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이한 모양의 빌딩을 지은 국제그룹, 신동아그룹, 벽산그룹… 西向으로 지은 대우그룹 몰락 창경궁 영화당 뒤편에 十字脈의 大명당 있어
金聖洙 1935년 구례 화엄사 아랫마을 출생. 호 靈目. 건국大를 졸업하고 건설부에서 근무하던 중 뜻한 바 있어 사임하고 나와 사업에 투신하여 성공한 후 세계를 일주하며 동서양 풍수지리학을 섭렵했다. 특히 한국 풍수지리학의 鼻祖인 玉龍子 道詵國師의 비법을 연구하여 많은 영향을 받았다. 저서로 「名堂」이 있다.
金聖洙 尋穴名堂硏究所長
집은 균형이 잡히고 반듯해야
家相이 균형잡혀 있어 풍수학상 좋은 서울 삼성동 인터컨티넨탈호텔(사진 좌). 서울 용산의 국제센터빌딩(사진 우)은 특이한 외관 때문에 풍수학상 좋지 않다.
주택이나 城邑(성읍)의 풍수지리학적인 분별과 길흉 판단을 「陽宅風水(양택풍수)」라 한다. 그중에서 특히 빌딩이나 좁은 의미의 주택, 즉 살림집의 형세와 방위 등을 살펴 吉凶(길흉)을 논하는 분야를 「家相學(가상학)」이라 한다. 넓은 의미의 陽宅風水거나 좁은 의미의 家相學이거나 그 원리는 같다.
한국의 지리 풍토에서는 背山臨水(배산임수) 형세를 가장 이상적인 住居(주거)의 조건으로 치는데, 이는 풍수지리학의 원리에 부합된다.
뒤로는 산이 두르고 앞으로는 물이 흐르는 지형이 배산임수다. 뒷산은 다시 主山(주산)과 左靑龍 右白虎(좌청룡 우백호)로 벌어지고 마을이나 집의 전면에 案山(안산)이 있어야 좋은 형세이다.
이처럼 외형적 조건이 갖추어지면 그중에 반드시 生氣處(생기처)가 있게 마련이다. 배산임수의 지형에, 좌청룡 우백호와 안산을 두루 갖춘 지형에 생기처가 있는 곳이 명당이다. 생기처에 집을 지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모든 집을 이런 명당 터에 지을 수는 없다. 생기처가 아니더라도 터가 반듯하며 집의 相이 좋고, 중요한 요소(예를 들어 대문, 부엌, 안방 등)의 방위가 적절하다면 「좋은 집」의 요건을 갖춘 셈이다.
도시도 마찬가지다. 큰 도시가 되려면 뒤로 큰 산이 두르고 앞으로 큰 물이 있어야 한다. 서울을 보면 간단하게 이해할 수 있다. 조선조 500년의 도읍이었고, 현재 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이야말로 배산임수의 조건을 두루 갖췄고 여러 군데에 생기처를 가진 천하의 吉地(길지)이다.
필자는 家相의 기본으로 집의 균형이 맞고 반듯하며, 크기가 적당하고, 중심이 잡혀야 한다는 점을 들어 왔다. 반듯한 집은 균형이 있게 마련이다. 왜 균형이 잡히고 반듯해야 할까?
「조화」와 「균형」은 동양사상의 요체인 「中道(중도)」의 또 다른 이름이다. 균형을 잃은 형태는 일탈이며 비정상이다. 善惡의 개념으로는 惡에 해당하며, 吉凶으로 따지면 凶이다.
