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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식(connaissance) 과 재인식(reconnaissance)
-- 낡은 세대와 달리 사유하는 젊은이들 --
표상의 인식은 겉모습에 대한 오랜 조합과 종합의 과정에서 이루어진 인식이다. 여기서 종합이란 새로운 것을 보태기보다, 같은 대상을 다시 재현하여 흐릿해지려는 대상을 다시 조합하여 재현하는 방식에 가깝다. 이런 인식은 한 인물에 관해서, 그의 살아온 겉모습을 알고서 판단하다가, 그의 뒷면(배경들)과 내면을 다시 알게 되면서 실망하는 경우들이 있다. 겉으로는 백성을 위하는 척하지만, 뒤로는 사익을 취하는 인물들을 얼마나 많이 보았는가를 생각하면 알 수 있듯이, 사람은 겉모습과 속마음이 다르다. 천길 물속은 잴 수 있어도 한 길 사람 속은 잴 수 없다고 한다.
이에 비해 재인식은, 과거의 현상과 지금의 현상의 겉모습의 충첩이 아니라, 당시의 사건들의 관계와 그리고 과정의 연관들, 그리고 현재의 관계들과 연관들에서 아직 주의 받지 않은 실재에 대한 재인식이다. 이런 재인식은 과거의 현상에 대한 재검토에서 중요했지만 배제된 부분을 복원하고 그와 연관들과 과정이 수면아래로 가라앉은 부분들과 현상에서 배제된 부분들에 대한 재검토를 포함하여 현재의 현상들에서 이 수면 밑의 부분들이 재생되거나 또는 새로운 생산으로 현실평면위로 올라와, 현상의 동일성에 비해 새롭게 조명되고 성찰되는 측면을 재인식하는 것이다. 재인식은 과거의 동일반복이 아닐라, 과정의 이질반복에 있다.
인습에 젖은 사람들의 삶의 양식이, 즉 일반적으로 보수라고 일컫는 사람들의 태도가 존중받았던 경우에는, 생산 작업 과정의 동일성으로 이루어진 시대에서, 기나긴 농업사회에서 과거의 경험의 존중이었고, 산업사회 250여년 동안에도 과거의 노동에 대한 숙련과 내공의 존중에 있다. 그런데 산업화 과정 중에 등장한 사회학과 정치경제학의 성립이래로 사회체에서 조직화의 변화는, 토지와 기계 산업과 다른 면이 많다. 우선 사회 조직에서 인민이 자기의사를 국가 권력에 위임(양도)하지 않는 공동체의 모임 또는 결사체(la société)도 있고 자기들의 이익을 주장하는 결사체(정당)들도 있다. 정치경제학에서 생산도구의 장악(전유)에서 자본가의 주도로 모인 이익 집단의 주식회사(la sociét)의 성립도 있지만 이에 저항하는 이익의 분배를 주장하는 프롤레타리아의 노동조합도 있다. 어느 모임이든 결성체를 이룬 사회체들이 성립한다.
