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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전 240년 9월 말일. 해모수 22세.
을씨년스런 갈바람이 한바탕 나무숲을 훑어 낙엽을 분분이 날리던 그믐밤에, 웅심산성 관아의 사자가 해모수의 집에 기척 없이 당도했다.
“노성주님께서 귀공을 은밀하게 부르셨습니다. 지금 즉시 복장을 갖추고 저를 따라 성주님을 만나 뵈러 가실까요?”
“무슨 일이오?”
“목소리를 낮추시오. 그건 나도 모르오.”
두 사람이 도보로 거의 달음박질하듯 해서 관아의 성주 청사에 도착한 것은 삼경 무렵이었다.
바깥에서 청사를 바라보니, 청사 안은 깜깜했다. 두 사람은 마치 남의 집에 몰래 잠입하는 도둑처럼, 초병의 눈을 피해서 뒷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사자가 문을 가만히 여니 문은 소리 없이 열렸다. 두 세 개의 문을 더 열고 들어가니, 뜻밖에도 불이 환히 켜진 아늑한 방에 들어서게 되었다.
방안에는 한 노인이 상 앞에 단정하게 앉아 있었다. 그의 좌우측에는 젊은이들 둘이 서 있는데, 맞은편에는 나이 지긋한 다른 한 인물이 시립한 게 보인다.
해모수가 노인의 얼굴을 알아보고 꿇어 엎드려 절했다.
“해모수가 성주님을 뵙습니다.”
“어서 앉게.”
황가 종실宗室의 웅심산성 성주 고유기高由己가 해모수에게 자리를 권하는 순간 그를 데려온 사자는 고요히 물러간다.
“자네가 여기 들어오는 것을 본 사람은 없는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안심이네.”
웅심산성 성주 고유기는 그의 우측에 서있는 청년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품속을 뒤지더니 품에서 밀봉된 서신 한통을 꺼내며 해모수를 향해 말했다.
“폐하의 어명을 삼가 받으시오.”
해모수가 그 앞에 꿇어 엎드렸다. 그가 편지를 꺼내 봉함을 뜯은 다음 낭랑한 목소리로 읽어 내려갔다.
해모수는 들으라.
내 그대를 어여삐 여겨 그대의 이전 죄를 모두 사赦한 후 본향에서 평안히 살도록 조처했도다.
그럼에도 그대는 자중하지 아니하고 본향의 비류들과 더불어 반역을 꾀하고 있으니, 짐은 심히 부끄러워 하늘을 우러러 볼 수 없노라.
국법에 따라 그대를 극형에 처해야 마땅하나, 종실宗室과 그대의 명예를 위해 단도短刀를 내리니, 사자의 목전에서 이 어명을 받는 즉시, 어사도御賜刀로 자결하라.
신유 구월 스무이레 사시巳時
대부여 천자 고열가
사자는 편지를 읽은 후 곁에 있는 웅심산성 성주에게 건네주었다. 이어 품에서 한 자쯤 되어 보이는 단도를 꺼내 마치 억만금의 보물을 다루듯 매우 조심스런 자세로, 해모수 앞에 내려놓았다.
성주는 임금의 밀서를 확인한 후 맞은편에 서있는 사람에게 전달했다. 그가 편지를 받아 서랍 속에 집어넣는다.
아득한 어둠 속에서 회리바람이 뭉실뭉실 일어나더니 해모수의 눈앞으로 점점 다가왔다. 그 회리바람 속에서 칙칙한 죽음의 사자가 우뚝 나타나 그를 노려보았다.
“어서 속히 자결하라!”
죽음의 사자가 그에게 엄한 목소리로 명한다. 그가 머뭇거리자 죽음의 사자는 다시 소리쳤다.
“어서 속히 자결해 네 명예를 지키라!”
해모수는 하늘을 우러러 하나님을 불렀다.
“하나님, 하나님, 삼신일체 천제님, 저의 억울하고 원통한 혼백을 받아주소서.”
뜨거운 눈물이 비로소 두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가 어사도를 손에 집어 들었다. 칼집을 뺐다. 등불 빛에 단도의 서슬이 퍼렇다.
