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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LZ6vL1-2NhI
1. 단 원
지리학에서 ‘단원(單元, Unit)’이라는 용어는 두 가지로 사용되는 말이다. 정치적 단원과 지리적 단원인데 이 두 가지는 완전히 일치할 때도 있고 일치하지 않을 때도 있다. 예컨대 조선반도를 8도 또는 13도로 구분하는 것은 정치적 단원이니 때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반도를 태백산맥을 기준으로 하여 동쪽과 서쪽으로 나누거나 인천, 원산 간을 연결한 대지구대(大地溝帶)에 의하여 남조선, 북조선으로 대별하는 것은 산맥, 하천 등의 자연적 요소에 입각한 소위 지리적 단원이므로 이는 영구히 변동할 수 없는 ‘단원’이다.
이 지리적 단원이 확연할수록 한 나라의 생활이나 행정 구역이 그 임무를 완전히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중국의 역사를 보면 군웅할거 시대가 있기도 하였지만 항상 통일을 강조하여 드러내는 것은 중국의 지리적 단원이 그렇기 때문이다. 폴란드의 국경이 국제 정세에 따라 이리저리 바뀌는 것은 아득히 먼 평원 한가운데에 인위적 국경을 정한 까닭이다.
즉 지리적 단원과 일치할 수 없는 정치적 단원을 순리에 맞지 않게 지키려는 데서 오는 비애라고 말할 수 있다. 이에 비하여 영국과 일본은 큰 대륙에서 떨어져 있었기에 대륙의 흥망성쇠에서 벗어나 오랫동안 독립을 자랑할 수 있었고, 스페인은 피레네 산맥 너머에 격리되어 있어서 특이한 역사를 가질 수 있었고, 이태리는 알프스라는 천연의 성벽에 둘러 쌓여서 3000년 대국을 이룩할 수 있었으니 이는 모두 지리적 단원이 확연한 까닭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조선의 지리적 단원은 어떠한가? 설명을 기다리기보다 지도를 한번 보는 것이 가장 빠른 대답이다. 바다로 둘러 쌓인 동,서,남 3면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대륙에 접한 북쪽도 백두산과 거기서 발원한 압록강과 두만강으로 천연적 경계가 매우 확연하다고 할 수 있다. 단 조선이라는 범위가 역사의 변천에 따라 늘어나고 줄어들었음은 물론이다.
고조선의 국경을 대략 요하(遼河)의 본류부터 그 연장선이라고 추정한다면 차라리 산해관(山海關)으로부터 만리장성과 흥안령(興安嶺) 동쪽 지역, 즉 오늘날 만주국 국경선과 대개 일치하는 지역이 조선반도와 합쳐져서 훨씬 커다란 지리적 단원을 형성한다.
이렇게 본다면 위에서 말한 조선반도의 부분은 부수적인 지리적 단원이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조선시대 이후의 경계에 의한 반도의 부분만을 논하기로 한다.
2. 면 적
개인의 살림살이나 나라의 경영에나 지역이 광활한 것이 협착한 것보다 나은 듯하나 꼭 그렇게만 생각할 것도 아니다. 중국은 유럽 대륙만큼 광활하고 조선반도의 50배나 되나 지금의 중국은 강하다 할 수도 없으며 또한 행복한 나라라고 할 수도 없다.
이에 비하여 덴마크, 스위스, 네덜란드, 벨기에 등의 나라는 대략 조선반도의 5분의 1, 또는 6분의 1에 불과하면서도 남에게 신세지지 않는 살림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전세계 열강의 선망을 받고 있다. 단 높은 탑을 쌓으려면 이에 걸맞은 기반이 있어야 할 것은 물론이다. 아래에 몇몇 나라의 면적을 살펴보아 조선반도도 작지 않은 땅인 것을 증명하고자 한다.
지명 면적(평방 킬로미터)
프랑스 550,675
독일 472,063
스웨덴 448,142
노르웨이 323,546
이태리 301,254
일본 혼슈 223,500
조선반도 220,740
영국 본도 217,720
그리스 64,570
덴마크 43,010
스위스 41,374
네덜란드 32,585
벨기에 30,437
3. 인 구
중국은 4억 수천만, 인도는 3억 수천만의 인구를 가졌으나 이 역시 수의 많음이 자랑이 아니다. 그렇다고 하여 아이누족이나 에스키모족과 같이 명맥만 유지하기에도 힘들어도 인류의 생활 무대에 큰 발자국을 남기기가 어렵다. 이에 또한 다른 나라의 인구를 살펴보아 2000만 명이라는 조선 인구가 적지 않은 식구인 것을 다시 인식하고자 한다.
