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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자리 14호 수록 작품
불효자는 웁니다
“예끼, 이놈!”
아버지가 살아 돌아오셔서 나에게 화를 내실 것 같다.
오늘 티비에서 노인들이 한글공부 하는 것을 보고 있었다. 삐뚤빼뚤 글씨가 엉망이다. 그런데도 열중하는 그 자세들은 진지하다. 그 노인들의 표정에 아버지의 생전 모습이 겹쳐지면서 회한의 눈물이 흐른다. 효도가 어려운 것도 아닌데 왜 나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늦게야 아버지에게 용서를 비는 것일까?
나의 아버지는 자신이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한이 되어, 어려운 형편에서도 두 아들을 대학에까지 보냈다. 할아버지는 한학을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식 그것도 하나뿐인 아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고 한문도 가르쳐주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항상 지식에 목말라 하였고 배우는 일에는 게을리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종종 나에게 하신 말씀은 나에게 명언으로 남아있다.
“배울 때는 모르는 듯이 배워라.”
아버지는 한글은 잘 하였지만 한자는 모르는 글자가 많아서 관공서에 갈 때에는 나를 데리고 가고 싶어 하였다. 아버지의 거처 근처에는 항상 옥편이 비치되어 있어서 자주 펼쳐보시기 때문에 상용한자는 많이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당시 신문에 한글 병기(倂記) 없이 나오는 어려운 한자를 종종 아들인 나에게 가르쳐달라고 하는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버지에게 핀잔을 하였다. 그딴 것 왜 알려고 하느냐고 하며 퇴박하기가 일쑤였다.
여느 아버지 같으면 심하게 나무라지 않았겠나 생각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신문을 걷어 가면서 화를 내지 않고 미안하다고만 하셨다. 아버지는 나의 불친절에 무안하다 못해 얼마나 불쾌하셨을까? 당시 나의 태도를 되돌아보면 내 자신이 미워진다.
심한 후회감이 눈물과 함께 쓰나미처럼 밀어 닥친다.
“아버지 용서하여 주십시오! 잘못하였습니다.”
“하늘에서라도 이 못난 놈의 불효를 꾸짖어 주십시오!”
“예끼, 이 놈! 불효막심한 놈!”
아버지가 살아오셔서 눈을 부라리며 회초리로 때려 주시면 오히려 내 마음이 덜 괴로울 것 같다.
나는 아버지 생전에 왜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였을까? 어렵지도 않은 그 일을 왜 시원하게 가르쳐드리지 못하였을까? 아버지를 여읜 후에야 깨닫는지, 그 어떤 방법으로도 되돌릴 수 없게 된 지금에서야 후회를 하는지 내 자신 나도 모르겠다. 그 불효 때문에 가슴이 너무 아프다. 아버지에게 잘해드리지 못한 것이 한(恨)으로 되어 나를 옥죈다.
아버지에 대한 불효가 가물가물 기억에서 멀어져가다가 한번 기습하게 되면 감정이 격해지면서 자제하기가 힘들어진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마땅한 벌을 받으면 마음이 편해진다고 하던데 그런 심정이 이해가 된다.
왜 인간은 과거를 생각해 내고 후회하면서 괴로워하는지 모르겠다.
〈불효자는 웁니다〉 노래라도 부르면 속이 좀 후련해질까?
空冊來空冊去
(책 욕심을 내려놓는다)
책은 사치이었다.
나의 청소년 시기 즉 해방 후 그리고 한국동란 전후에는 모든 물자 그리고 종이류가 부족했고 마찬가지로 책도 귀했다. 게다가 빈한한 생활 탓에 의식주가 우선이지 책은 나에게 사치품일 수밖에 없었다.
어쩌다가 책이 생기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어릴 때 아버지가 사 오신 ‘행복한 왕자’는 나에게 행복 그 자체이었다. 책갈피에서 구겨진 곳이 있으면 신경이 쓰였으며, 그 습관이 아직 남아있어 하나하나 펴야 마음이 놓인다.
책에 대한 관심이 성장한 후에도 계속되어 좋은 도서가 있으면 호주머니가 궁한 상태에서도 욕심을 내었고 세월이 지나 헌 서점에서 구하는 경우도 많았다. 호기심으로 구입하였어도 내 수준에 너무 어려워 덮어버린 것도 더러 있었고, 탐이 나서 전질로 샀다가 많은 부분 읽지 않고 서가에 비치하는 것으로 그치는 경우도 있었다. 단지 가지기 위한 목적으로 마련한 것도 있었다.
