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전등사에서 법회를 열기로 한 것은 선승 출신인 주지 여암 스님이 꾸준히 상무주암을 찾아 설득한 덕분. 여암 스님은 “재작년 주지를 맡은 후 현기 스님을 모시고 법회를 하고 싶어 상무주암에 세 번 올랐다”고 했다. 상무주암은 지금도 차(車)가 갈 수 있는 곳으로부터 1시간은 걸어서 올라야 한다. 여암 스님은 지난해 하안거 후 첫 만남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그는 “툇마루에 앉아 계시던 큰스님이 저희 일행이 올라가자 ‘어서 오세요’라며 인사하시며 ‘늦었으니 공양(식사)부터 하자’며 손수 밥을 차려주셨는데, 정면으로 보이는 지리산 반야봉처럼 굳건한 바위를 보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갈 때마다 하룻밤을 묵었는데 현기 스님은 항상 새벽 2시반이면 잠자리에서 일어나 손수 새벽예불 준비를 다 하고 식사도 차렸다고 한다. 그리고 정진(참선)한 후에 즉석에서 짧은 벽암록 법문도 했다. 여암 스님은 “80대 고령에도 여법(如法)하게 사시는 모습 자체가 큰 가르침이었다”고 했다. 첫 만남에선 극구 사양했지만 세 번째 방문에서야 비로소 반(半)승낙을 얻어 이번 법회를 추진했다.
법문 교재 ‘벽암록(碧巖錄)’도 현기 스님이 골랐다. 벽암록은 선종(禪宗)의 교과서 같은 책. 선의 황금시대인 당송 시대 고승들이 주고받은 대표적 화두 100가지를 문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뜰 앞의 잣나무’ ‘날마다 좋은 날’ 등이 벽암록에 수록된 선문답(禪問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