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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인접예술(미술)에 미친 영향과 현실
예술, 본질(本質)은 하나이다-
장윤우
이른바 “변-신 게이트”사건이 연일 전국을 강타하는 토픽 뉴스로 오르내리고 있다.
“어찌 또 그런 일이......”
한편에서는 ”그런걸 아직도 몰랐어? 빙각의 일부이지 파면 파들어 갈수록 엄청 터져 나올걸 뭘 그래, 어디 미술계뿐이야? 문화예술계의 치유하기 힘든 고질병이지“
순수해야될 미술이 문화계와 학계, 정치,경제계까지 먹칠을 하고 있는 일이다.우리들이 합심하여 갈 길은 멀어지고 미칠 일이다.
1). 문학과 미술의 총체적(總體的) 동반자들
서울 종로 인사동 어귀-
매주 수요일이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이들은 나같은 작가뿐이 아니다.
문화를 사랑하는 시민들, 특히 미술전이 이날에 곳곳에서 개최되며 관련 행사가 넘치기에 평소에 만나기 힘든 작가와 인사를 이곳에서는 아주 쉽게 대하게 된다. 미술인 단체와 미술잡지사, 화랑협회, 고미술협회 사무실의 본거지도 된다.
금속미술가로서- 40년여의 교직자로서- 제자들의 석사학위 청구졸업전등이 붐비고 얽히고 설킨 인간관계가 풀어지는 곳이다. 또한 내가 5년간이나 관계하던 한국공예문화진흥원도 바로 인사동 중심가에 자리잡고 있는 때문이기도 하다. 귀금속,쥬얼리를 비롯한 온갖 공예문화상품상들이 넘쳐나고 있다. 거대한 상권(商圈) <쌈지>도 명물의 하나로 웃뚝 선다.
유명작가의 디자인 명품을 만나는 것보다는 국적불명의 조악품(粗惡品)들이 기승을 부리는 곳이지만 종로통 인사동일대는 항상 생기가 넘쳐난다. 조금 더 나아가면 종로일대 상가가 온통 귀금속 전용매장,관련업체로 클러스터(Cluster)를 이루는 판도를 그린다.
인사동과 종로는 살아 있다. 강남의 청담동,신사동 또한 서울 근교로 퍼져 간다. 근교 통일로변 헤이리마을도 그 예가 된다.
2).이른바 미(美)의 사제(司祭)는 옳은가~
문학과 미술의 동반(同伴)은 오랜 전통과 인연을 지니고 있다.
중국의 소동파(蘇東坡)는 절세(絶世)의 명시 <적벽부>로서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는 대가이다. 그는 일찍이 시중화 화중시(詩中畵 畵中詩)라 하여 시,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는 그야말로 문학과 서예와 미술의 혼연일체를 내세웠던 것이다. 우리 옛 과거시험에 시제(詩題)로도 자주 등장하였다.
시서화(詩書畵) 일체사상은 우리나라에서도 이어져 내려와서 조선시대 이율곡,강희안,김시습,이항복,박지원,허균,박제가,남구만,정다산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시문,서화객이 많았다.
원래 <예술>은 그 본질(本質 Originality)이 하나인데 표현 양식에 따라서 미술,문학,음악,연예,영상(映像)등 시간예술,시공간예술,공간예술등으로 갈라지고 있다. ..........
불휴의 명작 <노트르담의 꼽추> <레미제라불>의 작가 빅톨 유우고는 프랑스가 자랑하는 대문호이나 소설가라기보다는 오히려 대화가였다. 일국의 재상(宰相)으로 정치가였다.
화가로서 명성을 날리지 못한 것은 그의 문학작품들이 워낙 유명하였기 때문이었다. 여러해전에 우리나라 서울 덕수궁미술관에서도 그의 미술작품들이 전시되어 관람한 적이 있었다.
상징파 시인 보드렐르 또한 그가 대시인이 되기를 원하지 않았던들 유명한 화가로 되였을 것이라는 호평을 받을만큼 회화에도 출중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파우스트>의 독일의 작가,정치가 볼프강 괴에테도 <시와 진실>에서 밝힌 것처럼 회화에 능한 그림예찬자였다. 유화, 판화, 벽화에서 수채화, 소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작품을 남겼으며 남들의 공연한 잡담과 입담(口舌)을 혐오하며 그런 시간에 차라리 그림을 그려왔던 것이다. 본인도 독일 푸랑크푸르트에 소재한 그의 생가를 찾아서 언제인가 방문하였을 무렵, 기념관이 된 집안에 그가 그려놓은 숱한 작품들을 확인하며 솜씨와 재능에 혀를 내둘렀었다.