돈이 부족하다보니 헌책으로 만족하는 경우도 많았다. 당시 헌책방은 대구시청 옆에 많았고 남산동에도 더러 있었지만 내가 자주 들른 곳은 시청 옆이었다.
책장에 서적이 많이 꽂혀있는 것을 보면 부러워했었고 서재에서 음악을 들으면서 독서하는 것이 나의 꿈이었다. 그러나 서재는 물론 책장도 없었다. 나에게 아니, 나의 집에 책장이 생긴 것은 공무원 첫 봉급을 받고 목수에게 주문하여 마련한 것이 처음이다. 하숙집에 책장을 들여놓고 몇 되지 않는 책을 정리할 때의 기쁨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나를 거쳐 간 도서가 모두 몇 권인지는 모른다.
전문서적을 비롯하여 교양, 종교, 문학서적 등 다양한 서적이 늘어나 도서를 관리하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그래서 도서관처럼 분류하려고 시도한 적이 있었으나 너무 복잡한데다가 사서 지식이 없어서 포기하고 말았다.
도서를 구입하는 데 든 비용도 상당했다.
수의학서적이 당시에는 국내서적이 거의 없어서 영서 아니면 일서가 대부분이었고, 구입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전문서적에 투입된 비용은 어쩔 수 없다고 할지라도 그 외의 도서 구입에도 당시의 내 소득에 비하면 많은 돈이 투입되었다.
이제는 책도 짐이고 부담이다.
좋아하던 책들도 거추장스러울 때가 되었다. 나이가 들어 힘도 없고 기억력도 떨어지고 게다가 서재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책을 관리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렇다고 쉽게 버릴 수는 없었다.
자식들을 출가시키고 아내와 둘만 남게 되고 주거용적도 줄이다 보니까 서적을 보관할 공간이 부족했다. 이사할 때가 가장 힘들었다. 동물병원을 은퇴한 후, 대구를 떠나 서울로, 왜관에서도 두 번 이사하면서 책을 옮기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용단을 내려 서적을 정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싸게 구입한 원서 그리고 마음이 담겨있는 책들도 있었기 때문에 정리하는 마음이 착잡했다.
그 중에는 한국어판 ‘리더스다이제스트’도 있었다.
리더스다이제스트를 만난 것은 초등학교 때이다. 친구 집에서 그의 형 서가에 꽂혀있는 그 책을 처음 읽고 그 내용에 반했었다. 그 후 절판되었다가 다시 복간되어 거의 30여 년간 정기구독하여 폐간될 때까지 애독하였다. 그 책은 나의 젊은 시절 지식에의 목마름을 해결해 주었고 무엇보다 나의 교양적인 면에 크게 도움을 주었다. 친구와 같아서 도착하면 반가웠고 다음호를 애인처럼 기다렸다. 발행 초기의 창간호와 몇 권은 대구 시내의 고서점을 돌아다니며 구입하여 발행된 전권을 구비했었다.
정리하면서 다른 책은 버렸으나 그 책은 미련이 남아 한동안 농장 구석에 비치하고 있었으나 부피가 많은 것을 계속 보관하기에는 짐이 되어 결국 헤어져야만 했었다. 카니발에 잔뜩 싣고 고물상에 내려놓을 때 오랜 친구를 떠나보내듯 머뭇거렸다. 지금도 아까운 생각이 들면서 괜히 버렸나 자책을 하기도 한다.
아쉬워하면서 버린 책 중에는 사상계도 있다. ‘思想界’는 한국동란 후 창간되어 우리나라 지성을 대표하며 많은 지식인들에게서 사랑을 받았던 월간지이다. 바른 소리를 하고 독재에 대해서도 비판을 서슴지 않았기 때문에 군사정권 때에는 제재를 많이 받았고 고초를 겪었다. 결국 김지하의 시 ‘오적(五賊)’ 때문에 1970년 5월호 205호를 끝으로 당국으로부터 폐간처분을 당했다.
