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공화국에 이어 제5공화국을 보면서 전두환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통이 그냥 쿠데타를 했고 통이 된 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박대통령이 시해되고 김 재규가 육본으로 간 후 김 계원 외에 누구도
김 재규가 코드 1을 쏜 범인이라는 것을 몰랐는데 장세동이 청와대에서
-
일어나는 일을 보스인 보안사령관(전통)에게 알려 주었고 전통이 보안사에서
감청을 해 기회를 잡은 것입니다. '김 재 규 기습 체포 골든타임'의 1등
공신이 장세동이라는 뜻입니다. 이 일로 정 승화참모총장(대장)에게 합수
부장을 임명 받아 브리핑을 하면서 도미노 되는 권력의 정점에 계속 있게
-
된 것입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전 두환 이 매우 나쁜 군인이긴 하지만 야망을
가지고 준비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다른 하나는 전 통이 팀플레이를
잘했고, 그의 참모들이 모두 자신의 보스를 믿고 따랐다는 것입니다. 물론
오랜 시간 동안 마음이 흔들릴 때도 있었겠지만 ‘대‘가 큰 놈이라서 흔들리지
-
않고 일관되게 야망에 몰 빵을 한 것으로 봅니다. 1. 준비된 리더 2. 팀플레이
3. 배짱이 큰 인간 정도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이후 보안사령관
겸 합동수사본부장이 된 전통은 11월 중순부터 정 승화 총장을 제거하고
군부를 장악할 계획을 세우고, 하나회를 비롯한 동조 세력 규합에 나섭니다.
-
허 화평 보안사령부 비서실장, 허 삼수 보안사령부 인사처장, 이 학봉 보안
사령부 수사과장, 장 세동 제30경비단장, 김 진영 제33경비단장 등 영관급
후배의 동조를 얻어 모의를 진행하기 시작합니다.
-
11월 말 경 전두환은 황 영시 제1군단장, 노태우 제9사단장, 백 운택 제71
방위사단장, 박희도, 최 세창, 장 기오 1, 3, 5공수특전여단장 등 선후배
동료 장성과 쿠데타를 모의하게 됩니다. 12월 8일 전두환은 이 학봉 중령으로
-
부터 정 승화 총장은 일과시간 후 총장 공관에서 연행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첨부된 세부계획서를 전달 받고, 이를 확정한 후 허 삼수와 우 경윤
육군본부 범죄수사단장에게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도록 지시합니다.
12월 12일 오후, 전두환은 박희도, 최 세창, 장 기오, 차 규헌, 노태우, 황
-
영시 등 규합한 동조세력을 장세동이 있던 경복궁 내 수도경비사령부 여하
제30경비단 단장실로 모이도록 한 후 시내 일원을 장악하기로 한 계획을
지시, 논의합니다. 같은 날 18시, 전두환은 최 규하 대통령에게 목욕 시간을
피해서 20분 일찍 오라는 전갈까지 받고 육군참모총장 체포 안에 대한
-
재가를 윤필용 사건의 경우를 예로 들어 시급하고 비밀을 요하는 경우라며
홀로 제안했으나 거절당합니다. 훗날 최규화 대통령은 결제 란에 am05;30
(12.13)이라는 별도 체크를 했다는데 군부가 제시한 결제 서류에는 문제의
날인이 없는 이유를 아직까지 밝히지 못한 것으로 압니다.
-
대통령 재가와 정 총장 체포를 동시 패션으로 잡은 작전대로 전두환의
부하(허삼수, 우 경윤)들은 정 승화 총장 연행계획을 진행합니다. 19시,
이들은 정 승화 총장을 체포하기 위해 수도경비사령부 33헌병대 50명을
투입합니다. 전두환을 체포할 수 있는 두 지휘관(수경사령관장 태완,
헌병 감,김 진기)은 지금 요정에 붙잡혀 있는 상황입니다.
-
33헌병대는 해병대 병력이 경비하던 공관 내에 일제 슈퍼살롱 1대와
마이크로 버스 1대를 타고 들어와 보안사 차장의 보고라며 손님 대접까지
받고 거실에서 대기합니다. 그리고 계엄사령관에게 뇌물 수수 혐의를
거론하여 총리 공관으로 확인 연락을 하려던 인원을 향해 총격이 일어나고
-
공관 내부를 제압합니다. 사복 차림에 두 대령이 총장을 양쪽에서 잡아서
일으켜 세우니, 현관 창문을 깨고 군인이 들어와 소총의 총구로 총장을 찌르며
처가로 가려던 길을 도리어 재촉합니다. 압송 도중에 건물 밖에서 공관 경비
해병대원들과 총격전을 치릅니다. 이 총격전에서는 보안사 휘하 납치대의
-
육본 소속 우 경윤 대령 1명만 납치 대 간의 오인 사격으로 인해서 총상을
입습니다. 정 총장 신변의 위험을 느낀 경비 헌병들이 물러나자 허 대령의
총구가 총장의 뺨에 닿아 있는 상태로 세단 차에 떠밀려 들어가고 공관
정문은 세단 뒷좌석에서 2명의 대령에게 붙들려 꼼짝 못하는 상태로 총장의
-
기대와는 반대로 저지를 받지 않고 순조롭게 통과합니다. 공관 경비병까지
연행을 당했는데, 상부에서 무단 연행으로 뒤늦게 알려와 해병대가 공관을
재탈환하는 과정에서 반란군 측 박 윤관 일병이 사살당합니다.
계엄사령관 공관에서 모두 3명이 사망, 20명이 중경상을 입게 됩니다.
-
19시 21분, 반란군은 정 총장을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강제 연행합니다.
