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순의 삶, 짚신의 정신
신재미
아흔 해의 세월은 한 사람의 나이를 나타내는 숫자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한 시대를 살아온 발자취이며, 수많은 사람과 만나고 배우며 가르치고, 사랑과 신념을 지켜온 삶의 기록입니다. 오동춘 박사님의 구순은 바로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에게 더욱 깊은 감회와 존경을 안겨줍니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어린 시절 광복을 맞이하고, 격동하는 현대사의 한복판을 지나온 박사님께서는 평생 우리 말과 글, 그리고 우리 겨레의 얼을 사랑하셨습니다. 외솔 최현배 선생과 한결 김윤경 선생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한글 사랑이 곧 나라 사랑이라는 믿음을 삶으로 실천해 오셨습니다.
교육자로서도 한평생을 걸으셨습니다. 중·고등학교 교단에서 수많은 제자를 가르치고 대학 강단에까지 서시며, 배움의 길을 밝히고 사람을 키우는 일에 온 힘을 다하셨습니다. 시인이자 국문학자로서 글을 쓰고, 교육자로서 사람을 가르치며, 한글과 민족문화의 가치를 일깨워 오신 그 발걸음은 결코 가볍지 않았습니다.
그 삶의 중심에 짚신문학이 있습니다. 짚신은 소박합니다. 화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질긴 생명력으로 먼 길을 함께 걸어갑니다. 박사님께서 평생 사랑해 오신 짚신은 어쩌면 박사님 자신의 삶과도 닮았습니다. 낮은 자리에서 묵묵히 걸으며, 우리 것의 소중함을 지키고, 진실과 소박함의 가치를 일깨워 왔습니다.
늘 박사님이 말씀하시는 ‘짚신 정신’은 단순히 옛 물건에 대한 향수가 아니라,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할 삶의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진실하게 살고, 서로를 아끼며, 우리 말과 우리 문화를 소중히 여기고, 다음 세대에 아름다운 정신을 물려주는 일. 그것이야말로 박사님께서 걸어오신 길이자 《짚신문학》이 이어가야 할 뜻일 것입니다.
시를 사랑하고 한글을 사랑하며 겨레를 사랑해 오신 박사님의 삶은 한 편의 긴 시와 같습니다. 때로는 가시밭길을 지나고, 때로는 거센 바람을 맞았지만, 그 걸음은 한 번도 우리 말과 우리 정신을 향한 길에서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구순을 맞으신 오늘, 지나온 아흔 해를 돌아보며 박사님의 삶이 더욱 귀하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앞으로 걸어가실 길에는 지금까지 뿌리내린 뜻과 문학의 향기가 더욱 널리 퍼지기를 기원합니다.
짚신 한 켤레가 먼 길을 걸어왔듯이,
박사님께서 걸어오신 아흔 해의 길 또한
우리 문학과 한글과 겨레의 역사 속에 오래 남을 것입니다.
박사님 구순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부디 더욱 건강하시고 평안하시어
백수를 넘어 더 긴 세월 동안
맑은 시심과 한글 사랑, 그리고 변함없는 ‘짚신 정신’으로
후학들에게 귀한 가르침을 전해주시기를 기원하며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