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孤獨이라는 病
갑자(甲子/60년)를 훨씬 지난 1960년.
베스트셀러(best seller)로 톱 랭킹( top ranking)된 책 중 하나가 '孤獨이라는 病'이었다.
30대에 필력이 이름난 김 모(某) 철학 교수가 낸 첫 수필집의 이름이다.
사람 몸의 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메디칼 닥터(medical doctor/의사)가 아니고 소장(少壯) 철학자인
그가 정신질환이라고 단정한 병이 고독이다.
"청진기로 규명되는 육체의 병은 아니지만 생리적인, 심리적인, 정신적인 병"이며 "보다 인간학적인
병", "인간이라는 존재성 깊이에 숨겨져 있는 병"이라는 것.
이 철학자가 지은(作名) 병명(고독)을 우리 사전은
"외로움, 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는 듯이 매우 외롭고 쓸쓸함,
부모 없는 어린이와 자식 없는 늙은이"
라고 설명하고 있다.
부모를 여의거나 자식을 잃는 불행은 임의로 되는 일이 아니지만 사전이 말하는 그 밖의 고독은 우리의
일상에서 얼마든지 걲는 일이며 조정이 가능하지 않은가.
먹지 않았기 때문에 시장한 것이라면 먹으면 해결되는 것 처럼 홀로 있기 때문에 고독하다면 사람들 속
으로 뛰어들면 되는 것이다.
이처럼 용이한 문제가 과연 정신질환으로 치부해야 할 만한 질병인가.
1941년은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12월 7일) 해.
전쟁이 발발하기 전 여름에 개복하는 대수술로 간신히 살아남게 되기는 했으나 병력(病歷)과 수술력(手
術歷)이 화려하게(?) 페이지(page)를 더해 가게 된 한 소년(당시에 7세).
6. 25민족동란(1950년~53년)으로 피난살이 중에는 산간의 작은 암자에 유폐되는 신세가 되었다.
걷지 못하는 좌객(坐客/앉은뱅이)이 되었기 때문에 마주 대할 수 있는 사람은 암자의 비구니와 보살 각
1명의 여인이 전부였고 가끔 인적을 느끼게 하는 사람은 이따금 다녀가는 몇분의 시주(施主)뿐이었다.
참으로 외로웠다.
10대의 소년에게는 비할 데 없이 잔혹한 고독이었다.
누구와도, 아무 약속도 없건만 기적을 울린 열자의 가속을 느낀 후에는 한동안 안절부절못했으니까.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기차역.
여객의 하차와 승차를 위해서 반드시 멈췄다가 떠나야 하는 여객열차.
소년은 암자의 골방 한구석에 누운채로 열차의 움직이는 소리에서 상행선과 하행선을 구분하게 되었다.
멎기 위해 과감하게 감속하는 열차는 하행선이고 열차에 힘찬 가속이 붙기 시작하면 상행선임을.
소년에게 그 구분이 왜 필요했는가.
남녘에서 피난생활 중인 자기와 관계된 사람이 하행선 열차를 탈리 없다고 단정했으며(대부분이 적치지
역이니까) 자기를 찾아올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은 상행선을 이용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낮에는 물론 한밤의 열차까지도, 낮과 밤 구분 없이, 누군가도 구별 없이, 상행선 열차가 지나간 후마다
마냥 기다리는 마음이었던 것은 외로움이 극에 달해 있다는 뜻이었다.
이 잔인하고 참혹한 고독을 떨쳐버리기 위해서 필사적이었던 그.
가능한 여러 극단적 방법을 포함하여 온갖 혈투, 사투를 벌였으나 매번 실패했고, 마지막 선택은 암자의
탈출에 이어 앉은뱅이 몸으로 팔도를 헤매는 몸부림이었다.
아직도 10대를 벗어나지 못한 소년에게는 말로 할 수 없는 고행 1.000여일이었다.
마침내 고독하지 않게 되었다.
분명코 고독이야 말로 아무것도 아니게 된 것이다.
89세(2023년)의 마지막 남은 달력이 뜯기기 직전인 지금껏.(2023년 12월)
돌이켜 보면,
고독과의 싸움은 끈질겼다.
10대 소년에게는 다른 무엇보다도 잔인했다.
연전연패를 안기면서도 결단코 놓아주지 않은 고독이았으니까.
그 또한 연패를 무수히 반복하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마침내, 이겼다.
