔다. "해보겠습니다." "감사하네. 어려운 일인 줄은 알고 있어. 그러나 경험이 부족하긴 하지만 그 일에 있어서 자네만한 적격자가 없어. 자넨 우선 중국어 실력이 좋아 활동하기에 편리한 점이 많아. 그리거 그 누구보다도 훌륭한 혁명가가 될 수 있는 소양을 가지고 있어. 만일 자네가 성공하기만 한다면......자넨 하루 아침에 우리 조직의 영웅이 되는 거고, 들어오자마자 확고한 지위를 차지하게 되는 거야. 무엇보다도 우선......할 수 있다은 신념을 가져야 돼. 신념을 가지지 않고는 이런 일을 할 수가 없어." "잘 알겠습니다." "그 보고서를 보면......손을 뻗을 수 있는 곳이 두 군데 있어. 하나는 그자가 교회에 나가는 신자라는 점이야. 그러나 이 넓은 천지에서 어느 교회에 나가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단 말이야. 이건 인력이 많이 소요되고...... 아무래도 불가능한 일이야. 다른 하나는 노가(盧哥)가 윤홍철이라는 인물과 가까운 사이라는 점인데 이것을 뚫어보면 혹시 가능성이 있을지 몰라." "윤홍철은 어떤 인물입니까?" "노가처럼 극우파 인물로 임정 첩보5호로 통하고 있지. 행동파야. 황운(黃運)이라는 자 이름 들어 보았나?" "그 친일분자 말씀입니까?" "음, 알고 있군. 얼마 전 윤홍철이 결국 그자를 암살했지. 그것 하나로 윤가가 어떤 인물이라는 걸 알 수 있을 거야." 대치는 온 몸이 긴장되는 것을 느꼈다. 그는 벌써 어떤 실체와 대결하는 기분이 들었다. "임정에서는 내 정체를 모르고 있어. 언젠가는 드러나겠지만 아직까지는 내 말을 무시하는 사람은 없어. 내가 주선을 하면 윤홍철과 선이 닿을 수 있어. 전에 한두번 만난 일이 있긴 하지만 인사 정도 나누었을 뿐 별 관계는 없었어. 사람이 겉으로 보기에는 인자한 인상이지만 사실은 잔인하다는 평이야. 탈주해오는 학도병들을 포섭해서 여러 가지 공작을 꾸미고 있는 모양이야. 그 사람은 만나는 건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 거야. 요즘은 사건이 터진 지 얼마 안돼서 숨어 있을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접근은 가능해." "그러니까......거기에 잠입하라는 말씀인가요?" "현재로서는 그 방법밖에 없지 않을까. 자넨 아직 신분이 드러나 있지 않고 학도병 출신이니까 꺼릴 것 없이 공개적으로 거기에 들어갈 수가 있어. 성공하기까지는 시일이 오래 걸리긴 하겠지만......일단 윤가의 신임을 얻어두면 어느 땐가는 반드시 노가와 마주치게 될 거야. 우선 윤가의 심복이 되는 게 중요해. 그렇지 않으면 노가에게 접근하기가 힘들어." "잘 알겠습니다." "윤가에 대해서는 내가 자세한 것을 조사해서 알려주지. 한 가지 특히 부탁해 둘 것은....자넨 눈때문에 신분이 항상 드러나 있으니까 일을 감쪽같이 해치워야 해. 그렇지 않으면 수배대상에 올라 곧 체포되니까 말이야." 비로소 대치는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성격이 잔인하게 변했다해도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역시 힘들고 무서운 일이다. 상대가 일본인이면 증오심 하나로 죽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부터 죽여야할 인간은 같은 민족인 조선 사람이다. 그것도 듣도 보지도 못한 개인적으로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이다. 죽이는 이유는 단 한 가지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위해서다. 그러나 그러한 사상이 이상적인 것으로 그려져 있을 뿐 아직 체질화되지 못한 그로서는 혁명을 위해 죽인다는 것 자체가 아무래도 이상하고 힘들게만 느껴졌다. 지금은 항일 독립운동에 주력해야 될 때다.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헐뜯고 죽이고 할 때가 아니다. 이러한 것은 항일전선에 분열을 초래할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순간적으로 대치의 머리 속으로 스쳐갔을 뿐이었다. 그 뒤를 이어 생각나는 것은 김씨가 박아준 <혁명의 영웅>, 그것으로 변신한 자신의 모습이었다. 그것은 실로 화려한 환영(幻影)이었다. 그것이 머지 않아 현실로 나타날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 올랐다. 학창 시절부터의 오랜 꿈이 이제야 실현되는 것 같았다. 그에게 있어 자연적인 삶이란 아무 의미도 없었다. 이데올로기로 무장된 의식적인 삶 --- 이것만이 의미가 있었다. 여기에 구체적인 현실을 제시한 것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로서는 한번 미끼를 던져본 것인데, 대치는 단단히 그것을 물어버린 셈이다. 거기에 이빨을 단단히 박아 놓은 채 그는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것을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 다짐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사고방식은 처음의 생각을 뒤바꾸어 놓았다. 즉 독립운동은 마땅히 이데올로기적 방향을 갖추어야 된다. 