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길 고운걸음에서 제가 첫 진행을 맡아 선택한 길은 조선왕조 600여 년과 근현대 100여 년, 700여 년의 역사를 품고 있는 경복궁 서촌-수성동계곡-윤동주 시인의 언덕-창의문-백사실 계곡-북악하늘길-성북동을 거쳐 혜화문에 이르는 길이었습니다. 이 길은 역사와 명품 숲길이 연속적으로 만나고 교차하는 곳, 역사에 물들고 명품 숲길의 향기에 취해 함께 걷기에 딱 좋은 길이었습니다.
저는 길을 걸으면서 그 길의 역사와 인물의 흔적을 찾는 것을 좋아합니다. 어느 길이든 사연없는 길이 있겠는가요? 어느 길이든 사람의 흔적이 없겠는가요? 길을 걸으며 역사를 더듬고 사람의 흔적을 찾는 것, 길을 걷는 또 다른 묘미이자 교훈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경복궁 서촌부터 북악산을 거쳐 성북동 혜화문까지 여정을 선택한 것입니다.
13일 토요일 오후 1시 경복궁역에 모여 힘찬 여정을 시작합니다. 삼계탕으로 유명한 토속촌을 지나 통의동 우리은행 앞에서 세종대왕 나신 곳 표지를 보고 잠시 타임머신을 타고 일제강점기로 들어갑니다.
여기는 참 묘한 곳입니다. 일제하 한국현대시를 대표하는 이상, 노천명, 윤동주가 살았던 곳이죠. 물론 청전 이상범, 남정 박노수, 맞은편 통의동 추사 김정희 생가 등 역사적 인물이 많은 곳입니다.
골목길 입구의 통인동 이상이 머문 집을 지나 누하동 노천명 시인의 집을 거쳐 누상동 윤동주 시인의 일본 유학 전 머문 하숙집이 묘하게 한 길로 이어져 있습니다. 이상은 천재시인으로, 노천명은 친일시인으로, 그리고 윤동주는 저항시인으로 그 삶과 궤적이 전혀 다름에도 가까운 공간에서 한시대를 공유했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로울 정도였습니다. 길에 잠시 서 있노라면 광기의 천재시인 이상이 하늘을 보며 껄껄 웃는 모습이, 자그마한 키에 새침한 표정의 노천명이 슬쩍 옆눈질을 하면서 종종 걸음을 걷고, 창백한 얼굴의 고뇌하는 지식인 윤동주가 고게를 푹 숙이며 사색하며 지나가는 듯 합니다.
시에 문외한이라 시인을 논할 수는 없어도 일제하 3인의 행적은 나라잃은 시인에게 역사가 얼마나 가혹한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이상(1910-1937)은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졸업한 후 곧바로 총독부 내무국 건축과 기사로 취직합니다. 총독부에 근무했으니 집 근처이죠. 본명은 김해경인데 일본인들이 리상으로 부르는 바람에 필명을 이상으로 한 괴짜이자 천재적 풍모의 시인입니다. 이상은 저항시인은 아니었지만, 건강이 안좋은 상태에서 결혼과 함께 일본에 유학중 일제에 불령선인으로 검거돼 옥고를 치르는 등 건강이 악화되어 동경에서 병사합니다.
여류시인으로 일찍이 두각을 나타낸 노천명(1912-1957)은 한국현대사의 축소판이며 그 가녀린 몸으로 감당하기 힘든 비극을 맞이합니다. 노천명은 신문사에 다니다 일제 말기에 그만 일제에 협력하는 오점을 남깁니다. 해방 이후 죄책감에 시달린 그녀는 일시 좌파 경향의 문인들과 어울리는 등 사상적으로 방황합니다. 한국전쟁이 터지자 피난도 못가고 그 일로 친북이라는 누명으로 옥고를 치르게 됩니다. 시대의 폭력앞에 한 개인의 운명이 이렇게 까지 망가질 수 있는지 너무 비극적이고 그 자체가 소설적인 삶이었습니다. 독신으로 가난과 회한속에 57년 12월 46세의 생을 마감합니다. 어쩌면 그녀의 대표작 <사슴>은 시인의 자화상이었는지 모릅니다.
