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의 아들 이야기
2023.8 평신도설교
1.
금요일 오후, 현관문을열면서 문 발굽을 제쳐두고 베란다 창도 활짝 엽니다. 수도꼭지 물을 내리자 아침에 부어 두었던 뚫어뻥 락스냄새가 싱크대 위로 확 솟구쳐 오릅니다. 이 날 따라 바람이 어수선하게 왔다 갔다 하네요. 앗! 지금이다. 방 공기가 아직 후텁텁하긴 하지만, 겁없이 마구 부풀어 오르다 절정에 이르러서는 피식피식 아무렇게나 꺼져버리는 술빵반죽처럼, 흩날리는 바람에서 이제 한여름이 사그라들고 있음을 느낍니다. 계절의 변곡점을 지나고 있는 것입니다.
오전에는 김성환집사님께 다녀왔습니다. 경대병원 퇴원하는 집사님을 모셔다 드리기 위해서였죠. 김집사님은 집에서 지내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집사님의 척추골절이 완치되지도 않아서 통증도 여전한데다, 재가요양서비스라도 받을 수 있다면 그나마 괜찮은데 아직 요양등급도 나오지 않은 상태라 집에서 지내시기 무리였습니다. 김집사님 좋아하시는 막국수로 점심 한그릇 먹고 집에 잠시 들렀다 결국 오후에 다시 짐을 챙겨 칠곡 새결요양병원에 입원하시게 되었습니다.
거동이 불편하니, 여기저기 다니는 건 고사하고 집에서 혼자 숙식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 교회 오고, 소성리 현장예배 가고, 연경동 텃밭가꾸기, 봉무동 봉사활동등 평범했던 일상이 지금은 어렵게 되었습니다. 이래저래 해결해야할 문제들이 아직 몇가지 남아 있는 중에 그나마 다행인것은 사회복지 공동모금회로부터 간병비지원 300만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어쨌던 건강을 챙기는 것이 평범한 일상을 가능케하는 기본임을 다시 깨닫습니다. 김성환집사님의 평범한 일상이 다시 회복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2.
아지매!! 저는 집에서 어매를 이렇게 부릅니다. 뇌혈관이 막히면서 시작된 어매의 병원생활에, 낯선사람들 여럿 있는 병실에서 다 큰 자식이 ‘엄마’하며 부르기도 그렇고, 어릴때부터 입에 붙지 않은 ‘어머니’라고 하며 부르기도 또 그렇고 해서 장난처럼 익살스럽게 한번 두번 ‘아지매’하며 부르던 것이 이젠 완전히 입에 붙어버렸습니다.
어매는 좌뇌 기능이 소실되어서 말하는 능력,글쓰는 능력이 사라졌습니다. 정신은 맑고 말귀는 잘 알아듣는데 자신의 말과 글이 사라지다보니 의사전달이 잘 되지않아 본인도 아들들도 답답합니다. 저는 그런 어매의 처지를 볼 때마다 고통스럽고 마음이 힘듭니다.
도로 위, 머리를 앞뒤로 바삐 움직이며 무단횡단중인 비둘기 한마리를 무심코 내려다 보면서도 좀 전에 다녀온 금호 집, 어매가 자꾸 생각납니다. 어느듯 6년차입니다. 형이 어매를 보살피고 있는데, 대소변 받아낸지도 벌써 일년반입니다. 삶이 고통이고 고문일 수도 있다는 것이 확 와닫는 요즘입니다. 말을 잃어버리니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어디가 아픈건지, 또 어떻게 아픈건지조차도...
3.
얼마전에 친한 선배 딸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작년 말 주은이 결혼식때도 크게 잘 느끼지는 못했는데 이번에 그 선배 자녀들, 그리고 친구 자녀들이 모두 장성한것을 보고서야 인생 후반에 들어 있는 나를 조금 인지 합니다. 요즘 결혼식,장례식에 심심찮게 참석하다보니 이런 통과의례가 혼주나 상주의 삶의 성취에 대한 주위의 인정이나 평가로 어느정도 작용한다는 것도 느낍니다. 그들을 보고 나를 한번 돌아보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나봅니다.