이 운동을 혁명으로 승화시키지 않으면 조선은 비록 독립이 된다 해도 식민지 풍토를 벗어날 수 없다. 이를 위해 필요하다면 피를 흘려도 좋다. 혁명은 바로 독립니다.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혁명정신으로 뭉쳐야 한다. 거역하는 사람이야말로 항일독립 전선에 해를 끼치고 분열을 조장하는 자다. 노일영이 같은 인물은 죽어도 좋다. 이런 급박한 시기에 동정이나 감상은 금물이다...... 이런 식으로 그는 자기 자신에게 단정을 내려버린 것이다. 이 낭만적인 코뮤니스트는 자신의 편견을 고치기에는 너무 시야가 좁았다고 할 수 있었다.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서 일찍부터 빈곤의 아픔을 체득하고, 그 아픔을 잘 사는 자에 대한 적대감정으로 바꿈으로써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라는 하나의 목적의식 속에 거의 맹목적이다시피 몰입해온 그였다. 그러한 자신을 이제 세상에 내어놓을 기회가 온 것이다. 조선의 독립은 김씨의 말대로 필연적인 사실이 되어가고 있다. 일본군이 궤멸되는 것을 버마에서 똑똑히 보지 않았느냐. 버마뿐만 아니라 도처에서 일본은 붕괴되고 있다. 따라서 이제는 독립후의 문제, 즉 혁명국가 건설을 위한 준비에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김씨의 말은 옳다. 이 사람은 내가 당분가 본받을 만한 인물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자 대치는 비로소 마음이 좀 안정되는 것 같았다. 이제 남은 것은 행동이었다. 김씨의 입장에서 볼 때는 대치야말로 한낱 풋나기에 불과했다. 다분히 맹목적인 이런 젊은이야말로 위험한 거사에 소모품으로 쓰기에 안성마춤인 것이다. 적당히 구슬리기만 하면 자진해서 발벗고 나서는 것이 바로 이런 놈이다. 그들의 대화는 밤새도록 계속되었다. 주로 김씨가 말을 했고, 대치는 듣는 쪽이었다. 이론적인 면에서나 상식적인 면에서 김씨가 훨씬 아는 것이 많았으므로 그럴 수밖에 없었다. "소련에서도 어떤 지원을 받고 계십니까?" 대치는 얼핏 유학이라도 가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이렇게 물었다. "물론......어느 정도 지원을 받고 있지. 그러나 재정적인 면에서 그치고 있어. 내 정신은 이미 중국 쪽에 더 매력을 느끼고 있어." "모택동 말씀입니까?" "그렇지. 그가 중국대륙에 구축해 놓은 정신은 러셔의 그것과는 엄연히 달라. 그것은 우리 실정에도 맞고 말이야." "소련으로 유학갈 수는 없을까요?" "이런 중요한 시기에 도서관에 파묻힐 셈인가? 그것보다는 여기서 실제로 체험하는 게 훨씬 나아. 러셔보다는 여기서 배울게 더 많아. 외국 유학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은 버리는 게 좋아. 모택동을 봐. 그가 외국에 한번이라도 나간 줄 아나? 그는 당시 같은 또래의 젊은이들보다 지적으로 훨씬 앞서 있었어." "모택동주의의 골자를 말씀해 주십시오." "모택동은 마르크스보다 레닌의 영향을 더 받았어. 레닌의 제국주의론(帝國主義論)의 영향을 받았지. 이것은 1916년 레닌이 집필한 <자본주의의 최고단계로서의 제국주의>에 잘 나타나있어.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생산은 분업화되고 그것은 많은 노동자들의 협조 밑에 이루어지는 거야. 자본주의의 독점적 단계를 레닌은 제국주의라고 규정하고 제국주의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격화시켰다고 주장했지." 그러나 김씨는 이것이 레닌의 자기 합리화라는 것을 말하지는 않았다. 그 자신 그것을 믿으려 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것을 레닌의 독창적인 사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마르크스는 일찍이 세계 주요국들에서 동시에 공산혁명이 일어나지 않으면 설사 한 나라에서 공산화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자본주의 국가들의 역습을 받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이른바 <동시혁명론(同時革命論>을 주장하였다. 그런데 레닌은 이 동시혁명론을 부정, 한 나라에서도 공산주의 혁명의 승리가 가능하다는 것을 논증하기 위해서 제국주의론을 발표하고 려셔의 볼셰비키들을 혁명에로 내몰며 정권 탈취를 합리하하려고 시도한 것이다. "모택동주의의 골자는 농민을 중심으로 폭동을 일으켜 농촌을 혁명 근거지로 삼아 도시를 포위하여 공산화하는 이른바 농민주체적 폭력 혁명사상과 게릴라 전술에 근거한 군사사상, 이 두 가지라고 볼 수 있어. 모택동의 이러한 사상은 대원정(大遠征)이 진행되던 1935년에 이미 확실한 성공으로 나타났지. 대원정중 홍군(紅軍)은 중앙당(中央黨)이 연이어 군사상 오류를 범하는 바람에 국민당 군에 진로를 차단당하고 추격을 받고 해서 매우 큰 손해를 입었어. 그래서 위험에 빠진 홍군과 중국의 혁명사업을 구출키 위해 1035년 1월 당의 중앙정치국 확대회의를 열었어. 이 회의결과 좌익 기회주의분자는 자리에서 내쫓기고 모택동의 전당(全黨)에 대한 지도적 지위가 확립되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