지명 인구(만 명)
독일 6,098
영 본국 4,420
프랑스 3,921
이태리 3,884
조선 2,000
터키 1,335
벨기에 747
네덜란드 681
스웨덴 601
스위스 388
덴마크 327
노르웨이 265
[주] 출애굽 당시에 모세가 인솔한 이스라엘 민족은 약 200만이었고 50년 전의 일본민족은 약 3000만 이었다고 한다.
4. 산악과 평야
산악이 많고 광대한 평야가 없는 것은 사실 조선의 가장 큰 결함이라 할 수 있다. 양자강, 볼가강, 미시시피강 유역 같이 커다란 생산 기반을 조선반도에서 기대할 수 없음이 안타깝다. 그러나 아주 쓸모 없는 땅은 아니다. 나일강 하류만큼 비옥하지는 못해도 젖과 꿀이 흐른다는 가나안 복지 팔레스타인 지방보다는 풍족하고 비옥하기가 몇 배나 된다. 평야가 넓지 못하다 할 지라도 2000만 식구가 살아가기에는 넉넉하다.
산악이 많은 것이 농사짓기에는 불편하지만 쓸모 없는 것은 아니니 산악을 저주하기 보다는 차라리 감사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도 있다. 선지자의 나라 이스라엘의 역사는 황무지 같은 광야를 말하지 않고는 있을 수 없다.
해가 지지 않는다는 대영제국의 역사는 짙은 안개와 거친 바다의 파도를 떠나서는 기술할 수 없다. 알프스 속의 작은 나라 스위스가 얼마나 큰 사상을 세계 인류에게 공급했는 지 음미하라. 대영제국의 가장 고귀한 정신적 산물과 위대한 인물이 거의 다 척박한 산악지대인 스코틀랜드 출신인 것을 인식하라.
미합중국의 두뇌가 미시시피강 하류에서 나지 않고 애팔래치아 산맥의 동북쪽 산지에서 나고 있음을 아는가? 무릇 미국의 건실한 신앙가, 고귀한 사상가, 심원한 예술가, 웅건한 정치가는 돌덩이가 뒹구는 산골 마을에서 배출되고 있는 사실을 알 때에 우리의 반도가 산악의 강산이라 하여 비관할 것은 하나도 없다.
다만 우리의 산악에는 산맥은 있어도 히말라야 산맥처럼 웅대한 것이 없고 화산이 있어도 후지산처럼 높은 것이 없음을 애닯아 하는 이가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고려할 것이 두 가지가 있다.
인도 남쪽 지방의 더위는 지옥과 같아서 한꺼번에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재해가 드물지 않고, 북쪽의 에베레스트산은 장구한 세월동안 쌓인 눈을 사시사철 머리에 이고 우뚝 솟아 있으니 흰 모자를 쓰고 있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러한 데라야 불교와 같은 원대하고 심오한 사상이 나올 수 있는 법이라 하나, 이는 한 쪽 면만을 말한 것이다.
웅대한 자연에 압도될 때에는 도리어 허다한 미신이 횡행하게 되는 법이다. 인도로부터 서남 아시아 지방에 불건전한 종교가 성행하며 어쩌다 기독교를 믿는다 할지라도 신비화하고 미신화해서 이상한 형태로 발전하게 된다. 이는 저들의 주위에 있는 큰 산, 넓은 사막, 습도와 기온의 심한 변화, 맹수와 독충의 재앙 등등의 불건전한 요소들이 많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화산과 지진이 많은 나라에는 소위 종교심이 깊은 경향이 농후하여 언뜻 보기에는 종교적 국민인 듯이 보이는 수도 있다. 그러나 저들은 예배할 대상 조차도 분변하지 못하는 경향도 많다. 생식기를 받들어 제사를 지내고 생선 뼈다귀에게도 최고의 경건으로써 예배하는 환경에서 참된 신을 발견하며 고결한 사상에 도달하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온화한 기후와 안정된 자연환경의 반도에서 나고 자람을 못내 자랑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한 자랑거리가 있으니 반도 강산의 균형잡힌 아름다움 이다. 이에 대하여는 거의 세계 유일의 아름답고 균형잡힌 산천이라 하여도 과장된 말이 아닐 것이다.
