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게 보면, 사람도 자연의 일부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의 현상을 잘 살펴보면, 인체에서 일어나는 증상 또한 자연스레 이해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뜨거운 공기는 위로 올라가고, 차가운 공기는 아래로 내려간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흥분하거나 뜨거운 음식을 먹게 되면 얼굴과 머리로 열감을 느끼게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병적으로 열이 얼굴이나 머리 쪽으로 올라오는 경우들이 있는데, 이를 ‘상열(上熱)증’이라고 한다. 조선시대 왕들 중에서도 특별히 이러한 상열증을 호소한 왕이 있었는데, 바로 13대 임금인 명종이다. 명종 14년 1월 7일의 ‘왕조실록’ 기록을 보면, 왕이 말하기를, “내가 지난달 8일 야대(夜對)할 때 어지럼증과 상열증이 갑자기 발생하여 간신히 강(講)을 파하였는데 뒤에 여러 날 조섭하여 기운이 편안해졌었다”라고 이유를 대면서, 다음 날 행사를 못하겠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명종 21년 8월 27일과 9월 4일에도 “어제 오후에 심기가 번열한 듯하여 정신없이 누워서 곤하게 잠을 잤다. 그러나 상열이 더욱 심하여 일신이 차기도 하고 덥기도 하며 심기도 울체하였다”라고 말하고, “내 본디 상열이 있었는데 초가을 보름 후에 다시 성해진 것 같다. 지금도 남은 열이 없어지지 않아 현기증이 간간이 발작한다”라고 상열증을 호소한다.
사실 상열증의 치료는 쉽지 않다. 무조건 차가운 약을 써서 열을 식히는 치료법만으로는 쉽게 치료되지 않는다. 열이 위로 뜨게 된 근본원인을 찾아 다시 일어나지 않게 치료해야만 재발이 안 되는데, 그 근본 원인이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치료법 또한 매우 다양해진다. 마침 이 칼럼을 쓰고 있는데, 재미난 일이 생겼다. 중학교 1학년 학생이 상열증으로 한의원을 찾아온 것이다. 평소에도 긴장하거나 피곤하면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라 불편했었는데,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항상 위로 열이 뜨고 얼굴이 빨개져 있어서 치료해 달라고 찾아온 것이다. 비뇨생식 계통의 진액이 부족해져서 화를 통제하지 못하는 증상이기 때문에 신수를 보강하고 심화를 식혀주는 처방을 사용하였다. 그런데 다음 날 퇴고를 하고 있을 때는 고등학교 3학년 여학생이 찾아왔는데, 역시 얼굴에 빨갛게 열이 올라오는 것이 문제인 경우였다. 이 학생은 평소에 화를 잘 내는데, 참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간화를 식혀주는 처방을 투약하였다.
즉 무조건 열을 식혀주는 것이 아니라, 열이 올라가게 된 원인을 찾아 치료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명종이 앓았던 상열증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명종 16년 4월 9일의 기록을 보면, 그 해답을 엿볼 수 있다. 왕이 상열증상을 호소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여러 해 동안 사건으로 인하여 놀라움을 겪은 나머지 심질(心疾)과 상열(上熱)이 한꺼번에 발작하여 자주 편치 못하였다. 그러다가 근자에 조금 안정되었는데 이번에 다시 큰 변의 발생을 듣고 나니 심기가 도로 불평하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명종 22년 6월 24일의 기록을 보면, 명종이 10여 년간 상열증을 앓아왔는데, 병이 시작된 해에는 명종의 아들이 사망하였고, 악화된 5년 즈음에는 왕의 어머니가 사망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즉 명종의 상열은 심적인 충격으로 인해 발생된 상열증이었던 것이다. 실제 ‘왕조실록’에 기록된 처방을 보면, 명종이 먼저 청심원(淸心元)을 먹고 그 다음 성심산(醒心散)을 마시고 나서 얼마 후에 기운이 소생하였다고 되어 있는데, 여기서 성심산은 심(心)에 있는 허열을 식혀주는 처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