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직 대통령 모두 큰 시련 … 풍수학자들 “사람 살기에 좋지 않은 터로 이전 바람직”
”청와대가 등지고 있는 북악산은 곧추세운 엄지손가락 모양이다.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서 북악산을 보면 ‘내가 넘버 원이야’ 하듯이 저 혼자 우뚝 서 있는 형상에다
산 정상이 동쪽으로 삐딱하게 휘어진 모습도 엄지 끝부분과 비슷하다. 산이 저 홀로 잘났다고 서 있으니
사람에게 편안함을 주지 못하고, 사람을 품어주기는커녕 남의 의견을 전혀 듣지 않으려는 고집불통의 기가 드세다.
역대 대통령들이 청와대에 들어간 이후 독선적인 북악산을 닮아갔는데,
아무리 국민의 지지를 많이 받는 정권일지라도 대통령의 독선은 또 다른 독재를 불러오게 된다.…”
일제시절 총독들도 병사하거나 수감 ‘비참한 말로’
화가 홍성담씨가 1998년 김대중 대통령 청와대 입성 당시 ‘신동아’(1998년 3월호)에 기고한 ‘풍수 미학’이라는 제목의 글이다.
홍화백의 우려대로 역대 대통령들은 결코 아름답다고 할 수 없는 청와대 생활을 마감하고 있다.
청와대와 역대 대통령의 궁합이 좋지 않다는 것은 청와대 역사가 증명한다.
1945년 광복 이후 청와대에 입성한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말년에 청와대에서 쫓겨나 해외에서 객사했고,
4·19 혁명의 여파로 청와대 주인이 된 윤보선 전 대통령은 1961년 5·16 군사 쿠데타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났으며,
총으로 청와대를 차지한 박정희 전 대통령 역시 부하의 총에 맞아 숨지는 비극을 맞았다.
이어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은 퇴임 후 재임시절의 비리로 인해 수감되는 초유의 사태를 빚었으며,
김영삼 전 대통령은 ‘IMF 신탁통치’라는 전대미문의 사태를 초래한 책임자라는 오명과 함께 차남이 구속되는 치욕적인 사건을 겪었다.
우석대 김두규 교수(풍수지리학)는 현재의 청와대 터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일제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제는 우리나라를 강제 병탄한 뒤 경복궁 바로 앞에 조선총독부 청사(구 국립중앙박물관 터)를 세우고
청와대 구 본관 자리에 총독 관저를 지었다.
그런데 처음 그 터를 잡은 총독 미나미 지로는 종전 후 전범으로 몰려 복역중 병사했고, 고이소 구니아키, 아베 노부유키 등
역대 총독들도 정적에 의해 제거되거나 징역을 사는 등 말로가 비참했다.
청와대 구 본관을 헐고 91년 현재의 자리에 새로 청와대를 지어 입주한 것이나,
청와대 이름을 ‘백양관’으로 바꾸려는 논의가 있었던 것은 이러한 풍수적 배경 때문이었다는 얘기가 풍수계에 널리 퍼져 있다.”
문제는 청와대 구 본관 자리건 지금의 자리건 이 터 전체가 사람이 살 만한 집터가 아니라 ‘신이 사는 곳’이라는 점이다.
일찍이 풍수학자 최창조씨(전 서울대 교수)는 “경복궁의 북문인 신무문(神武門)을 경계로 그 아래는 삶의 공간이지만 그 위,
즉 청와대 자리는 신의 자리, 죽음의 공간”이라고 주장해왔다.
“그곳의 주인만 되면 권위주의적 인물로 바뀌는 청와대 터는 문제가 많다”고 말한다.
주산인 북악산이 수려하지만 규모가 인왕산에 비해 작아, 이런 곳에 외로이 오래 거주하다 보면
왜소한 독불장군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최 전 교수는 “이건 풍수학적인 해석이라기보다는 환경심리학적 해석”이라며
“청와대 지대가 꽤 높아 이곳에선 남산과 서울 시내를 모두 굽어볼 수 있다.
대통령이 모든 걸 다 파악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 쉬운데, 실제로는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꼭 그의 말이 아니더라도, 청와대는 흔히 구중궁궐에 비유된다.
권부의 상징이란 뜻도 있지만, 국민과 떨어져 권위의 벽에 갇혀 있다는 뜻도 담겨 있다.
실제 청와대에서 근무한 많은 인사들은 본관이 ‘조선시대 왕이 살던 대궐을 연상시킨다’고 말한다.
박준영 전 청와대 대변인은 “본관에서 일하다 보면 그 내부 장식과 형식적 웅장미에 압도돼 저절로 궁중문화에 젖기 쉽다”고 말했다.
역대 대통령들이 모두 임기 말엔 국민과 멀어진 채 극심한 정치적 위기를 겪은 데엔, 청와대의 구조가 적잖은 역할을 했다.
