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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골 화순, 한려의 절경지 여수관광하고 순천 조계산을 넘다.
【재부육삼동우회, 건아산행회, 연육회】
날짜: 2016년 9월 20~21(1박 2일)
동행자 명단: 재부육삼동우회원, 건아산행회원, 연육회 희망자 등 36명.
신원홍, 최달순, 옥숙표, 박숙현, 김동락, 강희선, 신주환, 김정선, 원용선, 옥둘선,
김순년, 옥영선, 옥영숙, 윤영희, 윤옥수, 김경연, 김광선, 옥경숙, 윤순복, 이복선,
원경선, 김봉자, 윤행수, 김월선, 옥치관, 신수덕, 신원철, 서용호, 윤동경, 권혁포,
서태호, 김승희, 유태근, 신원상 (34명)
경유지: 9/20 07:00 거제 수월 출발→ 연초삼거리→ 하청삼거리→ 장목농협 앞→ 08:00 부산 신평 역→ 08:30 동의대역→ 남해고속도로→ 함안 휴게소→ 11:00경 전남 화순 운주사 도착→ 장흥 토요시장(중식)→ 14:00 강진군 망호리 출렁다리→ 이순신 대교→ 여수 진복식당(서대회 게장 정식)→ 자산공원 Cable Car탑승 여수 야경→ 20:00경 여수 우정센타(1박)→ 9/21,07:40경 향일암→ 선암사→ 조계산(884m)등산→ 조계산 보리밥집→ 장안마을→ 松廣寺 주차장도착→ 송광사→ 섬진강 휴게소→ 20:00경 부산 신평 도착 후 해산.
관광 동기- 부산에 거주하는 고등학교 동기들과 고향 친구들 간의 友情 단체인 재부육삼동우회, 그 산하 노후 건강지킴이를 목적으로 만든 자생 모임인 건아산행회원들이 매년 실행하는 가을 나들이를 石器의 遺物倉庫인 화순 지역을 둘러보고 청정해역 多島海 한려수도의 끝자락 麗水와 전라남도의 보물산 조계산과 그 산의 울창한 숲속에 자리 잡고 있는 선암사와 송광사를 다녀오기로 했다.
전라남도 화순- 전남 화순 땅! 도곡면에서 춘양면으로가는 고갯길 “보검재”라는 약 5㎞ 거리의 고개가 있다. 태곳적 무등산 폭발로 생긴 화산재가 굳은 응회암 이라는 돌로 된 石物이 고개 양쪽 수풀사이에 모두 596개의 고인돌이 있었다고 한다. 무덤 祭壇으로 쓰인 고인돌은 채석장까지 갖춘 청동기 흔적에 세월을 초월한 시대의 손길이 남아있다는데 의미 있는 돌덩어리들임이 틀림없다. 2002년 이곳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관광 하지 못한 지역은 “★”표로 표시합니다.】
★화순 적벽(赤壁)- 동북면 동북호반에 있다. 기묘사화 때 화순으로 유배된 신재, 최산두가 중국의 장강에 있는 적벽을 빗대서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물 위로 80m솟은 수직 절벽이 사시사철 아름답고 지금은 동북댐으로 수위가 올라 30m밖에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아름답다고 한다. 최산두도, 정약용도 김삿갓(김병연)도 적벽이 곱고 웅장하다고 한마디씩 읊었다는데 오랫동안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묶여 있다가 2014년 가을에 개방되어 팔도 사람들이 화순을 찾는 이유란다. (매주 수, 토요일만 개방되며 예약이 필수. 관람료 10,000원/人)
★방랑시인 김삿갓(金笠)과 화순- 방랑시인 김삿갓은 적벽의 아름다움에 취해 화순 땅에서 말년을 보냈다는 이야기.