<전쟁과 평화> <카츄사>의 러시아의 문호 레오 톨스토이도 그림의 대가였고, 죠르쥬 상드, 알프렛 뮤세, 메리메, 헤르만 헷세, 장 곸토오, R.L 스티븐슨, M.G 웰스, A.푸쉬킨, P.로티, R.키플링, A.랭보, 마크 트웨인, 에드가 알란 포오, 고골, <차타레이부인의 사랑>을 쓴 D.H.로오렌스, <테스>의 토마스 하디, V.마야고프스키, E.T.A. 호프만 외에도 수 많은 작가들이 미술과 문학을 넘나들며 여한(餘恨)없는 인생을 살고 갔다. 그만큼 미술과 문학은 가까웠고 서로 영향을 미쳐온 것이다. 유명한 소설가 섬머셋 모엄의 작품집 <달과 6펜스>는 타이티에 가서 만년을보내며 그림을 그린 화가 폴 고갱의 일생을 그려낸 것이며 영화제 명칭으로 알려진 영국의 극작가 탐미파시인 오스카 와일드(Osca Wilde1854~1900)는 일찍이 1882년에 기계의 미(美)를 예찬하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기계는 장식이 없어도 아름답다. 오히려 장식하면 안된다. 좋은 기계는 모두 아름답고 또 힘의 선(線)과 미(美)의 선은 하나이다.“ 아름다움의 개념 확대이다.
역시 영국의 허버트 리이드(Herbert Read)는 <교육을 통한 미술(Education throuh The Art)>와 미술을 통한 교육(The Art throuh The Education), <The art & Indurtry>,이론서에서 미술과 교육의 개념화대,일체성을 내세웠다. 생할속에서 일체의 공산품까지도 인간생활을 영위하는 범위로 확대한 공로를 인정받아서 영국화실에서 작위(爵位)까지 수여받았다. 또한 예술가란 “의식 밑에 있는 것들- 즉 무의식(無意識)의 것, 형이하의 것을 형 이상으로 끌어올려 유형으로 보여주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표현하였다.
19세기말, 전쟁의 여파(餘波)로 유럽의 숱한 문인,화가들이 모여 “다다이즘”이라는 유파를 형성하였다. 내일이 없는 오늘의 세기말(世紀末)적 사상이고 표현이었어도 많은 교훈을 남겼다.
20세기- 글로발 시대를 걷는 한국에 살아가면서 정상인, 소시민, 평균인(Average Man)이라면 미치기 힘든 일이다.
아마도 광주비엔나레 총감독을 무리하게 선임과정에서 변정아씨가 선임자격유무가 불거지지 않았더라면 다른 비리(非理)는 그냥 덮어져 버릴 일이였다.
세계 각국에서 미술계의 큰 잔치인 비엔나레(베니스비엔나레, 상 파울로비엔나레, 방글라데시비엔나레.......)가 오늘날 이목(耳目)을 집중시키고 있는 터이며 나도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쉬켄트 비엔나레에 특별 초청되어 참여하였던 경험이 있기에, 그보다도 한국미술계의 한 축(軸)을 담당하며 숱한 인재들을 키워내고 연관을 맺어오는 터이기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고 무엇보다도 주변 인사들이 계속 질문을 던져오는 통에 곤욕(?)아닌 곤욕(困辱)을 치러야 했다.
해학가인 이탈리아 건축가 지오.폰티(Gio Ponti)는 이렇게 말한다.
천지창조의 6일간 작업을 끝내신 신(神)즉 조물주는 “예술”은 창조하지 않으셨다.
그가 만들어낸 인간들에 의해 “생명적인 에술”은 창조가 된 것이다. 따라서 너무도 인간적인 예술의 창조자라는 점에서는 신과 동격(同格)이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돌아가신 조병화시인과 시조시인 김상옥, 이상범, 서양화가 이종학, 조각가 홍성문, 유종민, 황지우, 동양화가 선학균, 우희춘, 정성태, 평론가 김우종, 도예가 정담순, 김병억, 소설가 이제하, 시인 성춘복, 이젠 고인이 된 김영태, 조여주 그 외에 본인도 문학과 미술인으로서 한 몫을 거들어 왔다.
