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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은, 가전보물을 건네 준 임가 노장주, 임장청의 애호에 크게 감격하는 한편, 홀연 깨닫는 바가 있어서 급히 여미아의 할아버지인 이 집의 노장주를 만나보고 싶었다.
‘아! 그렇다면, 이 시문이나 연정도 그림, 필체가 모두 임대인의 고조부의 작품이라는 뜻일까? 아니야, 이 책은 아마 임대인이 만든 필사본이겠고, 시문과 그림은 임대인의 작품이겠지.’
그가 이런 상념에 젖어 책을 뒤적거리고 있을 때, 밖에서 다시 하인의 헛기침 소리가 들렸다.
“태자 전하, 노황 기하께서 전하를 찾고 계십니다.”
‘할아버지가 나를?’
“속히 오시랍니다.”
조영이 급히 방문을 나서니, 흑의인 둘이 그를 데려가기 위해 대문 밖에 와 있었다. 몇 채의 집을 이리저리 돌고 나니, 눈에 익은 큰 전각 앞이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넓은 대청에 여러 사람이 이미 모여 있었다. 우선 눈에 띄는 게, 단 위의 높은 의자에 좌정한 무태후의 모습이었다. 그녀의 양 옆에는 회의대사와 이해고, 사비우가 시립해 있었고 태평공주가 무 태후 곁의 좀 낮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아래쪽 바닥에는 조부인 고승이 자리를 잡고 있었고, 그 주변에 있는 미시아, 여미아, 극시아 삼자매의 아리따운 자태가 눈에 들어왔다. 그가 여미아의 얼굴을 보니, 그 정갈하고 성스럽고 아름다운 빛깔이 단연 돋보이고 그녀와 쏙 닮은 미시아는 매혹적이고 도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가 몹시 궁금해 하던 이루하의 모습도 보였다. 그 밖에도 몇몇 흑의인들이 있었고, 백의를 입은 두 고려인도 눈에 띄었다. 백의 고려인들은 얼굴이 눈에 익은 사람들이었다. 자세히 보니, 지난 봄 고가장에 나타났던, 후고려국의 사자들임이 분명했다.
그들 모두는 무 태후의 전면으로 좌우에 도열해 앉아 있었는데, 무태후 곁의 태평공주와 회의, 이해고, 사비우 등
외에는 모두가 무릎을 꿇고 있어서 조영은 깜짝 놀랐다.
조영이 들어가자 무 태후를 비롯해 장내의 모든 사람이 일제히 그를 쳐다본다.
“그를 이리 데려오게.”
무 태후의 목소리에 조영은 안내자를 따라 무 태후 곁에 이해고와 함께 나란히 섰다.
그 때, 무 태후 우측 가까이 맨 앞쪽에 무릎을 꿇고 앉은 고승이 고개를 들지 않고 바닥을 내려다보면서 입을 열었는데, 그 소리가 매우 낭랑했다.
“태후 마마, 몸은 쾌차하신지요?”
“정성껏 간호하고 치료해주신 덕분에 이렇게 건강하게 되었소. 감사하오.”
“마마, 천 년까지 사소서.”
그의 말끝에 무릎 꿇고 앉은 실내의 모든 사람이 한결같이 복창했다.
“마마, 천 년까지 사소서.”
무 태후의 얼굴에 웃음이 번지고 있었다.
무 태후 곁에 서 있는 조영은, 그 동안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라, 그저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 아마도, 무태후가 과로에 지친 나머지 쓰러졌다가 그 동안 치료를 받은 것으로 짐작되었다.
“어서들 자리에서 일어나시오. 모두 무릎을 꿇고 앉아있으니 내가 민망하오.”
“아니옵니다. 마마. 이것이 우리 고려 사람들의 윗분에 대한 예절이옵니다. 하물며 마마는 당금 대당에서 만인지상萬人之上의 고귀한 몸이신데, 이는 마땅한 것입니다.”
잠시 숨을 멈추었다가 고승이 다시 입을 연다.
“마마, 실은 소인들이 마마께 한 가지 간청할 일이 있사옵니다.”
“어서 말해보시오.”
고승은 즉각 대답하지 않고 한 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무겁게 운을 떼었다.
“우리 고려가 대당에 의해 사직을 잃은 것은, 다른 데도 원인이 있겠지만, 소인이 생각하기로는, 특히 연남생과 연남건 형제가 국권을 잡기 위해 서로 으르렁거리며 싸우다가 그 중 하나가 나라를 배신하고 신라군과 함께 대당에 협조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지 않을까 합니다. 또한 평양성의 수비총책인 승僧 신성信誠이 뇌물을 받고 평양성 문을 열어준 것도 거기에 큰 보탬이 되었을 것이옵니다.”