수준이 높아 읽기가 어려웠지만 끝까지 정기구독하였고, 구입하지 못한 것은 여러 해 걸려 대구시내 고서점을 수색해 수집했었다. ‘사상계’로 이름이 바뀌기 전, ‘思想’ 으로 창간된 여러 권도 어렵사리 구하여 전질을 비치할 수 있었다.
한 번은 선친의 지인 목사님이 오셔서 내 책장에 모여 있는 사상계를 보시고 자기에게 없는 창간호를 위시한 몇 권을 달라고 하였으나, 그렇게 하면 이 빠진 불구가 되기에 거절했었다. 그 후 여름 장마에 폭우가 내려 집안에 누수가 있었고, 다락에 보관하던 사상계가 물에 흠뻑 젖어 애써 모았던 창간호부터 모두 다 쓸모없게 되었다. 나의 것이 될 수 없는 것, 왜 양보할 수 없었나, 목사님에게도 미안하고 내 자신에게도 후회가 밀려와서 아까워하면서 분통을 터트린 일이 있었다.
이제는 책을 읽는 것도 힘들다.
나이가 들어 눈이 어두워져서 안경을 껴도 글자가 겹쳐지고 희미하게 보일 때가 많다. 돋보기를 동원하기도 하기도 하니까 읽는 것이 점점 어렵다. 아내마저 책 그만 보라고 성화이다. 안과에서도 황반변성, 녹내장, 출혈도 있으니 독서를 줄이라고 처방한다.
서적을 구입하는 양도 줄어진다.
지금은 기독교 서적, 새로 구입한 몇 권, 그리고 수필에 관한 책 정도가 나의 서가에 꽂혀 있다. 그래도 4,5백 권은 될 것 같다. 내가 죽으면서 가져갈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서적 또한 욕심을 부릴 일이 아니다. 이 세상에 남겨 놓을 책은 없다. 책에 대한 소유욕도 내려놓으려 한다.
아무리 아끼던 물건이라도 하나도 가져갈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 우리는 집착하는 경우가 많다. 이 세상의 것은 영원히 나의 것이 될 수 없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이 세상에 올 때도 맨손으로 오지만 갈 때도 빈손으로 간다.
마지막으로 이사할 때에는 돈도 가지고 가지 못한다는데 … .
책은?
정치혐오증
나에게는 고질병이 하나 있다.
처음 발병한 것은 60여 년 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첫발을 디딜 즈음이며, 병명은 정치혐오증이다.
6·25동란으로 파괴된 나라가 한쪽 다리를 잃은 채, 절뚝거리며 일어서려고 버둥거리던 시기에 나는 머리가 굵어졌다. 그러나 사회곳곳에서 잡음이 잇따랐으며 민주주의국가로 출발한 정치는 부패와 비리가 판을 치고 있었다. 자유당 말기의 정치판은 나에게 혐오증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발병조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
3·15부정선거는 그렇잖아도 골골하던 병을 악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사회는 ‘사바사바’와 ‘와이로’가 횡행하여 고단한 민초들만 춥고 배고팠다. 정치(政治)가 정치(正治)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되어 한창 젊은 나에게 정치는 혐오대상이 되었다. 이어서 4·19혁명으로 정권이 바뀌고 발전되는 것 같았지만 나에게 닥친 병은 좀처럼 나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한번 병든 나의 정치혐오증은 만성이 되어 심지어 신문의 일면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게 만들었다. 그렇게 생긴 병이 나아지기 시작한 것은 50대 이후가 아닌가 생각한다. 지천명(知天命)의 나이가 되고 생활도 나아져서 안정된 탓도 있었을 것 같다. 병에 내성이 생겨서인지 정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정치면이 내 눈에 들어왔다.
인간이면 나 혼자 살 수가 없고 남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면 거기에는 정치가 개입된다고 할 수 있다. 서로의 인권을 존중하고 더불어 살면서 서로 나누고 협력하면서 공동의 선을 이루는 것이 정치라고 생각한다.
