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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론의 장미(IMMANU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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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강좌 스크랩 36강 사무엘하 (1) 다윗의 헤브론 통치기간
최재구 추천 0 조회 20 11.08.08 20:3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사무엘하서는 그 전체 책 전부가 다윗의 치적을 다룹니다. 다윗 이야기 외에는 딴 얘기 없습니다. 거의 다 다윗의 이야기에요. 이제 다윗의 망명 생활이 다 막을 내리고 새로운 장이 열리죠?

사울 왕가에서 다윗 왕조로 전권이 넘어가는 이 과도기 이야기가 사무엘하서 첫머리에 나오는데, 거기 지나왔습니다마는, 성경에 이상한 부분이 가끔 있거든요. 지나온 사무엘상서 중에 조금 살펴보고 지나가야되겠는데, 17장 한번 보세요. 사무엘상 17장 50절 이하인데, 다윗이 이같이 물매와 돌로 블레셋 사람을 이기고 그를 쳐 죽였으나 자기 손에는 칼이 없었더라. 다윗이 달려가서 블레셋 사람을 밟고 그의 칼을 그 집에서 빼어내어 그 칼로 그를 죽이고 그 머리를 베니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 용사의 죽음을 보고 도망하는지라. 이스라엘과 유다 사람들이 일어나서 소리 지르며 블레셋 사람을 쫓아 가이와 에그론 성문까지 이르렀고 블레셋 사람의 상한 자들은 사아라임 가는 길에서부터 가드와 에그론까지 엎드러졌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블레셋 사람을 쫓다가 돌아와서 그들의 진을 노략하였고 다윗은 블레셋 사람의 머리, 이게 골리앗의 머리죠? 그 블레셋 사람의 머리를 예루살렘으로 가져가고 갑주는 자기 장막에 두니라.

 

이게 뭐가 잘못된 거 같아요? 뭐가 잘못된 게 있는데 뭐에요? 잘 안보이는 거죠? 솔직히. 지금 골리앗의 머리를 베어서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가져갔다고 하는데, 그게 말이 안된다 그 말이에요. 예루살렘은 아직 빼앗지도 않았어요. 예루살렘은 아직 다윗의 수중에 있는 것도 아니고, 사울의 수중에 있는 것도 아니고, 아직도 여부스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베어가지고 예루살렘으로 가져갈 수 없고, 가져가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이게 사무엘하서에 가서 다윗이 전 이스라엘 전체를 통일해서 여부스 족속을 몰아내고 다윗성을 차지하려면 아직도 시간이 많이 가야되는데, 지금 골리앗을 잡아서 골리앗의 머리를 잘라서 여부스 족속에게 갖다 바친다는 말이에요? 그게? 이거 봐요. 말이 안되는 거 맞죠? 아침 밥 먹고 목에 또 뭐가 걸렸어요. 이해가 됩니까? 지금 예루살렘으로 가져가봐. 다윗이 맞아 죽었죠? 벌써. 여부스 사람에게. 그러니까 예루살렘으로 가져간 게 아니고, 실로로 가져갔거나, 사울의 기브아로 가져갔거나 이리 가져갔다고 해야 하는데, 왜 여기다가 예루살렘으로 가져갔다고 했었을까요? 누가. 일반 성도님들하고 얘기하기 참 어려운 얘기라.

 

이 사무엘상서 기록이 매우 후대에 기록되었다는 증거에요. 이해가 됩니까? 예루살렘이 명실공이 유대 나라의 수도가 된 후에 기록하는 사람이 당연히 지금 현재가 예루살렘이 수도니까, 그리 가져온 것으로 습관적으로 써버린 거에요. 습관적으로. 자기가 그냥 무심코 써버린 거에요. 당연히 예루살렘으로 가져왔을 거라고 쓴 거에요. 사실은 그 때는 예루살렘으로 가져갈 수 있는 게 아니고, 사울의 기브아라던지, 실로로 가져갔을 거라고요. 이게. 이런 식으로 본문을 잘 살피면, 이 사무엘상서는 사무엘 때 쓸 수도 없고, 사무엘이 쓸 수도 없고, 다윗이 예루살렘을 차지하고 난 후에라야 이런 기록이 나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해됩니까? 그래서 사무엘상서, 사무엘하서해도 사무엘이 쓴 것이 아니고, 다윗의 후에 다윗의 사관들이, 다윗의 치적을 다루고 있는 사관들이 있어요. 사관들이 사초를 쓰게 되는데, 사관들이 사초를 쓴 게 바로 성경이 된 게 아니고, 사관들이 남긴 사초를 기초로 해서, 후대 누군가가 썼다는 거에요. 상당히 후대에 기록된 거에요. 이런 것을 보통 본문 비평이라고 그러는데, 조금 그래도 학문적으로 열정이 있고, 진보적인 장신대라던지, 감신대, 한신대, 이런 쪽의 진보적인 학교는 이런 본문비평을 성실히 공부를 시키려고 노력을 해요. 물론 학생들은 공부 잘 안합니다만. 그런데 보수, 이를테면 총신대, 고신대 이런 데는 그런 말만 나와도 바로 이단, 삼단, 신신학, 자유주의 해가지고, 입도 뻥긋 못하게 만들어요. 생각도 못하게 만들어 버리고. 신학 분위기가 그렇습니다. 그런 게 차이에요.

 

지금은 성도들이 꽤 그 머리가 좋아서 성경을 여러 진보적 주석도 보고, 이리 보기 때문에, 성도들이 다 알고 있습니다. 이런 것도. 그럼 누가 모르냐? 목사만 모르는 거야. 지금 성도들 중에 어떤 분은요, 히브리어, 헬라어 열심히. 지금 인터넷으로 히브리어 헬라어 공부하는 사이트가 많이 있거든요. 히브리어, 헬라어 열심히 공부하는 데, 목사님들은 바빠서 못해요. 계속해서 출생으로부터 개업으로, 폐업으로, 결혼으로, 이혼으로, 얼마나 일이 바쁘니까, 노회에다 시찰에다 정신없이 바쁘니까, 성경 볼 시간이 없어요. 목사님들은. 큰 교회 목사님들은요. 그래서 일반 성도들은 하도 목사님들이 성경 공부하라고 하니까, 성경공부 많이 하는데, 정작 목사님들은 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젊은 신학도들은 교회가 작을 때, 인원이 많지 않을 때, 돌아볼 양떼가 많지 않을 때, 부단히 공부하라고 일을 작게 맡겨 놓은 거야. 부단히 공부하라고. 성도 수가 2천명만 되어도, 공부가 뭐에요. 공부가. 제가 2천명되는 교회의 집회를 2년을 이어서 연거퍼 갔는데, 자기가 여기에 오는 게 마땅하지만, 교회를 비우기 어렵다는 거야. 그러니까 목사님을 우리 교회에 모셔다가 사람들 동원할 테니까, 와서 강의해 주십시오. 그럼 자기도 참여해서 어떻게 해 보겠습니다 해서 갔는데, 나를 자기 교회에 불러 모셔놓고도 자기는 참여를 못해. 안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거야. 한 주간에 장례식이 4건이 나버려. 야, 이게 목사가 아니고, 완전히 장의사다, 장의사. 그렇게 되면요, 성경이고 뭐고 볼 시간이 없어요. 그리고 설교 제목만 정해 놓으면 예화 찾는 것도 부목에게 다 맡겨놓고, 그렇게 정신없이 바빠요. 저녁 되면 집에 들어가면 그냥 골아 떨어지고, 새벽되면 새벽기도 나와야 되고, 그러니까 정신없이 바쁜 게 한국 목사야. 그래서 교회가 커지면 전혀 공부가 안됩니다. 큰 교회가 목사님이 실력 있을 거다. 이건 거룩한 착각이에요. 실력 있을 수가 없어요. 너무 바쁘니까. 그래서 진짜 실력은 대개 지리산파, 조그만한 교회, 시간이 남아서 그냥 성경보고, 공부하고 이래야 실력이 생기는 거지, 큰 교회는 실력 쌓을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교회가 작을 때, 인원이 얼마 안될 때, 맡은 일이 많지 않을 때, 부단히 젊은 신학도은 공부해야 되요. 나이가 들으면 공부가 안됩니다. 젊을 때 공부하면 공부하지, 나이가 들면, 이해력은 있는 데 기억이 안돼. 옛날에 공부한 것은 다 기억되는데, 최근 공부한 것은 오전에 공부하면 오후에 잊어버려요. 설교해 놓고 그 다음시간에 자기도 모른다니까. 그러니까 젊은 날에, 한날에 젊을 때 공부해야 되요. 여기 오는 것도 나이가 들어서 오면 힘들어요. 한번은 여기 은퇴직전에 온 분이 있었어요. 울더라고요. 내가 젊을 때 왔으면 얼마나 좋을 뻔 했나. 이제 내가 갑옷 벗을 때가 되었는데, 이제 와서 알면 어떻게 하냐? 차라리 모르고서 죽었으면 좋았겠다. 그런 분도 있었어요. 그러니 공부를 한다는 것은 젊을 때 열심히 해서, 일이 많아지면 그렇게 공부가 안된다는 것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저는 다행이 간댕이가 작아서 도시 진출도 못하고, 시골의 작은 교회에 있으니까, 교회가 저를 연구할 수 있도록 늘 배려했고, 또 억지 공부할 수밖에 없는 게, 매월 계속해서 이렇게 전국에서 찾아오니까, 내가 공부를 해놔야 오는 사람이 있을 거니까, 저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공부하는데, 대형 교회 목사님들은 어렵습니다. 정치 목사되면 더 어려워요. 계속 먹으러 다니느라고. 계속 정치한다고 밥 먹고, 뭐먹고, 다니다보면 언제 책 볼 시간이 없어요. 지금도 목회자를 픽업하러 오거나, 선교사를 픽업하러 오면, 지리산으로 사람을 선발하러 와요. 아골 골짝 빈들 지리산 노인들 목회도 마다하지 않는 분이라야 선교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여기서 훈련받은 분들은 아무데로 가도 선교 잘 합니다. 대개 원주민 목사를 잘해요. 원주민 목회. 인도네시아라던지, 볼리비아라던지, 캐냐라던지, 이런 데 가서 빛을 발하는 사람들은 전부 다 지리산 사람들이야. 지리산 빨치산 부대쯤 되야 현지가서 게릴라 작전도 하고. 근데 너무 귀공자, 부자집 아들들은 목회 못해요. 선교도 안되고. 그래서 한 4-5년 하다가 저 미국으로 삐그덕 가서, 자녀 교육시켜야 한다고 미국 가서, 목회도 안되고 접시 닦다가, 그 목회자가 되어가지고 신학을 해가지고 접시 닦으니까 챙피한 거에요. 힘든 일이거든요. 그래도 안할 수 없어. 닦다가 남의 교회가서 교회 몇 사람 찢어내서 살 꼬셔내서. 그런 목회자들이 수백명, 수천명 될 겁니다. 그런 선교는 선교라고 할 수 없어요. 선교할려면 60 넘어서 애들 다 키워놓고, 그렇게 나머지 삶을 완전히 거기서 묻어버리겠다 하면 몰라도 어설프게 전도가 안되요. 선교는.

