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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황혼 (감사 감성일기)
-어지러운 시대의 강을 지혜롭게 건너려는 한 개인의 미시적(微視的) 역사-
‘따뜻한 외로움’을 50편으로 마감하고, ‘어쩌다 황혼’이란 제목으로 일기를 계속 이어간다. 언제까지 쓸지 모르겠지만, 그냥 그냥 일주일에 한두 편씩 삶을 복기해 보는 시간을 가진다.
1. 2025.12.13.(토)
유난히 포근한 주말. 겨울이 잠시 숨었는지 좋다. 오늘은 초등 동기 C와 점심 약속이 있다. 지하철 3호선 서문시장역에 내리니 발 디딜 틈이 없다. 약속 장소인 ‘만남의 광장’ 가는 길에는 사람의 홍수다. 따뜻한 날씨에 휴일이라 그런가. 길게 늘어선 노점 국숫집과, 길거리 호떡집엔 손님들로 시끌시끌하다. 부딪치지 않으려고 요리조리 사람을 피해 걷는 것도 힘이 들지만 싫지 않다. 마치 1970년대, 통행금지가 하루 없는 크리스마스 날 밤에 동성로를 걷는 기분이랄까. 역시 재래시장의 맛은 간단한 길거리 먹거리가 으뜸이다. 우리는 늘 찾던 ‘선아 국숫집’으로 향했다. 오전 11시 반이 조금 지난 시간이라, 아직은 가게가 붐비지 않아 다행이다. 재직할 때부터 즐겨 찾던 국숫집이다. 퇴직 후에도 친구와 서문시장에서 모임을 하면 자주 찾는 단골집이다. 여기서 이따금 Y 선생, S 교장 등 옛 직장동료들도 우연히 만날 때도 있다. 그들도 재직할 때의 옛 맛과 추억을 잊지 못해 찾는 듯하다. C와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여기서 미팅한다. 오늘도 뜨거운 칼국수로 배를 달래고 일어섰다.
커피는 길 건너 서문교회의 ‘카페 블레싱’이 좋다. 시장 안의 카페는 장소도 좁고 사람이 많아 너무 어지럽다. 잠시 느긋하게 쉴 수 있는 분위기와 멀다. 교회에서 직영하는 곳이 아니라, 커피값은 대형 커피점과 비슷하다. 넓은 장소에 편안한 의자, 깨끗하고 높은 천장은 조용하게 담소하며 휴식 장소로 안성맞춤이다. 파동에 같이 살았던 C와는 지내온 안부로 시작해 속에 있는 깊은 얘기도 털어놓으며 서로 힐링하는 사이다. 생각의 결이 비슷하다. 비교적 건강한 체질이지만 그도 조금씩 낡아가는 건강을 털어놓는다. 최근에는 마음의 안정이 되지 않는단다. 무언가 불안한 생각이 자주 생겨 의욕이 떨어지고 정신이 가라앉는 느낌이란다. 아무에게나 쉽게 털어놓지 못하는 마음을 드러내며, 내 의견을 듣고 싶어 한다. 제일 좋은 답은 끝까지 잘 들어주고 공감하는 것이다. 나도 예전에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겪은 경험을 설명하며 긍정적인 길로 안내한다. 칼럼에서 공부한 얘기도 하고, 나름대로 치유한 방법을 편한 마음으로 주고받다 보면 정답이 아니라도 많은 힐링이 된다. 결국 슬프면 울고, 즐거우면 웃고, 걱정이 있으면 걱정하고, 그냥 그냥 남들처럼 사는 것이 제일 나은 방법이다. 한 겹 껍질을 벗겨보면 다들 비슷하게 고민하고 살아간다. 종종 내 안의 불안을 내려놓고 기쁨을 방해하는 두려움과 맞서는 것이 좋다.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다 보면 훌쩍 시간이 달아난다.