사회체의 형성 과정에서 크게 분할되는 두 사회체는 전혀 성격이 다르다. 하나는 인민의 평등과 자유를 내세우고, 다른 하나는 소수 집단의 이익 전유의 확장이 국가의 부의 확장이라고 주장하였다. 전자의 총생산에서 잉여이익은 인민의 삶에 토대에 쓰자고 생각하는 방식이 있고, 후자에서 잉여이익을 생산물을 생산도구를 지배한 자본가에 있다고 하는 쪽이다. 전자의 사유에서 리베르떼르(libertaire, 인성자유주의)로, 후자의 사익추구 집단에서 이베랄(le liberal, the liberalist, 상업자유주의자)로 분류된다. 전자에서 국가 권력의 남용과 억압에 항의하는 무권위주의자(anarchiste),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들이 나오고, 후자에서 국가이익 우선이라는 국가주의자, 이에 국가의 공권력에 의지 하여 자본을 축적하는 자본주의자, 상업의 이익, 자본의 이자를 보장하려는 자유주의자로, 그리고 신자유주의자로 이어가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인민의 양도할 수 없는 자유의 문제의 등장은 1789년 프랑스 대혁명에서 시작된다고 한다. 하나의 국가 속에서 계층이 귀족과 성직자, 평민과 생산자, 농노와 노예들이 있다고 여겼다. 혁명의 수행과 반동들의 재집권을 거치면서, 그리고 산업화과정에서 상층(부르주아)과 심층(프롤레타리아)로 양분화 현상을 보게 되는데, 이는 사회적 분업에서 잉여이익의 사적으로 갖고 가느냐, 아니면 그 많은 잉여이익을 인민의 삶에 토대를 조성하는 데로 써야 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이런 계급적 사유는 20세기에 거대한 두 개의 사회주의 국가를 만들었고, 자본주의 국가는 이들을 단죄하는 방식으로 크리스트교의 유일신 원칙에서 배제의 방식을 이용했다. 제국주의는 상업자본주의를 선한 국가로 여기는데 비해, 사회주의 국가를 악으로 규정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나라 북녘은 사회주의로 남녘은 자본주의로 길을 가고 있다. 남녘은 이 이분법적 대항구조를 이용하여,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이명박, 박근혜, 윤석열에 이르기까지, 이들이 권력을 통한 착취와 부정의 재산형성으로 민중의 지배하였고, 이에 저항 항쟁하는 이들을 빨갱이로 몰았다. 마치 미국제국주의가 사회주의 국가인 소비에트와 중화인민공화국을 악의 축으로 몰 듯이 말이다. 세계의 민중들의 몸에 맞는 규격으로 도구 사용의 기준이 일반화의 길을 걷듯이, 1953년 이래로 디지털 시대이래로 전자산업과 정보기술의 시대에 이르면서 자본 제국과 다른 사회체들 사이의 양극의 경계선이 흐릿해지면서도, 이 정보기술(IT)의 표준화의 도구를 어느 편이 장악하느냐에 따라 이 도구가 무기로서 작동한다는 것도 이 양편은 잘 알고 있다.
- < 지나가는 표현으로 사농공상에서 상(商)을 아래로 두고 통제하고자 하는 중국은 화이부동(和而不同)으로 인민의 공화(共和)로서 실현하려는 노력이 한 방편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중국은 산업의 주요 방향에서 상공(商工)이라 하지 않고, 전통의 방식에서 공상(工商)이라 한다고 한다. 전통 사회와 달리 우리나라 산업화 과정에서 재벌 금권국을 만든 것은 미국이 식민지를 지배하는 통치방식이며, 상(商)공농사로 순위를 바꾸어 놓았다. 금권국을 참주제의 모방체로 바꾸었던 군사정권, 그 다음으로 다시 금권국(이명박, 박근혜)가 진행되었는데, 그나마 위악의 요소를 지닌 법률제도라는 이름으로 다시 참주제를 바라는 집단이 일본의 경제지배하에서 과두제로 만들려고 하여, 표면에서 현상적으로 드러난 윤석열김건희 집단이 나타난다. 금권을 장악한 과두제의 실행은 반역적 12.3 친위 쿠데타라는 모습으로 내보였다. 민주제를 바라는 인민의 강도가 더 센 것으로 드러났다. > -
- < 20세기의 세계사 재편과정과 철학적 사유의 분류를 이야기 하면서, 우리 한반도 역사 속에서 반쪽만을 이야기할 수 밖에 없어서 안타깝다. 그럼에도 지구는 둥글고, 우리의 현대사는 세계사 속에서 위상을 찾고 있는 것이지, 일본 제국주의와 미국의 자본 제국의 과정 속에서 삶의 양식을 찾는다는 것은 한 쪽 눈으로 살아가는 것 밖에 되지 않는 다는 것을 젊은이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다. 현실은 저 넘어 갈 수 없지만, 세계사 속에 인류가 걸어왔던 길을 주의 깊게 보면(재인식하면), 젊은이들의 현재와 다음에 할 일들이 보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노력과 내공 쌓기는, 어느 나라 어는 인간들에서 마찬가지로 20대에서 40대 사이에 이루어진다. 