원시시대에는 글이 없었다. 생존의 수단으로 들소를 잡아먹고 주술적인 목적에서 들소의 암각화를 새겨놓았는데 스페인의 알타미라 동굴 벽이나 프랑스의 돌도뉴 암벽에 선각(線刻)의 단순한 도형이 발견되었다.
미술에 대한 인간의 본능은 인류역사 이전(Pri-historic Age)에서 비롯된다. 시대의 변천과 흐름속에 언어와 문자가 생겨났으며 그때까지의 예술은 문자가 배제된 시각 언어이며 조형언어와 시공간예술행위였을 뿐이다.
조선시대 성군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함으로서 우리민족도 문자가 있는 국가로서 영원 불멸하게 되었다. 문자가 없는 나라는 생존할 수가 없는 것이다. 역사속에서 살아진 나라, 미개발 후진국을 면하지 못하는 국가들을 보자- 그럼에도 지금의 우리 현실은 특히 학생들에게서 한심스럽지 않을 수가 없다. <國語>를 잊고 사는 것이다.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인문학의 쇠퇴와 시문학의 존폐까지 거론되고 있는 형편이라니-
허나 문자라는 문명의 이기(利器)가 그렇게 완벽하지마는 않다는게 역사적 현상이었다. 스페인어권, 영어권, 한자어권역(漢字語圈域), 아랍어권, 한글권,등 자신들끼리는 상통하여도 다른 언어권에서는 불통이다. 통역이 필요하거나 매우 까다로운 절차가 따른다. 국제공통언어, 시각언어,조형언어인 미술은 경우가 다르다. 어찌보면 바디 페인팅, 바디 랭귀지(Body Language)가 더 직접적이고 현대인의 피부에 와닿는 행위일런지도 모른다.
대광중고교 미술교사였던 나는 1963년도 서울신문사 신춘문예에서 시 <겨울동양화>가 당선되고부터 어엿한 <시인>으로서 반렬에 오르며 매년 자작 시화전을 개최하면서 서울,인천,대전,대구,부산,마산,전주,광주,목포,서귀포,제주,춘천,강릉, 전국 각지를 순회한 바가 있다. 일본 동경(1972,73년도)전시회와 미국 로스엔젤레스의 아트 갤러리에서 내 자신의 시작품에서 못다한 표현을 그림이나 금속을 얹어 보완하였다. 문학과 미술,금속공예의 일치를 선언하였다.
30회를 기록하면서 광화문 네거리(지금 일민미술관)에 당시 동아일보에 찾아간 나에게 최일남 문화부장(소설가)께서 일러준 말이 아직도 뇌리에 생생하다.
“장형은 이렇게 100회 전시까지 계속하시오, 넘치는 의지를 특집해주겠오”라는 격려를 받아드리고 열심히 뛰었다. “꼭 이루리라. .........” 바다를 건너 일본과 미국으로까지 뻗어 나갔다. 역마살이 끼였다고 수군거리기도 했다.
“시인이 무슨 그림이냐”고 핀잔주는 문인들이 있는가하면
“미술대를 나온 터에 무슨 詩와, 그림이냐, 한길로 걷지, 두 마리 토끼를 쫓다가는 한 마리도 못잡는 법“이라고 빗대고 흉을 보는 미술인도 계셨다.
글이나 그림이나 모두 같은 예술정신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비록 “문자“라는 메체를 이용하거나 ”Colour"즉 색감(色感)을 통하여 표현하는 방식만이 다를 뿐이다. 예술(Art)을 시간예술. 시공간예술. 공간예술,나아가 환경예술(Environmental Art)로 분류하여 그것이 음률, 언어, 물질(Stuff)등을 원용(援用)하는 것일 따름이다.
62년도 대한민국미술대전(약칭 國展)에서도 입상한 뒤에 수십회의 초대개인전을 갖었고 공모전 심사위원(장)도 여러 회에 걸쳐 맡았으며 서울시 문화상, 교육공로로 정부의 황조근정훈장까지 서훈하는 등 작가 수상횟수도 적지 않다.
1965년도부터 미술대학에서 강의를 담당하여 숱한 제자를 양성하였다. 줄잡아 500여명이상의 석사,박사학위심사와 국내 유명대학 교수승진심사도 맡아왔다. 관련분야 수상(受賞)인사들도 선정하여 그런 연유 등등으로 정부에서 수여하는 국민훈장 황조근정훈장도 받은 바 있다.