오후 2시 30분 귀가했다. 참, 오늘은 2시부터 ‘청춘탁구클럽’ 송년회 날이다. 빨리 오라고 관장님의 재촉 전화가 왔다. 급히 구장에 도착하니 푸짐한 먹거리 상이 준비되어 있다. 관장님과 여회원들이 며칠 동안 준비했다. 행운상 상품도 두둑하다. 송년회 모임은 경기도 중요하지만 즐겁게 놀고먹는 것이 우선이다. 오전반, 오후반, 저녁반이 함께 섞어 조를 짜 복식 게임으로 시작했다. 단식 게임은 없다. 20여 명이 참가해 복식 10개 팀을 A팀과 B팀으로 나누었다. 다시 실력이 비슷하게 조를 짠다. 나는 B팀으로 청도 소방관인 A 님과 한 조가 되었다. 토너먼트로 4게임을 해서 승률로 우승 팀을 뽑는 방식이다. A팀 우승 조와 B팀 우승 조가 결승에서 마지막 승자를 가린다. 나는 사실 복식 게임은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다. 상대 팀과 실력이 크게 벌어지면 힘들지만, 팀의 조화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두 사람 다 공격형이면 실수가 잦고, 수비형이면 득점에 어려움이 많다. 한쪽이 공격형이고 다른 사람은 수비형으로 조를 이루면 제일 좋은 성적을 낸다. 나름으로 열심히 뛰었으나 성적은 좋지 않았다. 척추협착증으로 석 달이나 놀았기에 실력 부족이다. 다시 모두가 같이 즐기는 색다른 게임을 시작한다. 전체를 10명씩 두 팀으로 나누어 경기하는 청백 게임이다. 이 게임은 처음 해 본다. 처음에 양 팀이 순서대로 한 명씩 나와 경기를 시작한다. 점수를 잃는 팀은 다음 선수로 교체한다. 잃는 팀이 먼저 공격한다. 점수를 계속 따는 선수도 5점을 따면 교체한다. 이렇게 죽 돌아가며 순서대로 해 전체 점수가 42점을 먼저 내는 팀이 승리하는 게임이다. 고수가 실수하기도 하고 하수가 네트플레이나 모퉁이 맞는 행운으로 점수를 얻으니 박장대소하며 응원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선수 출신인 관장님의 제안으로 재미있는 게임 방법을 체험했다.
오후 6시. 행운권 추첨도 끝낸 뒤풀이 시간에 슬그머니 집으로 왔다. 피곤했기에 몸이 힘들다고 신호가 왔다. 끝까지 함께 즐겼으면 좋지만, 무리를 하지 않는 것이 정답이다. 종일 함께 한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맑고 환하다. 기적 같은 소소한 삶을 아름답게 누렸으니 이 또한 얼마나 행복한가? 오늘도 기쁜 마음으로 감사하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고맙습니다.
2. 2025.12.15.(월)
별 볼 일 없이 사는 듯해도 바쁘다. 낮 12시. 수성못 ‘쿠우쿠우’에서 모임이다. 얼마 전 초등동기 L이 모친상을 당해 잘 치렀다는 감사로 초대한 날이다. “에고! 안 해도 되는데”라고 사양 문자를 보내도 거듭 얘기한다. 고맙게 승낙했다. 동기 얼굴도 보고 살아가는 모습, 겸사겸사 수다를 즐길 시간이다. 승용차보다 버스를 타기로 했다. 편한 마음으로 이어폰을 통해 좋아하는 칼럼도 감상할 수 있고, 유튜브로 전문가의 하모니카 강습도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성 6번’을 타면 50분 걸리는 거리이다. 시간을 넉넉하게 잡고 출발했다. 버스 차창으로 펼쳐진 경치와 사람 구경도 재미있었다. 갑자기 우리 집 새 식구가 된 달팽이를 떠올린다. 이 미물을 언제까지 잘 키울 수 있을까? 생명이기에 정성과 관심을 쏟아야 좋은 결과가 온다. ‘따뜻한 외로움’ 내 글을 읽은 한 대학 동기는 고양이를 좋아한다. 그녀는 예전에 키우던, 예쁘고 도도한 고양이의 매력을 잊지 못해 기회가 되면 다시 ‘먼치킨’이란 고양이를 키우고 싶어 한다. 고양이에 대해 잘 몰라 ‘먼치킨’을 검색해 봤다. 작고 보잘것없는 달팽이와 여러 가지로 비교가 된다. 크기나 값이나 생명력이나 큰 차이가 있다.
얼마 전 달팽이 가출 사건을 떠올리다가, 달팽이가 사라졌을 경우와 고양이가 명을 다했을 때의 마음이 어떨지 궁금했다. 당연히 대부분은 달팽이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사실 나도 그렇다. 그때 고려시대 백운 이규보의 ‘슬견설(蝨犬說)’이란 수필을 떠올렸다. 손님과 내가 대화하는 형식의 글이다. 손님은 “개(犬)가 죽는 것은 마음이 아프지만, 이(蝨)라는 미물이 죽는 것은 하찮다.”라고 주장했다. “사람이 화로에 이를 태워 죽이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파 나는 다시는 이를 잡지 않겠다.”라고 내가 반론한다. 손님은 다시 “개는 크고 이로운 짐승이지만 이는 미물이고 해로운 것인데, 이를 개와 같다는 것은 나를 놀리는 것이 아니냐?”라고 반문한다. 그러자 “모든 생명은 크든 작든 살기를 원하고 죽기를 싫어한다. 개와 이의 죽음은 본질적으로 같다. 내가 당신을 놀리는 것이 아니라, 선입견과 편견을 버리고 사물의 본질을 보게 하려는 것이다.”라고 나는 대답한다. 크기와 이로움과 해로움이라는 사실(표면)만 보는 선입견과 편견을 버리고, 모든 생명체는 크기와 관계없이 소중하다는 보편적 깨달음, 사물의 본질(이면)을 보라는 이야기이다. 이 고전 내용을 잘 알면서도 나는 아직 본질을 보지 못하고 살아간다. 언제쯤 철이 들까? 여든이 넘어도 철이 들지 모르겠다. 이런저런 생각을 따라가다 보니 훌쩍 시간이 흐른다.