며칠 전 백암온천에서 옆자리에 2살 정도의 아기가 있었는데, 우리 일행들이 그 천진난만한 얼굴이며 포동포동한 하얀 손을 바라보며 귀여워했었다. 과자를 주어도 의심 없이 손을 내미는 모습과 아무 근심 없는 미소에 우리도 평화로운 분위기에 젖었었다. 정치는 아기의 얼굴이나 손과 같이 의심 없고 걱정 없고 미움 없고 전쟁 없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잠잠하던 정치혐오증이 다시 도지는지 요새 온몸 구석구석이 들쑤신다. 구역질이 나고 머리가 아프고 혈압도 오른다.
북한의 비핵화 담판은 더욱더 미궁에 빠져 들어가는 것 같고, 경제는 더 어려워지고 있고 정치지도자들은 물론이요 사법부 수장까지 감옥을 제방 드나들 듯 하고 있다. 지금의 정권은 적폐청산 현수막을 걸어놓고 전 정권 인사들을 처단하기에 온 정열을 쏟고 있다. 앞을 향해 나아갈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과거에만 매달려 있다. 국가의 원수를 믿어야 하지만 오히려 더 신뢰가 떨어진다. 잃어버린 나라를 찾느라 희생된 선혈들은 잠들었고, 2·28이나 4·19는 퇴색하였으며 천안함의 젊은이들은 차가운 바다 밑에 묻혀 있는데, 이 나라 정치는 세월호를 타고 수학여행을 가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경제도 불안하여 정치인들에게만 맡기기에는 마음이 놓이지를 않는다. 여야 할 것 없이 이전투구판에 뒹굴어서 모두 진흙투성이다. 내 머리가 혼돈을 일으키고 무질서하여 어느 것이 백로인지 까마귀인지 분간 할 수가 없고, 누가 내로남불인지 판단을 못하겠다.
요순임금 때를 기대하는 것도 아니고, 이상향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정부와 정치인은 국가와 국민을 위하여 정의롭고 공정하게 통치하고 국민은 그 정치를 믿고 핵위협 없는 곳에서 생업에만 전념하면 된다. 촛불을 들고 태극기를 흔들면서 자동차의 통행을 막을 필요가 없다. 대통령의 이름을 모르더라도 국민은 대통령과 정부를 믿으면서 국민의 의무를 다하고, 대통령은 당리당략에 좌우되지 않고 국민의 행복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나라가 가장 건전한 나라라고 생각한다.
미국의 어느 작가는 Politics를 poly(많다)와 tics(흡혈진드기)로 풀이하여 정치집단을 흡혈집단으로 비꼬았다. 일리가 있는 비유라고 생각한다. 그 진드기에게 나도 물리지 않을까 걱정된다.
정치가 싫다.
정치인들의 꼬라지가 보기 싫다.
고질병이 재발되어 악화되지나 않을까 걱정된다.
“암행어사 출두요!”
암행어사가 출두하여 이 어지러운 정치를 바로잡아 줄 수 없나?
나의 만성적인 정치혐오증을 치료해 줄 용한 의사가 없는가?
인간의 필수조건
(사람이라야 사람이지)
인간은 무엇인가?
사람은 짐승과 어떻게 다른가?
입, 코, 귀, 다리, 심장, 거의 비슷하게 양쪽이 다 가지고 있다. 옷을 제외하면 똑같다. 언어도 나름대로 제각각 소통하고 있는 점은 같다.
짐승은 육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배고프면 남을 생각하지 않고 차지하여야 한다. 상대의 것을 뺏거나 심지어 죽여서라도 차지한다. 그러나 인간은 생각할 수 있고 체면이 있고 남을 해치기보다 서로 돕는 마음이 있다. 짐승과 다른 근본적이고 중요한 차이점은 무엇보다 사람에게는 양심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사는 세상이 발전하고 문화가 고도로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은 양심이 살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미움과 투쟁이 있고 전쟁이 있기는 하지만, 그러면서도 질서와 균형을 이루고 양보하고 약속하고 법을 만들어 서로 조절하고 통제하기 때문이다. 그 밑바탕에는 양심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늙은이이건 젊은이이건, 지식이 많으냐 적으냐에 관계없이 양심을 배반하고 사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 양심을 거스르면 얼굴이 붉어지고 심지어 말조차 순조롭지 못하여 겉으로 드러난다. 이 양심이 살아있기에 인류가 인간으로서 존속하고 있는 것이다.
