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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훈의 아홉번째 앨범 <Ninth Reply>
신승훈이라는 가수에 따라붙는 발라드의 황제같은 수식어,그리고 그가 세운 어마어마한 레코드기록은 그가 얼마나 발라드라는 장르로 대중적인 성공을 이루어 냈는지 설명해줄지는 몰라도,객관적인 입장에서는 그렇게 큰 의미를 두고 있지 않다.다만 개인적으로 신승훈이라는 가수에 대해 학창시절 느꼈던 호감이라면 그가 음악을 엄청나게 많이 듣는다는 점,(얼마전에 음악평론가 임진모씨도 언급했지만) 그래서 기타하나만 있으면 무슨 팝송이라도 정말 폼나게 부를수 있는 가수였다는 점이었다.정말 그의 목소리는 서정적이기도 했지만,그가 부르는 팝송에는 알게 모르게 세련된 맛이 있었다.그래서 한때는 그가 부르는 팝송을 녹음해서 듣고 다닌적도 있었다.하지만 가끔은 그의 앨범에 있는 곡들이 오히려 라디오에서 즉흥적으로 부른 팝송보다 목소리의 매력을 더 살리지 못해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그는 데뷔 14년째를 맞아 2년만에 아홉번째 앨범 <Ninth Reply>를 발표하였다.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앨범에는 5집이후로 가장 목소리의 매력을 잘 살린 곡들이 들어있다.
동양의 옷을 입다
<01 Eastside Story>,<02 애심가>
신승훈이라는 가수가 이만큼 롱런할수 있었던것은 물론 탁월한 멜로디 메이커로의 능력때문이기도 하지만,나름대로 다양한 장르를 받아들여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던 시도들 때문이기도 하다.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맨날 똑같다'라고 푸념을 늘어놓기도 하지만,그것은 어떤 새로운 시도를 함에 있어서 자기 색깔을 너무 많이 집어넣기 때문이다.적절한 비유는 되지 않지만 "강남의 귤이 회수를 건너면 강북의 탱자가 된다"고 무슨 장르를 끌어오던 신승훈은 철저히 자기 틀에서 녹여버린다.그것은 어떻게 보면 대중가수로서 일관성을 지닐수 있는 미덕이지만,동시에 해당 장르를 깊게 파고드는 뮤지션들과 견주어볼때 엄연한 한계점이 지워지는 것이다.그것은 대중적인 인기와 더불어 늘상 그가 '아티스트'로 평가받는데 걸림돌이 되곤 하였다.이번 앨범까지치면 백여곡이 넘게 발표했고,그중에 팔십곡 가까이 자작곡인데도 불구하고,아직까지도 '음악적'인 측면은 극과 극의 평가를 받으니 흥미로운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그가 대중스타에서 뮤지션으로 넘어가기 시작한 시점을 5집 <나보다 조금더 높은곳에 니가 있을뿐>이라고 생각한다.이 앨범은 첫번째 단독 프로듀싱에,모든 곡을 자작곡으로 채웠으면서도 아마추어틱하기는 커녕 세련된 면모를 보여준다.<운명>처럼 완성도 높은 곡이나 <I Love You>처럼 그의 목소리를 재즈틱하게 변모시킬수 있었던 곡,그리고 부드러움과 힘을 동시에 지닌 R&B <Your Song>등의 세곡은 이제까지의 Discography에서 손꼽히는 명트랙이었다.특히 <운명>은 6집의 <고개숙인 너에게>,7집의 <전설속의 누군가처럼>으로 이어지면서 양질의 고급스러운 팝 라인업을 구축했다.한때,그를 사로잡았던 테마가 흑인 코러스로 스케일이 큰 곡을 만드는 것이었다면,그 관심사는 8집의 <애이불비>이제 동양적인 선율로 옮겨온게 아닌가 싶다.
프롤로그 <Eastside Story>는 이번 앨범의 그런 흐름이 어느 영역으로 이어질지를 예상케 해준다.잔잔하게 시작해서 사뭇 웅장하게 끝나는 매력적인 인트로이다.특히나 중반을 넘어서며 <애이불비>에서 보여주었듯이 리듬을 위주로 한창 몰아가며 소박하게 끝나는 프롤로그가 되지 않겠다는 파워를 보여준다.그러나 7집 <Desire To Fly High>의 프롤로그와 마찬가지로 한창 달아오르는 순간에 싱겁게 끝나버린다.게다가 이 프롤로그는 완벽하게 <애심가>와 마지막 트랙의 <애이불비>만을 위해서 존재한다.충분히 하나의 곡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가지고도 앨범 전체를 감싸는것이 아닌 짧은 맛보기로 2번트랙의 시녀역할만 했다는 점은 안타깝다.
