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수환 추기경님을 왜 용인 산 속에 모십니까?”
필자가 위원장으로 있는 보건복지부 장사시설수급추진위원회 위원들이 던진 질문이다.
질문 배경에는 김수환 추기경의 업적과 선종 당시 불과 4일만에 39만 명의 문상객이 참배를 한 것, 그리고 성인들의 유해를 모신 로마 성베드로대성당에 매년 수백 만 명의 순례객이 참배하는 것을 생각해 국내외 순례객들이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명동성당구역에 모시는 것이 선교와 국가발전에도 도움이 된다는 권고성 의미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질문에 “명동에 모시고 싶어도 국토계획법 등 법률에 용도지역을 정해놓고 금지하기 때문에 모시지 못하니 법을 개정하면 가능할 것”이라고 에둘러 답변한다. 왜냐하면 교회의 공식적인 입장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법정 스님의 골분을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 모시지 못하는 것과 수목장제도가 국가정책이지만 소파 방정환 선생을 모교인 미동초등학교 교정의 나무 아래에 모시고 공덕을 기려야 하는데 그렇게 못하는 것과 같다고 설명한다.
교회는 죽음을 영원한 생명으로 이어가는 다음 단계며 혐오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처참한 모습의 십자가와 14처를 성당에 모시고 미사를 봉헌하고 장례미사와 혼배미사를 같은 자리에서 거행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미사’ 자체가 ‘제사’이며 삶과 죽음의 공존을 상징한다.
문제는 물질문명과 이기주의가 넘치다보니 추석에 조상을 찾아 정성된 제사를 모시면서도 한편으로는 추모시설을 혐오시설로 보고 극도로 기피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랑하는 가족이나 국가사회발전을 위해 헌신하다 돌아가시는 분들도 일단 죽음을 맞으면 혐오의 대상이 되어 자기 집에서 장례를 모시지 못하는 험악한 사회로 변해있고 이점에서는 신앙인도 별 차이가 없다.
더욱 문제되는 것은 이런 상황을 바로잡아야 할 정책과 법, 행정 역시 이에 동조하거나 오히려 부추기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장사법’(약칭)은 추모문화의 주된 법률임에도 불구하고 추모시설의 설치조건을 독자적으로 규정하지 않고 다른 목적으로 만든 국토계획법 등 20여 개 법률규정에 따르도록 규정하여 사실상 실효성을 상실한 법률이라는 점이다.
2007년에는 금수강산이 묘지강산이 되는 것을 방지한다고 수목장과 잔디장을 포함하는 자연장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국토계획법에 잔디밭과 나무가 있어도 주거지역에는 아니 된다는 용도지역 기준과 그나마도 주민의 의사를 들어야 한다는 등의 어려운 과정을 거치게 함으로써 오히려 혐오의식과 갈등을 조장하는 도루묵 법률이 돼버렸다. 심지어 헌법재판소는 학교에서 200m 떨어진 성당 지하에 설치하는 봉안당도 대학생의 정서를 해칠 수 있다는 취지로 판결할 정도다.
■ 가톨릭교회가 개혁 선도할 때
가톨릭교회는 죽음에 대한 인식과 고인을 모시는 예절에서 다른 종교에 비해 월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연도예절과 연령회원의 봉사는 선교에도 큰 성과를 올리고 있다.
거기에다 묘지와 봉안당을 설치하는 등 추모시설의 규모도 크고 다양하며 우수한 관리를 하고 있다. 반면 신자들이 화장을 하는 데는 소극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국가정책으로 권고하는 화장에 대해 사목지침 제130조는 ‘장사는 매장을 함이 원칙이나 화장 또는 기타의 방법도 허용할 수 있다’로 규정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2009년 서울대교구 사제평의회가 ‘주교를 포함해 사제들의 묘지가 만장되면 순차적으로 화장을 해 봉안당에 모실 것’이라는 발표는 전향적인 변화로 보인다.
그렇다면 기왕에 국가정책이 화장을 권고하고 있으나 법령과 정책미비로 화장장설치 자체가 부진한 점을 고려하여 ‘법률이 허용하면 교회 공동묘지 안에 화장장(약식)을 설치할 수 있고 묘역을 정비해 공원으로 복원할 수 있다’는 입장 정리를 하면 어떨지 궁금해진다.
나아가 교회가 기피대상인 추모시설 설치와 개선방안을 적극 연구하고 국회와 정부에 권고하여 장사법과 제도개혁을 선도하면 교회 위상에 걸맞고 시대적 요구에 부응한다는 생각이다. 봉안당과 묘지를 분양하고 다른 분야에 참여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연구를 통해 국가법률로부터 교회시설 설치와 예절의 특수성을 인정받고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또 하나 제안은 포항제철 산하 전 교육기관에서 장묘문화교육을 실시해 성공한 사례를 거울삼아 모든 가톨릭학교와 기관에서 추모문화 교육을 실시하는 방법을 고려해 보는 것이다.
끝으로 이번 추석을 교회가 추모문화 개선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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