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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도니아의 영토는 2만 5713km2인데 대부분 600~900m에 이르는 고원 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바르다르(Vardar) 강은 테살로니카(Thessalo-niki) 근처의 에게 해로 가는 도중에 수도인 스코피예(Skopje) 중앙을 가로지른다. 그리고 마케도니아 국토의 남서쪽에 위치한 오흐리드(Ohrid)와 프레스파(Prespa) 호수는 알바니아를 경유하여 아드리아 해로 흘러든다. 이 호수들은 발칸 반도에서 가장 큰 호수이며 오흐리드 호수는 가장 수심이 깊다(294m). 북서쪽에 위치한 샤르 플라니나(匨ar Planina)는 코소보와 마케도니아의 국경선을 표시하며, 이 지역의 티토프 브르흐(Titov Vrh)는 마케도니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2748m)이다. 이 공화국의 국립 공원 가운데서는 펠리스테르(Pelister), 갈리취차(Gali匸ica), 마브로보(Mavrovo)가 유명하다. II. 역사 고대 마케도니아 영토(B.C. 4세기에 알렉산더 대왕이 고대 세계를 정복하기 위해 시작한 곳으로부터)의 대부분은 오늘날 그리스에 포함되어 있다. 로마 제국은 B.C. 2세기 중엽께 고대 마케도니아의 그리스인과 북부 지역을 정복하였고, 4세기에 로마 제국이 분열되자 이 지역은 콘스탄티노플의 지배를 받는 동로마 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그러나 7세기에 슬라브인이 이 지역으로 이주해 옴으로써 인종적인 특성이 변하게 되었다. 9세기에 이 곳은 불가리아의 시메온 대제(Tsar Simeon:893~927)에게 정복당했으며, 사무엘 대제(Tsar Samuel:980~1014)의 통치기에 마케도니아는 강력한 불가리아 제국의 중심부가 되었다. 그러나 1014년 비잔틴 제국에게 사무엘 대제가 대패함에 따라 마케도니아는 비잔틴 제국으로 넘어가게 되었고, 다시 불가리아, 세르비아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1389년 세르비아가 터키 제국에 패하자 마케도니아는 터키 제국의 수중에 들어가고, 이로 인해 그 지역의 문화적인 특성은 바뀌게 되었다. 그러나 1878년 터키 제국이 러시아에 패하자 마케도니아는 산 스테파노(San Stefano) 조약에 의거하여 불가리아로 양도되었다. 이 때 발칸 반도에서 러시아의 위성국이 탄생되는 것을 꺼린 서유럽 열강들은 마케도니아를 다시 터키 제국에 양도해 줄 것을 불가리아에 강요하였다. 1893년 마케도니아 민족주의자들은 IMRO(국내 마케도니아 혁명 기구)를 조직하여 터키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투쟁하였다. 1903년 고체 델체브(Goce Delcev)가 주도한 봉기는 터키에 의해 잔혹하게 진압당했다. 1912년에 발발한 제1차 발칸 전쟁은 그리스·세르비아·불가리아가 연합하여 터키에 대항하면서 촉발되었다. 그러나 1913년, 제2차 발칸 전쟁에서는 그리스와 세르비아가 연합하여 불가리아를 격파하고, 두 국가가 마케도니아를 분할 점령하였다. 이러한 결과에 격분한 IMRO는 세르비아 왕정주의자들에 대항했으며 2차 세계 대전 때에는 티토의 빨치산 투쟁에 가담하였다. 전후 마케도니아는 유고 연방 내에서 공화국의 지위를 인정받게 되었으며 유고 연방 당국자들은 불가리아의 마케도니아 영토 요구를 약화시키고자 마케도니아인을 세르비아인, 불가리아인과 다른 독특한 인종 집단으로 인정하였다. 그러나 1980년대 말 동유럽에서 개혁의 물결과 함께 제 민족들의 독립 요구가 분출되자 마케도니아도 1991년 9월에 독립에 관한 국민 투표를 실시하였다. 이 때 74%의 찬성을 얻었고, 1992년 1월에는 유고 연방으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선언하였다. 그리고 1993년에는 내전 발발을 억제하기 위해 약 1000명의 UN(국제 연합)군이 마케도니아에 파견되었다. 한편 그리스는 마케도니아 공화국이라는 국명의 사용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표시하면서 독립국으로서의 외교적 인정을 유보하였다. 