그런 프롤로그가 끝나고 나오는 <애심가>를 보자.애조띤 동양적 가락과 살짝 걸치는듯 군더더기가 없는 신승훈의 보컬은 제대로 들어맞는다.게다가 가야금과 현악세션이 묘하게 결합하며 내는 분위기는 확실히 독특하다.그 뽑아냄이 사뭇 매끈해서 <애이불비> 이후에 2년동안 정체되지만은 않았다는 증거처럼 느껴진다.그러나 <애심가>는 결국은 신승훈식 발라드를 모태로 해서 만들어진 곡이라고 생각된다.예를 들어서 '그래도/사랑은 질텐데'하는 부분은 언뜻 들으면 의외로 힘을 주어서 만들어진듯 보이지만,사실 그것은 그의 발라드가 몸체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동양적인 사운드는 사실은 몸체라기 보다는 겉에 입은 옷이다.그래서 <애심가>는 발라드라는 몸체와 동양적 사운드라는 옷의 결합이다.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이전까지 신승훈식 발라드라고 나온곡들을 곰곰히 되새겨보면 사뭇 동양적인 색채를 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다만,언제나 그랬듯이 한 차원 더 깊이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나름대로 많은 연구를 했겠지만 결국은 대중적인 선에서 마무리 짓는것은 역시 예전과 달라지지 않았다.하지만 적어도 그것을 대중적인 감성과 '야합'했노라고 표현하고 싶지는 않다.많은 뮤지션들이 새로운 음악을 받아들임에 있어서 지나치게 과욕을 부리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가 더러있기 때문이다.분명히 신승훈은 확실한 변신을 보여주진 못하겠지만 연구하고 노력한것이 아까워서라도 필요이상의 덧칠하지는 않을 뮤지션이다.이것을 그의 장점으로 보던지,혹은 단점으로 보던지하는것은 순전히 받아들이는 리스너의 선택이다.
발라드,막혀있던 감정을 걷어내다
<03 두번 헤어지는 일>,<04 그런날이 오겠죠>,<09 어쩌죠>
스페셜 앨범 <The Legend>의 곡들은 이미 아홉번째 앨범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었다.그 변화는 무엇보다 여덟장의 앨범을 끌어오면서 누적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물론 가장 큰 문제점은 이른바 팝적인 라인에 있는 곡들을 따라주지 못하는 댄스뮤직이었지만,사실은 발라드에서도 다소의 과제를 안고 있었다.<보이지 않는 사랑>이 그 자체로 명곡이었던 이유는 그 시절의 누구도 피해가기 힘든 공통의 감정선을 끊임없이 건드렸다는데 있다.<Ich Liebe Dich>의 샘플링으로 시작해서 절절한 슬픔의 극한을 치고 다시 흐느끼듯 끝나는 결말에 이르기까지 도중에 끊김이 없이 슬픔이 풍부하게 흘러나온다.그러나 최근의 그의 발라드는 세련된 편곡과 화두로 삼은 '절제와 간결함'으로 한가지 방향의 진보를 달성한 대신,정작 슬픔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는 뒷심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다.
표면상으로 봐도 최근들어서 전공분야인 발라드곡이 싱글로 빅히트하는 일은 적어졌던 것은 아마도 그 때문일것이다.물론 그것은 대개의 경우 초반의 세곡을 라인업처럼 배열하여 시너지효과를 노리는 5집이후의 경향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의 발라드가 가지고 있는 무거움때문이기도 하다.후렴구를 혼자서 주고받는 방식의 6집의 <지킬수없는 약속>,올라갈듯 올라갈듯 하다가 소박하게 끝나버리는 7집의 <가잖아>,절제를 표방하며 깔끔하게만 끌고가다가 감정의 정점을 놓친 8집의 <사랑해도 헤어질수 있다면>등이 모두 그런 특징을 보여주고 있었다.또한,그 시절의 발라드가 싱글로 빅히트를 하지 못했던 이유는 대한민국이 '발라드' 포화상태였기 때문이다.더 가볍고,더 귀에 쏙쏙들어오는 발라드가 얼마든지 있기 때문에 신승훈이 만들어내는 발라드 작법이 대중적으로 먹혀들어가지 않았던 것이다.그래서 이시기의 발라드들은 대중적으로나 음악적으로나 크게 어필하지 못했다.
