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소동 2014년 1월 합평회 후기
‘스토리 소동’의 합평회는 하루가 연기되어 어제 2014년 1월 25일(토) 11시 30분에 안국역 근처에 있는 ‘장자의 나비’라는 식당에서 열린다고 공지되었습니다.
저는 일찌감치 삼전동에서 대치역 가는 3012번 버스를 탔습니다. 버스는 대치역 1번 출구 앞에서 멈췄고 거기서 내려 바로 전철을 탔습니다. 안국역에서 내리니 밖에 비가 오는지 사람들이 우산을 들고 다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마침 안국역 6번 출입구 계단 입구에서 우산을 팔고 있는 할아버지가 보였습니다. 3천원을 주고 비닐우산을 샀습니다. 빗줄기는 제법 굵었습니다. 우산을 쓰고 6번 출구로 나와서 뒤로 돌아서 5 미터쯤 가니 오른 쪽으로 골목이 있었습니다. 골목을 따라 들어가니 낡은 집들이 양쪽으로 늘어서 있었고 담벼락과 전봇대 등에 작은 안내판들이 붙어 있었습니다.
골목을 돌아가서 ‘장자의 나비’에 마침내 도착했습니다. 낡고 작은 가정집을 개조한 한식당이었습니다. 출입구의 귀여운 장식용 석가래 위에 아기자기한 기와를 올리고 ‘장자의 나비’라는 굵은 글씨가 써진 현판이 붙어 있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오른쪽으로 작은 주방이 보였으나 인기척이 없었습니다. 합평회 멤버 아무도 오지 않은 듯 했습니다. 시계를 보니 11시 15분. 기다리는 동안 골목 안을 살펴볼 생각으로 밖으로 나갔습니다. 우산을 쓰고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습니다. 작은 골목은 이리저리 구부러져 있고 담장과 전봇대를 비롯한 곳곳에는 주점과 찻집 그리고 식당을 알리는 많은 안내판들이 붙어있어 이곳이 만만치 않은 유서(由緖)가 있는 예인들의 회합 장소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서울 한 복판에 이런 멋스러운 곳이 있다는 사실, 제가 이곳에 오게 되었다는 사실에서 뿌듯함이 느껴져서 우산을 쓰고 피우는 담배 맛이 좋았습니다. (담배를 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지나갔습니다. 왔던 골목길을 되돌아 나가는 도중에 중년의 여자 둘이 우산을 쓰고 오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합평회 멤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담배를 다 피우고 다시 식당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현관 입구에서 주인으로 보이는 곱상한 여자는 저를 보더니 경상도 말씨로 인사를 하고 방의 한 구석으로 안내했습니다. 과연 그곳에는 방금 골목에서 본 두 여자 분이 식탁 앞에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서로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한 분은 ‘가면무도회’를 쓴 박서영 작가님, 다른 분은 박 작가님의 친구라고 했습니다. 방안에는 여기저기 고서화와 방패연 등이 걸려 있었고 제가 앉은 자리의 건너편 벽의 구석에 ‘장자의 나비’라는 시가 담긴 액자가 걸려 있었습니다. 주방 쪽으로 가서 보니 한쪽 구석에 가야금을 비롯한 제가 이름을 모르는 현악기들이 놓여 있었습니다. 정확히 11시 30분에 청곡 안휘 작가님이 현관에 들어섰습니다. 묵향이 물씬 풍기는, 문인들의 모임 장소로 적격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제가 안 작가님에게 어떻게 이런 곳을 알고 계셨는지 묻자 안 작가님은 김순진 작가님의 단골집으로 벌써 몇 년째 이곳에서 만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 뒤로 김순진 ‘문학공원’ 발행인이 도착했고 한참을 지나서 한 남자분이 도착했는데 나중에 이성수 작가님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12시경에 합평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안 작가님의 ‘가을 야상곡’이 합평에 올랐습니다. 무식하고 용감하게 신인인 제가 먼저 발언을 했습니다. 서두에 '장자'의 '소요유(逍遙遊)' 중 한 구절을 인용하여 작가로서 많은 지식을 축적해야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다는 제 견해를 밝힌 다음 준비해간 합평작 인쇄물을 꺼내 놓고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솔직히 중견작가의 작품을 신인인 제가 평가한다는 부담이 컸지만 소신껏 읽고 느낀 대로 자료에 쓴 메모를 보면서 발언을 했는데 중간 중간에 안 작가님과 김순진 작가님의 반론이 나왔습니다. 