약속 시간보다 20분 일찍 수성못에 도착했다. 살랑거리며 바람은 불지만, 햇살이 따스해 겨울 같지 않다. 상화동산의 상화시비 곁을 지난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시를 눈으로 감상한다. 주말의 행사 준비로 무대장치를 만든다고 쿵쾅거린다. 못 둑을 천천히 걸어본다. 눈 가는 곳 따라 마음도 시원하고 맑다. 아름답다. 좋다. 올 때마다 느끼지만 무슨 다른 말이 필요하랴. 유럽 이름난 어떤 호수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곳이 아닌가. 일렁이는 물결에 윤슬이 반짝이고, 물가 가장자리 허리 굽혀 인사하는 억새들의 몸짓에 미소로 화답하며 산책길을 어슬렁거린다. 평일 한낮이라 사람이 적다. 연인끼리, 친구끼리, 소근대며 걷는 발걸음 소리에 을사년은 천천히 저물어간다. 멋지게 단장된 데크길 사이로 보이는 노랗게 물든 가로수의 물결은 한 장의 겨울동화이다. 그때 저쪽에서 얼굴이 익은 사람이 걸어온다. 같이 근무한 S 교장이 아닌가. 반갑게 인사하고 안부를 물었다. 근처 파동 코오롱 아파트에 사는 S 교장은 운동 겸, 도보로 지하철 3호선 수성못역으로 가는 길이란다. 서문시장 ‘선아 칼국숫집’에 모임이 있다고 한다. 내가 가까운 파동에 살 때는 수성못에 자주 왔지만, 이사로 몸이 멀리 떠나니 마음도 멀어진 것 같아 안타깝다. 마음만 먹으면 쉽게 올 수 있지만 현실은 어렵다.
낮 12시. 식당에 들어서니 사람들이 넘친다. 북적거리는 서문시장 노점의 국숫집에 온 것 같다. 초밥코너에 줄이 길게 이어져 있다. 오찬 25,900원. 온갖 종류의 초밥 음식이 있지만, 적지 않은 금액이다. 우리나라가 정말 잘 사는 것 같다. 아니, 잘 사는 사람만 여기 오겠지. 점심 약속을 대부분 11시 30분 정도로 잡기에 사람이 벌써 넘친다. 나도 지금 여기 있지만, 자본주의의 속성을 보는 것 같아 좀 씁쓸하다. 새벽 운동을 나갈 때 간혹 마주치는 파지 줍는 노인의 얼굴이 떠오르고, 이따금 K 복지관에서 점심 먹을 때 긴 줄을 이루는 노인들의 표정도 되살아난다. 빈익빈 부익부가 대를 이어가니 어쩔 수가 없다. 이젠 즐거운 마음으로 식사해야지. 세 테이블에 10여 명이 자리 잡았다. 여자 동기 일이고 평일 낮이라 여자 친구가 많이 왔다. 남자는 겨우 4명. 평소 소식하는 체질이지만, 본전 생각이 나서 접시에 몇 번 담아오니 과식했다. 후회하고 반성하는 어리석은 일을 반복하는 시간이다. 식탐은 크게 없어도 고치기가 어렵다. 오늘 음식 중 ‘앙크루트 스프’가 색다르다. 친구들의 살아가는 모습도 아름답다. 철학박사인 풍수 대가 N의 조상 모시기와 명당 이야기도 재미있고 수긍이 가지만, 20년, 50년 후의 세상을 그려보면 고개를 갸웃한다. 은행 지점장 출신인 K의 생활철학도 좋고, 종친회 회장을 맡아 문중의 궂은일을 원만하게 해결하며 지내는 H의 보람 있는 삶도 자랑스럽다. 다들 세월의 흐름에 물결이 되어 건강하게 살아간다. 다시 창밖으로 수성못이 안긴 수성호텔 ‘카페 NOC’로 자리를 옮겼다. 카푸치노와 라테 한잔으로 뒤풀이하며 살아가는 삶을 풀어낸다. 자질구레한 잡담과 수다도 즐겁다. 고희를 훌쩍 넘긴 세월이 아닌가. 동기들의 지난 추억의 일도 돌아보니 아스라하고 재미있다. 내가 쓴 ‘따뜻한 외로움’을 자세히 읽은 친구가 소감도 간단히 전해주며 격려해 준다.