 

그래서 이 블레셋 사람을 잘라서 예루살렘으로 가져갔다는 것은 기록을 사람들이 잘 못 봅니다. 이런 것은요. 제가 한 절, 한 절 공부를 하고, 다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풀코스 설교를 해봤기 때문에, 시간만 나면, 이런 거 고장난 거 들어내면 깜짝 깜짝 놀랠 거 많이 있어요. 예루살렘으로 가져간 게 아니고, 실로나 사울의 기브아로 가져갔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런 것도 몰랐으면 좋았을텐데, 알아가지고 성경이 또 안 믿어져가지고 아리까리하고 그러면 안됩니다. 이런 식으로 고장난 것을 다 뽑아내 보니까, 총 분량이 성경 4페이지내지 5페이지 분량이 되었어요. 상당히 많습니다. 고장난 부분이 꽤 많아요. 그런데 그런 것을 볼 때, 독일 사람들이 지독하게 연구해서, 사본 대조, 번역 비평 이런 것을 해서, 본문의 고장난 것, 본문 비평을 성실히 했어요. 다 뽑아내서 대조해 놨는데, 저도 이렇게 봤는데, 그런 고장난 것이 사실이지만, 우리가 믿는 믿음의 도리, 교리를 뒤흔들만한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 고장난 것 알고 있지만, 성경은 진실한 책이다고 믿어요. 그리고 또 성경이 한 글자 이런 게 틀렸다는 게 아니고, 고장이 없다는 그런 무오가 아니라, 우리 신앙은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 말씀이니, 신앙과 행위에 대하여 정확 무오한 진리를 담고 있다는 뜻이지, 글자 단위로 이게 사본을 하고, 번역을 하는 데, 번역을 가지고 일점 일획이라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어요. 번역본을 가지고 일점 일획이라는 것은 아무 의미없는 거라. 그것은 히브리어일 때, 일점이 떨어지면 전혀 딴 말이 되어버리고, 획이 날아가면 딴 단어가 되어버려요. 그걸 두고 하는 말인데, 일점 일획도 이런 말이란 것은 성경에서 히브리어일 때인데, 번역을 해버리면 점도 다 떨어지고, 획도 다 날아가 버립니다. 전혀 다른. 그리고 번역이 잘못된 것도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저 같은 사람 눈에 지나가면서 봐도 번역이 이상하게 되어 있는데, 말도 안되는 번역이 있어요. 그렇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지금 믿고 있는 기독교 기본 교리나 이런 것을 뒤흔들만한 고장난 게 없습니다. 충분히.

 

킹 제임스 버전 아니라도,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개역성경도, 하나님을 알아가는 데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 소위말하는 구원받는 데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그런 것도 제대로 모르고, 킹 제임스 성경이 얼마나 고장이 많은 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킹 제임스 성경은 하나님의 섭리로 딱 보존되서 그것만이 정확무오하다, 그것 자체가 미신이에요. 제대로 보지도 않는 사람이. 우리 말도 제대로 안보는 사람이 영어성경을 자기가 봤으면 얼마나 봤겠어. 그래서 내 말이 안 믿어지거든, 내가 에스라하우스 홈페이지에다가 킹 제임스 성경 내의 이런 저런 고장난 것 뽑아서 몇가지 올려놓았으니까, 그것 보시면, 킹 제임스 성경도 온전치 않습니다. 시간이 나면 그런 것도 찝어내면 할 얘기 많죠. 그런 것은 이 다음에 또 시간나면 하고, 어떻든 다윗이 골리앗 머리를 예루살렘으로 가져갔다는 말은 잘못된 말이야. 거기다가 옆에 줄 긋고, 예루살렘 아니고, 사울의 기브아나 실로로 가져갔을 것이다 라고 기록하면 좋겠어요.

 

 

그리고 지난 12월달 집회에 신혼부부가 신혼여행을 이리로 온 사람들이 있었어요. 참 대단한 분들이죠. 더 웃기는 것은 그 신혼부부가 여자는 여기 자고, 남자는 저쪽 자는 거야. 신혼여행을 와가지고. 그걸 내가 첫날 모르고, 둘쨋날도 모르고, 세째날 겨우 알았어요. 그리고 세상에 창세 이후로 이런 일이 또 있을 수 있느냐? 그래서 우리 에스라 하우스가 여기 호텔도 없고, 요 가까이 조용한 모텔이 있어서 방 하나를 우리가 일부러 얻어서 차를 하나 빌려서 여기서 신혼여행을 하룻밤 가게 그렇게 배려한 적도 있습니다. 또 같은 날 보니까 옆에 보니까 이혼여행을 온 사람들이 있었어요. 이혼 법적 다 수속 서류 접수해 놓고, 마지막으로 우리 같이 여행 갑시다. 그럼 갈만한 데 가지 왜 이리로 왔느냐 말이야. 그래서 그 이혼여행이 실패해 버렸어요. 참 오래 안살아도 별일이 다 있죠. 근데 그 신혼부부가 얼마나 사랑을 많이 받았는지, 박수 갈채에다가 하여튼 너무 너무 귀여운 거라. 사람들이 볼 때. 세상에 저렇게 착한 부부가 어디 있겠느냐 말이야. 그래 남자가 우겨서 왔다는 거야. 신혼여행 결혼하면서, 계속 결혼 얘기할 때부터 신혼여행 이리 가자고 하길래, 어떤 데인고 참. 신부는 일평생 한번인데, 세상에 그게 뭡니까? 지리산가자. 하도 남편 되는 사람이 가고 싶어 하길래, 따라왔는데 잘 왔다는 거에요. 너무 너무 잘 왔다고 그러는데, 저도 보람도 있지만. 그리고 신부가 맘씨가 착해 보여요. 그 남자 그 또 가자고 한다고 따라와서 여기 와서 각 방을 써가지고, 그러다가 늦게라도 알아서 하룻밤이라도 같이 자게 해주었는데, 자고 또 늦게 와도 아무도 안 말릴텐데, 새벽같이 달려왔어. 아마 철야하지 않았겠나. 여기 있다보면 그렇게 즐거운 일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혼 여행 왔던 사람들은 두 번인가 상담을 하고, 이혼 포기하고, 올라가서 다시 화합하기로. 혹시 여러분, 신혼여행이나 이혼여행이나, 앞으로 또 이쪽을 좀 안내를 해봐요. ^ ^ 참 재미난 사람들이 많죠.

 

 

자, 사무엘하서로 갑니다. 사무엘하서는 1장부터 마지막장까지 거의 온통 다윗의 이야기입니다. 사무엘하서 1장 1절. 사울의 죽은 후라. 그러니까 어떤 책을 쓸 때, 언제라고 하는 시대적 배경을 꼭 소개합니다.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 다윗이 아말렉 사람을 도륙하고 돌아와서 시글락에 이틀을 유하더니, 제 삼일에 한 사람이 사울의 진에서 나왔는데 그 옷은 찢어졌고 머리에는 흙이 있더라. 저가 다윗에게 나아와 땅에 엎드려 절하매, 다윗이 저에게 묻되 ‘너는 어디서 왔느냐?’ 대답하되 ‘이스라엘 진에서 도망하여 왔나이다.’ ‘일이 어떻게 되었느냐? 너는 내게 고하라.’ 저가 대답하되 ‘군사가 전쟁 중에서 도망하기도 하였고 무리 중에 엎드러져 죽은 자도 많았고, 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도 죽었나이다.’ 다윗이 자기에게 고하는 소년에게 묻되, ‘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의 죽은 줄을 네가 어떻게 아느냐?’ 그에게 고하는 소년이 가로되, ‘내가 우연히 길보아산에 올라보니 사울이 자기 창을 의지하였고 병거와 기병은 저를 촉급히 따르는데, 사울이 뒤로 돌이켜 나를 보고 부르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한즉 내게 이르되 너는 누구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나는 아말렉 사람이니이다. 한즉 또 내게 이르되 내 목숨이 아직 내게 완전히 있으므로 내가 고통에 들었나니 너는 내 곁에 서서 나를 죽이라 하시기로 저가 엎드러진 후에는 살 수 없는 줄을 내가 알고 그 곁에 서서 죽이고 그 머리에 있는 면류관과 파에 있는 고리를 벗겨서 내 주께로 가져왔나이다.’

 

얘가 죽을라고 환장한 아이죠? 만약에 우리가 사무엘상서 끝을 제대로 충실히 안 봤다면, 얘가 참말하는지 거짓말하는지 모를 거 아니에요? 그러나 우리가 사무엘상서를 사실을 봤기 때문에, 이 아이 말이 참말이에요, 거짓말이에요? 거짓말이죠. 자기가 안죽여 놓고, 자기가 죽였다고 해서 사울하고 다윗이 정적관계에 있으니까, 사울왕을 죽이고 그 투구를 벗겨왔다 하면 화랑무공훈장하고 특별휴가 이렇게 나올 줄 알고 얘가 가져왔어. 그런데 다윗이 그 얘길 듣고 방성대곡하고, 통곡을 하고, 그리고 눈물을 훔치고 이러고나서, ‘다시 말해봐. 네 입으로 분명히 여호와의 기름 부은 받은 자를 네가 네 손으로 죽였다는 거지?’ 그렇다는 거라. ‘밖에 아무도 없느냐?’ 항상 있죠. 그래서 이리 하니까, 달랑 목을 똑 딴 거에요. 이런 놈은 여차하면 다윗의 목을 잘라서 다른 데 가서 바칠 사람이라. 이런 간신배는 그냥 목을 똑 따버려야 해요.

 

16절. 다윗이 저에게 이르되, ‘네 피가 너에게 돌아간거야. 임마. 네 입이 네게 대하여 증거하기를 내가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죽였노라 함이니라’ 하였더라. 그리고 17절이 중요한 부분인데, 다윗이 이 슬픈 노래로 사울과 그 요나단을 조상하고 명하여 유다족속에게 가르치라 하였으니, 곧 활 노래라. 야살의 책에 기록되었다.

