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 이래 최대 사업'으로 힘차게 출발했던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사업이 출범 6년 만에 파산 위기에 놓였다. 31조 원 규모의 개발 사업이 59억 원의 이자 비용을 막지 못해 벌어진,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개발 사업의 중심인 코레일이 15일 서울시와 코레일의 영향력을 대폭 강화하는 정상화 방안을 발표하고 서울시도 이에 적극 화답했지만, 갈 길은 여전히 멀다.
넘어야 할 난관은 한둘이 아니다. 당장은 이번 개발로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는 서부이촌동 주민들의 생활을 정상화하는 숙제를 풀어야 한다. 서부이촌동은 개발 대상 포함 여부를 두고 6년 동안 지난한 갈등에 시달렸다. 이 난관을 넘어서더라도 풀어야 할 문제는 많다. 무엇보다, 제대로 된 개발이 가능할 것이냐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다. 급랭하는 부동산 경기로 인해 코레일이 당초 그린 장밋빛 미래를 현실로 만들 수 없으리라는 지적이 여러 전문가들 사이에서 공통적으로 나오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프레시안>은 김경민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를 만나 문제의 근본 원인을 짚어보고, 앞으로 이 사업이 나아갈 방향을 조망했다. 김 교수는 2011년에 낸 책 <도시 개발, 길을 잃다>에서 일찌감치 이 사업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견했다. 당시 김 교수는 용산 개발 사업에서 제대로 된 시행사(디벨로퍼)의 기능을 찾기 힘들었고, 공공성이 무시됐으며, 근본적으로 사업성 자체가 부족하다고 비판적으로 진단했다.
21일 오후 5시 서울대 교수연구실에서 만난 김 교수는 특히 서울시와 민간 투자자들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물론, 박원순 시장에게도 이번 일에 큰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김 교수는 강조했다. 지금은 개발 사업을 밀어붙일 때가 아니라 책임 소재부터 명확히 따져야 할 때라는 게 김 교수의 지적이다.
김 교수는 다양한 해외 개발 사례를 들며, 지금이라도 서울시 산하에 도시재개발청을 신설해 개발 사업의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국 사회의 다양한 노력이 있다면, 용산국제업무지구는 어떤 식으로든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는 애정 어린 충고도 제시했다. 다음은 김 교수 인터뷰 전문.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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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민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그는 미국 생활 후 귀국한 고국의 수도에서 일어나는 대대적 개발 사업에 충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용산국제업무지구의 경우, 출발부터 잘못된 사업이었다고 단언했다. ⓒ프레시안(최형락) |
드림허브 자체가 문제였다
프레시안 :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이 김 교수 예견대로 파국으로 달려가고 있다. 서부이촌동 주민은 개발을 찬성하는 이와 반대하는 이로 완전히 갈려 있다. 피해가 갈수록 커지는 이런 문제는 어디서 시작됐을까?
김경민 : (원인이) 너무 다양하다. 먼저 민간 디벨로퍼(시행사)의 부재를 들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개발 사업을 총괄할 전문적인 부동산 회사가 없다. 사정이 이러니 큰 개발 사업이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산이나 신용을 보고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실현되지 않은 사업의 수익성을 보고 투자하는 금융 기법) 형태로 이뤄진다. 용산의 경우 드림허브프로젝트금융투자(드림허브PFV)다. 그 조직 아래에 사업을 실제로 감독할 AMC(Asset Management Company, 자산 관리 회사)가 있다. 용산은 용산 역세권 개발이다. 송도국제업무단지 개발에는 AMC에 크게 3개 회사가 들어왔다. 여러 회사의 이해가 충돌할 수밖에 없다. 이 싸움에서 가장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게 건설사다.
프레시안 : 용산국제업무지구의 경우에도 초기에는 삼성물산이, 그 후에는 롯데관광개발이 주도적 역할을 했다.
김경민 : 거의 항상 건설사가 디벨로퍼 역할을 한다. 건설사와 디자인 회사, 엔지니어 회사가 뭉쳐도 보통 규모가 가장 크기 마련인 건설사가 주도하게 된다.
프레시안 : 건설사 주도로 인해 어떤 이해 충돌이 일어나나?
김경민 : 디벨로퍼는 땅값과 공사비를 무조건 깎아야 한다. 그리고 나중에 비싼 값으로 팔아야 한다. 디벨로퍼에게 이익은 나중에 얻게 되는 개발 수익이고, 공사비와 건물비는 비용이다. 반면 건설업자의 경우 건설 비용이 매출이다. 따라서 건설 회사는 건설 비용을 늘려야 수익을 올릴 수 있다.
그런데 디벨로퍼가 건설사다? 이해 충돌에 따른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런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 국내 대형 개발 사업에서 일관된 형태로 나타난다. 바로 용적률 상승이다. 용적률을 높이는 만큼 건설비가 늘어나니까. 정말 바보 같은 짓이다. 제대로 된 디벨로퍼라면 새로운 건설 계획을 짜서 획기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대부분 용적률 높이기에만 집착한다. 용산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나타났다.
이런 이익 충돌은 소규모 회사 그룹에서도 나타나는데, 용산에는 무려 30개 회사가 모였다. 말썽이 안 날 리가 없다.
프레시안 : 애초 드림허브PFV의 조직 구성 자체가 문제였다는 지적이다.
