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엄경 강설 56
대방광불화엄경 강설 56
三十八, 이세간품(離世間品) 4
서문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힘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깊은 마음의 힘이니, 모든 세상의 정(情)에 섞이지 않은 연고입니다.
더 올라가는 깊은 마음의 힘이니, 모든 불법을 버리지 않는 연고입니다.
방편의 힘이니, 모든 짓는 일을 성취[究竟]하는 연고입니다.
지혜의 힘이니, 일체 마음의 행을 아는 연고입니다.
원하는 힘이니, 모든 구하는 바를 만족케 하는 연고입니다.
실천하는[行] 힘이니, 오는 세월이 끝나도록 끊어지지 않는 연고입니다.
올라타는 힘[乘力]이니, 모든 탈 것을 내지마는 대승을 버리지 않는 연고입니다.
신통변화의 힘이니, 낱낱 모공(毛孔) 속에서 모든 청정한 세계와 일체 여래께서 세상에 출현하심을 각각 나타내는 연고입니다.
보리의 힘이니, 일체중생들로 하여금 발심하고 성불하게 하여 끊어짐이 없게 하는 연고입니다.
법륜을 굴리는 힘이니, 한 구절의 법을 말하여도 일체중생의 모든 근성과 욕망에 맞는 연고입니다.
이것이 열이니, 만일 모든 보살들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모든 부처님의 위없는 일체 지혜의 열 가지 힘을 얻느니라.
2018 월 일
신라 화엄종찰 금정산 범어사
如天 無比
차례
(4) 29문(門)으로 십회향(十廻向)을 답하다
83-목차
<8> 진여상(眞如相)회향을 답하다
1) 보살은 열 가지 걸림 없는 작용이 있다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無礙用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衆生無礙用과 國土無礙用과 法無礙用과 身無礙用과 願無礙用과 境界無礙用과 智無礙用과 神通無礙用과 神力無礙用과 力無礙用이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걸림 없는 작용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중생에 걸림 없는 작용과 국토에 걸림 없는 작용과 법에 걸림 없는 작용과 몸에 걸림 없는 작용과 원에 걸림 없는 작용과 경계에 걸림 없는 작용과 지혜에 걸림 없는 작용과 신통에 걸림 없는 작용과 신통한 힘에 걸림 없는 작용과 힘에 걸림 없는 작용이니라.”
강설 ; 이세간품(離世間品)의 네 번째 권이다. 이세간품에서는 보혜(普慧)보살이 한꺼번에 2백 가지의 질문을 쏟아 부으니 보현보살이 한 가지 질문마다 열 가지씩 설명하여 2천 가지의 답을 하였다. 다시 살펴보면 2백 가지의 질문은 십신(十信)에서 20문(問), 십주(十住)에서 20문, 십행(十行)에서 30문, 십회향(十廻向)에서 29문, 십지(十地)에서 50문, 등각(等覺)에서 32문, 묘각(妙覺)에서 19문이다.
4권에 이르러 29문(門)으로 십회향(十廻向)을 답하는 가운데 제8 진여상(眞如相)회향을 답하는 내용이다. 특별히 열 가지 걸림 없는 작용을 소개하고, 다시 그 열 가지 걸림 없는 작용마다 다시 열 가지씩의 답을 밝혔다. 위의 경문은 열 가지 걸림 없는 작용들의 제목과 같은 것이다.
83
2) 열 가지 중생에 걸림 없는 작용
佛子야 云何爲菩薩摩訶薩의衆生等無礙用고佛子야菩薩摩訶薩이有十種衆生無礙用하니 何等이 爲十고所謂知一切衆生이無衆生無礙用과知一切衆生이但想所持無礙用과
“불자여, 어떤 것이 보살마하살의 중생 등에 걸림 없는 작용인가.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중생에 걸림 없는 작용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일체중생이 중생 없음을 아는 걸림 없는 작용과 일체중생이 다만 생각으로 유지됨을 아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라.”
강설 ; 먼저 보살의 열 가지 중생에 걸림 없는 작용을 답하였다. 일체중생이 중생 없음을 아는 걸림 없는 작용과 일체중생이 다만 생각으로 유지됨을 아는 걸림 없는 작용이다. 일체중생이란 다만 생각으로 존재할 뿐 실재하는 것이 아니므로 일체중생이 중생 없음을 아는 것이다. 중생은 본래로 텅 비어 공한 것이며, 중생은 본래로 부처님이 때문이다. 이것이 중생에 대한 보살의 걸림 없는 작용이다.
爲一切衆生說法에 未曾失時無礙用과普化現一切衆生界無礙用과置一切衆生於一毛孔中호대 而不迫隘無礙用과爲一切衆生하야 示現他方一切世界하야 令其悉見無礙用과
“일체중생을 위하여 법을 설함에 때를 놓치지 않는 걸림 없는 작용과 일체 중생계를 널리 변화하여 나타내는 걸림 없는 작용과 일체중생을 한 모공(毛孔)에 두되 비좁지 않는 걸림 없는 작용과 일체중생에게 다른 지방의 모든 세계를 나타내어 다 보게 하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라.”
爲一切衆生하야 示現釋梵護世諸天身無礙用과 爲一切衆生하야 示現聲聞辟支佛寂靜威儀無礙用과 爲一切衆生하야 示現菩薩行無礙用과 爲一切衆生하야 示現諸佛色身相好一切智力成等正覺無礙用이 是爲十이니라
“일체중생에게 제석과 범천과 사천왕 등의 하늘 몸을 나타내는 걸림 없는 작용과 일체중생에게 성문과 벽지불의 고요한 위의를 나타내는 걸림 없는 작용과 일체중생에게 보살의 행을 나타내는 걸림 없는 작용과 일체중생에게 부처님들의 육신의 몸매에 온갖 지혜의 힘과 정등각을 이룸을 나타내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 이것이 열이니라.”
강설 ; 보살이 중생에게 걸림 없는 작용이란 실로 불가사의하다. 중생을 위하여 법을 설하는 일이나 중생세계를 널리 변화하여 나타내는 일이나 일체중생들을 한 모공에 두는 일이나 일체중생에게 다른 지방의 모든 세계를 나타내 보이는 일이나 또 제석이나 범천이나 사천왕이나 성문이나 벽지불의 위의를 나타내 보이는 일 등등이 모두 보살의 걸림이 없는 작용이다.
84
3) 열 가지 국토에 걸림 없는 작용
佛子야菩薩摩訶薩이有十種國土無礙用하니 何等이 爲十고所謂一切刹로 作一刹無礙用과一切刹로 入一毛孔無礙用과知一切刹無有盡無礙用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국토에 걸림 없는 작용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모든 세계로 한 세계를 만드는 걸림 없는 작용과 모든 세계를 한 모공(毛孔)에 넣는 걸림 없는 작용과 모든 세계가 다함이 없음을 아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라.”
강설 ; 세계가 걸림 없음을 밝혔다. 모든 세계를 한 세계로 만들고 모든 세계를 한 모공에 넣고 또 모든 세계가 다함이 없음을 아는 등 보살은 국토의 온갖 작용에 걸림이 없다.
一身이 結跏坐하야 充滿一切刹無礙用과一身中에 現一切刹無礙用과震動一切刹호대 不令衆生恐怖無礙用과以一切刹莊嚴具로莊嚴一刹無礙用과以一刹莊嚴具로莊嚴一切刹無礙用과
“한 몸이 가부좌하고 앉은 것이 모든 세계에 충만 하는 걸림 없는 작용과 한 몸에 모든 세계를 나타내는 걸림 없는 작용과 모든 세계를 진동시키면서도 중생들을 두렵게 하지 않는 걸림 없는 작용과 모든 세계의 장엄거리로 한 세계를 장엄하는 걸림 없는 작용과 한 세계의 장엄거리로 모든 세계를 장엄하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라.”
강설 ; 또 한 몸이 가부좌하고 앉은 것이 모든 세계에 충만 하고, 한 몸에 모든 세계를 나타내고, 모든 세계를 진동시키면서도 중생들을 두렵게 하지 않는 등의 걸림 없는 작용이다.
以一如來一衆會로 徧一切佛刹하야 示現衆生無礙用과 一切小刹中刹大刹廣刹深刹仰刹覆刹側刹正刹의 徧諸方網無量差別을 以此普示一切衆生無礙用이 是爲十이니라
“한 여래의 한 대중으로써 모든 부처님 세계에 두루하게 중생을 나타내는 걸림 없는 작용과 모든 작은 세계와 중간 세계와 큰 세계와 넓은 세계와 깊은 세계와 잦혀진 세계와 엎어진 세계와 기우러진 세계와 반듯한 세계가 여러 방위그물에 두루하여 한량없이 차별하며, 이것으로써 일체중생에게 널리 보이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 이것이 열이니라.”
강설 ; 또 한 여래의 한 대중으로써 모든 부처님 세계에 두루하게 중생을 나타내고, 모든 작은 세계와 중간 세계와 큰 세계와 넓은 세계와 깊은 세계 등이 한량없이 차별하며, 이것으로써 일체중생에게 널리 보이는 걸림 없는 작용이다.
85
4) 열 가지 법에 걸림 없는 작용
佛子야 菩薩摩訶薩이有十種法無礙用하니 何等이爲十고所謂知一切法이 入一法하고 一法이 入一切法호대 而亦不違衆生心解無礙用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법에 걸림 없는 작용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모든 법이 한 법에 들어가고 한 법이 모든 법에 들어가되, 중생의 마음과 지혜에 어기지 않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라.”
강설 ; 중생과 국토 다음으로 법이 걸림 없음을 밝혔다. 법(法)이란 불교의 가르침 중에서 하나의 낱말이 가장 많은 뜻을 함유하고 있는 말이다. 그러므로 법이란 말에서 파생된 말도 대단히 많다. 먼저 법에 대한 정의를 살펴보면 범어로는 달마(達磨)라 하는데 제 성품을 가졌고[任持自性] 물건의 이해를 내게 하는[軌生物解] 두 뜻을 가졌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독특한 성품을 가지고 있어 궤범(軌範)이 되어 다른 이에게 일정한 요해(了解)를 내게 하는 것이다. 물질이나 정신의 일체 만유는 모두 이 뜻을 가졌으므로 일체제법 또는 만법이라 하고, 혹은 분류하여 75법이니, 100법 등이라 하며, 그 대부분은 제6의식(意識)의 대상의 경계가 되므로 법경(法境)이라 한다. 또 궤범의 뜻을 위주로 하여 규칙을 법이라 하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불법ㆍ정법ㆍ교법 등이라 하며, 부처님이 제정한 계율을 계법이라 하고, 규정을 따라 수행하는 의식을 수법(修法)이라 한다.
그러나 보살의 열 가지 법에 걸림 없는 작용을 통해서 새롭게 알아야 할 것이 또한 법이다. 즉 모든 법이 한 법에 들어가고 한 법이 모든 법에 들어가더라도 중생의 마음과 지혜에는 조금도 어기지 않는다. 법이란 본래로 한 법이며, 텅 비어 무애 자재한 것인데 분별을 좋아하여 위와 같은 온갖 차별의 설명이 있게 되었다.
從般若波羅蜜로 出生一切法하야 爲他解說하야 悉令開悟無礙用과 知一切法離文字호대 而令衆生으로 皆得悟入無礙用과
“반야바라밀다로부터 모든 법을 내어 다른 이에게 설명하여 모두 깨닫게 하는 걸림 없는 작용과 모든 법이 글자를 여읜 줄을 알면서도 중생으로 하여금 다 깨달아 들어가게 하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라.”
강설 ; 어떤 법도 모두 지혜에서 출생하였다. 그래서 다른 이에게 설명하여 모두 깨닫게 하는 걸림 없는 작용이 있다. 또 모든 법은 글자나 언어를 떠난 것임을 알면서도 중생들에게 온갖 문자와 언어로 설명하여 다 깨달아 들어가게 하는 걸림 없는 작용이 있다.
知一切法入一相호대 而能演說無量法相無礙用과 知一切法離言說호대 能爲他說無邊法門無礙用과
“모든 법이 한 모양에 들어감을 알면서도 능히 한량없는 법의 모양을 연설하는 걸림 없는 작용과 모든 법이 말을 여읜 줄을 알면서도 능히 다른 이에게 그지없는 법문을 연설하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라.”
강설 ; 그래서 모든 법이 한 모양임을 보살은 잘 안다. 그러나 또 한량없는 법의 모양을 연설한다. 또 앞에서와 같이 모든 법이 말을 여읜 줄을 알면서도 능히 다른 이에게 그지없는 법문을 연설하는 걸림 없는 작용이 있다.
於一切法에 善轉普門字輪無礙用과 以一切法으로 入一法門호대 而不相違하야 於不可說劫에 說不窮盡無礙用과 以一切法으로 悉入佛法하야 令諸衆生으로 皆得悟解無礙用과
“또한 모든 법에 넓은 문의 글자바퀴[普門字輪]를 잘 굴리는 걸림 없는 작용과 모든 법을 한 법문에 넣어도 서로 어기지 않아서 말할 수 없는 겁 동안 말하여도 다할 수 없는 걸림 없는 작용과 모든 법으로써 다 불법에 들어가서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다 알게 하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라.”
강설 ; 넓은 문, 즉 보문(普門)이란 화엄에서는 우주에 존재한 모든 사물은 제각각 그 한 법에 일체 법을 포섭하였다고 설하여 보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보살은 모든 법에 넓은 문의 글자바퀴를 잘 굴리는 걸림 없는 작용이 있다. 또 반복하자면 모든 법을 한 법문에 넣어도 서로 어기지 않아서 말할 수 없는 겁 동안 말하여도 다할 수 없으며, 모든 법으로 다 불법에 들어가서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알게 하는 걸림 없는 작용이 있다. 즉 일체 법이 모두 다 불법(佛法)이라는 한결 같은 가르침이다.
知一切法無有邊際無礙用과 知一切法無障礙際가 猶如幻網의 無量差別하야 於無量劫에 爲衆生說호대 不可窮盡無礙用이 是爲十이니라
“모든 법이 가없음을 아는 걸림 없는 작용과 모든 법이 장애가 없음이 마치 환술의 그물처럼 한량없이 차별함을 알고 한량없는 겁 동안에 중생들에게 말하여도 다할 수 없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 이것이 열이니라.”
강설 ; 보살은 또 모든 법이 가없음을 알며, 모든 법이 장애가 없음이 마치 환술의 그물처럼 한량없이 차별함을 알고 한량없는 겁 동안에 중생들에게 말하여도 다할 수 없는 걸림 없는 작용이 있다.
86
5) 열 가지 몸에 걸림 없는 작용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身無礙用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以一切衆生身으로 入己身無礙用과 以己身으로 入一切衆生身無礙用과 一切佛身으로 入一佛身無礙用과 一佛身으로 入一切佛身無礙用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몸에 걸림이 없는 작용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일체중생의 몸을 자기의 몸에 넣는 걸림 없는 작용과 자기의 몸을 모든 중생의 몸에 넣는 걸림 없는 작용과 모든 부처님의 몸을 한 부처님의 몸에 넣는 걸림 없는 작용과 한 부처님의 몸을 모든 부처님의 몸에 넣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라.”
강설 ; 하나와 많음이 걸림 없는 사사무애(事事無碍)의 이치를 밝힌 내용인데 이와 같은 이치를 의상스님은 법성게에서 “하나 가운데 일체가 있고 많은 가운에 하나가 있으며, 하나가 곧 일체며 많은 것이 곧 하나이네. 하나의 작은 먼지 속에 시방세계를 함유하고 있으며, 일체의 먼지 속에도 또한 이와 같도다.”라고 하였다. 어찌 중생의 몸과 부처님의 몸만 이와 같겠는가. 일체 존재가 모두 다 이와 같은 것을.
一切刹로 入己身無礙用과以一身으로 充徧一切三世法하야 示現衆生無礙用과於一身에示現無邊身하야 入三昧無礙用과於一身에示現衆生數等身하야 成正覺無礙用과
“모든 세계를 자기의 몸에 넣는 걸림 없는 작용과 한 몸이 모든 세 세상 법에 가득케 하여 중생을 나타내 보이는 걸림 없는 작용과 한 몸에 그지없는 몸을 나타내 보여 삼매에 들어가는 걸림 없는 작용과 한 몸에 중생의 수효와 같은 몸을 나타내 보여 바른 깨달음을 이루게 하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라.”
강설 ; 몸과 몸만이 걸림이 없을 뿐만 아니라 세계와 몸도 걸림이 없으며, 한 몸과 과거 현재 미래의 일체법이 걸림이 없으며, 또 한 몸에서 그지없는 몸을 나타내어 삼매에 들며, 또 한 몸에서 무수한 중생 수의 몸을 나타내어 정각을 이루는 일까지 걸림 없는 작용이 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보살의 경계는 이와 같다.
於一切衆生身에 現一衆生身하고 於一衆生身에 現一切衆生身無礙用과 於一切衆生身에 示現法身하고 於法身에 示現一切衆生身無礙用이 是爲十이니라
“모든 중생의 몸에 한 중생의 몸을 나타내고 한 중생의 몸에 모든 중생의 몸을 나타내는 걸림 없는 작용과 모든 중생의 몸에 법의 몸을 나타내 보이고 법의 몸에 모든 중생의 몸을 나타내 보이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 이것이 열이니라.”
강설 ; 또 보살은 모든 중생의 몸에 한 중생의 몸을 나타내고 한 중생의 몸에 모든 중생의 몸을 나타내며, 모든 중생의 몸에 법의 몸을 나타내고 법의 몸에 모든 중생의 몸을 나타내는 걸림 없는 작용이 있다. 이것이 몸에 걸림 없는 작용들이다.
87
6) 열 가지 원(願)하는 데 걸림 없는 작용
佛子야菩薩摩訶薩이有十種願無礙用하니 何等이 爲十고所謂以一切菩薩願으로作自願無礙用과 以一切佛成菩提願力으로 示現自成正覺無礙用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원(願)하는 데 걸림 없는 작용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모든 보살의 원(願)으로 자신의 원을 삼는 걸림 없는 작용과 모든 부처님이 보리를 이루는 원력으로 자기가 바른 깨달음 이룸을 나타내 보이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라.”
강설 ; 모든 보살은 서원과 발원과 원력의 화신이다. 그 모든 서원을 자신의 서원으로 삼고, 또 일체 부처님이 보리를 이루는 원력도 보살은 자신의 정각 이룸을 나타내는 걸림 없는 작용이 있다.
隨所化衆生하야自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無礙用과於一切無邊際劫에大願不斷無礙用과
“교화할 바 중생을 따라서 스스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는 걸림 없는 작용과 온갖 그지없는 겁에 큰 서원이 끊어지지 않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라.”
강설 ; 보살은 또 교화할 바 중생을 따라서 스스로 무상정각을 이루고, 그지없는 겁에 큰 서원이 끊어지지 않는다.
遠離識身하고 不着智身하야 以自在願으로 現一切身無礙用과捨棄自身하고 成滿他願無礙用과
“알음알이의 몸[識身]을 멀리 여의고 지혜의 몸에 집착하지 않으면서 자유자재한 원으로 모든 몸을 나타내는 걸림 없는 작용과 제 몸을 버려서 남의 원을 만족케 하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라.”
강설 ; 보살은 알음알이의 몸[識身]을 멀리 여의고 지혜의 몸을 성취하지만 그 지혜의 몸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자유자재한 원으로 모든 몸을 나타낸다. 특히 또 보살은 제 몸을 버려서 남의 원을 만족케 하는 걸림 없는 작용이 있다.
普敎化一切衆生하야 而不捨大願無礙用과於一切劫에行菩薩行하야 而大願不斷無礙用과
“또한 일체중생을 두루 교화하되 큰 서원을 버리지 않는 걸림 없는 작용과 모든 겁에서 보살의 행을 행하되 큰 서원이 끊이지 않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라.”
강설 ; 보살은 또 일체중생을 교화하고, 일체 겁에 보살행을 행하지만 보살의 큰 서원을 버리거나 끊지 않는다.
於一毛孔에現成正覺하야 以願力故로 充徧一切諸佛國土하야 於不可說不可說世界에爲一一衆生하야 如是示現無礙用과
“한 모공(毛孔)에서 바른 깨달음 이룸을 나타내어 서원하는 힘으로 일체 모든 부처님 국토에 두루하며,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세계에서 낱낱 중생을 위하여 이와 같이 나타내 보이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라.”