 

우리나라는 신앙이 어느 교단에 속해 있든지 간에 성도들의 신앙은 거의 다 보수적입니다. 신학교는 급진부터, 극보수까지 있지만, 성도들은 똑같아요. 신학교는 굉장히 진보적인 신학교는 많아도, 성도들의 신앙은 다 보수적이라. 성경은 무조건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는데, 성령이 한자 한자 불러주었을 것이다. 성령이 불러준 대로 썼기 때문에, 기록한 자의 의지는 개입할 수 없었다. 전부 할아버지의 축자영감설, 그런 것을 배워서 금과옥조로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서 그 정도는 있지만, 한자 한자 불러주었다는 이런 말은 없는데, 할아버지들이 성경의 권위를 드높인답시고 억지 주장한 것입니다. 성령이 한자 한자 불러주었다면, 복음서 네 개가 똑같아야해. 마태에는 이렇게 불러주고, 마가에는 그렇게 불러주고, 누가에게는 다르게 불러주고, 요한은 딴 소리합니까? 그 한마디만 해도 대답을 못할 거요. 성령이 한자 한자 불러주었다는 그런 말은 성경에 없습니다. 성령에 감동받은 사람들이 신앙 양심을 가지고 최대한 정직하게 성실히 썼어. 그렇다고 실수가 없느냐? 실수가 많이 있습니다. 또 거기다가 우리가 원본이 없고, 사본이 여러가지로 조금 조금 다르게 된 사본을 여러 개 갖고 있는데, 어느 사본도 절대가 아니라.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경을 기록한 사람들이 이것은 어떤 어떤 책을 참고하고 인용해서 그 출전까지 밝히고 있어요. 지금 여기 사무엘하서 1장 17절 이하에 나오는 다윗의 노래가 있는데,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을 슬퍼하는 그런 노래는 이 사무엘하서 기자가 영감을 받아서 한자 한자 불러줘서 쓴 게 아니라, 야살의 책에 있는 것을 발췌한다고 소개하고 있어요.

 

17절. 다윗이 이 슬픈 노래로 사울과 그 요나단을 조상하고 명하여 유다족속에게 가르치라 하였으니, 곧 활 노래라. 야살의 책에 기록되었다. 하고 인용구를 딱 쓰면서. 야살의 책이라는 역사책이 있습니다. 야살의 책. 자, 이 성경을 기록하는 분이 이 성경을 기록하기 전에 성경보다 먼저 있었던 책들이 있었다는 것을 성경이 얘기해요. 예를 들어서, 민수기에 보면, 민수기 기자가 여호와의 전쟁기에 일렀으되, 이렇게 이렇게 기록되었다 하는 걸 인용한다고 쓰고 있어요. 그럼 민수기 기자가 민수기를 쓸 때, 여호와의 전쟁기라는 것이 이미 기록되어 있었어요. 민수기보다 일찌기 여호와의 전쟁기에 일렀으되 하는 책이 나와 있는 거죠. 야살의 책에 기록되었으되 하는 것은 야살의 책은 여기만 나온 게 아니라, 여호수아 때부터, 여호수아서 기록하는 여호수아 기자도 태양이 머물고 달은 아얄론 골짜기에 머물라하는 사건이 야살의 책에 기록되어 있었다는 얘기를 쓰고 있습니다. 열왕기상서 기자는 솔로몬 행장이라는 기록이 있었다는 거에요. 역대하서는 보면, 호세사기에 일렀으되 하고, 호세사기라는 책에서 인용한다. 역대하서 13장에는요, 잇도의 주석책에 일렀으되, 잇도라는 사람의 주석책에서 또 인용한다는 거에요. 선견자 나단의 글, 선지자 예후의 글, 선지자 아히야의 예언서, 잇도의 묵시책, 선견자 사무엘의 글, 선견자 갓의 글에 일렀으되 하면서, 죽죽 인용을 하는 거에요. 어떤 부분은 이도 솔로몬의 잠언인데 히스기야의 신하들이 편집한 것이라. 성경 자체가 편집한 것이라고. 히스기야 신하들이. 성경이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미신적으로 축자영감설 어쩌구 하는 것은 상당히 공부를 안한 거에요. 성경 본문을 받아서 정밀히 안본 거에요. 보지도 않고 무조건 축자영감설 하는 것은 무책임하고, 불성실한 사람들이에요. 신앙이나 좋은 줄 몰라도 학문적으로는 그러면 안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앞으로 이런 말들이 이런 본문 비평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서 이런 저런 책들이 나올 때, 그런 책을 접하고 놀라지 말라는 거에요. 이미 그런 것은 신신학, 자유주의 뭐 이래가지고, 교회 팔아먹는 사람들이 한 게 아니라, 굉장히 성실한 학자들이 정말 진리를 사랑하는 열정을 가지고 공부를 해서 그런 것을 밝혀낸 것이니까, 그 공로는 인정을 해야 되요. 무조건 부정해 버리고 그리 할 것이 아니라. 그리고 영감을 받아서 기록을 했다기보다도, 그 기록하는 분이 기억하기 좋게 이렇게 일부러 글 문장에 문장력 실력을 발휘해서 두문식 형식으로 쓴 게 많아요. 히브리 알파벳을 딱딱 머릿글을 가지고, 그렇게 문학적 기법을 발휘한 경우도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축자영감설이란 말은 그런 건 주장하면 안되요. 기계적 영감설, 그런 것은 성경을 너무 공부를 안한 사람이 하는 소리에요. 진짜 성실히 공부하면 그렇게 할 수 없어요. 시편 9편, 시편 25편, 34편, 37편, 111편, 112편, 119편, 145편, 이게 전부다 두문식 형식으로 써 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기도를 할 때, 요즘처럼 우리처럼 횡설수설한 게 아닙니다. 거의 다윗은 기도를 할 때, 원고를 써 가지고 한 거에요. 따라서 오늘날 주일 낮, 수요일, 이렇게 혼자 예배하는 게 아니고, 가족적인 예배가 아니고, 공예배, 여러사람이 공예배를 드릴 때, 기도담당자는 반드시 기도문을 원고로 써야 되요. 성실히. 말도 가려서. 그런데 전혀 기도문을 적지도 않고, 준비도 않고 올라가서, 성령이 인도하는 대로 한다고 그래요. 그런 사람은 성령이 인도하지도 못해요. 그렇게 불성실해가지고는. 말이 막히면 하나님 아버지, 또 막히면 아버지 하나님. 어떤 사람은 기도할 때 셉니다. 아버지 하나님 몇 번 하나 세보자. 하나님 아버지, 아버지 하나님, 계속 횡설수설하고 중언부언하고.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횡설수설하고, 중언부언하는 것이에요. 그리고 길게 기도하는 것.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에요. 그런 것을 사람들이 몰라요. 여러분, 어른들 앞에 가서 말을 길게 하는 것은 실례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바쁜데, 그렇게 길게 기도하면 어쩌자는 거에요. 예수님께서 제발 기도 길게 하지 말라 했는데도, 나는 하루 7시간을 기도한다. 그럼 일은 언제하나? 저는 하루에 아마 한 20시간쯤 기도하는 거 같아요. 무슨 소리냐. 일 자체가 다 기도니까. 잠들 때말고는 다 기도하죠. 카톨릭은 노동을 기도로 해요. 그래서 길게 기도하는 것, 길에서 문안 받는 것, 중언부언하는 것, 한 말 또 하고, 또 한말 또하고. 맨날 한 말 또 하면 하나님도 짜증날 거라. ‘너 지난번에 내게 그 말했잖아.’ 우리가 기도를 할 때, 대통령 앞에 갈 때도 그냥 못나가고 메모를 하고, 다 준비를 하고 나갈텐데, 상천하지의 하나님께 나가면서 아무 준비도 없이 나가서, 그러면 곤란하는 거에요. 다윗이 기도할 때, 그의 기도를 기도문으로 써서 했기 때문에, 다윗의 시가 상당수가 기도시입니다. 원고 나와 있잖아요. 그래서 목회할 때에는 공예배 기도담당에게 기도문을 쓰시요 하니까, 처음에는 써서하면 은혜가 안될텐데. 이것도 미신이에요. 은혜가 안된다는 것은 무슨 말이에요. 기도문을 써서하면 은혜가 안된다는 게 무슨 말이냐고요. 말도 안되는 말이거든요. 자꾸 강조하니까, 또 우리 교회 목사님은 기도를 어떻게 하는가 다 보고 계신다 신경을 쓰니까, 우리 성도들이 겁이 나요. 하나님이 겁나서가 아니고, 목사 겁나서 쓰는 거에요. 그래도 써서 준비를 해서 강대상에 기도하러 올라갔을 때, 펴놓고 기도하면서 자기가 감격해서 자기 기도에 자기가 감동을 받아서 대개 눈물을 뿌리고 내려와요. 쓰면 아무 감동도 안될 줄 알았는데, 쓰니까 더 감동되거든요? 한번 해보라고요.

 

전에 여기 원지교회에 있을 때, 한 여자집사님이 기도를 하는데, 그 기도는 제가 지금도 왜 내가 그 기도문을 받아두지 않았을까 할 정도로 시편은 저리 가라야. 자매님인데 그렇게 아름다운 말이 흘러나와요. 하나님께 영광, 감사, 이것이 입에 발린 말이 아니고, 온 성도들이 노목사의 설교에는 감동을 안받고, 그 집사의 기도에 온통 감동을 받아서, 그렇게 할 정도로 막, 하나님도 감동되었을 것같아요. 지금도 한이 되는 게 야, 기도문은 기도예문으로 그걸 받아둘 걸 그랬다는 생각이 지금도 늘 있어요. 앞으로는 설교자가 설교 준비하는 것은 사람보고 하는 것이고, 기도 준비하는 것은 하나님을 향해 하는 것이요. 어느 것이 어려운 거에요? 기도하는 게 더 어려운 거요. 자기 개인적인 것도 아니고, 온 교회 성도들의 마음과 소원과 감사와 찬양을 묶어서 그 하나님의 존전에, 어느 존전이라고 거기 나아가는 사람이 설교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거죠. 그래서 자기 기도 차례가 다가오면 벌벌 떨면서 준비해야 되요. 정말. 떨며 즐거워하며 감격하며 그렇게 준비해야 맞는 거 아닌가요? 그래서 교회에 처음 나온 사람이나, 이런 사람들이 그 교회의 감동적인 경건한 그런 신실하고 깊이가 있는 감동적인 기도에 마음이 탁 감동되게끔 이렇게 해야 이게 전도가 될텐데, 횡설수설하고, 주여 삼창하고, 와글바글 통성기도하고, 거기에다 방언까지 해봐. 아이고, 이게 집단 발광이다. 집단 발광. 사람들이 그 정도는 눈치가 있어야지. 사람들이 어떻게 보는가를. 왜냐면 제가 다 커서 교회 나갔어요. 제가 보니까 웃기는 거야. 와글바글하는데, 저래 가지고 하나님도 알아 듣겠나? 저렇게 무질서하고, 저렇게 소란스럽고. 이게 무슨 야만족들의 광란이지, 이게 무슨 경건한 종교냐 할 정도로 교회가 참 추태를 부려요. 제가 보니까. 저는 다 커서 결혼까지 해서 첫 아기까지 낳고 교회 나갔는데, 가보니까 교회 문화가 그래요. 나는 기독교 굉장히 경건한 지 알았는데 전혀 아니다. 또 어떤 사람은 기도하는데, 옆에서 주여~ 하는 거에요. 내가 속으로 옆에서 뭐가 보이나? 저게? 우리는 늘쌍하니까 안 우스운데, 세상 사람들이 와서 보면 웃기는 거에요. 정말.