양심은 한자로 良心이라고 쓰며, 사전에서는 ‘어떤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 선과 악을 구별하는 도덕적 의식이나 마음씨. 사물의 선악, 정사(正邪)를 판단하고 명령하는 능력. 도덕적 의식.’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선량(善良)’ ‘양심의 가책’, ‘자신의 양심을 속이다’ 등의 의미로 사용된다.
작금의 우리나라는 불안하다. 불안 정도가 아니라 양심이 도전을 받고 있다. 인간에게만 있는 그 양심을 지켜내려고 처절한 싸움을 하고 있다. 정치나 이념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사람의 근본을 진단하는 절체절명의 응급 시간이다. 인간 정체성의 생존 여부를 결정짓는 갈림길이다. 양심에 손상을 입게 하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다. 양심을 순수하게 보존하기 위하여 비양심에 대항하여 전쟁을 벌이고 있는 양상이다. 인간의 근본이 병마에 침해받지 않으려 한방 양방 가리지 않고 비방약을 투여하고 있지만 약발이 듣질 않는다.
조국 한 사람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장관을 하느냐 마느냐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서울대학교는 우리나라 대학의 최고봉에 자리하고 있으며 많은 지성인을 배출하고 있다. 그 학교의 교수가 정부의 요직을 차지하기 위하여 진실을 감추고, 법무부장관의 자리에 앉기 위하여 양심을 속인다면 이 나라의 지성은 자존심을 잃어버릴 뿐 아니라 존재가치가 크게 훼손될 것이다.
사람을 해치지 않는 것은 법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상호 존중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법에 위배되기 때문에 도둑질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양심이 있기 때문에 남의 물건에 손대지 않는 것이다. 양심이 모여서 질서와 규칙을 만들고 법을 제정한다. 법의 근본인 양심을 거스르는 사람이 법을 지키는 법무부장관이 되려고 하고 있다. 법을 지키기 이전에 양심이 건강하게 살아있어야 한다.
우리 국민은 지금 무엇을 배우고 있나?
재력이나 지식을 가진 자는 모든 것을 가질 권리가 있고, 가지지 못한 자는 가진 자 밑에서 을(乙)의 한자 형상과 같이 굽실거리며 삶을 이어가야 한다는 말인가? 그들이 쓰다 남은 찌꺼기로 배를 채우고 그들이 차지하고 남은, 비어 있는 허름한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다는 법리(法理)가 형성되어 가고 있다.
착실하게 사는 사람은 손해를 보게 된다는 사실을 배우고 있다. 공장에서 땀 흘리며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은 왕따를 당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를 강요받고 있다. 아무도 봐주지 않는 연구실 구석에서 업무에 충실한 사람은 찬밥으로 만족하라고 이 나라가 법으로 규정할 태세이다.
편법과 거짓말이 더 잘 소통하고 인정받는 사회로 탈바꿈하려고 꿈틀거리고 있다. 진실은 입으로만 외칠 뿐 실제로 이 세상에서는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낡은 세대의 구린내 나는 무가치하고 쓸모없는 쓰레기로 치부하여, 버릴 곳을 찾다가 장관 집무실에 양심을 매장하려고 한다.
양심은 살아가는 데 걸리적거리는 방해물이며 거추장스러운 장애물로 생각하는 정치인들에게 우리는 마지막 남은 양심을 지키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의 양심이 죽으면 전염성이 확산되어 모든 국민의 양심에도 상처가 크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윤리도덕이 파괴되고 양심이 무너지면 이 세상은 살아나가기가 너무 힘들어진다. 그야말로 동물의 세상이 되고 만다. 한 사람의 양심이 무너지면 나의 양심도 다친다.
良心이 있어야 할 자리에 양심(兩心) 즉 두 개의 서로 다른 마음, 겉 다르고 속 다른 마음이 발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 양심(良心)이 없는 사람은 양심(養心) 즉 심성(心性)을 수양해야 한다.
양심(良心)을 버리면 인간이 아니다.
부끄러워하는 얼굴 보고 싶다
부끄러움이 없다
나의 젊은 시절에는 작은 잘못에도 미안해하고 부끄러워했었다. 그러면서 죄송스럽다는 말을 자주 하였다.
총각과 처녀가 만나면 얼굴(낯)을 붉히고 부끄러워했었다.
