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번째 하늘에서 - 예지 쿠쿠츠카] 히말라야 경주 - 어둠 속으로

[Silver Ship]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었는가?

 나는 피켈과 해머를 얼음에 단단히 박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누구에게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다.

뜻밖의 행운이 굴러 들어온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야말로 공상영화에서 볼 수 있는 꼴이 되고 말았으리라.

 나는 10미터 아니면 그보다 더 아래로 추락해서 작은 돌출부에 떨어졌다.

만일 바로 이 돌출부를 디디지 않았다면 몸은 수천 미터 날아서 저 밑으로 떨어졌을 것이다.

 그러면 하인리히는? 당신과 로프를 매지 않았던가?

 같이 로프를 묶었다.

우리들이 무사했던 것은 오직 하느님의 뜻으로,

하느님만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우리들이 묶은 로프는 80미터 길이였다.

추락 당시 우리는 서로 60미터 떨어져 있었다.

그래서 자일이 움직일 수 있는 여유가 20미터 정도 남아있었다.

내가 테라스 위에 꽝하고 부딪쳤을 때, 하인리히는 충격을 느끼거나 나의 추락을 알지 못했다.

 만일 20미터의 여유가 없었다면 나는 지가를 벽에 잡아챘을 것이고 그도 나와 함께 떨어졌을 것이다.

기적적으로 부딪친 테라스가 없었다면 그대로 황천행이 되었을 뻔했다.

암벽을 지나가는 가장 쉬운 루트로 하인리히에게 다가가서 이야기 했다.

더 이상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용기가 없었다.

 우리는 서로 껴안고 지난 밤 비박에서 갈기갈기 찢어진 매트 나부랭이로 몸을 감싸고 밤을 지새웠다.

다음 날 아침 텐트 있는 곳까지 가는 데 반시간도 안 걸렸다.

우리는 베이스캠프에 빨리 내려가기로 해놓고는 그 자리에서 아주 쉬고 말았다.

그것도 그날부터 그 이튿날 밤까지 쉬었다.

완전히 힘이 빠지고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지가의 상태는 더 심했다.

제3 캠프까지는 하루 더 걸어야 했다.

 베이스캠프까지 가려면 몸의 컨디션을 잘 유지해야 하는데,

지금과 같은 기력으로서는 제3 캠프까지 가는 것이 고작이었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기운은 더욱 약해졌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제2 캠프에 내려왔고, 이어서 베이스캠프까지 내려오게 됐다.

 이제는 아무 생각도 없이 로봇처럼 휘청거리며 걸었는데,

어떻게 해서라도 캠프에 닿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베이스캠프에 도착하자 거기있던 대원들이 따뜻한 차를 가지고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들은 빙하길에서 우리를 도와주었다.

우리는 자정이 다 되어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는데 그제서야 얼었던 몸이 풀리고 식사도 하고 물도 마시게 됐다.

나는 의사에게 발을 보이고 치료를 받았다.

비박 때마다 붕대를 갈아주었는데도 상처가 다른 데로 점점 번지고 있었다.

 잘라내지 않으려면 바로 손을 써서 자구책을 세워야 했고,

계속 주사를 맞으며 저녁마다 수혈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동상은 3단계로 나뉜다.

첫째는 세포가 하얗게 되고 대개의 경우 부위가 굳어지며 감각을 잃는다.

부위에 물집이 생기면 두 번째 단계에 들어간 것이다.

세포조직이 검푸르거나 검어지면 셋째 단계라 할 수 있다.

히말라야에서 입은 동상과 알프스에서 입은 동상을 통계적으로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있는 일이다.

히말라야의 경우는 발의 동상이 71%이고, 유럽에서는 50% 이상이 손의 동상이다.

유럽 아닌 다른 산악지대에서는 1도의 동상은 거의 없다.

동상에 걸렸다하면 78%가 2도이고, 21%가 3도의 동상이다."

 현대 스포츠가 의학의 도우없이는 해나갈 수 없다고 한다.

훈련 과정에서 선수들은 실험용 집토끼처럼 실험대에 오른다.

아마추어들도 약제상의 보약으로 힘을 얻어보려는 버릇이 있다.