☞김삿갓으로 알려진 김병연은 고향이 경기도 양주라고 한다. 그는 할아버지(김익순)가 홍경래의 난 때 항복한 죄로 집안이 멸족돼 강원도 영월 땅에서 살았다. 어느 날 영월 백일장에서 “김익순의 죄를 논함”의 제목으로 일등을 했는데 알고 보니 김익순이 자기 할아버지였음을 알고는 역적의 가문에 조상을 능멸한 죄책감에 부끄러워 삿갓으로 하늘을 가린 채 팔도를 방랑, 문전걸식하면서 세상을 조롱하고 비아냥거리는 시를 읊으며 다니다가 1841년, 1850년, 1857년 이렇게 세 번을 화순 땅을 찾게 된다. 마지막 6년을 살았다는 구암 마을에 둘째아들 익균이 찾아왔지만 되돌려 보내고는 1863년 구암 마을의 선비 정치업의 사랑채에서 生을 마감하게 된다. 정치업은 김병연의 시신을 거둬 마을 뒷산 無緣固 묘지에 초장(初葬)을 치러줬다. 묘지는 동산(洞山) 혹은 천한 놈들을 묻었다고 “똥 묏등”이라 불렀다고 한다. 3년 뒤 익균이 찾아와 아비의 시신을 거둬 영월 땅에 묻었다. 지금도 화순 구암 마을에는 삿갓의 初葬地 表石과 병연이 숨을 거둔 정씨집 사랑채가 복원돼 있다고 한다.
운주사(雲住寺)- 운주사(運舟寺)라고도 한다. 대한 불교 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말사이다. 창건에 관한 이야기는 도선(道詵)이 세웠다는 설과 운주(雲住)가 세웠다는 설, 마고할미가 세웠다는 설 등이 전해지나, 도선이 창건하였다는 이야기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경내 곳곳에 석불이 서 있고, 바위에 기대고 있고, 땅 바닥에 뒹굴고 있다. 탑마다 있는 기하학적 문양과 원형탑, 북두칠성 배치를 닮은 산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북두칠성바위, 그리고 민짜 석불 등 최근에는 이 절이 불교가 아니라 도교사원이라는 주장도 나왔다고 한다. 佛像들의 손 모양이 부처상이 가진 수인(手印)과 전혀 다르고 탑의 배치와 문양이 천문학적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역시 화순의 돌 문화와 관련 된 듯 하다.
건물은 대웅전과 요사채, 종각 등이 있다. 1942년까지는 석불 213좌와 석탑 30기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석탑 12기와 석불 70기만 남아 있다. 크기는 10m 이상의 거구에서부터 수십cm의 소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매우 투박하고 사실적이며 친숙한 모습이 특징이다. 에는 절 좌우의 산등성이에 1,000여개의 석불과 석탑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1980년 6월에는 절 주변이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장흥 토요시장의 먹거리 삼합- 장흥 한우 할인판매장에서 삼합구이(한우, 키조개, 표고버섯)로 점심식사. 한우고기를 할인구매 해서 인지 가격은 저렴한 편이었으나 맛은 여행자들의 시장기에 밀려 독특하지는 않은 편이었다. 대부분이 아침식사를 거른 상태에 운주사의 와불(누워있는 부처)까지 돌아보고 나와 시장기가 있을 때 였다.
강진 가우도의 망호리 출렁다리- 가 보고 싶은 섬 “가우도”(강진읍 보은산이 소의 머리에 해당되고 섬의 생김새가 소의 멍애에 해당된다 하여 가우도(駕牛島)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에 육지와 이어진 출렁다리가 설치되어있다. 자동차 통행이 되지 않을 정도의 바다 위 다리를 건너 “가 보고 싶은 가우도”의 산책로를 따라 한 바퀴 둘러보는데 휴일 아닌 평일에는 탕탕이 낙지장사도 휴무였다. 이 섬은 강진군의 8개 섬 가운데 유일한 有人島로 14가구 31명의 주민이 거주한다고 함.
자산공원⇒돌산공원 Cable Car탑승- 서대회 무침에 돼지삼겹살 수육을 곁들여 간단한 나물 비빔밥으로 저녁식사를 마치고는 자산공원에서 돌산공원으로 바다위로 이어진 케이블카를 타고 빛 공원과 여수의 야경을 한눈에 감상하다.
여수 우정 교육센타 1박- 건아산행회 옥숙표 총무님 부부께서 주선하여 마련한 여수 우정교육센타의 숙소. 여수 도심에 아담하게 지어진 건물에 각종 편의 설비들이 여행에 지친 우리들을 별 불편사항 없이 하룻밤을 지내게 해 줬다.