강설 ; 한 모공에서 정각을 이룬다. 한 작은 먼지 속에서도 정각을 이룬다. 그런데 어디에선들 정각을 이루지 못하겠는가. 정각을 이룬 그 원력으로 일체 모든 국토에 충만하여 무수한 세계의 낱낱 중생들을 위하여 그와 같이 정각 이룸을 나타내 보인다.
說一句法호대 徧一切法界하야 興大正法雲하며 耀解脫電光하며 震實法雷音하며 雨甘露味雨하야 以大願力으로 充洽一切諸衆生界無礙用이 是爲十이니라
“한 구절의 법을 설하여 모든 법계에 가득하게 해서 크고 바른 법의 구름을 일으키고 해탈의 번갯빛을 비추며, 실다운 법의 우레를 진동시키고, 감로 맛의 비를 내리어 큰 서원의 힘으로 일체 모든 중생세계를 흡족케 하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 이것이 열이니라.”
강설 ; 한 구절의 법을 설하여 모든 법계에 가득하게 해서 크고 바른 법의 구름을 일으킨다. 만약 8만 4천 구절의 법을 설한다면 어떻겠는가. 화엄경만 하더라도 60화엄은 3만 6천 게송이나 되고 80화엄은 4만 5천 게송이나 된다. 일체 법계를 4만 5천번이나 두루 덮어서 크고 바른 법의 구름을 일으키고 해탈의 번갯빛을 비추며, 실다운 법의 우레를 진동시키고, 감로 맛의 비를 내리어 큰 서원의 힘으로 일체 모든 중생세계를 흡족케 한다. 이것이 보살의 걸림 없는 작용이다.
88
7) 열 가지 경계에 걸림 없는 작용
佛子야菩薩摩訶薩이有十種境界無礙用하니 何等이 爲十고所謂在法界境界호대 而不捨衆生境界無礙用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경계에 걸림 없는 작용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법계의 경계에 있으면서 중생의 경계를 버리지 않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라.”
강설 ; 다음은 보살의 경계에 걸림 없는 작용을 밝혔다. 보살은 언제나 법계의 경계에 있으면서 법계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중생의 경계와 함께한다. 이것이 보살의 걸림 없는 작용이다.
在佛境界호대 而不捨魔境界無礙用과
“부처님의 경계에 있으면서 마(魔)의 경계를 버리지 않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라.”
강설 ; 또 보살은 부처님의 경계에 있으면서 마군의 경계를 버리지 않는다. 만약 보살이 부처님의 경계에만 있고 마군의 경계를 버린다면 그 마군들을 누가 교화할 것인가. 지장보살이 지옥을 떠난다면 누가 지옥 중생들을 제도할 것인가. 이것이 보살의 걸림 없는 작용이다.
在涅槃境界호대 而不捨生死境界無礙用과
“열반의 경계에 있으면서 생사의 경계를 버리지 않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라.”
강설 ; 열반의 경계란 생사에 물들지 않은 진여자성의 경계며 참마음의 경계며 차별 없는 참사람의 경계다. 보살이 만약 생사에 물들지 않은 진여자성의 경계와 참마음의 경계와 차별 없는 참사람의 경계에만 머물러 있다면 생사에 허덕이는 미혹한 중생들을 누가 제도할 것인가. 진정한 보살은 중생들과 함께 생사 속에 빠져서 같이 허덕인다. 이것이 보살의 걸림 없는 작용이다.
入一切智境界호대 而不斷菩薩種性境界無礙用과
“일체 지혜의 경계에 들어가서 보살의 종자 성품의 경계를 끊지 않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라.”
강설 ; 보살은 부처님이 증득하신 일체 지혜의 경계에 들어갔으나 보살의 종성경계를 끊지 않고 언제나 보살의 행을 실천하여 중생을 교화한다. 실로 훌륭한 보살들은 이미 부처님의 모든 경계를 벌써 끝내고 다시 보살의 자리로 돌아와서 중생 교화에 진력을 다한다. 그것이 대승보살불교가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불교가 나아가야할 바른 길이 이것이다. 참으로 보살의 걸림 없는 작용이다.
住寂靜境界호대 而不捨散亂境界無礙用과
“고요한 경계에 머물러서도 산란한 경계를 버리지 않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라.”
강설 ; 보살은 한편 고요한 적정경계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중생들의 산란한 경계를 버리지 않고 그들과 함께 한다. 이것이 보살의 걸림 없는 작용이다.
住無去無來無戱論無相狀無體性無言說如虛空境界호대 而不捨一切衆生戱論境界無礙用과
“가는 것도 없고, 오는 것도 없고, 부질없는 말도 없고, 형상도 없고, 자체 성품도 없고, 말도 없어서 허공과 같은 경계에 머물면서도 일체중생의 부질없는 희론의 경계를 버리지 않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라.”
강설 ; 보살은 가는 것도 없고, 오는 것도 없고, 부질없는 말도 없고, 형상도 없고, 자체 성품도 없는 허공과 같은 경계에 머물면서 한편 일체중생의 부질없는 희론의 경계를 버리지 않으면서 중생들과 함께 한다. 이것이 보살의 걸림 없는 작용이다.
住諸力解脫境界호대而不捨一切諸方所境界無礙用과
“모든 힘의 해탈하는 경계에 있으면서도 일체 모든 방소(方所)의 경계를 버리지 않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라.”
강설 ; 보살은 모든 능력과 해탈의 경계를 성취하였으나 일체 모든 방소의 중생들을 버리지 않는다. 만약 스스로 해탈을 얻었다고 해서 다른 곳의 중생들을 버린다면 그들은 어떻게 되겠는가. 이것이 또한 보살의 걸림 없는 작용이다.
入無衆生際境界호대而不捨敎化一切衆生無礙用과
“중생의 경계 없는 경계에 들어가도 일체중생 교화하기를 버리지 않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라.”
강설 ; 또 보살은 중생의 경계 없는 경계에 들어가도 일체중생 교화하기를 버리지 않는다. 보살의 경지에서는 중생은 본래로 공하고 중생은 본래로 부처님이지만 중생의 입장에서 다시 중생을 열심히 교화한다. 이것이 또한 보살의 걸림 없는 작용이다.
住禪定解脫神通明智寂靜境界호대 而於一切世界에示現受生無礙用과
“선정과 해탈과 신통과 밝은 지혜와 적정한 경계에 머물면서도 모든 세계에 태어남을 나타내는 것을 버리지 않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라.”
강설 ; 보살이 선정과 해탈과 신통과 밝은 지혜와 적정한 경계에 머물러 영원한 열반에 빠져 다시는 태어나는 일이 없을 수도 있겠으나 우정 중생을 위해 일체세계에서 때를 따라 태어나는 것을 나타내 보인다. 보살이 만약 열반에만 빠져 더 이상 태어나지 않는다면 중생들을 누가 교화하겠는가. 그러므로 보살은 무수히 생사를 거듭하면서 태어나고 또 태어난다. 이것이 또한 보살의 걸림 없는 작용이다.
住如來一切行莊嚴成正覺境界호대 而現一切聲聞辟支佛의 寂靜威儀無礙用이 是爲十이니라
“여래의 모든 행으로 장엄한 바른 깨달음을 이루는 경계에 머무나 그러나 모든 성문과 벽지불의 적정한 위의를 나타내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 이것이 열이니라.”
강설 ; 보살은 또 여래의 모든 행으로 장엄한 바른 깨달음을 이루는 경계에 머무나 그러나 모든 성문과 벽지불의 고요한 위의를 나타내기도 한다. 이것이 또한 보살의 걸림 없는 작용이다.
5월 8일 오전 10시 녹화전송 완료
89
8) 열 가지 지혜의 걸림 없는 작용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智無礙用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無盡辯才無礙用과 一切總持無有忘失無礙用과 能決定知決定說一切衆生諸根無礙用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지혜의 걸림 없는 작용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다함이 없는 변재의 걸림 없는 작용과 온갖 것을 모두 지니어 잊어버리지 않는 걸림 없는 작용과 일체중생의 모든 근성을 결정하게 알고 결정하게 설하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라.”
강설 ; 보살에게는 또 다함이 없는 변재나 온갖 것을 모두 지니어 잊어버리지 않는 다라니나 일체중생의 모든 근성을 분명하게 알고 분명하게 설하는 걸림 없는 작용이 있다.
於一念中에以無礙智로知一切衆生心之所行無礙用과
“잠깐 동안에 걸림 없는 지혜로써 일체중생의 마음에 행하는 것을 아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라.”
강설 ; 보살은 걸림 없는 지혜로 일체중생들이 마음을 어떻게 쓰고 무엇을 생각하는가를 다 안다. 이것이 보살의 걸림 없는 작용이다.
知一切衆生欲樂隨眠習氣煩惱病하야 隨應授藥無礙用과
“일체중생의 욕망과 따라다니면서 잠자듯이 하는 것과 습기(習氣)와 번뇌의 병을 알고 알맞게 약을 주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라.”
강설 ; 일체중생에게는 온갖 여러 가지 번뇌가 있다. 따라다니면서 잠자듯이 하는 번뇌, 즉 수면(隨眠)이란 번뇌의 다른 이름으로 번뇌는 늘 중생을 따라다녀 여의지 아니하므로 수(隨)라 하고, 그 작용이 아득하여 알기 어려움이 마치 잠자는 상태와 비슷하므로 면(眠)이라 한다. 또 중생을 쫓아다녀 마음을 혼미하게 하는 것이 잠자는 것과 같으므로 이렇게 이른다. 또 수면번뇌에는 98종 수면과 10수면과 12수면과 6수면과 7수면 등이 있다.
또 습기(習氣)란 번뇌의 체(體)롤 정사(正使)라 하는 것에 대하여 습관의 기분으로 남은 것을 습기라 한다. 즉 향을 담았던 그릇은 향을 비웠어도 오히려 향기가 남아 있는 것과 같은 등의 버릇이다. 보살은 이와 같은 일체중생의 욕망과 따라다니면서 잠자듯이 하는 번뇌와 습기(習氣)와 기타 온갖 번뇌의 병을 환하게 다 알고 알맞게 약을 주어 모든 번뇌를 다스린다. 이것이 보살의 걸림 없는 작용이다.
一念에 能入如來十力無礙用과
“잠깐 동안에 여래의 열 가지 힘에 능히 들어가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라.”
강설 ; 보살은 한 순간에 능히 여래의 열 가지 힘에 들어가는 걸림 없는 작용이 있다. 여래의 열 가지 힘, 즉 십력(十力)이란 부처님께만 있는 열 가지 심력(心力)이다. ① 처비처지력(處非處智力). ② 업이숙지력(業異熟智力). ③ 정려해탈등지등지지력(靜慮解脫等持等至智力). ④ 근상하지력(根上下智力). ⑤ 종종승해지력(種種勝解智力). ⑥ 종종계지력(種種界智力). ⑦ 변취행지력(遍趣行智力). ⑧ 숙주수념지력(宿住隨念智力). ⑨ 사생지력(死生智力). ⑩ 누진지력(漏盡智力)을 말한다.
以無礙智로知三世一切劫과及其中衆生無礙用과
“걸림 없는 지혜로써 세 세상의 모든 겁과 그 속에 있는 중생을 아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라.”
강설 ; 보살은 또 걸림이 없는 지혜로 과거 현재 미래라는 일체 시간들과 그 일체 시간 안에 존재하는 모든 중생들을 남김없이 다 안다.
於念念中에現成正覺하야 示現衆生호대 無有斷絶無礙用과
“잠깐 잠깐마다 바른 깨달음을 이룸을 나타내어 중생에게 나타내 보이되 끊어지지 않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라.”
강설 ; 보살은 또 잠깐 잠깐마다 바른 깨달음을 이루어 중생에게 보인다. 그와 같이 정각을 이루는 일이 끊어지지 않는다. 보살의 걸림이 없는 작용은 이와 같다.
於一衆生想에 知一切衆生業無礙用과 於一衆生音에 解一切衆生語無礙用이 是爲十이니라
“한 중생의 생각에서 일체중생의 업을 아는 걸림 없는 작용과 한 중생의 음성에서 일체중생의 말을 이해하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 이것이 열이니라.”
강설 ; 보살은 또 한 중생의 생각만 보아도 일체중생의 업을 다 안다. 굳이 낱낱이 다 살펴볼 필요도 없다. 또 한 중생의 음성에서 일체중생의 말을 다 이해하는 능력이 있다. 이것이 보살의 걸림 없는 작용이다.
5월 9일 오전 10시 20분 녹화전송 완료
90
9) 열 가지 신통의 걸림 없는 작용
佛子야菩薩摩訶薩이有十種神通無礙用하니 何等이 爲十고所謂於一身에示現一切世界身無礙用과於一佛衆會에聽受一切佛衆會中所說法無礙用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신통의 걸림 없는 작용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한 몸에 모든 세계의 몸을 나타내는 걸림 없는 작용과 한 부처님의 대중이 모인 데서 모든 부처님의 대중이 모인 데서 말씀하는 법을 듣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라.”
강설 ; “한 개의 작은 먼지 속에 시방세계를 포함하고 있다.”는 화엄경의 가르침을 요즘의 상식으로 사람의 몸 하나에 100조의 세포가 있고, 그 세포들은 자신들의 세계를 형성하여 천변만화의 활동을 하며 순간순간 생로병사를 거듭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보살은 마술사가 아니므로 사실이 아닌 것을 나타내 보이지는 않는다. 경문의 걸림 없는 작용들은 모두가 일체 존재의 존재현상들이다.
於一衆生心念中에成就不可說無上菩提하야 開悟一切衆生心無礙用과
“한 중생의 생각 속에서 말할 수 없는 가장 높은 보리를 이루고 일체중생의 마음을 깨닫게 하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라.”
강설 ; 보살은 한 중생의 생각 속에서 무수한 숫자의 무상보리를 성취하여 일체중생들의 마음을 다 깨닫게 한다. 이 말은 단순하게 하나의 먼지 속에 시방세계가 있다는 뜻과는 또 다른 의미이다. 실로 보살의 신통의 걸림 없는 작용이다.
以一音으로 現一切世界差別言音하야 令諸衆生으로 各得解了無礙用과
“한 음성으로 모든 세계의 차별한 음성을 나타내어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각각 알게 하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라.”
강설 ; 요즘에는 만국어번역기(萬國語翻譯機)가 있어서 아직은 원활하지는 못해도 여러 국가의 말을 번역해서 알려주는 기술이 있다. 아마 얼마 있지 아니하면 경문의 내용과 같이 한 음성으로 일체세계의 차별한 말들을 동시에 통역하여 모든 사람들이 자유자재하게 대화할 수 있게 될 것이다.
一念中에 現盡前際一切劫의所有業果種種差別하야 令諸衆生으로 悉得知見無礙用과 一微塵에出現廣大佛刹無量莊嚴無礙用과
“한 생각 가운데서 지난 세상 모든 겁에 있던 업과 과보가 갖가지로 차별함을 나타내어 모든 중생들이 다 알고 보게 하는 걸림 없는 작용과 한 티끌 속에서 광대한 세계의 한량없는 장엄을 나타내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라.”(머리카락, 담배꽁초, 돌조고각, 세포하나 등등)
강설 ; “한 생각 가운데서 지난 세상 모든 겁에 있던 업과 과보가 갖가지로 차별함을 나타내어 모든 중생이 모두 알고 보게 한다.” 이 얼마나 신기한 일인가. 그러나 요즘의 영화기술을 좀 더 발전시키면 결코 신기한 일도 아니고 어려운 일도 아닐 것이다. 한 먼지 속에 광대한 세계의 한량없는 장엄을 나타내는 일은 경문에서 늘 나타나는 말씀이다.
令一切世界로 具足莊嚴無礙用과 普入一切三世無礙用과 放大法光明하야 現一切諸佛菩提衆生行願無礙用과
“모든 세계로 하여금 장엄을 구족하게 하는 걸림 없는 작용과 모든 세 세상에 두루 들어가는 걸림 없는 작용과 큰 법의 광명을 놓아 일체 모든 부처님의 보리와 중생의 행과 원을 나타내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라.”
강설 ; 일체세계는 본래로 장엄이 구족하여있다. 또 보살은 모든 세 세상에 두루 들어간다. 큰 법의 광명으로 모든 불사가 이루어진다. 그래서 일체 모든 부처님의 보리와 중생의 행과 원을 나타낸다.
善守護一切天龍夜叉乾闥婆阿修羅迦樓羅緊那羅摩睺羅伽釋梵護世聲聞獨覺菩薩과 所有如來十力菩薩善根無礙用이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得此無礙用하면 則能普入一切佛法이니라
“모든 천신과 용과 야차와 건달바와 아수라와 가루라와 긴나라와 마후라가와 제석과 범천과 세상을 보호하는 이와 성문과 독각과 보살과 여래의 열 가지 힘과 보살의 선근을 잘 수호하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 이것이 열이니라. 만일 모든 보살들이 이 걸림 없는 작용을 얻으면 능히 모든 불법에 두루 들어가느니라.”
강설 ; 보살은 모든 이들을 잘 수호하고 모든 것을 잘 수호한다. 심지어 여래의 열 가지 힘과 보살의 착한 뿌리까지 잘 수호한다. 이것이 또 보살의 걸림 없는 작용이다.
5월 10일 오전 11시 30분 녹화 분
91
10) 열 가지 신통한 힘[神力]의 걸림 없는 작용
佛子야菩薩摩訶薩이有十種神力無礙用하니 何等이 爲十고所謂以不可說世界로置一塵中無礙用과於一塵中에現等法界一切佛刹無礙用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신통한 힘[神力]의 걸림 없는 작용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말할 수 없는 세계를 한 티끌 속에 두는 걸림 없는 작용과 한 티끌 속에서 법계와 같은 모든 세계를 나타내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라.”
강설 ; 보살은 말할 수 없는 세계를 한 티끌 속에 두기도 하고, 한 티끌 속에 법계와 같은 모든 세계를 나타내기도 하는 걸림 없는 작용이 있다.
以一切大海水로置一毛孔하야 周旋往返十方世界호대 而於衆生에無所觸嬈無礙用과以不可說世界로 內自身中하야 示現一切神通所作無礙用과
“일체 큰 바닷물을 한 모공(毛孔)에 넣어 가지고 시방세계로 두루 돌아다니면서도 중생을 부딪치거나 번거롭게 하지 않는 걸림 없는 작용과 말할 수 없는 세계를 제 몸 속에 넣어서 모든 신통한 일을 나타내 보이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라.”
강설 ; 또 보살은 일체 큰 바닷물을 한 모공(毛孔)에 넣어 가지고 시방세계로 두루 돌아다니면서도 중생을 부딪치거나 번거롭게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낱낱 모공마다에 있는 물의 양은 얼마나 될까. 또 말할 수 없는 세계를 제 몸 속에 넣어서 모든 신통한 일을 나타내 보이기도 한다. 이것이 보살의 신통한 힘의 걸림 없는 작용이다.
以一毛로繫不可數金剛圍山하야 持以遊行一切世界호대 不令衆生으로 生恐怖心無礙用과
“한 터럭으로써 셀 수 없는 금강위산을 얽어매어 가지고 모든 세계로 돌아다니면서도 중생들로 하여금 두려운 마음을 내지 않게 하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라.”
강설 ; 털 하나로 무수한 금강위산을 얽어매어 가지고 세계를 돌아다닌다면 얼마나 위태로워 보일까. 그러나 중생들로 하여금 두려운 마음을 전혀 나지 않게 한다.
以不可說劫으로 作一劫하고 一劫으로 作不可說劫하야 於中에 示現成壞差別호대不令衆生으로 心有恐怖無礙用과
“말할 수 없는 겁으로 한 겁을 만들고 한 겁으로 말할 수 없는 겁을 만들며, 그 가운데서 이루고 무너지는 차별을 나타내 보이되 중생들의 마음을 두렵지 않게 하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라.”
강설 ; 한 순간이 한량없는 겁이고 한량없는 겁이 한 순간이라고 일찍이 말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그 한량없는 겁 속에는 무수한 성주괴공이 거듭한다. 한 순간에 무수한 성주괴공이 거듭하더라도 중생들의 마음을 두렵지 않게 한다.