A 의 승용차로 ‘용지’ 역에 내렸다. ‘수성 6번’을 타고 시지로 귀가하니 어느덧 오후 4시다. 오늘 모임을 주선한 L에게 고마움을 보낸다. ‘청춘탁구클럽’에서 출석하라고 연락이 왔지만 피곤해서 그냥 쉬었다. 아직 완쾌되지 못한 몸이라 조심한다. 쉬엄쉬엄 어슬렁어슬렁 살아가자. 이런 주문을 자주 외우면 실천하리라 생각된다. 기적은 고목에 꽃이 피는 것이 아니다. 별일 없이 어제처럼 아침마다 눈 뜨고 감사한 하루를 여는 것이다. 오늘 하루도 자잘한 기적의 시간을 보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3. 2025.12.19.(금)
구름 많은 흐린 날씨다. 아침부터 뭔가 부족한 듯 마음이 찌뿌둥하다. K ***에서 꽃게탕으로 점심을 먹었다. 대학 구내식당의 학식을 먹는 기분이다. 지난주 복지관의 모든 문화 강좌가 종강했기에 경로식당은 전보다 조용하다. 줄 서서 기다릴 때마다 많은 생각이 든다. 통계학으로 보면 여자들이 장수하지만, 여긴 대부분이 남자다. 연로한 분도 많지만 젊어 보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혼자 사는 분도 많지 않을까? 경제적으로는 괜찮은 듯하나 끼니 해결은 어려운 것이 노년의 남자다. 그들의 삶이 고난했다는 것을 하회탈 닮은 표정으로 읽게 된다. 배식 때 밥 양을 보면 하루 한 끼로 해결하는 분도 있는 듯하다. 서글프고 안타깝다.
마음이 불편한 날은 미술관을 찾는다. 간송미술관으로 차를 몰았다. 한해를 갈무리하는 가로수들이 말 잘 듣는 초등학교 아이들처럼 정렬해 있다. 입구에 오니 즐겁다. 천천히 미술관 계단을 내려갔다. 미술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어 몇 번 봐도 잘 모르지만, 예술 작품 앞에 서면 경건함이 생긴다. 문학이나 미술이나 학문이나 다름이 없을 것이다. 장대한 문학작품을 쓴 ‘스티븐 킹’이나 ‘시드니 셀던’ ‘조정래’ ‘박경리’ ‘최명희’ 같은 사람의 작품을 볼 때마다 감탄스럽다. 어떻게 저렇게 긴 글을 쓸 수 있었을까 생각뿐이다. 일생을 신념과 열정으로 치열하게 산 흔적이 아닌가. 며칠 지나면 ‘삼청도도’ 특별기획전도 마감한다. 1전시실에 전시된 산수화 작품 위치가 전과 조금 바뀌었다. 현재 심사정의 ‘여산유서’(여산에 숨어살다.)부터 자세히 감상한다. 초가집 창가에 앉은 선비가 밖의 풍경을 보고 있고, 건너편 절벽 아래 시동과 손님이 개울의 외나무다리를 건너오는 그림이다. 중앙의 아름드리 소나무와 배경이 된 첩첩 산세가 압권이다. 작품과 해설을 번갈아 보며 숨은그림찾기 하듯 그림에 들어간다. 오원 장승업의 ‘난천청산’(요란한 폭포와 푸른 산)은 긴 족자 형태의 산수화이다. 구름 같은, 검고 뭉클뭉클한 바위 모양의 산에서 거대한 폭포가 쏟아진다. 절벽 사이사이에 이상향 같은 기와가 세 채, 아래쪽에는 아담한 초가가 한 채 있고, 개울가 다리 위에는 주인이 왼팔을 들고 손님에게 길을 안내하는 듯한 모습이다. 자세히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고 좋다.