최근에 제작된 윤동주 하숙집 터 표지판
윤동주 시인에 대해서는 감히 논할 수는 없고, 시인은 1938년 이곳에서 하숙을 하면서 인왕산 자락에 오르내리면서 시상을 다듬고 시를 지었다고 하더군요. 이 때 쓴 <자화상>에는 전쟁에 광분한 일본 군국주의가 단말마적 발악을 하는 속에서 식민지의 지식인이 겪어야 했던 고뇌와 갈등이 짙게 배어 있다고 합니다. 윤동주의 고뇌가 많아질수록 언덕에 올라가는 일이 많아졌겠죠. 거기서 그는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일본 유학으로 떠납니다. 쿄토 도지샤대학에 다니다 치안유지법에 의해 체포되고 일종의 생체실험을 당해 해방을 앞둔 1945년 2월 29세의 나이로 절명합니다. 종로구는 인왕산 자락에서 자하문으로 넘어가는 그곳에 윤동주문학관을 지었습니다.
박노수 화백은 원래 구한말 친일파인 윤덕영의 집을 1972년 매입한 이래 2013년까지 사시고 서거 전에 건물과 작품을 종로구에 기증해서 지금의 종로구립미술관으로 재탄생합니다. 사실 박노수 화백의 작품도 예술성이 높지만, 건물 자체가 구한말부터 일제하 여러 다양한 건축양식이 혼재된 것이라 건물 자체가 역사적 문화사적으로 주요한 측면도 있습니다. 박노수 화백은 누하동에 살았던 동양화가 청전 이상범 화백의 제자입니다.
박노수미술관을 지나 수성동계곡에서 잠시 쉽니다. 이곳은 겸재 정선이 한국적 진경산수화로 웅장하고 힘차게 <인왕제색도>를 그린 무대이기도 합니다. 수성동계곡을 나와 인왕산 숲길을 따라 윤동주시인의 언덕을 갑니다. 인왕산 숲길, 웬만큼 걸으신 분들도 입구를 몰라 잘 알려지지 않은 보석 같은 길, 많은 분들이 감탄할 정도로 좋은 길입니다. 그 길을 지나 일제하 식민지청년이 고뇌했던 길, 그 고뇌가 깊은만큼 주옥같은 작품이 나온 길을 천천히 걸어 윤동주문학관을 들러 한양 북서쪽 4소문의 하나인 창의문을 지나 부암동 백사실 계곡으로 갑니다.
웅혼한 인왕산의 기상이 잘 드러나는 수성동 계곡.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 무대
백사실 계곡은 백사 이항복 별장터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길은 원래 “도심속의 비밀정원”으로 걷기 꾼들에게만 알려진 이른바 ‘족보있는 길’이었는데 1박2일로 알려지고, 최근에는 ‘인간의 조건’ 촬영장과 가까워 오히려 수난을 받는 곳입니다. 그런데 사실 백사실 계곡도 좋지만 이곳은 가까이 안평대군의 무계정사가 있고 구한말 최고의 별장이라 불린 안동김씨 소유 석파정이 있는 곳으로 안평대군이 안견에게 꿈속에 도원(桃園)을 보고 그리라고 했던 한국적 산수화의 원형 <몽유도원도>의 배경이 됐던 곳입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걸은 길은 <인왕제색도>와 <몽유도원도>가 그려진 최고 멋진 곳이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백사실 계곡이 있는 부암동 일대는 북악산과 인왕산이 만나는 곳, 한양도성 4개의 산 중 주산인 북악산과 왕기가 서려 있는 인왕산 두 곳이 만나는 지점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5월 가뭄이 극심한 때, 후덥지근한 날씨에 갑자기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집니다. 저녁에 비 예보는 있었지만, 막상 한참 걸을 때 빗방울이 떨어지니 긴장됩니다. 그런데 워낙 후덥지근하고 가뭄 걱정에 빗방울에 개의치 않으시더군요. 그래서 계속 겉기로 했습니다. 만약 비가 더 왔다면 백사실계곡에서 원통사를 지나 세검정으로 빠지는 짧은 길을 선택했을 것입니다.
백사실 계곡에서 북악 팔각정으로 올라가 북악길을 내려옵니다. 멋진 숲길, 전망좋은 북악길을 따라 성북천 발원지를 거쳐 성북동에 내려오는 순간 경복궁 서촌만한 엄청난 역사적 무게를 느낍니다.
심우장 앞 만해공원.
일제강점기말 지조를 지키고 민족의 장래를 염려한, 해방 1년 전 돌아가신 만해 한용운 선생의 심우장을 시작으로 조전 최고의 갑부로 일본과 해외로 흩어지고 약탈당하는 문화재를 지키려고 전 재산을 걸고 문화재를 수집, 보관한 보화각(지금의 간송미술관)을 세운 간송 전형필 선생, 국가적으로 양잠을 장려한 선잠단지, 그리고 골목길 하나를 두고 한국미의 원형을 제시하고 확대한 최순우 선생의 옛집 등을 지나갑니다. 그냥 가기에는 너무 아쉬운 길이었지만 경복궁 서촌부터 시작된 역사기행, 해설이 많아지고 많은 분들이 참여하셔서 시간이 쫒겨 그냥 지나쳐야 했습니다. 예정된 시간 5시 30분을 훌쩍 넘겨 6시 10분 최종 목적지인 혜화문으로 갑니다.