그는 잇달아 장탄식을 하더니 태후에게 물었다.
“마마는 소인의 이 생각에 동의하시온지요?”
무 태후는 대답 대신 말을 재촉했다.
“어서 얘기하시오.”
“마마, 소인들의 요청을 들어주시겠는지요?”
“들어봐야 알 게 아니오? 하지만 내 힘이 닿는 것이라면, 그리고 이치에 합당한 것이라면 응낙하겠소.”
고승은 잠시 입을 닫고 묵상에 잠기다가 마침내 말문을 다시 열었다.
“소인들이 원하는 건, 간단하옵니다. 우리 고려의 고토를 되돌려 달라는 것뿐이옵니다.”
“그건 이미 고려가 다시 다 차지하지 않았소?”
“물론, 서압록(요하)의 동편은 대부분 이미 후고려의 수중으로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그 서편과 발해군 땅은 지금 대당이 점유하고 있사옵니다.”
“아!”
무태후는 감탄사를 발한 후 덧붙인다.
“발해바다 서편의 발해군은 옛날 우리의 한漢 나라 고조高祖(유방, 서기전 247? - 195)께서 설치하신 군이 아니오?”
“마마, 그 땅은 원래 우리 단군조선의 땅이었습니다. 그 후 춘추 열국 시대를 거친 후까지도 우리의 땅이었지만, 진의 시황 때에야 잠시 중국으로 귀속되었다가 다시 자립했습니다. 그 후 저 예濊의 군주 남려南閭가 조선을 배반해 한 나라에 투항하자, 한 나라가 발해군 바로 북쪽 남려의 땅에 창해군을 설치했사옵니다. 그러나 2년 후 창해군은 재차 독립했고, 전한의 고조가 명목상으로 설치했던 발해군 백성들도 창해군민과 합해 자립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고려의 태조태왕께서 그 땅을 되찾으시고, 한 나라를 방어하기 위해 그 곳과 요서 땅에 열 개 성을 튼튼히 쌓았사옵니다. 그 성들의 일부는 지금도 건재해 있사옵니다.”
발해서쪽 해안지경을 다스리던 위만조선의 거수국渠帥國(제후국) 예濊의 칸 남려가 위만조선을 배반하고 한나라에 투항한 것은, 서한 무제 원삭 원년, 서기전 128년의 일이다(<한서/무제기> 외). 당시 남려가 다스리던 예의 백성은 대략 28만 명이었다.
그 후 오랜 세월이 지나 고구려는 이 땅을 다물하고 태조태왕이 서기 55년에 그곳을 비롯해 요서에 열 개 성을 쌓아 한나라의 침략에 대비했다<삼국사기/고구려본기><태백일사/고구려국본기>.
“하지만, 그 땅은 이미 우리 중국으로 들어온 지 오래 되지 않았소?”
“마마, 그렇지 않사옵니다. 불과 수십 년 전만 하더라도, 그 땅에서 우리 고려와 대당 간의 전쟁이 있었사옵고, 고려의 서부대인 연개소문과 대당의 태종문무성 황제(이세민)께서 서로 다투신 결과 우리 고려가 그 땅에서 물러난 사실은 마마도 잘 아실 것이옵니다.”
고구려와 백제는 중국의 서진이 망할 무렵인 서기 4세기 초엽 이전부터 지금의 요서와 산동, 발해바다 서편 등지로 진출해 그 땅을 경영했다고 중국사서들은 말한다. 그 후 중국이 5호16국의 난립시대로 접어들고 수나라가 중국을 통일할 때까지, 그리고 수나라가 국운을 걸고 고구려와 건곤일척의 대전을 벌였다가 망할 때까지, 고구려는 여전히 그 땅의 일부를 점유하고 있었다.
이어 당나라가 들어서며 앞서 말한 회대淮岱지방, 즉 태산부터 회하하류 유역에 이르는 비옥한 땅들을 대부분 점유했지만, 그럼에도 아직 물러가지 않은 고구려 군과 곳곳에서 전투를 벌이는데, 대표적인 전투가 620년 강소성 건호현에서 이세민(훗날의 당 태종)과 연개소문 간에 벌어진 전투, 강소성 북부 숙천宿遷시 근방에서 연개소문과 당장 설인귀 간에 벌어진 전투, 이세민의 재위 시에 강소성 연운항에서 연개소문과 벌인 전투 등이다.
