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길거리의 아무나 잡고 이렇게 물어보자! 아마도 열에 아홉은 ‘실패’라고 답할 것 같다. 만번의 실패가 아니라 ‘만번의 효과없는 방법’을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토마스 에디슨. 누군가 꾸며낸 말이라고 하지만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고 했다는 나폴레옹 같은 위인은 아마도 다른 반대어를 댈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스타트업 벤처에서는 극명하게 바뀐다. 스타트업의 방법론인 ‘린 개발 사이클’에서는 창업의 궁극적 목표는 ‘실패를 통한 학습경험’에 있다고 강조된다. 즉, 거듭되는 실패를 통해 고객이 기꺼이 지갑을 열고 꾸준히 구매하는 혁신 제품과 참신한 서비스를 찾아내는 일이 창업의 핵심이라 간주한다. 학습이 완성되면 벤처의 딱지를 떼고 일반기업에 진입하게 된다. 그러므로 벤처 기업가에게 ‘성공의 반댓말은 실패가 아니고 학습’ 일 수 있다.
스타트업이 아니라면 ‘실패란 없다. 학습만 있을 뿐’이라는 이야기는 언감생심이다. “월드컵은 경험하는 자리가 아니다. 증명하는 자리다”고 설파했던 이영표 해설위원의 말처럼 공공기관·기업에게 학습과 연습은 남의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공기관과 기업은 새로운 연습을 시도하고, 때때로 벌어진 실패학습은 쓰라린 사회적 비용으로 고스란히 시민의 고통이 되곤했다. 이것이 정부·시민사회·대기업에게 보다 높은 사명의식과 도덕수준을 요구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부에 의한 실패학습의 일례를 보자. 1980년대 중반부터 불기 시작한 신자유주의적 글로벌 경제체제의 도입이 그것이다. 신자유주의적 경제체제의 강화는 관료적 정부정책의 비효율성을 부각시켰다. 이에 따라 중앙집권적 정부에서 작은 정부로의 전환과 민영화로 특징되는 ‘신공공관리’ 체제가 도입되었다.
시장경제 활성화를 촉진하려는 이러한 자본 친화적 정책 변화는 부분적으로 경제적 부흥을 가져오기도 했지만, 사회 약자를 위한 복지 프로그램과 사회 안전망의 상실도 발생시켰다. 그 결과 사회 양극화는 가속되고 계층 간의 갈등은 증폭되었다. 이런 현상을 행정학자들은 ‘정부 실패’로 말한다. 나는 출근길의 미어 터지는 6량 급행열차를 이용할 때 마다 사회간접자본을 민영화시킴으로서 격게되는 정부실패를 체감한다.
게다가 기업자본의 과도한 차입경영으로 발발한 1997년 IMF 외환위기는 사회의 운명을 온전히 시장에 맡길 때 초래될 ‘시장실패’의 결과를 여실히 보여준다. 또한 2000년대 초 미국의 엔론과 월드컴 스캔들로 밝혀진 회계부정 사건은 전 세계적으로 기업의 내부통제구조와 조직 거버넌스의 적정성에 경종을 울렸다. 이러한 기업문제는 전술한 정부실패, 시장실패와 비슷한 언표처럼 ‘기업실패’로 부를 수 있다. 그 결과 21세기 초엽 부터 정부·시장·기업실패 현상이 반복되지 않도록 만드는 통제체제의 해법이 새롭게 요구되기 시작했다.
1990년대 말부터 정치·행정학 분야에서는 정부실패의 솔루션으로 ‘굿 거버넌스’ 개념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정부실패의 영향이 시민단체의 정책참여를 촉발시켜 수평적 ‘네트워크 거버넌스’라는 새로운 바람을 불러 일으킨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정보기술의 발전과 인터넷을 통한 빠른 정보전파도 원인이 된다.