저는 주인공의 남편이 주인공을 옛 애인에게 돌려보내는 행동에 대해서 현실적인 개연성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그리고 제목 ‘가을 야상곡’은 옛 애인과의 재회가 예상되는 주인공보다는 오히려 남편의 입장에 더 어울리지 않느냐고 (이별, 고독) 평했습니다. 그러나 주로 문법 그리고 앞 뒤 문장과 상황(콘텍스트)의 적의성 여부에 집중했고 작품의 전체적인 구도와 작품성에 대한 평가는 제대로 하지 못한 콘텍스트에 편향된 비평이었습니다. 그만큼 저의 작품성에 대한 총체적인 인식 역량이 부족하다는 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셈이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안 작가님의 반론이 시작되었습니다. 저의 세밀하고 열성적인 지적은 인정하면서도 지적 대부분을 수용할 수 없다면서 하나하나 반박했습니다. 안 작가님은 저의 무지와 몰이해를 신랄히 짚어냈습니다. 안 작가님은 다만 작자의 의도와는 달리 어떤 독자는 그렇게도 볼 수 있겠다는 정도로 받아들인다고 말했습니다. 과거에 합평을 할 때 저의 반응이 연상되었습니다. 다음으로 김순진 작가님 역시 제가 열심히 지적한 것은 좋으나 신인이 기성작가의 글을 ‘함부로’(무엄하게) 건드리는 것은 자제하라는 ‘따끔한’ 충고를 했습니다. 저는 사실 이런 반응을 예상은 했습니다. 다른 분들은 극히 비평을 자제하는 모양새였습니다. 물론 그것이 중견 작가의 작품에 대해서 마땅한 태도이겠으나 제 성격대로 솔직한 제 생각을 있는 그대로 말했던 것뿐입니다.
다음으로 저의 ‘도망자’가 올려졌는데 안 작가님이 채찍을 들었습니다. 첫마디가 이 작품을 제 등단작인 ‘잔상’ 이전에 썼는지 여부를 물었습니다. ‘잔상’ 이전 작품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안 작가님도 그렇게 생각했다고 하면서 ‘잔상’도 마찬가지이지만 ‘도망자’의 메시지가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윤 작가는 더 플롯 공부를 해야 한다는 돌 직구를 날렸습니다. 아팠습니다. 맞는 너무나도 맞는 말씀이었기에……. 그러면서도 이런 솔직하고 아픈 말씀 한 마디를 듣기 위해서 나왔고 중견 작가님에게서 이런 가혹한 매를 맞아야만 내가 발전할 수 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안 작가님이 참 고마운 분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 작품에서는 주제가 모호하다는 점, 문장이 지나치게 늘어져 있고 지루하다는 점, 쓸 데 없이 묘사에 치중되어 있다는 점이 집중적으로 지적 되었습니다. 그 밖에 다른 분들의 비평도 이어졌는데 대개 같은 내용이었습니다. 여러분께 감사 드립니다. 합평 도중에 멀리 양평에서 여성작가 한 분이 도착했는데 나중에 통성명 하고 보니 이영(본명 이성준) 작가님이었습니다.
마침내 격렬한 합평이 끝나고 막걸리와 한식이 나왔습니다. 이영 작가님의 걸쭉한 입담으로 즐거운 자리가 이어졌고 2시 30분 경 김순진 작가님과 이성수 작가님은 3시에 독립문 역 근방에서 개최 예정인 ‘스토리 문학관 2013년 작가상 수상식 겸 2014년 신년 인사회’ 준비 차 먼저 자리를 떠났고 남은 사람들도 잠시 후에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단편소설집 ‘치와와 실종되다’로 ‘스토리 문학관’ 2013년 대상 수상자로 선정된 안 작가님이 식대를 계산했습니다. 안재휘 작가님께 감사의 말을 남깁니다.
일행이 전철을 타고 독립문역에서 내려 3시 경에 ‘서대문 독립공원’ ‘무궁화 홀’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북적거렸습니다. 주로 중장년 이후의 남녀들로 홀은 만원이었고 어린이들도 눈에 띄었습니다. ‘스토리 문학관’ 소설부문 신인상 수상자 정영택 작가님과 그의 가족을 만나 함께 자리를 지켰습니다.
여러 문인들의 인사말과 시상 그리고 공연이 끝나고 5시 조금 넘어 모든 행사가 끝나고 공원 건너편 골목에 있는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서 회식을 했습니다. 저는 7시 30분 경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의미 있고 즐거운 하루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첫 참석이었음에도 열심히 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열성적인 모습에서 희망을 봅니다.
누구든, 열심히 쓰고 더 열심히 고치는 게 왕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