於一切世界에現水火風災種種變壞호대 而不惱衆生無礙用과一切世界三災壞時에 悉能護持一切衆生資生之具하야 不令損缺無礙用과
“모든 세계에서 수재와 화재와 풍재의 갖가지 변괴(變壞)가 나타나도 중생을 시끄럽게 하지 않는 걸림 없는 작용과 모든 세계의 수재와 화재와 풍재로 무너질 적에 모든 중생들의 살림살이를 보호하여 파괴되지 않게 하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라.”
강설 ; 또 보살은 중생들의 미혹을 없애고 지혜를 깨닫게 하는 것만 아니라 세상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재앙에서도 괴롭게 하지 않도록 한다. 심지어 모든 중생들의 살림살이를 잘 보호하여 파괴되지 않게 한다. 이것이 보살의 걸림 없는 작용이다.
以一手로 持不思議世界하야 擲不可說世界之外호대 不令衆生으로 有驚怖想無礙用과 說一切刹이 同於虛空하야 令諸衆生으로 悉得悟解無礙用이 是爲十이니
“한 손으로 부사의한 세계를 들어 말할 수 없는 세계 밖으로 던져도 중생들을 놀래지 않게 하는 걸림 없는 작용과 모든 세계가 허공과 같음을 말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 이것이 열이니라.”
강설 ; 설사 한 손으로 무수한 세계를 들어 무수한 세계 밖으로 던지는 일이 있다하더라도 중생들을 놀래지 않게 한다. 또 일체 세계가 허공과 같이 텅 비었음을 말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한다. 이것이 보살의 신통한 힘의 걸림 없는 작용이다.
5월 12일 오전 10시 30분 녹화전송 완료
92
11) 열 가지 힘의 걸림 없는 작용
佛子야菩薩摩訶薩이有十種力無礙用하니 何等이 爲十고所謂衆生力無礙用이니 敎化調伏하야 不捨離故며 刹力無礙用이니 示現不可說莊嚴하야 而莊嚴故며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힘의 걸림 없는 작용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중생의 힘 걸림 없는 작용이니 교화하고 조복시켜 버리지 않는 연고며, 세계의 힘 걸림 없는 작용이니 말할 수 없는 장엄을 나타내어 장엄하는 연고이니라.”
강설 ; 보살이 힘의 걸림 없는 작용에는 먼저 중생들에게는 교화하고 조복하는 일이다. 또 세계에 있어서는 무수한 장엄으로 장엄하는 일이다.
法力無礙用이니 令一切身으로入無身故며劫力無礙用이니 修行不斷故며佛力無礙用이니 覺悟睡眠故며行力無礙用이니 攝取一切菩薩行故며
“법의 힘 걸림 없는 작용이니 모든 몸으로 몸이 없는 데 들게 하는 연고며, 겁의 힘 걸림 없는 작용이니 수행이 끊이지 않는 연고며, 부처님의 힘 걸림 없는 작용이니 잠을 깨는 연고며, 행하는 힘 걸림 없는 작용이니 모든 보살의 행을 거두어 가지는 연고이니라.”
강설 ; 다음은 법의 힘 걸림 없는 작용과 겁의 힘 걸림 없는 작용과 부처님의 힘 걸림 없는 작용과 행하는 힘 걸림 없는 작용 등을 밝힌 것이다.
如來力無礙用이니 度脫一切衆生故며 無師力無礙用이니 自覺一切諸法故며 一切智力無礙用이니 以一切智로 成正覺故며 大悲力無礙用이니 不捨一切衆生故라 是爲十이니라
“여래의 힘 걸림 없는 작용이니 일체중생을 제도하여 해탈케 하는 연고며, 스승 없는 힘 걸림 없는 작용이니 스스로 일체 모든 법을 깨닫는 연고며, 일체 지혜의 힘 걸림 없는 작용이니 일체 지혜로 바른 깨달음을 이루는 연고며, 큰 자비의 힘 걸림 없는 작용이니 일체중생을 버리지 않는 연고니, 이것이 열이니라.”
강설 ; 여래의 힘 걸림 없는 작용과 스승 없는 힘 걸림 없는 작용과 일체 지혜의 힘 걸림 없는 작용과 큰 자비의 힘 걸림 없는 작용 등을 밝힌 것이다.
佛子야 如是가 名爲菩薩摩訶薩의 十種無礙用이니 若有得此十無礙用者면 於阿耨多羅三藐三菩提에 欲成不成을 隨意無違하야 雖成正覺이나 而亦不斷行菩薩行하나니 何以故오 菩薩摩訶薩이 發大誓願하야 入無邊無礙用門하야 善巧示現故니라
“불자여,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걸림 없는 작용’이라 이름 하나니, 만약 이 열 가지 걸림 없는 작용을 얻는 이가 있으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거나 이루지 않거나 마음대로 되고 어그러지지 않을 것이며, 비록 바른 깨달음을 이룬다 하여도 또한 보살행 행하는 것을 끊지 않을 것이니, 왜냐하면 보살마하살이 큰 서원을 내고 그지없이 걸림 없는 작용의 문에 들어가 교묘하게 나타내어 보이는 연고이니라.”
강설 ; 그동안 열 가지 걸림 없는 작용에서 낱낱이 다시 열 가지로 밝힌 내용이다. 즉 1백 가지의 걸림 없는 작용을 설한 것이다. 위와 같은 걸림 없는 작용을 얻으면 무상정각을 이루고 이루지 않고를 마음대로 한다. 또 비록 정각을 이루어 그 지위에 있더라도 다시 보살로 돌아와서 보살행을 끊지 않고 계속한다. 왜냐하면 보살이 큰 서원을 내고 그지없이 걸림 없는 작용의 문에 들어가 마음대로 능숙하게 보살행을 나타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위대한 보살들은 벌써 정각의 부처님 지위를 끝내고 다시 보살행을 행하여 중생을 교화하는 것이 근본 목적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여러 가지 불교에서 가장 이상적인 대승보살불교이다.
93
<9> 무박무착해탈(無縛無着解脫)회향을 답하다
1) 보살은 열 가지 유희(遊戱)가 있다
佛子야菩薩摩訶薩이有十種遊戱하니 何等이 爲十고所謂以衆生身으로 作刹身호대 而亦不壞衆生身이是菩薩遊戱요以刹身으로 作衆生身호대 而亦不壞於刹身이是菩薩遊戱요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유희(遊戱)가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중생의 몸으로써 세계의 몸을 만들어도 중생의 몸을 깨뜨리지 않나니 이것이 보살의 유희니라. 세계의 몸으로 중생의 몸을 만들어도 또한 세계의 몸을 깨뜨리지 않나니 이것이 보살의 유희니라.”
강설 ; 유희(遊戱)란 재미있게 노는 놀이이다. 즉 세속에서는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등에서 일정한 방법으로 재미있게 하는 율동과 같은 것인데 보살에게도 이러한 유희가 있다. 먼저 중생의 몸으로 세계를 만들어도 그 중생의 몸은 파괴되거나 망가지지 않는다. 다시 세계로써 중생의 몸을 만들어도 역시 그와 같다. 이것이 보살들의 놀이이다.
於佛身에示現聲聞獨覺身호대 而不損減如來身이是菩薩遊戱요於聲聞獨覺身에示現如來身호대 而不增長聲聞獨覺身이是菩薩遊戱요
“부처님의 몸에서 성문과 독각의 몸을 나타내어도 여래의 몸을 감소하지 않나니, 이것이 보살의 유희니라. 성문과 독각의 몸에 여래의 몸을 나타내어도 성문과 독각의 몸을 증장하지 않나니, 이것이 보살의 유희니라.”
강설 ; 보살은 모든 작용을 마음대로 다 나타내는 재주꾼이다. 부처님의 몸과 성문, 독각 등의 몸을 마음대로 바꿔가며 나타내어도 조금도 더하거나 덜함이 없다. 이것이 보살들이 즐기는 유희이다.
於菩薩行身에示現成正覺身호대 而亦不斷菩薩行身이是菩薩遊戱요 於成正覺身에示現修菩薩行身호대 而亦不減成菩提身이是菩薩遊戱요
“보살의 행을 하는 몸에 바른 깨달음을 이루는 몸을 나타내 보여도 보살의 행을 하는 몸은 끊어지지 않나니, 이것이 보살의 유희니라. 바른 깨달음을 이룬 몸에 보살의 행을 닦는 몸을 나타내 보여도 보리를 이루는 몸은 감소하지 않나니, 이것이 보살의 유희니라.”
강설 ; 또 보살의 몸과 정각이룬 몸과의 관계에서도 위와 같아서 보살은 마음대로 유희한다.
於涅槃界에示現生死身호대 而不着生死가是菩薩遊戱요於生死界에示現涅槃호대 亦不究竟入於涅槃이是菩薩遊戱요入於三昧하야 而示現行住坐臥一切業호대 亦不捨三昧正受가是菩薩遊戱요
“열반의 세계에 생사의 몸을 나타내 보여도 생사에 집착하지 않나니, 이것이 보살의 유희니라. 생사하는 세계에 열반을 나타내 보여도 또한 끝까지 열반에 들지 않나니, 이것이 보살의 유희니라. 삼매에 들었으나 가고, 머물고, 앉고, 눕는 모든 업을 나타내어도 삼매의 바르게 받아드림을 버리지 않나니, 이것이 보살의 유희니라.”
강설 ; 열반과 생사와의 관계도 서로 자유자재해서 그야말로 생사와 열반이 서로 한 가지[生死涅槃相共和]이다. 그래서 생사를 떠나야 한다고 집착하지 않는다. 그대로 생사에서 열반을 나타내기에 또한 끝까지 열반에 들어가지 않는다. 생사 하나하나가 모두 열반의 조각조각들이다. 보살은 본래 생사에서 중생과 함께하기를 좋아하지 열반에 들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진여열반과 자성열반과 참마음열반을 떠난 것도 아니다. 이것이 보살의 유희다.
보살은 또 삼매에 들어 있으면서도 가고, 머물고, 앉고, 눕는 모든 업을 다 나타낸다. 또 가고, 머물고, 앉고, 눕는 모든 업을 다 나타내더라도 삼매를 버린 적이 없다. 이것이 또한 보살의 유희다.
在一佛所하야 聞法受持에 其身不動하고 而以三昧力으로 於不可說諸佛會中에 各各現身호대 亦不分身하며 亦不起定하고 而聞法受持하야 相續不斷하며
“한 부처님 계신 데서 법을 듣고 받아 지니며 그 몸은 동요하지 않되 삼매의 힘으로 말할 수 없는 부처님 회중에서 각각 몸을 나타내면서도 또한 몸을 나누지 않으며 또한 선정에서 일어나지도 않으며 법을 듣고 받아 지님이 계속하여 끊어지지 않느니라.”
강설 ; 마술을 하려면 이쯤 해야 비로소 마술을 한다고 할 것이다. 보살은 한 부처님의 처소에서 법문을 듣고 가만히 있으면서 한편 무수한 모든 부처님 회상에서 몸을 다 나타낸다. 그렇다고 해서 몸을 나누거나 삼매에서 일어나거나 하지 않는다. 법문을 듣는 일은 연속부절이다. 그야말로 천강에 물이 있으니 천강에 달이 비친다. 이것이 보살의 유희다.
如是念念於一一三昧身에 各出生不可說不可說三昧身하야 如是次第한 一切諸劫은 猶可窮盡이어니와 而菩薩三昧身은 不可窮盡이 是菩薩遊戱라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得如來無上大智遊戱니라
“이와 같이 잠깐 잠깐마다 낱낱 삼매의 몸에서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삼매의 몸을 출생하며, 이와 같이 차례차례로 일체 모든 겁이 오히려 다할지언정 보살의 삼매의 몸은 다할 수 없나니, 이것이 보살의 유희니라. 이것이 열이니, 만일 모든 보살들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위없는 큰 지혜의 유희를 얻느니라.”
강설 ; 어디 그뿐인가. 보살의 마술유희는 점입가경이다. 위에서 말한바와 같이 잠깐 잠깐마다 낱낱 삼매의 몸에서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삼매의 몸을 나타내며, 이와 같이 차례차례로 일체 모든 겁이 오히려 다할지언정 보살의 삼매의 몸은 다하지 않는다. 모든 공간과 모든 시간에 걸쳐서 보살의 유희는 자유자재하다.
5월 13일 오후 2시 40분 녹화전송완료
94
2) 보살은 열 가지 경계가 있다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境界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示現無邊法界門하야 令衆生得入이 是菩薩境界요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경계가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그지없는 법계의 문을 나타내어 중생들이 들어가게 하나니, 이것이 보살의 경계이니라.”
강설 ; 보살의 유희도 곧 보살의 경계이고, 보살의 경계도 곧 보살의 유희이다. 보살은 그지없이 많고 많은 법계의 문을 나타내어 일체중생들이 다 들어가게 한다. 실은 일체중생과 일체존재는 어느 한 순간도 법의 세계를 떠난 적이 없다. 법의 세계 안에서 생사윤회를 거듭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것이 법계인가. 생사윤회인가. 보살의 경계가 보살의 경계가 아니라 일체중생, 일체생명, 일체존재의 경계다.
示現一切世界無量妙莊嚴하야 ,令衆生得入이是菩薩境界요
“모든 세계의 한량없는 묘한 장엄을 나타내어 중생들이 들어가게 하나니, 이것이 보살의 경계이니라.”
강설 ; 보살은 또 모든 세계의 한량없는 묘한 장엄을 나타내어 중생들이 그 속에 다 들어가게 한다. 그러므로 일체중생들은 항상 아름다운 장엄 속에서 살고 있다. 중생들은 그 사실을 알든 모르든 이것은 보살의 경계이다.
化往一切衆生界하야 悉方便開悟가 是菩薩境界요
“모든 중생의 세계에 변화하여 가서 모두 다 방편으로 깨우치나니, 이것이 보살의 경계이니라.”
강설 ; 또 보살은 모든 중생의 세계에 변화하여 가서 방편으로 그들을 다 깨닫게 한다.
於如來身에出菩薩身하고 於菩薩身에出如來身이是菩薩境界요
“여래의 몸에서 보살의 몸을 내고, 보살의 몸에서 여래의 몸을 내나니, 이것이 보살의 경계이니라.”
강설 ; 또 진정한 보살의 경계는 여래의 몸과 보살의 몸이 자유자재하다. 그래서 서로 번갈아 가며 출생한다.
於虛空界에現世界하고 於世界에現虛空界가是菩薩境界요
“허공계에서 세계를 나타내고 세계에서 허공계를 나타내나니, 이것이 보살의 경계이니라.”
강설 ; 또 보살의 경계에는 허공계와 세계가 둘이 아니다. 허공계가 세계고 세계가 허공계다. 서로 서로 자유자재하게 나타낸다.
於生死界에現涅槃界하고 於涅槃界에現生死界가是菩薩境界요
“생사의 경계에서 열반의 경계를 나타내고, 열반의 경계에서 생사의 경계를 나타내나니, 이것이 보살의 경계이니라.”
강설 ; 그러므로 생사를 떠나서 열반을 찾아서는 안 되고 열반을 떠나서 생사를 찾아서도 안 된다. 생사와 열반이 하나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하나인데 이름을 만들어 붙였을 뿐이다.
於一衆生語言中에出生一切佛法語言이是菩薩境界요
“한 중생의 말 가운데서 일체 불법의 말을 내나니, 이것이 보살의 경계이니라.”
강설 ; 일체법이 모두가 불법이며 일체중생의 말이 그대로 불법의 말이다. 이것이 보살의 경계다.
以無邊身으로現作一身하고 一身으로 作一切差別身이是菩薩境界요
“그지없는 몸으로 한 몸을 만들고, 한 몸으로 모든 차별한 몸을 만드는 것을 나타내나니, 이것이 보살의 경계이니라.”
강설 ; 보살은 또 그지없이 많은 몸으로 한 몸을 만들고, 한 몸으로 그지없이 많은 온갖 차별한 몸을 만든다.
以一身으로 充滿一切法界가是菩薩境界요
“한 몸으로써 모든 법계에 가득하나니, 이것이 보살의 경계이니라.”
강설 ; 부처님의 몸은 법계에 충만하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보살은 그와 같은 이치대로 한 몸으로서 일체법계에 충만하게 한다. 실로 보살의 경계는 본래로 존재하는 이치와 같다.
於一念中에 令一切衆生으로 發菩提心하야 各現無量身하야 成等正覺이 是菩薩境界라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得如來無上大智慧境界니라
“잠깐 동안에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보리심을 내게 하며 각각 한량없는 몸을 나타내어 정등각을 이루게 하나니, 이것이 보살의 경계이니라. 이것이 열이니, 만일 모든 보살들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곧 여래의 위없는 큰 지혜의 경계를 얻느니라.”
강설 ; 보살은 아주 짧은 한 순간에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보리심을 내게 하고, 또 그 중생들이 각각 한량없는 몸을 나타내어 정등각을 이루게 한다. 그렇다면 우리들 중생은 이미 보리심을 내었으며 등정각을 이루었다. 즉 중생들의 경계에서는 불보살이 모두 중생이고, 불보살의 경계에서는 일체중생들이 모두 불보살이다. 예컨대 꿈속에서는 일체존재와 일체 사건들은 모두가 꿈속경계의 일이고, 깨어있을 때의 모든 존재와 모든 사건은 모두 깨어있는 경계의 존재며 사건들인 것과 같다.
95
3) 보살은 열 가지 힘이 있다
佛子야菩薩摩訶薩이有十種力하니 何等이 爲十고所謂深心力이니 不雜一切世情故며增上深心力이니 不捨一切佛法故며 方便力이니 諸有所作究竟故며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힘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깊은 마음의 힘이니, 모든 세상의 정(情)에 섞이지 않은 연고이니라. 더 올라가는 깊은 마음의 힘이니, 모든 불법을 버리지 않는 연고이니라. 방편의 힘이니, 모든 짓는 일을 성취[究竟]하는 연고이니라.”
강설 ; 보살의 열 가지 힘을 밝혔다. 세상의 이치를 알고 일체 존재의 원리를 아는 수행자는 모든 세상의 정에 섞이지 않는다. 만약 세상의 정에 섞이면 힘이 없고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보살은 깊은 마음의 힘이 있다. 또 그것에 머물지 않고 더욱 올라가는 깊은 마음의 힘으로 일체 불법을 굳게 지니며, 또 방편의 힘으로 모든 하는 일들을 성취한다.
智力이니 了知一切心行故며願力이니 一切所求令滿故며行力이니 盡未來際不斷故며乘力이니 能出生一切乘호대 而不捨大乘故며神變力이니 於一一毛孔中에各各示現一切淸淨世界하야 一切如來가出興世故며
“지혜의 힘이니, 일체 마음의 행을 아는 연고이니라. 원하는 힘이니, 모든 구하는 바를 만족케 하는 연고이니라. 실천하는[行] 힘이니, 오는 세월이 끝나도록 끊어지지 않는 연고이니라. 올라타는 힘[乘力]이니, 모든 탈 것을 내지마는 대승을 버리지 않는 연고이니라. 신통변화의 힘이니, 낱낱 모공(毛孔) 속에서 모든 청정한 세계와 일체 여래께서 세상에 출현하심을 각각 나타내는 연고이니라.”
강설 ; 보살은 또 지혜의 힘과 서원의 힘과 행하는 힘과 올라타는 힘과 신통변화의 힘 등이 있다.
菩提力이니 令一切衆生으로 發心成佛하야 無斷絶故며 轉法輪力이니 說一句法하야 悉稱一切衆生諸根性欲故라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得諸佛無上一切智十力이니라
“보리의 힘이니, 일체중생들로 하여금 발심하고 성불하게 하여 끊어짐이 없게 하는 연고이니라. 법륜을 굴리는 힘이니, 한 구절의 법을 말하여도 일체중생의 모든 근성과 욕망에 맞는 연고이니라. 이것이 열이니, 만일 모든 보살들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모든 부처님의 위없는 일체 지혜의 열 가지 힘을 얻느니라.”
강설 ; 또 보리, 즉 깨달음의 힘이 있어서 일체중생들로 하여금 발심하고 성불하게 하여 끊어짐이 없게 한다. 또 법륜을 굴리는 힘은 한 구절의 법을 말하여도 일체중생의 모든 근성과 욕망에 알맞게 한다. 중생들은 위와 같은 힘이 아니라 돈의 힘과 권세의 힘과 무력과 완력 등으로 행사한다.