스페셜 앨범의 <그대 떠나갈만큼>이 시사해준 발라드의 변화는 9집앨범에서 실제의 결과물로 나타난다.마이너보다는 메이저를,<이별 그후>보다는 <아이 빌리브>를 선택한 것이다.또한 8집의 화두가 간결함과 절제였던데 반해서 이번 앨범은 가사도,감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그럼에도 앨범 전체로 느껴지는 것은 전작의 화두를 포기한데 대한 불안함이 아니라 한결 여유로움이다.
<두번 헤어지는 일>은 앞에서 언급한 '발라드의 변화'가 가장 대중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트랙이다.그가 한동안 감정을 절제하는 쪽으로 단조롭게 만들고 불러왔던 것을 생각하면 제법 곡의 구성이 화려한 편이다.물론 그렇다고해서 완전히 붕떠버린다던가 하는 것은 아니고 그선을 적절히 조절하는 편이다.이를테면 '그대 먼저/나를 떠나갔듯이'하고 죽이는 부분이 있는가하면,'바보같은 나는 여기까지죠'라고 감정을 있는 그대로 쏟아내는 부분도 있다.그리고 이것은 곡이 끝날때까지 반복된다.힘을 주었다가 뺐다가,감정을 실었다가 덜었다가하며,속되게 표현하자면 죽이는 곳은 완벽히 죽이고,살리는 곳은 완전히 살리는 곡이다.물론 그만큼 과장의 크기가 큰 부분이 두어군데 보이지만,죽이는 부분에서 보컬처리가 상당히 매력적이기 때문에 이 곡은 대중적으로 먹혀들어갈 잠재력이 크다.
<그런날이 오겠죠>는 이 앨범의 타이틀곡으로 박근태와 공동으로 만든 곡으로 되어있다.먼저 이 노래는 이전과 닮은 스타일인듯하면서도 다르고,대중적이면서도 음을 굉장히 차근차근 올리고 내린다.바로 전 트랙 <두번 헤어지는 일>과 비교하면 그 차이는 확실하다.역시 다소 변화한 형태의 발라드로 '난 여기 있어도'하는 부분처럼 좀처럼 그의 노래에서 찾아보기 힘든 과장된 포인트까지 한번도 들어가 있다.그 부분이 굉장히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엄밀히 말해서 이 곡은 음악적인 시도가 엿보이는 <애심가>보다,포인트가 확실하고 지극히 감상적인 <두번 헤어지는 일>보다 타이틀곡으로 좋은 선택은 아니다.전자를 선택했다면 그가 9집에서 도전한 것이 어떤 스타일의 곡인지 널리 인지시킬수가 있었을것이고,후자를 택했다면 상대적으로 더 큰 타이틀곡의 대중적인 효과를 누릴수 있었을 것이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신승훈 발라드 작법에서 벗어난듯 보이는 이 곡이 도대체 왜 타이틀 곡인 이유가 무엇일까?
그냥 한사람의 리스너입장에서 개인적인 느낌으로 추측해 보라면,이 노래가 신승훈이라는 가수의 변화와 비슷한 방식의 변화를 거친 곡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익숙한 스타일이지만 의외의 전개를 보여주기도 하고,평범하게 보이면서도 역시 한 앨범속에서 가장 튀는 이 곡의 스타일은 그가 앨범마다 시도하는 변화와 비슷한 진폭이다.아울러 얼마든지 뒤를 받칠만한 곡들이 있다는 자신에서 오는 여유로움도 한몫을 하지 않았나 싶다.(다른 타이틀곡 감이 보인다는것부터 이 앨범이 굉장히 대중적인 파워를 가진 곡들로 채워져있다는 증거이다) 최근의 앨범들에서는 마치 프로야구팀의 꽉 짜여진 라인업처럼 프롤로그를 제외한 곡들이 역할을 분담하고 있었던것과는 달리,이 앨범은 열다섯개의 곡이 늘어서 있어 타이틀곡에 부담을 굳이 싣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하지만 <그런 날이 오겠죠>라는 곡이 다른 곡에 비해 딱히 떨어진다는 뜻은 아니다.이 곡 역시 신승훈의 발라드 와 박근태의 세련된 감각이 그대로 살아있기 때문이다.오히려 여러번 반복해서 들었을때 다른 곡들에 비해서 덜 질릴수도,그러니까 생명력이 더 길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잠시 뛰어넘어 9번 트랙 <어쩌죠>로 가자.이 곡이 시작하면 이런 생각이 든다."<가잖아>의 계보에 있는 발라드잖아.이번 앨범은 참 발라드가 많이 담겨있네" 그러나 이 곡은 물흐르듯 유연하게 엮어가기만 할뿐이다.이것은 또 한가지 발견되는 변화로,이제까지 이런식의 발라드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개인적으로 이른바 신승훈식 발라드에 손을 들어주면서도 한가지 아쉬웠던 것은 유희열이 만드는 발라드에서 처럼 여유롭고 소박한 매력이 없었던 것이었다.하지만 이 곡의 멜로디는 여유를 가지고 있다.얼마든지 전작의 <널 위한 이별>이나 <이런 나를>처럼 힘을 주어 드라마틱하면서도 깨끗히 뽑아낼수 있었으면서도 그렇게 하지 않는 보컬이나,보컬을 덮지 않을만큼만 뒤를 받치며 서서히 감싸오는 함춘호의 어쿠스틱 기타와 현악세션이나 이 곡의 매력을 제대로 살려주고 있다.
