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날 전철에서 본 풍경 --
온종일 무거운 카메라 가방 메고,
황학동에서 장충단을 거쳐 남산 중턱을 오르다 너무 힘들어,
다시 남대문으로 내려와 명동을 지나 인사동까지 걸었더니,
발목을 짓누르는 뻐근함이 납덩이를 매단 것처럼 무겁고,
한 걸음도 걸을 수 없을 정도로 주저앉고 싶은 심정이 돼버렸다.
여기서 안양까진 너무나 먼 길,
에어컨 바람 시원한 전철 안에서 편안히 자리에 앉아
삼복 무더위에 시달린 몸도 식히고 몇십 리 먼 길에 지친 다리도 내려놓아
안락함을 즐기다 보면, 어느새 나의 목적지 안양에 도착해 있겠지!
하는 간절함을 안고 종각역에 들어섰다.
그리고 열차의 맨 뒤쪽 칸이 위치하는 자리에 서서 기다렸다.
빈자리가 있을 확률이 가장 높을 것 같아서였다.
열차가 왔다.
그런데 인천행, 그리고 전광판에 또 다음 열차도 인천행,
아니 수원행은 왜 안 오는 거야. 우~~ 열불이 나려고 한다.
발목은 내 몸을 지탱하기조차 힘들게 됐고,
온몸에 끈적끈적 땀은 차는데,
주위를 살펴보니 연세가 좀 돼 보이는 아주머니가 바로 내 옆에,
그것도 손에 묵직한 보따리를 들고 서 있지 않은가.
헉~ 얼른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길 수밖에...
드디어 "병점"이라는 붉은 표지를 단 열차가 위풍당당하게 들어왔다.
문이 열리는 순간 다급한 마음에
내리는 손님 사이를 뚫고 체면 생각할 것 없이 허겁지겁 안으로 진입했다.
그리고 자리에서 막 일어서는 사람을 발견,
‘저기다 빈자리’하고 속으로 외치며 그 자리를 향해 황급히 몸을 돌리는데,
앞문 쪽에서 무언가 휙~~~ 하고 3루타를 돌진 하더니
검정비닐 보따리가 빈 좌석에 척. 쎄입~
그 아주머니다. 나를 불안하게 하던 그 아주머니...
황당 허탈한 심정으로 그 아줌마를 바라보는데,
깜냥도 안 된다는 듯 나를 힐끗 흘겨보고는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느긋이 자리에 앉는다.
나는 패배를 인정했다. 역시 경륜은 무시할 수 없는 것,
고개를 돌려 혹시나 하고 주위를 살피는데,
이미 상황은 종료되었고,
빈 좌석에 혈안이 됐던 나를 많은 사람들이 킥킥대며 바라보는 것 같아
서둘러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길 수밖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죽 훑어보며 가장 일찍 일어날 것 같은 사람을 모색하는데,
흰 윗도리에 청색 스커트를 입은 여학생이 한눈에 들어왔다.
방과 후의 학생이라면 그리 멀리 가진 않겠지! 하는 생각이 머리에 번득,
본능적으로 그 학생에게로 향하는데,
다음 순간 나는 바로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반백의 머리에 무거운 카메라 가방 메고 그 앞에 버티고 서있으면,
누가 봐도 그 그림이, 대놓고 일어나라는 소리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설사 학생이 일어난다 하여도 속을 보인 나의 체면은 어떻게 수습하며,
주변 사람들이 이죽거리며 보내는 시선은 어떻게 감당하나!
온 갓 생각이 더욱더 발목을 강하게 잡는다.
그냥 출입문 주변에 서서 발목에 실린 압박이 고통스럽긴 해도,
표정 관리 잘하며 참고 견디는 것이 체면 유지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한 정거장 두 정거장 지날 때마다 전철 안은 더욱더 복잡해지고
자리에 앉을 확률이 점점 희박해지며 좌절감이 밀려왔다.