“잠깐!”
그 때 누군가가 외쳤다.
해모수가 눈을 들어 그 쪽을 바라보았다. 그는 웅심산성 성주 고유기 좌측에 서있는 다른 한 명의 청년이었다.
“어명을 마저 다 들은 후 자결해도 늦지 않소.”
그도 품속에서 밀봉된 편지를 한 통 꺼내며 말했다.
“어명을 삼가 받으시오.”
해모수가 꿇어 엎드린 자세로 단도를 조심스레 내려놓고 눈을 들어 사자의 손을 쳐다보았다.
사자가 편지 봉함을 뜯어 그 안의 글을 읽었다.
해모수는 들으라.
이천 년 제업帝業이 백척간두에 서있도다.
그대에게 웅심산성 수비대장 겸 대부여평국상장大夫餘平國上將을 제수除授하노라.
삼신일체 상제께서 그대를 보우保佑하실지로다.
신유 구월 스무이레 정오正午
대부여 천자 고열가
그 사자도 편지를 읽은 후 성주 고유기에게 건네었다. 이번에도 역시 고유기는 맞은편의 청지기에게 그 편지를 맡긴다. 그가 서랍속에 편지를 집어넣는다.
어디선가 청아한 대금소리가 울려오고 있었다. 그 소리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더니, 해모수의 귓전에서 뚝 그쳤다. 그리고 속삭이는 음성이 들려왔다.
“천제 하나님이 그대와 함께 계시도다. 용사여, 일어나라.”
해모수가 웅심산성 성주 고유기의 낯을 쳐다보았다. 고유기는 두 눈을 감고 있었다. 그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해모수가 포착했다.
‘어느 편에 설 것인가?’
그는 기로에 서서 떨고 있었다. 그가 몹시 긴장하고 있음을 해모수는 그의 낯에서 읽을 수 있었다.
실권은 해로운이 쥐고 있다. 임금도 그의 손에 의해 좌지우지된다. 임금은 해로운 측근들의 뜻대로 해모수에게 자결 명령을 하달한 후, 다시 은밀한 경로를 통해, 그에게 대부여평국상장을 제수했을 터다. 편지를 쓴 시각이 이를 입증한다. 자결을 명령하는 어명은 “사시”(오전 10시 전후)에 쓴 것이고, 나중의 것은 같은 날 “정오”에 기록한 것으로 명시되어 있다.
두 명의 사자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웅심산성 성주의 청사에 도착했다. 임금의 뜻이 둘인가? 하나일 터다. 웅심산성 성주 고유기가 해로운의 편에 선다면, 고유기는 보신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임금의 뜻을 따른다면? 내일을 모른다. 아마 죽음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래저래 죽음은 반드시 찾아온다. 늦게 오느냐 일찍 오느냐가 다를 뿐이다. “늦게”와 “일찍”도 사실, 장구한 세월에 비춰보면 거의 아무런 차이가 없다.
성주 고유기는 그 늙은 눈꺼풀을 치켜 올려 해모수를 바라보았다. 이 순간은, 해모수의 운명이 그의 손에 쥐어져 있는 것 같았다. 해모수도 그의 눈을 응시하고 있었다.
아, 저토록 환하고 순결하게 생긴 젊은이에게 자결 명령을 내리는 자는 누구인가? 형제 사이의 거리는 얼마인가? 세상의 제왕권은 혈육의 정보다 가일층 고귀한 가치인가?
먼 훗날 위나라 조조의 자식, 조비도 왕권을 놓고, 아우 조식을 그렇게 강박하지 않았던가. 칠보를 걸어가는 동안에 시를 지으라. 그렇지 못하면 목숨을 빼앗으리라. 다행히 조식은 작시作詩에 관한 한 천재적인 소질이 있었던가보다.