산이 높은 것으로서 대단하다고 한다면 후지산(3,768m)보다 182m가 더 높은 신고산(新高山) 아래에서 영웅 호걸이 더 많이 배출되었을 것이다. 아프리카 킬리만자로(5,890m)와 북미의 매킨리(6,200m)와 남미의 아콩가과(7,040m) 등의 산들은 모두 우리 백두산 위에 백두산을 더한 것보다 더 높지만 그 아래에서 현인과 철학자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못 들었다.
오히려 4억 세상 백성들에게 인의(仁義)의 도를 가르쳐 준 동방의 큰 스승 공자의 고향에는 천하의 명산이라는 태산이 있지만 그 높이가 애오라지 1,450m에 불과하니 우리의 금강산 비로봉보다 188m나 모자란다. 세계적인 철학의 요람이며 예술과 과학의 본토인 그리스 반도가 호머,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알렉산더 대왕 등을 배출하기에는 2,500m 이상의 큰 산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율법을 모세에게 내리신 시내산은 2,602m 이며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가 강림하신 베들레헴 근방에는 우리의 북한산(836m)보다 높은 산이 없고 멀리 레바논, 헤르몬산이라야 우리 백두산과 비슷한 정도의 산들이었다.
세계에서 국민적 자만심이 가장 심한 백성으로는 아마도 영국민을 첫손가락으로 꼽을 것이다. 영국 안에서도 더욱 심한 것은 스코틀랜드 사람들이니 저들에게는 대대로 현철한 그조상과 그들을 산출한 그 고향산천에 대한 감사의 마음과 자부심이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는 까닭이다. 그렇게나 자랑하는 스코틀랜드 지역의 주봉은 1,343m 짜리 벤네비스산이다.
미합중국의 스코틀랜드라고 불리우는 뉴잉글랜드(애팔래치아 산맥의 동북쪽 언덕지대)에서도 북미의 대표적 인물을 거의 독점적으로 산출하고 있지만 거기에는 우리의 지리산보다 더 높은 봉우리가 없고 우리의 소백산 지역보다 더 깊은 산골짜기가 없다.
백두산(2,744m), 관모산(2,541m), 북수백산(2,522m), 묘향산(1,909m), 금강산(1,638m), 지리산(1,915m), 한라산(1,950m) 등의 수려한 봉우리들을 가진 우리는 독립문이 빈약함을 부끄러워할 수는 있어도 반도의 산악이 평탄한 것을 한탄할 것은 없다. 하물며 산세와 평야의 배열과 균형의 아름다움을 논하자면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성화에다 비할까? 뉴욕 부두에 높이 솟은 자유의 여신상에다 비할까?
낭림산 머리 위에 하늘을 향한 왼팔을 백두산 저편까지 높이 뻗치고 장산곶 끝까지 오른팔을 드리워 어루만지려는 듯, 오른 다리인 태백산은 거제까지 굽혀 올리고 왼 다리인 소백산은 진도까지 뻗쳐 디딘 듯. 지구대는 허리에 잘록하고 금강산은 가슴에 드리운 노리개인 듯 몸을 가리운 비단이 동풍에 나부끼며 녹색 평야를 이루었으니 엷고도 가볍도다. 선녀가 바야흐로 구름 위로 솟아 오르는 자태인가 아니면 자유의 여신이 대륙을 머리 위에 이고 일어서려고 허리를 펴는 형상인가?
5. 해안선
동, 서, 남의 3개 해안 중에 동해안이 가장 단조롭다. 구조선(構造線, tectonic line)과 거의 평행한 해안이어서 굴곡도 없고 섬도 거의 없다. 강원도의 총석정과 함경북도 무수단에 빼어난 경치는 있으나 해운과 어업에 도움이 되는 항만은 비교적 빈약하다. 그러나 이 빈약함은 반도의 남해와 서해에 비하여 비교적 항만이 적을 뿐이지 결코 절대적으로 나쁜 해안이라는 것은 아니다.