오늘 걸은 길은 경복궁 서촌부터 시작 인왕산 숲길, 윤동주 시인의 언덕, 백사실, 북악 팔각정, 성북동길, 그리고 와룡공원을 지나 혜화문이었습니다. 한양도성 주산과 우백호인 북악과 인왕, 4소문 중 창의문과 혜화문, 경복궁 서촌과 성북동길의 엄청난 역사의 무게와 다양한 인물, 그리고 멋진 숲길이었습니다.
저의 첫 진행에 많은 분들이 힘을 보태주셨습니다. 우리길 가장 젋은 오빠이신 중협님께서 커다란 축하케잌을 보내주셨고, 그래이거다님은 포크와 접시를 가져와 축하무대를 빛내주셨습니다. 산오름님은 발목 부상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완주하시면서 북악정에서 축하의 아이스크림을 돌리셨고, 고요바다님은 뒷풀이 식사 때 축배를 위해 막걸리 골든벨을 울려주셨습니다. 애월님은 식사 후 후식을 위해 커다란 수박 한통을 선뜻 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자운영님은 초보 진행자를 위해 일일총무로 궂은 일을 대신해 주셨습니다. 많은 분들이 격려와 축하, 그러다 보니 길이 좀 길었어도 전혀 힘들지 않게 걸은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감사한 분들은 초보 진행자를 믿고 함께 해주신 분들입니다.
다음 좋은 길에서 뵙겠습니다.
낙화는 유수처럼
세종대왕 탄신지 표지석
서촌의 대표적 명소 대오서점
서촌 입구의 이상이 3살부터 23살까지 살았던 집. 2009년에 문화유산국민신탁이 첫 보전재산으로 매입하였으며, 재단법인 아름지기가 관리·운영합니다. 현재 이상 관련 문화공간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아직도 박노수 화백의 문패가 걸려 있네요.
옥인동 박노수가옥이 종로구립미술관으로...
미술관 입구. 2015년부터 유료화돼서 정원 조차도 관람료 내고 들어가야 해서 정원 사진을 올립니다.(자료사진)
남정 박노수 화백의 작품도 예술성이 높지만, 건물 자체가 건축사적으로 가치가 높은 곳입니다.
수성동 계곡 위는 청계천 발원지
걷기좋은 숲길입니다.
사람들의 발길이 덜한 인왕산 숲길.
윤동주 시인의 언덕 밑 윤동주문학관.
윤동주 시인의 언덕, 뒤에 보이는 산이 북악산 밑이 청와대
윤동주문학관 맞은편에 있는 창의문. 비교적 원형을 많이 보존한 사소문 중의 하나입니다.
백사실 계곡 가는 길의 표지판, 일종의 아이콘 역할을 합니다.
백사실 계곡 입구 어느 건물에 걸려있는 김용택 시인의 시
북악산 성곽이 가장 멋지게 보이는 산모퉁이카페. 커피프린스1호점 무대라 더 유명한 곳이죠.
<인간의 조건> 촬영장으로 유명한 게스트하우스
신록 무성한 백사실 계곡 입구.
백석동천. 해석은 분분하지만 백석은 북악산을, 동천은 신선이 사는 곳을 가리키는 말이니 백석동천은 '북악산에 있는 경치 좋은 곳'이란 뜻쯤 됩니다. 다른 해석으로는 중국의 명산인 ‘백석산’에서 이름이 비롯되었다고 내려오는데 이는 신선이 사는 땅이라는 뜻으로써 그 안에 들어서면 신선이 된다고 하네요. 어쨌거나 오늘 하루만큼은 신선이 된 것 같네요.
북악산 숲길
명품숲길입니다.
북악산에서 성북동 쪽으로 내려오는 길
걷기도 좋은 길
북악산 길이 멋진 것은 1968년 1.21 사태 이후 2007년가지 금단의 땅이었기 때문
북악산의 유래
북한산 밑 평창동 일대입니다.
역사가 비껴간 곳, 그러나 역사를 많이 품은 성북동 일대
만해 한용운 선생
간송미술관 입구
민족문화의 보호를 위해 전 재산 뿐 아니라 신명을 바친 간송 전형필 선생을 생각합니다.
선잠단지
와룡공원을 지나고
성북동은 물 맑고 경치가 좋지만 돌과 바위가 많아 농토가 없고 시장이 멀어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 영조 때 한양내 각 시장에서 파는 포목의 마전권을 이곳 주민에게 주어 생활토록 배려했다고 해서 마전터가 된 것이라고 하네요.