김경민 : 저뿐만 아니라 도시 개발을 공부한 사람은 누구나 '말도 안 되는 구조'라고 말할 것이다. 경영은 '스피디해야 한다'고 하지 않나. 특히 부동산은 더 그래야 한다. 경기 변동이 빠르기 때문이다. 분석은 철저하게 하고, 결정이 되면 빨리 움직여야 한다. 그런데 30개 회사가 모여서 어떻게 빠른 결정을 내릴 수 있겠나. 전문 디벨로퍼가 없었다는 것, 이 사태의 가장 큰 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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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이촌동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 12평형 주택이 전세 3000만 원에 불과하다. 일찌감치 이 지역이 주민 의사와 상관없이 개발 대상지로 묶이면서 주민 피해만 커졌다. 서울시가 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김 교수는 강조했다. ⓒ프레시안(최형락) |
"오세훈은 물론, 박원순 시장도 책임져야 한다"
프레시안 : 실패의 다른 원인은 어디서 찾을 수 있나.
김경민 : 서울시 잘못이 크다. 오세훈 전 시장 인터뷰를 봤다. '주민 동의가 57%였다. 그러므로 정당한 사업 결정이었다'? 책임을 망각한 발언이다. 서울시가 2007년 8월에 (서부이촌동) 지역을 (코레일 부지와) 묶었다. 그러면 묶인 다음날부터 거기 사는 사람들의 부동산 거래는 중지된다. 장사도 안 된다. 2007년에 집을 묶은 다음 2008년에 얻은 동의에 무슨 의미가 있나?
정말 제대로 된, 책임 있는 자리에 있던 사람이라면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 예를 들어 2006년에 이미 주민 57%가 개발에 동의했고, 2007년에 (서부이촌동을) 묶었다고 해도 모자랄 판이다. 그래도 반대가 무려 43%다. 동의를 얻는 과정에서 서울시 직원이 주민에게 '동의해주세요' 한 것도 아니다. AMC 직원들이 '보상이 얼마다' 해서 잘못된 정보로 꾀고, 꾀고, 꾀어서 얻은 결과다. 그렇게 동의를 얻은 게 57%밖에 안 된다. 이 사람(오세훈 전 시장), 책임을 제대로 물어야 한다.
프레시안 : 지금은 책임을 물을 때가 아니고, 사태를 수습할 때라고 한다.
김경민 : 사업을 빨리, 원활하게 해야 한다? 그게 아니고 지금 빨리 책임을 물어야 한다. 어떤 사람이 잘못해서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보고 있다면 보상을 해 줘야 하는 것 아닌가. 오세훈 전 시장의 책임이라고 언급했지만, 결국 서울시 정부의 이름으로 서부이촌동을 개발 구역으로 지정했다. 그러면 (오 전 시장에 이어 당선된) 박원순 시장이 책임져야 한다.
사실 박 시장도 직무 유기했다고 본다. 왜 사업을 잘못한 회사에 공짜로 서울시 재산을 주나? 박 시장이 지금 굉장히 잘못하고 있다. AMC로부터 받을 것 받고, 잘못한 것에 대해 책임을 물은 다음 지원해도 된다. 그에 앞서 주민들 피해에 대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박 시장이 시민운동의 대부라는 사람 아닌가. 저는 이 부분(주민 피해 보상이 없는 것)에 대해서 화가 난다.
서울시가 시민에게 피해를 줬다. 그리고 개발 과정에서 할 일도 하지 않았다. 도시 개발에서 가장 해결하기 힘든 문제가 토지 보상이다. 용산처럼 대규모 개발은 특히나 더 그렇다. 공신력이 있는 서울시가 나서서 (주민 동의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해줬어야 한다. 민간 디벨로퍼에서는 정리하기 힘들다. 민간이 와서 '개발에 동의하면 1억 준다'고 하면 나라도 '2억 달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모든 주민이 이렇게 나오게 된다. 그러면 사업이 제대로 나아갈 수 없다.
즉, 서울시가 뒷짐만 지는 바람에 이 사업에 엄청난 부담을 줬다. 서울시는 솔직하게 나서서 잘못을 반성해야 한다.
프레시안 : 디벨로퍼의 경우 피해자이지만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
김경민 : 그렇다. 디벨로퍼는 피해를 봤지만 책임도 크다. AMC는 2007년, 이미 위험을 감수하고 이익을 얻기 위해 이 사업에 들어왔다. 부동산은 고수익 사업이다. AMC는 투자 실패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한다. 그런데 책임을 안 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회사가 망하면 감자(자본 감축)에 들어간다. 그런데 AMC에 참여한 기업은 1조 원 투자하고 사업이 실패했는데도 1조가 고스란히 남기만 바란다. 왜 그런 자들에게 서울시가 인센티브를 주나? 제일 먼저 AMC에 감자를 시켜야 한다. 그래야 그 다음에 새로운 투자가 들어와 사업을 순항시킬 수 있다.
프레시안 : 문제가 있는 AMC를 그대로 두면 안 된다?
김경민 : 절대 안 된다. 법적인 것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서울시와 AMC의 책임은 명확히 물어야 한다.
용산역에서 서부이촌동까지 걸어가면 엄청나게 멀다. 땅도 약간 기울어 있어 통합 개발을 할 수 없다. 뉴욕의 배터리 파크 시티(Battery Park City) 개발 사례가 있다. 용산과 개발 지구 크기가 비슷하다. 그런데 세계의 수도라는 뉴욕의 이 땅도 개발하는 데 40년, 50년 걸렸다. 지난 2008년 내가 방문했을 때도 아직 빌딩이 올라가고 있었다.
더구나 이미 서울에는 중구와 강남구, 여의도, 디지털미디어시티 등 4개의 오피스 타운이 있다. 그런데 용산에 또 만든다? 경쟁하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 과연 그 공간을 다 채울 수 있겠나? 강남을 보라. 강남 오피스 타운 800만 제곱미터(㎡) 물량이 다 차는 데 20년이 걸렸다.
그런데 용산을 10년 안에 개발한다? 정신 나간 짓이다. 그것만 봐도 AMC가 얼마나 문제가 있는지 알 수 있다. 도시 개발을 하나도 모르는 사람들이 건드려 놓았다.