특히 유명한 싸움은 643년 산동반도의 즉묵에서 벌어진 마산대전馬山大戰이다. 당태종과 연개소문 간의 이 전투에는 신라군도 참여해 당나라를 돕는데, 당시 신라장수 가운데 김걸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 때 연개소문에게 쫓기던 당태종이 신라 용양龍驤장군 김걸金杰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구출되며, 이 싸움에서 신라장수 김걸은 전사한다.
그 밖에도 644년 산동반도 봉래에서 당태종과 연개소문 간에 벌어진 전투도 있다.
제위에 오르기 전부터 전장을 누비며 혁혁한 공을 세운 바 있는 이세민(당 태종)은 대단히 호전적이고 무사의 기질이 강한 인물로서, 고구려에 패퇴한 645년 대전에도 직접 대군을 이끌고 갔었다.
무 태후가 상기된 얼굴로 대답을 못하자 고승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발해군 땅이 원래 우리 조선의 고토였으므로, 한漢 나라가 고홍高洪을 발해태수로 임명하고 대당이 비록 이름뿐이긴 하나, 우리 고려 왕가의 고씨들에게 발해군의 관작을 부여한 것도 사실이옵니다.”
고승은 계속해서 마루바닥을 내려다보며 부언했다.
“마마, 우리 고려의 고토를 되돌려주시기를 간곡히 청원하나이다.”
무 태후는 말이 없다. 고승이 또 입을 연다.
“마마, 이건 비록 구두이긴 하지만, 소인이 후고려임금 고중상의 애비로서, 고려의 사신 자격으로 대당의 최고 통치자이신 태후마마께 정식으로 간청하는 것이옵니다. 윤허하소서.”
“허허! 그것 참 어려운 일이오. 내가 비록 대당을 다스리고 있다고는 하나, 나 혼자 맘대로 대당의 땅을 고려에 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지금 신하들과 함께 의논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소?”
“마마, 마마께서만 허락하신다면, 대당 조정의 신하들과 신민들은 마마의 뜻에 따를 것이옵니다. 하오나 그들이 완강히 반대한다 하더라도 상관없습니다. 다만, 저희는 마마의 허락을 얻고 싶을 따름이옵니다.”
“아, 그것 참 어려운 문제요.”
무 태후가 선뜻 불가하다는 대답을 할 수 없었던 것은, 사실 그들의 몸이 고승의 무리에게 붙잡혀 있는 것이나마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리라. 비록 대접은 융숭하고 극진했으며 예에 어긋난 일도 없었지만, 이 큰 전각 안에는 무 태후와 몇몇의 시종들 밖에 없고, 밖은 고승의 무리들이 둘러싸고 있을 게 뻔했다.
또한 이곳에 와서 과로로 쓰러졌을 때, 그녀를 치료해주고 정성을 다해 돌봐준 이도 고승의 무리가 아닌가?
무태후가 다시 입을 연다.
“그 문제는 시일을 두고 생각해봐야 할 매우 예민한 사안이고 중차대한 것이니, 그만들 일어섰으면 하오.”
“마마, 통촉하소서!”
고승의 소리에 무릎 꿇은 고려인들이 일제히 복창했다.
“마마, 통촉하소서!”
그 광경을 묵묵히 내려다보고 있던 무 태후가 인상을 찌푸린다.
“이런, 딱한지고! 내 생각해 본다 하지 않았소? 어서 일어나시오.”
“마마, 통촉하소서!”
그 말을 끝으로 고승은 침묵에 들어갔다. 한참 후 무태후가 입을 열어 화제를 돌린다.
“대인은 낙양성에 가 있을 몸인데, 어째서 이곳에 있는지 궁금하오.”
원래 무태후는, 조영과 극시아가 몇 달 기한으로 여행을 가게 되었을 때, 승려 회의의 조언을 받아들여, 조영의 조부인 고승을 낙양성에 억류해 두고자 고가장으로 사자들을 보낸 바 있었다.
“마마, 용서하소서. 소인이 몸이 불편하여, 도중에 다시 돌아오게 되었사옵니다.”
“아, 그런 일이 있었군요.”
태후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묻는다.
“고 대인을 모시러 간 우리 사자들은 어찌 되었소?”
“그들은 나를 이곳에 놓아둔 채 빈 몸으로 황성에 갈 수 없다 하여, 소인들이 안전하게 잘 모시고 있사옵니다.”
눈을 지그시 감고 있던 무 태후가 한참 후 입을 연다.
“내가 대인의 요청을 허락하지 않으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을 기세인 것 같구려.”
그것은 우회적인 표현이었다.
“마마! 저희들은 마마의 윤허를 얻기 위해, 사흘 밤낮이라도 굶을 준비가 되어 있사옵니다.”