21시 30분경, 전 두환, 유학성, 황 영시 등은 다시 국무총리 공관으로
가서 최 규하 대통령에게 집단으로 정 총장의 연행·조사를 재가해 달라고
재차 요구하였으나 다시 사후 결재여서 거절당합니다. 그리고 결재와
-
관련한 의견들로 밤을 새우게 되는 밀고 당기기가 시작됩니다.
이후, 신군부 세력은 총장의 강제연행이 부당하다며 원상복귀를 주장하던
3군사령관 이 건영 중장, 수도경비사령관 장태완 소장, 특전사령관 정 병주
소장,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 하 소곤 소장 육군본부 헌병감 김 진기 준장
-
등에 대해 하극상을 감행하고, 이들을 무력으로 제압하며 연행합니다.
박태환 수경사령관(소장)이 마지막 출동명령을 하는데 현역시절 0뺑이
쳤던 필동 사령부 스퀀스가 나와 만감이 교차하더이다. 이 연병장에서
장세동 30단장 전역식을 했다는 것 아닙니까? 제가 EBC453기(84)인데
-
장태환 수경사령관(소장)을 체포한 사람이 수경사 헌병대장(중령)신윤희
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어요. 김진영 33헌병대장과 수경사 헌병
단장이 보안대와 짜고 직속상관을 체포한 것은 우리 병과의 치욕입니다.
그러고 보면 제가 일병 때 목숨을 걸고 보안대에 쳐들어가 소대장을
-
구한 일은 헌병 단장보다 훨씬 멋진 일을 해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일로 신윤희는 대령으로 진급하고 제가 현역시절까지 수방사 헌병
단장을 해먹었어요. 수경사령관(장태환) 후임으로 노태우, 특전사령관
(정병주) 후임으로 정호영이 역임을 한 것으로 압니다.
-
진짜 군인 이었던 특전사령관 정병주는 예편을 하고 훗날(2010) 자살을
한 걸로 보도가 되었는데 그가 자살을 했다고 믿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박희도 준장(하나회)이 이끄는 제1공수특전여단 병력과 최 세창 준장이
지휘하던 3공수특전여단, 그리고 장 기오 준장의 제5공수특전여단이
서울로 출동했습니다. 서울시내는 무슨 군부대가 어디를 점령했으며
-
국방부에서 총격이 났다는 소식을 접하고 대통령은 결재가 불가능하며
국방부장관 결재가 없으니 국방부 장관을 데려오라고 요구합니다. 밤 2시가
되어 전 두환이 몇 번씩 결재를 요구하는 가운데 사단 병력에 움직임이 보고
되어 대통령은 사단장 노태우 소장한테 원대복귀를 명령합니다.
-
그렇게 우선적으로 내란은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양측의 접촉을 총리공관에서
연락하여 막아 놓습니다. 그런 이후에야 국방부에 도착한 장관과 연락이
되는데 국방부장관은 대치 상태를 이유로 총리공관으로 가기를 거부합니다.
사태가 급박해지자 국방부 장관한테 다시 연락하여 총리가 가면 오는 것으로
-
대통령은 확답을 받게 됩니다. 노태우 소장은 자신이 지휘관이던 9사단 29
연대를 중앙청 앞에 집결시켰습니다. 1공수특전여단은 행주대교에 있던 30
사단 병력을 무력화시킨 후 곧장 서울로 달려갔습니다. 얼마 후, 1공수특전
여단은 국방부와 육군본부를 공격하여 노 재현 국방부 장관을 체포해요.
-
국방부 50헌병대 경비 병력으로 근무하던 정 선엽 병장을 사살한 후 국군
수뇌부를 체포합니다. 이 과정에서는 총격전으로 국방부 건물 앞은 유리문
등이 부서지고 선혈이 낭자하였습니다. 그 상황 이후 국방부 청사에 도착한
총리는 노 재현 국방부 장관을 찾아서 최 규하 대통령에게 끌고 갑니다.
-
한편 3공수특전여단은 3여단의 영내에 있던 특전사령부 본부에 3여단 15대
대장이 이끄는 10여 명의 체포조가 투입되어 특전사령관 비서실장 김 오랑
소령을 사살, 특전사령관 정 병주 소장을 체포해갑니다. 3공수에서 차출된
정예 병력이 특전사령부 지휘통제실에 1주일 가까이 상주하며 특전사령부의
-
기능을 정지시킵니다. 결국 전두환의 의도대로 사태는 일단락됩니다.
최규하 대통령에게는 세 차례 걸쳐 10시간 만인 13일 새벽 5시, 사후
재가가 이루어집니다. 12월 13일 오후, 노 재현 국방부 장관이 담화문을
통해 10.26사건 연류 혐의로 정 승화 총장을 연행하고 이와 연관된 정
-
승화의 육군참모총장과 일부 장성 또한 구속됐으며, 계엄사령관직에 이
희성 육군 대장으로 임명되었음을 발표합니다. 12.12 사건 이후 전 두환
보안사령관은 사실상 이 희성 육군참모총장을 직접 임명하고 6인 위원
회를 통해 군부의 인사를 조정하여 군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권력 공백
기에 최고 실력자가 됩니다.
-
12.12 사태를 10번 쯤 본 것 같은데 전통이 박대통령의 비호아래 '하나회'
라는 조직을 갖는 등 운 빨도 좋았지만 보안사령관이라는 찬스 판를 잘
이용했고, 결국 김 재규는 쭉 쒀서 개를 준 셈입니다. 마지막으로 썰렁한
얘기이긴 한데 운명을 바꾼 역사의 쓰리 U턴을 아시나요?
-
1.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2. 김재규 남산-육본
3.1공수와 9공수의 서울 침투 중 9공수의 자대복귀
2022.12.12.mon.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