열여덟 젊이는 남북이 잘 보이지 않을 때, 세계사 속에서 과거에서 현재로 과정을 되새김질도 하고 대조도 해보고, 새로이 생각을 만들어보기도 하면서, 살아갈 날이 많은 과정들을 새롭게 창안하기 바란다. 일본이 심고 미국이 우리나라에서 가꾸고 있는 리베랄리스트와 위마니스트가 아니라, 8천만과 72억을 재인식하여 사유하는 리베르떼르와 위마니떼르는 잊지 않고서 말이다. (57WKH)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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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에서 재단[절단, 자르기]하여 분할의 방식에서 제반 과학들의 성립이 있다고 생각하는 부류와 달리, 생성과 과정에서 학문의 방식이 달라진다고 생각하는 부류가 생겨난 것은 서양 사상사에서 “빛의 세기”에서 자연에게 자치성과 자율성을 인정하는 18세기 중엽에서였다. 인류는 이 시기쯤에서 학문의 조직화의 여러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겨우’ 깨달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겨우”라는 말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구시대에 지적 사유의 전제에 대해 이제 묻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인간은 당연히 자연에서 제일 귀한 존재이고, 첫째가는 존재이며, 자연을 이익과 편리를 위해 마음대로 다룰 수 있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럼에도 한편으로 고대 이래로 자연의 섭리와 필연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떨치지 못했다. 인간도 다른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일정기간이 지나면 삶의 마감한다. 게다가 인간이 태어나면서, 생이지지라든 하늘로 부여받았다고 하던, 인간이 지식과 역량을 지녔다 것에 대해서 의문의 들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오만은 인간이 세상에 우월하고 우위를 차지한다는 선전제를 버리지 못했다. 이 선전제를 묻지 않는 것을 악순환이라 부르고, 이것이 지배자들의 망상(요즘 표현으로 뇌피셜)이었다. 이것을 어린 백성에게 세뇌시켜, 지금은 좀 괴롭고 어렵지만 다음에(또는 다음세상)라는 아편을 퍼뜨렸다. 이런 극약처방이 잘 듣지 않게 되면서, 배제를 수단으로 종교재판, 마남사냥, 역적, 빨갱이 등의 수법으로 몰았다. 이렇게 죽어간 사람들 중에400년이 지난 아직도 복원 안 된 브루노를 생각하면, 이 배제의 사유, 이항 대립의 논리학에서 배중률의 사고를 하는 자들이 얼마나 사악한 지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논리를 전개하는 이들은, 생물학에서도 사회학에서도 그리고 정치경제학에도 같은 사실들을 다루지 않는다고 하면서, 적반하장으로 범주가 다르기에 범주착오를 하지 말라고 한다. 그런데 이들은 이 배중률의 논리학이외 다른 사실들의 학문에 적용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거꾸로 그 논리학에 적용되지 않는 것을 먼저 규정하고, 그 기준으로 진리와 거짓을 판단하는 그들 자신들이 사악한 무리라는 라는 것을, 그들은 애써 모른 체 한다. 이렇게 애써 모른 체 하면서 국가 권력과 종교 권세에 포획된 자들이 언어분석 철학자들이었다.
이런 자르기의 사고에서는, 잘라서 한쪽은 진리이고 다른 쪽은 거짓이라는 것이다. 이런 사고는 현상의 조합이 맞고 그 조합에 들어있지 않는 것은 틀리다는 현상 또는 재현의 사고이며, 여기에는 생성과 과정의 이야기는 배제 또는 배척되는 것이다. 이항 대립적 사고가 여와 남에게도 적용되면, 여남의 상부상조의 관계조차 적대적으로 만든다. 이러한 사고가 광기라고 말한 철학자는 푸꼬였으며, 이를 넘어서 그 광기가 파라노이아(망상, 뇌피셜)라고 말했던 철학자는 들뢰즈이다. ... 너무 멀리까지 이야기를 진행하는 것 같다. 파라노이아의 사회체 실행이 프러시아의 비스마르크가 후진 산업화 과정에서 노동자 탄압에 있다는 것을 언급하면서, 독일 철학을 읽을 때 두 가지를 조심해야 한다고들 한다. 하나는 유일신앙의 선전제에 투항하였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투항의 정당성을 위해 인성자유주의 발현을 체제적으로 자르기(탄압)를 했다는 것이다. 