一字形 삼간집
실제로 필자가 지금까지 발품으로 살펴보고 확인한 바로는 큰 부자가 나온 집과 큰 권력자를 배출한 집은 거의 예외 없이 一字形(일자형) 삼간집들이었다. 글자 그대로 초가삼간인데 집의 모양이 반듯하고 방위가 吉方(길방)이었다. 좌청룡 우백호가 뚜렷하고 안산이 잘 차려진데다 물이 앞으로 들어오는 형세를 갖추고 있었다. 풍수는 「藏風得水(장풍득수)」의 준말이다. 바람을 갈무리하고 물을 얻는 것이 풍수의 기본 원리라는 뜻이다. 「좋은 집」의 기본 조건은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家相學의 전문적인 지식에 따라 「좋은 집」으로 판단되는 집은 家相學에 특별한 지식이 없는 보통 사람들이 보아도 「참 편하다」든지 「보기 좋다」든지 어딘지 모르게 편안하고 친근하게 느껴지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반대로 家相學상 「나쁜 집」은 보통 사람들이 보아도 어딘지 불편하고 억지스러우며 친근감이 느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앞에서 말한 家相學의 기준에 따라 서울시내에 있는 명당 집과 집터를 살펴보자.
서울 안국동에 있는 尹潽善 前 대통령의 古宅.
李承晩 대통령이 살던 梨花莊
「서울시내」라고 말했지만 드넓은 서울 시내의 집을 일일이 답사했던 것은 아니다. 풍수지리학적인 요건을 갖춘 江北(강북)을 중심으로 살펴보았고, 江南의 신흥 아파트촌은 답사 대상에서 제외했다.
오늘날 돈은 강남에 몰려 있고, 미래 人材(인재) 양성의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교육투자도 강남에서 상대적으로 더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필자의 소견으로는 (서울의) 강남에 비해 강북에서 미래의 「큰 인물」이 나올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 「한양」의 생기는 아직 소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종로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명당은 이화동에 있는 梨花莊(이화장)이다. 초대 대통령 李承晩(이승만) 박사가 오랜 망명생활을 끝내고 조국으로 돌아와 景武臺(경무대: 청와대의 옛 명칭)로 들어가기 전까지 살던 집이다.
대한민국 정부의 초대 내각이 이곳에서 짜였다. 이화장 내부에서 초대 내각을 구상했던 5평 남짓의 작은 방을 「組閣堂(조각당)」으로 명명해 놓고 있는데, 이곳이 강한 생기가 넘치는 천하 명당이다. 조각당의 입구에 서면 서울의 핵심이 한눈에 들어온다. 실내에 들어서면 강렬한 氣(기)가 전류처럼 느껴질 정도다.
동숭동 일대에 좋은 터와 집들이 더러 있다. 동숭동에서 길을 건너면 서울대학병원이 볼썽사납게 앞을 가로막는다. 그러나 서울대학병원 원장실에 들어서면 명당의 氣가 살아 있다.
혜화동의 李甲成(이갑성)옹이 살던 집도 명당이다. 李甲成옹은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人 가운데 마지막까지 생존했던 분이다. 그의 아들 李用熙(이용희) 前 국토통일원 장관은 정치학자이자 미술사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화동의 옛 경기고등학교 자리는 서울 시내에 있는 3大 명당 중 하나다. 다른 두 곳은 창경궁 북쪽 영화당 부근과 남산 정상의 송신탑 앞이다. 이웃 가회동의 천주교 성당 부근에 강한 氣가 살아 있는 명당이 있다. 안국동의 尹潽善(윤보선) 前 대통령이 살던 집이 명당이고, 인접한 대원정사와 안국선원에 생기가 있다.
대한민국 초대 내각 인선이 이루어진 이화장內 組閣堂.
생기가 넘치는 鄭周永 회장의 청운동 집
서울 신문로에 있는 성곡미술관.
방향을 돌려 인왕산 아래로 오면 첫눈에 들어오는 명당으로 청운동의 鄭周永(정주영) 회장이 살던 집을 만나게 된다. 이 집은 구조적으로 약간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기가 넘치는 명당이다. 건국 후 가장 다이내믹한 일생을 보내며 국가의 富(부)를 일구었던 鄭周永 회장은 이곳에서 40년가량 살면서 현대그룹 신화를 일구어 냈다.
뒷날 鄭회장은 가회동으로 이사를 갔다. 이사 간 지 몇 개월 만에 한국 경제는 IMF 외환위기의 낭떠러지로 굴렀고, 한국 경제를 대표하던 현대그룹은 분란과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생전에 鄭周永 회장은 장남 鄭夢九(정몽구)씨에게 『이 집에 생기가 있으니 여기서 살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하지만 청운동 집은 현재 비어 있다.