함경북도 해안에는 본래 웅기, 청진, 성진 등 여러 항구가 자연적으로 퍼져있다. 나진항은 최근에 약간의 공사를 하여 일약 동양에서 손꼽히는 큰 항구로 변하게 되어 세간의 뉴스거리가 되었다. 나진항에서는 만주에서 나오는 물자를 처리하게 되니 마치 미국의 오대호 지방에서 나오는 물자를 뉴욕을 통해 처리하는 관계와 비슷하다 할 수 있겠다.
몇 년 전에 조선질소비료회사가 흥남항을 건설함으로써 어선 10여 척이 전부이던 작은 포구가 갑자기 함경남도 최대의 무역항으로 약진하게 된 것도 우리의 기억에 새로운 바이다. 이와 같이 약간의 사람의 힘을 더하면 좋은 항구가 될만한 곳은 아직도 많다. 예컨대 원산항에 대해 말하자면 이는 하늘이 만들어 준 거대한 항구이다.
호도반도에 감싸인 영흥만까지 헤아려보면 어김없이 중국 요동지방의 대련에 여순을 더한 것과 흡사하다. 만일 러시아에 원산항 같은 항구가 하나만이라도 있었으면 아마 세계역사는 달라졌을 것이 분명하다. 이렇듯 무역으로나 군사적으로나 모두 유익한 거대한 항구가 활용되지 못하고 있음이 안타깝다. 지금은 그저 송도원 해수욕객과 명사십리 피서객들만 있을 뿐이니 우리는 이렇게 좋은 항구를 동해에 만들어 주신 하나님의 뜻을 분변하기가 부족할 뿐이다.
서해안은 목포, 군산, 인천, 진남포, 용암포 등 좋은 항구가 거리도 적당하게 줄지어 있을 뿐더러 그 사이사이에 크고 작은 섬들과 리아스식 해안의 작은 항구들이 끊임없이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원시적인 항해시대에도 일찍부터 해상교통이 편하였다. 더군다나 연안의 경사면이 완만한 것과 압록강, 대동강 등 하구가 깔대기 모양을 이루고 있어서 여러 항구들과 배후지와의 수륙 연락이 원활하게 된 것은 동해안보다 훨씬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밀물과 썰물 때의 차이도 현저하다. 동해안의 청진이 0.73m, 원산이 0.83m인데 비하여 목포가 4.33m, 진남포가 6.27m 이며 인천은 세계적으로도 저명한 9.41m 차를 보이고 있다. 이를 이용하여 인천에는 갑문식(閘門式) 항만이 진남포에는 개거식(開渠式) 항만이 설비되었고 인천만의 엄청난 간만의 차를 발전 동력에 이용하는 것도 다만 시기의 문제만 남았다.
동해안에는 섬이 거의 없어서 울릉도(72.49평방km)와 마양도(7.06평방km) 외에는 별다른 것이 없는 반면에 서해안에는 진도(330.9평방km). 강화도(290.5평방km), 안면도(86.6평방km). 신미도(52.8평방km), 자은도(50.2평방km), 백령도(46.9평방km) 등 큰 섬들 뿐만 아니라 독거군도, 나주군도, 부남군도 등 다도해로부터 안마군도, 고군산군도, 외연열도, 격렬비열도 등의 작은 섬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남해안은 반도의 동.서해안보다 훨씬 우수하다. 남해안의 지절률(肢節率) 즉 해안선의 굴곡을 따라 잰 거리를 해안의 직선거리로 나눈 값이 세계적으로도 유례없이 크다. 그래서 학자들은 이것을 보통 부르는 리아스식 해안이라고도 하지 않고 특별히 ‘조선식 해안’이라고 명명하였다.
포도 송이에 포도 송이가 맺히듯이 이삭에 또 이삭이 달리듯이, 반도에 또 반도가 붙고, 섬에 또 새끼 섬이 달린 것이 조선의 에게해(Aegean Sea)라는 별칭을 가진 남해안이다. 조선 산천을 말하는 사람은 금강산의 기암괴석을 찬미하거나 백두산의 웅장한 봉우리를 감탄하는 것으로 끝나나, 백문불여일견이라는 말을 쓰고자 한다면 그것은 바로 조선식 해안의 기괴무궁함을 표현하는 데에나 사용할 말이다.