당신은 내려와서 분명히 치료 때문에 주사와 수혈 조치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출발 전의 그런 일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알피니스트에 대한 약물대책이 문제되고 있는데...

 "알피니즘의 역사를 기록하는 문헌에는 특별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1955년 낭가 파르바트를 혼자 오른 헤르만 불은

제2차 세계대전에 공군의 조종사들이 사용했던 흥분제의 하나인 페르비틴을 복용했다.

1988년 '르 포앙'이라는 주간지의 어느 호에 공개된 기사를 대충 훑어보는 독자들의 눈에는 띄지 않았겠지만,

여기에는 스포츠 의사인 장 피에르 모데나르의 상세한 설명이 실려있다.

등산가들은 1950년대에 그 전문의의 상세한 설명에 따라 한결같이 흥분제를 사용했다.

그들의 휴대용 약갑에는 그런 흥분제가 많이 들어있었다.

높이 8,000미터가 넘는 고산의 등반에는 페르비틴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드 모데나르의 생각이었다.

에베레스트가 암페타민의 도움으로 정복됐다는데,

이 약으로 영국인들이 셰르파들에게 사전 실험을 했다고 한다.

'도핑'이라는 흥분제가 등반 중에 어떤 역할을 한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며,

조금도 숨길 수 없는 일이다.

 원정대 보고서에는 흥분제 중에서도 특히 스트리키니네와 톤테론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렇지만 오늘날 등산가들은 훈련이 잘 되어 있어서 약을 별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 드 모데나르의 의견이다.

실제로 도핑을 하나도 사용하지 않는 알피니스트로서 라인홀트 메스너를 예로 들고 있다."

 등산할 때 도핑을 먹는 것을 다른 스포츠의 경우와 같이 모아서는 안된다.

고소에서는 도핑이 확실히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그러나 약품을 의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고소순응의 기간을 단축시킨다며 흥분제나 특수약품을 사용하는 것이다.

나도 등산을 시작하던 초기에 이틀마다 아스피린을 복용했다.

 "예방용 약품으로 유익한 것이 두가지 있는데,

아스피린과 디우라미드라 할 수 있다.

이스피린은 반응고제의 역할을 한다.

혈액에 적혈구가 많아지면 농도가 짙어지고 혈액순환에 지장이 온다.

아스피린은 시신경에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입히게 되는 눈을 출혈을 예방한다.

통계가 보여주듯이 이 약품도 고소순응을 촉진시킨다.

또한 디우라미드는 이뇨제로 효과가 있다.

디우라미드는 고산병 가운데 아주 어려운 병인 폐수종의 위험을 일정한 작용으로 줄여준다."

 나도 경우에 따라 혈관을 확장시켜 주는 로니콜을 복용한 적이 있는데,

이것이 도움이 되어 동상에 걸리지 않았다.

나는 초오유에서 내려와 주사로 이 약을 맞았다.

 그러나 사람들이 한번 써보도록 나에게 권한 적이 있었다.

K2 기슭에서 미국원정대의 의사가 정제 세 알을 주었다.

지금도 그 약의 이름을 모르는데,

어쨌든 이 의사는 그 정제를 내게 쥐어주면서 이렇게 당부했다.

 "하산할 때만 먹도록 해요. 이 약이 필요한 것은 그때 뿐이니까. 약을 꼭 먹어야 할 때를 잊지 말아요."

나는 그 약을 계절이 세 번 바뀔 때까지 가지고 다니다가 결국 버렸다.

 당신은 그 약을 썼다면 어떻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정제들이 위험한 상황에서 인체에 강하게 작용했다면,

 자연반사들이 일어나서 내 힘이 한계에 왔을 때 이 약의 힘으로 나를 이겨내게 할 것이다.

근육은 쓸 수 있는 데까지 썼을 것이고,

폐와 심장도 어쩔 수 없이 가능한 데까지 분발했을 것이다.

끝장날 때까지 말이다.

이런 경우에 나로서는 죽음을 앞에 두고 베이스캠프까지 걸어갔을 것이다.

이 정제는 인체에 새로운 힘을 주는 놀라운 작용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제동없이 자동차를 몰고 험준한 산길을 내려가는 것과 같은 작용을 한다.

