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 그림형제의 동화를 한 편도 읽지 않고 자란 사람 과연 얼마나 될까. 한 명도 없다는 데 올인! 그들의 기발한 상상력이 알고 보니 순박한 마을사람들을 등쳐먹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단다. 사실 여부를 떠나서 아니, 더 큰 기대감으로 마르바덴의 숲-매력적인 신화와 마법의 세계로 떠날 준비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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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기한 모험과 함께 ‘어른을 위한 잔혹동화’를 들려줄 것이라고 믿었다. 서늘한 느낌과 낯익은 캐릭터들의 성대한 잔치가 열릴 줄 알았다. 그러나, 외양만 위험천만할 것 같은 숲에서 그림형제는 도무지 헤어날 줄 모른다. 황소개구리인지 두꺼비인지 정체불명의 양서류에게 키스를 하고 길을 알려달라고 한다. 널부러진 채 꿈쩍도 하지 않는다. 주인공도 모르는 이 상황을 관객은 어떻게 해석하란 말인지. 즐거운 마음에 종합선물세트 뚜껑을 열었다가 손가는 과자가 없어서 그냥 덮어 버린 기분이다.
'때론 진실이 허구보다 더 끔찍할 수도 있다'. 물론 사실이다. 그래도 포장이나마 그럴듯해야지 싸구려 도금이 금새 벗겨져 버린다. 허술한 이야기에 널뛰는 캐릭터, 게다가 환타지도 충족시켜주질 않는다. 대체 어디에 눈을 맞춰야 할지 종잡을 수 없다.
엔딩 크레딧에서 Terry Gilliam이 보인다.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 시리즈처럼 헐리웃 자본에 의해 탄생한 그저 그런 블록버스터 환타지 영화로 알고 있다가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았다. 적어도 전 세계 시네필들이 추앙하던 그 사람이라면, 그저 그런 환타지를 만들어서는 안되지 않는가. ‘Monty Python’ 시절의 상황으로 전하던 농도 짙은 블랙유머는 시시껄렁한 농담 따먹기 수준으로 전락해 버렸고, <Brazil, 1985>의 철학적 사유는 이해할 수 없는 해피엔딩과 함께 휘발돼 버렸으며, <바론의 대모험(The Adventures of Baron Munchausen), 1988>의 신화적 상상력은 사기꾼이던 그림형제가 사기를 치지 않은 순간부터 주저앉고 말았다.
※ 영생(永生)에 대한 갈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절대자의 미련인데, 영생과 주안술(駐顔術)은 짝지가 아니었나보다. 외모야 그렇다 치고, 입맛대로 보여주는 거울만 있으면 충분하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