용산 해법, 재개발청 만들고 단계적으로 개발하라
프레시안 : 용산 개발 사업의 필요성도 없었던 것인가?
김경민 : 그건 아니다. 부채가 있고 유휴 부지가 있으면 할 수 있다. 일본철도(JR)도 역세권 개발 한다. 코레일이 가진 용산 땅이 굉장히 좋다. 개발을 잘하면 반드시 이익이 난다고 생각한다. 다만 제대로 된 플랜(계획)을 가지고 했어야 했다. 코어(중심부)부터 개발을 조금씩, 단계적으로 진행시켜야지, 이곳저곳 주변을 다 묶어서 한꺼번에 하는 건 불가능하다. 배터리 파크 시티 개발도 월스트리트가 있는 곳의 쌍둥이 빌딩부터 단계적으로 진행했다.
프레시안 : 핵심부를 정하고, 거기서 개발을 시작해 주변으로 넓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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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수는 지금과 같은 '원주민 밀어내기식' 재개발 피해를 막기 위해 시청마다 재개발청을 설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레시안(최형락) |
김경민 : 그렇다. 지금 문제가 되는 상암디지털미디어시티(상암DMC)를 보자. 겉으로 보면 훌륭하다. 그런데 이곳은 한 번에 개발을 끝내고, 구역을 쪼개서 분양했다. 3만 명이 일하는 도시인데, 새벽까지 운영하는 상가가 몇이나 될 것 같나? 단계적 개발을 하지 않았을 때 생기는 문제점이다.
장소성이라는 게 있다. 그 장소의 역사가 쌓이고 쌓여야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이 생긴다. 용산도 단계적 개발을 하지 않으면 상암DMC 꼴 난다.
프레시안 : 지나간 일은 안타깝지만, 지금은 출구 전략을 마련해야 할 때다. 크게 두 가지를 고려해야 할 것 같다. 이 개발 자체를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고 서부이촌동 주민 피해는 어떻게 할 것인가?
김경민 : 주민 피해 보상에 대해서는, 저는 정말 모르겠다. 제가 섣불리 얘기할 게 아니다. 다만 피해 보상은 당연히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작업만 해도 굉장히 지난할 것이다. 앞으로 엄청나게 복잡한 일들이 벌어진다. 서울시나 지역 주민이 지혜를 모아가야 한다.
프레시안 : 결국 개발을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인 듯하다.
김경민 : 앞서 내가 조직이 문제라고 했다. 공공 측의 조직과 민간 측의 조직, 둘 다 필요하다. 공공 측에서는 먼저 용산재개발청부터 만들어야 한다.
프레시안 : 특별 기관을 둬야 한다는 것인가?
김경민 : 아니다. 상시 기구다. 미국이나 유럽은 도시마다 작은 재개발청이 있다. 그리고 민간 디벨로퍼가 있다. 민간이 와서 어느 땅을 개발하고 싶다고 하면 재개발청이 인허가 심사를 한다. 그 과정에서 공공과 민간이 딜(협상)을 한다. '저소득층 지역이니 저소득층이 이용하는 문화 시설을 넣어라', '임대 아파트를 만들어라'는 요구를 공공이 하면, 민간은 계산을 해보고 '이 정도까지만 가능하다'는 식으로 답을 한다. 이런 딜을 거쳐 개발 계획이 확정된다. 이게 해결되면 이제 전문 디벨로퍼가 알아서 개발한다. 그 과정을 재개발청이 단계마다 감시한다.
재개발청은 토지를 이용할 권한, 개발을 허용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개발 후 지속 가능한 발전을 담보하기 위해 경제 기획을 할 수 있는 권한도 가져야 한다. 이런 재개발청은 시의 간섭을 받지만 자체적으로 움직인다. 전문적인 부동산 전문가, 디벨로퍼, 경제 기획가 등이 모이는 전문 기관을 키워야 한다.
서울에는 이게 없다. 이렇게 큰 땅에서 (민간업자에게) '당신들이 알아서 하세요' 하는 게 끝이다. 그리고 AMC가 망가지니 돈을 쥐어주는 식이다. 이런 나라가 세상에 어디 있나.
프레시안 : 민간 디벨로퍼는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
김경민 : 건설업자들이 직접 시행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 전문 디벨로퍼를 키우는 방법에 정답은 없다. 다만 한 가지 방법은 제안할 수 있다.
용산 사태가 보여주듯, 도시 개발 계획이 일방적으로, 메가스트럭처(거대 구조물)를 집어넣는 것으로 갈음이 되는 시대는 끝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네 수준에서 조그마한 재개발 사업은 계속 일어날 것이다. 그러면 지역 커뮤니티에 맞는 디벨로퍼가 생겨날 수 있다. 상대적으로는 영리 추구에 덜 민감한, 이른바 '논 프로핏(비영리)' 디벨로퍼가 생겨날 수 있다. 정부는 이 지점에 주목해야 한다. 미국에는 비영리 디벨로퍼가 굉장히 많다. 디벨로퍼의 가장 큰 자산은 경험이다. 비영리로 시작하는 영리 디벨로퍼 회사들이 클 수 있는 플랫폼을 정부가 갖춰줄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성공 사례도 나오고 있다. 개발 사업 중 가장 힘든 게 쇼핑몰이다. 디벨로퍼는 다양한 경우의 수를 다 고려해야 한다. 그런데 영등포 타임스퀘어나 신도림 디스퀘어는 성공 사례다.