향일암(向日庵)- 향일암 주차장에서 절까지 오르는 가파른 돌계단, 아름드리 편백나무 군락이 절의 역사를 말해주는 듯한 向日庵. 南島의 바다 위로 촛불을 켠 듯 어둠을 밝히는 향일암의 日出은 그야말로 장관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나이에 걸맞게 여행을 하다 보니 전날의 피로가 새벽 기상에 지장을 주었다. 태양의 아름다움은 눈이 시리도록 바다를 바라보게 만든다는 향일암의 앞 바다는 옅은 海霧에 가려져 있었다. 기암절벽을 올라 거침없이 탁 트인 남도의 바다를 눈 아래로 내려 보는 일출은 일상적인 아침과는 다른 하루를 열어준다고 하는데 그 순간을 보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여수시내에서도 바다를 향해 한참을 달려가 만나는 향일암은 돌산읍의 최남단의 바위틈새에 자리 잡고 있었다. 삼국시대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며 관음 기도의 도량으로도 유명하다. 신라의 고승이 백제의 영토였을 남도의 끝자락에 사찰을 세우게 된 緣由는 알 수 없다. 절묘하게 이어지는 바위통로를 따라가는 길은 가슴이 툭 터지는 듯한 절벽 사이 넓은 자리에 대웅전이 자리 잡고 있었다. 관음보살과 하늘에 소원을 祈願하는 사람들은 대웅전 주변 바위 위에 작은 돌이나 거북 머리에 동전을 올려놓고 기도를 한다. 그래서인지 거북 머리와 납작한 돌 위에는 빈자리가 없이 동전이 자리 잡고 있다. 바람결에 흔들리며 지치지 않고 울려대는 풍경소리는 山寺의 정적(靜寂)을 깨뜨린다. 대웅전 뒤편으로 숨은 듯 작은 바위 틈새 길을 따라가니 바다를 바라보고 자리 잡고 있는 관음전이 있었다. 종교를 떠나 모든 이들이 소망하고 바라는 바를 너른 바다처럼 넉넉한 마음을 담아 바래 보자고 堂 밖에서 合掌 三拜를 올렸다.
향일암 입구 임포마을에서는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었는데 따뜻한 초가을 햇살 아래 꼴뚜기와 꼬막조개 살을 말리는 모습과 돌산에서 생산된 갓으로 만든 갓김치에 막걸리 맛은 여느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다른 진풍경이었다.
조계산(曺溪山)- 높이 884m. 송광산(松廣山)이라고도 한다. 소백산맥의 전라남도 쪽 말단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광주의 무등산(無等山), 영암의 월출산(月出山)과 삼각형을 이루고 있는 산이다. 산 전체가 활엽수림으로 울창하고 수종이 다양하여 전라남도 채종림(採種林)으로 지정되어있다고 한다.
☞순천 조계산 道立公園에는 두 곳의 유명한 사찰(松廣寺와 仙岩寺)이 있다. 동쪽 斜面에는 선암사(仙巖寺), 서쪽 斜面에 송광사(松廣寺)가 있으며, 이 두 사찰은 조계산을 사이에 두고 서로 반대편에 위치하고 있어 여행자들이 어느 사찰을 먼저 봐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고 한다. 굳이 나누어 보자면 송광사가 男性美가 물씬 풍기는 사찰이라면 선암사는 女性스럽고 포근한 사찰이라 할 수 있다는데, 수려한 자연경관과 함께 1979년 12월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계곡은 울창한 수림으로 덮여 있을 뿐만 아니라 비룡폭포(飛龍瀑布)와 같은 이름난 폭포도 있다. 조계산이라는 이름도 조계종(曹溪宗)의 중흥도량 산으로 되면서 송광산에서 改稱된 이름이라고 한다.
우리 일행은 선암사에서 출발하여 송광사를 탐방하기로 하고 소 시절 순천 부근에서 공직생활을 했던 서용호 회원의 서투른 안내를 토대로 조계산을 올랐다. 가파른 산행로는 올라도 올라도 정상고개가 나타나지 않는다. 힘들어 하는 여자회원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옥치관 건아산행회장이 뒤처지는 일행들을 부축하여 고개위에까지 간신히 도착한다. 적지 않은 나이가 힘든 산행에 대해 한번쯤 교훈을 주는듯했다.
선암사(仙岩寺)- 태고종의 본산으로 조계산 동쪽 斜面, 순천만으로 흐르는 이사川의 상류 계곡에 자리 잡고 있으며 수많은 국보급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는 절이다. 선암사는 백제 성왕 때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창건하였다 하며, 현재는 선교양종(禪敎兩宗)의 대표적인 가람으로 조계산을 사이에 두고 松廣寺와 쌍벽을 이루는 사찰이다.