후진 산업화과정에서 독일이 공산주의 배격을 얼마나 깊이 실행했던가를 알아야 하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배운 일본 제국주의가 한반도 식민지에서 어떻게 실행했고, 그리고 이승만에서는 일제의 경찰과 법관을 이용하였고, 박정희는 더욱 심화시켰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 젊이들이 이런 과정을 재인식할 시기가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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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 시대에 아테네 이전 시대에 이미 지중해 해안 도시국가들에서는 식민지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 형성에 대해 서양 사상가들은 식민지 건설이라고 하면서 원주민에 대해 침묵하고 있었다. 자신들이 타민족을 야만인(바바리안)이라 부르면서, 자신들이 타민족보다 우월하다는 상위의식을 가졌던 것이리라. 그러나 세계사는 그들의 과거에서 문화보다 훨씬 우월했던 문화를 지닌 이집트의 나일강유역의 문명, 그리고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강의 유역의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있었다는 것을 안다. 이런 과거시대로 부터 제대로 전승된 문화적 차이들을 인류학적으로 또는 역사적으로 연구된 것도 19세기 중반이었고, 이 중반도 유럽문화의 우월성이 지배하고 있었다. 이런 유럽 우월성 속에서 인종적 편견이 들어있었고, 또한 종교적 배타주의와 백색우월주의가 작동하고 있었으며, 더 나아가 지구상에서 인간중심주의적 사고가 맥을 잇고 있었다.
17세기 남미의 정복, 18세기 북미 인디언 잘라내기 등은, 배중률을 진리로 삼는 유일신앙과 국가권력의 야합이었다. 이런 방식을 미국이 19세기에 일본을 제압하였고, 일본은 재빨리 아시아를 벗어나 서구화하면서 그 방식을 1894년에 우리나라에 원용하여 덤벼들었다. 이런 역사적 과정에서 동일성의 사고가 세계를 지배할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이런 동일성 사고의 대상은 철학적으로 현상(재현)이지, 실재와 사건에 대한 사유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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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와 중세에서 상식을 통한 현상의 인식은 수학적 원리와 언어적 논리에 의해 굳건한 인식 또는 지식으로 여겼다. 그러나 이런 지식이 도덕과 제도를 고착화시키는데 영향을 주었고, 또한 권력과 신앙의 틀(가두리)을 만드는데 기여했다. 지식의 수준이 오관을 통해 이루어진 것을 넘어서기는 천오백여년을 지나고서도 여전했다는 것이 증거이다. 이런 역사적 과정에서 오관의 종합으로서 공통감각(상식)이 사물들과 사실(사건)들을 단순하게 해결했다고 여겼으나, 한편으로 이 해결에 이익을 보는 상층이 있었고, 어느 경우에도 이익과 연관 없이 그저 살아가는 평민과 농노(노예)들이 있었다. 이런 시기의 역사에서는 상층의 인간이 인간으로 대우받았고, 나머지는 요즘도 유행하는 개돼지 취급을 받고 살았다.
그러나 태어나는 사람은 누구나 배워가며 세상을 산다. 이런 시기에 교육은 상부의 것이었고, 하부 대중은 먹고 사는 일에 종사할 뿐이다. 이 먹고사는 일이, 철기시대의 유물이었다고 하지만, 인간의 몸이 도구에 종속되어야만 생산성을 높일 수 있었다. 산업화 시대의 기계의 복잡성에서 이 도구에의 접근, 도구와 한 몸이 된다는 것은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 요즘 운동선수는 몸을 도구로 삼아, 몸을 발달시키는 일을 어린 시절부터 종목에 맞게, 몸을 만들기를 십 수년을 거치는 것과 같다. 삶에 도구와 제도에 맞는 몸 대주기 또는 몸 맞추기는 십 수년을 계속 해야 한다. 이 십 수년이 학문적으로 열여덟 정도까지이다. 오관의 상식이 공통감각으로 서로 상부상조할 수 있는 방식을 배워서, 어깨 너머든 정규교육이든, 알게 된다. 그리고 작은 공동체를 넘어서 세상에 나가는 나이에, 사회 제도에 대해서도 공통감각으로 사물과 사실을 이해하였듯이, 제도 속에서 기능과 역량에 대해서 인식하게 된다. 이런 인식은 공통감각(sens commun)을 넘어서 양식(bon sens)로 나간다고 한다. 이런 인식의 대상들이 틀(가두리)에 맞는 현상들로부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수학에서 공리와 정리 그리고 그것들에 따른 증명과 새로운 사실들에 확장은 인식을 확장하면서, 정확성과 확실성을 보증해 준다고 여긴다. 르네상스 시대에 수학의 체계는 지식의 확장일 뿐만 아니라, 물리적 사실에 적용에도 확장을 가져다준다고 보았다. 