단지, 한번의 승리를 위해서 그토록 처절하게 싸웠다.
이 1승으로 싸움이라는 이름의 모든 것이 끝났다.
더는 아무 싸움도 할 일이 없음을 의미한다.
정신질환의 리스트에서 고독을 찾아볼 수 없게 될까
그에게 외롭다는 것은 정신 질환의 전단계일 수는 있으나 전혀 이상하지 않은 정서의 한 현상일 뿐이다.
그러므로, 인간과 그 세계에 관한 근본 원리와 삶의 본질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인 철학과의 교수가 내린
진단은 유보 또는 논외로 하겠다.
다만, 그 특성 때문인지 철학자를 범상하지 않은 사람으로 보는 경향이 있었는데 그의 철학개론을 수강
했던 1950년대 중반을 돌이켜 보면 젊은 철학 교수라기 보다 타고난 구수한 재담가로 기억되는 그.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데 정 맞을 일이 없는 외유내강형이라 할까.
돈독한 신앙(기독교)의 힘인지 패기찬 젊음 보다 늘 평온하고 원만했다.
백수를 뛰어 넘고 지금도 노익장 중인 그.
근 70년 전인 1950년대, '70 고래희' 였으며 갑자를 넘기는 사람이 흔하지 않던 당시에도 100세 장수를
예견하게 한 그였다.
개론에서 끝났기 때문에 학문적 깊이에 대해서 논하는 것은 삼가야겠지만 인간이 가지고 있는 고독의
해결책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찾는 그의 깊은 신앙에는 지금껏 변함 없이 존경하고 있다.
아무튼, 늙은이 세상은 이미 와있다.
그들이 지니고 사는 고독이라는 질병도 함께 있다.(90이 목전안데도 그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늘어나는 늙은이로 인하여 쪼그라들고 있는 생산성(노동력)을 출산으로 커버하려 하였으나 저출산으로
인해 기운이 양 끝에서 빠져가고 있는 현상이다.
여기에 고독이라는 고비용까지 얹혀 있으니 고령자 문제는 날이 갈수록 맥이 빠져갈 수 밖에 없다.
이 병은 의사(medical doctor)가 다룰 질환이 아니다.
오스트리아의 의사 프로이트(Sigmund Freud/1856~1939)가 시원인 '사이코테라피'(psychotherapy
/정신요법, 심리요법)라는 제삼의 영역이 대기하고 있는 정신질환이기 때문이다.
의사가 전혀 필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잖은가.
양측이 상호 보완적 관게를 유지하면 시너지효과(synergy effect)가 도출되리라는 뜻이다.
1950년대 중반, 우리에게는 아직 생소했던 이 분야를 소개받을 기회가 있었는데 전문가가 아니라 해도
활용도가 높겠다고 수긍했던 기억이 생생하며 지금도 변함 없이 긍정적인 영역이다.
돌발적(accidental) 상해 또는 몸의 일부를 괴롭히는 질병은 대부분이 가시적인데다 각종 기기에 의한
치료와 관리가 용이할 만큼 현대의학은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정신질환 역시 감염은 더디며 치유가 빠르고 쉽다면 걱정거리가 될 리 없지만 감염이 빠른데 반해 치유
가 더디고 어렵기 때문에 이 병(정신질환)을 고비용의 난치병이라 하는 것이리라.
게다가 사후관리(후유증)의 부담이 따르기 때문에 두려워할 수 밖에 없는 질병이다.
종래에 담당해 온 메디컬 닥터의 한계만 노출될 뿐.
사이코데라피는 이 한계를 커버해 줄 뿐 아니라 문제의 해결을 선도하고 있다.
고독에서 탈출하기 위한 소년의 투병 생활이 얼마나 처절했던가.
필사적 투벙의 대역이 된 사이코데라피.
미구에 정신질환의 리스트에서 고독을 찾아볼 수 없게 되는 날을 기대해도 되기 바랄 뿐이다.
'종심소욕불유구'의 70대
20c 중 후반, 우리나라도 봉건적 농본사회에서 민주적 산업사회로 전이되었다.
빈부와 귀천으로 양분되던 사회 전반에 새로운 중간층이 형성됨으로서 종래의 수직적 계급사회는 와해
되고 수평적 평등사회 관계가 실현되었다.
이에 따른 특징 중 하나가 각종 잔치다.
출생에서 사망에 이르기 까지 의미있는 특별한 날에 대소 연회(잔치)를 갖게 된 것.