그 옆의 신교동 일대는 조선 초 無學(무학)대사가 인왕산 아래 궁궐터로 점지했던 곳이다. 무학대사가 『인왕산 아래에 東向(동향)으로 (궁궐을) 앉히라』고 했던 바로 그 자리가 이 일대임이 분명하다.
그중에서 조선 말 嚴妃(엄비)가 출생했고, 日帝(일제)시대에는 총독부 관리들의 관사가 10여 채 들어 있다가 광복 후 초대 국무총리 李範奭(이범석) 장군과 許政(허정) 내각수반이 살았던 집이 생기 넘치는 명당으로 꼽힌다.
신문로에 있는 성곡미술관이 또한 명당터이다. 가짜 학위 파문을 일으킨 신정아씨가 근무했던 성곡미술관은 원래 쌍용그룹 창업주인 省谷 金成坤(성곡 김성곤)이 살던 집이다.
省谷이 살던 때의 이 집은 명당이었다. 省谷이 집무하던 방에는 강한 생기가 있었다. 省谷이 살던 옛집을 허물고 미술관으로 새로 지은 두 채의 현대식 건물은 명당터의 장점을 배려하지 않고 겉모양과 실용성만 중시했기 때문인지 家相이 좋지 않다. 그러나 집터의 생기는 변함이 없으므로 家相만 보정한다면 다시 「좋은 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방향을 돌려 소공동 조선호텔 앞 圓丘壇(원구단)에 눈길을 줄 만하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원구단에는 생기가 없었다. 그 부근의 롯데호텔과 한국은행 등이 생기 있는 명당에 자리 잡고 있었다.
장충동 朴正熙 공관 자리
남산 정상의 송신탑 북쪽 빈 터는 강한 생기가 있는 서울시내의 3大 명당 중 하나이다. 여기서 발원한 생기가 남산의 북쪽 자락을 타고 흘러 명동성당에 이르러 명당을 빚었고, 필동의 이명희씨 시가와 대농그룹 창업주가 살던 집 등 몇 개의 큰 혈을 만들어 놓았다.
남산의 동쪽으로 돌아 장충동에 이르면 태극당 제과점 자리에 생기가 있다. 그 뒤편의 옛 외무부 장관 공관 자리가 명당이다. 이 터는 朴正熙(박정희) 前 대통령이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시절 공관으로 사용했던 곳이다. 지금은 파라다이스그룹 소유로 비어 있다. 그 집터의 앞에 다른 건물이 들어서 활용하기가 쉽지 않게 된 까닭인데, 아무튼 아쉬운 일이다.
삼성그룹 창업주 李秉喆(이병철) 회장이 살던 장충동 집은 원래 일본인 부호의 집이었다. 젊을 때부터 풍수에 일가견이 있었던 李秉喆 회장은 「만석꾼이 살던 집에 들어가야 만석꾼이 된다」는 신념을 가지고 물색한 결과 일본인 대부호가 살던 집을 매입했다고 전한다. 그는 장충동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혜화동에 살았다. 이 집은 현재 李秉喆 회장의 장손인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살고 있다.
朴正熙 前 대통령의 私邸(사저)가 그대로 보존되고 있는 신당동에 좋은 집이 많이 있다. 여기서 동쪽으로 내려가면 2002년 大選 때 李會昌(이회창) 후보가 잠시 옮겨 와 살던 집이 있는데, 이 집에도 생기가 있다.
지난날 일본인들이 집단으로 거주했던 충무로 일대에 좋은 터가 많다. 효창동을 중심으로 한 원효로 일대는 그 자체가 서울의 명당이다. 물이 서북방으로 빠지는 곳이 잘 개발되고 발전하는 추세인데 원효로가 바로 그러한 곳이다.
李秉喆 前 삼성그룹 회장의 장충동 저택.
창경궁 영화당 뒤편에 大명당이 있다
창경궁 전경.