96
<10> 등법계무량(等法界無量)회향을 답하다
1) 보살은 열 가지 두려움 없음[無畏]이 있다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無畏하니 何等이 爲十고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悉能聞持一切言說하야 作如是念호대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두려움 없음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모든 말을 다 들어 지니고, 이와 같은 생각을 하느니라.”
設有衆生이 無量無邊하야 從十方來하야 以百千大法으로 而問於我라도 我於彼問에不見微少難可答相이니 以不見故로心得無畏하야 究竟到彼大無畏岸하며 隨其所問하야 悉能酬對호대 斷其疑惑하야 無有怯弱이是爲菩薩第一無畏요
“‘설사 한량없고 그지없는 중생들이 있어서 시방으로부터 와서 백 천 가지 큰 법으로써 내게 묻더라도 나는 그들의 물음에 대하여 조금도 답하기 어려움을 보지 않나니, 보지 않으므로 두려운 마음이 없고 구경에는 저 크게 두려움이 없는 언덕에 이르며, 그들이 묻는 대로 모두 대답하여 의심을 끊고 겁약함이 없게 하리라.’하나니, 이것이 보살의 첫째 두려움 없음이니라.”
강설 ; 두려움 없음[無畏]이란 무소외(無所畏)라고도 한다. 불ㆍ보살이 대중을 향하여 법을 설할 때에 마음에 두려움이 없는 것을 말한다. 보살이 이 지구상에 있는 말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듣고 다 안다면 설사 한량없는 중생들이 시방으로부터 와서 백 천 가지 큰 법으로 묻더라도 그들의 물음에 대하여 조금도 답하기 어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질문도 모두 대답할 수 있기 때문에 마음에 전혀 두려움이 없을 것이다.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得如來灌頂無礙辯才하야 到於一切文字言音으로 開示秘密究竟彼岸하야 作如是念호대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여래가 정수리에 물 붓는 걸림 없는 변재를 얻고는 온갖 문자와 말로 비밀을 열어 보이는 구경의 저 언덕에 이르고 이와 같은 생각을 하느니라.”
設有衆生이 無量無邊하야 從十方來하야 以無量法으로 而問於我라도 我於彼問에不見微少難可答相이니 以不見故로心得無畏하야 究竟到彼大無畏岸하야 隨其所問하야 悉能酬對호대 斷其疑惑하야 無有恐懼가是爲菩薩第二無畏요
“‘설사 한량없고 그지없는 중생이 시방으로부터 와서 한량없는 법으로 내게 묻더라도 나는 그들의 물음에 대하여 조금도 답하기 어려움을 보지 않나니, 보지 않으므로 마음에 두려움이 없고 구경에는 저 크게 두려움이 없는 언덕에 이르며, 그들이 묻는 대로 모두 대답하여 의심을 끊고 두려움이 없게 하리라.’하나니, 이것이 보살의 둘째 두려움 없음이니라.”
강설 ; 보살은 여래가 인가하는 걸림 없는 변재를 얻고 온갖 글과 말로 비밀을 열어 보이는 구경의 저 언덕에 이르렀으므로 설사 한량없고 그지없는 중생들이 시방으로부터 와서 한량없는 법으로 묻더라도 그들의 물음에 대하여 조금도 답하기 어려워하지 않는다.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知一切法空하야 離我離我所하며 無作無作者하며 無知者하며 無命者하며 無養育者하며 無補伽羅하며 離蘊界處하야 永出諸見하야 心如虛空하야 作如是念호대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모든 법이 공한 줄을 알고 나를 떠나고 나의 것에서 떠났으며, 지음도 없고 짓는 이도 없으며, 아는 이도 없고 생명이란 것도 없으며, 양육하는 이도 없고 보가라(補伽羅)도 없으며, 오온과 십팔계와 십이처도 떠났으며, 모든 소견을 아주 벗어나 마음이 허공과 같아서 이와 같은 생각을 하느니라.”
강설 ; 보살이 대승보살의 행을 당당하게 할 수 있으려면 가장 먼저 모든 법이 공한 줄을 알고 나를 떠나고 나의 것에서 떠나야 한다. 설사 원력이 있더라도 아직 내가 있고 나의 것이 있는 상태라면 법을 설함에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보가라(補伽羅)는 보특가라(補特伽羅)ㆍ부특가라(富特伽羅)ㆍ복가라(福伽羅)ㆍ보가라(補伽羅)ㆍ불가라(弗伽羅)ㆍ부특가야(富特伽耶)라고도 쓰며, 삭취취(數取趣)라고 번역한다. 유정(有情) 또는 중생의 아(我)와 오온의 아를 말한다. 중생은 번뇌와 업의 인연으로 자주 6취에 왕래하므로 자주 자주 6취에 나아간다는 삭취취라고 한다. 오온이 자신이라는 것도 떠나고 십팔계와 십이처도 떠나고, 모든 소견을 아주 벗어나 마음이 허공과 같아야 비로소 당당하게 법을 설할 수 있을 것이다.
不見衆生이有微少相도能損惱我身語意業이니 何以故오菩薩이 遠離我我所故로不見諸法에有少性相이니 以不見故로心得無畏하야 究竟到彼大無畏岸하며 堅固勇猛하야 不可沮壞가是爲菩薩第三無畏요
“‘중생이 조그만 상도 나의 몸과 말과 뜻으로 짓는 업을 손상할 것이 있음을 보지 않나니, 왜냐하면 보살은 나와 나의 것을 멀리 떠난 연고며, 모든 법이 조그만 성품이나 모양이 있음을 보지 않나니, 보지 않으므로 두려운 마음이 없고 구경에 저 크게 두려움이 없는 언덕에 이르며, 견고하고 용맹하여 깨뜨리지 못하리라.’하나니, 이것이 보살의 셋째 두려움 없음이니라.”
강설 ; 보살이 나를 떠나고, 나의 것을 떠나고, 오온도 떠나고, 십팔계와 십이처도 다 떠났으므로 조그만 성품과 상도 자신의 몸과 말과 뜻으로 짓는 업을 손상할 것이 있음을 보지 않는다. 내가 없는데 무엇이 손상을 입겠는가. 이와 같아야 법을 설함에 있어 언제나 당당하고 두려움이 없을 것이다.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佛力所護와 佛力所持로 住佛威儀하야 所行眞實하야 無有變易하야 作如是念호대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부처님 힘으로 보호되고 부처님 힘으로 유지되며, 부처님의 위의에 머물러 행하는 바가 진실하고 변하지 아니하여 이와 같은 생각을 하느니라.”
강설 ; 보살은 또 부처님의 힘으로 보호되고, 부처님의 힘으로 유지되며, 부처님의 위의에 머물러 일체 행하는 바가 진실하고 변하지 아니하여야 한다.
我不見有少分威儀도令諸衆生으로 生訶責相이니 以不見故로心得無畏하야 於大衆中에安隱說法이 是爲菩薩第四無畏요
“‘나는 조그만 행동도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책망할 것을 보게 하지 않으며, 보지 않으므로 두려운 마음이 없고 대중 가운데서 편안하게 법을 말하리라.’하나니, 이것이 보살의 넷째 두려움 없음이니라.”
강설 ; 보살이 만약 부처님의 힘으로 보호받지 못해서 일체 행위에 빈틈이 있고 약점이 있게 된다면 두려운 마음 때문에 대중 가운데서 편안하게 법을 설하지 못할 것이다.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身語意業이 皆悉淸淨하야 鮮白柔和하야 遠離衆惡하고 作如是念호대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몸과 말과 뜻의 업이 모두 청정하고 곱고 깨끗하고 부드러워 모든 나쁜 것을 멀리 여의고 이와 같은 생각을 하느니라.”
강설 ; 보살은 또 몸과 말과 뜻의 업이 모두 청정하고 곱고 깨끗하고 부드러워 모든 나쁜 것을 멀리 떠나야 한다. 만약 보살이 신구의 삼업에 허물이 많이 있다면 대중들 앞에서 어떻게 법을 설할 수 있겠는가.
我不自見身語意業이而有少分도可訶責相이니 以不見故로心得無畏하야 能令衆生으로 住於佛法이是爲菩薩第五無畏요
“‘나는 스스로 몸과 말과 뜻으로 하는 일을 조금도 책망 받을 만한 것이 있음을 보지 않으며, 보지 않으므로 두려운 마음이 없고 능히 중생들을 부처님 법에 머물게 하리라.’하나니, 이것이 보살의 다섯째 두려움 없음이니라.”
강설 ; 보살이 신구의 삼업에 대해서 중생들로부터 책망을 받을 만한 일이 있다면 그는 당당하지 못하고 두려움이 없지 않을 것이다.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金剛力士와 天龍夜叉와 乾闥婆와 阿修羅와 帝釋梵王과 四天王等이 常隨侍衛하며 一切如來가 護念不捨라 菩薩摩訶薩이 作如是念호대
“불자여, 보살마하살을 금강역사와 천신과 용과 야차와 건달바와 아수라와 제석천과 범왕과 사천왕들이 항상 시위하고, 모든 여래께서 보호하여 버리지 않거든,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생각을 하느니라.”
강설 ; 불교에서는 어떤 작은 불사를 짓더라도 그것은 모든 불보살님들과 천룡팔부의 가호아래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언제나 일체 불보살들과 천룡팔부가 가호해 주시기를 축원하는 것이다. 필자가 일체 생활 속에서 끊임없이 화엄성중을 염하는 것은 모두 이와 같은 사실 때문이다.
我不見有衆魔外道와有見衆生이能來障我行菩薩道를 少分之相이니 以不見故로心得無畏하야 究竟到彼大無畏岸하며 發歡喜心하야 行菩薩行이是爲菩薩第六無畏요
“‘나는 여러 마(魔)와 외도와 딴 소견 가진 중생이 나의 보살의 도를 행함을 장애할 수 있는 조그만 모양도 보지 않으며, 보지 않으므로 마음에 두려움이 없고 구경에는 저 크게 두려움 없는 언덕에 이르러 환희한 마음을 내어 보살의 행을 행하리라.’하나니, 이것이 보살의 여섯째 두려움 없음이니라.”
강설 ; 보살이 불사를 지음에 항상 불보살들과 천룡팔부가 가호하고 있다면 어떤 마군도 외도도 다른 견해를 가진 중생도 보살이 보살도를 행함에 장애가 없을 것이다. 당당하고 두려움 없이 법을 설하여 중생을 교화하는 불사를 지을 것이다.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已得成就第一念根하야 心無忘失하야 佛所悅可라 作如是念호대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이미 제일가는 생각하는 근본을 성취하여 마음에 잊어버리는 일이 없어 부처님이 좋아하시거든, 이와 같은 생각을 하느니라.”
강설 ; 생각하는 근본, 즉 염근(念根)이란 5근(根)의 하나로서 근은 작용이 있는 것이고 염은 대상의 경계를 마음에 머물러 두고 잊지 않는 작용이다. 보살은 이와 같은 힘을 성취하여 법을 들음에 어떤 것도 잊지 않는다. 한번 들은 것을 잊지 않고 다 기억한다면 누군들 기뻐하지 않겠는가.
如來所說成菩提道文字句法을我不於中에見有少分忘失之相이니 以不見故로 心得無畏하야 受持一切如來正法하야行菩薩行이 是爲菩薩第七無畏요
“‘여래께서 말씀하신 보리도(菩提道)를 이루는 문자와 구절의 법을 나는 그 가운데에 조금도 잊어버리는 모양이 있음을 보지 않으며, 보지 않으므로 마음에 두려움이 없고, 모든 여래의 바른 법을 받들어 지니어 보살의 행을 행하리라.’하나니, 이것이 보살의 일곱째 두려움 없음이니라.”
강설 ; 여래의 정법을 사람들에게 설명하려면 보고 듣고 알고 있던 것을 잊어버리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다 잊어버리고 백에 하나 정도 밖에 기억하지 못하니 얼마나 안타깝고 불편한가. 그러므로 당당하지 못하고 두려움이 없지 않다.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智慧方便을 悉已通達하며 菩薩諸力이 皆得究竟하야 常勤敎化一切衆生하야 恒以願心으로 繫佛菩提하야 而爲悲愍衆生故며 成就衆生故로 於煩惱濁世에 示現受生호대 種族尊貴하며 眷屬圓滿하며 所欲從心하며 歡娛快樂하야 而作是念호대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지혜와 방편을 모두 이미 통달하여 보살의 모든 힘을 다 성취[究竟]하였고, 항상 일체중생을 부지런히 교화하며, 항상 서원하는 마음을 부처님의 깨달음에 메어두었지마는 그러나 중생을 가엾이 여기고 중생을 성취시키려 하는 까닭으로 번뇌가 혼탁한 세상에 태어남을 나타내 보이되 종족과 가문이 존귀하고 권속이 원만하여 하고자 하는 일이 뜻대로 되어 기뻐하고 즐기면서 이와 같은 생각을 하느니라.”
강설 ; 보살은 지혜와 방편과 모든 능력을 다 갖추었으나 일체중생을 교화하려고 항상 서원의 마음으로 부처님의 보리에 있으면서 중생들을 가엾이 여겨 우정 오탁악세(五濁惡世)에 태어나 중생들과 함께한다. 만약 깨달음을 성취하고 열반을 증득하였다고 자기혼자 극락정토에서 편안히 살고 있다면 그것이 도대체 무엇이겠는가. 소승과 대승보살의 길은 이와 같이 다르다.
我雖與此眷屬聚會나 不見少相도 而可貪着하야 廢我修行禪定解脫과 及諸三昧와 總持辯才의 菩薩道法이니
“‘내가 비록 이 권속들과 모여 있지마는 조금이라도 탐착하여 내가 수행하는 선정과 해탈과 모든 삼매와 총지와 변재와 보살도의 법을 그만두는 것을 보지 않노라.”
강설 ; 보살은 일부러 세상에 태어나서 세상의 권속들과 함께 있어도 그들을 탐착하여 보살이 수행하는 선정과 해탈과 모든 삼매와 총지와 변재와 보살도의 법을 그만두지 않는다. 만약 세상의 권속들을 탐착하여 보살행을 그만 둔다면 그는 보살이 아니고 평범한 중생일 뿐이기 때문이다.
何以故오 菩薩摩訶薩이 於一切法에 已得自在하야 到於彼岸하고 修菩薩行호대 誓不斷絶하야 不見世間에 有一境界도 而能惑亂菩薩道者니 以不見故로 心得無畏하야 究竟到彼大無畏岸하며 以大願力으로 於一切世界에 示現受生이 是爲菩薩第八無畏요
“왜냐하면 보살마하살은 모든 법에 이미 자유자재하여 저 언덕에 이르렀으며, 보살행을 닦되 서원을 끊지 않아서 세간에서 한 가지 경계도 보살의 도를 미혹케 하거나 어지럽게 함을 보지 않나니, 보지 않으므로 마음에 두려움이 없고 구경에 저 크게 두려움이 없는 언덕에 이르고 큰 서원의 힘으로 모든 세계에 태어남을 나타내 보이리라.’하나니, 이것이 보살의 여덟째 두려움 없음이니라.”
강설 ; 보살은 모든 법에 이미 자유자재하여 저 언덕에 이르렀으며, 보살행을 닦되 서원을 끊지 않아서 세간에서의 한 가지 경계도 보살의 도를 의혹케 하거나 어지럽게 하지 않는다. 그래서 보살은 당당하여 두려움이 없다.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恒不忘失薩婆若心하고 乘於大乘하야 行菩薩行하야 以一切智大心勢力으로 示現一切聲聞獨覺의 寂靜威儀하고 作如是念호대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항상 일체 지혜의 마음을 잃지 않으며, 대승에 의지하여 보살의 행을 행하며, 일체 지혜의 큰 마음의 세력으로 모든 성문과 독각의 고요한 위의를 나타내 보이고 이와 같은 생각을 하느니라.”
강설 ; 보살이 일체 지혜의 마음을 가지고 대승법으로 보살행을 행하지만 한편 성문이나 독각과 같은 소승들의 고요한 위의를 방편으로 나타내기도 한다.
我不自見當於二乘하고 而取出離少分之相이니 以不見故로心得無畏하야 到彼無上大無畏岸하며 普能示現一切乘道하야 究竟滿足平等大乘이是爲菩薩第九無畏요
“‘나는 스스로 마땅히 이승(二乘)에서 벗어날 만한 조그만 모양도 취함을 보지 않나니, 보지 않으므로 마음에 두려움이 없고, 저 위없고 크게 두려움이 없는 언덕에 이르러 모든 승(乘)의 길을 널리 나타내 보여서 구경에 평등한 대승을 만족하리라.’하나니, 이것이 보살의 아홉째 두려움 없음이니라.”
강설 ; 보살은 큰 서원으로 보살행을 행하지만 한편으로는 성문이나 독각과 같은 고요한 위의를 나타내 보이기도 한다. 보살이 스스로 하는 방편이기에 마음에는 조금도 두려워하는 일이 없다. 당당하게 두려움이 없는 언덕에 이르러 성문이나 독각이나 보살이나 불승(佛乘)까지도 두루 다 나타낸다. 그것이 또한 구경에 평등한 대승을 만족한 모습이다.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成就一切諸白淨法하야 具足善根하며 圓滿神通하야 究竟住於諸佛菩提하며 滿足一切諸菩薩行하야 於諸佛所에 受一切智灌頂之記하고 而常化衆生하야 行菩薩道하야 作如是念호대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일체 모든 희고 깨끗한 법[白淨法]을 성취하여 선근을 구족하고 신통을 원만하였으며, 구경에 모든 부처님의 보리에 머물러 일체 모든 보살의 행을 만족하였고, 모든 부처님 계신 데서 일체 지혜와 정수리에 물 붓는 수기를 받고도 항상 중생을 교화하고, 보살의 도를 행하면서 이와 같은 생각을 하느니라.”
강설 ; 대승보살들은 부처님의 경지에 대한 일체 모든 법들을 이미 끝내고 항상 중생들을 교화하기 위하여 다시 보살의 자리에서 보살도를 행한다. 이와 같이 대승보살불교에서는 부처님의 수업을 벌써 끝낸 이들이라야 보살이 되는 것이다. 마치 선종(禪宗)에서 여래선(如來禪)을 넘어야 조사선(祖師禪)에 나아간다는 것과 같다. 그래서 선문에서 흔히 “그대가 여래선은 알았으나 조사선은 꿈에서도 보지 못하였다.”라고 하는 것이다. 부처님의 경지에 오르는 것은 보살행을 잘 하려는 목적 때문이다.
我不自見有一衆生도 應可成熟에 而不能現諸佛自在하야 而成熟相이니 以不見故로 心得無畏하야 究竟到彼大無畏岸하며 不斷菩薩行하고 不捨菩薩願하야 隨所應化一切衆生하야 現佛境界하야 而化度之가 是爲菩薩第十無畏니라
“‘나는 스스로 한 중생이라도 마땅히 성숙시켜야하나 그러나 모든 부처님의 자재하심을 나타내지 아니함으로 해서 성숙시키지는 것을 스스로 보지 않으며, 보지 않으므로 마음에 두려움이 없고, 구경에 저 크게 두려움이 없는 언덕에 이르러서 보살의 행을 끊지 않고, 보살의 서원을 버리지 않으며, 교화할 만한 모든 중생을 따라서 부처님의 경계를 나타내어 교화하여 제도하리라.’하나니 이것이 보살의 열째 두려움 없음이니라.”
강설 ; 보살은 단 한 사람이라도 자신이 부처님의 자재하신 능력을 나타내지 못한다고 하여 그 사람을 성숙시키지 못하는 일은 없다. 보살은 벌써 부처님의 경지에 대한 수행을 끝 낸지 오래이기 때문에 다시 부처님의 경지를 나타내는 데는 자유자재다. 그래서 보살이 중생들을 교화하는 데는 언제나 당당하여 두려움이 없다. 대승보살불교에서 보살이 부처님의 경지보다 위에 있다는 것을 밝히려고 이와 같이 설한 것이다. 비록 부처님이 되었더라도 보살행을 실천하지 않으면 불법수행은 아직 완성에 이르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佛子야 是爲菩薩摩訶薩의 十種無畏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得諸佛無上大無畏하며 而亦不捨菩薩無畏니라
“불자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두려움 없음이니, 만일 모든 보살들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곧 모든 부처님의 위없이 크게 두려움 없음을 얻으며 또한 보살의 두려움 없음을 버리지 않느니라.”