 

그래서 제가 지적하는 것은 설교도 고쳐야 되고, 찬양도 고쳐야 되고, 기도도 고쳐야 되고, 고칠 게 한 두가지가 아니라. 그래서 제가 그 고쳐야 될 것을 72가지를 지적해서 에스라하우스 공개자료실에다가 대자보를 써서 붙여 놓았으니까, 다운 받아서 검증을 해봐요. 목사님들 특히. 그리고 성경에 대한 것도, 성경교육도 고쳐야 되고, 교회학교도 고쳐야 되고 고칠게 한 두가지가 아니에요. 제가 얘기했죠. 대한 예수교 장로회. 그것도 잘못된 거라. 예수교 대한 장로회 그것도 고쳐야 되요. 성경 책 이름도 고칠 게 너무 많아요. 그런데 우리가 그런 걸 고치면 큰 일 나는 줄 아는 거야. 애굽을 이집트로 고치면 지옥가는 줄 알고 벌벌 떨고. 보수교단 목사님들이 그래요. 애굽이란 말을 이집트로 고치면 지옥가는 줄 알고 벌벌 떠는 거에요. 떨 것을 떨어야지. 구부로를 키프로스로 고치면 지옥가는 줄 알고 그런 것을 못 고치는 거에요. 그럼 온 세상을 어디가도 키프로스 아니면 사이프러스인데, 우리가 구부로로 배웠기 때문에 외국가면 도무지 귀가 안열려서 안들립니다. 하나도. 이런 것은 빨리 빨리 고쳐야되요. 무엇이 본질인지, 무엇을 보수할 것인지도 모르고, 그냥 보수 보수하는 건 참 무식한 보수이죠. 그렇게 하면 안되는 거에요.

 

이사야의 묵시책이란 말도 있고, 잇도의 족보책이란 말도 있고. 성경이 기록되기 전에 성경 기자들이 얼마나 많은 책들을 참고하고 있었는지가 성경 본문에 다 보이는대도, 일부러 그 눈을 감아버리고, 무조건 한자 한자, 한글자 한글자 성령이 불러주었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앞으로 그런 말하면 안됩니다. 옛날 할아버지들이 아무 책도 없고 할 때는 그런 말했는데, 지금은 안통해요. 그런 말하면 그런 말하는 사람 자체가 너무 무식한 사람으로 취급 당하니까, 젊은 목사님들은 조심해야 해요. 성도들이 여기만 해도, 이렇게 많이 다녀가고 공부를 하고 있고, 인터넷으로 공부를 하고 있고, 늘 공부를 하고 있는데, 케케묵은 소리하고 앉았으면 목사님의 신뢰가 떨어져버려요.

 

그래서 이 책이, 이 노래가 놀라운 것은 지금 유다지파 한 지파에서 다윗이 나와 있고, 나머지 11지파에는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아직 살아 남아 있습니다. 아직은 대치국면이고, 다윗에게 있어서 사울은 정적과 같은 관계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을 슬퍼하는 노래를 지어 서로 맞서있는 유다지파 사람들에게 사울의 죽음을 슬퍼하자고 하면서 유다지파에게 가르치라고 한 것이에요. 그래서 다윗은 체격은 얼마 안되지만, 그렇게 가슴이 넓은 사람입니다. 멋쟁이죠 정말. 이게 쉽지 않거든요.

 

내용을 읽어 봅시다. 사무엘하서 1장 19절. 이스라엘아, 너의 영광이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도다. 이 일을 가드에도 고하지 말며, 아스글론 거리에도 전파하지 말지어다. 블레셋 사람의 딸들이 즐거워할까, 할례 받지 못한 자의 딸들이 개가를 부를까 염려로다. 길보아산들아 너희 위에 우로가 내리지 아니하며, 제물 낼 밭도 없을지어다. 거기서 두 용사의 방패가 버린바 됨이라. 곧 사울의 방패가 기름 부음을 받지 않음같이 됨이로다. 죽은 자의 피에서, 용사의 기름에서 요나단의 활이 물러가지 아니하였으며, 사울의 칼이 헛되이 돌아오지 아니하였도다. 사울과 요나단이 생전에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자러니 죽을 때에도 서로 떠나지 아니하였도다. 저희는 독수리보다 빠르고 사자보다 강하였도다. 이스라엘 딸들아, 사울을 슬퍼하여 울지어다. 저가 붉은 옷으로 너희에게 화려하게 입혔고, 금노리개를 너희 옷에 채웠도다. 오호라, 두 용사가 전쟁 중에 엎드러졌도다. 요나단이 너의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다.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승하였도다.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으며 싸우는 병기가 망하였도다. 하였더라.

 

이 아름다운 감동적인 노래를 다윗이 즉흥적으로 지어서 작곡 작사해서, 바로 유다지파에게. 지금 사울가문하고 싸움은 남아 있는데도, 그 유다지파 사람들에게 그 노래를 불러서 사울의 죽음을 애도하자. 여러분, 정치를 해도 이렇게 멋있게 해야 돼. 어떻게 하다보니까, 우리가 원래 멋이 있는 사람들인데, 한국 사람들이. 어떻게 하다보니까 전혀 멋대가리가 없는, 기독교인들도 너무 너무 멋이 없어요. 지금.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요. 어떻게 이렇게 강퍅하게 되어 버렸는지. 정치, 사회, 종교, 예술, 문화. 모두가 다 각박하고 너무 모가 나고 각지고 서로 상처를 주고, 이런 것만 있지, 멋과 여유가 하나도 없어요. 인생의 살 맛이 하나도 없게 만들어요. 지나친 경쟁 심리가 아마도 이렇게 각박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게 아니냐. 좀 여유를 가지고, 멋이 있도록. 제가 대선 후보 같은 사람들 대할 때에 그 상대방의 장점도 훤히 알고 있는 걸로 하면 멋이 있을 거에요. 지금 특히 같은 한 당 안에서 상대방 단점만 말하지 말고, 이 후보의 장점은 바로 이런 겁니다. 이런 건 다 우리가 알지 않습니까? 그리고 상대방 장점을 충분히 인식을 해버리고, 그리고 단점은 자기 입으로 말하게 놔두고, 그러나 그런 점은 있지만 이런 점에서는 제가 좀 낫지 않을까 저는 그리 생각합니다 이렇게 하면 멋이 있을거야 아마. 상대방 아무리 장점이 있어도 한마디도 안하고, 어디서 파헤쳐가지고, 그렇게 하니까 보는 사람마다 피곤한거야. 저는 UCC 한편도 안봤어요. 보다 그냥 끝까지 본 게 없어요. 얼마나 짜증나는지. 그거 자꾸 보니까, 내가 시험들 것 같아요. 그리고 거의 대통령 선거 잘 못해보았어요. 꼭 우리 집회하는 기간에 선거일하고 속을 썩이고 하니까, 이번에는 찍을 수 있는데 찍을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13번째 찍으려고 하다가, 내 이름 써놓고 내가 찍으려고 하다가.

 

여러분이 앞으로 정치하거든 혹시 제 얘기를 잘 새겨 들으세요. 상대방 네거티브만 하지 말고, 상대방 장점을 다 극대로 드러내서 다 알아주고, 그걸 몰라서 하는 게 아니고, 다 알아서, 그럼 할 말이 없지 않아요. 내가 다 안다 말이야. 다 안다는 것은 내가 그만큼 다 할 줄 안다는 거죠. 여러분, 상대방 장점을 알아줄 실력이 있으면 같이 할 수 있는 거 아니에요? 그럼 그 정도로 고차원으로 나가야지. 지금까지 우리 대통령들, 이승만대통령부터 봐 왔거든요. 그런데 내 한분도 그렇게 말하는 사람 못 봤어요. 앞으로 그렇게 말하는 사람 있으면 틀림없이 대통령됩니다. 한번 해봐. 나는 안나갈테니까, 한번 해보라고. 정말 어떤 후보는 우리 국민이 다 존경할 만한 분입니다. 넉넉히 우리나라 대통령직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렇게 상대방도 충분히 인정하고, 그렇지만 이런 점에서는 제가 좀 낫지 않을까요? 상상은 여러분께 맡깁니다. 이렇게 할 수 있잖아요.

 

여러분, 에이브라함 링컨 있죠? 링컨이란 사람이 얼마나 멋쟁이냐. 상대방이 얼마나 공격을 하는지, 이 사람은 에이브라함 링컨은 이중인격자요, 두 얼굴의 사나이입니다. 하고 공격을 해오니까, 링컨이 뭐라고 하는 줄 아세요? 여러분, 상상에 맡깁니다. 내가 숨겨놓은 얼굴이 있다면 이 얼굴하고 다니겠습니까? ^ ^ 그러니까 완전히 이중인격자로 몰릴 뻔 했는데, 내가 숨겨놓은 딴 얼굴 있으면 이 얼굴하고 다니겠느냐고, 온 회중이 폭소를 터트리면서 전체가 다 링컨의 가슴에 안겨 버린거야. 그리고 링컨 후보자를 지독하게 그저 폄훼하고 그야말로 입에 담을 수 없는 독설을 퍼붓던 사람이 있었어요. 뭐라 하느냐? 여러분, 고릴라를 보기위해서 아프리카까지 갈 필요가 도무지 없습니다. 일리노이주 스프링필드에 가면 고릴라 원종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했거든요. 그런데 그 사람을 국방부 장관으로 나중에 임명한 거에요. 다 물었어요. 왜 당신을 그렇게 물고 늘어지는 사람을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했느냐고 하니까, 그 사람이 적임자이기 때문에 임명했다. 그렇게 가슴이 넓은 사람이었어요. 그 다음에 극장에서 암살자의 총탄에 링컨이 쓰러졌을 때, 그 사람이 제일 먼저 달려온 거에요. 그렇게 헐뜯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국방부 장관이 제일 먼저 달려왔어요. 그러면서 눈물을 뚝뚝 떨구면서 세상에서 제일 가슴이 넓은 사람이 여기 누워있다. 여러분, 멋있지 않습니까?

 

링컨은 그런 지도자, 그런 어려운 시대라도 사람이 유머를 잃지 않은 거에요. 너무 어려워서 차비가 없으니까, 길가는 역마차를 세워서, ‘저, 어르신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부탁이 뭐요?’ 하니까, ‘이 외투를 시내까지 좀 실어주면 좋겠어요’ 하는 거에요. ‘내가 외투를 당신에게 어떻게 돌려주나요?’ 하니까, ‘항상 내가 외투 안에 있을테니까요.’^ ^ 그래서 그때서 마차주인이 차비가 없다는 말을 알아듣고, 알았다, 알았다 타라고. 적어도 그런 사람들은 멋이 있었어요. 멋쟁이. 그리 여유가 있다는 거에요. 저는 우리 정치 상황이라던지, 목회하는 것을 보면, 목표가 너무 지나친 나머지, 목표지향주의, 목적지향주의. 목적이 이끄는 삶 하면서 목적에 구류에 되어서, 여러분 목적은 사람이 목적이어야 되요. 사람이 수단이 되면 안되고. 그래서 우리가 좀 신앙생활 할 때나, 정치하는 사회나, 정치가 참 멋있었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우리 그리스도인 정치인들은 혹 나가거든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이 후보 같으면 충분히 우리나라 운명을 맡길만한... 저도 입장이 좀 그래서 그렇지 이분을 찍고 싶은 맘이 있다. 그래 봐요. 온 국민이 감동의 도가니에 쌓일 거에요. 한번 해보라고요.