70은 매우 드물다(古來稀)고 하던 때까지는 출생 후 1년은 관망의 기간이었다.
미개한 의학으로 신생아의 높디높은 사망율을 낮출 수 없었기 때문이다.
후손이 귀한 집일 수록 득남하면 짐짓 귀하지 않은 듯이 대하고 무심하고 소홀히 하는 척 했다.
삼신이 시샘하지 않게 하기 위한 위장술이었다.
민간(民間)에 떠도는, 과도하게 귀애하는 집 아이는 삼신이 시샘하여 데려간다는 속설 때문이었다.
한해(一年)가 무사히 지나야 안심이 되고, 비로소 출생을 축하하고 장수를 기원하는 잔치를 하며 법적
출생신고를 하는 것이 일반화 되어 있었던 우리나라.
조마조마한 1년이 간 후의 감개무량한 돌잔치가 되었는데 영아의 사망율이 거의 0%인 때에도 옛 대로
인 것은 불행했던 과거사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인가.
가장 활기 있는 연회는 환갑잔치였다.
도농 불문하고 대 유행처럼 확산되던 시절이 있었으며 당시는 70이 희소했을 뿐 아니라 평균 수명이
60에도 미치지 못했던 때였으니까.
애환으로 점철된 돌잔치의 주인공이 어느덧 사망을 목전에 두고 있는 부모다.
환갑 잔치를 받으면 보다 장수한다는 속설도 있다.
자녀를 비롯하여 온 가족이 합심해 잔치를 벌이는 것이 당연한 효도가 아니겠는가..
반상제(班常制) 시대에는 양반가만의 행사였고, 농본사회에서는 지주급(地主級) 부농의 전유물이었던
대소 연회의 문이 개방되어 천만 다행인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렇기는 해도 사회적 지위가 괜찮은 사람일 수록 효자녀가 많은 것이 주목되었다.
석연치 않기는 해도 자식의 당연한 도리라는데 토를 달아야 할 일이겠는가.
다만, 초대자의 이름 중에는 가물가물, 아리송하거나 쌓여가는 초대장들이 세월과 더불어 어떤 고지서
처럼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 유감이었는데 이같은 잔치의 수명이 길지 못했다.
가속이 붙은 고령화 사회의 도래 때문이었다.
빠르게 치솟아 오르는 수명에 환갑세대의 잔치는 자취를 감춰버렸다.
평균 수명이 80대까지 치솟아 오름으로서 70대 벽은 물론 80대의 벽도 맥 없이 허물어졌다.
고래희를 70에서 80과 90을 한꺼번에 뛰어넘어 100으로, 2자리 수에서 3자리 수로 올려야 할 것이다.
고희로 대접받던 70대는 이전 환갑대에도 미치지 못하며 경로당에서 잔심부름꾼의 위치로 전락되었다.
따라서 경로세대가 어이없게도 경로당 기피세대가 되어버렸다.
고독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그들의 갈 곳은 어다안가.
70대가 된 천하의 공자는 "종심소욕불유구"(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論語 爲政篇)라고 말했다.
"십유오이지우학"(十有五而志于學)으로 시작, 30대에 바로 서게(立) 돠었고, 불혹(不惑)의 40대, 천명
을 알게 된(知天命) 50대와 이순(耳順)의 60대를 거쳐 마침내 법도에 어긋나지 않게 되었다고.
좌고우면하지 않고 마음 내키는 대로 행하여도 법도에서 벗어나지 않는 사람이라면 분명코 현자(賢者)
가 된 것이다.
사람의 호칭인 공자가 현자의 대명사 처럼 된 이유다.
70대가 법은 물론 도덕과 윤리 면에서도 완벽한 인생이라면 완성도를 높여서 모든 후대에게 규범으로
기여하기 위해서라도 대(帶)를 늘려가야 하건만 유감스럽게도 70대 이후는 언급이 없다.
기원 전후의 무공해 시대에도 현대와 같은 의학의 발달 없이는 고령화가 불가능했는가.
본인도 72세(BC551 ~ BC479)에 생을 마감하였으며 2.5밀레니엄(milleniium)이 지나도록 고래희(古
來稀)의 벽은 70대로 완고했다.
고독이야 멀로 쥭음에 이르게 하는 병?