초고층 빌딩에 집착하는 이상한 서울
프레시안 : 용산 문제의 출구 전략을 마련하기 위해 서울시 산하에 제대로 된 도시 개발 전담 조직부터 갖춰야 한다고 했다. 기존에는 공공성이 부족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김경민 : 당연하다. 오세훈 전 시장 때는 비용만 많이 들여 대형 개발을 하고 이를 공공으로 포장했다. 아니다. 공공성은 없었다. 수상 터미널 앞에 공원 짓는다고 공공성 살리는 게 아니다. 이를테면 아파트를 다 지으면 분양하지 않나. 그러면 거기는 그 사람들 놀이터이지, 서울 시민에게는 혜택이 가지 않는다.
제대로 된 공공성이라고 하면, 가장 중요한 건 개발에서 나온 이익이 서민들에게 가느냐 여부다. 다시 배터리 파크 얘길 하겠다. 그곳은 원래 매립지다. 그래서 저소득층을 쫓아낼 일은 없었다. 그러나 뉴욕 비정부기구(NGO)들이 시 재원이 들어가는 사업이니, 여기서 나오는 이익의 일부를 저소득층 임대 아파트를 짓거나 시민 주거 환경 복지 개선을 위해 쓰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뉴욕시가 그렇게 했다.
서울이 뉴욕과 같은 도시를 따라가려면 초고층 빌딩을 지을 필요가 없다. 이런 공공 마인드를 배워야 한다. 진정한 공공성을 고민해야 한다.
프레시안 : 이명박·오세훈 두 전임 시장 시절 서울은 개발 사업에 유난히 집중했다.
김경민 : 사실 서울만큼 매력적인 도시가 없다. 그런데, 서울의 경쟁 도시가 과연 싱가포르인가?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다. 아름다운 자연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역사성도 없다. 이런 도시가 하는 일이 초고층 빌딩 짓기다. 내세울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다.
서울이 그런가? 볼 게 얼마나 많나? 외국 관광객이 와서 보고 싶어 하는 장소에 타워팰리스가 들어갈까? 63빌딩? 아니다. 그들은 남산, 서울숲, 명동, 동대문, 인사동, 북촌과 같은 곳으로 간다. 남산, 서울숲은 자연 자원이고, 명동이나 동대문은 현대적인 자원이다. 북촌, 인사동은 외국인들이 봤을 때는 오래된 전통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면 서울시가 고민해야 할 곳이 어딜까? 중간에 빠져 있는 근대 도시 자원이다. 그런데 화려한 개발 사업에만 치중하니 중요한 근대 자원인 가리봉동, 구로공단도 다 사라지고 있다.
프레시안 : 근대적인 자원을 활용해 새롭게 도시의 가치를 높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김경민 : 여러 가지 자원을 활용할 수 있다. 전 세계 어디에도 낙원상가처럼 악기상이 밀집한 곳이 없다. 동숭동처럼 연극하는 사람들이 모인 동네도 없다. 홍대는 어떤가. 이런 곳들이 다 문화적 가치를 지닌 중요한 장소다. 왜 이런 장소 부수고 초고층 빌딩 지으려 하나? 그러면 외국인들이 좋아하나? 서울 시민이 좋아하나?
단적인 예가 시카고다. 과거 19세기 말에 대화재가 나서 도심이 굉장히 황폐해졌다. 그러자 미국의 슈퍼스타 건축가들이 고층 건물을 많이 지었다. 그러나 시카고에 건물 보러 가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서울이 공공성을 찾고 매력적인 도시로 거듭나고자 한다면, 돈을 빌딩 짓는 데 쓰지 말고 소프트웨어, 즉 문화적인 가치를 높이는 데 투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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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국제업무지구의 화려한 꿈은 근본부터 흔들리고 있다. 사업성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은 이 사업은 시민의 가슴에 큰 상처를 남기게 됐다.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진은 드림허브PFV가 제시한 용산국제업무지구의 청사진. ⓒ뉴시스 |
시민의 각성이 필요하다
프레시안 :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이 좌초하면서 '고층 빌딩의 저주'가 회자되기도 한다. 김 교수도 같은 시각인가?
김경민 : 나는 잘 모르겠다. 다만 초고층 빌딩은 공사 비용이 엄청나게 올라가는 사업이다. 따라서 수요 예측을 잘 해야 한다. 수요가 많다면 초고층 빌딩 지어도 된다. 그러나 서울의 오피스를 사용하는 산업의 성장세가 이미 정체돼 있는데, 그 정도 수요를 일으킬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부동산 경기 분석을 제대로 하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프레시안 : 용산국제업무지구는 물론이고, 특히 최근 서울 도심 개발 사업에 정치적 고려가 많이 들어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청계천 사업으로 성공한 전례가 있으니 타당한 지적으로 보인다. 이런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으리라고 본다. 정치가의 욕망을 제어할 수 있는 방안이 있을까?
김경민 : 시민의 각성이 필요하다. 뉴욕에 펜역(Penn Station)이라는 곳이 있었다. 굉장히 아름다운 건물이었다. 그런데 시가 1960년대 초반에 없앴다. 뉴욕 시민은 무관심했다. 일부 건축가들, 도시 계획가들만 항의했었다.
그런데 그 아름다운 건물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사각형의 멋없는 건물이 들어선 것을 보고야 뉴요커들이 깨달았다. '우리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인가' 하고 말이다. 그 이후 뉴욕에서 역사 자원 보존 운동이 시작됐다.
시에서 말도 안 되는 개발 사업을 주도적으로 시행한다면, 시민들이 결국 목소리를 내야 한다. 서울시청 옛 청사의 경우, 그 정도로 아름다운 근대 건물이 없다. 그런데 현대적이라고는 하지만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 신청사 건물이 들어섰다. 그 과정에서 서울 시민들이 모두 침묵했다. 앞으로 각성하지 않으면 그런 일들이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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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 이래 최대 사업'은 어쩌다 사기극으로 전락했나
[벼랑 끝 '용산' ②] 서울시가 문제 키워…출구 없는 용산
기사입력 2013-03-22 오전 9:56:54
'단군 이래 최대 사업'으로 힘차게 출발했던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사업이 출범 6년 만에 파산 위기에 놓였다. 31조 원 규모의 개발 사업이 59억 원의 이자 비용을 막지 못해 벌어진,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개발 사업의 중심인 코레일이 15일 서울시와 코레일의 영향력을 대폭 강화하는 정상화 방안을 발표하고 서울시도 이에 적극 화답했지만, 갈 길은 여전히 멀다.
