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년 11월 24일
핵심 요절 17절 “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사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사랑은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천국으로 바꿉니다.
저와 에스더에게 우리 결혼식 날은 저희들 삶에서 가장 행복한 날입니다. 우리는 1977년 10월에 결혼하였습니다. 나는 그날을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왜 이날이 나와 에스더에게 최고의 날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결혼함으로 사랑으로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서로를 잘 알지 못했던 남녀가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소설책이나 영화의 대부분은 로맨스가 주제입니다. 결혼은 사람들 사이의 가장 강한 연합입니다. 결혼으로 맺어진 관계보다 더 강한 사랑의 관계는 없습니다.
이러한 사랑의 관계가 우리 그리스도인과 예수님과의 관계입니다.
오늘 저는 예수님과 우리의 사랑 관계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1.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1-14절).
저는 인터넷에서 다음과 같은 어느 젊은 여성의 짧은 사랑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나는 친구를 만나기로 했는데 한 남자분이 그녀 옆에 있었어요. 나는 그를 전에 본 적이 없었지만, 그는 제게 미소를 지었습니다. 이 형용할 수 없고 아름다운 웃음 - 갑자기 이 순간을 제외하고는 세상의 어떤 것도 제게 무의미하게 느껴졌습니다. 그 순간이 제 인생을 결정했습니다. 저는 당신의 손을 잡고 싶습니다. 당신과 함께 사랑의 날개를 펴 하늘을 날고 저는 영원히 당신의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님과 우리 사이의 뜨거운 사랑 이야기입니다.
창세기 1장과 2장은 하나님의 창조와 사람에 대한 하나님 사랑에 관해 기술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해 아름다운 낙원을 창조하시고 이 낙원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람에게 사랑의 동반자를 주었고 그들과 함께 낙원을 산보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께 신실하지 않아 낙원을 잃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변함없이 우리 인간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예수님이라는 사람이 되셔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죄를 대신 뒤집어쓰시고 우리 대신 하나님 벌 받아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장사지낸 바 되었지만 돌아가신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이 예수님은 베드로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이 성경 본문을 통해 예수님의 사랑을 더 잘 알기 원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자신의 부활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 후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일곱 명, 즉 시몬 베드로, 도마, 나다나엘, 야고보, 요한과 다른 두 제자가 함께 갈릴리 바닷가에 와 있었습니다. 갈릴리는 그들의 고향이요 갈릴리 바다는 그들의 일터였습니다.
그때 열두 제자의 리더격인 베드로가 그들에게 "나는 낚시하러 가겠다"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다른 제자들도 "우리도 너와 함께 가겠다"라고 대답합니다.
제가 중학교 다닐 때, 방학이면 고향 집에서 한 2km 떨어져 있는 저수지로 취미로 낚시하러 갔었습니다.
베드로와 그의 동료들도 저와 같이 취미로 고기잡으로 가고자 했습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제자들은 이미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부활을 믿었습니다. 그들은 또한 성령을 받았습니다(20:22).
하지만 그들은 근심.걱정이 없는 초인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들 가슴에는 자신과 가족 부양해야 한다는 걱정이 그들 가슴을 무겁게 했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원래 갈릴리 바다에서 어부로 일하던 사람들었었기 때문에 그들은 옛 직업으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 한배에 올라타고 고기를 잡기 위해 그물을 던지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상하지요. 그들은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아침의 동이 텄지만 그들은 여전히 빈손입니다. 이들은 피곤하고 배도 고팠습니다.
이 새벽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오셔서 물가에 서십니다.
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들 무엇을 하고 있어? 복음 일꾼으로 부름을 받은 사명을 잊고 다시 고기잡이하고 있어? 내가 너희를 복음의 일꾼으로 부른 것을 어떻게 쉽게 잊을 수 있어?”라고 말했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그들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는 걱정과 그들이 필요한 것을 전부 이해하십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고기를 못잡아, 의기소침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아십니다. 또 예수님은 그들이 배고프다는 것도 아십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얘들아, 너희에게 먹을 것이 없느냐?”(5)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굶주린 자녀들에게 맛있는 식사를 차리는 사랑 많은 어머니와 같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믿는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싶어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들에게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힐 것이요”(6)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하여 많은 고기를 잡습니다. 그들의 그물에는 큰 물고기가 가득합니다.