승선교(昇仙橋)- 선암사 경내에 이르는 길의 조계산 계류에 놓인 승선교(昇仙橋)는 하나의 아취로 이루어진 石橋로 보물 제400호로 지정되었으며, 강선루(降仙樓)와 어울린 그림 같은 모습은 선암사를 상징한다는 돌다리(石橋)이다.
☞선암사삼층석탑은 보물 제395호이며, 그 밖에 300년 된 산철쭉과 영산홍 등의 아름다운 꽃밭, 가을의 단풍과 겨울의 설화도 일품이라고 한다.
조계산 속의 보리밥 집- 조계산 중턱에는 등산객들의 시장기를 채워주는 보리밥집이 몇 군데 있다. 이들은 서로 맛 자랑을 하여 초행길의 등산객들은 어느 집이 맛으로 이름난 집인지 모른다. 주말에는 이곳을 지나는 행인들이 많아 영업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으나 평일에는 등산객들이 많지 않아 영업시간도 짧고 빨리 길손들이 끊어져 우리 일행 20명이 취사하기는 밥이 모자라 권혁포 산대장이 일찍 도착해서 주문, 간신히 잡곡밥에 시래기 국으로 허기를 매웠다. 얄팍한 파전과 도토리묵도 시장기를 채우기에 한 몫
송광사(曺溪山 松廣寺)- 송광사는 신라 말 혜인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맨 처음 이름이 “吉祥寺”였다고 한다. 조계산 정상을 넘어 도착한 송광사는 조계산 서쪽 진입로에 있는 사찰로 우리나라 3보 사찰의 하나로 조계종 叢林이 있는 사찰이라고 한다. 또한, 천연기념물 제88호인 곱향나무 쌍향수가 천자암 뒤쪽에 있고 송광사 일대는 연산봉을 비롯하여 여러 봉우리가 병풍처럼 둘러서 절경을 이루고 있어 송광사 내팔경(內八景)과 외팔경(外八景)이 정해져 있을 정도이다. 송광사 지역의 별미는 산채(山菜)라고 할 수 있으며 절기상 곡우(穀雨)를 전후하여 마시는 고로쇠약수가 유명하다고 한다.
☞叢林이란- 선원, 강원, 율원, 염불원 등을 모두 갖춘 사찰을 말하는 것으로 우리나라에는 송광사를 비롯해 해인사, 통도사, 수덕사, 백양사 등 5개의 叢林이 있다.
이중 우리나라 전통 불교를 계승한 3보 사찰이 바로 합천 해인사, 양산 통도사,
그리고 조계산 송광사 다.
돌(石)골 화순, 여수의 절경과 순천의 조계산을 정복하고 와서- 평소 호남 쪽이 살아있는 자연이 많아 가 보고 싶은데다 石器文化의 고장 화순, 특히나 해상 국립공원인 한려수도의 끝 쪽 여수를 직접 가 보기는 처음이다. 조계산속의 송광사는 2013년 재부육삼회의 가을관광인 완도 여행 시 잠시 돌아본 기억은 있으나 여수의 야경, 향일암의 절경과 어우러진 풍경소리, 880고지가 넘는 조계산을 완주한 여행은 칠순에 접어든 친구들의 체력단련에는 다소의 무리가 따른듯했다. 적지 않은 인원이 다행하게 아무 탈 없이 여행을 마치게 되어 주선한 책임자로서 마음 뿌듯하다. 이틀 동안 대략적으로 22㎞의 도보에 32,000보의 발자국을 옮겼으니 적지 않은 체력 소모를 하고도 다음날 새벽4시30분 초인종 소리에 깨어 봇짐을 챙겨 06:00KTX 편으로 서울로 향했다. 10:00~12:00까지 근처 복지관에 나가 서예연습을 하고 파김치가 된 듯한 몸으로 휴식. 쇼파에 기대 지긋이 눈을 감고는 이틀간의 종적을 더듬으며 휴식을 취했다.
2016. 9. 25.
작성자: 신 원 상(在釜 六三會 總務, 健娥山行會員, 延六會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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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역시 기행문의 대가 답습니다. 조계산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 납니다. 파이팅!
無常世界로다. 기러기 행렬(雁行)처럼 줄지어 날아 가 봅시다.
상세하게나열한기행문잘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