煮豆燃豆萁 자두연두기
豆在釜中泣 두재부중읍
本是同根生 본시동근생
相煎何太急 상전하태급
콩깍지를 태워 콩을 삶으니
솥 안에서 콩이 울고 있구나
본래 한 뿌리에서 났건만
서로를 달임이 어찌 그리 급한고
상고 적 아담의 아들 아벨을 죽인 자가 누구였던가. 그의 친형 가인이 아니었던가. 이 역시 왕권의 다툼이었다.
야고보의 태자 요세보를 몰래 체포해 노예로 팔아버린 것도 그의 이복형들이었다.
웅심산성 성주 고유기의 목숨과 해모수의 목숨은, 고유기 한 사람의 결단에 달려 있는 듯했다. 그가 신음하듯 한 마디 내뱉었다.
“명일 진정시辰正時(오전 8시)에 웅심산성 수비대장 취임식을 거행하겠네.”
해모수가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어서 일어나게.”
웅심산성 성주 고유기는 마침내 임금의 편에, 아니 해모수의 편에 선 것이다. 임금은 해모수에게 대부여평국상장平國上將을 제수했다. 대부여평국상장이 무엇이란 말인가? 상장은 대장군이다. 대부여평국상장은 처음 듣는 관직이름이다.
해모수에게 병권을 넘겨주니, 알아서 나라를 평안히 안정시키라는 뜻이 아닌가? 고유기가 그걸 모를 리 없었다. 임금은 해모수를 지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해모수에게 나라의 병권 일부를 맡긴 것이다. 밀지 하나로.
해모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유기가 그를 주시하고 있다.
“명일 아침에 성주님을 뵙겠습니다.”
해모수가 떠나자 임금의 밀서를 들고 온 사자들도 즉시 현장을 떠나갔다.
성주 고유기는 맞은편에 선 청지기에게 조용히 일렀다.
“밀서 두 개를 서랍에서 꺼내 그대가 은밀하게 간직하고 있게. 그리고 지금 즉시 이곳을 떠나, 집으로 가지 말고, 내가 정해준 곳으로 가서 내가 부를 때까지 숨어 있게나. 이 밤에 각별히 몸조심하게.”
“네, 나리, 나리도 몸 보중하십시오.”
청지기가 인사를 한 후 총총히 사라졌다.
그가 떠나자 고유기는 자세를 고쳐 앉으며 그의 호위무사들을 불렀다.
“여봐라! 게 아무도 없는가?!”
해모수는 그들보다 한발 앞서 문을 나섰다. 들어올 때는 남몰래 왔으나 나갈 때는 당당하고 싶었다. 정문들을 통과해 성주의 청사를 빠져나왔다. 뒤돌아보니 성 청사가 어둠 속에 괴물처럼 웅크리고 서 있다. 집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아, 폐하께서 내게 나라의 병권을 하사하셨건만, 지금 이 시각엔 부하 하나도 없구나.’
그래도 집으로 가야 하는가? 집으로 돌아가면 적들이 그를 노릴 게 뻔하다. 이런 생각에 잠겨 있다가 퍼뜩 불길한 예감이 스치고 지나갔다.
‘아차! 내가 큰 실수를 했구나!’
해모수는 발길을 되돌려 오던 길로 줄달음질쳤다. 어둠 속에 성주의 청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정문으로 달려 들어갔다. 초병들은 그를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다. 기억을 더듬어 성주와 만났던 방까지 나아갔다. 제지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오, 이런!’
피비린내가 물씬 풍겼다. 밝은 방안에 선혈이 낭자하다. 노 성주가 쓰러져 있다. 그의 가슴에 어사도御賜刀가 꽂혀 있다. 호흡은 멈추어 있었고 맥을 짚어보니 심장도 멎어 있었다. 그가 떠난 지 반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이런 참사가 벌어진 것이다.
‘아, 한발 늦었구나. 내가 성주님을 모시고 있었어야 되는 건데.’
후회막급이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하지만 성주를 걱정할 때가 아닌 것 같았다. 또 다른 생각이 번개같이 머릿속 창공을 사무치게 그었다.
‘함정이다!’