지난주 가까운 후배가 서울에서 놀러왔습니다. 같이 하룻밤자면서 이런저런 이야기하는데 아내의 외도로 이혼을 해야되나 말아야되나 고민하며 의견을 물어왔습니다. 어정쩡한 상황이 벌써 수년째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이혼하는것이 맞겠다고 저는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그게 쉽지만은 않은것이 이혼은 당사자들뿐만아니라 자신들을 둘러싼 대부분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므로 그 모든 반작용을 일거에 넘어서는 강력한 동력이 있어야 하는되는데 그것 또한 그렇게 간단치 않음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요즘 살면서 소소하지만 큰 즐거움을 느끼는 것중 하나는 독서하는 즐거움 입니다. 예전에는 주로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보는 편이었는데 이제는 거의 사서 봅니다. 생각해보니 1~2만원을 들여 짧게는 며칠에서 길게는 몇주동안 재미있게 보고, 아는 즐거움과 깨달음의 기쁨을 주는 것은 독서만한 것도 없는것 같습니다. 때로는 기득권과 최전선에서 치열하게 싸우는 양심적 전문가들의 책을, 책은 보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이다라는 김어준말마따나 후원하는 차원에서 구매하기도 합니다.
4.
인류학자들 말로는 침팬지와 현생인류가 공통조상에서 갈라진 시기가 대략 500만년전이라고 합니다. 유발하라리의 빅히스토리 도서 사피엔스에 따르면 약7만년전에 발생한 인지혁명, 1만오천년전의 농업혁명,그리고 최근의 과학혁명을 일으키며 현생인류 사피엔스는 오늘날 이런 모습으로 진화했습니다.
인류는 여러가지 상상의 질서를 만들며 집단의 규모를 키워왔습니다. 그리고 집단의 규모가 커질수록 역량도 커지고 사회제도도 고도화, 세분화 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의 밑바탕에는 말과 글, 그리고 협동이 있습니다. 말, 글이 없었다면 생물로서 기초적인 소통만 가능했을 것이고 지식은 전승될 수 없었습니다. 협동이 없었다면 오늘날과 같은 거대한 문명을 이룰 수 없었을 것입니다.
상상의 질서를 만들어 내는데 크게 기여한 것은 이야기입니다. 메소포타미아,인더스,이집트,황하, 아즈텍,마야, 등등 모든 고대 문명들에는 우주와 세상의 기원에 대한 나름의 이야기들이 전해져 내려옵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모두 집단의 결속과 협력을 강화하는데 기여합니다. 모든 민족에게는 나름의 기원설화, 이야기가 있습니다.
성경은 이야기입니다.창세기를 비롯한 모세오경은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들도 많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택스트니 컨택스트니 하며 성경의 특정한 문구에 특정한 의미를 부여하거나 또는 숨은 뜻을 찾고자 부단히 애를 쓰기도 합니다. 경전의 이야기들은 상상의 질서에 명분과 정당성을 부여하여 집단을 통합하는데 기여합니다. 그러나 계급과 기득권력을 정당화시키는 도구로 작동하기도 했습니다.
메소포타미아 비옥한 초승달지대에서 기원한 유대민족은 전쟁과 질병을 관장하던 부족신이던 야훼의 개념을 점차적으로 확장시켜왔습니다. 도시규모가 커짐에따라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했고 새로운 문제들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야훼가 관장하는 영역과 지위도 함께 커져 온 것입니다. AD325년 니케아공의회에서 구약과신약 기존 성경이외 더이상의 성경은 없다고 선언함으로써 성경은 서서히 과학과 분리되는 길을 가게되었습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성경이 하지 못하는 역할을 과학이 수행할 뿐만아니라 과학이 오히려 경전의 역할을 대신 해나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5.
우리 개신교의 교주인 예수는 스스로를 사람의 아들로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했습니다. 제가 굳이‘규정했다’라고 표현한 것은 사람의 아들은 신의 아들과 대립되는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릴때부터‘사람위에 사람없고 사람밑에 사람없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저는 어릴때 학교에서 들었던 격언중 도무지 무슨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 ‘사람이면 사람이냐 사람이라야 사람이지’라는 문장입니다. 사실 지금도 해석하려면 좀 어렵게 느껴집니다.