우리나라에서 완만하게 진행되던 이 벽의 붕괴에 가속이 붙기 시작한 것은 20c 중 후반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2차 산업사회로의 전환과 획기적 발전을 거듭하는 현대 의학의 도움으로 가속적
고령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70대는 물론 80, 90대가 연달아 무너짐으로서 희소하던 종심(從心所欲不踰矩) 세대에 풍년이 들었다.
쌍수를 들고 흔들어 열렬히 환영해야 할 경사를 두고 어이하여 노심초사하고 있는가.
구전 설화들 중에 기로전설(棄老傳說)이 있다.
노인을 생매장한 악습(高麗葬)과 그 폐지에 얽힌 설화들이다.
고대 그리스의 신화에는 여인의 모습인 상반신에 하반신은 날개 달린 사자인 괴물, 스핑크스Sphinx)
의 수수께끼가 있다.
아침에 네발로 걷고, 낮에는 두발로, 밤에는 세발로 걷는 생물의 이름을 대지 못하면 죽어야 하는 겻이
었는대, 이웃 대국에서 요구한 것은 문제를 풀지 못하면 나라가 화를 당할 것이라는 경고였다.
둘레가 같은 토막나무의 상과 하를 알아내는 것, 두 필의 걑은 말에서 어미와 새끼를 가려내는 것, 대형
코끼리의 무게를 재는 것 등의 문제였다.
임금과 문무백관을 비롯해 온 나라가 깊은 시름에 빠져 전전긍긍 중일 때 한 신하가 정답을 가져왔다.
"나무토막을 물에 빠뜨렸을 때 물 위로 떠오르는 쪽이 상(上)이다.
두 말에게 먹이 하나를 주었을 때 영보하는 쪽이 어미다.
코끼리를 실은 배를 물에 띄워 그 물에 잠긴 배의 눈금을 확인하고 코끼리를 대신하여 그 눈금이 물에 닿
도록 돌을 실은 후 그 돌을 저울에 달아서 합산한 수치가 코끼리 무게다"
난국은 해소되었으나 국란의 위기를 해결한 정답의 출처가 밝혀짐으로서 그 신하에게는 국법을 어겼다는
죄목으로 중벌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위기를 해결한 정답의 출처가 밝혀졌기 때문이다.
골방에 숨기고 불법으로 봉양중인 부모로부터 나왔음이.
이 지혜로운 부모가 안타깝게도 생매장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절박한 지경에서 화는 복으로 바뀌었다.
신하의 사면은 물론 부당한 악법이라는 이유로 노인의 생매장 악습에 금지령을 내렸다니까.
공자에 의해서 극상으로 평가된 고령세대(70대)가 한때는 생매장 대상이 되었을 만큼 평가절하되었으나
이 설화들은 위기에 더욱 빛나는 그들(고령자)의 지혜를 입증했다.
사람을 육체적인 힘이나 능력 위주로 평가하는 잘못된 가치관을 무너뜨린 것이 인간의 존엄성과 정신적
가치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 것이 고령자의 지혜였는데도 왜 고민거리인가?.
동일한 종심(從心/70대)이지만 예전의 그들에게는 소욕(所欲)과 불유구(不踰矩)가 동시적이었으나 이
시대에는 불유구는 없고 소욕만 있기 때문이다.
책임과 의무 등 인격적 상호관계는 실종되고 동물적 본능만 활개치고 있기 때문이기도.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S.A. Kierkegaard/1813~1855)는 죽음에 이르는 병으로 절망을 꼽았다.
그의 의도가 어떠하던 절망은 고독이라는 이름의 병에서 비롯되고 고독은 동물적 본능과 비례한다.
동물적 본능의 다른 표현은 에고(jego)다
라틴어 에고는 자기 자신의 이익만을 꾀하고 사회 일반의 이익은 염두에 두지 않으려는 태도를 말한다.
그러므로 에고는 고독을 확대하고 심화시키며 끝내는 죽음에 이르게 한다.
고독이야 말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무서운 병인데 현대의 고령 세대가 시대적 모델이기는 커녕 지니고
있는 것은 고독이라는 정신 질환뿐이니 고민거리일 수 밖에.
만일, 현대판 고려장이 공론화 된다면 그 귀책사유는 전적으로 고령자 자신에게 있을 것이다.
존재하는 것 만으로도 가치가 진주였던 종심 이상의 고령자들이 고독이라는 처치 곤란한 정신질 환자가
되어 노상 방기 현상을 보이고 있으니 통재로다.<계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