 

저는 신학교 다닐 때, 총학생회장 선거를 하는데, 저도 떠밀려 나오고, 저보다 한 두살 아래 사람하고 같이 나왔는데, 전혀 비방하는 말이 아니라, 충분히 다 학교를 끌어갈만한 사람들이고, 내가 만약에 총학생회장이 되게 되면, 이 상대후보를 러닝메이트로 같이 뛸 수도 있다. 마음을 열어버리니까, 또 그대로 되어버렸어요. 말한 대로. 제가 총학생회장이 되고, 그 사람은 부학생회장으로 그렇게 끌어 안아버리니까.

 

그걸 갖다가 노무현대통령이 하려고 했었죠. 대연정하자고. 한나라 오케이. 내가 다 받아들여서 내각에 같이 일하자. 하니까, 도저히 한국에서 입에 담도 못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노무현 워낙에 수준이 높기 때문에 아무도 못 따라갑니다. 그 사람 의식을요. 소화가 안되요. 한나라당 사람들도 다 끌어와서 연립정부 만들어보자. 대 연정해보자. 얼마든지. 그렇게 가슴이 넓게 얘기해도 안통하는 거 아니에요? 조중동 때문에. 여러분, 이 양반 자유인 되어서 여기 와서 김해 와서 살고 싶다고 하는데, 한번 만나서 대화를 해보세요. 실력자입니다. 오죽하면, 부산사람이 호남당가서 뒤집기를 하겠어요? 김대중씨 당에 가서 뒤집기를 해서 거기서 대통령이 되어 나온다는 거 자체가 실력없이 되겠어요? 이인제를 따돌리고, 이회창을 따돌리는 실력이 있는 거에요. 몰라서 그렇지. 국민 수준이 너무 낮다고 솔직이 우리가. 너무 몰라요. 못 알아들어요. 말을. 그 사람 얘기를 사이 사이의 독하게 표현된 것만 따다가 신문에 떠둘어서 그렇지, 저는 그 사람 얘기, 연설 처음부터 다 들어봤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여러분, 역대 대통령 중에 그만큼 성실히 보고한 사람 아무도 없었어요. 데이타가 정확합니다. 수치에. 세금 얘기 나올 때마다 어느 나라는 이 분야에 세금이 얼마고, 몇 프로고 하니까 아무도 말 못해요. 그런 것은 그냥 신문에 나와 버리지 않습니다. 방송도 안나오고. 그게 나와버리면 자기들 얘기한 게 틀리니까. 국민들이 전혀 아직은 분별력이 없는 거에요. 수준이 안돼. 한번 새로 그 사람이 한 얘기를 인터넷에 검색해봐요. 그리고 누가 연설문 써줘도 맘에 안 드는 거야. 다 맘에 안들어. 너무 수준이 없으니까, 연설문 자기가 쓰는 거에요. 쓰거나 안쓰거나 즉흥적으로 하거나. 원고 없이 맘대로 할 수 있잖아요. 자유하게. 그러나 국민들은 그런 수준 안됩니다. 앞으로도 저런 사람 만나기 어려울 거에요. 몇몇 지식인들이 언젠가는 우리가 노무현 시대를 그리워 할 때가 올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민주주의는 노가가 만든 것이에요. 노태우가 국민 직선제 만든 거 알죠. 체육관 선거하다가, 전두환 때까지 체육관 선거하다가, 노태우 때 국민 직선제, 대통령 직선제로 직접 뽑기하자, 완전 제왕적 대통령제 끝내고, 대통령을 맘대로 씹을 수 있게 한 유일한 공로가 노무현이 한 거죠. 그리고 모든 국민 누구든지 대통령할 수 있다. 이게 민주주의죠. 그리고 지금 별로 돈 안들잖아요. 선거에. 옛날에 뭐 금품 계속 뿌렸는데, 이번에는 10원 한장 들고오는 사람 없었데요. 보니까. 목사쯤 되면, 다 갖고 찾아오는 게 있거든요. 아무도 안와요. 왔다 가면 50배 물어야 되요. 내가 대통령되면 500배 물게 해요. 제가 볼 때는 잘못한 것도 더러 있죠. 잘못한 것은 극히 미미한 부분이고. 말이지 말. 화가 나니까. 너무 안 알아주고, 너무 씹으니까. 아주 우리 5년간 대통령 씹는 게 아주 국민 스포츠죠. 너무 너무 화가 나니까. 여러분, 화가 나면 모세도 치는 거에요. 이 패역한 너희여, 하면서. 정치를 하겠다 이런 사람은 가슴이 넓어야 됩니다. 얼굴이 좀 두꺼워야 해요.

 

저는 해보니까, 안되겠어요. 너무 얼굴도 얇고, 조금 제가 하다가 불의를 보면 못 참거든요. 뒤에서 보는 거 못하고, 항상 총알받이로 무식하면 담대하다고. 하여튼 맨날 앞섰다가 총알받이해서 쫓겨나고. 그래도 저는 그렇다고 후회가 없어요. 애들은 상처받고 했지만, 저는 제 할 말 다 했거든요. 옳은 말이면 공중 앞에서나 각 사람 앞에서나 다 했습니다. 저는 뭐 개인이 면담하러 온다고 해서 오냐 오냐 달래본 적이 없어요. 찾아온 그 사람이 더 혼나는 거야. 공중 앞에서나 각 사람 앞에서나 내가 신앙 양심에 옳은 말은 꺼리낌 없이 했으니까. 지금 아직도 못한 게 있어서 요번에 시간을 확보해가지고. 금년 2008년안에는 이것이 성경이 말씀하시는 것이다 라고 유감없이 이야기하려고. 그래서 다른 분들도 다른 분이지만, 목회자들이 전부 각성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정치 지도자들. 제가 혹시 무슨 정치인들이라던지 이런 사람들 모아놓고 설교할 기회가 있으면, 할 말이 좀 있어요. 일평생 두고 보면서 봤던 할 말이 있습니다. 너무 국민들 기분 나쁘게 지 말자. 정치 잘 안해도 좋으니까, 국민들 기분 나쁘게만 하지 말자. 그런 말도 할겸 할말이 참 많이 있어요. 다윗은 사람들 마음속에 감동을 줘요. 정치인으로서 감동을 주는 거에요.

 

 

그 후에 2장을 보세요. 다윗이 여호와께 물어 가로되 ‘내가 유다 한 성으로 올라 가리이까?’ 정치적 행보를 경거망동하지 않고, 정치적 행보를 하나님께 한걸음씩 묻습니다. 유다 한 성으로 올라가는 것을 묻는 거에요. 그랬더니 여호와께서 올라가라. 다윗이 가로되 ‘어디로 가리이까?’ ‘어디로 가긴 헤브론으로 가야지.’ 헤브론이 유다지파의 수도에요. 유다지파의 도청소재지가 있는 곳. 헤브론으로 갈지니라. 그래서 일단 헤브론까지 온 것입니다. 헤브론까지 오면 나머지 남은 것은 예루살렘까지 가는 것만 남은 거야. 거의 다 왔죠. 우리 서울가는 것 같으면 과천 톨게이트에 온 거에요. 그래도 항상 조심합니다. 항상 한걸음 한걸음 행보를 조심하는 거에요. 절대로 오버하지 않고 다윗이 꼭 하나님께 물어서 걸어가는. 이런 것도 하나님께 사랑받는 비결이에요. 분에 넘치는 행보를 하지 않는 거죠. 그래서 올라갈 때에 아비가일하고, 아히노암하고, 이런 그동안의 이래저래 그런 여자 아시죠?

 

4절입니다. 유다 사람들이 와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서. 반강제로 기름 부어서 유다 한 지파의 왕을 만든 거에요. 다윗이 되고 싶어서 한 게 아니라, 유다 지파의 사람들이 열심이 있어서 언제 이거 뭐, 전체 12지파 여론을 다 모아서 왕을 삼기에는 하다 세월이고, 확 달려들어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서 왕을 삼아버렸어요. 이런 분위기입니다. 현재. 그러니까 지방색, 지역감정, 그거 없는 데가 없습니다. 우리가 지역감정이 큰 문제다 하는데, 지역감정이 없는 게 문제지. 어느 나라가 지역감정이 없는 데가 어디 있어요? 미국도 가면, 동부가 있고, 서부가 있고, 남부가 있어요. 남부, 북부가 있어서 남북 전쟁한 것이고, 지금은 남북은 통일 되었는데, 미동부하고, 미서부가 지역감정 있습니다. 영국은 없느냐? 영국도 있습니다. 영국도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항상 지역 감정 있는 거에요. 독일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동독, 서독 갈라지는 거 아니에요? 지역감정이란 게 없을 수가 없는데, 지역감정 부추겨서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게 문제지, 지역감정 있게 마련입니다. 그것가지고 너무 그리할 필요 없어요. 자기 지역 사랑하는 거 당연한 거지. 나는 오히려 지역감정도 없이 전부다 경상도 사람들이, 전라도 사람들이 서울 가서 사는 게 그게 문제라고 봅니다. 나처럼 경상도 사람은 경상도 탁 자기 고장을 빛내고 살아야지, 전부다 서울 가버리면 어떻게 해요. 내가 볼 때, 우리나라 망치는 속담이 있어요. 아들 낳거든 서울을 보내고, 말을 낳으면 제주도 보내라. 아들 전부 서울 가버리고, 말은 전부 제주도 가버리고. 나는 말 타고 싶은데 실제로. 그 말 타고 심방가면 얼마나 좋겠어요. 말 다 데려옵시다. 다시. 서울 간 사람 다 내려오고. 빨리. 뼈 빠지게 아들들 길러서 서울만 좋은 일 시키고 말이요. 그런 건 기분 나빠. 그래서 저는 서울 잘 안갑니다. 꼭 볼 일있으면 가지만. 서울 사람들 책망하기 위해서 가지만, 그 외에는 안가요. 그러니까 제발 서울로만 서울로만 가지 말고. 이런 말 하나 마나죠. 사실.