조선시대 선조들은 “숭문천기(崇文賤技)”라 하여 올바른 정책, 정사(政事)보다는 사색당쟁(四色黨爭)을 일삼아 상대를 헐뜯어 유배(流配)와 참수(斬首)를 일삼았고 풍류에 절어, 진정한 예술을 사대부(士大夫)들의 여기(餘技)정도로 멸시하였었다.
훌륭한 솜씨의 작가를 <匠人>이 아닌 “쟁이(丈人)”로 비천하게 대함으로서 예인(藝人)을 존중한 일본과 달리 문화의 퇴보를 가져 왔던 것이다.
천의무봉(天衣無縫)한편의 글이 촌철살인(寸鐵殺人)한다.
한 줄의 글과 한 획의 그림이 교감하면서 인근 예술 장르와 나아가서 전쟁과 평화, 인류변천과 역사의 흐름을 뒤바꾸기도 한다.
3).문학이 국력이고 문화산업이 세계에 알릴 최대의 홍보효과이다.
문학을 문학(基底)로 간직하는 창조산업이 오늘,
국가수입증대에도 기여고 있는 사실을 외면하지 말자. 자동차나 반도체 수출 못지 않게 <심청전> <춘향전> <홍길동전> <명성황후> 등은 뮤지칼로, 박경리의 <토지>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 홍명희의 <임꺽정> 그 외 <연개소문> <삼국지>가 고전과 현대소설등이 TV로, 영화로, 에니메이션으로 세계속으로 당당히 맞서가고 있지 않는가. 지금 중국, 일본과 동남아, 미주(美洲)에 불고 있는 이른바 “한류”의 열풍도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그람에도 정작 날로 황폐해가는 우리사회를 글과 미술의 예술정신으로 정체성(正體性)을 잡고 우리가 나서서 구원하자. 메마른“삶”에 물기와 여유를 주어야한다. 뒤늦게나마 정부에서도 “문화콘텐츠”의 위력을 깨닫고 산하기관을 설립하여 예산을 투입하고 지원에 적극 나서려 하고 있다.
이상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다른 분야에 대한 “배타심(排他心)”이랄까 위화감(違和感)이 조성되고 심지어는 같은 문학의 장르라 할지라도 시와 소설, 아동문학과 수필, 시나리오와 희곡 등이 서로 잘 어울려지지 않고 생소하게 지내고 왔다.
같은 장르라 할지라도 물과 기름처럼 함께 섞여지지 않아서 **시인협회, 아동문학가협회, 무슨 수필가협회, 어느 대학교출신 동문작가회, 어느 고장출신이냐는 등 계속되는 이합집산(離合集散)으로 삼분오열(三分五列)되어오고도 있다. 미술의 경우도 구상(具象)과 비구상, 동양화와 서양화, 디지털 아트,판화 조소, 서예, 공예등이 따로 모이며 놀고 있다. 출신학교별, 출생지역별등으로도 난맥(亂脈)을 이룬다.
오늘의 다양한 매체, 급속한 디지털과 인터넷 시대에 걸맞지 않는 소위 “패거리”문화 양상이다. 선진 외국에서는 볼 수 없는 뒤떨어진 전근대적 모순이며 문화발전에 역행(逆行}하는 잔재(殘在) 행위이다.
우리는 민족과 국토분단의 아픔과 상잔(相殘)의 수란사(受難史)에서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노력이 선행되어도 모자라는 시간인데 딱한 일이다. 소위 문화강국끼리 나눠 먹는 독점관행을 깨버려야 하는데도........
서로 만나야 한다. 먼저 손을 내밀어서 만나고 함께 예술행위에 동참해야 산다. 월간지 <문학사상>을 발행하던 이어령 주간이 앞장서서 경기도 광주땅에 뫃인 문인들중에는 고인이 된 괴력(怪力)소설가 이병주 등 문인,화가들이 시도화전을 위한 글과 그림을 청화백자(白磁)위에 그려서 잘 빠진 놈(?)만을 구워내서 전시한 기억도 새로웁다.
