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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민중항쟁_사즉생(死則生), 십자가 없이 부활 없다!
누가복음 24:1-7
1. 안식일 다음날 아직 동이 채 트기도 전에 그 여자들은 준비해 두었던 향료를 가지고 무덤으로 갔다.
2. 그들이 가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은 이미 굴러 나와 있었다.
3. 그래서 그들이 무덤 안으로 들어가 보았으나 주 예수의 시체는 보이지 않았다.
4. 그들은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었는데 바로 그 때에 눈부신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나타났다.
5. 여자들은 그만 겁에 질려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여자들에게 "너희는 어찌하여 살아 계신 분을 죽은 자 가운데서 찾고 있느냐?
6. 그분은 여기 계시지 않고 다시 살아나셨다. 그분이 전에 갈릴래아에 계실 때에 무어라고 말씀하셨느냐?
7. 사람의 아들이 반드시 죄인들의 손에 넘어가 십자가에 처형되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리라고 하시지 않았느냐?" 하고 말해 주었다.
오늘은 부활절이자 제주 4.3 민중항쟁 기념주일입니다. 먼저 십자가에 달리셨다가 죽은 자의 첫부활이 되신 주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제주 4.3 민중항쟁은 1947년 3월 1일부터 1954년 9월 21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 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했던 사건을 총칭하는 말입니다. 이 사건은 해방 후 미군정 시절이었던 47년에 일어닜습니다. 그해 3.1절 독립 만세 기념 행진 도중 발생한 경찰의 총격 사건을 기점으로 이듬해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그리고 이후의 진압과정에서의 무자비한 학살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사건 발생일부터 7년 7개월 동안 미군정과 이승만 정부의 군경, 영락교회가 주동이 되어 만들어진 서북청년단 등에 의해 희생된 사망자는 3만 명이 넘었으며 행방불명자도 3천 명 이 상된 우리 분단역사의 가장 가슴 아픈 사건이었습니다.
2019년에 만들어진 4.3 민중항쟁에 대한 4분짜리 영상을 같이 보시고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 4.3 민중항쟁(https://youtu.be/n1OHT4Um0jU)
올해 부활절은 오늘, 4월 첫 주입니다. 보통 4월 셋째 주에 부활절이 많이 오는데 이렇게 날짜가 바뀌는 것은 부활절을 결정하는 방식 때문입니다. 부활절 날짜는 AD.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결정했는데, 춘분이 지나고 첫 보름달이 뜬 다음에 오는 일요일로 정해졌습니다. 때문에 가장 빠른 때는 3월 22일, 가장 늦을 때 4월 25일이 됩니다.
부활절 날짜를 정하는 과정에서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대립이 치열했습니다. 동방교회는 예수 부활 이후 히브리 전통 달력을 기준으로 니산(Nisan)월 14일 다음에 오는 일요일로 하자고 주장했습니다. 즉 죽음을 넘긴 유월절의 의미를 살려 빠스카 축제 이후 첫 일요일에 부활절을 지내야 한다는 것이었죠.
반면에 로마의 서방교회는 부활절은 무조건 춘분 후 만월 다음에 오는 첫 일요일이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런 차이는 각 교회가 무엇을 중시하는가에 따라 달라진 것입니다. 즉 동방교회는 부활절의 기준으로 유월절과 무교절을, 서방교회는 춘분이라는 태양 절기를 중요시한 것입니다.
313년 기독교가 콘스탄틴 대제에 의해 국교로 선포된 뒤 태양신 종교와 결합 되었다는 것을 반영하는 결정입니다. 즉 밤이 가장 긴 동지는 어둠을 극복하고 태양이 다시 솟는 절기로 보아 성탄절을,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춘분은 어둠을 태양이 완전히 극복한 절기로 보아 부활절이 기준이 된 것입니다.
부활절의 유래는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서 비롯됩니다. 예수님은 히브리력 니산월 14일 유월절(당시 목요일)에 최후의 만찬을 하고 그날 밤 예수를 증오하던 유대인들, 종교인들, 로마 군경에 의해 잡혀 고난과 조롱을 받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15일(당시 금요일) 무교절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됩니다. 그리고 안식일(토요일)이 지나고 십자가에서 죽은 지 3일째 되는 일요일 새벽에 사망과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셔서 죽은 자의 첫 부활을 이룹니다.
부활절은 구약의 초실절(맥추절)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3대 명절이 있습니다. 유월절과 초실절, 그리고 장막절(초막절)입니다. 초실절은 말 그대로 “처음 익은 곡식이나 열매를 신께 바치는 날”입니다. 주로 보리를 추수해서 드리기 때문에 맥추절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였습니다.