앨범을 맛깔 스럽게 만드는 양념들
<05 Come To Me>,<06 Love Song>,<07 그게 바로 사랑이죠>
무엇보다 6집이후 신승훈 앨범의 최대 약점은 유통기한이 지나버린 댄스곡이 존재하면서 앨범의 완성도에 의문부호가 따라다녔다는데 있다.분명히 신승훈의 보컬은 댄스뮤직을 굳이 하지 않아도 앨범을 구성할수 있을만큼 매력이 있다.만약 하우스나 펑키쪽으로 음악을 만드는 대신 스탠다드 재즈쪽으로 더욱 입지를 넓혔다면 현재 시점에서 신승훈의 평가는 또 달라졌을지도 모른다.그럼에도 그는 아예 댄스곡을 포기하지 않는 고집을 보여주었다.물론 그 결과 정말 아기자기한 멜로디에 신나기까지한 <내 방식대로의 사랑>도 나올수 있었지만,6집의 <실수>를 기점으로 확실히 댄스곡들은 트랜드에 뒤쳐지고 있다.몇몇곡은 차라리 간결한 미디움 템포의 곡으로 편곡했다면 좋았을 멜로디를 괜시리 하우스 '댄스'로 만들어서 버리는듯한 느낌을 지울수가 없었다.
그래서 발라드 두곡이 연달아 나오고 시작되는 다음 트랙은 이전부터 예의 주시할수 밖에 없었다.타이밍상으로 분위기에 변화를 줄 시점이 되었고,전작에서 이 자리에 있던 곡들은 항상 문제점으로 지적되었기 때문이다.물론 전작에서는 어쿠스틱 기타가 곡을 감사는 미디움 템포 발라드<Loving You>로 한번 쉬어가며 댄스곡 <올꺼야>로 연결했었다.그리고 이번 앨범에 그 자리에 있는 박근태의 곡 <Come To Me>는 분위기를 너무 처지지 않게 끌고 나가야하는 의무가 있었다.지난 <The Legend>앨범에서 박근태의 <그대여서 고마워요>는 정확하게 신승훈의 앨범에서 빈 자리를 메꾸어 주며,9집에서의 변화를 예고했다.예상과는 달리 보사노바풍의 곡이 들어갔지만,확실히 최근 뛰어난 감각을 보여주는 박근태의 곡은 그 갭을 메우고 있다.피아노-기타-베이스-드럼은 곡을 간결히 가져가면서 신승훈의 보컬을 돋보이게 하는데 모든 힘을 쏟고 있다.이어지는 트랙 <Love Song>도 <Come To Me>라는 유사한 분위기의 곡에 이어서 등장했기에 조금 의외이기는 하지만 상당히 괜찮다.그러나 여유롭게 뽑아내는 그의 보컬은 상당히 매력적이다.확실히 이 앨범은 8집보다 한결 '여유'가 넘친다.사실 이곡은 보컬의 매력만 놓고볼때 이 앨범에서 수위를 다툴만한 트랙이다.