지금 나가면, 화살에 맞아 고슴도치 신세가 될 터다. 여기 있으면 살인자 누명을 쓸 게 뻔하다. 진퇴양난이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렷다. 하지만, 여기 앉아서 당할 수야 없지 않은가.
해모수는 방안의 불을 끄고 바람처럼 뛰쳐나왔다. 입으로는 연신 하나님을 부르고 있었다.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의인은 맹호 같이 용감하다.’
이런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예상했던 대로다. 청사 후문까지 오니, 어둠 속에서 무수히 많은 그림자들이 움직이고 있다. 그들은 자세를 낮추고 활시위를 당긴 채 문을 향해 서서히 접근하고 있었다.
손에는 아무런 무기도 없다. 자신의 침착하지 못함을 자책하며 다시 성주의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벽에 검이 걸려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성주의 방에서 검을 들고 나온 해모수는 어느 방인지 모르나 어둠 속에 웅크렸다.
갑자기 발자국 소리가 나더니 누군가가 부싯돌을 켜 홰에 불을 붙였다. 실내가 삽시간에 환해지며 사물의 정황이 드러났다.
횃불을 든 자의 시선과 해모수의 눈이 정면으로 부딪혔다. 그가 움찔 놀라더니 소리친다.
“죄인은 순순히 오라를 받으라!”
그의 목소리와 함께 여러 사람이 그곳으로 우르르 몰려들어 해모수를 에워쌌다. 불빛에서 보니, 그들은 모두 관병의 옷을 입고 있었다.
해모수는 침묵을 지켰다. 이런 때는 말이 필요 없을 터다. 그들이 천천히 해모수에게 다가온다. 한발 한발, 또 한발. 해모수는 미동도 하지 않고 침착하게 서 있었다. 손에는 검이 들려 있다.
“무기를 내려놓고 오라를 받으라!”
횃불을 든 자가 다시 외쳤다. 그를 포위한 병사들이 거의 일장一丈 가까이로 다가왔다. 돌연 해모수가 큰 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멈춰라! 천제님과 폐하와 해모수 편에 설 자는 누군가! 그는 목숨을 부지하리라!”
병사들의 눈빛에서 동요가 이는 것을 느꼈다.
“속히 죄인을 포박하라!”
횃불을 든 장수가 다급한 명령을 내린다. 그와 동시 병사들이 손을 내밀어 해모수를 붙잡으려 했다.
해모수가 익힌 무예가 무엇이던가. 바로 이처럼 좁은 곳에서 여러 적을 상대할 때 유리한, 팔괘무八卦舞와 팔괘검학八卦劍學을 배우지 않았던가.
해모수의 몸이 마치 바람개비처럼 두세 바퀴 도는 순간, 그를 둘러싼 칠팔 명의 병사들이 죄다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나가떨어진다. 그의 동작은 글자 그대로 춤이었다. 손과 발이 춤을 추듯 사방팔방으로 튕겨나갔다. 팔괘의 여덟 방향으로 몸을 선풍처럼 자유자재 돌리며 적을 상대하는 것이 팔괘무이고 팔괘검이다.
횃불을 든 장수는 졸개들이 손 한번 써보지 못하고 죄다 바닥에 나뒹굴자, 몹시도 놀라는 것 같았다. 하지만 밖에서 실내로 계속해서 병사들이 밀려들고 있었다.
쓰러진 병사들의 신음소리가 처절하다. 새로 들어온 병사들은, 그 광경을 보고 넋을 잃는 것 같았다.
“죄인을 포박하지 않고 뭣들 하는가!”
횃불 든 장수가 고함을 질렀다. 해모수도 지지 않고 맞고함을 질렀다.
“하나님과 폐하와 해모수 편에 설 자가 누구인가!”
주춤하던 그들이 해모수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결과는 뻔하다. 그들도 죄다 바닥에 나뒹굴며 신음 소리를 냈다. 개중에는 기절한 자들도 꽤 있는 것 같았다. 바닥에 넘어져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일단의 병사들이 장수의 명령에 다시 그 방으로 뛰어들었다. 횃불을 든 장수가 한 쪽 구석으로 물러나는 순간, 새로 들어온 병사들이 문 앞에서 해모수를 향해 화살을 겨누었다.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아! 인명을 살상하지 않으려 했건만, 하나님, 하나님!’