<문학의 문학>을 요즘 창간시킨 시인 이근배씨가 주간으로 근무했던 월간<한국문학>주최로 문인과 도예인들의 시도화전시를 가젔었으며, 성기조 현 PEN명예회장도 문인과 미술인들의 좋은 만남을 성사(成事)시키였다. 미술인들의 입장에서도 평소 경원시(敬遠視)하던 시인들과의 접목을 내게 부탁하여 국제미술협회 최광선 회장(서양화가)이 운현궁미술관에서 문인을 동참시켜 회원과 함께 시낭송행사까지 가져 장안의 화제를 모우기도 하였다. 돌이켜보면 모두에게 보람을 안겨주는 상생(相生)행사이었는데....그런 맥락(脈絡)은 지금 어데로 가버렸나. 열기가 흐지부지 식어버리고, 일부는 번잡한 인사동 거리에, 지하철 역사 온갖 벽면에 삼류(三流)작가의 낡은 상혼(商魂)으로 도배질하고 전락(轉落)되기도 하였다.
예술 그 “순수(純粹)의 마성(魔性)”이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전류처럼 우리에게 흐른다.
빗속에도 어김없이 찾아온 우편물들....공해(公害)속에서 탈출하고 싶다.
홍수속에 뭍혀서 모처럼 나 홀로만의 빈 집안에서도 폭풍과 반란은 일어난다.
오늘, 세계는 끝도 없이 진화(進化)하는데 우리만이 피할 수 없는 부정과 부조리(不條理)가 슬프다.
4) 한국미술계와 협회도 환골탈태(換骨奪胎)해야 산다
제20대 미협선거도 결국 얼룩진 풍토로 끝이 났다. 서울 올림픽 공원체육관을 비롯해 대전,전주,광주,대구,부산,청주,제주등 아홉군데로 의욕적으로 분산 실시된 투표소였다.
이번 선거전에서도 어김없이 들어났지만 그 후유증이 장난이 아니다.
끝이 나자마자 비리(非理)로 얼룩진 미술대전이 연일 TV와 신문에 토픽으로 시리즈로 두들겨맡고 관련작가들이 수사를 받게 되어 잡혀들어가고 온 미술계가 술렁거렸다. 긴급 자문위원회에서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왜 이지경이 되었고 누가 이런 파렴치한 행태를 자행(恣行)했는가.
미술협회 해당 임원진은 그동안 무얼 했는가. 23000여명이 넘는 전국 미협회원들의 친목과 권익옹호는 뒷전이고 아예 입상작 흥정에만 급급했다는건가. 다 알고도 쉬쉬해온 소문인데, 선량한 작가들의 꿈을 일거에 무산(霧散)시켜논 해당 심사위원,임원들에게는 일벌백계의 심판이 내려져야겠다. 후보등록비가 무려 1억원을 넘는다는 것도 경우가 아니다 엄청난 등록비를 대고 게다가 선거비용을 뿌려가며 당선하여야한다는 당위성은 무언가, 그렇기에 투자한 비용은 빼내야한다는 논리인가. 더욱이 낙선자는 하루아침에 물거품으로 살아지는 거금에 대하여 어떤 심정일까.
필자가 수석부이사장으로 몸담았던 한국문인협회도 비슷한 시기에 총회와 선거를 치루었다 이사장 후보등록비는 고작 500만원- 그것도 많다는 여론이었다. 문협 임원으로서 알고 있는 사실은 입담을 겠다. 1,2월은 문화예술인들에게는 잔인한 달이다. 곧 치를 예술문화단체 총연합회 회장 선거가 또한 가관(可觀)이다.
당선을 위해 무차별공세, 향응제공, 회비대납, 편의제공하는 짓거리들은 이제 씻어내자, 새이사장으로 당선한 노재순 후보는 미술대전의 독립을 약속하고 이사장은 아예 행사장근처에도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도대체 외국에는 볼수 없는 공모전이 해가 거듭할수록 타락하여 돈보따리 장사치로 전락하며 입상작을 엿가락처럼 늘리고“낙선작품이 특선작으로 둔갑하였다”는 사실에는 어안이 벙벙하다.
“썩을대로 썩은 미술대전제도를 없애버리든가 차제에 수술하고 돈거래 당사자,장사꾼을 처단하라!”
양식있는 화가들의 양심선언과 웨침이 끊이지를 않는다.
“법의 심판을 받기에 앞서 해당작가들은 석고대죄(石鼓待罪)하라”
썩을대로 썩은 대전이 곪아터진게 당연하다, 새로 출범하는 미협 임원들은 백의종군(白衣從軍)의 자세로 임기를 수행해주기를 신신당부한다. 앞으로는 명망있는 사회인사를 초빙해 뫼시자는 제도가 바람직하다는게 중론이다.
