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피아니스트 임동혁의 리사이틀로 시작된 아람누리의 연중기획 <2008 한국의 피아니스트 시리즈> 그 두 번째 무대는 준비된 차세대 거장으로서의 바쁜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여류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이어간다. 손열음은 다음달 18일 오후 8시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에서 스크리아빈의 연습곡을 메인 레퍼토리로 하는 리사이틀 무대를 가진다.
2004년에 이어 지난 2월 내한공연을 가진 로린 마젤과 뉴욕필이 2회 연속 협연자로 선택하면서 음악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은 젊은 여류 피아니스트 손열음은, 1997년부터 차이코프스키 청소년 국제 콩쿠르를 비롯하여 권위있는 각종 국제 콩쿠르를 최연소로 석권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였다.
이후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들과의 협연 및 다양한 연주를 선보이며 활약을 펼치고 있는 그녀는 또래 연주자들에게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음악적 깊이를 느끼게 하는 연주로 대중과 평론가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고난 없는 예술 또한 없기 때문에 좋지 않을 때에도 스스로를 잘 위로하는 편입니다. 좌우명요? 그런 건 없지만 매사에 감사하려고 늘 노력합니다. 그리고 저는 사실 저에 대한 확신이 있습니다”
손열음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삶의 방식에 대해 강한 확신을 피력한 바 있다. 상업성에 매몰된 자기과시형 연주자들이 늘어만 가는 현실에서 이제 만 22세의 젊은 피아니스트가 견지하고 있는 예술에 대한 진지한 자세는 아티스트로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그녀의 행보를 지켜보는 많은 이들을 흐뭇하게 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쇼팽, 베토벤 등 대작곡가들의 전곡 연주회를 잇달아 개최하며 음악의 깊이를 더해가는 동시에 자신만의 신선한 해석을 가미한 성숙한 연주로 젊은 비르투오소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는 손열음. 그런 그녀가 20세기의 전설로 남은 클라라 하스킬, 타티아나 니콜라예바와 같은 거장의 뒤를 잇는 차세대 여류 피아니스트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음악계의 기대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손열음이 선보인 독주회들은 모두 웬만한 거장급 연주자들조차도 버거워하는 대작곡가들의 전곡연주로 꾸며져 왔다. 이는 로맨틱하고 화려한 레퍼토리보다는 학구적이고 예술성 있는 음악으로 정면승부하기를 좋아하는 그녀가 매번 야심찬 도전을 해왔기 때문. 그런 그녀가 이번 공연에서는 스크리아빈의 연습곡을 중심으로 피아노 음악의 성찬(盛饌)을 마련한다.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피아니스트 미켈란젤리가 즐겨 연주했던 갈루피의 피아노 소나타 제5번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선보이는가 하면, 서로 연결된 선후배 낭만주의 작곡가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슈베르트의 즉흥곡과 리스트의 ‘비인의 야회(夜會)’를 연주한다.
즉흥곡은 슈베르트의 음악세계가 피아노로 구현된 걸작 중의 걸작으로 작곡가의 피아노 음악세계를 이해하는 첩경이자 전부라 할 수 있다. 리스트의 ‘비인의 야회(夜會)’는 총 6곡으로 이루어진 소품이지만, 소품이라 하기에는 비르투오조 작곡가의 모든 기교가 망라된 어려운 곡이기도 하다.
슈베르트의 예술가곡을 즐겨 피아노로 편곡해 연주하기를 좋아했던 리스트는 슈베르트가 작곡한 소품 형식의 춤곡에서 6개를 골라 ‘슈베르트에 의한 왈츠-카프리스’라는 부제를 붙여 ‘비인의 야회(夜會)’를 완성했다. 슈베르트의 청순하고 아름다운 선율에 리스트의 화려한 기교가 덧붙여진 이 매력적인 음악이 손열음의 손끝에서 어떻게 구현될지 관심이 모아진다.
그러나 이번 손열음 리사이틀의 하이라이트는 20세기 작곡가 스크리아빈의 연습곡이다. 난곡(難曲) 중의 난곡으로 대작곡가의 진면목을 올곧게 전하기에 조금도 부족함 없는 대작으로 ‘러시아의 피아노 시인’이라 불렸던 작곡가의 모든 역량이 투입된 걸작이다.
신비주의에 입각한 독특한 화성체계를 구축했던 스크리아빈의 음악과는 오히려 다른, 극히 러시아적인 로맨티시즘이 전편에 흐르고 있는 26곡의 연습곡은 손열음의 독창적인 해석을 통해 관객들에게 또 다른 감동을 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