총각 시절 나는 친구 둘과 함께 동촌에 놀러갔는데, 우리 앞 저만치 우리 또래의 연인이 손을 잡고 걸어가고 있었다. 우리 셋은 함께 소리 질렀다.
“야! 손 안 놓나?”
그 연인들은 슬그머니 잡았던 손을 떼는 것이 아닌가! 남녀 간의 사랑은 죄가 아닌데도 얼굴을 붉히고 부끄러워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아름다운 홍당무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진실해야 할 인간의 모습이 가면을 쓴 것 같이 보인다. 아니면 마음에 성형수술을 하여 인간이 아닌 모습으로 바뀌어 가는 듯하다.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
요사이 뉴스를 보고 있으면 사람의 모습이 변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분명 윤리도덕에 어긋나고 잘못을 했는데도 후안무치(厚顔無恥)이고, 심지어 법을 어기고, 죄를 짓고도 수치스러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철면피(鐵面皮)의 얼굴을 드러낸다.
고유정은 전남편과 의붓아들을 죽이고도 얼굴 표정 변함없이 카메라 앞에 나선다. 양심에 가책을 느끼는 기색이 전혀 없어 보인다. 화성연쇄살인 사건으로 전국을 두려움에 떨게 하였던 이춘재는 범행을 부인하다가 자백했다고 한다. 잔인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얼굴에는 뉘우치는 모습도 없다. 사람을 죽이고도 죄책감을 느끼기는커녕 오히려 당당해 보인다.
지금 우리나라는 조국 한 사람 때문에 나라가 시끄럽다. 그런데도 조국은 얼굴 표정 하나 붉히지 않는다. 부끄러움도, 염치도 없다. 웃음은 전혀 없는, 굳은 얼굴로 거짓말을 태연하게 뱉어내고 있다. 서울대학교 교수가 때묻지 않은 젊은이들에게 ‘양심대로 살면 성공할 수 없다’고 가르치는 것 같다.
국회 대정부질의에서 주호영 의원과 조국의 질의응답이다.
“‘도대체 조윤선은 무슨 낯으로 장관직을 유지하면서 수사를 받는 것인가?’라고 하셨죠?. 본인의 양심이 있다면, 수사 받으면 그만 두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교수 시절에 썼던 글인 것 같습니다. 성찰하겠습니다.”
소위 ‘조로남불’이다. 죄송하다거나 뉘우치는 기색은 전혀 없다. 표리부동(表裏不同)의 그 얼굴은 뻔뻔하기 그지없다.
요사이 유모어가 돌아다닌다.
“부인에게 딸이 있다고들 하는데 사실입니까?”
“아내가 한 일이라서 나는 모르는 일입니다.”
“그 딸은 누구의 딸인지 아십니까?”
“아내에게 물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희노애락 그리고 부끄러움과 염치는 이 세상 피조물 중에서 인간만이 드러낼 줄 아는 감정이다. 인간이 냉혈동물로 변해 가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죄를 지으면 얼굴을 가리거나 부끄러워했었다. 남에게 폐를 끼치거나 피해를 준 사람들에게 얼굴을 숙이며 사과를 했었다. 심지어 남녀 간에 사랑을 표현하는 것까지 자제했었다. 남부끄러워 손도 잡지 못했다.
부끄러워한다는 것은 순수한 마음에서 드러낼 수 있는 아름다운 표정이다. 어린 아이에서는 그래도 가끔 볼 수 있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부끄러움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학력이 높아가고 생활이 윤택하게 되면서 부끄러운 감정을 표현하는 데는 인색해져가는 것 같다. 부끄러움을 의식적으로 자제하는 힘이 생기는 것 같다.
그러나 지금 이 나라는 큰 죄를 짓고도 후회하는 태도가 전혀 없다. 윤리도덕은 실종된 지 오래고 양심마저 폐기처분하려 하고 있다. 이제는 양심 지키는 사람은 쓰레기 취급당하는 것 아닌가 싶다. 순수하던 그때가 그립다.
화가 나면 성을 내고 좋은 일에는 기뻐하면서 감정들이 솔직해졌으면 좋겠다. 양심을 거스르면 창피스러워 할 줄도 알고, 거짓말하면 얼굴을 붉히는 모습이 보고 싶다. 양심이 회복되고 순진해졌으면 좋겠다.
부끄러워하는 얼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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