한편 예수님은 강둑에 이미 불을 피웁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이 잡은 물고기를 불에 굽고 그들에게 "와서 먹어! "라고 말하고 그들에게 구운 생선과 빵을 나누어 줍니다.
제자들은 얼어붙은 몸을 녹이고 허기진 배를 채웁니다. 지쳤고 허기졌던 제자들은 배를 채웠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영혼은 새로운 힘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함께 하심으로 마음의 평화를 다시 얻었습니다.
이 장면은 예수님이 우리 모두를 매우 사랑하시며 우리의 육체적, 영적 필요를 돌보시며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유감스럽게도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우리의 영적 필요에만 관심이 있고 우리의 몸은 결국 썩을 것이기에 예수님은 우리의 육체적 필요에는 관심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이 본문의 이야기를 보십시오!
예수님은 우리를 매우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영적인 필요뿐만 아니라 육체적 필요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두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주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몸과 영혼을 모두 창조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의 육체적 정신적 그리고 영적 복지를 모두 돌보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우리에게 어머니와 아버지와 형제자매를 주셨고 우리를 양육하셨습니다. 그분은 사랑으로 우리에게 이 아름다운 땅, 푸른 하늘, 따뜻한 태양, 신선한 공기, 깨끗한 물, 맛있는 빵을 주셨습니다. 그는 사랑으로 우리에게 친절한 여러 사람들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우리를 학교에 보내고 또 직업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와 항상 함께하십니다.
과거에도 예수님은 제자들과 많은 사람들에게 떡과 생선을 주어 배불리 먹게 하셨었습니다(요 6장). 그러나 제자들은 그것을 잊었습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다시 빵과 생선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진정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의 육체적, 정신적, 영적 건강을 섬세히 돌보십니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하나님이 각 사람을 섬세히 돌보시는 사랑의 본보기로 내 귀에 대한 하나님의 돌보심을 이야기하겠습니다.
저는 한국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내가 두 살 때 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어머니와 형님과 누님들에게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여름이면 개울에서 목욕과 수영을 자주 했습니다. 그래서 중이염에 걸린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부모님 집이 가난해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석사과정에 다닐 때 하나님께서 저의 석사과정 지도교수이신 이보성 교수님을 통해 충남대학교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님께 제 수술을 부탁하셨습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연구용이라는 이름으로 무료로 첫 귀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독일에 온 후 1981년 9월 말에 나는 도르트문트 시립 병원에서 건강 보험으로 무료로 두 번째 귀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다음 저는 1989년 3월 보쿰시 성 엘리사벳 병원(St. Elisabeth-Hospital)에서힐트만(Prof. Dr. Hildmann) 교수 집도로 세 번째 귀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 후 2011년 4월에 하나님께서 피부과 전문의인 하이든 박사(Dr. Heyden)의 권고로 성 요셉 병원(St. Josephs-Hospital)에 입원해 있었는데 그 병원은 저를 성 엘리사벳 병원으로 보내 귀를 검사하도록 저를 택시 태워 보냈습니다. 그 결과 왼쪽 귀에 양성 종양이 발견되어 엘리사벳 병원에서 네 번째 귀 수술을 받았습니다.
이 예는 하나님께서 저를 매우 사랑하시고 제 건강을 섬세히 돌봐 주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하여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저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 자녀로 삼기 위해 자기 아들 예수 그리스도까지 희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찬양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 옆에 계시고 우리에게 사랑스럽게 말씀하시는 것을 깨닫고 예수님의 사랑스러운 말씀을 듣고 예수님과 사랑의 대화를 나누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동행과 사랑과 섬세한 돌보심을 깨닫고 감사함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가 영적인 눈을 뜨고 예수님을 바라볼 때 우리는 예수님이 항상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를 세심하게 돌보아 주시며 우리와 대화하신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분의 임재와 그분의 사랑을 깨닫고 말씀을 들을 때 우리는 매우 행복합니다.
