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환 전역
태환이가 군대 생활 3년을 무사히 마치고 제대를 했다.
태환이가 군 생활 하는 동안 사소한 사건이 한두 번 있었다. 그 중에 몇가지만 말해보면 다음과 같다.
태환이가 논산 훈련소에서 훈련을 마치고 대전에서 후반기 특수교육을 받을 때의 일이다.
대전에 있는 병참 학교라는 제 2교육 학교에서 ‘피복 수리병과교육’을 받고 있을 때였다.
한동안 대통령 선거 관계로 외출이 없다가 오랜 만에 장병들 외출을 다시 실시하게 되었는데,
만일 이번에 외출이 실시되면 태환이는 군 입대후 고대하던 첫 외출을 나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태환이에게는 외출이 허락되지 않았다.
소문에 의하면 ‘짜웅’(뇌물,아부를 뜻하는 베트남어)을 한 사람만 이번에 외출을 나간다는 것이다.
부대장 말에 의하면 집이 먼 사람은 토요일에 외출을 하고, 가까운 사람은 일요일에 외출을 시킨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말을 태환이는 믿을 수 없었다.
태환이가 속해 있는 피복 수리반에 서울이 집인 사병이 9명이 있었는데, 이 소식을 듣고 모두 PX로 모였다.
“우리는 짜웅을 안 했으니 어차피 이번 외출은 불가능 할거야, 그러니까 이왕 이렇게 된거 우리도 당하고만
있을 순 없잖아, 안그래? 그러니까 우리 그냥 몰래 나가자 어때?”
그렇게 그들은 무단 외출을 하기로 합의를 했다. 결국 9명중에 4명은 남고, 5명이 무단 외출을 감행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신나게 무임승차를 하며 외출을 한 것 까지는 좋았는데, 나중에 2명이 부대로 복귀를
안 한 것이 문제였다. 탈영을 한 것이다.
복귀를 안 한 두 명은 탈영병으로 보고되어 나중에 잡혀와 헌병대로 가게 됐고, 태환이는 병참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요주의 인물로 낙인 찍혀서 많은 시달림을 받아야만 했다.
두 번째는 태환이가 병장일 때의 일이었다. 태환이가 직접 당한 것은 아니었지만, 태환이의 식구들이
어이없는 일을 당했었다.
1961년 가을쯤 되는 어느 날, 군인 한명이 간난이네 집으로 찾아왔다.
그 군인은 자기는 태환이와 함께 군대 생활을 하는 사람인데 태환이에게 지금 급한 일이 생겼다고 했다.
간난이는 그 군인의 말에 너무 놀라 무슨 일이냐고 다그쳤고, 그 군인은 다급한 말투로 사정을 이야기했다.
‘태환이가 부대에서 휘발유를 차에 실으려다 드럼통이 발에 떨어지는 바람에 다리가 부러졌다는 것이다.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으나, 잘못하면 다리를 절단하게 될지도 몰라서 일단 부모님께 알리고 상의를
해야 하기 때문에 이렇게 급하게 자기가 직접 찾아 왔다는 것이었다.’
간난이는 그만 하늘이 노래졌다. 청천벽력이다. 간난이는 허둥대기 시작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이리저리 왔다갔다 했다.
간난이는 그 군인을 붙들고 애원을 했다. ‘제발 우리 태환이가 무사하게 해 달라고, 무엇이던지 다 할 테니
태환이만 무사하게 해달라고 ’
그러자 그 군인은 ‘태환이가 지금 서울에 있는 국군 수도 통합 병원에 와 있으니 함께 가서 보자’고 했다.
그래서 간난이는 얼른 그 군인을 따라나서려고 했다.
그런데 간난이는 태환이가 군에 갈 때처럼 다리가 또 말을 듣지 않았다.
그래서 급하게 사위를 불러서 함께 가기로 했다.
급하게 사위가 간난이가 집을 막 나서려는데, 그 군인은 이런 말을 했다.
“어머니, 육군 병원에는 좋은 약이 없으니, 영양제나 주사약 같은 몇 가지 좋은 약을 일반 약국에서
사가는 것이 좋을 거예요, 제가 마침 잘 아는 약국이 있으니까 그쪽으로 안내해 드릴께요”
그래서 간난이는 어렵게 급전을 구해 가지고 그 군인을 따라갔다.
그렇게 그 군인이 안내한 약국에서 약을 샀는데, 약값이 생각보다 꽤 비쌌다.
하지만, 간난이는 급박한 상황에서 그런것을 따질 수는 없었다. 그렇게 약을 사서 나오는데 그 군인이
이번에는 ‘약이 무거우니 자기가 들겠다’ 고 해서 그렇게 하라고 했다.