속으로 외치며 해모수는 갑자기 기합을 지르면서 몸을 공중으로 날렸다. 그의 팔이 뻗어나가는 순간, 검광이 횃불을 쳐서 바닥에 떨어뜨렸다. 해모수의 몸이 바닥에 굴렀다. 그와 동시 병사들의 손에 들린 활과 화살들이 허공에 날았다. 그러나 화살이 채 시위에서 벗어나기도 전 병사들은 죄다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해모수는 발로 횃불을 밟아 꺼버렸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고요히 숨을 조절하며 잠시 눈을 어둠에 적응시켰다.
그가 문을 열고 밖으로 담대하게 나섰다. 청사 뒤의 뜰 같았다. 나무 숲 사이에서 사람들의 그림자가 아른거린다.
그가 문을 나서는 순간, 여기저기서 횃불이 켜지며 주위를 대낮처럼 밝혔다. 보라! 멀찍이서 그를 향해 수십 명의 관병들이 화살을 겨누고 있었다. 그 병사들 뒤편에서 장수인 듯한 자가 소리쳤다.
“죄인은 무기를 내려놓고 순순히 항복하라! 고슴도치가 되기 전에! 셋까지 셀 터다. 너에게 주는 마지막 자비다. 셋을 셀 동안 무기를 내려놓고 무릎을 꿇지 않으면, 이 밤이 네가 이승을 하직하는 날이다.”
이렇게 말한 후 그는 수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잠깐!”
해모수가 소리쳤다.
“하나님과 폐하와 해모수 편에 설 자가 누군가!”
해모수의 목소리가 적막한 밤하늘의 대기를 가르며, 우레처럼 사람들의 귀를 타작했다.
이어서 해모수는 숨 쉴 틈을 주지 않고 외쳤다.
“해모수 편에 설 자는 화살의 방향을 돌리라!”
병사들 사이에서 동요가 일어나는 게 역력히 보였다.
“대부여평국상장 해모수를 따를 자는, 즉시 화살을 돌리라!”
그의 말이 떨어지자, 머뭇거리던 몇 명의 병사가 몸을 뒤로 돌리더니, 명령을 내리고 있던 장수에게 화살을 겨누었다.
“네, 이놈들! 미쳤느냐! 항명죄와 하극상에 대한 형벌이 무엇인지 모르는가!”
그 장수가 미친 듯이 외쳤다.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
“폐하께서 나 해모수에게 밀지를 내려 대부여평국상장을 제수하셨다. 나라를 어지럽히는 이 역도를 속히 포박하라!”
해모수의 우렁찬 목소리가 대기를 진동시킨다. 해모수가 검을 들어, 명을 내리던 장수 쪽으로 내뻗었다.
장수가 고함을 질렀다.
“발사! 화살을 날리라! 저 역도 해모수를 즉각 처단하라!”
해모수가 지지 않고 담대히 소리쳤다.
“이 역도들이, 가증스럽게도 천인공노할 악을 저질러 고유기 노성주님을 시해했다. 속히 저 사람을 포박하라!”
이미 여러 병사가 명을 내리던 장수에게로 화살을 겨누고 있었다. 나머지 병사들은 시위에서 화살을 거둔 채 해모수와 그 장수를 번갈아 쳐다보고 있다.
“여러분, 병사들이여! 폐하께서 오늘 밤 나에게 밀지를 내려, 웅심산성 수비대장 겸 대부여평국상장을 제수하셨다.”
그 때 건너편에 서서 명을 내리던 장수가 소리쳤다.
“거짓말, 거짓말하지 말라! 폐하께서 밀지를 내려 그대에게 자결을 명하셨다!”
그는 부하들을 향해 손을 휘저으며 다급히 말했다.
“그대들은 저 반역도에게 속지 말라! 어서 속히 반역도를 쏘아 죽이라!”
(다음회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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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2022. 12. 17. 눈내리는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