이에 이어지는 <그게 바로 사랑이죠>는 앨범이 시작하고 처음 등장하는 댄스곡이다.<Come To Me>자리에서 터질줄 알았던 트랙이 여기까지 내려와 있는 것이다.이것은 신승훈 앨범에서 느껴지던 댄스곡에 대한 중압감을 해소했다는 증거처럼 느껴진다.사실 댄스곡이라기 보다는 업템포 발라드쪽에 가깝지만,마치 발라드처럼 시작해서 현악세션과 어쿠스틱 기타,베이스,드럼,퍼커션,브라스가 한겹,한겹 입혀져 사운드가 풍성해지며 템포가 빨라지는 곡이다.그동안 댄스곡들이 만들어낸 구멍을 메울정도는 아니지만 구성이 참 재미있는 곡이다.그러나 '기회를,내게 기회를'하는 부분처럼 너무 버겁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는 점,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크게 혁신적이지는 못한 스타일의 댄스곡이다.처음에는 곡의 맛을 살려주던 브라스도 갈수록 곡의 멜로디를 따라밟으며 들어간다.자그마치 4분 57초짜리 곡으로 끝나는 순간까지 완벽하게 곡의 기승전결을 마무리할 뿐이지,결코 신나는 댄스곡은 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뮤지컬의 러브테마
<08 시애틀의 잠못 이루는 밤>
뮤지컬 가수 김선경과의 듀엣곡,<시애틀의 잠못이루는 밤>은 완벽히 의외의 한방이다.의외의 장르,의외의 시도,의외의 위치에서 이 곡은 방심하고 있을 리스너를 공략한다.부드러운 멜로디로 만들어진 깔끔한 느낌은 마치 잘 만든 뮤지컬의 러브테마로 손색이 없으며,동시에 아직도 신승훈의 송 라이팅 능력이 녹슬지 않았다는 증거이다.확실히 뮤지컬 가수와 비교해도 매력이 떨어지지 않는 그의 보컬은 그 자체로 곡의 완성도를 높여준다.'누구보다 그댈 행복하게 해줄'로 한차례 소박하게 줄어들었다가 뒤로 갈수록 풍성한 코러스와 현악 세션이 들어가면서 곡이 드라마틱해지는 것도 좋다.
다만,정석적인 듀엣곡이라면 주고,받는 형식으로 되어야 하는데,중반 이후에는 신승훈이 주도권을 완전히 잡는다.이것은 스페셜 앨범에서 Ann과의 듀엣곡 <Always>에서도 마찬가지였다.곡이 시작하며 첫 파트가 끝나고 나면 그의 파트너는 같이 부르거나,뒤로 빠져서 있을 뿐이다.이런 방식도 분명히 한가지 스타일이지만 뮤지컬이 아닌 스튜디오 앨범의 듀엣곡으로는 아무래도 아쉽다.뮤지컬 가수 김선경의 목소리가 가지고 있는 매력을 다 끌어내어 쓰지는 못한것 같다.또한 막 하이라이트로 치닫던 곡이 갑작스럽게 풍선에서 바람빠지듯이 줄어드는 것도 아쉽다.물론 그가 좋아한다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는 그렇게 끝나곤 한다지만 그 자체로 '악기'인 두 사람의 목소리를 십분 활용하여 훨씬 더 여운을 풍성히 남기며 세련되게 끝내는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신선하거나 혹은 덜 매끄럽거나
<10 게으름뱅이의 어느날 아침>,<11 사랑해도 되나요>
<12 그댈 잊는다는게>,<14 그녀와 마지막 춤을>
10번 트랙에서부터는 낯선 이름들이 대거 등장한다.열다섯곡이나 되는 앨범이라면 항상 중간에서 절반을 지나기 시작하면서 누수가 생기기 마련이다.그나마 역대 신승훈 앨범은 6집처럼 전체적인 구성면에서 비교적 낮은 평가를 받는 앨범까지도 결코 '용두사미'는 아니었다.막판에 <나의 하루>나 <꿈속의 그대>같은 곡이 들어가며 신선함을 유지했던 것이다.이 앨범 역시 곡의 수에 비해서 종반까지 긴장감이 잘 유지되는 편이다.
