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새와 물소
남편과 나는 다른 별에서 오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 둘이 우연히 지구라는 행성에서 어찌어찌 제조되었을 뿐이다. 호모사피엔스랑 네안데르탈인의 동거보다 더 어색하고 이색적이다. 혹성 탈출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인 유인원 시저와의 만남이 더 수월할지도 모른다.( 난 그를 진심으로 존경한다.) 이제 우리는 같이 진화 중인가? 퇴화하는 것인가?
마치 김치와 치즈의 조합 같다. 역겨운 레시피이다. 조금도 맞지 않는데 그냥 살아간다. 열네 살에 만나서 헤어졌다 만났다를 반복했다. 그리고 운명처럼 결혼했다. 둘이서 걸어가면 남들이 딸과 아빠 같다고 한다. 남편이 겉늙어서가 아니라 내 키가 작아서이다. 마주 섰을 때, 남자의 입술이 여자의 이마에 닿는 설레는 키를 넘어 남편 턱밑에 쏘옥 들어간다. 두툼한 4센티 왕뽕 브라를 머리에 쓰고 서야 할 정도의 여유도 생긴다. 하루 종일 남편은 말이 없다. 평생 침묵시위 중이다. 이유는 나도 모른다. 우린 그렇게 태어났다.
난 아나운서 발성 연습한다고 하루 종일 소리 내어 읽고 또 읽는다.
"도토리가 문을 도르륵 두르륵 열었는가? 두르륵 도루룩 열었는가?"
벌새랑 물소가 같이 산다. 적막한 집에서 난 수십 개의 행성을 홀로 다녀온다. 전생과 내생도 문지방이 닳도록 왕복한다.
하루에 훌라후프를 천 개 이상 돌린다. 난 훌라 후프의 고수이다. 사람들이 비법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한번 돌릴 때마다 만 원짜리가 떨어진다고 상상한다. 오만 원짜리를 떠올리기엔 양심 없는 불로소득자 같고, 천 원짜리는 돈이 너무 작아서 의욕상실로 인해 중간에 그만둘 것 같아서 나의 사랑, 세종대왕을 골랐다. 아마도 이 비법이 현실이 된다면 전 국민이 밥 굶고 오로지 운동만 하게 돼서 지방 삽입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오늘 나는 하늘의 천기를 누설했다. 물론 땀 흘려 돈을 버는 것이다. 건강은 덤이다. 상상의 돈을 당신은 매일 천만 원씩 버는 것이다. 배 둘레에 햄달고 당장 해운대 갈 준비로 튜브찬 삶을 살고 싶지 않다면 운동해야 한다. 나이 들수록 운동은 생존과 관련이 있다. 움직일 수 없게 되면 죽음이 점점 가까워진다.
당신이 이 글을 읽고 훌라후프를 좌우로 돌아가면서 돌린다면 나처럼 어쩔 수 없이 중도가 될 것이다. 상상하는 즐거움도 공유하게 되는 것이다. 반드시 좌 500개 우 500개 돌려야 한다. 한 쪽으로 치우치면 몸을 버린다고 주치의 "누가 정형외과" 문*진원장님께서 신신 당부하셨다. 빵댕이로 돌리고 허벅지로 돌리고 종아리 그리고 목으로 돌린다. 속도감이 붙으면 알아서 돌아간다.
후프를 잘 한다는 것은 물리를 안다는 것이다. 즉 천문학과 음양의 조화, 하늘의 기운을 안다는 것이다. 손목에 기어를 차고 돌리면 개수도 알려 준다. 어린 시절부터 후프의 진심이었으니 동네 어르신들께서 묘기 대행진에 나가라는 제안을 하셨다. 훌라후프가 끊어져 외할아버지께서 대추 나뭇가지를 낫으로 잘라서 이어 주셨다. 남편도 내 훌라후프를 수십 번 고쳐주었다. 난 무엇이든 끝까지 하는 타입이며 소유욕이 강해 낡고 달아도 마지막까지 함께한다. 길 가다 주은 몽당연필조차도 생명연장장치 달아 끝까지 쓴다.
국민학교 6학년 때는 자칭 가장 예쁜 어린이가 한다는 놋다리밟기에 뽑혀 수천 명이 보는데 빨간 한복을 입고 여자 어린이들의 등위를 우아하게 걸었다. (아마도 몸무게가 적게 나가서 였을 것이다.) 지금은 매 순간, 처음 살아가는 자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죽음의 가운데서 후프를 돌리는 순간엔 죽음이 보이지 않듯이! 훌라 후프가 돌아간다는 것은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이다.
나를 위한 치유의 글, 이 글을 읽는 내내, 당신도 행복하길 바래봅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공부가 되는 새벽, 진정한 학문이란 삶에 관한 바른 이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