지자(智者)는 바다를 사랑한다는 말이 사실인진대 무릇 지자로써 자처하는 이는 한산도 앞바다에 작은 배를 띄워 놓고 나갈 길을 찾아 볼 것이다. 바다와 육지의 상대적 관계가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이 허다한 섬과 산허리 사이사이에서 돛을 달아 노를 저어 가 보기를 바란다. 여기에서 자기의 지략을 신뢰할 수 있는 자는 미친 자이거나 불세출의 영웅이거나 둘 중에 하나라고 확신하여도 무방할 것이다.
대영백과사전에서 고려라는 항목을 찾아보라. 거기에는 이순신과 거북선의 그림 설명이 있으리니 세계인들로 하여금 조선을 기억하게 한 것은 다도해의 무궁무진한 조화와 그 기묘한 이치를 파악할 줄 알았던 한 장부가 있었던 까닭인 줄 알 수 있다.
300년 전에 무수한 적선이 공격해 오기 이전에 스스로 빼어난 장군을 배출한 곳도 이 해안이요, 19세기 초에 서양의 탐험선이 미궁에 빠져 갈 바를 헤메던 곳도 이 다도해의 일이었다. 일본 해군이 발틱함대를 공격하기까지 4개월여 세계의 이목을 완전히 피하여 몰래 준비할 수 있었던 것도 이 해안에 진해만이 있는 까닭이었다.
하물며 진해만이 한둘뿐이 아니다. 이 수많은 항만들이 전시의 군항도 되고 평시의 어항도 되며 지략에 능한 자의 연마장도 되어서 아르키메데스, 유클리드, 크세노폰 등을 배출하던 그리스의 다도해 역할을 다한다면 반도의 몸통과 동서해안이 없어지고 소백산맥 남쪽만을 장백산맥에 연결하여 놓는다 할지라도 이 ‘조선식 해안’은 지구 위에 영원히 존재하고 빛날 것이다.
요컨대 3면의 해안선으로 보아도 조선 강토에 부족함이 없을 뿐 아니라 해안선만은 실상 과분하다 하리만큼 조물주가 우리 민족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남해안의 주요한 섬들을 적어보자면 아래와 같다.
제주도 1,869평방km, 거제도 389, 남해도 300 등 큰 섬들 말고도 추자군도, 노화군도, 완도, 고금도, 신지도, 청산도, 조약도, 평일도, 거금도, 거문도, 내.외나로도, 금오도, 돌산도, 사량도, 욕지도, 미륵도, 한산도, 가덕도 등등.
6. 기 후
우리나라는 대체로 북위 33도부터 43도까지 걸쳐 있어서 전형적인 온대지방에 위치하였다. 그러나 대륙에 붙어있어 있는 관계로 대륙성기후의 영향이 심하고 동해안에는 리만한류가 흐르고 있기에 다른 데의 같은 위도 지역보다 비교적 한랭하다. 위도로서는 지중해 연안과 비슷하나 기후는 그곳만큼 따뜻하지 않은 것이다.
지중해 연안에 있는 이태리, 발칸반도 등에서는 감람, 감귤류 등 아열대 식물을 재배하는데 우리는 제주도 남쪽 일부에서만 적은 양의 감귤류를 배양하고 있을 뿐이다. 반도 전체는 사과와 같은 추운 지방 과수를 재배함에 적합하다. 봄, 가을이 짧고 겨울이 너무 긴 것이 조선반도 기후의 단점이라고 한다. 그러나 얼음 위에서 스케이팅을 하면서 의지를 단련할 수 있음은 추운 나라 백성에게만 허락된 각별한 은총일 것이다.
반도 각 지역의 1월 평균 기온은 다음과 같으니 구미 문명 제국의 인구가 조밀한 대도시와 서로 비슷하다. 조선의 기후는 인류 생활에 부족함이 없음을 알 것이다.
부산 2.2도 파리, 교토와 비슷함.
대구 1.9도 베를린, 워싱턴과 비슷함.
서울 -4.5도 시카고, 북경(중)과 비슷함.
평양 -8.1도 모스크바보다 온난. 레닌그라드, 삿뽀로보다 조금 더 추움.
강수량이 500~1,400mm 내외에 불과해서 일본의 800~3,000mm에 비하여 부족한 듯하다. 그러나 조선의 강수량은 전체의 50% 이상이 농작기인 6, 7, 8월 경에 내리므로 이것만 잘 이용하면 생산에는 부족함이 없다 한다.