넘어야 할 난관은 한둘이 아니다. 당장은 이번 개발로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는 서부이촌동 주민들의 생활을 정상화하는 숙제를 풀어야 한다. 서부이촌동은 개발 대상 포함 여부를 두고 6년 동안 지난한 갈등에 시달렸다. 이 난관을 넘어서더라도 풀어야 할 문제는 많다. 무엇보다, 제대로 된 개발이 가능할 것이냐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다. 급랭하는 부동산 경기로 인해 코레일이 당초 그린 장밋빛 미래를 현실로 만들 수 없으리라는 지적이 여러 전문가들 사이에서 공통적으로 나오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프레시안>은 무능으로 점철된 이번 개발 계획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서부이촌동을 찾아보고, 이 사업의 문제가 어디에서 비롯됐는지를 되짚어본다. 이에 더해 전문가 진단을 통해, 용산 개발 사업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해법을 모색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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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이촌동은 느닷없이 개발 대상에 포함된 후 해답 없는 어둠으로 가라앉았다. 19일 한 주민이 개발 반대 현수막이 걸린 아파트 단지 앞을 지나가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
시행사 드림허브프로젝트금융투자(드림허브PFV)가 공중 분해되는 최악의 상황은 벗어났다. 21일 업체의 반응을 종합하면, 드림허브PFV의 건설 투자자 대표사인 삼성물산이 사업 정상화를 위해 랜드마크 빌딩 시공권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코레일이 지난 15일 제시한 사업 정상화 방안을 민간 투자자들이 수용한 신호로 해석된다. 이에 따라 최악의 시나리오인 '6월 최종 부도 처리 후 파산' 사태는 넘어섰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여전하다. 문제의 뇌관인 서부이촌동 주민의 반발은 쉽게 넘어서기 어렵다. 차가운 부동산 경기 전망을 이들이 극복할 길도 요원하다.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은 산소호흡기만 달고 버티는 상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서울시의 잘못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하락 가능성이 예상된 부동산 전망을 무시하고 무리하게 대형 개발을 추진한 투자자들의 무책임한 태도도 사태에 불을 붙였음이 분명해 보인다.
서부이촌동이 포함된 이유
당초 이 개발 사업은 철도청에서 공사로 전환한 코레일의 부채 해결을 위해 추진됐다. 전환과 함께 4조5000억 원에 달하는 막대한 부채를 진 코레일은, 이를 해소하기 위해 2005년부터 옛 철도정비창 부지 146만498제곱미터(㎡) 개발 계획을 세웠다. 2006년 말에는 자체적으로 역세권 개발 사업자 공모에 나서기도 했다.
그런데 2007년경, 서울시가 이 사업 확장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당시 서울시장은 2006년 당선된 오세훈 대륙아주 고문변호사였다. 결국 오 전 시장의 정치적 핵심 카드였던 '제2차 한강르네상스계획' 발표 한 달 후인 2007년 8월 17일, 서울시와 코레일은 철도정비창 부지 일부에 서부이촌동을 포함한 통합 개발 계획 사업을 확정했다. 코레일 소유 부지 사업이 민간 소유 지대 개발 사업과 맞물리면서, 좌초의 불씨가 생겨난 순간이다.
뒤는 일사천리였다. 서울시는 그해 8월 30일을 이주 대책 기준일로 정하고,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대상지를 토지 거래 허가 지역으로 설정했다. 이에 따라 이날 이후 이 지역 주택을 구입한 사람이나 세입자는 개발 이후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됐다. 자연 거래는 중단됐다. 집값이 떨어지니 임대 가격도 하락했다. 임대로 먹고사는 이들의 생계가 무너졌다. 이에 더해, 시간이 지나면서 상권이 몰락하기 시작했다. 이곳에 들어온 상인들의 생존 줄이 끊겼다.
같은 해 11월 3일에는 삼성물산-국민연금 컨소시엄이 사업 시행자로 선정됐다. 12월 30여 개 기업이 출자한 드림허브PFV와 실제 개발 업무를 지휘할 용산역세권개발이 출범했다. 총 31조 원을 투입해 사업 부지 56만6800㎡에 초고층 빌딩을 포함한 대형 오피스 상권을 개발하는, '단군 이래 최대 사업'이라는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계획이 본격 출발했다. 이 과정에서 서부이촌동 주민의 의견은 단 한 번도 반영되지 않았다.
왜 서부이촌동이 꼭 들어가야만 했을까. 이 지역의 입지를 확인하면 알 수 있다. 서부이촌동은 철도정비창 부지와 강변북로 사이에 위치해 있다. 이 지역 대형 아파트가 한강 조망권을 차지하고 있다. 오 전 시장의 한강르네상스계획은 도심과 한강의 접근성을 강화한다는 게 핵심이었다. 그 중간에 떡하니 자리한 서부이촌동의 아파트는 한강르네상스계획의 걸림돌로 여겨졌을 것이다.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이 예정대로 완성된다면, 서부이촌동 부지는 공원으로 바뀌고 수상 터미널 근교의 주거 지역으로 변한다. 새롭게 들어설 고층 빌딩의 한강 조망권이 확보된다.