97
2) 보살은 열 가지 함께하지 않는 법이 있다
佛子야菩薩摩訶薩이有十種不共法하니 何等이 爲十고佛子야菩薩摩訶薩이不由他敎하고 自然修行六波羅蜜하나니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함께 하지 않는 법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다른 이의 가르침을 말미암지 않고 자연히 여섯 가지 바라밀다를 닦아 행하느니라.”
강설 ; 함께하지 않는다는 불공법(不共法)이란 보살의 법이 수승하여 다른 누구와도 같지 않고 보살만이 갖는 특별한 법이라는 뜻이다. 흔히 십팔불공법(十八不共法)과 백사십불공법(百四十不共法)을 말하지만 여기에서 밝히는 보살의 열 가지 불공법과는 다른 차원이다.
다른 이의 가르침을 말미암지 않는다는 불유타교(不由他敎)란 앞으로 열거하는 열 가지 법이 모두 다른 이의 가르침을 말미암지 않고 자연히 갖추고 있다는 뜻이다. 먼저 육바라밀이 사람 사람들에게 본래로 모두 갖추고 있는 법이지 새롭게 배우거나 닦아서 얻는 법이 아니라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사섭법이나 사무량심이나 십선이나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사단(四端)도 그와 같아서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본래로 갖추고 있는 법이다. 본래 갖추고 있는 것이므로 누구에게 배우지 않아도 어떤 경계를 만나면 저절로 그 모든 법이 나타나서 작용하는 것이다. 실로 본래인(本來人)의 법, 무위진인(無位眞人)의 법, 본래 마음의 법, 참마음의 법은 무상심심미묘법(無上甚深微妙法)이다.
常樂大施하야 不生慳悋하며 恒持淨戒하야 無所毁犯하며 具足忍辱하야 心不動搖하며 有大精進하야 未曾退轉하며 善入諸禪하야 永無散亂하며 巧修智慧하야 悉除惡見이 是爲第一不由他敎하고 隨順波羅蜜道하야 修六度不共法이요
“항상 즐겁게 크게 보시하고 아끼는 생각을 내지 않으며, 항상 청정한 계율을 지니고 범하지 않으며, 욕됨을 참는 일을 구족하여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며, 크게 정진하여 일찍이 물러가지 않으며, 선정에 잘 들어가서 영원히 산란하지 않으며, 지혜를 교묘하게 닦고 나쁜 소견을 모두 없애나니, 이것이 첫째 다른 이의 가르침을 말미암지 않고 바라밀의 도를 수순하여 여섯 가지 바라밀을 닦아 행하는 함께하지 않는 법이니라.”
강설 ; 사람 사람들의 마음속에 본래로 갖추고 있는 육바라밀을 낱낱이 밝혔다. 항상 즐겁게 크게 보시하고 아끼는 생각을 내지 않고, 항상 청정한 계율을 지니어 범하지 않고, 욕됨을 참는 일을 구족하여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등이 모두가 다른 이의 가르침을 말미암지 않고 본래부터 스스로 지니고 있는 법으로서 바라밀의 도를 수순하여 여섯 가지 바라밀을 닦아 행하는 함께하지 않는 수승하고도 특별한 법이다.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普能攝受一切衆生하나니 所謂以財及法으로 而行惠施호대 正念現前하며 和顔愛語로 其心歡喜하며 示如實義하야 令得悟解諸佛菩提하며 無有憎嫌하야 平等利益이 是爲第二不由他敎하고 順四攝道하야 勤攝衆生不共法이요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일체중생을 널리 거두어 주나니, 이른바 재물과 법으로 보시를 행하며, 바른 생각이 앞에 나타나 온화한 얼굴로 사랑스러운 말을 하며, 그 마음이 환희하는 진실한 이치를 보여 그들로 하여금 모든 부처님의 보리를 깨닫게 하며, 미워하거나 싫어함이 없이 평등하게 이익 하도록 하나니, 이것이 둘째 다른 이의 가르침을 말미암지 않고 네 가지 거둬 주는 길을 따라 부지런히 중생을 거둬주는 함께하지 않는 법이니라.”
강설 ; 네 가지로 중생들을 거두어주는 법이 본래로 사람 사람들의 마음속에 갖추어져 있어서 가든 사람의 가르침을 말미암지 않고도 때를 따르고 경계를 따라 나타난다는 것을 밝혔다. 재물로 보시하는 것이나 법으로 보시하는 것이나 두려움을 없게 하는 보시나 재물이 들어가지 않는 무재칠시(無財七施)도 일체중생들의 마음속에 이미 다 갖추고 있는 것이다. 화평한 얼굴과 사랑스런 말씨도 누구에게 배우지 않고도 대상에 따라 얼마든지 베풀 수 있는 일이다. 남에게 이로움을 주는 일도 역시 다른 이의 가르침을 의지하지 않고도 실천할 수 있도록 본래 갖추어져 있다. 이것이 함께하지 않는 특별한 법이다.
佛子야菩薩摩訶薩이善巧廻向하나니 所謂不求果報廻向과順佛菩提廻向과不着一切世間禪定三昧廻向과爲利益一切衆生廻向과爲不斷如來智慧廻向이是爲第三不由他敎하고 爲諸衆生하야 發起善根하야 求佛智慧不共法이요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교묘하게 회향하나니, 이른바 과보를 바라지 않는 회향이며, 부처님의 보리를 수순하는 회향이며, 모든 세간의 선정과 삼매에 집착하지 않는 회향이며, 일체중생을 이익하게 하는 회향이며, 여래의 지혜를 끊지 않는 회향이니, 이것이 셋째 다른 이의 가르침을 말미암지 않고 중생들을 위하여 선근을 일으켜서 부처님의 지혜를 구하는 함께하지 않는 법이니라.”
강설 ; 자신이 심은 선근을 다른 사람에게 회향하는 일도 다른 사람에게 배우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일이다. 선근을 회향하고도 그 과보를 구하지 않고, 부처님의 깨달음을 수순하고, 모든 세간의 선정과 삼매에 집착하지 않고, 일체중생을 이익하게 하고, 여래의 지혜를 끊지 않는 등의 회향도 본래로 사람 사람들의 마음속에 이미 다 갖추어져 있는 것이다. 마치 자신의 주머니 속에 수 억만금의 보물을 지니고 있는 것과 같다.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到善巧方便究竟彼岸하야 心恒顧復一切衆生하야 不厭世俗凡愚境界하며 不樂二乘出離之道하며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교묘한 방편으로 구경의 저 언덕에 이르고도 마음으로는 다시 일체중생을 항상 보살피며, 세속의 어리석은 범부의 경계를 싫어하지 않으며, 이승(二乘)의 벗어나는 길을 좋아하지 않느니라.”
강설 ; 보살은 불법수행으로 이르러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경지에 이르렀으나 마음은 항상 일체중생을 보살피어 세속의 법무들의 경계를 싫어하지 않으며 범부들과 함께 한다. 또 성문이나 연각들처럼 생사에서 벗어나 중생들의 삶과 상관이 없는 일은 좋아하지 않는다. 대승보살과 소승성문들의 길은 이와 같이 다르다.
不着己樂하고 唯勤化度호대 善能入出禪定解脫하야 於諸三昧에 悉得自在하며 往來生死를 如遊園觀하야 未曾暫起疲厭之心하며
“자기의 즐거움에 집착하지도 않고, 오직 교화하고 제도하는 일에 부지런하며, 선정과 해탈에 잘 들어가고 나오면서 여러 가지 삼매에 모두 자유 자재하여지고, 생사에 오고 가기를 마치 공원에 노니는듯하여 잠깐도 고달파하는 마음을 내지 않느니라.”
강설 ; 보살은 자신의 즐거움에는 전혀 집착하지 않는다. 오직 부지런히 중생들을 교화하고 제도하는 일에만 마음이 있을 뿐이다. 또 선정과 해탈에 마음대로 들고 나면서 모든 삼매에 자유자재하다. 특히 보살은 생사를 벗어나서 다시는 이 세상에 오지 않는 성문이나 연각들과는 달리 중생들과 같이 생사에 윤회하면서 오고 가기를 공원에 노닐듯이 한다. 생사에 오고 가면서 윤회하기를 잠깐도 고달파하는 마음을 내지 않는다. 이것이 보살의 가장 즐겨하는 일이며 다른 이를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본래 지닌 마음이다.
或住魔宮하고 或爲釋天梵王世主하야 一切生處에 靡不於中에 而現其身하며
“혹은 마군의 궁전에 있기도 하고, 혹은 제석이나 범왕이나 세간 주인도 되어 일체 태어나는 곳마다 그 몸을 다 나타내느니라.”
강설 ; 또 보살은 혹 마군의 궁전에 있기도 하고, 혹은 제석이나 범왕이나 세간 주인도 되어 태어나는 곳마다 그 몸을 나타낸다. 보살이 마군의 무리에 머물지 않으면 누가 마군을 교화하겠으며, 보살이 지옥에 가지 않으면 또 누가 지옥 중생을 교화하겠는가. 또 보살이 아귀나 축생에 가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 또한 보살로서 다른 이의 가르침을 의지하지 않고 본래 스스로 갖춘 마음이다.
或於外道衆中出家호대 而恒遠離一切邪見하며 一切世間文詞呪術字印算數와 乃至遊戱歌舞之法을 悉皆示現하야 無不精巧하며
“혹 어떤 때는 외도들 무리 가운데 출가하면서도 모든 삿된 소견을 항상 멀리 여의며, 온갖 세간의 글이나 주문이나 글자나 산수나 내지 유희하고 노래하고 춤추는 것까지를 다 나타내 보이되 정교하지 아니함이 없느니라.”
강설 ; 보살은 또 어떤 때는 외도들 무리 가운데 우정 출가하면서도 모든 삿된 소견을 멀리 여의며, 온갖 세간의 글이나 주문이나 글자나 산수나 내지 유희하고 노래하고 춤추는 것까지를 다 나타내 보이되 누구보다 익숙하고 능숙하여 정교하지 아니함이 없다. 이것은 다 중생을 교화하기 위한 방편이다. 세간의 글이나 주문이나 글자나 산수나 내지 유희하고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즐겨 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或時示作端正婦人하야 智慧才能이 世中第一이며 於諸世間出世間法에 能問能說하야 問答斷疑하야 皆得究竟하며
“혹 어떤 때는 단정한 부인이 되어 지혜와 재주가 세상의 제일이며, 여러 가지 세간법과 출세간법을 능히 묻고 잘 대답하여 문답으로 의심을 끊어 모두 완벽함을 얻느니라.”
강설 ; 보살은 본래의 능력으로 때로는 세상의 단정한 부인이 되어 제일가는 지혜와 재주를 발휘하기도 한다. 그래서 세상의 일이든 출세간의 일이든 토론하고 묻고 대답함에 걸림이 없다.
一切世間出世間事를 亦悉通達하고 到於彼岸하야 一切衆生이 恒來瞻仰하며
“모든 세간 일과 출세간 일을 모두 통달하여 저 언덕에 이르므로 일체중생이 항상 와서 우러러 보느니라.”
강설 ; 보살은 누구의 가르침을 말미암지 않고도 일체 세간의 일이나 출세간의 일이나 모두 다 통달하여 일체중생들이 우러러 존경하게 된다.
雖現聲聞辟支佛威儀나 而不失大乘心하며 雖念念中에 示成正覺이나 而不斷菩薩行이 是爲第四不由他敎하고 方便善巧로 究竟彼岸不共法이요
“비록 성문이나 벽지불의 위의를 나타내어도 대승의 마음을 잃지 아니하고, 비록 생각마다 바른 깨달음 이룸을 보이나 보살의 행을 끊지 않나니, 이것이 넷째 다른 이의 가르침을 말미암지 않고 방편으로 교묘하게 구경의 저 언덕에 이르는 함께하지 않는 법이니라.”
강설 ; 보살은 또 때때로 방편으로 성문이나 벽지불의 모습을 나타낼 때도 있다. 그러나 대승보살의 마음을 결코 잃지 않는다. 어른이 어린아이를 가르친다고 해서 어린아이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필자가 20대 시절에 향곡(香谷)스님이 계시던 월내 묘관음사에서 여름 한철을 정진할 때다. 이웃 산기슭에 걸인 아이들이 3, 4명 살고 있어서 절에도 오고 지나는 길에 가끔 만나기도 하였는데 한번은 어떤 걸인 아이가 “스님들은 무엇이 할 것이 없어서 스님노릇을 다 하십니까?”라고 하였다. 그들과 같이 대화를 나눔으로 그들의 눈에 자신들보다도 불쌍하게 보였다고 해서 어찌 수행자의 마음을 잃고 있었겠는가. 참으로 다른 이의 가르침을 말미암지 않고 방편으로 교묘하게 구경의 저 언덕에 이르는 함께하지 않는 법이다.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善知權實雙行道하야 智慧自在하야 到於究竟하나니 所謂住於涅槃호대 而示現生死하며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방편과 진실을 함께 행하는 길을 잘 알고 지혜가 자유자재하여 구경에 이르나니, 이른바 열반에 머무르면서 생사를 나타내 보이는 것이니라.”
강설 ; 보살은 방편과 진실을 함께 행하는 권실쌍행(權實雙行)을 잘 알아서 지혜가 자유자재하다. 방편과 진실에 치우치지 않고 함께 행하는 것을 중도행이라 한다. 중도행이 구경의 경지이다. 먼저 생사와 열반의 문제에도 보살은 그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으면서 열반을 누리되 중생들과 함께 생사를 같이 한다. 이것이 보살의 권실쌍행이다.
知無衆生호대 而勤行敎化하며 究竟寂滅호대 而現起煩惱하며 住一堅密智慧法身호대 而普現無量諸衆生身하며
“중생이 없음을 알면서 교화를 부지런히 행하며, 철저히 적멸하면서 번뇌를 일으킴을 나타내고, 한결같이 견고하고 깊은 지혜의 법신에 머물러 있으면서 한량없는 모든 중생들의 몸을 널리 나타내느니라.”
강설 ; 보살은 중생이 본래 공하여 없음을 알면서 본래 없는 중생을 부지런히 교화하고, 다시 중생이 본래 부처님임을 알고 부처님인 중생을 부지런히 교화한다. 이것이 보살의 권실쌍행이다. 또 보살은 일체법이 철저히 적멸함을 누리면서 다시 번뇌를 일으킨다. 번뇌를 일으키지 않고 어찌 번뇌 있는 중생들을 교화하겠는가. 또 보살은 견고하고 깊은 지혜의 법신에 머물러 있으면서 한량없는 모든 중생들의 몸을 나타낸다. 이것이 또한 보살의 권실쌍행이다.
常入深禪定호대 而示受欲樂하며 常遠離三界호대 而不捨衆生하며
“항상 깊은 선정에 들어 있으면서 욕망과 쾌락을 받음을 보이고, 욕계와 색계와 무색계를 항상 멀리 여의었으나 중생을 버리지 않느니라.”
강설 ; 보살은 선정에만 깊이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온갖 욕망과 쾌락을 받는다. 그러나 미혹한 중생들이 쾌락을 누리는 것과는 다른 차원이다. 또 삼계를 멀리 떠났으나 삼계에 머무는 중생들을 버리지 않고 모두 교화한다.
常樂法樂호대 而現有婇女의 歌詠嬉戱하며 雖以衆相好로 莊嚴其身이나 而示受醜陋貧賤之形하며 常積集衆善하야 無諸過惡호대 而現生地獄畜生餓鬼하며
“법의 즐거움을 항상 즐기면서 채녀들과 함께 노래하고 유희함을 나타내며, 비록 여러 가지 32상과 80종호로 몸을 장엄하고서도 누추하고 비루하고 빈천한 형상 받음을 보이고, 항상 여러 가지 착한 일을 쌓아서 모든 허물이 없으면서도 지옥과 축생과 아귀에 태어남을 나타내느니라.”
강설 ; 보살은 또 법의 즐거움을 즐기면서 한편 채녀들과 노래하고 유희함을 즐긴다. 보살은 또 삼십이상과 팔십종호로 몸을 장엄하였으나 경계를 따라 누추하고 빈천한 형상을 나타내기도 한다. 보살에게는 일체 허물이 없지만 지옥과 아귀와 축생에 태어나기도 한다. 채녀들을 교화하기 위해서, 누추하고 빈천한 사람들을 교화하기 위해서, 지옥과 아귀와 축생들을 교화하기 위해서 우정 보살은 그와 같은 길을 간다.
雖已到於佛智彼岸이나 而亦不捨菩薩智身이니 菩薩摩訶薩이 成就如是無量智慧에 聲聞獨覺도 尙不能知어든 何况一切童蒙衆生가 是爲第五不由他敎하고 權實雙行不共法이요
“비록 이미 부처님 지혜의 저 언덕에 이르고도 또한 보살의 지혜 몸을 버리지 않느니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한량없는 지혜를 성취하는 것을 성문이나 독각도 오히려 알지 못하거든 어찌 하물며 일체 어리석은 중생들이겠는가. 이것이 다섯째 다른 이의 가르침을 말미암지 아니하고 방편과 실제를 모두 행[權實雙行]하는 함께하지 않는 법이니라.”
강설 ; 대개의 보살들은 모두 부처님의 지혜에 대한 수업을 벌써 끝마치고 중생을 교화하려고 보살의 입장을 버리지 않고 영원히 보살로 살아간다. 이와 같이 대승보살불교에서는 보살의 삶을 최후의 경지로 여긴다. 마치 선불교에서 여래선 위에 조사선을 두는 경우와 흡사하다.
보살이 이와 같이 한량없는 지혜를 성취하고 있다는 사실을 성문이나 독각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보살의 경지 위에 부처님의 경지가 있는 것으로 여긴다. 그런데 무지 몽매한 일체중생들이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이것이 방편과 진실을 함께 행하는 보살의 오묘하고도 특별하여 다른 법과는 함께하지 않는 법이다. 이 또한 다른 사람에게 배우지 않고 본래 갖춘 법이다.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身口意業이 隨智慧行하야 皆悉淸淨하나니 所謂具足大慈하야 永離殺心하며 乃至具足正解하야 無有邪見이 是爲第六不由他敎하고 身口意業이 隨智慧行不共法이요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몸과 입과 뜻의 업으로 지혜를 따르는 행이 모두 청정하나니, 이른바 크게 인자함을 갖추어 생명을 죽이려는 마음을 영원히 여의었으며, 내지 바른 지혜를 갖추어 삿된 소견이 없는 것이니, 이것이 여섯째 다른 이의 가르침을 말미암지 않고 몸과 입과 뜻의 업으로 지혜의 행을 따르는 함께하지 않는 법이니라.”
강설 ; 보살이 몸과 입과 뜻의 업으로 지혜를 따르는 행이 모두 청정하여 본래로 자성 안에 대자대비를 갖추어 죽이려는 마음을 영원히 여의었으며, 본래로 보시를 갖추어 훔치려는 마음을 영원히 여의었으며, 본래로 청정계행을 갖추어 파계하려는 마음을 영원히 여의었으며, 본래로 진실한 말을 갖추어 거짓말을 영원히 여의었으며, 내지 본래로 바른 견해를 갖추어 삿된 견해를 영원히 여의었다. 이것이 다른 사람의 가르침을 말미암지 않고 본래 갖춘 자성미타(自性彌陀)며, 자성관음(自性觀音)이며, 자성지장(自性地藏)이며, 자성문수(自性文殊)며, 자성보현(自性普賢)등이다.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具足大悲하야 不捨衆生하고 代一切衆生하야 而受諸苦하나니 所謂地獄苦와 畜生苦와 餓鬼苦니 爲利益故로 不生勞倦하고 唯專度脫一切衆生호대 未曾耽染五欲境界하고 常爲精勤하야 滅除衆苦가 是爲第七不由他敎하고 常起大悲不共法이요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크게 가엾이 여김을 갖추어 중생을 버리지 아니하고 일체중생을 대신하여 모든 괴로움을 받나니, 이른바 지옥의 괴로움과 축생의 괴로움과 아귀의 괴로움이니라. 그들을 이익하게 하기 위한 까닭에 힘들어하거나 게으른 생각을 내지 않으며, 오직 일체중생을 제도하려고 일찍이 다섯 가지 욕심 경계에 물들지 않으며, 항상 부지런히 정진하여 모든 괴로움을 없애나니, 이것이 일곱째 다른 이의 가르침을 말미암지 않고 항상 크게 가엾이 여김을 일으키는 함께하지 않는 법이니라.”