다행히 나는 그 정제를 복용해야 하느냐 마느냐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부딪치지 않았다.

등반에서 도핑을 쓴다는 것은 인공등반을 할 곳이 전혀 없는 고전적인 루트에서

하켄에 매달리는 것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그리고 산소에 대해서도 이미 다른 데서 말한 바와 같다.

산소를 사용하지 않고 로체에 올랐을 때 사람들은 미쳤다고 했다.

오늘날 히말라야에서 산소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나는 이렇게 말하겠다.

고통을 완화하는 확실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 길은 '자연스러움' 그대로 오르려고 애쓰는 길이라고.

 원정대가 자연스러운 길을 택한다는 것은

의사까지 상대하지 않고 자기 생명과 건강을 스스로 책임지는 것을 말하는가?

 그렇지 않다.

히말라야 원정에서 의사가 필요없다고는 할 수 없고, 오히려 그 반대다.

의사는 아주 중요한 인물이며 할 일이 많은 것이 보통이다.

사실 힘든 일이 많아서 의사는 아침부터 밤까지 바쁘게 움직인다.

특히 겨울철 히말라야 공기는 매우 건조해서 대원들이 만성 기관지염에 걸린 듯이 기침을 하게 된다.

 "습기가 부족하고 기온이 낮아서 기관 상부의 점막이 마르고 기침을 심하게 하며 고통을 느낀다.

공기 속에 산소가 적어지면서 기침을 더 하고 숨을 깊이 쉬기가 힘들다.

해결책은 입과 코에 어떤 기구를 써서 습한 공기를 들이마실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런 마스크를 만들지 못했다."

 오늘날 히말라야 등산가들은 자기 몸에 대해서 충분히 알고 있다.

그들은 스스로 자기의 트레이너가 되고 의사노릇도 한다.

한편 공인된 의사는 원정대에서 언제나 특별한 존재다.

대원들은 누구나 어떠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자기 몸 안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래서 몸에 조금만 이상을 느껴도 의사를 찾는다.

의사는 또한 부모와 고해신부의 역할도 조금씩 하게 된다.

그는 안심시키고 위로하며 불안도 덜어준다.

그리고 용기를 북돋아줘야 한다.

그러나 치료하는 일밖에 모르는 지각없는 의사도 있다.

건강한 사람은 올라가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내려가라는 식으로.

그러므로 나는 언제나 자기가 자기를 스스로 지켜나가려고 애쓴다.

나는 4,000미터 고도부터 내 몸을 관리하기 시작한다.

이 고도부터 기압과 공기의 산소 함량의 변화로 몸에 이상이 오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숨이 가빠진다.

그래서 숨을 쉬지 않고 몇 걸음 걸을 수 있는지 매일 알아본다.

 그리고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한다.

아침에 눈을 뜨면 언제나 맥박수를 잰다.

예를 들면 5,000미터 고소에서 1분에 70에서 72번인데 고소순응을 한 뒤에는 48까지 줄일 수 있게 되었다.

맥박이 55를 넘지 않으면 고소순응이 아주 잘 됐다는 이야기다.

 고산 전문의들의 지식은 날로 늘어나고 있으나,

어떤 사람이 산에서 좋은 컨디션을 발휘하는가 그렇지 않은가 아직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높은 고도에 알맞는 조건을 갖춘 저기압 밀실에서 모의실험을 하는 자가

어느 정도 효과를 보이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위험한 테스트 결과가 끝내는 가장 좋았다는 경우가 종종 일어난다.

영국의 유명한 등산가인 헤럴드 티만은 1936년 에베레스트 원정대 편성을 결정한 육군위원회가 부결했다.

그런데 그는 얼마 후 높이 7,816미터의 난다 데비에 올랐다.

이 난다 데비는 당시 인간이 정복한 최고의 산이었다.

에베레스트 초등정의 원정대를 지휘했던 존 헌트 대장도 거절당한 적이 있었지만 그는 등산활동을 포기하지 않았다.

물론 이와 반대되는 경우도 있다.

1959년 K2의 성공적인 등정을 위한 이탈리아 원정대의 준비 과정에서

 36세의 마리오 포초즈가 테스트에서 가장 우수한 대원으로 돋보였다.