그때 우리는 시편 23편을 따라 다음과 같이 노래하게 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푸른 풀밭에서 나를 먹이시며 맑은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2. „당신은 나 예수를 사랑합니까?“ (15-25)
예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너무 사랑하고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고자 자신의 생명까지 희생했습니다. 이 예수님은 우리가 그 사랑을 영접하고 감사함으로 예수님을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시몬 베드로와 우리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15)라고 물으신 것입니다.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기를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16)라는 같은 질문을 두 번 더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세 번 묻습니다. “명환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예수님의 반복된 질문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나는 예수님께선 그 질문으로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싶어 한다고 믿습니다,
"난 너를 지극히 사랑한다. 너는 나의 사랑을 받아들였느냐? 그리고 너도 나를 사랑하느냐?"
이 질문은 성경 전체를 간략하게 요약한 질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매우 사랑하십니다. 성경 전체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는 나를 사랑니? "라고 묻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하나님 즉 예수님께 우리의 사랑을 고백해야 합니다,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이 고백은 혼인 서약과도 같습니다. 결혼식에는 다양한 절차가 있습니다. 예로써 설교, 축가, 결혼반지 교환 등입니다.
그러나 혼인서약은 결혼식의 핵심이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청혼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사랑의 고백으로 예수님의 청혼에 답해야 합니다. 이 대답으로 우리와 예수님은 결혼 서약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랑의 고백을 통해 예수님과의 영원한 사랑과 생명의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와 예수님과의 영적 결혼 이후에도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을 고백을 항상 새롭게 듣고 우리도 예수님께 사랑을 새롭게 고백해야 합니다. 이것은 결혼한 부부가 항상 새롭게 사랑의 고백을 함으로써 사랑의 관계를 항상 새롭게 그리고 깊게 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새로운 사랑의 고백을 통하여 우리는 예수님과의 사랑의 관계를 신선하게 유지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오늘 우리 각 사람에게 물으십니다.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이 질문에 우리 각 사람은 각자 대답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우리의 생각을 다 알고 계시지만 우리가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우리 입으로 고백하기를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와 예수님의 사랑 관계는 일방적인 사랑이 아니라 쌍방적인 사랑이어야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와 하나님 간과 상호 사랑이 있는 곳에 낙원이 있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대학 시절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영접했을 때 저는 천국을 걷는 기분이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예수님,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정말 행복하고 매일매일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와 함께 낙원에서 산보하고 있음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3. "내 양을 먹이라!"
베드로가 “주여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할 때마다 예수께서는 그에게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15:16:17).
예수께서 그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내 양을 먹이라!"라고 말씀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베드로와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여 그들도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과 사랑의 관계를 갖고 영생을 얻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베드로와 우리에게도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소원을 바르게 알고 이루어 드려야 합니다.
그럴 때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우리에게 현실이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도 매우 기뻐하실 것이고 우리도 매우 기뻐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저수지의 물로 우리는 저수지에 비교할 수 있습니다. 우리 저수지는 예수님 사랑의 물을 넘치게 받아 가득 채울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행복하고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큰 축복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예수님의 사랑의 물이 우리를 통하여 계속 흐르게 하여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 영생과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랑의 저수지에 있는 사랑의 물을 우리만 누리고자 하여 더 이상 흘려보내지 아니하면 얼마 후 우리 저수지 물은 썩어 악취가 나게 됩니다.
이처럼 우리가 예수님 사랑만 받고 전하지 않으면 우리 내면이 썩어 악취나게 됩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에게 예수님의 사랑과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와 다른 사람들은 다 행복할 것이며 우리는 낙원을 누릴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17절을 다시 읽어봅시다.
“세번째가라사대 <요한의아들시몬아네가나를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세번째네가나를사랑하느냐하시므로, 베드로가근심하여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