강설 ; 보살은 자성 안에 본래로 크게 가엾이 여김을 갖추어서 일체중생들이 받는 모든 고통을 대신해서 받는다. 심지어 지옥의 고통이든 축생의 고통이든 아귀의 고통이든 모두 대신해서 받는다. 중생을 이익하게 하려고 수고롭고 게으른 생각을 내지 않는다. 또 오직 일체중생을 제도하고 일찍이 다섯 가지 욕심[五欲] 경계에 물들지 않으며, 항상 부지런히 모든 괴로움을 없앤다.
오욕(五欲)은 5묘욕(妙欲)ㆍ묘오욕(妙五欲)ㆍ5묘색(妙色)ㆍ5묘(妙)라고도 한다. 오근(五根)의 대상이 되어 가의(可意)ㆍ가애(可愛)ㆍ가락(可樂)의 것으로 모든 욕망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곧 색(色)ㆍ성(聲)ㆍ향(香)ㆍ미(味)ㆍ촉(觸)의 5경(境)이다. 그러나 이 5경은 욕구(欲求)의 대상이고, 욕구 그 자체는 아니다. 이 다섯 가지가 모든 욕망을 일으키므로 오욕이라 한다. 그리고 불교와 상관없이 공통적으로 오욕이라고 하는 것은 재욕(財欲)ㆍ색욕(色欲)ㆍ음식욕ㆍ명예욕ㆍ수면욕(睡眠欲)을 말한다.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常爲衆生之所樂見인 梵王帝釋四天王等하야 一切衆生이 見無厭足하나니 何以故오 菩薩摩訶薩이 久遠世來로 行業淸淨하야 無有過失일새 是故衆生이 見者無厭이니 是爲第八不由他敎하고 一切衆生이 皆悉樂見不共法이요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항상 중생들이 보기 좋아하는 범천왕과 제석천왕과 사천왕 들이 되어 일체중생이 보기에 싫어하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보살마하살이 오랜 세상으로부터 지금까지 행하는 업이 청정하여 허물이 없으므로 중생들이 보기에 싫어하지 않나니, 이것이 여덟째 다른 이의 가르침을 말미암지 않고 일체중생들이 모두 보기를 좋아하는 함께하지 않는 법이니라.”
강설 ; 보살은 때때로 중생들이 보기 좋아하는 범천왕과 제석천왕과 사천왕 들이 되기도 한다. 그들의 모습은 얼른 보면 험상궂은듯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비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 보기에 아름답다. 왜냐하면 보살은 오랜 세월, 많은 세상에서 행업이 청정하여 아무런 허물이 없기 때문에 험상궂은 모습을 하려고 해도 험상궂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또한 보살의 다른 사람의 가르침을 의지하지 않은 보기에 좋은 특별한 법이다.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於薩婆若大誓莊嚴에 志樂堅固하야 雖處凡夫聲聞獨覺險難之處나 終不退失一切智心明淨妙寶하나니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일체지혜에 대하여 큰 서원으로 장엄하고, 뜻이 매우 견고하므로 비록 범부나 성문이나 독각의 험난한 곳에 있어도 마침내 일체지혜의 마음인 밝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보배를 잃어버리지 않느니라.”
강설 ; 보살은 일체지혜에 큰 서원으로 장엄하여 뜻이 견고하므로 때에 따라서 범부가 되어 범부의 행을 하고, 성문이 되어 성문의 행을 하고, 독각이 되어 독각의 행을 하더라도 결코 그 일체지혜의 마음이 밝고 청정한 보배를 잃어버리지 않는다. 보살이 본래 갖춘 일체지혜의 마음이 어떤 환경이 달라진다고 해서 달라지거나 변할 수는 없다. 이것은 수행을 통해서 얻은 것이 아니고 처음부터 지니고 있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佛子야 如有寶珠하니 名淨莊嚴이라 置泥潦中호대 光色不改하고 能令濁水로 悉皆澄淸인달하야
“불자여, 예컨대 여기에 보배구슬이 있으니, 이름이 ‘정장엄(淨莊嚴)’이라. 진흙 속에 두어도 빛이나 색깔이 변하지 않고 혼탁한 물을 능히 맑게 하는 것과 같으니라.”
강설 ; 보살이 본래 지닌 일체지혜의 마음을 비유하여 밝혔다. ‘정장엄(淨莊嚴)’이라는 보배구슬은 진흙 속에 두어도 빛이 변하지 않고 오히려 다른 혼탁한 물을 능히 맑게 하는 능력이 있는 것과 같다.
菩薩摩訶薩도 亦復如是하야 雖在凡愚雜濁等處나 終不失壞求一切智淸淨寶心하야 而能令彼諸惡衆生으로 遠離妄見煩惱穢濁하고 得求一切智淸淨心寶가 是爲第九不由他敎하고 在衆難處하야 不失一切智心寶不共法이요
“보살마하살도 또한 그와 같아서 비록 범부의 어리석고 잡란하고 혼탁한 곳에 섞여 있어도 마침내 일체 지혜를 구하는 청정한 보배의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고, 저 여러 나쁜 중생들로 하여금 잘못된 소견과 번뇌의 더럽고 혼탁함을 멀리 여의고 일체 지혜의 청정한 마음의 보배를 구하게 하나니, 이것이 아홉째 다른 이의 가르침을 말미암지 않고 여러 가지 어려운 곳에 있어도 일체 지혜의 마음 보배를 잃어버리지 않는 함께 하지 않는 법이니라.”
강설 ; 보살도 그와 같아서 비록 어리석은 범부의 잡란하고 혼탁한 곳에 섞여 있어도 마침내 일체 지혜를 구하는 청정한 보배마음을 잃지 않는다. 오히려 모든 나쁜 중생들로 하여금 허망한 소견과 번뇌의 더럽고 혼탁함을 멀리 여의고 일체 지혜의 청정한 마음의 보배를 구하게 한다. 이것이 보살의 다른 이의 가르침을 말미암지 않고 여러 가지 어려운 곳에 있어도 본래 갖춘 일체 지혜의 마음 보배를 잃지 아니하는 특별한 법이다.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成就自覺境界智에 無師自悟하야 究竟自在하야 到於彼岸하고 離垢法繒으로 以冠其首하야 而於善友에 不捨親近하며 於諸如來에 常樂尊重이 是爲第十不由他敎하고 得最上法하야 不離善知識하며 不捨尊重佛不共法이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스스로 깨닫는 경계의 지혜를 성취하여, 스승이 없이 스스로 깨닫고, 끝까지 자유자재하여 저 언덕에 이르며, 때를 여읜 법의 비단을 머리에 쓰고 선지식을 친근히 하며, 모든 여래를 항상 즐겨 존중하나니, 이것이 열째로 다른 이의 가르침을 말미암지 않고 가장 높은 법을 얻어서 선지식을 떠나지 않으며, 부처님을 버리지 않고 존중하는 함께하지 않는 법이니라.”
강설 ; 모든 사람에게는 누구의 가르침도 의지하지 않고 본래로 스스로 갖추고 있는 일체지혜가 있으며, 스스로 깨닫는 경계의 지혜도 있으며, 스스로 깨닫는 성스러운 지혜[自覺聖智]도 있다. 그래서 그것을 스승 없이 스스로 깨닫는다고 하여 무사자오(無師自悟)라 한다. 그와 같은 일체지혜가 으뜸이 되어 육바라밀과 사섭법과 사무량심과 십선과 인의예지 사단(四端)까지도 실로 모든 사람에게 본래로 갖추고 있는 법이라는 것을 밝힌 것이다.
보살은 스스로 갖춘 일체지혜를 스스로 깨달아 여래의 경지에 올라 다시 때를 여읜 법의 비단을 머리에 쓰고 선지식을 친근히 하며, 모든 여래를 항상 즐겨 존중한다. 이와 같은 일도 다른 이의 가르침을 말미암지 않고 본래 스스로 갖춘 법이다.
佛子야 是爲菩薩摩訶薩의 十種不共法이니 若諸菩薩이 安住其中하면 則得如來無上廣大不共法이니라
“불자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함께하지 않는 법이니, 만일 모든 보살들이 이 가운데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위없이 광대한 함께하지 않는 법을 얻느니라.”
98
3) 보살은 열 가지 업(業)이 있다
佛子야 菩薩摩訶薩이有十種業하니 何等이 爲十고所謂一切世界業이니 悉能嚴淨故며一切諸佛業이니 悉能供養故며 一切菩薩業이니 同種善根故며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업(業)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모든 세계의 업이니, 모두 깨끗하게 하는 연고니라. 일체 모든 부처님의 업이니, 모두 공양하는 연고니라. 일체 보살의 업이니, 선근을 함께 심는 연고니라.”
강설 ; 보살의 업(業)이란 보살이 그것에서 하는 일이며, 사업이며, 의무이다. 즉 일체세계에서는 모든 곳을 정직하고 선량함으로 살기 좋은 세상으로 청정하게 장엄하는 것이며, 일체 부처님께는 모두 공양하는 것이며, 일체보살에게는 선근을 같이 심는 일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보살의 하는 업이며 의무이다.
一切衆生業이니 悉能敎化故며一切未來業이니 盡未來際攝取故며一切神力業이니 不離一世界하고 徧至一切世界故며
“일체중생의 업이니, 모두 교화하는 연고니라. 일체 미래의 업이니, 오는 세월이 끝나도록 거두어 주는 연고니라. 일체 신통한 힘의 업이니, 한 세계를 떠나지 않고 일체세계에 두루 이르는 연고니라.”
강설 ; 또 일체중생에게는 모두 가르쳐 교화하며, 미래에 대해서는 미래에 올 중생들을 모두 거두어드리는 것이며, 일체 신통한 힘에 대해서는 한 세계를 떠나지 않고 일체 모든 세계에 두루 이르는 것이 보살의 하는 업이다.
一切光明業이니 放無邊色光明하야 一一光中에有蓮華座어든 各有菩薩이結跏趺坐하야 而顯現故며一切三寶種不斷業이니 諸佛滅後에守護住持諸佛法故며
“일체 광명의 업이니, 그지없는 빛깔의 광명을 놓아서 낱낱 광명에 연꽃자리가 있거든 각각 보살이 가부좌하고 앉아서 나타나는 연고니라. 일체 삼보(三寶)의 종자가 끊어지지 않는 업이니, 모든 부처님이 열반한 후에 모든 부처님의 법을 수호하고 머물러 지니는 연고니라.”
강설 ; 또 일체 광명으로는 그지없는 빛깔의 광명을 놓아서 낱낱 광명에 연꽃자리가 있고 그 연꽃에 보살이 가부좌하고 앉아서 나타난다. 일체 삼보의 종자가 끊어지지 않는 일에 대해서는 모든 부처님이 열반하신 뒤에도 모든 부처님의 법을 잘 수호하여 오랫동안 세상에 머무르게 하는 일이 보살의 업이며 의무이다.
一切變化業이니 於一切世界에 說法敎化諸衆生故며 一切加持業이니 於一念中에 隨諸衆生心之所欲하야 皆爲示現하야 令一切願으로 悉成滿故라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得如來無上廣大業이니라
“일체 변화하는 업이니, 일체세계에서 법을 설하여 모든 중생을 교화하는 연고니라. 일체 가지(加持)하는 업이니, 한 생각에 모든 중생들의 마음으로 욕망함을 따라 다 나타내 보여서 일체 소원을 다 이루게 하는 연고니라. 이것이 열이니, 만일 모든 보살들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곧 여래의 위없이 광대한 업을 얻느니라.”
강설 ; 일체 변화에 대한 보살의 업으로는 일체세계에서 법을 설하여 모든 중생을 교화하는 것이다. 또 보살의 일체 가지(加持), 즉 가피(加被)에 대한 업으로는 한 순간에 모든 중생들의 마음으로 욕망함을 따라 다 나타나 일체 소원을 다 이루게 하는 것이 보살의 업이며 의무이다. 그래서 중생들이 무엇이든 바라는 바가 있으면 무조건 보살 앞에 달려가서 보살의 이름을 부르며 간절히 원하는 것이다.
5월 27일 오후 3시 녹화 전송완료
99
4) 보살은 열 가지 몸이 있다
佛子야菩薩摩訶薩이有十種身하니 何等이 爲十고所謂不來身이니 於一切世間에不受生故며不去身이니 於一切世間에求不得故며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몸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오지 않는 몸이니, 일체세계에 태어나지 않는 연고니라. 가지 않는 몸이니, 일체세간에서 구해도 얻지 못하는 연고니라.”
강설 ; 보살에게는 또 열 가지 몸이 있다. 먼저 오되 오지 않는 몸이다. 그렇게 많고 많은 보살들이 이 세상을 가득하게 하였으나 일찍이 태어난 바도 없고 온 바도 없이 이 세상을 장엄한다. 다음은 가지 않는 몸이다. 무량하고 무변하여 헤아릴 수 없고 일컬을 수 없이 많이 계시지만 일체세간에 아무리 찾아보아도 찾을 길이 없다. 보살은 와도 온 바가 없이 오고, 가도 간 바가 없이 가기 때문이다. 이것이 보살의 몸이다.
不實身이니 一切世間에 如實得故며不虛身이니 以如實理로示世間故며
“실답지 않은 몸이니, 일체세간에서 사실대로 얻는 연고니라. 헛되지 않은 몸이니, 사실과 같은 이치로 세간에 보이는 연고니라.”
강설 ; 보살의 몸은 실답지도 않고 헛되지도 않다. 실답지 않음은 일체세간에서 보살의 몸을 사실과 같이 얻게 되고, 헛되지 않음은 보살의 몸을 사실과 같은 이치로 세간에 보인다.
不盡身이니 盡未來際토록 無斷絶故며堅固身이니 一切衆魔가不能壞故며不動身이니 衆魔外道가不能動故며
“다하지 않는 몸이니, 오는 세월이 끝나도록 끊어지지 않는 연고니라. 견고한 몸이니, 일체 마군들이 깨뜨리지 못하는 연고니라. 동요하지 않는 몸이니, 온갖 마군들과 외도들이 움직일 수 없는 연고니라.”
강설 ; 또 보살에게는 오는 세월이 끝나도록 끊어지지 않는 다하지 않는 몸이 있고, 일체 마군들이 깨뜨리지 못하는 견고한 몸이 있고, 마군들과 외도들이 움직일 수 없는 동요하지 않는 몸이 있다.
具相身이니 示現淸淨百福相故며 無相身이니 法相究竟하야 悉無相故며 普至身이니 與三世佛로 同一身故라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得如來無上無盡之身이니라
“상호를 갖춘 몸이니, 청정한 백 가지 복된 모습을 나타내 보이는 연고니라. 형상이 없는 몸이니, 법의 모양은 완전하여 모두 형상이 없는 연고니라. 두루 이르는 몸이니, 세 세상 부처님들과 더불어 같은 몸인 연고니라. 이것이 열이니, 만일 모든 보살들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위없고 다함이 없는 몸을 얻느니라.”
강설 ; 또 보살에게는 청정한 백 가지 복된 모습을 나타내 보이는 상호를 갖춘 몸이 있고, 법의 모양이 구경에 형상이 없는 형상이 없는 몸이 있다. 또 과거 현재 미래의 부처님과 한 몸인 에 두루 이르는 몸이 있다.
100
(5) 50문(五十門)으로 십지(十地)를 답하다
<1> 환희지(歡喜地)를 답하다
1) 보살은 열 가지 몸의 업(業)이 있다
佛子야菩薩摩訶薩이有十種身業하니 何等이 爲十고所謂一身이 充滿一切世界身業과於一切衆生前에悉能示現身業과於一切趣에悉能受生身業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몸의 업(業)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한 몸이 일체세계에 가득하는 몸의 업과 일체중생 앞에 모두 능히 나타내 보이는 몸의 업과 모든 갈레에 다 능히 태어나는 몸의 업이니라.”
강설 ; 보살에게는 몸으로 하는 짓[身業]과 작용이 있다. 그것이 몸의 업이다. 한 몸이 일체세계에 가득하기도 하고, 일체중생 앞에 다 나타나기도 하고, 지옥이나 아귀나 축생이나 인간이나 천신이나 아수라 등의 갈레에 능히 다 태어나기도 한다. 이것이 보살이 할 수 있는 몸의 업이다.
遊行一切世界身業과往詣一切諸佛衆會身業과能以一手로普覆一切世界身業과能以一手로摩一切世界金剛圍山하야 碎如微塵身業과
“모든 세계에 노니는 몸의 업과 일체 모든 부처님의 대중모임에 나아가는 몸의 업과 능히 한 손으로 모든 세계를 두루 덮는 몸의 업과 능히 한 손으로 모든 세계의 금강둘레산[金剛圍山]을 비벼서 작은 먼지와 같이 부수는 몸의 업이니라.”
강설 ; 보살은 또 모든 세계에 노닐고, 모든 부처님의 대중 모임에 나아가고, 한 손으로 모든 세계를 두루 덮고, 한 손으로 모든 금강둘레산을 다 부수어 작은 먼지로 만드는 등의 몸의 업이 있다.
於自身中에 現一切佛刹成壞하야 示於衆生身業과 以一身으로 容受一切衆生界身業과 於自身中에 普現一切淸淨佛刹하야 一切衆生이 於中成道身業이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得如來無上佛業하야 悉能覺悟一切衆生이니라
“또 자신의 몸속에 모든 세계가 이루어지고 무너짐을 나타내어 중생에게 보이는 몸의 업과 한 몸에 일체중생의 세계를 받아들이는 몸의 업과 자신의 몸속에 모든 청정한 세계의 온갖 중생들이 그 가운데서 도(道)를 이루는 것을 널리 나타내는 몸의 업이니, 이것이 열이니라. 만일 모든 보살들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위없는 부처님의 업을 얻어 일체중생을 다 능히 깨우치느니라.”
강설 ; 또 보살은 자신의 몸속에 모든 세계가 이루어지고 무너짐을 나타내어 중생에게 보이고, 한 몸에 일체중생의 세계를 받아들이고, 자신의 몸속에 모든 청정한 세계의 온갖 중생들이 그 가운데서 도를 이루는 것을 널리 나타내는 등의 몸의 업이 있다. 이와 같이 보살은 몸으로도 못하는 것이 없다. 만일 모든 보살들이 이 법의 이치를 잘 알게 되면 여래의 가장 높은 부처님의 업을 얻어 일체중생을 다 능히 깨우치게 된다.
6월 4일 오전 11시 녹화 전송완료
101
2) 보살은 다시 열 가지 몸이 있다
佛子야 菩薩摩訶薩이復有十種身하니 何等이 爲十고所謂諸波羅蜜身이니 悉正修行故며四攝身이니 不捨一切衆生故며
“불자여, 보살마하살에게 다시 열 가지 몸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모든 바라밀다의 몸이니, 다 바르게 수행하는 연고며, 네 가지로 거두어 주는 몸이니, 일체중생을 버리지 않는 연고이니라.”
강설 ; 앞에서는 ‘오지 않는 몸’ ‘가지 않는 몸’ ‘실답지 않은 몸’ ‘허망하지 않은 몸’ 등 열 가지 몸이 있었다. 그래서 여기에서는 “다시 몸이 있다.”고 하였다. 보살에게는 6바라밀의 몸과 10바라밀의 몸과 4섭법의 몸과 4무량심의 몸이 있어서 바르게 수행하고 일체중생을 모두 거두어 드린다. 보살의 몸은 보살행의 법이 곧 몸이다. 즉 보시를 하고 계행을 지키고 욕됨을 참고 불법을 잘 받아드리고 정진을 하는 등등의 행이 곧 진정한 보살의 몸이다.
보살을 어디서 찾으며, 또 어떤 얼굴, 어떤 모양에서 찾을 것인가. 고려불화에서 찾을 것인가. 미륵반가사유상에서 찾을 것인가. 관음경과 지장경에서 찾을 것인가. 6바라밀을 실천하고, 사섭법을 실천하고, 사무량심을 실천하고, 인의예지를 실천하는 그 행위가 곧 보살의 몸이다.
大悲身이니 代一切衆生하야 受無量苦호대 無疲厭故며 大慈身이니 救護一切衆生故며
“크게 가엾이 여기는 몸이니 일체중생을 대신하여 한량없는 고통을 받으면서도 고달파하거나 싫어함이 없는 연고며, 크게 인자한 몸이니 일체중생을 구호하는 연고이니라.”