한강 건너 압구정동에는 압구정 정자와 舊(구)현대아파트 사이에 기념비가 하나 서 있는데, 바로 그 부근에 동서로 길게 생기가 발생하는 명당이 있다. 이 외에 강남지역에는 명당의 조건을 구비한 터가 散在(산재)해 있으나 대부분 아파트가 밀집하여 생기처의 장점을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의 명당터를 말하면서 창경궁 내에 있는 十字脈(십자맥)의 大명당을 다시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풍수학上 강조할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창경궁 북쪽 비원과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영화당 뒤편에는 보기 드문 십자맥이 있다.
일본인들이 조선의 기맥을 말살하기 위해 경복궁 터를 잘라내어 총독부 청사를 지은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필자는 그보다 더 중대한 죄악이 창경궁에 동물원을 짓고, 십자맥에 동물 박제전시장을 만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십자맥의 명당 터는 서울대학병원이 內靑龍을 이루고 낙산이 外靑龍을 이루었으며, 창신동까지 청룡맥이 굽이굽이 안으로 감싸고 돌았고, 白虎 또한 흠결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인왕산이 外白虎로 아주 단아한 모습이다.
박제전시장 건물을 철거한 그 자리가 지금까지 비어 있는데, 이만저만한 「국가적 손실」이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여기서 다시 한 번 강조하려는 것이다.
이 명당은 이미 밝힌 대로 「主山도 좋아야 하지만 반드시 수구에 獨山(독산: 명당터 앞에 보이는 독립된 산)이 있어야 한다」는 풍수학상의 이치를 고스란히 갖추고 있어 더욱 귀중한 존재다. 무학대사가 처음 왕십리에 새 수도를 정하고자 했던 것은 한양대학교 쪽의 독산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었다.
경복궁을 인왕산 아래에 지었더라면
63빌딩.
창경궁 십자맥의 독산은 대학천과 청계천이 마주치는 곳에 아직 남아 있다. 사람들의 눈에는 잘 띄지 않으나, 작은 언덕 위에 식당과 낡은 주택들이 밀집한 채 독산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필자는 이곳이야말로 서울의 핵심이요, 길이 보존해야 할 풍수학상의 요체라고 믿고 있다.
조선 초기 경복궁을 지을 때 화재가 세 번이나 발생했다. 그만하면 「하늘의 뜻」을 헤아려야 함에도 鄭道傳(정도전)은 경복궁 건설을 강행했다. 그 후 鄭道傳과 그의 아들들은 非命(비명)에 갔고, 조선조는 임진왜란·병자호란 등 대란을 겪었다. 광복 후에는 6·25전쟁이라는 前代未聞(전대미문)의 同族相殘(동족상잔)을 치러야 했다.
조선 건국 당시 正宮(정궁)인 경복궁을 창경궁 자리나 인왕산 아래에 세웠다면 임진왜란, 병자호란, 6·25 같은 환란은 없었을 것이라고 필자는 확신한다.
흥선대원군이 살던 운현궁은 집터가 좋지 않고, 대문이 西向인데다 내부의 正南向 집에까지 西向門이 달려 있다. 대원군처럼 풍수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이 어찌하여 이런 실수를 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좋은 집, 좋은 터가 있으면 반대로 좋지 않은 집과 좋지 않은 터가 있는 법이다. 최근 서울시는 앞으로 아파트의 모양을 다양화하겠다는 방안을 내놓고, 그 모델을 제시했다. 필자는 「아파트의 다양한 모델」을 보고 겁이 덜컥 났다. 그 「다양한 모델」이라는 것은 아주 좋지 않은 家相의 표본들이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균형이 맞지 않는 집들의 조합이었는데 美學的(미학적) 욕구는 충족할 수 있을지 몰라도, 사람이 사는 동네의 모습으로서는 맹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이상한 모양의 건물을 지으면 몰락한다
삼일빌딩.