이런 방향의 인식은 관념의 인식임에도 물리적 현상에 적용가능하며, 나아가 거의 무한히 전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전 지구적 통일을 넘어서 전 우주적 통합을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지식의 체계화는 사물과 달리 기호(symbole)로 이루어지고, 게다가 대수학의 발달은 이런 기호들을 함수 계산할 수도 있었으며, 또한 정해지지 않은 부정(否定) 기호를 불러들여(부정방정식) 세상에 알 수 없는 요소들에서, 현상의 한 부류에서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다른 사물들과 연관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고 여긴다. 수학적 기호와 전개를 통하여 세상에는 알 수 없는 것이 없다고 여기는 생각이 표상에 대한 인식이다. - 오만이다. 21세기에도 실재에서는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다고 한다. 45억 광년의 안드로메다 성운의 별들의 생성이 지구가 속하는 은하계와 같을 것이라는 것을 착각이다. 실재로 안드로메다 성운만이 아니라, 은하계의 별들의 이야기를 겨우 한쪽 구석의 태양계도 다 알지 못하고 있어서 뉴턴의 법칙을 통해 설명했던 명왕성이 태양계에 속하지 않는다는 가설이 나온 것도 20세기의 이야기이다.
그러한 기호에 대한 학문은 또는 표상의 가두리에서 체계를 구성하고 구축하고서, 현대에 대부분의 문명국가에서 교육체계를 만들었고, 말하자면 열여덟 고등교육에서 수학교육의 방식은 기호의 인식과 적용으로 세계와 우주를 다 아는 것 같은 기분에 빠지게 한다. 이런 교육적 인습이 착각에 빠지게 하는 세뇌와 같다. 즉 이것도 파라노이아의 세뇌이다. 이런 수학교육과 비슷한 방향으로 단순한 용어들에서, 사물과 사실들에 맞는 개념화를 거쳐서, 수학의 추상화와 닮은 언어의 추상작용에 이르러 관념의 형성과 결합방식에 대한 습득과 이해를 하는 것도 열여덟이다. 수학과 달리 언어는 적용과 응용의 방식이 많은 부분에서 공통부분이 있지만, 수학의 상징(기호)화에서 체계와 달리 언어의 기호(철자든 음소든)는 입에서 나오는 생리학적 조성(구도) 속에 있으며, 몸은 살아있는 영토와 과거의 삶의 영역과 더불어 인연연기가 길어서, 수학처럼 기호(상징)화하여 인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그럼에도 수학의 상식화를 넘어서 양식화의 길로, 언어도 같이 나란히 평행 또는 대칭으로 갈 것으로 여겼다. 이런 ‘나란히’라는 생각은 사물과 사실들의 적용에서 수학 기호(상징, le symbole)과 언어 기호(표기, le signe)를 배열하고 배치하는 것이 거의 비슷해 보였기 때문이다. 20세 전반에 앵글로 색슨의 언어분석이든 프랑스의 구조주의든, 인식에서 이런 배치의 평면이 공통이며, 또한 배열의 방향이 같을 것이라고 여겼으나, 정신분석학의 구조와 틀을 깨는 멜라니 클라인의 유아시절(1살까지)의 실재적 삶과 연관에서, 구조가 먼저 있는 것도, 원리와 논리가 먼저 있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관점은 이미 19세기 후반에 여러 방향에서 나왔지만, 굳건한 한 방향의 인식이, 인류의 삶에 인습(또는 망상)처럼 사유 방식에 박혀 있어서, 그 인습을 깨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지금도, 프로이트와 라깡을 잇는 인습에서 파라노이아를 스키조처럼 다루는 것도 마찬가지 인습이다. 윤석열을 파라노이아의 극치이지 스키조가 아니다. 스키조는 다른 사유의 방식이 존속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윤석열 같은 이는 파라노이아는 다른 사유를 빨갱이 괴물 또는 고문 파멸해야하는 현존자들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기존의 교육의 세뇌를 깨는 것이, 즉 하나의 방향(bon sens, 봉상스)과 다른 방향들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소식이, 역사적으로 예술에서 먼저 나왔다고 한다. 물론 철학은 끊임없이 다른 길이 있었다는 것을 제시했지만, 사람들이 이런 학문을 재인식하기에는 마남사냥과 공포에 질려서 경계를 넘어가지 못했다. 그런데 이런 다시 생각하기 또는 재인식하기에는 19세기 후반에 와서야, 대혁명을 거치고 자연주의 화가들이 활동하고 나서야, 시대를 달리 살아가야만 했다. 그런데 방향의 달리하는 하나는 회화에서 인상주의 회화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이들은 상층의 살롱에서 벗어나, 도시(제도)의 삶에 벗어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다른 하나는 단편 소설에서였다. 이 둘은 인민들 속에서 퍼졌다.