손잡이에 온몸을 매달 듯 다리를 꼬고 서서,
안 보려 해도 자꾸만 그 학생에게로 향하는 시선을
돌리고 또 돌리며 몇 정거장이 지났다.
아~ 그런데,
막 승차한 아줌마 한 분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좋은 먹잇감을 발견한 매처럼
다짜고짜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그 여학생 앞으로 황급히 다가가는 것 아닌가.
그러고는 에어컨 바람이 시원 한데도 손바닥 부채질을 호들갑스럽게 하며
힘겹고 괴로운 표정을 짓는다.
다리를 움직이고 몸을 뒤틀 듯하며 신음인지 불평인지 이상한 소리를 지속한다.
그러나 학생은 묵묵부답 머리를 숙인 채 미동도 하지 않는다.
반응이 없자 효과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이번엔 방법을 바꾸어 주변 사람들에게 까지 신경질적인 표정을 지으며
더욱더 노골화된 강력한 방법을 동원한다.
작은 가방을 번갈아 손을 바꿔 들기도 하고, 숨을 크게 하여 몰아 내쉬는가 하면,
전동차의 흔들림을 이용하여 엎으러 질듯 위협하기도 하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계속 불안한 환경을 조성한다.
그래도 학생은 못 들은 척 일어나지 않는다.
자리를 양보할 수 없다는 확고한 의지를 무응답으로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어젯밤 늦게까지 공부에 시달렸던 것 같다.
아줌마와 학생의 대치가 지속되면서 한 정거장이 지났다.
그런데 새로 승차한 할머니 한 분이 주위를 둘러보고는
갑자기 긴장된 표정에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그 여학생을 노려본다.
그러나 잠시 후 할머니는 이내 다른 곳으로 몸을 돌린다.
작업 중인 것을 감지한 듯 다소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아줌마와 학생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이 지속되면서 또 한 정거장이 지난다.
나는 머리 숙인 채 침묵으로 일관되게 저항하는 학생을 바라보며,
얼마나 괴롭고 마음고생이 클까 생각했다.
이젠 포기하고 일어서려 해도 회복할 수 없는 체면 손상이 불가피한 상황 아닌가.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 아줌마를 처음 봤을 때 주저 없이 양보했어야 했다.
그렇게 해서 학생으로서의 모범을 보였어야 했다.
그때가 기회였다.
그때 일어섰더라면 교양 갖춘 예의 바른 학생이 됐을 텐데,
지금 일어서면 버티다 못해 패한 꼴이 되지 않겠는가.
그리고 이미 구겨진 체면을 되돌릴 수도 없지 않은가 말이다.
그렇다고 이 난감한 대치 국면(局面)을 계속 유지 할 수도 없지 않은가.
이젠 자진해서 일어서려 해도 체면 손상이라는 곤혹스러운 문제가 가로막는다.
일어설 수도 안 일어설 수도 없는 상황이 아닌가 말이다.
꼬일 대로 꼬인 상황이 어린 가슴을 짓누른다.
학생의 그런 고민을 아는지 안하무인격 몸부림은 더욱더 고조되고
이젠 그 굵은 허리를 굽혀 다리까지 주무른다.
학생은 고개를 숙인 채 이마에 손을 밀착시켜 얼굴을 숨긴다.
외부의 시선으로부터 보호벽을 친 것이다.
그것은 마음속 심리 변화가 얼굴에 나타나는 현상을 감추어
상대로 하여금 판단의 초점을 흐리게 하려는 의지일 것이다.
그러나 이 땅의 아줌마가 누군가.
그런 학생의 불안심리를 본능적으로 감지한 아줌마는 마지막 스퍼트를 하듯
아예 학생의 다리 사이를 비집고 몸을 바짝 밀착시킨다.
무겁게 처진 아줌마의 몸이 학생을 덮쳐 누르는 형국이 됐다.
