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편의 의리
-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 부모님을 여윈 그녀는 미국에 가서 공부하려다 재산으로 남은 집을
사기꾼 유학 브로커에게 속아 날리게 되어 우리 집까지 오게 되었다.
옥희는 우리 집 가정부로 있으면서 은하와 은영이를 잘 돌봐주어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그런 옥희가 어느 날 심하게 기침을 해서 병원에 데리고 가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양성 결핵 반응을 보였다. 청천벽력이었다.
- 옥희는 심한 폐결핵 환자였던 것이다.
환자 자신의 불행도 불행이거니와 당장은 은영이와 은하에 대한 걱정으로 애간장이 탔다.
은하야 다섯 살이니 어느 정도 저항력이 있다지만 은영이는 이제 겨우 한 살이었다.
눈앞이 아찔했다.
그러나 멍하니 있을 때가 아니었다. 정신을 수습하고 옥희에게는 매일 치료를 받게 했다.
친구 시옥이가 자기 일처럼 옥희를 열심히 치료해 주었다.
일단 급한 불을 끄고 난 뒤 난 남편에게 조용히 말했다.
"옥희 문제 말인데요. 이 정도로 심한 경우라면 옥희를 따로 내보내야 하지 않겠어요?
환자 자신을 위해서도 그렇고 은하나 은영이를 위해서도,,,,,,."
- 그러나 남편은 내 얘기가 다 끝나기도 전에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 집에서 사는 사람이 아픈데 어떻게 다른 곳으로 보낼 수가 있어 ?
남편이 한번 말한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나였지만 그때만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만일을 대비해서예요. 은영이는 이제 겨우,....,."
"글세 아무리 그래도 그럴 순 없는 일이야,"
- 발을 동동 굴렀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병원에 나가서도 불안해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 어린 가슴에 결핵균이 침입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러나 그 심정은 나만 그런 것은 아닐 터였다.
남편도 자기 자식 일인데 어찌 아무 걱정이 없었겠는가. 그럼에도 그럴 수 없다고
마음을 다진 남편을 나는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의리의 사나이'는 집안 사람들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옥희를 끝까지 집에 두었고
마침내 옥희는 그런 남편의 성의에 보답이라도 하듯 상태가 호전되었다.
물론 가족들도 별 탈이 없었다.
그러나 은영의 엑스레이 사진에는 결핵균이 침입했었던 흔적이 있었다.
그것은 아마 내염려의 자국일 터였다. 아무튼 끝까지 할 도리를 해야 했던 남편의 의지는
결과적으로 나를 숙연하게 했다. - 김 영숙; 미국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