불신(不信)과 떨어질대로 떨어진 위상실추(位相失墜)에서 빨리 벗어나 다시 일반인들의 존경받는 마술작가들이기를 (사)한국미술협회 20대 이사장 노재순씨에게 거는 기대도 내세운 공약답게 높다. 어깨가 무거운 이돈흥,장지원,신제남,이천우,최덕교,김무호, 이헌국,류명식,하미혜 부이사장단에게도 바란다. 낙선된 정,부이사장후보들에게도 백의종군(白衣從軍)을 권면하는 격려를 보낸다.
미술품 위작(僞作)과 <신정아-변양수게이트> 기업메세나를 혼란스럽게 하며 화단 전체를 매도(罵倒)시키는 논란이 끝을 모른 그런 와중(渦中)에서는 다른 악마의 손길이 촉수(觸手)를 느리고 있었으니 천하가 놀란 고미술품 위작과 허위감정 파동, 작고화가는 물론 버젓하게 생존한 미술인들의 모작(模作)과 싸구려유통이 인사동, 삼각지일대를 휩쓴다.
이중섭, 박수근, 변시지, 천경자, 김환기, 이른바 미의 사제들의 작품들이 타켓이 되어 계속 퍼져가고 있다. 무려 2830여점의 이중섭 작품이 위작(僞作)이라는 검찰의 결과도 놀랄 일이 아니다 도대체 먹울게 없고 그릴만 용지가 없어서 담배갑 껍질에 까지 사용한 이화백에 대하여는 생존에 친교가 깊고 후견인이다싶은 구상시인이 너무 잘 알고 우리에게 얘기를 하여주었다. 엄청난 그림을 언제 거려놓았단 말인가 일본에 두고온 처자를 그리며 서대문 적십자병원 안에서 굶다싶히 인생을 마감한 산 증인이 계셨는데........
그 외에도 잘 나가는 이만익 화가들은 오히려 뒷전이다싶게 미술계, 화랑가, 미술경매옥션, 뒷골목“나까마”상들이 덩달아서 뛰니 뒤가 쿠리지 않을 수가 없다.
자기들끼리 끼고 주고, 사고 팔고 돌리며 북치고 장구치면서 고무풍선처럼 값을 올린다. 부동산 아파트 거품은 오히려 양반(?)이 아닌가한다. 미술계가 요지경이니 매스컴이나 호사가(好事家)들, 싸움질하는 정가를 나무랄 수가 없다.
돈 투기를 쫓는 멋모르는 수집가들의 뒤끝이 뻐언하다.
문학과 학술, 학위논문에서도 위작, 표절이 가끔 벌어지고 있는게 어디 어제, 오늘에 한정된 일인가. 돈과 허욕(虛慾), 불의가 정의를 누른 현실의 참혹함이여,
5) 그래도 예술의 본질(本質)은 하나이다-
어찌보면 바디 페인팅, 바디 랭귀지(Body Language)가 직접적이고 피부에 와닿는 행위일런지도 모른다.
글이나 그림이나 모두 같은 예술정신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비록 “문자“라는 메체를 이용한거나 ”Colour"즉 색감(色感)을 통하여 표현하는 방식만이 다를 뿐이다. 예술(Art)을 시간예술. 시공간예술. 공간예술로 분류하여 그것이 음률,언어, 물질(Stuff)등을 원용(援用)하는 것일 따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상하게도 다른 분야에 대한 “배타심(排他心)”이랄까 위화감(違和感)이 조성되고 심지어는 같은 문학의 장르라 할지라도 시와 소설, 아동문학과 희곡등이 서로 잘 어울려지지 않고 생소하게 지내고 왔다.
나아가서는 같은 장르라 할지라도 물,기름처럼 섞여지지 않아서 **시인협회, 각종아동문학가협회, 무슨 수필가협회, 어느 대학교출신 동문작가회, 어느 고장출신이냐는 등 계속되는 이합집산(離合集散)으로 삼분오열(三分五列)되어오고 있다.
문화가 국력이고 문화산업이야말로 세계에 알릴 최대의 홍보효과이며 수입증대에도 기여한 사실을 모르거나 작가정신에 어긋난다고 외면하지 말자. 그럼에도 정작 날로 황폐해가는 우리사회는 글과 미술의 예술정신으로 정체성(正體性)을 잡고 우리 작가가 나서서 구원하지 않으면 안될 위급상황이다. 갈수록 황폐해지고 메마른“삶”에 “삶의 마즈막 구원(救援)”인 문학이 앞장서서 생기와 여유를 주어야한다.