사냥한 먹잇감을 꼼짝 못 하게 하여 질식시키는 것처럼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타인의 몸이 닿을 듯 근접하면 반사적으로 거부감이 생기고
불쾌지수가 상승하며 몸을 돌리거나 빠져나가려는 강렬한 욕구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물론 사랑하는 관계에선 그 반대다. < .. 난데없이 이 이야기는 왜 했는지 모르겠네..>
아줌마는 오랜 경험을 통해 그런 것을 몸으로 익혀 잘 인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따라서 상황에 맞게 적시 적절한 테크닉을 잘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기필코 결판을 내겠다는 아줌마의 의지가 절정을 이루는 순간,
학생은 반항심리가 작용한 듯 무겁고 비장한 표정으로 시선을 바닥에 고정 시켜
물러설 수 없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완강하게 발산하고 있었다.
오기가 생긴 것일까.
그러나 아줌마 역시 어떤 회생이라도 치르겠다는 단호한 모습이다.
여기서 더 버티면 훈계라도 할 태세다.
나는 여린 학생이 그 곤경에서 얼마나 견딜 수 있을까 심히 염려스러웠다.
살육의 정글에서 몸을 드러낸 어린 새끼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그리고 괜히 내 자리를 강탈당하는 것 같은 느낌은 웬일인가!
쫓아가, 여기는 내가 선점한 자리라고 주장 하고 싶었다.
아줌마는 오랜 세월을 통해 감각이 무뎌진 탓인지 주변 사람들의 시선엔 전혀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당연함과 당당함이 얼굴에 두껍게 드리워 있었다.
세상엔 극복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데,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진 않았다.
드디어 무대응으로 방어선을 치고 침묵의 항전을 완강하게 펼치던 학생이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마치 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고개를 숙인 채 기어이 일어서고 말았다.
그리고 모든 시선을 피해 바닥을 향한 학생의 표정엔
분패함에서 오는 분노 같은 것이 서려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줌마의 태도가 확 바뀐다.
좀 전의 모습과는 정반대로
만면(滿面)에 웃음을 머금고 지극히 인자(仁慈)한 표정을 지으며
“어머나 이렇게 고마울 수가... 아직도 이런 학생이 있었다니...!!” 하면서
밀쳐내듯 자리에 앉는다.
충격이 컸던지 그런 아줌마의 말엔 대꾸도 하지 않고,
사람들 사이를 헤치며 황급히 살아지는 학생의 얼굴에서
곤경의 늪을 벗어나는 후련함을 읽을 수 있었다.
올가미를 빠져나가는 토끼처럼 말이다.
아마 그 학생은 어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약탈당한 기분을 억누르며
억울한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마 보랏빛 꿈속에서 꽃피는 미래를 향해 성장하는 학생에게
험난한 세상이 입힌 첫 상처인지도 모른다.
나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편안히 자리에 앉아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머금고 만족한 표정의 아줌마를 바라보며
그 노련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스스로의 감정을 무기 삼아 속내를 여과 없이 노출 시켜 원하는 목적을 쟁취하는
그 순발력과 능력은 어디서 학습된 것일까.
누구나 꺼려 하는 일을 주저 없이 실천에 옮기는 그 용기는 어디서 오는 걸까.
지켜야 할 정신(精神)적 가치보다는
본능(本能)적 생존욕구(生存慾求)가 우선 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환경이
우리를 이렇게 변화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
돌이켜 보건대, 각박한 사회적 영향 속에서 이 땅의 가정을 지켜낸 주부가
오랜 세월 동안 진화(進化)해 온 서글픈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숙연(肅然)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나는 그날 목적지 안양에 당도 할 때까지
긴 시간 동안 발목이 붓도록 서서 올 수밖에,,,, 빌어먹을,,,,,,!!
2007년 8월 28일 열운(洌雲)이 쓰다.
첫댓글 암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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