신약성서에서 열매나 곡식은 사람을 의미하기도 했습니다. 제자들은 곡식의 첫 번째 수확물로 제사드리는 초실절의 예언을 예수가 성취하였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예수가 죽은 자들 가운데 첫 열매, 즉 초실(初實)로서 부활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코로나19가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이 시대 부활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자본주의의 광기가 걷히지 않고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기후 위기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부활은 어떤 것일까요? 아직도 군부독재와 가진 자들의 욕심 때문에 희생당하는 민중들에게 부활은 무엇입니까?
한국 최고의 종교학자로 인정받는 길희성 교수는 우리 시대를 탈종교의 시대로 진단합니다.
물론, 여기서 종교는 제도적이고 전통적인 의미의 종교를 말하는 것입니다. 현재의 종교 모습으로는 더이상 인간들의 영적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요즘 개신교를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길 교수는 요즘 기독교가 위기에 처한 것은 목회자 혹은 신자들의 도덕적 수준 저하로 인한 것만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오히려 그것보다는 기독교의 메시지가 이 시대에 더이상 통하지 않는다는데 있다고 주장합니다.
길 교수는 기독교의 메시지가 우리 시대의 인간 이성을 파괴하였다고 진단합니다. 하느님의 은총은 이성을 완성하는 것인데 문자주의적 근본주의가 인간의 이성을 망가뜨렸다는 것이죠. 목사들이 질문하는 신앙을 배제하고 ‘묻지 마’ 신앙을 강요하기 때문이란 것입니다.
또 다른 측면에서 메시지의 절대성과 유일성의 주장인데, 유일신론의 문제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유일신론은 배타와 부정을 근간으로 하고 있습니다. 십자군 전쟁을 시작으로 기독교는 지금 이순간까지도 침략 전쟁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기독교가 창조신을 남성성으로 규정하므로 가부장적 질서를 대변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을 창조한 공학적이며 기능적인 아버지의 모습으로 하느님을 그리는 것이죠. 이 가부장적 질서가 온갖 차별을 잉태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창조신은 생명을 주신 어머니 모습의 하느님(God as birthing-mother)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하느님은 인간과 모든 생명, 온 우주와의 관계성 속에서 존재하는 신입니다. 그리고 그 우주의 항상성을 지키고 계시는 것입니다.
때문에 이제는 기독교의 메시지가 달라져야 합니다. 부활은 십자가 없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죽음을 거치지 않고 부활할 수 없는 것처럼 십자가를 지지 않고 부활의 기쁨을 누릴 수 없습니다.
자본주의에 편승해서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해서라도 부를 얻는 것이 축복이라고 강변하는 기독교는 탈종교 시대에서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인간의 이성을 망가뜨리는 ‘묻지 마’ 신앙과 온갖 차별과 폭력을 수반하는 가부장적 신앙은 설 자리가 없습니다.
과거 종교의 패러다임을 십자가에 달아 죽이지 않고는 새 시대에 참된 종교의 모습으로 부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누가복음이 기록한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증언을 듣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은 지 3일째 되는 날, 아직 동이 채 트기도 전에 그를 따르던 여자들이 준비해두었던 향료를 가지고 무덤으로 갑니다. 남몰래 예수님 시신에 향료를 바르려 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무덤에 도착해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습니다. 여자들이 서둘러 무덤 안으로 들어가 보았으나 예수님의 시체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는 여자들 앞에 눈부신 옷을 입은 두 사람이 나타납니다. 소식을 전하는 천사였습니다. 갑자기 벌어진 이상한 광경에 여자들은 겁에 질려 감히 천사들을 쳐다보지도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천사들이 여자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살아 계신 분을 죽은 자 가운데서 찾고 있느냐? 그분은 여기 계시지 않고 다시 살아나셨다. 그분이 전에 갈릴래아에 계실 때에 무어라고 말씀하셨느냐? 사람의 아들이 반드시 죄인들의 손에 넘어가 십자가에 처형되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리라고 하시지 않았느냐?"
이 이야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부활의 첫 목격자가 여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안식일 법과 무덤을 지키는 자들을 피해 일요일 새벽 무덤을 찾은 여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처음 목격합니다. 이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한 다른 여자들입니다. 마가복음에 따르면 또 다른 여자들 중 한 명은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인 살로메였습니다.
다른 복음서들도 여성을 부활의 최초의 목격자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여성은 사람대접을 받지 못할 뿐 아니라, 법적 증인으로서도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부활의 증인으로 인정받을 수도 없는 여자들을 사도들 대신 부활의 첫 목격자로 기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예수님의 삶과 복음이 인간 대접도 받지 못했던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 더욱 절실한 것이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두 번째는 천사들이 전한 말 중 ‘사람의 아들이 반드시 죄인들의 손에 넘어가 십자가에 처형되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리라’고 예수께서 늘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동고동락하면서 몇 번이나 예루살렘에 가면 붙잡혀서 고난을 당할 것이고, 십자가에서 죽게 될 것이지만,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조차 그 말을 믿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이적들을 직접 눈으로 보고, 예언의 말씀을 자신의 귀로 들었지만 의심에 가득차 있었던 것입니다.