강수량이 다소간 모자란 경향이 있었던 까닭에 서구 제국보다도 200년이나 앞서서 조선시대 초기에 벌써 측우기를 제작하였던 것이다. 우리 민족이 세계 최초로 과학적으로 강우량을 계산했다는 영예를 얻게 된 것은 우리 조상들이 화(禍)를 복(福)으로 바꾸는 일에도 비상하였다는 증거이다.
게다가 하늘에 구름이 적은 것이 일찍이 천문학이 발달할 수 있는 이유가 되었으니 경주와 개성에 첨성대 옛 터가 남아있어서 우리의 자랑거리가 되고 있다. 맑은 하늘은 그 하늘 아래 백성의 마음을 맑게 하였으며, 맑은 마음이 어찌 하나님을 바라보기에 도움이 되지 않았겠는가? 이런 생각을 하면 이 강산에 태어나서 살아가는 것에 감사할 것은 있어도 불만할 것은 없다.
기후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산업에 대하여 언급하는 것이 당연한 순서이지만, 지금은 조선의 자연적 요소에만 살펴보고자 하니 인문적 요소와 상관이 많은 산업에 대해서는 생략한다.
7. 위 치
위치는 자연 지리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가진 요소이므로 이를 논하는 것은 곧 결론에 이르는 일이 된다. 지구의 표면을 열대, 온대, 한대의 세가지로 나눌 때에 한대에는 인류의 생활이 거의 불가능하고, 열대에는 국민의 지능이 발육하기를 기대하기 거의 힘들며, 오직 온대 지방에서라야만 능히 문화의 개발을 볼 수 있다 함은 세계 지도를 보면 분명해지는 바이다.
우리 반도가 북위 약 33도로부터 43도까지에 걸쳐 있어서 온대 중에도 전형적 온대 지역에 위치하고 있음은 무한한 행복이다. 남반구보다는 우리가 속해있는 북반구에 대다수 인류들이 생활의 본거지를 삼고 있는 것도 복되고 상서로운 일이다.
조선은 극동의 중심이다. 심장이다. 중심적 위치라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는 좌우할 수 없는 속성을 품고 있는 것이다. 영국이 오늘과 같이 융성하였음은 육반구(陸半球)의 중심에 위치한 것이 그 가장 중대한 요인이라 함이 지리학자의 정론이다. 오사카(大阪)시가 정치적 변혁에 상관없이 누백년간 일본 경제계의 여왕 같은 지위를 지켜 온 것도 그 지리적 위치가 결정한 사실이다.
이와 비슷한 예는 일일이 거론하기 어려울만큼 많이 있다. 그러나 단지 중심적 위치라기 보다는 반도로써 한 세계 한 시대의 심장 역할은 했던 예들 중에서 조선 반도와 닮은 꼴의 예 두셋을 들자면 아래와 같다.
(1) 그리스 반도
인류의 역사가 이집트, 바벨론, 앗시리아 등 원시 거대 국가 생활로부터 로마제국 같이 조직적이고 근대적인 새로운 생활 양식으로 옮겨 가는 중간에 그리스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했다. 이전 시대의 모든 우수한 유산을 종합해서 다음 시대에 전개해 준 것이다. 기원전 4~5세기 무렵에 찬란하고도 독특한 문화를 세계 역사에 남긴 그리스 반도는 반도라는 것, 산악이 많고 평야가 적은 것, 북위 30~40도 내외에 위치한 것 등이 우리 조선과 매우 비슷하다.
더군다나 그 반도에 또 반도가 달려 있어 항만 굴곡이 극심한 것과 수천 수만의 섬들이 곶에 나열 되어 있어서 대륙인지 도서인지 분간하기가 곤란한 다도해 광경은 조선 반도의 남해안과 거의 일치하는 바이다.
뿐만 아니라 동방 제국이 지중해 남서 지역으로 뻗어 나갈 때에 필연코 그리스 반도를 거쳤고, 로마 군대가 소아시아 지역을 정복할 때에 그 말발굽 소리가 우선 이 반도에서 들렸고, 북극 곰 러시아의 발톱이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나무 뿌리를 파헤치고 두드릴 때에 먼저 진동한 곳도 이 반도였으니 이것조차 두 반도의 신세가 똑같으니 역사적으로 국제정세에 민감한 곳이다.