그러나 그는 등반 도중에 5,900미터 고소의 제2 캠프에서 갑자기 죽었다."

 나도 '지상에서' 그와 같은 시험을 치루었다.

1987년 생리학 교수인 오스발드 욀즈는 여러 차례 히말라야 원정대에 참가했고,

 그 중에는 라인홀트 메스너가 이끄는 시샤 팡마 원정에도 들어있었지만,

반다 루트키에비츠, 크르치츠토프 비엘리키 그리고 스위스에 있는 나를 초청했다.

고소의학 분야의 전문가인 욀즈 교수는 우리들의 신체적 능력을 검사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마라톤 달리기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원한다면 간단히 나를 이길 수 있으리라는 결론이었다.

검사는 전문용어로 '성과의 지상명령'이라고 하는 심리적 테스트와 그 분석에 중점을 두었다.

 "우리는 최근에 히말라야 원정대의 수가 믿기 어려울 정도로 증가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

현재 나타난 데이타로는 등산가의 약 10%가 고산병에 걸리고,

10%가 심한 다른 병세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또한 사고의 여파로 병에 걸리기도 하고 그들 가운데 15%가 사망한다.

 이 숫자는 누구나 수긍하는 숫자이다.

그리고 이 숫자를 기억해두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가 '항해는 해야하지만 목숨은 필요없다'는 모토로 행동하지 않는 이상,

 원정대에 의사가 따라가는 것이 결코 쓸모없는 지난날의 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초오유 등정으로 당신은 커다란 업적을 세웠다.

지금까지 누구도 이룬 적 없는 8,000미터 고봉의 동계 연속 등반을 성취했다.

그러나 여기에 안드르제이 자바다의 발언이 문제가 되었다.

즉 대장 보좌역이라는 그가 "대장이 길을 터주었다"고 했는데,

이 문제로 당신의 승리감이 위축되지는 않았는가?

 나는 다울라기리 때문에 양심의 가책을 가질 필요는 없었으나, 초오유의 경우는 다르다.

사실상 나는 동료들이 막바지에 고정자일을 걷어버렸을 때

마음속으로 혼자 만족감을 느끼면서도 다시 기분이 언짢았다.

고정자일을 설치한 데가 바로 암벽의 핵심부였다.

 그래서 이 루트는 사전에 등반지시가 있었던 곳이지만,

정상에 도전하느라 나는 지칠 대로 지쳐버릴 수밖에 없었다.

이와 같은 일이 다시 벌어진다는 것은 생각하기도 끔찍하다.

내가 마치 스타처럼 취급되었다 하더라도 하나도 시원한 결과를 볼 수 없는 원정대에 서슴지 않고 참가했다.

이런 나에게 이렇고 저렇고 아무도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으로 안다.

나는 확실히 초오유에서 편하게 돌아오게 됐는데,

그것은 재정문제를 책임지고 있던 원정대의 부대장인 야세크 올레크가 내 동상을 염려해서

카트만두에서 델리로 가는 항공요금을 지불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행운이 사라졌다.

우리 대사관이 소련 국영 항공회사인 아에로플로트사와 계약했던 것이 거절당해버렸다.

당시 폴란드의 LOT 항공사와 여기와는 국제선의 연결이 없었다.

그래서 모스크바까지, 그리고 모스크바에서 폴란드로 가는 좌석을 얻으려고 나는 열흘을 기다려야 했다.

 내가 발가락을 잃지 않으려고 델리 캠핑장의 더러운 구석에서 어떻게 했는지 아무도 모른다.

시예친에서 온 의사가 매일같이 내 상처를 치료해주어 끝내 나를 살렸다.

이윽고 나는 카토비츠에서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발을 깨끗이 치료했다.

여름이 되어 새로운 원정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목표는 낭가 파르바트였다.

 "초오유 원정 후 쿠쿠츠카는 아홉 번째로 8,000미터급 고봉을 정복할 준비를 했다.

메스너가 쿠쿠츠카보다 8,000미터급 고봉을 앞서고 있었다.

이 폴란드 등산가와 그의 경쟁자 사이의 거리는 얼마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