본관이 대통령 한 사람만을 위한 공간으로 구성되다 보니, 그 웅장한 규모에 비해 방 수가 적고
대통령의 동선(動線·걸어서 움직이는 행로)이 길다. 경호실이 본관 구조에 불만을 표시한 이유 중 하나도 동선이 길다는 점이었다.
대통령이 하루 종일 업무를 보는 집무실에 대해,
청와대 수석비서관을 지낸 인사는 “큰 운동장만 한 방에 대통령 책상과 회의용 탁자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흡사 절간을 연상시킨다”고 표현했다. 누구나 청와대 본관에 들어서면 그 웅장한 구조에 위압감을 느낀다.
2층 계단을 올라 대통령 집무실에 들어서면 긴장은 극에 달하게 된다.
어느 장관이 집무실 문을 열고 대통령 책상 앞까지 가는 도중에 너무 긴장해 오줌을 쌌다는 일화가 그럴듯하게 나돈다.
그러니 대통령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기가 어렵다.
공간 배치가 중요한 이유는 물리적 거리 때문이 아니다.
거리가 멀면 참모들과 신속하고 원활한 대화를 하기 어려워진다.
참모들과 쉽게 만나지 못하면 대통령 혼자서 또는 극소수의 측근들만 불러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
최창조 전 서울대 교수의 말처럼,
모든 정보를 손에 쥐고 모든 사안을 다 꿰뚫어볼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 쉬운 대통령은
훨씬 더 독단적이고 주관적인 정책 결정에 휩쓸리기 쉬워진다.
청와대 비서실 직원들을 상대로 동양철학을 강의한 바 있는 조용헌 교수(원광대) 역시 청와대 뒷산인 북악산을 직접 둘러보고
“바위들이 살기(殺氣)를 너무 많이 내뿜어 사람이 살기에 적당하지 않다”고 감평했다.
“조선시대에는 양택을 잡을 때 금기 사항 중 하나가 바위가 노출된 곳을 피하라는 것이었다.
노출된 바위는 지기(地氣)가 마치 전기를 뿜어내는 것과 같아 정신 수행자에게는 에너지로 작용될 수 있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살기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와대 터는 기도 장소나 사당 터로 이용하기에 좋다.
조선의 정통 풍수사상에 따르면 이곳에 사람이 사는 양택이 들어서지 않았을 터인데,
일제 침략을 거치면서 풍수적 관념이 퇴색해 이런 현상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조교수의 말이다.
청와대에 들어간 이후 독선적인 북악산을 닮아갔는데,
아무리 국민의 지지를 많이 받는 정권일지라도 대통령의 독선은 또 다른 독재를 불러오게 된다.…”
조교수는 자신의 저서 ‘조용헌의 사주명리학 이야기’에서 “풍수란 동양의 자연과학이기 때문에 미신이라고 외면할 게 아니라
현재에도 여전히 유용하게 쓸 수 있도록 학문적 영역에서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사람이 지기라는 자연의 흐름에 맞추어 살 때 가장 조화로운 삶이 가능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신이 노니는 자리에 사람이 산다는 것은 이미 조화가 깨진 셈.
달리 말해 대통령이 ‘신적 권위’를 가지고 구중궁궐 깊은 구석에 앉아 큰절을 받는 현재의 청와대 형상은
분명 민주국가의 대통령 모습과는 차이가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청와대를 출입해본 정치권 관계자는
“현 청와대가 왕조시대 궁궐을 본떠 지극히 권위주의적인 분위기로 만들어지면서 대통령이 철저히 외부와 차단되고,
설혹 누가 대통령과 면담하더라도 이 같은 분위기에 압도돼 ‘직언’을 하기 어렵게 돼 있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풍수지리 입장에서 터가 좋지 않아 대통령들의 임기 말이 모두 좋지 않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는 것.
이 때문에 대다수의 풍수학자들은 청와대의 단점을 고치는 비보(裨補) 풍수로는 한계가 있고,
아예 청와대 자체를 이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풍수학자들은 여러 불편함을 모두 감수하고서라도 청와대를 이전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한결같이 불행을 겪었던 전·현직 대통령들의 전철을 더 이상 답습할 수 없거니와,
우리나라의 국운과 국민을 위해서 청와대를 더 이상 사람이 사는 공간으로 놓아둘 수는 없다는 이유에서다.
풍수 미학론자인 화가 홍성담씨는 “21세기의 새로운 비약과 남북통일을 위해서도 더 이상 청와대 터는 대통령 궁이 돼서는 안 된다”며
“지금의 청와대는 기념관이나 전시관을 만들어 독재정치를 경계하는 역사교육의 현장으로 활용하는 것이 좋다”는 주장을 펼쳤다.
주간동아 [안영배 기자] 기사와 [박찬수] 한겨레 논설위원의 한겨레21 기사에서 발췌.
청와대가 앞으로 어떤 미래를 맞이하게 될 지 다같이 지켜볼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