더구나 상대적으로 노후한 지역인 서부이촌동이 개발된다면, 용산은 전자상가-서부이촌동-동부이촌동-이태원1동-한남동을 잇는 거대 상권을 거느린 서울의 노른자 땅으로 성장 가능하다. 강 건너 강남 상권에 버금가는 금싸라기 땅을 완성하는 데 서부이촌동 개발은 필수적이었다. 조망권이 다시 열린다는 소식은 개발업자들의 군침을 돌게 할 만했다. 실제 감정평가액이 3조8000억 원이었던 철도정비창 땅값은 서부이촌동이 개발지로 묶인 이후 8조 원으로 올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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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이촌동이 포함된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대상지를 나타낸 그림으로, 2007년 8월 17일 서울시가 밝힌 이 지역 시설 배치 계획이다. 그림에서 광역 터미널 인근의 학교 및 공공시설, 문화시설, 주거 복합, 공원 부지가 서부이촌동이다. 서부이촌동을 뚫음으로써 지역 땅값은 크게 치솟았다. 물론 재산권이 졸지에 제한된 주민은 수년째 난데없이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서울시 제공 |
서울시가 끼어들면서 문제가 커졌다
박원순 시장이 얼마 전 시의 책임을 인정하기 전까지, 서울시는 여태껏 "민간 개발에 서울시는 관여하지 않는다"는 태도를 취해왔다. 오 전 시장 역시 자신의 책임을 묻는 언론의 질문에 이와 같은 태도를 취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한국일보>가 2007년 8월 8일 열린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회의록을 입수해 18일 보도한 내용을 보면, "당초 코레일에서는 서부이촌동은 시가 부담해 개발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시가 의지적으로 포함시키라고 해서 간 (통합 개발을 추진한) 것"이라는 증거가 나온다. 서울시의 의지가 확고했다는 뜻이다.
서울시가 발주해 2009년 나온 한강 주운 용역보고서를 보면, 서울시는 2020년까지 "한강이 도시의 경계(edge)가 아닌 중심(center)으로서 역할을 하도록 한강에 인접한 중심지를 집중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그 중요한 핵심 사업부로 용산을 꼽았다. 더 자세히는 "용산 부도심을 국제업무지구로 육성하고 한강변까지 확장하여 워터프론트 타운 조성 및 서해 주운의 거점(국제여객터미널 설치)으로 조성"하겠다는 게 서울시의 목표였다.
용산 부도심이 한강변과 맞닿기 위해서는 철도정비창 부지를 넘어 서부이촌동까지 개발되는 게 필수적이다. 실제 보고서는 "철도공작창 부지 및 이촌아파트지구 일부를 통합 개발하여 용산공원 및 한강과 연계"하는 게 핵심이라고 설명한다. 서울시가 장기 전략으로 서부이촌동을 포함한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을 능동적으로 설계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김상철 진보신당 서울시당 사무처장은 서울시가 "그동안 용산 개발 사업에서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을 해 왔다"며 "서울시가 코레일이 추진하던 철도정비창 개발 구상안 공고를 중단시키고, 그 후 서부이촌동을 합친 통합 개발안을 확정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코레일이 철도정비창 부지만을 개발하기로 한 2006년에는 서울시가 이 지역 개발에 반대했다. 용적률이 지나치게 높아 주변 교통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이유였다. 2007년 3월에도 서울시 도시건축공동위원회의 지적에 코레일은 사업자 공모를 취소했다. 그러나 불과 5개월 후, 서부이촌동이 포함된 개발 계획에 서울시와 코레일이 손을 잡는다.
민간 소유 부지가 개발 대상이 됐다. 직접 이해관계자가 코레일 하나에서 2200여 세대 거주민으로 늘어났다. 이 중에는 당시 기준으로 입주 5년밖에 되지 않은 새 아파트 거주민도 포함됐다. 주민 반발이 일어난 건 당연했다. 2007년 10월부터 아파트 거주민들은 수차례 항의 시위를 이어갔다.
그러나 서울시는 사업을 밀어붙였다. 애초 개발 대상에 지역을 포함시켜 거래를 묶은 후, 동의 여부를 묻는다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 더구나 거주민은 개발 동의를 구하는 과정에서 온갖 협박이 난무했음을 증언한다. 북한강성원아파트 거주민 임영재 씨는 "반대는 묻지도 않았다. '동의하느냐'만 물었다. 반대하는 거주민들에게 깡패 같은 사람이 여러 차례 찾아왔다. 우리 아파트에 선생님이 한 분 계신데, 학교로도 그런 사람이 찾아와 '개발에 동의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실제 이 지역 주민들의 개발 찬성률은 논란 초기에는 오히려 개발 반대 의견보다 저조했다. 2009년 제출된 주민 의견 2800여 건 중 통합 개발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1600여 건에 달했다.
주민 반발이 거세자, 관련 법까지 개정됐다. 인과관계를 확증하기는 어렵지만, 도시개발법 개정으로 인해 서부이촌동 통합 개발이 쉬워진 건 사실이다. 도시 개발 과정에서 민간인이 소유한 토지를 강제로 수용할 수 있는 조건은 당초 소유자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만 가능했다. 그런데 2007년 3월 이 기준을 2분의 1로 완화하는 내용의 개정안이 국회에 상정돼, 한 달 만에 개정됐다.
오 전 시장이 "서부이촌동 통합 개발에 대한 최종 주민 동의율이 57.1%였다"며 서부이촌동 개발이 주민들의 뜻에 따라 확정됐다고 해명할 수 있었던 원인이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법은 주민의 사유재산권을 지나치게 침해할 수 있는 무리한 수준의 내용을 담고 있어, 그 자체로 문제라는 지적이다.