뒤늦게나마 정부에서도 “문화콘텐츠”의 위력을 깨닫고 산하기관을 설립하여 예산을 투입하고 지원에 적극 나서려 하고 있는게 다행이다.
생활주변에서 색채가 주는 연상과 문학적, 미술치료적 효과와 상징성을 본다~
*추상적 상징성-
赤-정열, 혁명, 위험, 활력
黃-희망, 광명, 활동, 평범,
靑-평정, 청등, 이지, 유구(悠久),
白-神聖, 결백, 광명, 불길,
黑-엄숙, 강건, 절망, 공포,
橙-온화, 질투, 혐오, 환희,
綠-평화, 안전, 신선 理想,
紫-고귀, 우아(優雅), 신비, 환상,
灰-우울, 평범, 겸손, 불안,
*구체적 상징
白色-청정(淸淨), 눈,
橙色-오렌지, 화재, 단풍,
黃色-레몬, 빛,
灰色-쥐, 재, 흐린 날,
紫色-오랑캐꽃, 창포, 포도,
黑色-밤, 숯, 먹,
赤色-불, 피,
綠色-풀, 잎, 숲,
일상색의 연상(聯想)과 상징은 민족과 국가에 따라서 다르나 대체로 위와 같게 본다.
색의 감정으로서 난색(Warm colour)- 적색,황색,등색, 계열과 한색(寒色(Cold colour)- 청, 청록색계열로 가지고 있다. 흥분색계열은 난색계, 침착색 계열은 한색계로서 색이 주는 의미로 지각(知覺)등 매우 미묘하다. 문학과 기타 예술에서 인요하거나 원용(援用)한다.
오늘, 우리에게 예술 그 “순수(純粹)의 마성(魔性)”이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전류처럼 흐른다.
6) 만학(萬學)의 기본인 문학과 창조문화가 주도하는 시대의 흐름이어야 한다.
문학과 문화산업이 오늘을 감싸는 창조문화산업으로 세계화를 지향하는 낌새가 짙다.
당연지사(當然之事)이다. 과거는 느릿하게 허나 정감과 혼류(混流)로 반듯하게 교감을 이루어 왔으나 현재는 복잡하게 얽히면서 혼숙(混宿)하고 있다만 앞으로는 급속히 변신(變身)을 거듭하면서 눈부시게 달라질 것이다.
고전(古典)문학이나 문학의 정론(正論) 혹은 정체성(正體成)은 무너지고 있다. 어쩌면 언어가 거추장스럽고 직설적인 행위 이벤트(Event)가 미만(未滿)하고 낡고 해묵은 도덕은 거추장스럽다. 물러가라는 기성세대는 어지러울 따름이다만 인정하여야한다 젊은 세대들이 그들만의 기호와 기법으로 모든 예술의 장르를 잠식(蠶食)한다, “하나”가 무엇인지 정의가 필요하지 않는다.
단하나의 승부일 뿐- 미래산업사회구조에서는 일등만이 생존하게 된다. 2등은 필요가 없다고 전문가가 말한다. 다만 접수할 따름이다라고. 이태백, 사오정과 한낮에 매일 근무처가 근교 산위인 인재들의 일상이 우려스럽다. 허나 적자생존(適者生存)이니 어쩔건가.
알 수 없는 미래여 세계속의 우리 한국인이여- 문학이 미술과 다시 손잡고 나아갈 새로운 르네상스시대의 길잡이로서 영원하길 바랄 뿐이다-.
자고(自古)로 문학이 미술에 끼친 영향이 주된 연구임에도 전술(前述)한대로 어지러운 현실이 이를 가려서 호도(湖塗)하기에 급급한 듯 하다. 훗날 체계적으로 재집필 보완할 것임을 약속한다.
약력-
*서울대학교 미술대및 대학원 졸업(65)
성신여자대학교 명예교수(박물관장,대학원장,산업미술연구소장역임)
한국미술협회 부이사장,감사,이사,국제조형미술협회 부이사장역임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시분과회장, 홍보위원장,월간문학발행인 역임.
현, (사)한국종이접기협회 회장/종이문화원장 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