강설 ; 일체중생을 크게 가엾이 여겨서 그들의 한량없는 고통을 대신 받아도 고달파하지 않는 그것이 곧 보살의 몸이다. 또 일체중생을 구호하는 크게 인자한 행을 실천하는 그것이 곧 보살의 몸이다.
福德身이니 饒益一切衆生故며智慧身이니 與一切佛身으로 同一性故며法身이니永離諸趣受生故며
“복덕의 몸이니 일체중생을 이익 되게 하는 연고며, 지혜의 몸이니 모든 부처님의 몸과 더불어 성품이 같은 연고며, 법의 몸이니 여러 갈레에 태어남을 아주 여읜 연고이니라.”
강설 ; 일체중생을 이익 되게 하는 복덕과 모든 부처님의 몸과 더불어 성품이 같은 지혜와 여러 갈레에 태어남을 아주 여의게 하는 법이 곧 보살의 몸이다.(복덕이 곧 몸이고 지혜가 곧 몸이다. 진리의 가르침인 법이 보살의 몸이다. 진리의 가르침을 의지해서 4생 6취의 굴레에서 영원히 떠나기 때문이다.)
方便身이니 於一切處에 現前故며 神力身이니 示現一切神變故며 菩提身이니 隨樂隨時하야 成正覺故라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得如來無上大智慧身이니라
“방편의 몸이니 모든 곳에서 앞에 나타나는 연고며, 신통의 힘인 몸이니 모든 신통변화를 나타내 보이는 연고며, 보리(각(覺)·지(智)·지(知)·도(道))의 몸이니 좋아함을 따르고 때를 따라 바른 깨달음을 이루는 연고이니라. 이것이 열이니, 만일 모든 보살들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위없는 큰 지혜의 몸을 얻느니라.”
강설 ; 또 모든 곳에서 앞에 나타나는 방편과 모든 신통변화를 나타내는 신통과 좋아함을 따르고 때를 따라 바른 깨달음을 이루는 보리가 곧 보살의 몸이다. 이와 같이 보살의 몸은 어떤 얼굴과 어떤 형상이 아니고 보살행이 곧 보살의 몸이다.
102
3) 보살은 열 가지 말이 있다
佛子야菩薩摩訶薩이有十種語하니 何等이 爲十고所謂柔軟語니使一切衆生으로 皆安隱故며 甘露語니令一切衆生으로 悉淸凉故며
“불자여, 보살마하살에게 열 가지 말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부드러운 말이니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모두 편안케 하는 연고며, 감로수와 같은 말이니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모두 시원하게 하는 연고이니라.”
강설 ; 보살의 말은 어떤 것인가.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편안케 하는 부드러운 말이 곧 보살의 말이다. 또 일체중생을 시원하게 하는 감로수와 같은 말이 곧 보살의 말이다.
不誑語니所有言說이皆如實故며眞實語니乃至夢中에도 無妄語故며
“속이지 않는 말이니 말하는 것이 모두 사실과 같은 연고며, 진실한 말이니 꿈에서까지 거짓말이 없는 연고이니라.”
강설 ; 보살이 어찌 사실과 다른 남을 속이는 말을 하겠는가. 보살이 어찌 꿈속엔들 거짓말을 하겠는가.
廣大語니一切釋梵四天王等이皆尊敬故며甚深語니顯示法性故며堅固語니說法無盡故며
“넓고 큰 말이니 모든 제석과 범천과 사천왕들이 존경하는 연고며, 매우 깊은 말이니 법의 성품을 나타내 보이는 연고며, 견고한 말이니 법을 설함이 다함이 없는 연고이니라.”
강설 ; 보살은 또 광대한 말이 있다. 깊고 깊은 말이 있다. 견고한 말이 있다.(보살의 말은 밀도가 높아서 아무리 부연설명을 해도 끝이 없다.)
正直語니 發言易了故며 種種語니 隨時示現故며 開悟一切衆生語니 隨其欲樂하야 令解了故라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得如來無上微妙語니라
“정직한 말이니 말하는 것이 알기 쉬운 연고며, 가지가지 말이니 때를 맞추어 나타내 보이는 연고며, 일체중생을 깨우치는 말이니 그들의 욕망을 따라 알기 쉽게 하는 연고이니라. 이것이 열이니, 만일 모든 보살들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위없이 미묘한 말을 얻느니라.”
강설 ; 보살은 또 정직한 말이 있다. 보살의 말이 정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때를 따르는 가지가지 말이 있으며, 중생을 깨닫게 하는 말이 있어서 그들의 욕망을 따라 알기 쉽게 한다.
6월 7일 오후 3시 녹화 전송완료
103
4) 보살은 열 가지 청정하게 수행하는 말의 업이 있다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淨修語業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樂聽聞如來音聲하야 淨修語業하며 樂聞說菩薩功德하야 淨修語業하며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청정하게 수행하는 말의 업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여래의 음성을 듣기 좋아하여 청정하게 수행하는 말의 업과 보살의 공덕 설하는 것을 듣기 좋아하여 청정하게 수행하는 말의 업이니라.”
강설 ; 사람의 일상생활은 몸과 말과 생각, 이 셋으로 이루어진다. 그중에 말로 짓는 업이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또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알아볼 때 얼굴과 말씨와 글씨와 생각, 이 네 가지로 판단한다고 한다. 그만치 말은 중요하다. 보살이 말의 업을 청정하게 수행하려면 여래의 말씀을 즐겨 들어야 한다. 또 보살의 공덕 설하는 것을 즐겨 들어야 한다. 반대로 일상에 말을 거칠게 하고 욕설을 많이 하는 사람과 같이 있으면 저절로 말이 거칠어진다. 그것은 청정하게 수행하는 말의 업이 아니다.
不說一切衆生의 不樂聞語하야 淨修語業하며 眞實遠離語四過失하야 淨修語業하며 歡喜踊躍하고 讚歎如來하야 淨修語業하며
“일체중생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을 말하지 않아서 청정하게 수행하는 말의 업과 말에 네 가지 허물을 진실하게 멀리 여의어 청정하게 수행하는 말의 업과 환희용약하면서 여래를 찬탄하여 청정하게 수행하는 말의 업이니라.”
강설 ; 또 말의 업을 청정하게 수행하려면 일체중생이 듣기 싫어하는 말은 하지 않아야 한다. 말의 네 가지 허물이란 망어와 기어와 양설과 악구다. 이런 말은 절대로 하지 않아야 한다. 사람들이 뛸 듯이 기뻐하는 여래를 찬탄하는 말을 하여 말의 업을 청정하게 수행하여야 한다. 사람을 만났을 때도 되도록 찬탄하는 말을 하고, 얼굴이 좋지 않다느니 늙었다느니 하는 말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如來塔所에 高聲讚佛如實功德하야 淨修語業하며 以深淨心으로 施衆生法하야 淨修語業하며 音樂歌頌으로 讚歎如來하야 淨修語業하며
“여래의 탑이 있는 데서 부처님의 참된 공덕을 큰 소리로 찬탄하여 청정하게 수행하는 말의 업과 깊고 청정한 마음으로 중생에게 법을 보시하여 청정하게 수행하는 말의 업과 음악과 노래와 게송으로 여래를 찬탄하여 청정하게 수행하는 말의 업이니라.”
강설 ; 여래께서 열반하신 뒤에는 여래를 대신하는 탑을 세워 예배하고 그 공덕을 찬탄한다. 또 깊고 청정한 마음으로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중생들에게 법을 보시하여야 한다. 또 음악과 노래와 게송으로 여래를 찬탄하여 말의 업을 청정하게 수행하여야 한다. 이와 같은 일들이 모두 말의 업을 청정하게 수행하는 것이다.
於諸佛所에 聽聞正法하고 不惜身命하야 淨修語業하며 捨身承事一切菩薩과 及諸法師하고 而受妙法하야 淨修語業이 是爲十이니라
“모든 부처님 계신 데서 바른 법을 듣고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아니하고 청정하게 수행하는 말의 업과 일체 보살과 모든 법사들을 몸을 돌아보지 않고 섬기면서 미묘한 법을 받아서 청정하게 수행하는 말의 업이니, 이것이 열이니라.”
강설 ; 말의 업을 청정하게 닦으려면 부처님 계신데서 정법을 많이 듣는데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또 일체 보살들과 법사와 선지식과 조사님들에게서 바르고 미묘한 법을 많이 듣고 받아드려 다시 널리 전파하는 일들이 곧 말의 업을 청정하게 닦는 것이다.
104
5) 보살은 열 가지 수호함을 얻는다
佛子야 若菩薩摩訶薩이 以此十事로 淨修語業하면 則得十種守護하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天王爲首하야 一切天衆이 而爲守護하며 龍王爲首하야 一切龍衆이 而爲守護하며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이 열 가지 일로 말의 업을 청정하게 수행하면 곧 열 가지 수호함을 얻나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천왕에서 우두머리가 되어 모든 하늘 대중이 수호하고, 용왕에서 우두머리가 되어 모든 용의 대중이 수호하느니라.”
강설 ; 청량스님의 소(疏)에 “열 부류의 왕들이 수호하는 것은 곧 청정한 말을 닦은 결과이다. 표현하는 말이 선하면 보이지 않는 어두운 세계의 왕들도 모두 감응한다. 그런데 하물며 사람이겠는가.”라고 하였다. 실로 말을 선량하게 하면 사람뿐만 아니라 천지만물과 산천초목과 천룡팔부도 모두 환희하고 수호한다. 불보살님과 보통의 사람들이야 얼마나 기뻐하고 좋아하겠는가.
夜叉王爲首하고 乾闥婆王爲首하고 阿修羅王爲首하고 迦樓羅王爲首하고 緊那羅王爲首하고 摩睺羅伽王爲首하고 梵王爲首하야 一一皆與自己徒衆으로 而爲守護하며 如來法王爲首하야 一切法師가皆悉守護가 是爲十이니라
“야차왕에서 우두머리가 되고, 아수라왕에서 우두머리가 되고, 가루라왕에서 우두머리가 되고, 긴나라왕에서 우두머리가 되고, 마후라가왕에서 우두머리가 되고, 범왕에서 우두머리가 되어 낱낱이 자기네 대중들로 더불어 수호하며, 여래법왕에서 우두머리가 되어 모든 법사들이 모두 다 수호하나니, 이것이 열이니라.”
강설 ; 열 부류의 이름들을 낱낱이 밝혔다. 말을 선량하게 하고 부드럽게 하고 친절하게 하고 인자함이 넘치게 하면 바로 앞에서 그 말을 듣는 사람뿐만 아니라 반드시 천룡팔부가 다 기뻐하고 수호할 것이다.
6월 8일 오후 3시 30분 녹화 전송완료
105
6) 보살은 열 가지 큰일을 성취한다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得此守護已에 則能成辦十種大事하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一切衆生을 皆令歡喜하며 一切世界에 悉能往詣하며 一切諸根을 皆能了知하며 一切勝解를 悉令淸淨하며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이렇게 수호함을 얻고는 열 가지 큰일을 성취하나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일체중생을 다 기쁘게 하고, 일체세계에 다 나아가고, 모든 근성들을 다 잘 알고, 모든 훌륭한 지혜를 다 청정케 하느니라.”
강설 ; 보살이 말의 업을 청정하게 닦으면 천룡팔부가 수호하게 되고, 천룡팔부가 수호하게 되면 다시 열 가지 큰일을 성취하게 됨을 낱낱이 밝혔다.
一切煩惱를 皆令除斷하며 一切習氣를 皆令捨離하며 一切欲樂을 皆令明潔하며 一切深心을 悉使增長하며 一切法界에 悉令周徧하며 一切涅槃에 普令明見이 是爲十이니라
“모든 번뇌를 다 끊게 하고, 모든 습기(習氣)를 다 여의게 하고, 모든 욕망을 다 깨끗하게 하고, 모든 깊은 마음을 다 증장케 하고, 모든 법계에 다 두루하게 하고, 모든 열반을 널리 분명하게 보게 하나니, 이것이 열이니라.”
강설 ; 보살은 일체중생을 항상 기쁘게 하고, 일체번뇌를 다 끊게 하고, 일체습기를 다 떠나게 하고, 모든 욕망을 다 깨끗하게 하는 등의 열 가지를 밝혔다.
106
7) 보살은 열 가지 마음이 있다
佛子야菩薩摩訶薩이有十種心하니 何等이 爲十고所謂如大地心이니能持能長一切衆生의 諸善根故며如大海心이니 一切諸佛의無量無邊한大智法水가悉流入故며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마음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대지와 같은 마음이니, 일체중생의 모든 선근을 유지하여 증장케 하는 연고며, 대해와 같은 마음이니, 일체 모든 부처님의 한량없고 그지없는 큰 지혜의 법의 물이 다 흘러 들어오는 연고이니라.”
如須彌山王心이니 置一切衆生於出世間最上善根處故며如摩尼寶王心이니 樂欲淸淨하야 無雜染故며如金剛心이니 決定深入一切法故며
“수미산과 같은 마음이니, 일체중생을 출세간에서 가장 높은 선근의 장소에 두는 연고며, 마니보배 왕과 같은 마음이니, 욕망이 청정하여 물들지 않는 연고며, 금강과 같은 마음이니, 결정코 모든 법에 깊이 들어가는 연고이니라.”
如金剛圍山心이니諸魔外道가不能動故며如蓮華心이니 一切世法이不能染故며如優曇鉢華心이니一切劫中에難値遇故며
“금강둘레산[金剛圍山]과 같은 마음이니, 모든 마군과 외도들이 흔들지 못하는 연고며, 연꽃과 같은 마음이니, 모든 세간법이 물들이지 못하는 연고며, 우담바라 꽃과 같은 마음이니, 모든 겁에서 만나기 어려운 연고이니라.”
如淨日心이니 破暗障故며 如虛空心이니 不可量故라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其中하면 則得如來無上大淸淨心이니라
“밝은 해와 같은 마음이니, 어둠의 장애를 깨뜨리는 연고며, 허공과 같은 마음이니, 측량할 수 없는 연고이니라. 이것이 열이니, 만일 모든 보살들이 이 가운데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위없고 크게 청정한 마음을 얻느니라.”
강설 ; 보살의 마음은 한두 가지로 표현할 수 없다. 그래서 열 가지 마음을 들었다. 큰 땅과 같은 마음과 큰 바다와 같은 마음과 수미산과 같은 마음과 마니보배와 같은 마음과 금강과 같은 마음과 금강둘레산과 같은 마음과 연꽃과 감은 마음과 우담바라 꽃과 같은 마음과 밝은 해와 같은 마음과 허공과 같은 마음 등이다.
6월 14일 오후 5시 녹화 전송완료
107
8) 보살은 열 가지 마음을 냄[發心]이 있다
佛子야菩薩摩訶薩이有十種發心하니 何等이 爲十고所謂發我當度脫一切衆生心과發我當令一切衆生으로 除斷煩惱心과發我當令一切衆生으로 消滅習氣心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마음을 냄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내가 마땅히 일체중생을 제도하리라는 마음을 내며, 내가 마땅히 일체중생들로 하여금 번뇌를 끊게 하리라는 마음을 내며, 내가 마땅히 일체중생들로 하여금 습기를 없애게 하려는 마음을 내느니라.”
강설 ; 보살은 어떤 마음을 쓰는가를 밝혔다. 보살은 스스로 자신이 모든 훌륭한 불사를 다 마땅히 하고자 마음을 낸다. 즉 일체중생을 제도하는 일과 일체중생의 번뇌를 끊는 일과 일체중생들의 습기를 소멸하는 일들을 자신이 마땅히 하고자 마음을 낸다. 보살의 서원은 이와 같이 무량무변하다.
發我當斷除一切疑惑心과發我當除滅一切衆生苦惱心과發我當除滅一切惡道諸難心과 發我當敬順一切如來心과發我當善學一切菩薩所學心과
“내가 마땅히 모든 의혹을 끊어 제거하리라는 마음을 내며, 내가 마땅히 일체중생의 괴로움을 없애려는 마음을 내며, 내가 마땅히 일체악도와 모든 어려움을 없애려는 마음을 내며, 내가 마땅히 일체여래를 공경하고 따르려는 마음을 내며, 내가 마땅히 모든 보살이 배우는 것을 잘 배우리라는 마음을 내느니라.”
강설 ; 보살은 또 모든 의혹을 끊고자 하고, 일체중생의 괴로움을 없애려 하고, 모든 나쁜 길과 어려움을 없애려 하고, 일체여래를 공경하고 따르려 하고, 모든 보살이 배우는 것을 잘 배우리라는 등의 마음을 낸다.
發我當於一切世間一一毛端處에 現一切佛成正覺心과 發我當於一切世界에 擊無上法鼓하야 令諸衆生으로 隨其根欲하야 悉得悟解心이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其中하면 則得如來無上大發起能事心이니라
“내가 마땅히 모든 세간의 낱낱 털끝만한 곳마다에 모든 부처님이 바른 깨달음을 이루는 일을 나타내리라는 마음을 내며, 내가 마땅히 모든 세계에서 위없는 법의 북을 쳐서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제각기 근성과 욕망을 따라서 다 깨닫게 하려는 마음을 내느니라. 이것이 열이니, 만일 모든 보살들이 이 가운데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위없이 큰 일을 하려는 마음을 내게 되느니라.”
강설 ; 보살은 또 모든 세간의 낱낱 털끝만한 곳마다에 모든 부처님이 바른 깨달음을 이루는 일을 나타내리라 하고, 모든 세계에서 위없는 법의 북을 쳐서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제각기 근성을 따라서 다 깨닫게 하려는 마음을 낸다.
108
9) 보살은 열 가지 두루 하는 마음이 있다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周徧心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周徧一切虛空心이니 發意廣大故며 周徧一切法界心이니 深入無邊故며 周徧一切三世心이니 一念悉知故며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두루 하는 마음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온 허공에 두루 하는 마음이니 뜻을 냄이 광대한 연고며, 모든 법계에 두루 하는 마음이니 끝없는 데까지 깊이 들어가는 연고며, 모든 세 세상에 두루 하는 마음이니 잠깐 동안에 다 아는 연고이니라.”
강설 ; 보살의 마음은 어디든 미치지 않은 데가 없다. 그것이 두루 하는 마음이다. 일체 허공에 두루 하고, 일체 법계에 두루 하고, 일체 삼세에 두루 한다. 이와 같이 공간이든 시간이든 두루 하지 않은 데가 없다.
周徧一切佛出現心이니 於入胎誕生과出家成道와轉法輪般涅槃에悉明了故며周徧一切衆生心이니 悉知根欲習氣故며周徧一切智慧心이니 隨順了知法界故며
“모든 부처님이 출현하시는 데 두루 하는 마음이니, 모태에 들고, 탄생하고, 출가하고, 도(道)를 이루고, 법륜(法輪)을 굴리고, 열반에 드심을 모두 분명히 아는 연고며, 일체중생에게 두루 하는 마음이니, 그 근성과 욕망과 버릇을 다 아는 연고며, 일체 지혜에 두루 하는 마음이니, 법계에 수순하여 잘 아는 연고이니라.”
강설 ; 보살은 또 모든 부처님이 출현하시는 데 두루 하는 마음이 있어서 부처님의 모든 생애를 모르는 것이 없으며, 또 일체중생에게도 두루 하여 다 알고, 일체지혜에도 두루 하여 법계에 수순한다.
周徧一切無邊心이니 知諸幻網差別故며 周徧一切無生心이니 不得諸法自性故며 周徧一切無礙心이니 不住自心他心故며 周徧一切自在心이니 一念普現成佛故라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其中하면 則得無量無上佛法의 周徧莊嚴이니라
“모든 그지없는 데 두루 하는 마음이니, 모든 환술그물의 차별함을 아는 연고며, 모든 남[生]이 없는 데 두루 하는 마음이니, 모든 법의 제 성품을 얻지 못한 연고며, 모든 걸림 없는 데 두루 하는 마음이니, 제 마음과 남의 마음에 머물지 않는 연고며, 모든 자유자재한 데 두루 하는 마음이니, 한 생각에 성불함을 두루 나타내는 연고이니라. 이것이 열이니, 만일 모든 보살들이 이 가운데서 편안히 머물면 한량없고 위없는 불법(佛法)으로 두루 장엄함을 얻느니라.”