그러므로 그리스 반도를 동정하려거든 조선 반도에도 마찬가지요, 그리스 반도에 자랑할 것이 있다면 조선 반도에도 그것이 있을 것이다.
(2) 이태리 반도
이태리 반도가 조선 반도와 비슷하게 생긴 것은 세계 지도를 한번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폭이 좁고 길이가 긴 반도 전체의 형상도 닮았지만 면적으로나 위도로나 대동소이하다. 지중해의 중앙에 돌출하여 1, 2세기에 절정에 이르렀던 로마제국의 위력과 오늘날까지 3,000년 문명을 이어 온 것을 보라.
그 위치가 지중해의 심장이어서 강한 때에 주위를 지배하기에 편할뿐더러 쇠약한 때에도 한가로이 낮잠만 잘 수도 없는 형편이니 이 또한 조선 반도와 똑같다. 이태리 반도는 그리스보다 더 중심적 위치인데 더하여 비옥한 롬바르디아 평원까지 갖추고 있었으니 그리스보다 규모도 컸으며 역할도 달랐다. 로마의 주도하에 1세기 초 지중해 문명은 활짝 피어난 것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는 그리스로서 숭고하였고 로마는 로마로서 강대하였다. 그리스 반도는 그리스를 산출한 미인이며 아펜니노 반도는 로마 제국을 양육한 현모이었다. 여인은 아이를 낳는 것으로 죄가 없어진다고 하나 여인은 산출한 자녀에 의하여 아름다워 지기도 하고 거룩해지기도 하는 듯하다.
그 스승에 그 제자라는 말이 있지만 또한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다. 무릇 그리스의 예술과 로마의 제도가 어떤 것인 줄 아는 자는 이 두 반도의 아름다움을 볼 것이다. 이 두 반도의 지리학적 아름다움을 안다면 이 두 반도가 산출한 문화가 각기 그 어머니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지구 위에서 가장 아름다운 반도 둘만 찾으라면 서슴없이 그리스 반도와 이태리 반도를 꼽는 것이 다 이유가 있음이다.
그러나 이태리 반도의 남단에는 타란토만(灣) 하나가 멋없이 있을 뿐이다. 이른바 장화 모양이라는 별명을 얻은 것은 이태리 반도의 끝부분이 맺힌 데 없이 생겼기 때문이다. 만일 아펜니노 반도의 칼라부리아 반도와 아풀리아 반도를 끊어 내고 거기에 그리스 반도를 떼어다 붙인다면, 이는 호랑이가 날개를 단 모양이다. 지구상에서는 이 이상의 이상적 강토를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있다. 곧 조선 반도다. 궁금한 사람은 세계 지도에서 그리스의 에게해를 떼어 이태리 남단에 붙여 놓고 우리 반도와 대조하여보라.
(3) 덴마크 반도
유틀란트 반도의 면적은 조선 반도의 20%에 채 못 미친다. 그 안에 산악이라야 해발 200m를 넘는 것이 희귀하니 서울의 남산(265m)을 들어다 놓으면 덴마크의 백두산 노릇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덴마크는 농업과 축산업의 모범국으로 알려져 전세계의 주시를 받는 곳이다. 그러나 12, 13세기에는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스웨덴, 노르웨이는 물론, 독일, 러시아, 영국, 프랑스 제국까지도 덴마크의 세력권 안에 있었다. 이는 그 위치가 북서 유럽의 중심에 돌출함이 가장 큰 이유가 되었다. 마치 아펜니노 반도가 지중해에, 조선 반도가 동해에 그러한 것과 흡사하다.
지금은 비록 예전의 정치적 위력이 시들어 없어졌지만 위대한 철학자 키에르케고르(S ren Aabye Kierkegaard)의 조국이라는 명예를 가지고 있다. 최근 반세기 이래로 세계를 놀라게 한 산업적 발전의 이면에는 키에르케고르의 복음주의적 기독교 신앙이 기반이 되었다 한다.
결 론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지리적 단원으로 보나 그 면적과 인구로 보나 산악과 해안선의 지세로 보나 기후로 보나 극동의 중심적인 위치로 보나 조선의 지리적 요소에 관한 한 우리가 불평을 하기보다 만족과 감사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넉넉히 한 살림살이를 꾸려갈 만한 강산이며 넉넉히 인류 사상에 큰 공헌을 제공할 만한 살아있는 무대이다.