건너편에 있는 서예 작품은 관심이 많다. 한때 나도 열정을 바쳐 20여 년 심취한 분야이다. 원교 이광사의 유려한 행서 작품은 언제봐도 자유롭고 호탕하다. 글씨도 좋지만, 글의 내용도 마음에 든다. ‘높은 누각에서 새벽에 꽃 한 송이 핀 것을 보고, 봄빛이 사방에서 다가오는 것을 문득 알았네. 따스한 햇살과 갠 구름이 차례로 이를 것이니 동풍이 다시 봄을 재촉하지 않아도 되리.’ 당나라 시인 영호초의 ‘유춘사’라는 작품이다. 이광사는 당시 대중적 인기와 관심을 최고로 받은 작가이다. 옆의 ‘원교진첩’은 이광사가 당나라 시성 두보의 시를 예서와 전서로 쓴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전서는 마음에 드나 예서는 좀 그렇다. 마지막으로 추사 김정희의 ‘황화주실’이란 작품을 대한다. 전형적인 예서에서 벗어나 독보적인 추사체의 글씨다. 무궁무진한 예술의 세계에서 수박 겉핥기 감상도 나름대로 재미가 있다.
중앙의 청자와 백자가 눈부시게 아름답다. 이 두 점은 국보이기에 더 관심이 간다. 지난번에 대충 봤지만, 다시 보아도 질리지 않는다.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보려니 직원이 바로 제지한다. 아쉽지만 어쩔 수가 없다. ‘청화백자인물문팔각병’은 둥근 병을 물레로 성형하고 팔각으로 깎아 만든 각병이다. 문양은 대나무숲에서 거문고를 타는 선비와 소나무 아래 바위에 기대앉은 인물을 그려 넣었다. 산뜻한 느낌은 들지 않는다. 크게 멋진 그림은 아니라고 소개한다. 작품 한번 보고, 해설 보고, 다시 작품 보고, 해설 보고,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눈이 침침하고 힘들지만, 몰입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냥 그냥 지내는 것도 편안하고 좋지만,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기웃거리는 삶의 맛도 괜찮다. 무위(無爲)의 행위가 최선일 때도 있지만, 끊임없이 세상을 엿보고 호기심을 갖는 것이 좋지 않을까? 취향이다. 4전시실의 ‘삼청도도’는 지난번에 자세히 보았기에 한번 쭉 둘러보고 나왔다.
대구미술관에 들어가려다가 눈이 피곤해 돌아섰다. 산책로 소나무 숲에 앉아 건너편 팔공산 능선을 우러렀다. 잿빛 구름에 가린 정상은 잘 안 보여도 마음은 편안하다. 조상의 아름다운 예술 작품을 보며, ‘사람은 가도 예술은 영원하구나’를 다시 한번 실감한다. 잠시나마 선인들의 시대와 교감한 시간이 좋다. 오늘도 고마운 날이다. 지금 여기 내 뜻대로 다닐 수 있음에 감사드린다. 고맙습니다.
4. 2025.12.24.(수)
지난 며칠은 우울했다. 주말에 또 비보가 전해왔다. 대학 동기인 L이 하늘의 별이 되었다. 올해 벌써 몇 번째 슬픈 소식인가? 동기와 지인 선배 후배까지 7명이나 된다. 을사년은 마지막까지 정말 잔인하다. 그는 10여 년 전 위암 수술 후 남은 위장으로 힘들게 살았다. 자기 먹는 속도가 느려 불편하다고 모임에도 참석을 꺼렸다. 몇 년 전, 서울 거주할 때는 여자 동기들과 산행도 자주 했다. 앞장서서 산길을 인도하고 힘든 친구의 배낭도 들어주며 건강도 많이 회복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대구에 와서도 힘들지만, 열심히 사는 것으로 알았다. 동기 카톡에 이따금 소식도 올리더니, 순간 별똥별로 사라졌다. 조문 후 친구들과 지하철 반월당역 만남의 광장 2층 ‘브리스톳’ 카페에 앉았다. 포항, 경주, 대구의 친구 5명이 자리했다. 그 친구와의 지난 추억을 얘기하며 아쉬움을 달래다가 우리 또래의 평균 생존율이 얼마일까 설왕설래했다. 한 친구가 AI로 바로 검색했다. 남자 70세 이상 살 확률은 85%가 나온다. 80세 이상은 63%이고, 90세까지도 살 확률은 25%나 된다. 평균수명이 참 길어졌다. 죽음은 언제 누구에게 다가올지 아무도 모른다. 먼저 별이 된 친구 삶은 안타깝고 슬프다.
