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 마리아 신심
(1)
성공회 · 천주교일치위원회(ARCIC)는 1981년 <교회 안에서의 권위Ⅱ> 보고서에서 성모 마리아 신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중요한 합의를 이룬 바 있습니다.
(1) 우리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중재자는 예수 그리스도뿐이시며 이 확증을 흐리게 하는 어떠한 마리아의 역할에 대한 해석도 거부한다.
(2) 우리는 마리아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이해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한 교리에서 분리될 수 없다는 인식에 동의한다.
(3) 우리는 성모 축일들을 지키고 모든 성인 중에 성인으로 존경함으로서 성육신하신 하느님의 어머니(Theotokos), 마리아의 은총과 독특한 소명에 대한 인식에 동의한다.
(4) 우리는 성모 마리아가 우리 구세주의 어머니로서 하느님의 은혜로 준비되었으며, 구세주를 통해서 구원받고 영광 속에 받아들여졌다는 것에 동의한다.
(5) 우리는 마리아가 성육신 이후와 마찬가지로 그 이전에도 하느님의 교회의 예언적 표상으로 인식될 수 있다는 것에 동의한다.
동시에 이 보고서는 두 교회 사이에 여전히 존재하는 차이를 밝히고 있습니다.
(1) 성공회 신자들은 성모 무염시태와 승천교리가 말하는 상세한 진술이 성서적으로 충분히 지지될 수 없다고 생각하여 특별한 문제를 야기한다.
(2) 많은 성공회 신자들은 공의회와 분리된 로마주교의 교도권이 마리아 교리를 모든 신자들에게 의무적인 신앙조항으로 선언할 수 있다는 것을 수용하기 어렵다.
(3) 또한 성공회신자들은 이러한 교리에 대한 승인이 두 교회가 일치를 이루는 데에 필수적인 것인지를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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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성공회·천주교일치위원회(ARCIC)는 1981년의 보고서에 이어 2004년 발표된 <시애틀(Seattle) 선언;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희망과 은총이 되시는 성모 마리아>를 통해 좀 더 진전된 내용으로 이른바 성모승천(聖母昇天, Assumption of the Virgin)과 성모무염시태( 聖母無染始胎, Immaclate Maria) 교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1) 하느님께서 마리아의 온전한 인격을 그의 영광 안으로 데려가셨다는 가르침은 성서와 모순되지 않으며 또한 성서의 조명 안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58항).
(2) 거룩한 분의 어머니로서 마리아를 부르심으로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은 마리아의 잉태 시작부터 그 존재의 심연에까지 역으로 거슬러 미쳤다(59항).
(3) 마리아에 관한 두 가지 선언 성모승천과 무염시태 교리는 은총과 희망이라는 성서적 패턴 안에서 이해할 수 있으며 성서의 가르침과 초대 교회의 전통에 부합한다.
(4) 마리아의 지속되는 역할은 우리의 유일한 중보자이신 그리스도의 사역에 봉사하는 것이며, 우리는 마리아와 성인들이 모든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믿으며, 마리아와 성인들에게 기도를 부탁하는 행위는 공동체 분열의 요인이 되지 않는다(64-75항).
이 보고서는 천주교(로마가톨릭)의 입장을 보다 더 이해하고 수용하려는 성공회의 태도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역시 가장 중요한 원칙은 분명히 재확인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서에 위배되는 교리나 실천은 하느님의 계시라고 말할 수 없으며 교회의 가르침이 될 수도 없다는 것에 합의합니다. 우리는 사적 계시를 포함하여 마리아에게 초점을 맞춘 신심행위는 교회생활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중심적이고 그리스도의 유일한 위치를 분명히 나타내도록 주의 깊게 만들어진 표준적인 기준에 의해 조정되어야 하며, 성부와 성령과 함께 그리스도만이 교회 안에서 예배되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3)
삼위일체 신앙 안에서의 마리아 신심
앞서 두 차례 “성모 마리아 신심”에 대해서 성공회와 천주교의 신학적 토의와 합의를 통해 살펴보았습니다.
성모 마리아를 공경하는 신심(信心)이 교회와 신자들에게 유익하고 필요하지만 어디까지나 교회의 신앙(信仰)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확인이 주된 내용입니다.
신앙(Faith)과 신심(Devotion)은 구별됩니다.
영어의 표현을 빌자면 삼위일체 하느님 신앙은 우리가 그 안에 서고 거(居)해야 하는 믿음(believe in), 곧 하느님께서 계시를 통하여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믿음이라 하겠고 이에 비해 마리아 신심은 하느님을 믿는 그 믿음의 토대 위에서 우리가 하느님께 바쳐드리는 믿음(believe on)이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Faith)은 신경(信經)으로 정리되고 고백되지만 그 본질은 살아계신 하느님께 우리의 생명과 생활을 봉헌하고 의탁하여 살아가는 삶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우리의 인지(認知)나 의지(意志)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를 향해 가지신 뜻과 사랑과 우리에게 행하신 실제의 일에서 비롯됩니다. 하느님의 창조와 구원과 보살핌을 깨닫고 경험하며 우리는 하느님을 거룩하신 삼위일체 하느님으로 고백하고 흠숭(欽崇)을 드립니다.
그 흠숭의 신앙은 우리가 그 안에서 하느님과 회복된 올바른 관계를 누리며 하느님의 뜻과 사랑에 일치되어 살아가게 해줍니다.
신심(Devotion)은 헌신(獻身)으로 번역되기도 하는데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구원사역 가운데 베풀어주신 어떤 일과 사람에 대한 구체적인 사랑의 공경(恭敬)입니다.
신앙과 신심은 그 차원에서 분명히 구분되지만 내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활동으로 실천되지 않고 신심으로 헌신되지 않는 신앙은 추상적인 원리나 심리적 상태처럼 여겨질 위험이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생활 속에서 다양한 신심 곧 헌신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표현되고 세상의 구원에 이바지하게 됩니다.
신심은 주관적인 은혜나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이 땅에 이루어가시는 하느님의 나라” 곧 “하느님의 선교(Missio Dei)”를 위해서 중요합니다.
성모 마리아 신심을 비롯하여 모든 신심은 오로지 삼위일체 하느님의 신앙 안에서 참된 의미와 열매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임종호 신부 (프란시스, 서울주교좌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