여정을 마무리 하기 좋았던 혜화문. 여기서부터 동대문 낙산성곽길이 이어집니다.
|
첫댓글 아직도 여운이 남아있는..경복궁 서촌.이상.노천명.박노수 화백.윤동주 시인의 하숙집.언덕 .수성동 계곡.백사실 계곡이.이항복의 별장터인것도 처음알고.많은것을 보고느낀!행복하고.즐거운 도보길 열어주시고 고품격 해설도 ..낙화유수님~첫리딩 다시 축하드리고 더운날씨.수고하셨습니다~담길에서 뵐게요~~^^
토욜 오후에 반갑게 만나 700년을 신선이 되어 걸었던 길을 다시 걷습니다ᆢ명품길에 명품리딩자와 명품후기가 있어 즐거운 아침입니다ᆢ 수고하셨고 감사합니다^^
이야기 글 다시 읽으니 놓친 부분을 알수 있어 좋으네요ㅎ
뜨고 있는 서촌의 어느 카페에 앉아 여유를 부리고 싶었든 충동은 저뿐만은 아닌듯 했어요ㅋ
걸으면서 들려주시는 사연들이 맘에 와 닿는 뜻깊은 시간였습니다
첫 깃발 흠잡을데 없이 흡족했습니다ㅎ
감사 또 감사드리며 이야기가 담겨있는 도보~옆지기와 즐겨 찾도록 찜해 두렵니다^^&
명품 길에,명품 사연에,명품 해설에,명품 후기에,명품 사진....
명품 리더에,명품 길동무까지...
우아!! 이렇게 좋은.. 많은 명품들이 다 "No charge!!"
낙화유수님 첫 리딩길...마음속 깊이 새깁니다...
수고 하셨고 감사 합니다...
plus 제월당님의 명품 댓글 ^^
이길은 바삐 스치듯 걷는 길이 아니고 여유를 갖고 시간을 거슬러 역사와 길위에 담긴 이야기를 듣고 보며 걸어야 하는 길인듯 ᆢ
낙화유수님만의 차별화된 도보길이 기대됩니다
숨가쁘게 설명하시고
멋진풍경과 님들의 모습 담으시고ᆢ길 안내하시며
1인3역 하신 낙화유수님
수고에 깊은 감사드립니다
첫 리딩 기념으로 준비하신 장미한송이까지 맘써주신 그 배려에도 감사드립니다ᆢ
첫리딩을 장미꽃으로 단장하고 이야기가 있는 명품길을 걷게 해주신 낙화유수님 고맙습니다
700여년의 역사가 살아숨쉬는곳 그 명품길을 우리길 회원님들과 함께하였네요!!
서촌길을 걸으며 낙화유수님의 해설이 더해져 현대시를 대표하는 이상,노천명,윤동주
그분들의 고뇌를 생각하며 잠시 발길이 멈추고...
더위와 열기가 달아오를 즈음 백사실계곡에 다다르니 숲이주는 청량함과 피톤치드가 또 우리를 편안하게 해주었지요ㅎ
그날 귀가하여 사실은 다음날 아침까지 반은 기절하였지만 뿌듯하고 기분좋은 여운은 저뿐만이 아닌 함께하신
모든 회원님들의 같은 느낌이라 여겨집니다!!
배낭뒤에서 펄럭이는 첫 깃발,,, 너무 멋지셨구요 정말 수고많으셨습니다 감사드려요 ..^^
덕분에 공부많이 하고 왔습니다
다시한번 첫리딩축하드리고 토요산행 공지부탁드려요
good~~~~
perfect 명품후기네요
갔던곳 곳곳을 사진으로까지 올려주셨으니 이보다 더 완벽할수없네요~~~
오늘은 댓글까지 명품입니다..
낙화님의 수고에 정말정말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많이 아끼고 사랑하는 길이었습니다.
얼굴이 상기되도록까지 최선을 다해 해설해주는 모습 참 멋졌습니다.
글구 낙화님팬이 이렇게 많은줄 몰랐네요~~ ㅋ
낙화유수님의 첫 리딩길이 명품숲길과더블어 역사가 살아숨쉬는 길이여서 더욱 좋았습니다 직접 해설까지 해주시니 감사했습니다
장미꽃이 오늘도 활짝 웃고있네요~~
인왕산 입구까지 여러 유적을 지나며 찬찬히 둘러보지 못한 아쉬움을 여기서 여기서 채웁니다.
수고 감사드립니다.
도보여행 사람들은 낙화유수님의 맛갈진 사진과 글로 절로 유식해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