L과 나는 대학 1학년 때 겪은 추억이 색다르다. L과 지금 창원의 K교장 그리고 나, 셋이 여름방학 때 청하 보경사 내연산으로 1박 2일 등산을 갔다. 당시 우리는 과 산악회 ‘암충(岩蟲)’이란 동아리 회원이었다. 1972년도 우리가 가진 등산 장비는 정말 열악했다. 무거운 군용 A텐트, 군용 모포, 알코올버너 등 지금 생각하면 이런 장비로 어떻게 갔을까 생각할 정도로 빈약했다. 나는 3학년 때 스웨덴 제품인 ‘스베아’ 석유 버너도 구입했다. 푸른 청춘이라는 패기 하나로 살았던 시절이다. 완행열차를 타고 포항에 내려, 다시 터덜거리는 버스로 보경사 입구까지 갔다. 보경사 경내를 구경하고 상생폭포 무풍폭포 출렁다리 관음폭포와 연산폭포까지 12폭포를 올라갔다. 당시는 구름다리가 있었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폭포 옆 가파른 산길을 어렵게 올라가면 거짓말같이 다시 평탄한 곳이 나타난다. 소금강 쪽으로 가다 날이 저물어 멀리 향로봉을 바라보는 적당한 곳에서 야영했다. 우리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산새 소리와 계곡물 소리 검푸른 숲만 친구가 되었다. 당시 야영을 많이 해 보지는 않았지만, 산을 좋아하고 자주 갔기에 야영의 즐거움에 빠질 때였다. 텐트 속 잠은 힘들었지만, 새벽 여명의 숲은 무어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짜릿했다. 이른 새벽 희뿌연 햇살이 소나무 가지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순간 느끼는 감정은 언제나 황홀했다.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경쾌한 음악은 금상첨화였다.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귀갓길에 포항 북부해수욕장에 들렀다. 해수욕은 하지 않고 백사장만 돌아다녔는데, 문제가 생겼다. 어쩌다가 총무를 맡은 L이 남은 회비를 잃어버린 것이다. 어쩔 수 없었다. 비상금을 톡톡 털어 대구행 저녁 통근 완행열차 차표를 사니 한 푼도 남지 않았다. 배는 고프고 돈은 없고 처량했다. 포항역 광장 모퉁이에서 알코올버너로 라면 하나를 끓여 셋이 나눠 먹었다. 꿀맛이었다. 지친 몸을 싣고 탄 열차 안에서 더 큰 문제가 발생했다. 통근 열차 마지막 칸은 해병대 군인들이 탄 열차였다. 해병대 헌병 둘이 우리 칸에 들어왔다. 등산 배낭을 본 그들이 검문한다고 열어보라고 한다. 영문을 모르고 배낭을 풀어 보이니 모포가 군용이라고 압수한다. 이게 무슨 일인가? 사정을 해도 소용없다. 빼앗기지 않으려고 온갖 말을 해도 통하지 않는다. 잠시 뒤 K가 가만히 못 있겠다고 헌병을 찾아 마지막 칸으로 갔다. 대구 도착까지 걸리는 2시간 내내 K가 오지 않았다. 기차가 반야월역에 도착할 무렵 K가 환하게 웃으며 모포를 들고 돌아왔다. 군용 칸에서 K는 모포를 돌려받으려고 살아온 얘기부터 온갖 이야기를 다 하고 지내다가 결국 받아 온 것이다. 새삼 그의 끈질긴 집념과 열정에 L과 나는 부러움과 경탄한 일이 어제처럼 아스라하다.
오늘 저녁 7시 30분. ‘제7회 수성빛예술제’가 막을 연다. ‘행복수성 뉴스레터’로 검색한 나는 며칠 전부터 손자들을 데리고 갈 계획을 세웠다. 근데 날씨가 차다. 어떻게 할까? 괜히 잘못 감기라도 걸리면 곤란하다. 한참 망설이다가 혼자 가기로 했다. 잔병치레를 잘하는 아이들이라 득보다 실이 많으면 과감히 포기하는 것이 옳다. 마음으로는 화려한 빛예술제와 멋진 ‘드론아트쑈’를 보여주고 싶었지만, 내년을 기약했다. 주말에 경주 풀빌라 여행을 간다기에 다행이라 여겼다. 수성못 행사 참가는 주차가 어렵다. 혼자라 ‘수성 6번’ 버스를 탔다. 천마타운 앞에서 추위를 막기 위해 완전히 무장한 초등학생 대여섯 명이 엄마와 함께 우르르 탄다. 재잘대는 소리를 들으니, 그들도 ‘수성빛예술제’에 가는 모양이다.
저녁 7시쯤 도착하니 개막식장 못 둑에는 벌써 사람들이 가득하다. 크리스마스이브라 교인들은 오기 어려워 덜 붐빌 줄 알았건만 예상과 다르다. 빛예술제의 백미는 ‘드론아트쇼’이다. 예전에는 폭죽쇼가 대세였으나, 요즘에는 수백 대의 드론이 빛과 움직임으로 입체적인 온갖 형상을 만들며 비행하는 ‘드론아트쇼’가 축제의 절정이다. 너도나도 멋진 비행에 탄성을 지르며 동영상 촬영에 바쁘다. 사실 귀가해서 블로그로 검색하면 본인이 찍은 것보다 멋진 동영상이 많이 나온다. 누구나 그냥 그냥 찍는 재미일 것이다. 기를 써서 찍는 자체가 더불어 사는 삶의 강물에 작은 물결이 되는 모양이다. 내가 참석하고 촬영함으로써 시대에 뒤처지지 않고 살아간다는 존재의 기쁨일까. 내년 1월 4일까지 매일 점등식과 빛예술제 전시는 계속된다. 좀 따뜻해지면 손자들과 다시 와야지 생각하고 8시 30분에 시지행 버스를 탔다.