 

그래서 4절 중간에 보면 혹이 다윗에게 고하여 가로되, 아이들이 목사님, 혹이 말해요? 물어봐요. 그래서 빨리 고쳐야 되는 거에요. 어떤 사람이 인데. 이런 거 빨리 빨리 고쳐야 되는 거죠.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고하여 가로되, ‘사울을 장사한 사람은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니이다’ 하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지난번에 사울왕의 시신과 왕자들의 시신이 머리도 없는 채, 벳산 성벽에 달려있는 것을 요단강 동편의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밤새도록 달려와서 장사하더니 내려다가 수습해서 불살라서 장사지내고 7일 금식했다고 하는데, 그것을 왜 그랬느냐? 사울왕의 등극 초기에 암몬 사람들이 떼로 몰려와서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을 막 잡아먹으려고 하니, 그 소식을 급하게 타전하니, 사울의 화가 확치밀어서 성령이 충만해 진거야. 바로 가서 암몬으로부터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을 지켜내고 구원해준 일이 있어요. 사울 초기 등극 초기에. 누가 이 사람이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겠느냐? 하고 사람들이 다 무시하지만, 그런 일을 통해서 사울도 얼마든지 잘 할 수 있는 사람이다 라는 것을 보여주었던 일이 있었는데, 길르앗 사람들이 그 은혜를 못 잊습니다. 그래서 사울왕가 몰락했는데. 대개 정승 죽은 데는 원래 아무도 안오거든요. 그런데 죽었는데도 불구하고,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의리를 가지고 사울왕과 왕자들의 시신을 수습해줬다 하는 소식을 다윗에게 이렇게 귀띔하는 것은 무슨 얘기냐. 어차피 이스라엘 사람들이 은근히 지역감정이 있어요. 유다지파 감정, 사울진영 감정, 요단강 동편땅 감정이 따로 있어요. 근데 알고 보니까, 요단강 동편의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사울왕가에 애정이 남아있어서 시신을 수습해 장례까지 해줬답니다 하는 얘기를 다윗에게 말해주는 사람들은 은근히 기분 나쁘다는 거죠. 은근히 요단강 동편을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이렇게 귀띔을 했는데, 다윗은 전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고, 어떻게 하느냐?

 

5절다윗이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에게 사자들을 보내어 가로되, ‘너희가 너희 주 사울에게 이처럼 은혜를 베풀어 장사까지 지어주었다는데, 정말 여호와께 복받을 만한 일을 한거야. 너무 너무 잘했다. 너희가 이런 착한 일을 하였으니까 이제 여호와께서 은혜와 진리를 너희에게 베푸시기를 원하고 나도 이 선한 일을 언젠가 보상하겠다. 이제 너희는 손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할지어다. 너희 주 사울이 죽었는데, 유다족속이 내게 기름을 부어서 자기 지파적 열심이 있어서 억지로 나를 왕을 삼으려고 세웠는데, 내가 왕이 되고 싶어서 된게 아니다. 오해 없었으면 바란다.’

 

이런 조의 편지를 보내는 거에요. 이것만 봐도 다윗이 역시 한 수 더, 한 차원 높은 수준이에요. 그렇죠? 국민들이 그냥 그 시기해서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사울왕의 시신을 장례해 주었다고 고자질하듯이 참소하는 마음은 그저 보통 사람들의 마음이고, 그보다 한 수 더 떠서 그것은 너무 너무 잘한 것이다 하고 칭찬하는 것은 이게 다윗이 정치인 자격이 있는 거죠. 이것을 하나님이 보기 때문에,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는 거에요. 여러분 역사서를 배울 때, 이런 것을 배우라는 거에요. 제가 일부러 역사서에 시간을 많이 보내고 있는 겁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다윗을 너무 마음에 들어 하시니까, 우리도 그 다윗을 배우자는 거에요.

 

맨날 잘된다, 복 준다, 그래 복주는 데, 복 받을 짓을 해보자고. 복 받을 심성이 되어 있는가 우리가 돌아봐야 돼. 이런 부분들은 그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 정치적인 분위기, 영적인 분위기, 하나님의 감정, 사울이, 다윗이 처한 정황, 이런 것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서, 이게 3천년전 일인데, 지금 읽어도 전혀 거리감 없이 읽어지지 않습니까? 저보고 사람들이, 목사님, 주일날 설교는 어찌합니까? 어찌하긴, 내나 이리해요. 지금하는 것처럼. 이리하는데 단 서서할 뿐이죠. 그러니까 이것보다 좀 더 세밀히 할 수 있겠죠. 이렇게 죽 흘러갑니다. 그러면 성도들이 저와 꼭같이 공감하면서 참 맞는 말씀이다. 이렇게 공부하는 거에요. 뭐, 제목하나 정해놓고, 본문 하나 정해놓고, 본문하나 정해놓고, 엉뚱한 소리 다 하다가 첫째, 둘째, 세째 하다가 이런 설교는 없습니다. 그냥 시간되는 대까지 물 흐르듯이 볼 것 다 보고, 누가 진도 재촉하는 사람도 없고, 그래도 할 얘기 못하냐? 제가 할 얘기 다 해요. 제가 할 얘기도 별로 없고, 하나님도 할 이야기도 모자란데, 시간도 없고, 나까지 꼽사리 끼면 안되니까. 그저 성경에 있는 말씀이 주욱 흘러가기만 해도 충분해요. 왜냐하면 저 생각은 하나님 생각하고 전혀 다르지 않거든요. 내 생각이 모자라죠. 항상. 하나님 생각보다 모자르니까. 하나님 말씀 흘러가면 그것만 해도 충분해요. 내 생각 그것 안보태도. 충분하다는 거야. 남아 남아 넘쳐. 그럼 내가 내 할 말이 뭐 있겠어요. 내 주제에. 설교의 기본 자세가 나를 통해서 하나님 뜻이 하나님 말씀이 유감없이 흘러갔으면 좋겠다. 그렇게만 하면 참 자유하다니까.

 

8절입니다. 사울의 군장 넬의 아들 아브넬이 이미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데리고 마하나임으로 건너가서, 길르앗과 아술과 이스르엘과 에브라임과 베냐민과 온 이스라엘의 왕을 삼았더라. 거봐. 만약에 사울이 죽었지, 그 당연한 그저 후계자 될 요나단도 죽었지, 아비나답 죽었지, 말기수아도 죽었지, 그러니까 사람들의 시각에는 어허, 이제는 사울 왕가 몰락했으니까, 다윗이 치고 들어가서 자리를 차지하지 않겠는가? 이런 시각을 갖고 있고, 아까도 사울의 투구를 벗겨서 갖다 바치고, 이런 분위기 자체가 사람들의 마음 자체가 말은 안하지만 다윗의 행보를 은근히 주시하고 있어요. 그래도 다윗은 경거망동하지 않고 하나님께 그 정치적 행보를 한걸음 한걸음씩 물어가면서 나갑니다. 절대 오버페이스하지 않고. 이런 게 다 보이지 않습니까? 아닌게 아니라 왕자 하나 남아 있거든요. 이스보셋이라고. 그 왕자 중에서도 좀 시원치 않은 사람이야. 전쟁터에도 같이 안나가고, 너는 궁을 지키고 있거라. 집이나 잘 봐라. 놔둔 아이가 이스보셋인데. 이스보셋이라고도 하고, 다른 데는 에스바알이라고 해요. 집에 있었어요. 그러니까 군장 아브넬은 넬의 아들 아브넬인데, 넬은 기스하고 형제간이에요. 사울의 아버지 기스하고 형제간이기 때문에, 사울의 사촌이에요. 사울의 사촌되는 사람이 아브넬이란 사람인데, 군장, 군대장관을 지냈거든요. 이 사람이 실세로 등장하면서 사울의 아들, 자기에게는 조카죠. 조카에게 기름을 부어 왕을 세우는데, 그것은 얼굴 마담이죠. 실권은 이미 아브넬이 갖고 있고, 오촌 당숙되는 아브넬이 갖고 있고, 명목상으로 왕을 세운 거야. 그런 것도 분위기를 빨리 빨리 파악해야 이야기가 됩니다. 그래서 이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비로소 왕이 될 때 40세며, 두 해 동안 위에 있습니다. 아주 불안한 2년.

 

유다족속은 다윗을 따르고, 다른 사람들은 이스보셋을 따르는데, 다윗이 헤브론에서 유다 족속의 왕이 된 날 수는 일곱 해 여섯 달이라. 다윗이 30살쯤 되었을 때, 유다 지파의 대표가 된 거죠. 넬의 아들의 아브넬과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의 신복들은 마하나임에서 나와서 기브온에 왔고, 스루야의 야들 요압과 다윗의 신복들도 나와서 기브온 못가에서 대치합니다.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란 말은 스루야는 다윗의 나이 많은 누나의 아들이야. 나이 많은 누나의 아들이다 보니까, 요압하고 다윗은 나이가 비슷했을 거야. 생질하고 외삼촌 사이인데도, 외삼촌 되는 다윗이 나이가 8번째니까, 얼마 안되서 비슷하고, 다윗의 큰 누나 아들이기 때문에 외척간이죠. 그래서 군대장관처럼 역할을 하는데, 기브온 못가에서 이 두 세력이 맞딱뜨리게 됩니다.

 

하나는 못 이편에, 하나는 못 저편이라. 연못을 하나 두고 대치 국면에 들어갔어요. 아브넬이, 저쪽의 이스보셋 군장이죠. 사울왕가의 군장, 사울의 사촌이었는데, 요압, 이쪽의 군대장관이죠. ‘청컨대 소년들로 일어나게 하자. 우리 앞에서 장난하게 하자. 한 게임해보자.’하고 고함을 질러요. 요압이 일어나게 하자 하매, 저희가 일어나 그 수효대로 나아나니 베냐민과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의 편에 열 둘이요, 다윗의 신복 중에 열 둘이라. 처음에는 12명, 12명 가지고 승부를 가리고 끝내자. 우리가 언제까지 이렇게 긴장관계 오래 있겠냐? 피곤하다. 12명 가지고, 12명 가지고 끝내자 했는데, 이게 게임이 안되는 거야. 다윗의 휘하에 있는 군사들은 야당 생활을 한 10년 하면서 독이 오를 때로 올라가지고 있고, 지금 이스보셋의 집안의 군인들은 지금 자꾸 덩치는 큰데, 점점 기우는 달이야. 다윗은 떠오르는 샛별이고. 이건 독이 올라야 싸움을 잘 합니다. 너무 배부르고 기름때가 끼고 하면 전쟁이 안 됩니다. 씨름도 안되고. 그래 붙었는데, 게임이 안되고, 일순간에 그냥 무너져 버려요. 다윗의 신복들이 워낙 독이 올라 강하니까, 붙였는데, 게임이 안되고 그냥 무너져 버린거야. 그랬더니 원래는 12명만 가지고 전쟁을 만다고 했는데, 다윗군대대로 이기니까 이 참에 끝장을 보자하고 왕창 다 덤벼서 전면전의 백병전이 붙은 것이고, 이스보셋군대는 이때 밀리면 끝장이다 싶어서 싸움이 붙었는데, 얼마나 격렬히 붙었는지 말릴 수도 없어. 그 싸움에 순식간에 이스보셋군대는 360명이 무너졌어요. 이렇게 보니까 다윗의 군대는 19명밖에 안 죽었어. 그 게임이 안되요. 지금. 어떻게 함께 붙었는데 숫적으로는 저쪽이 훨씬 더 많은데, 다윗의 군대는 독이 올라서 싸우니까, 19명이 죽었는데, 저쪽은 360명이 무너져 버린거야. 그러니까, 아브넬이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이기때문에, 이 전쟁이 승전이 있는지 없는지 금방 간파하고, 퇴각하라. 퇴각하는거야. 쏴아 몰려가니까, 오랜만에 결정적으로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해니까 다윗의 군대가 집요하게 따라갑니다. 여러분, 다 손자병법을 안 읽어보지 않아서 그래요. 도망가는 적은 쫓으면 안되는 겁니다. 도망가는 것은 쫓으면 안되요.