왜냐하면 마케도니아라는 명칭은 그리스의 북부 지역 영토에 대한 영유권을 암암리에 주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케도니아 정부는 UN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일시적으로 FYROM(구유고의 마케도니아 공화국)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되었다. 약 2년에 걸친 논란 끝에 유럽 연합 국가들은 FYROM과 외교 관계를 수립하였고, 1994년에는 미국이 FYROM을 인정하였다. 이 결과 그리스와 마케도니아의 관계는 더욱 악화되었고, 그리스는 마케도니아에 대한 경제적인 금수 조치를 선언하고 마케도니아의 무역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테살로니카 항구를 폐쇄시켜 버렸다. III. 정치 공식 국명은 구유고의 마케도니아 공화국(FYROM)이다. 입법부는 단원제인 120명의 국민 의회가 담당하고 있다. 현 대통령은 1994년 10월에 재당선된 키로 글리고로브(Kiro Gligorov)이며, 수상은 브란코 츠르벤코브스키(Branko Crvenkovski)이다. 주요 정당으로는 사회 민주당(구공산주의자 연맹), 마케도니아 자유당의 개혁 세력(구공산주의자 연맹), 사회당(구공산주의자 연맹)이 포함된 마케도니아 동맹이 있으며, 국내 마케도니아의 혁명 기구, 민주 번영당(PDP), 인민 민주당(NDP) 등이 있다. 현 정부는 마케도니아 동맹과 민주 번영당이 장악하고 있다. IV. 경제 마케도니아는 농업 국가로서 자급 자족이 가능하며 토마토와 오이를 서유럽에 수출하기도 한다. 곡류, 쌀, 목화, 담배 등을 주로 재배하며 광산에서는 크롬, 망간, 텅스텐, 납, 아연 등이 산출된다. 관광 사업은 주로 오흐리드 호수 근처에 집중되어 있다. 현재 마케도니아는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있는데 그리스와의 불편한 관계는 유럽 연합 국가들과의 무역에도 장애가 되고 있다. 그러나 동유럽의 변화와 유고 연방으로부터의 독립으로 인해 새로운 무역 루트, 즉 터키로부터 불가리아, 마케도니아, 알바니아를 경유해 이탈리아로 이어지는 새로운 무역로를 건설하고 있다. V. 문화와 생활상 1. 민족·언어 약 200만 명의 인구 가운데서 68%가 고대 그리스어를 사용한 마케도니아인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슬라브계 마케도니아인들이다. 마케도니아인은 많은 민족지(民族誌) 학자들이 불가리아인이라 여긴다. 마케도니아어는 세르비아어보다 불가리아어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불가리아 정부도 마케도니아인은 불가리아인이라고 공식적으로 발언하기도 한다. 소수 민족으로는 알바니아인(22%), 세르비아인(5%), 집시(3.6%), 터키인(3.4%) 등이 있다. 알바니아인의 출생률은 마케도니아 공화국 출생률보다 거의 3배나 높다. 알바니아인은 마케도니아의 북서쪽 지역인 테토보(Tetovo)와 데바르(Debar) 사이의 지역에 대거 거주하고 있는데 그들은 알바니아어로 교육받을 권리를 위해 현재까지 데모를 해 오고 있다. 한편 그리스 북부 지역에 살고 있는 5만 명의 슬라브계 마케도니아인들은 그리스 정부의 인종 동화 압력을 받고 있다. 마케도니아어는 남슬라브어로서 서부 마케도니아어와 동부 마케도니아어의 두 그룹으로 나뉜다. 마케도니아어는 다른 슬라브어와 불가리아어의 특징들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2차 세계 대전 이후 세르비아어와 불가리아어의 사용을 자제하는 노력을 벌이기도 하였다. 마케도니아어 표기는 키릴 문자와 로마 문자 모두 인정되지만 키릴 문자의 사용이 더 우세하다. 2. 음악·관광지 마케도니아의 민속 음악에서 가이다(gajda:백파이프)의 저음과 탐부라(tambura:2줄의 류트)의 가락은 카발(Kaval:플루트)과 타판(tapan:원통 모양의 북)에 대한 배경 음악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마케도니아는 민속 무용의 중심지인데 그 중에서도 동부 산악 지대의 코미타스(게릴라전의 상황을 무용화)가 유명하다. 가볼 만한 곳은 1466년에 건설된 다우드 파샤(Daud Pasha) 목욕탕과 이콘으로 아름답게 장식된 스베티 스파스(Sveti Spas) 교회 그리고 지진으로 깨진 돔(dome)을 가진 무스타파 파샤 모스크(Mustafa Pasha Mosque), 마케도니아 박물관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