차 안에서 갑자기 재미있게 사는 것이 뭘까? 언젠가 읽은 신문 칼럼이 떠올랐다. 우린 누구나 재미있게 살려고 한다. 근데 사는 것은 원래 재미가 없다고 한다. 재미는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재미있게 살려면 재미에 대한 기초가 필요하다. 작은 악기 하나 연주도 재미를 느끼려면, 일정한 시간이 흘러야 한다. 재미없는 지루한 반복의 고통을 이겨내고 오랜 시간이 지나야 멋진 소리와 함께 성취의 기쁨과 재미를 느낀다. 기쁨과 쾌락은 다를 것이다. 비슷한 도파민 현상이지만 쾌락은 쉽게 얻어지기에 순간적이고, 기쁨은 힘든 노력의 결실이기에 지속적이다. 내가 흘린 땀이 즐거움으로 돌아오면 비로소 재미가 생긴다. 재미와 기쁨은 함께 다닌다. 석양의 나이에는 쉽게 포기하는 경향이 있다. 힘들고 어렵고 귀찮아서 재미를 찾기 어렵다. 때론 그냥 그냥 사는 것도 좋다. 그럴수록 아이의 마음으로 사는 것이 바람직하다. 호기심과 단순함이란 무기로 새로 바라보면 좋다. ‘싱크 어게인’에서 애덤 그랜트는 가장 잘 안다고 하는 것부터 다시 생각해야 새로운 세계를 볼 수 있다고 한다. 뒤죽박죽 잡생각을 풀었다 감았다 하는 사이, 버스는 집 근처 정유소에 얌전히 도착한다. 오늘도 기적의 감사한 날을 보냈다. 고맙습니다.
5. 2026.01.01.(목)
기척도 없이 새해가 열렸다. 몇 년 전까지 새해 일출을 보러 다녔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 다들 가는 데, 나만 가지 않으면 무엇인가 뒤떨어진다는 느낌이었다. 바닷가 일출은 번잡고 힘들어서, 청도 팔조령 정상으로 자주 올라갔다. 올해도 가까운 천을산이나 욱수골로 갈지 망설이다가 접었다. 새해 일출 나들이가 나름대로 의미가 있겠지만, 어느 날 돌아보니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껴졌다. 지난해는 심적으로 힘들었다. 슬픈 소식이 줄을 이었고, 척추협착증으로 건강도 좋지 않았다. 행복과 불행을 많이 곱씹었다. 곰곰 생각하면 둘은 샴쌍둥이처럼 공존하거나, 종이 한 장 차이로 손바닥 뒤집기와 같은 일이다. 별일 없이 사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란 것을 피부로 느낀다. 거창하거나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평범한 하루가 행복이다. P 소설가의 글에서 삶을 마감하기 전 후회하는 일의 목록을 살펴봤다. 대부분 하고 싶었던 일을 못 한 것이 아니라, 간직하고 싶은 추억을 되새기는 일이 많다. 첫째, 너무 일만 하고 살아온 일, 둘째는 사랑하는 가족이나 지인들과 오랜 시간을 함께하지 못한 일, 셋째, 걱정을 너무 많이 하면서 살았던 일이다. 반복되는 지루한 삶을 편안함으로 고맙게 여겨야겠다. 어려움을 다행으로 바라볼 때 진정한 삶이 펼쳐진다고 한다.