강설 ; 화엄경의 유심(唯心)사상을 흔히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에서 설명한다. 이 세상 유형이든 무형이든 마음으로 이루지지 않은 것이 없다. 사람마다 자신의 마음 영역에 따라 모든 것이 인식되고 인식되는 범주 안에 있는 것은 모두 마음으로 만들어 졌다고 한다. 만약 보살이라면 그 보살의 마음 영역에 따라 위와 같이 두루 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다.
6월 16일 오전 11시 녹화 전송완료
109
10) 보살은 열 가지 뿌리가 있다
佛子야菩薩摩訶薩이有十種根하니 何等이 爲十고所謂歡喜根이니 見一切佛에 信不壞故며希望根이니 所聞佛法을皆悟解故며不退根이니 一切作事가皆究竟故며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뿌리가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환희한 뿌리니, 모든 부처님을 보고 믿음이 무너지지 않는 연고며, 희망하는 뿌리니, 들은 바의 불법을 다 깨닫는 연고며, 물러가지 않는 뿌리니, 모든 짓는 일을 끝까지 이루는 연고이니라.”
강설 ; 일체 사물도 그 근본과 뿌리가 있으며 보통의 사람들이나 수행자도 모두 근본과 뿌리가 있다. 또 보살에게는 열 가지 뿌리가 있으니 환희하는 뿌리와 희망의 뿌리와 물러가지 않는 뿌리가 있다.
安住根이니 不斷一切菩薩行故며微細根이니 入般若波羅蜜微妙理故며不休息根이니 究竟一切衆生事故며如金剛根이니證知一切諸法性故며金剛光焰根이니 普照一切佛境界故며
“편안히 머무는 뿌리니, 모든 보살의 행을 끊지 않는 연고며, 미세한 뿌리니, 반야바라밀다의 미묘한 이치에 들어가는 연고며, 쉬지 않는 뿌리니, 일체중생의 일을 끝까지 하는 연고며, 금강(金剛)과 같은 뿌리니, 일체 모든 법의 성품을 증득하여 아는 연고며, 금강광명 불꽃뿌리니, 모든 부처님의 경계를 두루 비추는 연고이니라.”
無差別根이니 一切如來가 同一身故며 無礙際根이니 深入如來十種力故라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其中하면 則得如來無上大智圓滿根이니라
“차별 없는 뿌리니, 일체 여래가 동일한 몸인 연고며, 걸림 없는 경계 뿌리니, 여래의 열 가지 힘에 깊이 들어가는 연고이니라. 이것이 열이니, 만일 모든 보살들이 이 가운데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위없는 큰 지혜가 원만한 뿌리를 얻느니라.”
강설 ; 또 편안히 머무는 뿌리와 미세한 뿌리와 쉬지 않는 뿌리와 금강과 같은 뿌리와 금강광명 불꽃뿌리와 차별 없는 뿌리와 걸림 없는 경계 뿌리 등이다. 이와 같은 뿌리가 근본이 되어 보살이라는 아름답고 무성한 나무그늘을 세상에 널리 드리우는 것이다.
110
<2> 이구지(離垢地)를 답하다
1) 보살은 열 가지 깊은 마음이 있다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深心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不染一切世間法深心과 不雜一切二乘道深心과 了達一切佛菩提深心과 隨順一切智智道深心과 不爲一切衆魔外道所動深心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깊은 마음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모든 세간의 법에 물들지 않는 깊은 마음과 모든 이승의 도에 섞이지 않는 깊은 마음과 모든 부처님의 보리를 통달하는 깊은 마음과 일체 지혜의 지혜 도를 따르는 깊은 마음과 모든 마(魔)와 외도가 동요하지 못하는 깊은 마음이니라.”
강설 ; 보살이 모든 세간의 법에 물들지 않으려면 깊고 깊은 마음이 있어야 한다. 필자는 아직 견문이 좁아서 그런지 세간의 법에 물들지 않은 사람 보지 못하였다. 또 불교를 공부하는 사람치고 이승의 도에 섞이지 않는 사람 보지 못하였다. 열반을 노래하고 생사해탈을 노래하고 선정을 노래한다면 그는 아직 대승보살의 깊은 마음이 없는 사람이다. 보살은 부처님의 보리를 통달하는 깊은 마음과 일체 지혜의 지혜 도를 따르는 깊은 마음과 모든 마군과 외도가 동요하지 못하는 깊은 마음이 있다.
淨修一切如來圓滿智深心과 受持一切所聞法深心과 不着一切受生處深心과 具足一切微細智深心과 修一切諸佛法深心이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其中하면 則得一切智無上淸淨深心이니라
“모든 여래의 원만한 지혜를 깨끗이 닦는 깊은 마음과 모든 들은 바의 법을 잘 받아 지니는 깊은 마음과 모든 태어나는 곳에 집착하지 않는 깊은 마음과 모든 미세한 지혜를 구족한 깊은 마음과 일체 모든 부처님의 법을 닦는 깊은 마음이니라. 이것이 열이니, 만일 모든 보살들이 이 가운데 편안히 머물면 일체 지혜의 위없이 청정한 깊은 마음을 얻느니라.”
강설 ; 보살은 깊은 마음이 있어서 모든 여래의 원만한 지혜를 깨끗이 닦으며, 모든 들은 법을 잘 지니며, 모든 태어나는 곳에 집착하지 않으며, 모든 미세한 지혜를 구족하며, 일체 모든 부처님의 법을 닦는다.
6월 17일 오후 4시 20분 녹화 전송완료
111
2) 보살은 열 가지 더 올라가는 깊은 마음이 있다
佛子야菩薩摩訶薩이有十種增上深心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不退轉增上深心이니 積集一切善根故며離疑惑增上深心이니 解一切如來密語故며正持增上深心이니 大願大行所流故며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더 올라가는 깊은 마음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물러가지 않는 더 올라가는 깊은 마음이니, 모든 선근을 모으는 연고며, 의혹을 여의는 더 올라가는 깊은 마음이니, 모든 여래의 비밀한 말씀을 아는 연고며, 바로 유지하는 더 올라가는 깊은 마음이니, 큰 원과 큰 행에서 흐르는 연고이니라.”
강설 ; 앞에서 열 가지 깊은 마음[深心]을 밝혔다. 그 열 가지 깊은 마음으로는 보살의 마음을 다 표현할 수 없어서 여기에서는 다시 열 가지 더 올라가는 깊은 마음[增上深心]이 있음을 밝혔다. 물러가지 않고, 모든 선근을 모으고, 의혹을 여의고, 바르게 지니는 등의 더 올라가는 깊은 마음이다.
最勝增上深心이니 深入一切佛法故며 爲主增上深心이니 一切佛法自在故며 廣大增上深心이니 普入種種法門故며 上首增上深心이니 一切所作成辦故며
“가장 훌륭한 더 올라가는 깊은 마음이니, 모든 부처님의 법에 깊이 들어가는 연고며, 주인이 되는 더 올라가는 깊은 마음이니, 모든 불법에 자유자재하는 연고며, 광대하게 더 올라가는 깊은 마음이니, 갖가지 법문에 두루 들어가는 연고며, 으뜸가는 더 올라가는 깊은 마음이니, 모든 할 일을 다 마치는 연고이니라.”
강설 ; 또 가장 훌륭한 더 올라가는 깊은 마음과 주인이 되는 더 올라가는 깊은 마음과 광대하게 더 올라가는 깊은 마음과 으뜸가는 더 올라가는 깊은 마음이다.
自在增上深心이니 一切三昧神通變化莊嚴故며 安住增上深心이니 攝受本願故며 無休息增上深心이니 成熟一切衆生故라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得一切諸佛의 無上淸淨增上深心이니라
“자유자재한 더 올라가는 깊은 마음이니, 모든 삼매의 신통변화로 장엄하는 연고며, 편안히 머무는 더 올라가는 깊은 마음이니, 본래의 원을 거두어들이는 연고며, 쉬지 않는 더 올라가는 깊은 마음이니, 일체중생을 성숙시키는 연고이니라. 이것이 열이니, 만일 모든 보살들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모든 부처님의 위없이 청정한 더 올라가는 깊은 마음을 얻느니라.”
강설 ; 또 자유자재한 더 올라가는 깊은 마음과 편안히 머무는 더 올라가는 깊은 마음과 쉬지 않는 더 올라가는 깊은 마음 등이다.
112
3) 보살은 열 가지 부지런히 닦음이 있다
佛子야菩薩摩訶薩이有十種勤修하니 何等이 爲十고所謂布施勤修니悉捨一切호대 不求報故며持戒勤修니頭陀苦行으로 少欲知足하야 無所欺故며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부지런히 닦음[勤修]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보시를 부지런히 닦음이니, 온갖 것을 버리고 갚음을 구하지 않는 연고며, 계율을 부지런히 닦음이니, 다 떨어버리는[頭陀] 고행으로 욕심이 없고 만족함을 알아 속임이 없는 연고이니라.”
忍辱勤修니離自他想하고 忍一切惡하야 畢竟不生恚害心故며精進勤修니身語意業이未曾散亂하고 一切所作이皆不退轉하야 至究竟故며
“참는 일을 부지런히 닦음이니, ‘나다,’ ‘남이다,’라는 생각을 떠나서 모든 악을 참아서 끝까지 성내거나 헤치는 마음을 내지 않는 연고며, 꾸준한 노력을 부지런히 닦음이니, 몸과 말과 뜻의 업이 조금도 산란하지 않고 모든 하는 일이 물러가지 않아 구경에 이르는 연고이니라.”
禪定勤修니解脫三昧와出現神通이離一切欲煩惱鬪諍諸眷屬故며智慧勤修니修習積聚一切功德호대 無厭倦故며
“선정을 부지런히 닦음이니, 해탈과 삼매와 나타나는 신통으로 모든 욕망과 번뇌와 투쟁의 여러 권속을 여의는 연고며, 지혜를 부지런히 닦음이니, 모든 공덕을 닦고 모아 게으름이 없는 연고이니라.”
강설 ; 보살이 부지런히 닦아야할 것은 보시와 지계와 인욕과 정진과 선정과 지혜인 여섯 가지 바라밀을 근본으로 한다. 이것은 모든 불자가 기본적으로 닦아야 할 수행 덕목이다. 그러나 이 육바라밀은 사람사람이 모두 본래로 마음속에 갖추고 있는 것이다. 본래로 갖추고 있는 것임을 알면 어떤 경계를 만나게 되면 저절로 발현하는 것이다.
大慈勤修니知諸衆生의無自性故며大悲勤修니知諸法空하야 普代一切衆生受苦호대 無疲厭故며
“크게 인자함을 부지런히 닦음이니, 모든 중생들의 제 성품이 없음을 아는 연고며, 크게 가엾이 여김을 부지런히 닦음이니, 모든 법이 공함을 알고 널리 일체중생을 대신하여 괴로움을 받되 고달파함이 없는 연고이니라.”
覺悟如來十力勤修니 了達無礙하야 示衆生故며 不退法輪勤修니 轉至一切衆生心故라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得如來無上大智慧勤修니라
“여래의 열 가지 힘을 깨달아 부지런히 닦음이니, 걸림이 없음을 알고 중생에게 보이는 연고며, 물러가지 않는 법륜을 부지런히 닦음이니, 굴려서 일체중생의 마음에 이르는 연고이니라. 이것이 열이니, 만일 모든 보살들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위없는 큰 지혜를 부지런히 닦음을 얻느니라.”
강설 ; 보살의 기본 수행 덕목인 육바라밀과 대자대비 등 사무량심과 사섭법과 인의예지 사단도 그와 같이 모든 사람이 본래로 마음속에 갖추고 있는 것이다. 또 여래의 열 가지 힘을 깨달아 부지런히 닦는 일과 물러가지 않는 법륜을 부지런히 닦는 것 등이 모두 실은 본래로 갖추고 있는 일이기 때문에 듣고 배우면 알게 되고 깨닫게 되어 자연스럽게 실천하는 것이다.
6월 18일 오후 5시 20분 녹화 전송완료
113
4) 보살은 열 가지 결정한 지혜가 있다
佛子야菩薩摩訶薩이有十種決定解하니 何等이 爲十고所謂最上決定解니種植尊重善根故며莊嚴決定解니出生種種莊嚴故며廣大決定解니其心이 未曾狹劣故며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결정한 지혜[決定解]가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가장 높은 결정한 지혜니, 존중할 선근을 심는 연고며, 장엄하는 결정한 지혜니, 갖가지 장엄을 출생하는 연고며, 넓고 큰 결정한 지혜니, 마음이 잠깐도 좁고 용렬하지 않은 연고이니라.”
강설 ; 결정한 지혜[決定解]란 확실하고도 분명한 지혜라는 뜻이다. 가장 높은 결정한 지혜와 장엄하는 결정한 지혜와 넓고 큰 결정한 지혜이다.
寂滅決定解니能入甚深法性故며普徧決定解니發心無所不及故며堪任決定解니能受佛力加持故며堅固決定解니摧破一切魔業故며明斷決定解니了知一切業報故며
“고요한 결정한 지혜니, 매우 깊은 법의 성품에 능히 들어가는 연고며, 널리 두루 하는 결정한 지혜니, 내는 마음[發心]이 미치지 않는 데가 없는 연고며, 능히 감당하는 결정한 지혜니, 부처님의 힘으로 가지(加持)함을 능히 받는 연고며, 견고한 결정한 지혜니, 모든 마(魔)의 업을 꺾어 버리는 연고며, 밝게 판단하는 결정한 지혜니, 모든 업과 과보를 잘 아는 연고이니라.”
강설 ; 또 고요한 결정한 지혜와 널리 두루 하는 결정한 지혜와 능히 감내하는 결정한 지혜와 견고한 결정한 지혜와 밝게 판단하는 결정한 지혜 등이다.
現前決定解니 隨意能現神通故며 紹隆決定解니 一切佛所에 得記故며 自在決定解니 隨意隨時成佛故라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得如來無上決定解니라
“앞에 나타난 결정한 지혜니, 마음대로 능히 신통을 나타내는 연고며, 이어가는[紹隆] 결정한 지혜니, 모든 부처님에게서 수기를 얻는 연고며, 자재한 결정한 지혜니, 마음대로 때를 따라 성불하는 연고이니라. 이것이 열이니, 만일 모든 보살들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위없는 결정한 지혜를 얻느니라.”
강설 ; 또 앞에 나타난 결정한 지혜와 부처님의 종성을 이어가는 결정한 지혜와 자재한 결정한 지혜 등이다.
114
5) 보살은 열 가지 결정한 지혜로 모든 세계를 안다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決定解하야 知諸世界하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知一切世界가 入一世界하며 知一世界가 入一切世界하며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결정한 지혜로 모든 세계를 아는 일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모든 세계가 한 세계에 들어감을 알고, 한 세계가 모든 세계에 들어감을 아느니라.”
강설 ; 분명하고 확실하고 결정한 지혜로 무엇을 아는가. 열 가지를 밝혔다. 먼저 모든 세계가 한 세계에 들어감을 알고, 또 한 세계가 모든 세계에 들어감을 아는 것이다. 하나와 많은 것이 서로 용납하면서 걸림이 없음을 아는 것이다. 예컨대 텅 빈 방에 천개의 등불을 밝혔으나 그 천개의 등불 빛은 서로서로 방해하지 않으면서 서로 어울려 밝게 비추는 것과 같다.
知一切世界에 一如來身과 一蓮華座가 皆悉周徧하며 知一切世界가 皆如虛空하며 知一切世界가 具佛莊嚴하며 知一切世界에 菩薩充滿하며
“모든 세계에 한 여래의 몸과 한 연꽃자리가 모두다 두루함을 알고, 모든 세계가 다 허공과 같음을 알고, 모든 세계가 부처님의 장엄을 갖춤을 알고, 모든 세계에 보살이 가득함을 아느니라.”
강설 ; 또 모든 세계에 한 여래의 몸과 한 연화좌가 두루함을 안다. 즉 세계일불(世界一佛)이며, 세계일화(世界一花)임을 안다. 또 모든 세계가 허공과 같고, 모든 세계가 부처님의 장엄을 갖추었고, 모든 세계에 보살들이 충만함을 안다. 모든 보살은 모든 세계를 이와 같이 보고 이와 같이 안다. 달리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知一切世界가 入一毛孔하며 知一切世界가 入一衆生身하며 知一切世界에 一佛菩提樹와 一佛道場이 皆悉周徧하며 知一切世界에 一音普徧하야 令諸衆生으로 各別了知하야 心生歡喜가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得如來無上佛刹廣大決定解니라
“모든 세계가 한 모공(毛孔)에 들어감을 알고, 모든 세계가 한 중생의 몸에 들어감을 알고, 모든 세계에 한 부처님의 보리수와 한 부처님의 도량이 모두다 두루함을 알고, 모든 세계에 한 음성이 두루하여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제각기 잘 알아서 마음에 환희케 함을 아느니라. 이것이 열이니, 만일 모든 보살들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위없는 부처님 세계의 넓고 큰 결정한 지혜를 얻느니라.”
강설 ; 모든 세계가 하나의 모공에도 들어가고, 한 중생의 몸에도 들어가고, 한 부처님의 보리수와 한 부처님의 도량이 다 두루하고, 또 한 음성이 두루하여 모든 중생들이 제각기 알고 마음에 환희하게 함을 안다.
115
6) 보살은 열 가지 결정한 지혜로 중생계를 안다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決定解하야 知衆生界하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知一切衆生界가 本性無實하며 知一切衆生界가 悉入一衆生身하며 知一切衆生界가 悉入菩薩身하며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결정한 지혜로 중생계를 아는 일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모든 중생계의 본 성품이 실체가 없음을 알며, 모든 중생계가 한 중생의 몸에 다 들어감을 알며, 모든 중생계가 보살의 몸에 다 들어감을 아느니라.”
강설 ; 보살의 분명하고 확실하며 결정한 지혜로 모든 세계가 모든 것에 자유 자재함을 알고, 다시 중생계가 자유 자재함을 아는 것을 밝혔다. 모든 중생계의 본 성품이 실체가 없고, 모든 중생계가 한 중생의 몸에 들어가고, 모든 중생계가 보살의 몸에 다 들어가는 등을 다 안다.
知一切衆生界가 悉入如來藏하며 知一切衆生身이 普入一切衆生界하며 知一切衆生界가 悉堪爲諸佛法器하며 知一切衆生界에 隨其所欲하야 爲現釋梵護世身하며
“모든 중생계가 여래장에 다 들어감을 알며, 일체중생의 몸이 모든 중생계에 두루 들어감을 알며, 모든 중생계가 다 능히 모든 불법(佛法)의 그릇이 될 것을 알며, 모든 중생계가 그 욕망을 따라서 제석과 범천과 사천왕의 몸을 나태 내는 것이 됨을 아느니라.”
강설 ; 또 모든 중생계가 다 여래장에 들어가고, 일체중생의 몸이 모든 중생계에 두루 들어가고, 모든 중생계가 다 능히 모든 불법의 그릇이 되고, 모든 중생계가 그 욕망을 따라서 제석과 범천과 사천왕의 몸을 나태 내는 것이 됨을 다 안다.
知一切衆生界에隨其所欲하야 爲現聲聞獨覺의 寂靜威儀하며 知一切衆生界에爲現菩薩功德莊嚴身하며 知一切衆生界에爲現如來相好寂靜威儀하야 開悟衆生이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安住此法하면 則得如來無上大威力決定解니라
“모든 중생계가 그 욕망을 따라서 성문과 독각의 고요한 위의를 나타냄을 알며, 모든 중생계가 보살의 공덕으로 장엄한 몸을 나타냄을 알며, 모든 중생계에 여래의 훌륭한 몸매와 고요한 위의를 나타내어 중생들을 깨우침을 아느니라. 이것이 열이니, 만일 모든 보살들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위없는 큰 위신력의 결정한 지혜를 얻느니라.”
강설 ; 보살은 또 결정한 지혜로 모든 중생계가 그 욕망을 따라서 성문과 독각의 고요한 위의를 나타내고, 모든 중생계가 보살의 공덕으로 장엄한 몸을 나타내고, 모든 중생계에 여래의 훌륭한 몸매와 고요한 위의를 나타내어 중생들을 깨우침을 다 안다.
6월 20일 오후 3시 녹화 전송완료
이세간품 4 끝
대방광불화엄경 강설 56 끝
|
첫댓글 🙏🙏🙏
감사합니다.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고맙습니다_()()()_ 나무대방광불화엄경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