家相의 요체는 균형이다. 지난날 헐어버린 중앙청 청사, 한국은행, 그리고 서울역은 균형이 잡힌 건물들이었다. 옛 서울법대에서 문리대 사이에 목조의 일본식 건물이 하나 남아 있는데 균형이 아주 잘 맞은 집이다. 이처럼 일본식 건물, 일본인들이 지은 건물들은 비교적 반듯한 편이고, 균형이 잘 맞는 집들이었다.
반듯한 집을 선호하는 경향은 일본 사람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유럽에서는 집의 균형을 가장 먼저 고려해 짓고 있다.
강남의 E아파트는 멋을 부리고 자투리땅을 활용하기 위해, 단지 내 아파트 건물들을 둥글게 짓거나, 모나게 지었다. 그 결과는 좋지 않았다.
E아파트뿐 아니라 좁은 땅에 아파트 한 棟(동)이라도 더 지으려고 온갖 머리를 짜내어 아파트를 지어 분양했던 업자들 상당수가 부도로 망했다.
건물 외형이 멋있어 보이면서 한편으로 불안감을 주는 건물로 용산에 있는 국제빌딩을 첫 손가락에 꼽는다. 이 빌딩은 설계를 잘했다고 賞(상)을 받았다. 하지만 이 건물을 지은 국제그룹은 해체됐고, 그 뒤에 이 건물에 들어간 한일그룹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나 존재하고 있다.
서울의 고층건물을 상징하는 신동아그룹의 63빌딩은, 그만한 높이의 빌딩이라면 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처럼 안정감 있게 올라가야 하는데, 이 빌딩은 만곡형으로 불안하게 올라가다가 가운데가 두 쪽으로 쪼개졌다. 좋지 않은 相이다. 무교동의 동아빌딩도 쪼개졌는데, 동아그룹 역시 사라지고 말았다.
쌍둥이 빌딩은 풍수학上 좋지 않아
서울 삼성동 무역센터 빌딩과 인터컨티넨탈호텔.
서울역 앞의 벽산빌딩은 처음 정우개발이 이 빌딩을 짓는 도중에 경영자가 중풍을 맞았고, 잘 나가던 건설회사가 사양길에 들어섰다. 그 뒤에 들어온 벽산그룹은 그룹 해체의 고난을 당했다.
光州(광주)에 있는 조선大는 본래의 건물을 앞뒤로 에워싸는 형식으로 건물을 새로 지었다. 그 후 이 대학은 끊임없는 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었다.
한때 서울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었던 삼일빌딩은 건물의 아랫부분보다 윗부분이 더 커서 마치 버섯을 세워놓은 것 같은 형상이다. 이 건물의 주인들은 편하게 富(부)를 누리지 못하였고, 주인이 자주 바뀌었다.
군대 사령부 건물의 모양새는 아주 중요하다. 지난날 필자는 ○군단 사령부 건물의 家相을 보정해 준 일이 있다. 필자가 보정하기 전의 군단 사령부 건물은 옥상의 가운데를 비워 둔 채 양편으로 뾰족한 지붕을 세워 멋을 낸 건물이었다. 이 군단 예하 부대가 12·12 사태 때 일역을 담당했다.
필자는 지붕의 가운데에 뾰족한 지붕 모양 하나를 더 만들게 하여 逆(역)의 기운을 보정해 주었다.
서울 용산의 철도부지에 쌍둥이 빌딩을 세운다는 계획이 발표된 일이 있었다. 풍수학상 같은 건물을 나란히 세우면 좋지 않다. 9·11 사태로 무너진 맨해튼의 쌍둥이 빌딩이 좋은 예다.
西向집은 피해야
대우빌딩.
옛 한옥들이라고 모두 반듯한 모습은 아니다. 한옥에서 一字(일자) 집은 좋으나 ㄱ자, ㄷ자 집들은 다 좋지 않다. 큰 인물이 난 명당 집들은 예외 없이 一자형이었다.
지붕이 휘어진 것은 좋지 않은 집이다. 지붕의 윗선은 반듯해야 한다. 우리나라 궁궐 중에는 지붕이 휘어진 것이 많은데, 조선시대 왕실이 피폐했던 원인의 하나를 여기서 발견할 수 있다.