김상철 사무처장은 "주민의 절반이 개발에 반대해도 강제 수용이 가능하다는 뜻"이라며 "당장 서부이촌동에서 문제가 커진 것처럼 설사 주민 동의가 제대로 이뤄진다 하더라도 피해자들의 반발을 넘어서기가 어렵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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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이촌동 진입로에서 바라본 옛 철도정비창 부지. 아직 이곳에는 시멘트 한 부대도 쏟아지지 않았다. 개발이 지연되면서 도시는 황량하게 변했다. ⓒ프레시안(최형락) |
순항할 수 있을까
숱한 논란에도 2009년 7월에서 8월 사이 서부이촌동이 개발 구역으로 지정된다는 공람 공고 절차가 진행됐다. 이어 같은 해 12월 3일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는 서부이촌동을 포함한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구역을 확정했다. 이듬해 4월 22일 관련 절차는 최종 확정됐다.
그러나 밀어붙이기로 일관한 이 사업은 결국 실패를 향해 치닫고 있다. 2011년 일찌감치 이 사업의 실패를 공언한 김경민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도시 개발, 길을 잃다>에서 서부이촌동을 개발 대상에 편입한 게 이 사업 실패의 결정적 원인이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프레시안>과 한 인터뷰에서 "지금은 사업 시행을 이야기할 때가 아니"라며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에게 제대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 인터뷰 전문은 기획 3편에 실릴 예정이다. <편집자>)
부동산 경기가 급랭하고 있었는데 사업이 현금 확보 없이 진행된 것도 실패의 원인이다. 드림허브PFV는 불과 1조 원의 출자금으로 설립돼 31조 원짜리 사업을 추진했다. 보유 자본이 취약한 상황이니, 세계 금융 위기에 따라 부동산 경기가 내려가자 이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결국 드림허브PFV는 2009년에는 코레일에 토지 매각 대금조차 제대로 납부하기 힘든 지경으로 내몰렸다.
근본적으로는 단 10여 년 만에 여의도 절반 크기의 대규모 오피스 단지를 세우려 했던 이 사업 자체가 허황됐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김 교수는 "통합 개발 자체가 불가능하다. 용산국제업무지구와 비슷한 크기인 뉴욕의 배터리 파크도 건립에 40년 넘게 걸렸다. 강남 상권도 개발에 20년이 걸렸다"며 "도시 개발의 기본도 모르는 사람들이 멋들어진 조감도만 가져다 놓고 말도 안 되는 사업을 추진했다"고 비판했다.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전반에 걸쳐 공공성을 찾기 힘들다는 점은 큰 문제다. 일부 주민은 개발이 확정될 경우 높은 수준의 보상을 받으리라는 기대를 걸고 있다. 실제 서부이촌동 안에서는 '입주권이 주어진다'는 등의 근거를 찾기 힘든 말이 나돌고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아직 드림허브PFV는 제대로 된 보상 기준을 명문화한 적이 없다.
드림허브 측이 최대 30억 원의 보상금을 주겠다는 홍보물로 주민들의 개발 동의를 받아냈으나, 이는 극히 과장된 홍보에 불과하다. 서울시가 팔짱만 끼고 있는 사이, 속임수만 지역에 횡행했던 셈이다.
김 교수는 "특히 공공 조직이 주도하여 계획안을 입안하고 개발을 진행할 예정이라면 계획의 목표, 즉 시민들에게 어떤 공공의 이익이 돌아갈 것인가를 명확하게 설명해야 한다"며 이 사업에는 시민의 목소리를 전달할 어떠한 창구도 없었다는 점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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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 결정 하나로 졸지에 날벼락을 맞은 서부이촌동 문제는 해결의 실마리조차 찾기 어렵다. 지역 주민은 개발 계획 발표 초기부터 강하게 반발했다. 지난 2008년 4월 12일 이 지역 주민들이 '이촌2동(서부이촌동) 국제업무지구 통합 개발 반대 주민 결의 대회'를 열어 서울시와 코레일을 규탄하고 있다. ⓒ뉴시스 |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사업은 순항할 수 있을까. 장담하기 힘들다. 일단 삼성물산이 빠지면서 발생한 문제인 랜드마크 빌딩 시공자부터 다시 찾아야 한다. 더구나 새 투자 자금을 끌어들여야 한다. 경기는 좋지 않다. 성공을 장담하기 힘들다. 드림허브PFV가 제 궤도를 찾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서울시가 무상으로 공공시설 부지를 제공하기도 결코 쉽지 않다. 시민의 혈세가 특정 개발 목적을 위해 들어가는 꼴이라 도덕적 해이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원안대로 서부이촌동이 고스란히 개발에 포함될 것인지도 미지수다. 서울시는 용산 개발 정상화를 위해 코레일의 요청을 적극 수용하겠다고 밝히면서, 서부이촌동 주민 투표를 재실시하겠다는 계획도 천명했다. 이 경우 대림·성원아파트는 개발 대상에서 이탈할 확률이 높다. 두 아파트는 이 지역 조망권의 핵심이다. 두 아파트가 지금처럼 남아 있는다면, 당장 개발 사업이 순항해 용산국제업무지구 건설이 완공되더라도 입주율이 크게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최악의 경우 '제2의 가든파이브'나 '제2의 상암디지털미디어시티' 사태가 벌어지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서울시의 등장으로 흔들리던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은 일단 새 국면을 맞게 됐다. 그러나 '단군 이래 최대 사업'이라고 홍보되던 이 사업이 남긴 상처는, 용산이 단군 이래 최대 사기극으로 변질할 가능성을 또렷하게 보여준다. 문제는 아직 단 하나도 해결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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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朴 '국정공백' 엄포 벼랑끝 전술…말로만 '비상'
기사입력 2013-03-06 오후 12:19:48
정부조직법 개정안의 2월 국회 처리 불발로 코너에 몰린 박근혜 정부가 '친정(親政) 체제'를 출범시켰다. 청와대가 내각을 직접 관리·조정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정부조직법 개정안과는 무관하게 당장 할 수 있는 부분들도 하지 않으면서 정부조직법 탓만 하며 '비상'이라는 말만 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은 6일 오전 브리핑에서 허태열 비서실장 주재로 진행된 수석비서관회의 결과 "비서실은 상황점검을 위해 일일상황점검회의를 당분간 비서실장 주재 수석회의 형태로 매일 개최하기로 했다"며 "각 수석비서관실은 해당 비서관이 부처를 1대1로 책임지고 현안에 대응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윤 대변인은 "국정기획수석실은 총리실로부터 각 부처 상황 종합 자료를 받아 재점검한 뒤 매일 비서실장 주재 수석회의에 보고할 것"이라며 "각 부처에 대한 점검이 필요할 경우 각 부처 기조실장(기획조정실장)으로 구성된 국정과제전략협의회를 적극 활용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윤 대변인은 "국무총리실은 총리를 중심으로 국정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전력 대응하기로 했고, 청와대는 일일상황을 보고받아 종합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매일 오전 8시 비서실장, 수석 전원, 대변인이 참석한 가운데 일일 국정상황을 치밀하게 점검해 나갈 것"이라며 청와대 대변인 정례브리핑도 매일 오전 10시30분 열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 대변인은 이같은 조치의 배경에 대해 "수석비서관회의는 국회의 정부조직법 개편안 처리 지연과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지연으로 인해 정상적 국정 수행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판단해, 비상시국이라는 인식과 자세를 갖고 국정 공백의 최소화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기로 했다"고 전제했다.