맹자는 사람이라고 부르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네가지 품성이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측은지심,시비지심,수오지심,사양지심인데 인,의,예,지로 표현되고 여기에 신을 더하면 오상이라고 하여 인의예지신이 됩니다. 저는 요즘 이 인의예지신이 참으로 옳구나하고 느낍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이런 덕목이 없으면 짐승과 다를바가 없다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요근래 유시민작가가 ‘문과남자의 과학공부’라는 책을 새로 냈습니다. 제가 보거나 가진책들과 겹쳐진 부분이 많아 사볼까말까 고민중인데, ‘거만한 바보들’’양복입은 침팬지’ 라는 표현들에서 갑자기 ‘우이독경’이란 고사성어가 생각났습니다. 소귀에 경읽기란 뜻이죠. 가령 편평한 지구를 주장하거나 믿는 자들에게 지구가 둥글다는 이야기를 하며 과학적 증거를 들이대는 것은 우이독경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태극기를 흔들어대며 성조기나 일장기까지 흔들어 대는 자들에게 진정한 보수에 대해 이야기하고 보수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며 민족을 이야기하고 이런저런 증거자료를 들이대는 것은 우이독경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소귀에 경전을 아무리 읽어줘도 소는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소는 그저 소로 대하면 오히려 소들이 좋아한다는 것을 최근에야 깨달았습니다. 침팬지들이 좋아하는 것을 해 주라. 그러면 침팬지들이 좋아할 것입니다. 소와 싸우지 말고 침팬지와 싸우지도 말고 사람이면 그냥 사람의 길을 가라! 나 자신에게 하는 말입니다.
6.
사람에게는 양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윤석렬검사독재정권은 그렇지 않습니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 한가운데서 멀쩡하던 젊은이들이 150명이나 숨을 못쉬어 죽어나가도, 지하도가 물에 잠겨 사람이 여럿 죽어도, 잼버리대회가 실패해도, 어느 누구하나 책임지지 않습니다. 위패도 없고 영정도 없이 국화꽃에 절하고 조문하는 기괴한 것들 입니다. 이놈들 소위 매국보수들은, 정권을 잡을 때마다 죄없는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이런저런 국정실패에, 민주적 시스템이 붕괴하고, 세계언론의 지탄을 받아도 사과한번 하지 않네요.
그리고 며칠전 검찰은 마침내 조국장관딸인 조민선생을 기소했습니다. 애초에 동양대 최성해 총장의 거짓도 거짓이지만 조국과 그 가족들을 철저히 몰살시키려는 윤석열, 한동훈 정치검사들이 하는 짓은 다만 짐승의 짓일 뿐입니다. 이들의 더럽고 비열한 짓거리는 나중에라도 반드시 징치해야 합니다.
아이고 또 어떻게 하다보니 기승전 정치이야기가 나오게 되네요. 여튼, 삶을 이야기하면 정치이야길 하지 않을 수 없고, 정치이야길 하면 옳고 그름, 즉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을 수없네요. 그것은 유발하라리에 따르면 상상의 산물인 정치가 사회를 이루는 무리동물인 인간의 가장 처음에서부터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삶에 깊이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7.
오늘은 사람, 사람의 아들,그리고 이런저런 평범한 일상 이야기들을 해봤습니다. 평범한 일상은 소중합니다. 평범한 일상속에서 우리에게 깃든 생명의 귀중함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야기'에는 두가지 함의가 있습니다. 우리 인간사회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 사상으로서의 이야기가 그 중 하나고 또 하나는 앞서 언급한 평범한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 들입니다. 평범한 일상과 소소한 이야기들이 모여 거대한 이야기 줄기가 형성됩니다. 무엇이 먼저라 할 수 없이 둘 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마가는 지금까지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 왔으며, 지금은 어떤 이야기를 만들고 있고, 앞으로는 또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 갈 것인가?에 대해 함께 고민하면서 사람사는세상과 마가이야기에 대한 꿈을 꾸면 좋겠습니다.
첫댓글 아멘! 사람 사는 세상 만들어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