 

이 결정적인 실수가 되는데, 그 때 아브넬이 연세가 하도 최소한 60, 많으면 한 70쯤 되는 그런 백전 노장이고,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이라. 그런데 나이가 많고 하니까, 아무리 말을 타고 달려도 걸음이 빠를 수가 없죠. 그 뒤에 그 아브넬을 노리고 따라가는 사람이 하나 있어. 이쪽 다윗의 군대에서 발이 제일 빠른 사람이라. 이름이 아사헬하는 사람인데, 아사하는 말은 만들다, 엘하는 말은 하나님이죠. 하나님이 만들었다. 다른 말로 하면 그 발이 얼마나 빠른지 들노루같이 빠른거야. 그래서 다 그의 발을 신의 발. 얘가 쌩~하고 달리면 고무신 타는 냄새가 난다니까요. 얼마나 빠른지. 바로 올림픽가면 100m, 모리스 그린, 칼 루이스 저리가라야. 발이 빠른 사람 있죠? 발이 느린 사람이 있고, 발이 빠른 사람이 있는데, 발이 너무나 빠른 거에요. 아주 운동 신경이 발달하고, 달아가는데, 아브넬이 쫓겨가며서 보니까, ‘아이고, 저 골치아픈 게 따라오네. 저 발빠른 게 따라오니까, 점점 걸음이 가까울 것이고, 이거 위험한거야.’ 뒤의 놈은 이럴 때, 이게 과도기에 월척을 한마리 해봐야, 논공행상할 때, 공신 등급에 올라가고 뭐 있거든 이게. 그래서 점점 가까와지니까, 아사헬아, 네냐? 너 너무 따라오는 것같다. 내가 널 해치울 수 있지만, 너를 해치우고 나면, 나중에 결국은 네 형 요압하고 협상자리에 나가면 내가 입장이 곤란하니까 그래. 그러니까 너 어지간이 따라오고, 그냥 길가에 좌로나 우로나 치우쳐서 졸병하나 잡아 군복이나 하나 벗겨서 돌아가. 왜 자꾸 돌아오는 거야? 죽을려고. 해도, 영감쟁이가 웃기고 있네 하면서 계속 따라와. 아이고 아브넬이 전부 가까이 오면 뒤에서 던지고 하잖아요. 안되겠다고 싶으니까, 창을 가지고 가다가 창을 뒤집어서 겨드랑사이로 쑥 빼면서 서버렸어. 서버리니까, 이 애가 브레이크가 안잡혀서 그냥 끝나 버린거야. 이건 간단한 거야. 발만 빨랐지, 이런 건 하루아침에 해장거리도 안되는 거야. 아브넬은 산전수전의 백장노장인데, 이런 거 뭐 간단히 끝나버렸어. 여러분, 발 빠른 거 조심하라고. 브레이크 안잡혀서 죽는 수가 있다니까.

 

그래서 문제는 지금 위기는 어떻든 아브넬은 오늘 내가 살아야 나중에 협상을 하든지 말든지 하지, 오늘 내가 죽으면 협상이고 뭐고 아무 것도 없는 거죠. 할 수 없이 살아야 되니까, 이건 뭐, 정당방위죠. 그리고 전쟁터에서 난 것은 공적인 문제야. 그래서 아사헬이 죽었는데, 그 소문이 들리니까, 요압이 ‘뭬야?’ 자기 친동생이거든요. 요압, 아사헬, 아비새 이 삼형제가 다윗의 생질들이고, 스루야의 아들들인데, 전쟁터에 나가서 그 제일 발이 빠른 게 죽어버렸다는 거야. 요압이 기어이 아브넬을 잡으러 간다 계속 추격전을 벌이게 되는데, 계속 따라오니까, 앞에 쫓겨 가던 아브넬이 나이도 많은데, 자꾸 쫓기면 어떻게 해요. 그래서 딱 돌아서면서 요압보고 네가 언제까지 네 형제 쫓기를 금하겠느냐? 마침내 참혹한 일이 벌어질 줄을 알지 못하느냐? 하고 딱 돌아서는 거요. 계속 간다는 것도 힘들잖아요. 사실은 요압이 뭐 좀 젊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브넬이 백전노장인데, 나이가 들었어도 1;1로 맞장을 뜨면, 요압이 이긴다는 보장도 없어요. 사실은요. 괜히 기세를 가지고 몰아붙이겠다는 건데, 딱 정면으로 돌아서면서 한판 해보겠느냐? 하니까 요압도 주춤합니다. 그래서 병사들을 돌리고 돌아왔어요. 요압군대가. 그래서 아브넬은 그 위기를 넘어서는데, 이런 이야기가 사무엘하서 앞부분에 있습니다. 과도기죠.

 

 

3장입니다. 결국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오래매. 상당히 오랫동안 세력다툼을 합니다. 파워게임을 하는데, 자세히 보세요. 다윗의 집은 점점 강하여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 가니라. 뭐든지 갑자기 되면 안되요. 조용히 정권이 교체되게. 이게 하나님 방법입니다. 충격을 최소화하고, 조용히 힘의 균형이 옮겨가게끔.

 

그러다가 6절입니다.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있는 동안에 아브넬이 사울의 집에서 점점 권세를 잡아갑니다. 실권을 딱 움켜줘요. 사울에게 첩이 있었는데, 리스바인데, 이 리스바가 굉장히 아름다운 여자였어요. 제가 한번 먼데서 봤는데, 미스 이스라엘이에요. 완전히. 너무 너무 아름다운 첩을 갖다 두었는데, 이 아브넬이 그걸 탐을 낸거야. 군대장관 아브넬이 그걸 건드렸나봐. 아야의 딸인데, 이스보셋이 자기가 왕이라고, 왕이면서 자기 어머니 뻘이니까, ‘네가 어찌하여 내 아버지의 첩을 통간하였느냐?’하고 한마디 했어요. 아브넬이 이스보셋의 말을 매우 분히 여겨 가로되, ‘내가 뭐 유다의 개 대가리인 줄 알았어? 이 짜식아. 내가 오늘날 당신의 아버지 사울의 집과 그 형제와 그 친구에게 은혜를 베풀어가지고 당신을 다윗의 손에 내어주지 않은 것만 해도 고마워해야지 무슨 소리야? 이 여인 하나가지고 나에게 허물을 돌리는 거야? 아, 그러거야?’하면서.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맹세하신 대로 이루게 아니하면 하나님이 아브넬에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심이 마땅하니라.’ 확 나라 빼앗아서 다윗에게 주어버릴까 보다. 이런 식으로 나오는 거죠. ‘그 맹세는 곧 이 나라를 사울의 집에서 다윗에게 옮겨서 그 위를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이스라엘과 유다에 세우리라 하신 것이라’ 하매, 이스보셋이 그 다음부터는 아브넬을 두려워해서 감히 한마디도 대답지 못하더라. 이 시대가 무인시대에요. 그래서 아브넬도 내가 이런 걸 붙잡고 버티는 것도 그렇다 해서 아예 마음을 접고 다윗에게 사자를 보내요.

 

12절. 아브넬이 자기를 대신하여 사자들을 다윗에게 보내어 가로되, ‘이 땅이 뉘 것이니까? 또 당신은 나로 더불어 언약하사이다. 내 손이 당신을 도와 온 이스라엘로 당신에게 돌아가게 하리아다.’하고 제안을 했어요. 그리고 다윗이 좋다 좋지. 뭐 안될 게 있습니까? 내가 너와 언약하리라. 언약한다는 말은 다 돌려서 당신 홀로 다스리게 해 줄테니까, 밑에 보면 정치 보복 그런 것 없는 것으로 하고. 뻔하죠? ‘좋다. 내가 너와 언약하려니와, 내가 네게 한가지만 요구하는데, 나를 보러올 때에 우선 할 일이 있어. 뭐냐. 사울의 딸 미갈을 데리고 오라. 그렇지 않으면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아이고, 지금 미갈이 딴 남자에게 시집간지 10년쯤 넘었는데, 이제 와서 다시 가져오래. 다윗이 이 첫 사랑을 못 잊어합니다. 우리 자매들 잘 들어봐요. 이게 남자라는 거에요. 남자들은 그 첫사랑을 잘 포기를 못해요. 결혼을 했어도, 지금은 현재 아내를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사랑은 또 해도, 그 첫사랑에 대한 정서가 상당히 오래가요. 일평생. 잘 안 지워져요. 이게 남자들이라. 여자들이야, 잊고, 또 잊고 얼마든지 바꾸고, 새 신을 신고 뛰어보자 팔딱하는데, 남자들은 그게 안 되요. 마음이나 생각의 깊이가 다르기 때문에, 한번 딱 각인되면 잘 지워지지 않습니다. 다윗도 못 지워서 이러고 있는거야. 세상에, 남의 품에 가서 10년씩이나 살고 있는 여자를 데려오라는 거에요.