이런 단편 소설에서는, 언어에서 긴 역사이야기 같은 주인공(왕조)을 만드는 소설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시대의 현장에서 여러 인간들의 관계들 사이에서 이야기하지 않은 부분들이 많다는 것을 느끼고, 관계들의 조성과 순열조합에서 말해지지 않은 경우의 수를 이야기하였다. 그 경우의 수가 전개되는 과정은 주목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전개되고 있다는 것을 표현한다. 좀 더 말하자면, 세상사에서 또는 제도 안에서 말해서 안 될 부분과 같은 추억들과 연관된 기억의 이야기는,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알렸다.
다른 한편 음악에서 새로운 전개도 이루어진다. 니체가 바그너를 피판하듯이 베토벤에서 바그너의 장엄하고 귀족들의 음악이 음악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들뢰즈가 슈만의 음악을 끌어내면서 애기를 달래는 자장가 노래, 어린이들의 종알거리는 노래, 소녀들의 가랑잎이 굴러가도 까르륵 거리는 노래들이, 교회의 엄숙한 음악, 국가의 제도의 장엄함의 노래와 달리 세상에서 인간의 행복과 환희를 가져다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솔직한 삶과 배제되었던 내면의 의식이 이제 표면의 표상처럼 겉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민중 음악, 대중 사건, 인상 회화 등만이 아니었다. 수학에서, 물리학에서, 화학에서, 생물학에서, 사회학에서, 심리학에서도 달리 방향을 잡고 배치와 배열을 다루어보니, 우주, 세계, 영토, 공동체를 인식하는 방법이, 19세기 중반까지 에서는 인습과 신앙의 세뇌 속에 있었던 것이라는 것이 점점 밝혀지고, 백성들의 인격성은 이들에게 세뇌당하여 종속되어 있었다고 여기면서, 인민이 자기의 의지를 양도하지 않은 자유를 말한 루소의 이야기는 새로운 공동체로서 무권위 주의와 공산주의를 성립시키는 선도적 역할임을 깨닫게 되었다. 물론 19세기후반에 맑스의 산업화 속에서 그리고 20세기 초반에 레닌이 식민지 착취에서 새로운 역할을 했었다. 그러나 국가(권력), 교회(권세), 지식(권위)의 세 패거리는 자신들의 지위를 보장하려고, 예속의 인민들을 착취하며 명령하고 지배하는 방식으로 한 방향을 놓지 않았다. 이 방향(양식)의 과도함이 파라노이아이고, 이런 세뇌가 심하여 윤석열과 같은 집단이 세 패거리와 야합하여 쿠데타도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나로서는 이들이 야합과 탐만치의 일치가 정복(폭력)에 의한 하나의 세계, 즉 전지국의 지배를 만들고자 하였다고 본다. 20세기에 그들의 세계 통일이라는 관점에서, 두 번의 전쟁은 지배체제의 재편이었다. 그 피해를 입은 것은 제3세계들이었다. 그 와중에 미국이 한반도 남녘을 지배하며, 식민지에다가 명령의 체계를 심으려 했다. 그 점령군 포고령에 모든 문자의 기준을 영어로 한다고 하였던 것도 배중율의 적용의 한 방편이었다. 이런 문자의 지배는 수학의 원리와 논리학의 체계의 지배(봉상스)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정복자의 문자(언어)와 일치하는 현상만을 지식으로, 또는 사회에서는 판단으로, 법률적으로 문자를 통해 심판으로, 식민지 지배를 만들려고 하였다. 그리고 지배방식에 따라서, 정복자의 탐만치와 그에 부역하는 자들 또는 나라를 팔아먹으려는 매판자들은 이에 벗어나는 행동과 사유를 하는 자들을 마남사냥하는 것을, 불법감금과 고문을 서슴치 않았다. 이를 실행하기 위해 일제가 남긴 보안법을 그대로 유지하고 강화하여, 광복후에는 다른 사유를 하는 자들을 암살하고, 헌법과 법률을 넘어서 무단으로 폭행과 고문을하는 것이다. 정복자에게 자르기는 언제나 있어왔다. 이에 루소가 말하듯이 권력과 권세에 자유를 양도하지 않는 사유, 그리고 저항이 있었듯이 우리에게도 저항과 항쟁의 있어왔다.