잠시후 종로 1가 어디쯤에서 그 군인은 시내에 나온 길이니 아는 사람을 잠깐만 만나고 오겠다며 어느
건물로 들어갔다. 하지만 잠깐만 기다리면 인사만 하고 나오겠다던 군인은 한 두시간이 지나가도 나오지
않았다.
기다리다 지쳐 같이 간 사위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보았는데 그 곳엔 사무실이 너무 많았다.
또 건물 뒤쪽으로는 비상계단이 있었다. 그제서야 경숙이 신랑은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다.
‘속았구나’ 이런 사실을 전해들은 간난이는 갑자기 다리에 힘이 쭉 빠졌다. 그러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 이런 거짓말을 했을까? 사기라고 해도 이상했다.
그까짓 약값이 비싸봤자 얼마나 된다고 이런 사기를 친단 말인가?
간난이는 그때서야 그 군인을 마냥 기다릴 것이 아니라, 태환이가 있는 부대로 전화를 해보면 그것이
사실인지 확인을 해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체국에 가서 부대로 전화를 했더니,
아들 태환이가 직접 전화를 받는 것이었다.
간난이는 그제야 그 군인에게 속은 것을 확실히 알았다. 알고보니 그 군인은 태환이 고참이었다.
이번에 제대를 하는 고참인데, 태환이에게 전역비를 좀 달라고 한 모양이다.
그런데 태환이가 주지 않자 그것을 괘씸히 여긴 고참이 그러한 연극을 한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참으로 웃지 못할 어이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아무튼 태환이는 무사히 군복무를 마치고 제대를 했다. 군대 생활이 끝날 무렵에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태환이는 조치원에 있는 처녀와 결혼까지 했다.
간난이는 태환이가 데려온 며느리가 마음에 썩 들진 않았지만, 당사자들이 좋다니까 그냥 허락해 주었다.
태환이가 제대 할 무렵, 간난이네는 금호동에서 무학 여고로 넘어가는 중간쯤에 위치한 행당동 골짜기에서
살고 있었다.
제대를 하기 전에 태환이가 같이 살 방을 얻으라고 돈을 부쳐 주었다.
그래서 적당한 집을 알아 보던 중, 마침 참기름 행상을 하는 노부부네 집이 나온게 있어서 방 두 칸을
전세로 얻어 경숙이 부부와 함께 살고 있었다.
그런데 태환이가 제대를 하고, 결혼한 아내와 함께 서울로 올라와 보니, 도저히 같이 살 수 있는 상황이
안 되었다. 그래서 아들 태환이는 방을 따로 얻게 되었다. 그러니까 태환이는 방을 두 번 얻은 꼴이다.
간난이는 속이 상했다. 그리고 아들에게 미안했다. 저희들 신혼 살림을 차릴만한 방을 얻으라고 돈을
보낸 것인데, 그 집엔 경숙이 내외가 살고, 정작 돈을 보낸 아들은 다시 방을 얻어 나가야 하니 괜히
미안하고, 죄스러울 뿐이었다.
그러나 간난이는 모른 척하고 사위에게는 내색을 하지 않았다. 간난이는 이러한 상황이 참으로 난처했다.
아들이 제대를 했으니 아들과 함께 살아야 되는데 방이 없으니 같이 지낼수도 없고, 사위하고 살자니
아들이 없을 때는 모르겠더니 이제 사위 눈치가 보였다. 그래서 간난이는 딸에게 이런 말을 종종 했다.
“태환이가 방 얻으라고 준 돈으로 얻은 집에 너희들이 살고 있으니 이집은 내 집이다.
그러니 너희들이 내 집에 들어와 사는 것이지, 내가 너희 집에 얹혀 사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가끔 사위한테 눈치가 보이면 한마디씩 하곤 했지만, 이런 말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간난이가 이런 말을 하면 딸 경숙이는
“누가 뭐래요? 엄마는 우리가 모실 테니, 그런 염려 말아요.” 하고 톡 쏘는 것이다.
간난이는 겉으로 보기엔 늘 좋은 것 같지만, 요즘 하루하루가 지루하고 답답하다.
아들이 제대를 하면 이제 살만 할 줄 알았는데, 막상 제대를 하니까 더 불편했다.
이젠 며느리 눈치도 봐야 했고, 사위 눈치도 봐야 했다. 태환이는 점점 말수가 줄고, 성질을 자주 냈다.
태환이는 제대하고 종로에 있는 양복 공장에 몇 달 다니더니 그 일도 그만 두었다.
동상이 걸려서 이틀을 쉬고 다시 공장에 나갔더니 사장이 그만 두라고 했다.
그래서 다시 일거리를 찾으러 돌아다녀 봤지만, 신통치가 않았다.
그래서 이래저래 속상했고, 그러면 또 집에 와서 성질을 부렸다. 태환이는 모든 게 맘에 안들었다.
직장에 다니는 것도, 사이가 안좋은 아내와 어머니도, 답답한 현실도, 더디게 가는 세월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