제자들조차 믿지 못할 십자가와 부활의 기적이 눈 앞에 펼쳐지고 있습니다. 이 기적이 제 손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은 자들에게는 어떤 일로 비추어졌을까요? 천사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아 죽게 한 자들을 죄인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죄의 대가를 받아야 할 죄인들에게 예수님의 부활 소식은 매우 공포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예수님의 부활은 가난하고 억눌린 자들을 십자가의 죽음으로 몰아넣는 독재 권력, 남을 자신의 재산 축적과 쾌락의 도구로 삼는 자들, 생명을 해치고 자연을 마구 착취하는 자들에게 공포가 되어야 합니다.
세 번째는 ‘살아 계신 분을 죽은 자 가운데서 찾고 있느냐?’는 질문입니다. 예수님을 따르고 그분처럼 살려는 사람들은 첫 부활에 참여할 자격을 얻은 산 자들입니다. 죽은 자들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주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의 욕심과 욕망으로는 절대 찾지 못하고 만날 수도 없는 존재가 십자가를 지신 부활의 예수님입니다.
오늘의 교회는 십자가 없는 부활만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부의 축적을 하느님의 축복이라고 말하며 이웃을 착취하고 생명까지 빼앗습니다. 이런 종교는 부활하신 예수님과 아무 상관이 없는 종교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에 참여하려면 자신의 십자가를 질 수 있어야만 합니다. 오늘 우리의 십자가는 예수님처럼 가난하고 억눌린 자들의 친구가 되어 자신을 내어주는 일입니다. 그 끝에는 주님의 부활에 참여하여 영생을 누리는 길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생각할 것은 우리가 만나고, 보고 들었던 예수님의 기억과 경험을 지금 그 자리에서 전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천사들은 여자들에게 예수님께서 갈릴리에 계셨을 때 그들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라고 말합니다. 그 말을 들은 여자들은 예수의 말씀이 생각나서 무덤에서 발길을 돌려 열한 제자와 그 밖의 여러 사람들에게 이 모든 일을 알려주었다고 합니다(8-9절).
오늘 우리도 우리가 목격하고, 기억하는 것을 세상에 잘 전해야 하겠습니다. 가난하고 억눌린 자들과 함께 십자가에 달렸다가 모든 어둠의 권세를 이기고 승리하신 부활의 사건을 증거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살아온 역사 속에 주님과 함께 겪어내었던 고난과 승리의 기억을 오늘 다시 되살려내야 하겠습니다.
3월 31일 미얀마 유엔 특사는 군부가 536명을 살해하고 2천729명을 체포했다고 밝혔습니다. 정말 끔찍한 만행입니다.
지금 군부 쿠데타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은 젊은 세대들이 주축입니다. Z세대라 불리는 젊은이들은 더이상 군부독재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싸움에 임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지금 죽는다 해도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 싸움이 끝난 게 아니다. 만약 오늘 내가 죽지 않았다면 이 싸움은 내일 계속될 것"이라고 적힌 명찰을 목에 걸고 거리에 나서고 있습니다.
청년들이 거리에서 싸우는 것과 별개로 시민불복종운동(CDM)도 전개 중입니다. 미얀마 7개 주의 공무원 대부분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병원·학교·은행이 문을 닫았고 대중교통도 멈췄습니다. 나라의 모든 경제적·사회적 기능을 일시적으로 멈추게 함으로 군부에 타격을 주려는 의도입니다. 이전 독재 시절과 다르게 소셜미디어가 발달한 것도 군부에 저항하는 힘이 되고 있습니다.
'사회적 처벌 운동'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군부 지도자의 가족, 경찰과 그 가족의 신상을 공개하는 것이죠. 얼마 전 군부 최고사령관의 아들과 딸이 재학 중인 호주와 일본의 학교가 공개되었습니다. 군사 쿠데타의 당사자와 조력자를 드러내 망신을 주고, 이들을 사회적으로 지탄받게 만드는 게 '사회적 처벌 운동'의 목적입니다.
지금 미얀마는 내전 직전이라고 합니다. 각 민족 단위로 소규모 독립군을 가지고 있는 소수민족들이 임시 대안정부와 함께 군부에 대항하여 연합군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미얀마엔 20개 소수민족 반군단체가 있으며, 반군 병력은 총 7만 5천 명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번 부활절에 십시일반 작은 물질이지만 미얀마 시민들과 함께한다는 의미에서 연대기금을 보내려고 합니다. 이 작은 동참이 미얀마 민중들에게 힘이 되길 바랍니다.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기억하고 전하는 모든 이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사는 은총이 함께 하시길 축원합니다.
<2021. 4. 4 부활주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