그럼에도 왜 이런 마남사냥과 처벌에 일반 사람들은 순종하는가? 아니 예속에 익숙해지는가? 이들이 예속과 굴종 속에서도 살아야한다는 삶의 애착 때문만이 아닐 것이다. 오랜 역사적 과정에서 세뇌되어 인습에 젖은 양식의 사유에 대한 저항과 다른 길의 사유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나는 가끔 김종서의 부관참시, 조광조의 사약이 남긴 추억의 상처(트라우마)가 크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를 벗어나는 노력에 비해 일본과 7년 전쟁, 청나라와 두 호란에서 국토와 인민이 피해져서 달리 생각할 겨를 없었다. 상층은 사적이익을 보존하기 위해 대명(大明)의 모화사상에서, 개화기에는 일제로 갈아타고, 광복에서 미제로 갈아탄 과정에서, 인민이 자각할 여지가 없었다고 본다. 인민이 입말로 공식적으로 사유하기 시작한지 79년인데, 우리 입말과 자료가 배치와 배열을 갖추기도 전에, 새로운 과학기술들(IT, AI, 블록체인)이 닥쳐서 이를 습득과 훈련하지 못하는 늙은 세대들이 밀려나고, 달리 사유할 수 있는 젊은이의 세상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젊은이들이 이런 과학기술이 편리와 풍요를 가져다준다고 생각하기보다, 역사는 기술의 도구가 곧 무기로 바뀌어 제국지배체제의 강화를 가져온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새로이 살기, 새로이 말하기, 새 세상 만들기, 새로운 생성을 하는데, 노력하고 내공을 쌓는 과정을 겪어야 할 것이다. 이 과정은 앞으로 살아가야 할 젊은이들 사이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게다가 봉상스의 잘려진 현상, 잘려진 허리만이 아니라, 사건의 순열조합의 다양성과 복잡계와 같은 사건들의 조성에서 배치와 배열을 달리하는 조직화를 이루어야 할 것이다. 이 조직화는 젊은이들은 자치와 자율성, 그리고 자발성에 의해 자유를 누릴 것이다.
새로운 조직화, 새로운 세계화는 사유의 깊이, 현실의 확장에서, 함께 다발을 이끌어가는 방식을 갖는 이들과 더불어 생성해간다, 그 확장에는 노력이 필요하다. 내공의 깊이 더불어 재인식을 통하여 현실의 확장을 만들어갈 때, 봉상스의 광기(파라노이아)가 여러 방향들 중의 하나라는 것이 당연히 여겨지면서, 그들의 탐욕과 오만, 배제에 의한 치졸한 행동방식들이 사라질 것이다. 상부상조, 양도하지 않은 자유의 자연권의 실행에는 사적이익의 탐닉자들이 설 자리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사익을 탐하는 그들이 당연히 사악한 자로 반역자로 몰리는 시대일 것이다.
인민이 최종심급이라는 용어가 나온 지 200여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유효하며, 젊은이의 저항은 인민의 중요한 덕목이다. 작전권도 없는 준식민지 나라에서 윤석열은 인민에 군림하려는 파라노이아 망상에 사로잡힌 자이다. 인민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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