그러나 청와대에서 장·차관을 건너뛰고 '국정과제전략협의회'를 통해 사실상 내각을 직접 통제하겠다는 발상은 자칫 청와대의 전횡이나 대통령 1인 지배 체제로 비칠 우려가 있다. 국정과제전략협의회에 참석하는 각 부처 기획조정실장들은 대개 국·실장 중 가장 선임으로 정무직이 아닌 일반 공무원들 가운데 가장 높은 자리다.
때문에 기조실장을 통해 청와대에서 직접 전 부처를 지휘하겠다는 뜻으로 읽힐 가능성이 충분하다. 마침 이날 김동연 신임 국무조정실장 주재로 세종시에서 열린 각 부처 차관회의도 건너뛰고 국장급에 청와대가 직접 지시를 내리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직급상으로는 차관이 기조실장보다 위이지만, 실장이 '청와대 지시'라고 하면 차관은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
정부조직법 핑계만…
이날 윤창중 대변인은 브리핑 및 질의응답 내내 '정부조직법'을 수없이 언급했다. '비상 행정체제' 출범도, 김장수 국가안보실장 내정자의 수석회의 불참도, 이미 청문회를 통과한 장관 7명의 임명장 수여가 늦춰지는 것도, 비서실장 주재 인사위원회가 출범하지 않은 것도 "정부조직법 개편안 통과가 지연되면서" 일어난 문제라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조직법과는 무관하게 청와대가 재량을 발휘해서 할 수 있는 부분이 충분히 있음에도 국회 탓만 하고 있다는 우려도 있다. 국정 공백 사태를 우려한다는 '말'과 '행동'이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대표적인 것이 장관 임명 문제다. 서남수 교육부, 윤병세 외교부, 황교안 법무부, 유정복 안전행정부(현 행안부),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윤성규 환경부, 방하남 고용노동부 등 7명의 장관 후보자는 이미 국회 인사청문보고서가 채택돼 있다. 대통령이 임명장만 주면 된다.
그러나 윤창중 대변인은 왜 임명이 늦어지고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정부조직법 개편안 처리가 지연됨에 따라, 현재 인사청문회를 통과한 장관 후보자에 대해 임명장 수여를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따라서 좀더 인사청문회 과정을 지켜보면서 최종적으로 임명장 수여 문제를 검토하도록 했다"고 했다. "일괄수여 여부도 검토 중"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이 때문에, 장관을 임명하고 대통령이 장관에게 지시하면 명쾌할 일을 굳이 '비상 행정' 체제로 하는 모습도 보인다. 윤 대변인은 이날 수석회의에서 "서민생활 침해사범 근절방안에 대해 깊은 논의가 있었다"며 "불법 사금융, 채권추심행위, 불법 다단계, 유사수신행위 등 금융사기, 보이스피싱, 서민형 갈취사범, 불법사행행위에 대한 강력한 단속을 취하기로 했고 이를 위해 대검찰청 형사부 중심으로 유관기관과 협조체제를 강화하기로 하는 한편 1차로 6월 말까지 단속을 실시하고 결과를 점검한 뒤 2차 단속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국회 청문회를 통과한 법무장관 후보자는 정작 임명장을 받지 못하고 있는데, 청와대는 직접 대검찰청과 소통하며 업무를 하는 꼴이다. 검찰총장도 넉 달째 공석인 상태다.
북한의 '정전협정 백지화' 위협으로 안보 불안이 높아져 가는 시기에 청와대가 외교안보 사령탑으로 내세운 김장수 실장이 수석비서관 회의에 계속 불참하고 있는 것도 지적된다. 윤 대변인은 "현재 정부조직법개정안 처리가 지연됨에 따라 국가안보실장이 수석비서관회의에도 참석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러나 현 청와대 비서실장·경호실장도 이명박 정부 직제에 따라 대통령실장·경호처장으로 임명돼 있다. 김 실장도 기존 직제인 위기관리실장으로 우선 임명한다거나, 과거 임동원 전 장관이 맡았던 '대통령 외교안보통일특별보좌' 같은 자리에 우선 앉히는 방법 등이 있을 수 있음에도 정부조직법 탓만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야당은 실제로 '안보를 정치에 이용한다'고 비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