그러나 보다 높아진 시민의식과 시민사회의 능동적 정치참여, 그리고 협치와 동일시되는 거버넌스의 대두에 더 큰 이유가 있다. 정치·행정학 분야의 학자들은 네트워크적 거버넌스를 과거의 관료적이고 중앙집권적 정치체제의 대안으로 간주하며 이를 뒷받침할 이론적 토대를 만들고 있다. 일례로 진화생물학을 사회적 공진화(co-evolution) 이론으로 수용한다. 대자연에서 발견되는 자기조직화(self-organization) 현상으로 시민에 의한 ‘미시권력’이 최적화된 사회질서를 만들어 가는 네트워크 거버넌스 체제를 상정한다.
한편 시장실패·기업실패 해법의 하나로 2002년 7월에 발효된 미국정부의 사베인스-옥슬리법(Sarbanes-Oxley Act: 이하 SOX)을 예로 들 수 있다. SOX법의 302조(재무제표에 대한 기업책임)와 404조(내부통제의 매니지먼트 평가)에서는 기업 재무제표의 정확성뿐만 아니라, 이를 보증하는 내부통제절차의 적정성에 대하여 CEO가 확약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EU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시장실패를 방지하기 위하여 은행의 금융 리스크 기준선을 통제하는 BASEL II, III 협약이 발표되었다. 그리고 보험업계 역시 SOLVENCY II 지침을 통해서 위험기반 지불여력에 대한 국제적 기준이 강화되고 있다. 거시적 거버넌스를 이야기 할 때마다 SOX, BASEL과 같은 명칭이 반드시 거론되는 이유이다.
'거버넌스(governance)'는 배의 키(방향타)를 조정한다는 라틴어 ‘gubernare’에서 유래했다. 정부를 뜻하는 'government'와 어원은 동일하다. 인공두뇌를 의미하는 사이버네틱(cybernetic)도 같은 어원이다. 방향타, 정치, 거버넌스, 인공두뇌라는 단어 사이에 무슨 관계성이 존재할지 생각해 보았지만 나는 아직 명확한 맥락을 설명할 준비는 되어 있지 못하다.
거버넌스는 행정학에서 여러 가지로 번역되고 있다. 이를테면 국정관리, 국정관리체계, 신공공관리, 통치양식, 국가경영, 협력적 통치, 네트워크적 관리, 망치, 협치, 공치 등 다양하다 (이명석, 2008). 학자들은 번역된 여러 단어들이 영어 본래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동의하고 있다. 그러한 이유로 원어의 발음대로 '거버넌스'로 하자는 의견이 지금까지 우세하다.
이러한 거버넌스에 대한 멘탈 모델이 정치학, 행정학, 경영학, 경영정보학 도메인에서 약간씩 차이가 존재한다. 정치 행정학에서 거버넌스는 공동선을 지향하는 다양한 이해당사자간의 ‘네트워크적 거버넌스’를 상정한다. 키워드는 ‘연대’이다. 경영정보학에서 ‘IT 거버넌스’는 비즈니스 전략과 정보기술 간의 합리적 ‘연계’를 통한 효과·효율에 집중한다. 경영학 분야에서 ‘기업 거번넌스’는 이사회를 중심으로 한 계층적 모형에 천착하면서 의사결정의 투명성, 조직의 지속가능성, 그리고 경영자의 책무성에 집중한다.
이처럼 기업은 여전히 조직을 거버넌스계층, 관리계층, 운영계층의 피라밋 구조로 보는 관점을 깨지 못했다. 예전에는 전략계층으로 불렀던 경영층을 거버넌스 계층으로 바꿔 부를 뿐이다. 그러므로, 경영학 도메인의 거버넌스는 앞서간 정치·행정·사회학의 ‘연대와 연계’와 같은 거버넌스의 특징적 DNA를 물려받지 못했다. 기업을 둘러싼 이해관계자를 아우르는 네트워크적 거버넌스의 모형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기업 조직이 봉건적 경영체제의 틀을 깨지 못한 이유이다. 다만 일부 기업이 ‘홀라크라시’라는 네트워크 거버넌스의 초기 모델을 시도하고 있을 뿐이다. 기업 거번넌스에 대한 경영학자들의 심도깊은 ‘네트워크적 거버넌스’ 의 연구 발전을 기대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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