“그럼, 나도 굶어야 하오?”
“마마, 어찌 귀하신 몸이 굶어야 하오리이까? 변방의 조촐한 음식이나마, 정성을 다해 대접하올 것이옵니다.”
무 태후는 잠시 천정을 쳐다보다가 대답한다.
“좋소. 내 허락하리다. 다만, 신하들이 반대하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서요.”
“태후 마마! 감사무지無知하옵나이다!”
고승의 선창에 무릎 꿇은 고려인들이 일제히 후창한다. 태후가 다시 강조한다.
“나는 허락했지만, 신하들이 반대할 경우 내 약속이 취소될 수도 있다는 뜻이오.”
“마마! 저희들은 마마의 약속 하나로 만족하옵니다. 마마의 약속은, 천금 만금보다 무겁고, 이것은 마마와 우리 무리가 다 들었을 뿐만 아니라, 하늘의 상제께서도 들으신 것이오니, 그 약속은 훗날에라도 반드시 지켜지리라 믿습니다.”
“좋을 대로 생각하시오.”
고승은 머뭇거리다가 다시 말한다.
“마마의 말씀은, 대당과 고려가 더 이상 영토문제로 싸우지 않고 이를 평화롭게 해결하겠다는 약속으로서, 서로 간에 화목한 인연을 맺은 것이옵니다. 마마, 사실이 그러하온즉, 이를 기념하기 위해 좋은 대사大事를 하나 준비하는 게 어떨는지요?”
“좋은 대사라면?”
“혼사를 이름입니다.”
“누구와 누구를 혼인시킨다는 말이오?”
“대당 황실의 금지옥엽이신 태평공주를 우리 고려로 출가시키는 게 가할지, 이 고승이 후고려 노왕老王(왕의 부친) 겸 사신의 자격으로 삼가 여쭈나이다.”
무 태후가 곁에 앉은 태평공주를 흘낏 본 후 대답한다.
“그 아이는 이미 출가한 몸이오.”
“소인들도 잘 알고 있사옵니다. 대당 황실의 부마도위 설소 공과의 사이에 자녀 셋을 낳은 것까지도요.”
“그렇다면 혼사는 불가하지 않소?”
“태평공주 마마와 설소 공이 이혼 직전에 있는 것으로 소인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마마, 통촉하소서.”
무 태후는 고려인들이 당 황실의 사정을 이토록 세세히 알고 있는 것에 일면 전율을 느꼈다. 무 태후는 긴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우리 딸아이를 누구와 혼인시키기 원하오?”
“우리 황상 기하(폐하)의 태자가 적격이 아닌가 하옵니다.”
“후고려의 태자라면 고조영이 아니오?”
“그렇사옵니다.”
무 태후는 다시 한 차례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오래 전, 돌궐의 임금이 이 아이를 자기 아들에게 시집보내달라고 요청한 적 있었지만, 선황과 나는 보내지 않았었소.”
그건 불가하다는 뜻으로 들렸다. 하지만 이거야말로 태평공주가 간절히 바라던 게 아니던가? 그녀의 낯은 상기되어 있었다. 태평공주 이영월이 입을 열려고 하자, 그녀의 뜻을 알아차린 듯, 무 태후가 이영월을 돌아보며 말했다.
“넌,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어라.”
그러나 태평공주는 당돌하게 말했다.
“어마마마, 제가 고려 태자 고조영과 혼인하겠어요. 허락해주세요.”
무 태후가 그녀를 쏘아본다. 그 때 고조영이 나서 고승을 향해 말했다.
“노황 기하基下(폐하)! 저에게는 어릴 적 정혼한 여인이 있다고 노황 기하께서 친히 제게 이르지 않으셨는지요?”
그 때 비로소 고승은 고개를 들어 고조영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건 사실이다. 하지만 거기엔 네가 모르는 사정이 좀 있다. 그건 대당과 고려의 평화를 위해 우리가 파혼할 수도 있는 일이란다.”
그 때 무태후가 다시 나선다.
“그 문제는 내가 깊이 고려해 본 후 대답하겠소. 하지만 긍정적으로 검토해 볼 예정이니, 거기서 멈추었으면 하오.”
“마마, 황공하옵니다. 그 대답으로도 저희는 만족하게 생각하옵니다.”
“혹시 내게 또 요청하고 싶은 것은 없소?”
“없사옵니다. 다만 저희는 태후마마의 통치로 대당에 태평성세가 열리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옵니다.”
“고맙소.”
“마마, 실은 마지막 요청이 하나 있사옵니다.”
“···?”
(다음 회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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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2024. 6. 22. 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