그러나 조선의 과거 역사와 현재의 상황을 통달한 이는 누구든지 그 위치의 불리함을 한탄하여 마지않는다. 황해가 대서양만큼 넓거나 압록강 저편에 알프스 산맥 같은 험준한 봉우리들이 둘러쌌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한다. 조선 해협이 태평양만큼이나 넓었더라면 좀 더 태평하였을 것이라고 한다.
그렇지 못해서 중국, 일본, 러시아 3대 세력 가운데에 끼어서 이리저리 치고 받치는 형세에 반만년 역사에 편안한 날이 없었다고 하니 듣는 자로서 과연 동정의 눈물이 없을 수 없다. 그렇지만 이는 약자의 비명일 뿐이다.
약자가 한갓 태평을 구하여 피신하려면 천하에 안전한 곳이라고는 없다. 남미 페루에 살았던 인디오의 수도 쿠스코(Cuzco)는 우리 백두산보다 훨씬 더 높은 곳에 있었어도 스페인인들의 참혹한 침략을 피할 수 없었다.
티벳은 해발 4,000m 이상의 고원에 숨겨진 나라였으나 천하 최고의 히말라야 산맥도 영국인의 잠식으로부터 보호해주는 장벽은 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깨닫는다. 비겁한 자에게 안전한 곳이 없고 용감한 자에게 불안한 땅은 없다고. 무릇 생선을 낚으려면 물에 갈 것이요,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가야 한다. 조선 역사에 편안한 날이 없었다 함은 무엇보다도 이 반도가 동양 정국의 중심인 것을 여실히 증거하는 것이다.
물러나 은둔하기에는 불안한 곳이나 나아가 활약하기에는 이만한 데가 다시 없다. 이 반도가 위험하다 할진대 차라리 캄챠카 반도나 그린란드의 빙하 속으로 가야 한다. 현세적으로 물질적으로 정치적으로 고찰할 때에 조선 반도에 지리적 결함, 선천적 결함은 없는 줄로 확신한다. 다만 문제는 거기 사는 백성의 소질과 담력이 중요할 뿐이다.
만약 눈을 돌려 정신적인 것을 본다면 반도에는 특이한 희망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유태 민족은 바벨론, 페르시아, 이집트, 앗시리아 등 강대한 세력이 복잡하게 뒤섞인 가운데에 놓여 있었다. 이들은 격변하는 국제 정세와 척박하고 불리한 자연환경 속에서도 이방의 자연숭배 같은 미신에 빠지지 않고 오로지 유일신을 믿는 건전한 신앙을 지켜왔다.
이와 같이 반도의 백성이 과거 반만년의 역사를 고요히 생각한다면 안전한 백성과 강대한 국민으로는 도저히 모르는 바를 깨달아 알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사상이나 발명은 모르나 지극히 높은 사상, 즉 신의 경륜에 관한 사상만은 가난하고 약하고 멸시 당하고 유린 당하여 타고난 교만의 뿌리가 뽑힌 자에게만 특별히 계시되는 듯하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복음을 위탁하기 위해서는 저들에게서 온갖 것을 빼앗고 갖은 부끄러움과 모욕을 지워 주었다. 요즈음 우리는 이웃 나라들의 정직함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이런 때에 맑은 마음을 이 백성에게 두신 이의 요구가 무엇인 지를 우리는 그윽히 기다리고 바라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일반적인 문화 현상으로 보면 동방의 고대 문명이 서쪽의 구미 여러 나라로 옮겨 가기 시작할 때에 그리스 문명의 독특한 꽃이 찬연히 피었던 것처럼 인도 서역 문명이 동쪽으로 옮겨 올 때에 조선 반도에는 이채로운 문화가 출현하였다.
지금은 도리어 태평양을 건너온 문화의 물결이 태백산과 소백산의 골짜기를 거슬러 올라가 백두산 기슭까지 적셨으니 서에서나 동에서나 모름지기 고귀한 광명이 출현하고는 이 반도가 깨어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동양의 모든 고난이 이 땅에 모여 있거니와 동양에서 산출하여야 할 바 무슨 고귀한 사상, 동반구의 반만년의 모든 것을 용광로에 다리어 낸 엑기스(농축액)는 필연코 이 반도에서 찾아 보리라.
<성서조선> 第 62 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