병오년 첫날이다. 추위가 대단하다. 종일 영하의 날씨다. 아침을 먹고 범물동에 있는 어머님 집에 갔다. 살짝 문을 여니 반갑게 맞아 주신다. 요양보호사가 보이지 않았다. 오지 않는다는 말이 없었기에 기다리던 어머니가 “왜 안 오느냐?”라고 요양보호사에게 전화하니, 새해 초하루라 혹시 가족들이 올까 해서 오지 않았다고 답이 왔다. 소통이 안 된 상태로 결근이다. 어머니 얼굴은 깔끔하고 정신이 맑으시다. 뵐 때마다 얼굴을 살피는 것이 내 습관이 되었다. 집사람과 잡다한 가족의 안부를 주고받는다. 귀가 잘 안 들려 큰 소리로 대화해야 소통이 된다. 대화에서 빠진 나는 혼자 벽에 걸린 ‘반야심경’ 액자를 보며 눈으로 암송한다. 별일 아니지만 두어 번 암송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새벽마다 어머님이 암송하는 ‘금강경’은 엄두도 못 내지만, 반야심경은 교양 수준이라 입으로 흉내는 낸다. 시 암송을 좋아하는 내 DNA도 어머님께 받은 좋은 유전자이다. 95세. 백수를 향해가는 나이지만 언제나 존경스럽다. 휠체어 도움으로 사시지만, 화장실이나 부엌에는 조심스레 혼자 다니시는 어머님이 고마울 뿐이다. 내가 탈 없이 살아가는 복은 당신의 존재 때문으로 생각된다. 차 조심하라는 어머님의 당부가 늘 마지막 인사다.
목요일은 신매장날이다. 집사람이 카트를 끌고 나선다. 10분 걸리는 멀지 않은 거리라 운동 삼아 혼자 걸어가려고 한다. 근데 날씨가 너무 차다. 갈 때는 빈 카트지만 올 때는 가득 채울 게 아닌가. 자존심으로 속마음은 내놓지 않지만, 같이 늙어가는 처지라 힘들지 싶다. 작년에 개장한 신매시장 주차장 시설이 좋다. 지하 주차장에서 시동을 걸고 함께 가기로 했다. 정월 초하루라 노전은 조용하고 붐비지는 않는다. 장날은 장날이다. 유명한 족발집에 길게 이어진 줄이 세상 살아가는 장날 맛을 보여준다. 카트를 끌고 따라 다니느라 바쁘다. 짐꾼으로 다니는 기분도 괜찮다. 부딪치는 사람 사이로 다니다 보니 어느새 카트가 묵직하다. 사과, 당근, 파, 옥수수, 감자 등 일주일 부식이 가득하다. 부자가 된 기분이다. 혼자보다 둘이서가 아름답고 편하다. 나이 들어서는 작은 일에도 힘들 때 도와주면 서로 기분이 좋아진다.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이다.
늦은 오후에 동구 반야월에 있는 신서화성파크드림아파트로 차를 몰았다. 오래되었지만, 지인이 결혼 예물로 장만해 쓰던 것이라며 가져가라고 연락이 왔다. 깨끗하게 사용한 장식장이다. 차에 실을 수 있을까? 크기를 재어보니 승용차에 억지로 들어갈 것 같았다. 세 사람이 어렵게 뒷좌석에 실었다. 조심스럽게 낑낑거리며 싣고 와 작은방에 정리하고 나서 많은 생각을 했다. 지난해 아들 둘이 아빠를 위해 좀 큰 승용차를 샀다. 나는 전에 타던 현대 소나타가 좋아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거절했지만, 연비는 좋지 않아도 안전이 최고라며 둘이서 작당을 한 결과물이다. 그게 요즘은 종종 짐차가 되었다. 본래 기능이 사람을 싣고 가는 것이지만, 자주 큰 짐을 실어야 하니 좀 그렇다. 무엇이든 필요에 따라 싣고 이동하는 것이 본분이 아닌가 달리 생각하니 괜찮아진다. 모든 것은 사람 마음에 달려있다. 삶의 편리를 위한 승용차가 아닌가. 등소평의 백묘흑묘(白猫黑猫) 이론도 떠오른다. 어쩌다 작은 방은 손자들 책방으로 변신했다. 집사람과 의견이 계속 충돌했다. 내 이론은,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보면 좋다고 하고, 집사람은 그래도 집에 어느 정도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욕심으로 구입한 책이 양 벽면에 가득하다. 읽어야 할 손자가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도서관이 내 서재이고 마트가 내 냉장고라 생각하면 좋지만, 생각이 다르니 어쩔 수가 없다.
새해 첫날부터 허둥지둥 보냈다. 올해는 ‘느리게’와 ‘천천히’를 화두로 삼지만 잘 될지 모르겠다. 제일 힘든 것이 습관을 고치는 것이다. 천성은 바꾸기 힘들어도 습관은 노력하면 고쳐진다. MBTI가 예전에는 ISFJ였는데 최근에는 ESFJ로 바뀌지 않았는가. 내향적인 성격이 노력하니 외향적으로 변했다. 좀 무심하게, 급하지 않게, 한번 생각하고 시작하기, 잘 들어주기, 상대 관점에서 바라보기 등 너무 많아서 체할 것 같다. 바로 실천은 되지 않아도 마음으로 다독이면 언젠가 근처까지 도달하리라. 기적의 하루를 모두에게 감사드린다.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