현대에 와서 조선호텔이 반듯하지 못한 형태로 지어져, 건축 도중에 건축주인 관광공사 사장이 구속되었고 끝내 주인이 바뀌었다.
강남구 삼성동의 무역센터 건물은 열쇠형이다. 균형이 맞지 않는 집, 家相이 나쁜 집이다. 처음 이 건물이 완공되었을 때는 서로 이 건물에 입주하려고 경쟁이 붙었으나 요즘은 별로 인기가 없다.
무역센터 건물 앞에 있는 인터컨티넨탈호텔은 균형이 잘 맞는 집인데 몇 해 전 가까운 거리에 새로운 건물 하나를 더 지었다. 발전한 것이다.
서울시청 앞 광장 건너편에 삼각형의 건물이 있다. 귀하고 비싼 땅의 한정된 공간에 빌딩을 세우려다 보니 이런 모양이 되었겠지만 좋은 발상은 아니다.
서울의 중앙우체국 건물은 네 블록으로 쪼개 놓은 건물이다. 정부의 소유물이라 유지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이런 식으로 짓지 말았으면 좋겠다.
빌딩이나 주택이나 西向 집은 좋지 않다. 특히 건물보다 건물의 출입구나 대문이 西向이면 나쁜 家相으로 친다. 서울역 앞 대우빌딩이 그 증거이다.
태평로에서 북창동 쪽으로(西向으로) 서 있는 빌딩들은 거의 주인이 바뀌거나 변화가 심했다. 건물을 짓고 있는 사이에 주인이 교체되는 예가 많았다.
증·개축은 신중히 해야
집은 사람의 신체와 같다. 사람의 얼굴을 보고 그 사람의 운명을 점치는 관상학이나 지세와 형국을 보고 명당 여부를 가리는 풍수지리학이나 원리는 대동소이하다. 그래서 어떤 이는 「집은 제2의 子宮(자궁)」이라 말하고, 또 어떤 이는 집을 증·개축하는 일을 두고 「수술」에 비유한다. 옳은 말이다.
「증·개축은 아니함만 못하다」는 말이 있다. 함부로 집을 증·개축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全斗煥(전두환) 前 대통령은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기 전에 연희동 私邸를 증축했는데, 심사숙고 없이 공간을 늘려 「좋지 않은 집」으로 만들어 버렸다. 盧泰愚(노태우) 前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대통령의 권좌에서 물러나면 대통령이 되기 전의 자연인으로 돌아갈 수 없다. 나라에서 경호원을 붙이고 여러 가지 대우를 하기 때문에 집을 늘려야 한다. 盧泰愚 前 대통령은 그 때문에 집을 늘린 것 같은데 그 모양이 아주 좋지 않아 필자는 『저 집 주인이 감옥에 갈 것』이라고 했는데 과연 그렇게 되었다.
盧武鉉(노무현) 대통령은 퇴임 후를 생각하여 김해 봉하마을에 「타운」을 조성한다는 소문이다. 어떤 타운이 조성될 것인지 아는 바가 없으나 조화와 균형을 잃지 말고 자연스럽게 살 수 있는 집들을 짓기 바란다.
증·개축과 관련하여 사람이 살다 보면 할 일이 늘어나고 사회적 활동 반경이 넓어지면서 현재 살고 있는 집이 좁아서 이웃 집을 매입해 합치는 경우가 가끔 있다. 이는 좋지 않은 방법이다. 더 넓은 집이 필요하면 아예 다른 집을 물색하든지 새로 지어야지 이웃 집을 사들여 임의로 넓히는 것은 좋지 않다. ●
바로잡습니다 지난 月刊朝鮮 10월호 「한국의 명당」에 실린 금호그룹 朴仁天(박인천) 회장 관련 내용(621쪽) 중 「박인천 회장 내외가 잠들어 있다」고 한 부분은 사실과 다르기에 바로잡습니다. 금호그룹 측에서는 『故 박인천 회장의 부인 이순정(1910년 출생·97세) 여사가 현재 생존해 있으며, 光州 중앙여고 內 박인천 회장 묘소 옆에 있는 봉분은 이순정 여사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