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고후 11:16-33)
바울의 감정이 고조되었다. 너무나 어리석은 교훈들을 너무나 쉽게 받아들이는 고린도 성도들에 대하여 안타까운 마음으로 넘쳐나서 바울은 지금 자신의 말하는 것이 어리석은 줄로 알면서도 말하고 있다. 16, 17, 21에서 바울은 스스로 어리석은 자로 받으라고 말하면서 그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육신을 따라 자랑하는 것이다.
어떤 사역자가 바울과 대조할 수 있을 것인가?
육신의 모습을 자랑하는 자들의 자랑에 비추어 말하기 시작하다가 온갖 육체의 고난을 말하였으나 그것이 한갓 어리석은 일일 줄 알고 뒤에는 내가 부득불 자랑해야 한다면 나의 약함을 자랑하리라고 했다. 앞에 나오는 어리석은 자랑들은 그것을 가지고 무엇을 내세우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들의 자랑하는 것과 대조시켜 보기 위함이었다.
육체의 것을 가지고 자랑하는 자들에게 비추어 볼 때 바울이 무엇이 부족하단 말인가?
그것을 생각해 보도록 바울은 19절에서 27절까지 길게 말한다. 그런 와중에도 19절에서 고린도 교인들을 지혜로운 자로 말한다. 지혜로운 너희들이 어찌 그리 어리석은 자들을 기쁘게 용납하는고? 라는 질문으로 책망하고 있다. 누가 너희를 종으로 삼아도, 잡아먹어도, 빼앗아도, 스스로 높이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구나라는 말은 고린도 성도들을 매우 강하게 책망하는 말이다. 스스로 지혜롭다고 하는 고린도 사람들이 어찌 그리 어리석으냐는 것이다.
바울은 어리석지만 담대하게 육신을 자랑하는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여 말한다. 그들이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이것은 바울 자신도 정통 유대인이면서 아브라함의 자손이면서 그리스도의 일꾼이라는 점을 밝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일꾼으로서의 고난을 당한 것을 이어서 말한다.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고, 40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다.
이것을 타이핑 하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온갖 수고를 다하고 힘에 맞도록 모든 일을 다 하였어도 자신이 가르친 교회는 오해를 하고 거짓된 가르침이나 교사를 그렇게 혹하게 받아들여 눈물로 애쓰고 수고한 모든 것을 허사로 만들어 버릴 수가 있구나 하는 생각 때문이다.
이것을 생각하면 나의 여러 고난과 힘들었던 지난 30년의 학생 사역은 아무 것도 아닌데도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그것이 우리의 자랑이 되어 억울하거나 분한 것은 결코 아니지만 바울을 볼 때 왠지 자신이 비춰져서 안타깝다. 그러나 바울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 아직도 날마다 자신 속에 눌리는 것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고 했다.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게 되지 아니하였으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아니하였던가 하면서 욥의 말처럼 자신의 신실함을 읍조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모든 것을 자랑으로 여겨 자신을 높이기보다는 오히려 정말 자랑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약한 것이다고 말한다. 나의 약함과 부족함을 자랑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그 모든 고난과 환란을 이기게 하셨다는 고백이 될 것이다.
주 예수의 아버지 영원히 찬송할 하나님이 내가 거짓말 아니하는 것을 아신다고 고백하는 바울은 참으로 위대하다. 어리석은 줄 알지만, 어리석다고 하는 말을 주님께로부터 들을 줄도 알지만 바울은 자신의 고난과 신분을 거짓 교사들과 대조하여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섭섭하고 아쉬운 마음이 얼마나 컸겠는가 이해가 된다. 복음을 위하여 수고한 우리 선진들의 그 헌신되고 충성된 것들을 후배들은 모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 아신다. 우리가 거짓말 하지 않음도 아신다. 우리의 마음도 다 아신다. 오직 주님 앞에서 우리의 약함을 자랑할 뿐이다. 유럽에 복음을 전해 준 바울의 길은 외롭고 쓸쓸한 길이었다. 외롭고 쓸쓸한 길을 마다하면 복음이 살아날 수 없다. 우리는 쇠하지만 복음의 말씀은 쇠하지 않고 녹슬지 않는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려라.
김영엽 목사(다움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