 

아브넬이 참 골치 아파합니다. 참 골치 아픈 거를 요구하네. 그렇지만 약정서에 여러가지 조건 붙어있는 것도 아니고, 단하고 한 개 붙어 있는데 안들어 줄 수도 없고 말이야. 사울의 이스보셋에게 사자들을 보내어 이르되, ‘내 처 미갈을 내게 돌리라. 저는 내가 전에 블레셋 사람의 양피 일백으로 정혼한 자야.’ 이게 또 감정도 있어. 내가 목숨을 걸고, 블레셋 사람 일백을 가져오라 하길래 이백을 가져다 주고 미갈에게 장가 들었는데, 첫날밤도 지내지 못하고, 들창문으로 도망가서 지금까지 한이 맺혀 있다. 결혼했다손 치더라도, 중고품, 과부, 돈많은 사람들, 할매들 하고 살아보는데 이게 애정이 됩니까? 그래서 기어이 첫사랑을 찾는 거에요. 나라가 평정이 되고 하니까. 이스보셋이 보내어 그 남편 라이스의 아들 발디엘에게서 가서 빼앗아 옵니다. 그 남편 발디엘이 바후림까지 따라와. 마! 뚝! 돌아가라. 하고 돌려보냈어. 아브넬이 이스라엘 장로에게 말하여 가로되, ‘너희가 여러번 다윗으로 왕 삼기를 요구했는데, 이제 그대로 해라. 여호와께서 이미 다윗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내가 내 종 다윗의 손으로 내 백성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블레셋 사람의 손과 모든 대적의 손에서 벗어나게 하리라 하셨음이니라’ 하고, 아브넬이 또 베냐민 사람의 귀에 말하고 이스라엘과 베냐민의 온 집이 선히 여기는 모든 것을 다윗의 귀에 고하려고 헤브론으로 갑니다. 정상적으로 협상 조약 체결할 준비 조건이 완비되었기 때문에 직접 아브넬이 다윗을 찾아가는데, 군사를 대동하고 간 게 아니라, 수행원 달랑 20명 데리고 다윗의 소굴로 들어갔어요. 그것은 아브넬이 다윗을 믿었다는 거죠. 이해가 됩니까? 다윗을 믿지 못했다면 군사를 데리고 갔을 거 아니에요. 군사를 다 두고, 달랑 수행원 20명만 데리고 다윗에게로 갔어요.

 

20절. 아브넬이 종자 이십인으로 더불어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에게 나아가니까, 다윗이 아브넬과 그 함께한 사람을 위하여 잔치를 배설하였더라. 정중하게 맞이합니다. 왜냐하면 대 선배이죠? 다윗에게는. 나이가 30살 이상 차이가 납니다. 대선배고, 다윗이 골리앗 때려잡을 때도 이미 군대장관이었고, 그런 정도니까, 깍듯이 그저 저쪽 전체의 대표이기도 하고, 대표는 대표로서 예우가 있는 거에요. 그래도. 아브넬이 다윗에게 고하되, ‘내가 일어나 가서 온 이스라엘 무리를 내 주 왕 앞에 모아 더불어 언약하게 하고, 마음의 원하시는대로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리이다.’ 이에 다윗이 아브넬을 보내매 저가 평안히 가니라. 이런 거 보면 아브넬도 대인이야. 지금 새파랗게 어린 자기 아들뻘 밖에 안되는 다윗에게 이 모든 것을 다 자기 손에 쥐었던 것을 넘겨준다는 것은 참으로 속쓰리고 가슴 아픈 일이지만, 이것이 적어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니까, 기꺼운 마음으로 내 한사람의 감정이 문제가 아니라, 국가 전체의 평안을 위해서, 싸우게 하면 다 상처 나니까, 다 묶어서 다윗의 손에서 다스려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 믿고, 정말 속으로는 마음이 많이 아프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인물이 아브넬이에요. 대인이죠. 사람이. 그릇이. 다윗은 그런 인물을 깎듯이 예우해서 돌려보내고요.

 

다윗의 신복들과 요압이 적군을 치고 크게 노략한 물건을 가지고 돌아오는데, 아브넬은 이미 보냄을 받아 평안히 갔고, 다윗과 함께 헤브론에 있지 않을 때인데, 요압의 졸다구가 요압에게 말하기를 ‘아브넬이 왕에게 갔다왔다는데, 왕이 평안히 보내줬답니다.’ 요압이 쌍심지를 키면서,‘뭬야? 너 빨리가서 아브넬 장군에게 가서 내가 보잔다고 해라’ 그래서 사람을 보냈어요. 그러니까 아브넬은 이제 돌아가다가 누가 따라와서 ‘요압이 보자고 한다’고 하니까, 어차피 한 번은 넘어야 할 산이죠? 요압은. 왜 그래요? 아사헬 자기 동생 문제 때문에 언젠가 한 번은 지금 부딪혀야 할건데, 요압 편에서 먼저 만나자고 하니까, 이 순진한 아브넬은 마음이 자기 정직하고 선한 사람이니까 믿었어요. 그걸. 오늘 나선 김에 다 일괄 타결이 되겠다. 그러면. 꺼림했는데, 협상 자리에 요압이라도 있어서 개운하게 되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웠지만, 돌아오는데, 요압이 전쟁터에서 돌아와서 자기를 보자고 하니까, 너무 참 기분좋게 흔쾌한 마음으로 그래? 그럼 돌아가야지 하고 돌아갔단 말이야. 아브넬이 만나자 마자, 형은 안녕하쇼? 하면서, 비수가 다리에 있는데, 아브넬이 그걸 전혀 생각 못하고 끝나버렸어.

 

그 이튿날 아침에 조중동에 대문짝만하게 나오는데, 보니까 화해하러 온 그 아브넬의 뒤통수를 다윗이 쳤다. 다윗이 친 게 아니죠. 그런데 밖에 소문은 그렇게 났어요. 그 다윗 새끼, 나쁜 놈의 새끼다 말이야. 군사도 거느리지 않고 믿고 수행원만 20명 데려갔는데, 아브넬이 죽어서 돌아왔단다. 벌집 쑤신 것 같아요. 온 나라가. 그야말로 여론이 죽 끓듯 합니다. 장례식 하는데 국민들이 그야말로 뒤숭숭 한거야. 장례식장에 다윗이 나타난 거야. 전부 계란을 던질 준비해 가지고 다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나타나더니 막 방성대곡하고 우는 거야. 다윗이. 네 발이 착고에 채이지도 않았고, 네 손이 결박되지도 않았는데, 어찌하여 그 불의한 자식의 앞에 힘도 없이 쓰러졌느냐. 한번 싸워보지도 못하고 죽었느냐? 하고 방성대곡하고 우니까. 왜 저렇게 울어? 신하들이 다윗을 부축하고. 국가가 전체로 어글어글하다가 모처럼 화해분위기가 무르익어 가는데, 이 요압이란 놈이 찬 물 끼얹는 짓을 했기 때문에, 다윗이 너무 안타깝고 서럽고, 이렇게 화해를 이루려고 한 아브넬의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하니까, 백성들이 갈피를 못잡고. 울기는 왜 울어? 도대체가. 죽여 놓고 쇼하나. 그때 청와대 대변이 나와서, 그리한 게 아니고, 아브넬이 죽은 것은 다윗이 한 게 아니라, 다윗은 전혀 몰랐는데, 요압이 자기 동생 아사헬을 인하여 감정적으로 보복한 것이고, 암살 당했단다. 그리고 다윗이 너무 슬퍼하니까, 제발 물 좀 마십시오. 고정하십시오. 다윗이 ‘내가 오늘날 대인이 죽은 것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해 지기 전에 내 입에 음식을 대면 하나님이 내 위에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다.’하고 식음을 전폐하고 슬퍼하는거야. 그러니까 온 백성이 그러면 그렇지. 사울왕을 두 번씩이나 죽일 수 있어도 안죽인 다윗이 아브넬을 그리할 리가 없지. 죽은 건 죽은 거고, 마음이 한쪽으로 화악 몰려와서, 전부다 다윗의 품으로 와서 마음이 기울어지는 분위기입니다. 정치 분위기가. 뉴스 중계를 제대로 하고 있는 거에요? 지금. 3천년 전이었습니다. KBS 노우호 기자. ^ ^ 3천년전 이야기.

 

 

그래서 이 문제가 평정되면서 간신히 한 고비를 또 넘어갑니다. 다윗의 정치가 이렇게 어려운 거에요. 3장 33절을 보면, 왕이 아브넬을 위하여 애가를 지어 가로되 ‘아브넬의 죽음이 어찌하여 미련한 자의 죽음 같은고. 네 손이 결박되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착고에 채이지 아니하였거늘 불의한 자식의 앞에 엎드러짐 같이 네가 엎드러졌도다.’ 하매 온 백성이 다시 그를 슬퍼하여 우니라. 석양에 뭇 백성이 나아와 다윗에게 음식을 권하니 다윗이 맹세하여 가로되, ‘ 내가 해 지기 전에 떡이나 다른 것을 맛보면, 하나님이 내게 벌위에 벌을 내리심이 마땅하니라.’ 하매 온 백성이 보고 기뻐하며 왕이 무슨 일을 하든지 무리가 다 기뻐하므로, 이 날에야 온 백성과 온 이스라엘이 넬의 아들 아브넬을 죽인 것이 왕의 한바가 아닌 줄을 알게 되었다는 거에요. 자, 여기 정치하는 세계도 사람들이 이런저런 오해가 쌓이게 되요. 모든 비극은 오해로부터.

 

그러고 나서, 이스보셋. 4장 보세요.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달랑 하나 남았죠. 자기에게 그래도 뭐 부담스럽지만, 그늘이 되어주던 아브넬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손맥이 풀렸고, 온 이스라엘이 놀라니라.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에게 군장 두 사람이 있으니, 하나의 이름은 바아나요, 하나의 이름은 레갑이라. 베냐민 족속 브에롯 사람 림몬의 아들들인데, 브에롯도 베냐민 지파에 속하기 때문에요. 이 이스보셋이 낮잠을 잤어. 지금 때가 어느 때인데. 그런데 히브리사람들, 중동 사람들은 다 낮잠을 잡니다. 점심 먹고 한 시간, 두 시간 자는 게 공식이야. 한국 사람들만 안자고 일을 해요. 지금도. 점심 먹고 한시간 두시간 오수를 즐기는 거에요. 그러니까 그 쪽 사람들이 일이 안되요. 한 뭐 9시나 되서 일하는 거 준비하다가 12시 되면 점심 먹고, 또 2시간 자버리니까, 잠도 부시시하고, 잠 깨버리고, 오후에 마치니까, 일이 안되는 거야. 한국사람 3교대로 밤새도록 하니까, 그 사람들 3교대 하는 거 모르고 우리나라 사람 잠 안자는 줄 알아요. 그러니까 그 사람들은 몇년 걸려도 안되는 걸, 한국 사람든 몇 개월이면 끝장내 버리는 거야. 그 사람들하고 일하면 일하는 것도 아니고, 일안하는 것도 아니라. 한국 사람이 보면 복장 터져 죽을 지경이라. 일하는 것보면. 낮잠을 자요. 이 낮잠을 거의 다 잡니다. 스페인 같은 데도 가도 낮잠을. 출근을 9시나 10시쯤 해서, 점심 먹고 또 한 두시간 자 버리고, 1-2시간 일하다가 저녁을 5시부터 11시까지 먹어요. 저녁을. 얼마나 스페인 사람 떠드는지요. 한국 사람들 떠드는 것은 잽도 안되요. 그것은. 한국 사람은 스페인 가면 명함도 못내밉니다. 얼마나 떠드는지, 얼마나 시끄럽고. 그래서 내가 야, 이래고도 얼마나 사람이 사는가 싶을 정도로. 그러니까 한국이 이렇게 발전하는 데는 우리가 워낙 부지런하다는 거에요. 세계 어느 민족보다도 우리가 열심이라는 거에요. 그래서 우리가 이만큼 잘 산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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