<게으름뱅이의 어느날 아침>은 이준호의 하우스 댄스곡으로 8집의 <Face off>보다는 양호하지만 또다시 등장하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은 '쿵작쿵작'을 반복하고,정신없을정도로 같은 사운드를 덮어서 돌리고 있다.이 곡 역시 간결한 업템포로 끌고 갈수있었던 곡을 완전히 댄스곡으로 만들려고 하다 보니 생긴 헛점이다.새로운 작곡가를 기용해서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려고 한것 까지는 좋았으나 곡은 덜 매끄럽고,스타일은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이 앨범의 전방위에서 활약을 보이는 박근태나 황성제,나원주등에게 편곡이라도 맡겼으면 어땠을까 싶다.그 다음에 이어지는 박창현의 곡 <사랑해도 되나요>도 마찬가지로 많이 아쉬운 곡이다.<처음 그 느낌처럼>이 나오던 시절에,늦어도 <우연한 만남>과는 함께 나왔어야 했던 곡이다.이전 트랙의 이준호라는 작곡가의 컴퓨터 프로그래밍이 그대로 등장하며 '쿵작쿵작'하고 코러스는 흥겹기는 커녕,그대로 멜로디 라인을 따라 밟는다.'그대 밖에 안보여/I'm Falling in Love'하는 식으로 그의 보컬은 그야말로 쉬지 않고 이어지는데 코러스는 그걸 감싸기엔 역부족이다.너무 빡빡하게 곡을 채우려고 했기 때문에 오히려 곡이 답답해지는 것이다.차라리 앞의 곡이 더 나았다고 생각될 정도로 <사랑해도 되나요>는 <엄마야>,<올꺼야>의 어설픈 funky함이 그대로 살아있다.
다시 <그댈 잊는다는게>라는 (역시 낯선 이름의) 조영수의 발라드곡이 그다음에 등장해서 앨범의 분위기를 잡아주는게 아무래도 신승훈은 '발라드'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된다.7집의 <슬픈 거짓말>이 후반부에 등장해서 별 감흥을 주지 못했던 것과 비교할때 이 곡을 멜로디도 좋고,곡의 정점도 살아있고 호소력있게 슬픔을 발산하기도 하고 자연스럽게 마무리 짓기도 한다.'그대 따뜻한 입술/그대 말투까지도'하면서 약간 떨리면서 유지하고,'못 잊을것 같은/그대 안녕'하는 부분은 '깨끗하게 사그라들며 여운을 남긴다.사실 이 곡이 앨범의 앞쪽에 있는 발라드들 보다 훨씬 신승훈스럽다.
<그녀와 함께 춤을> 역시 김종익이라는 낯선 작곡가의 곡으로 속지를 보기 전까지 유정연의 곡인줄 알았던 라틴댄스곡이다.어찌나 유정연스러운지 이문세 14집의 <춤의 여왕>이 연상되기까지 한다.상대적으로 이 앨범의 다른 댄스곡에 비교해 볼때 '댄스'곡 다우며,7집의 <Change>라는 곡이 잘만들기는 했으나 (이곡도 유정연의 곡이군) 흥겨움이 부족하고 지나치게 신승훈의 보컬에 의존함으로써 가요스러웠던것에 비해서 훨씬 좋다.드럼,퍼커션,브라스도 적절히 들어가서 보컬과 잘 어울린다.1분 30초를 기점으로 간주에서 쏟아져나오는 연주는 곡을 정말 신나게 만든다.잘 만든 후렴구의 멜로디를 끊임없이 돌리는 것도 적절한 포인트를 만들어준다.댄스곡이 굳이 필요하다면 이 정도의 곡이 적당하지 않을까 싶어지는 의외의 트랙이다.
신승훈식 모던록
<13 네 멋대로 해라>
<네 멋대로 해라>는 모던 록이 이렇게도 소화가 되는구나 하는 방법으로 별다른 창법의 변화 없이도 록적인 분위기를 한껏 내고 있다.앞에 나왔던 댄스곡 <게으름뱅이의 어느날 아침>이나 <사랑해도 될까요>보다 훨씬 더 신나게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간결하게 시작해서 점차 연주를 덧 입히고,그는 부드러운 보컬을 유지하고 있음에도 연주는 박진감있게 흘러간다.멜로디도 따라부르기 쉽게 반복되어 그야말로 대중적이며 8집의 <비상>과 같은 방법으로 만들어져 있다. 그러나 5집의 <The Game of R.O.K>나 6집의 <꿈속의 그대>가 비록 높은 평가를 맏지 못했지만 확실한 창법의 변화를 줌으로써 확실히 기존의 곡들과 차이가 있었던 것과 비교하면,아무런 창법의 변화 없이 그대로 부른 <네 멋대로 해라>는 조금 심심하다.공연용으로는 몰라도 모던록으로는 너무 부드럽다.예전부터 안타까웠지만 빼어나게 모던록을 만들기로는 강현민과 쌍벽을 이루는 심현보를 작사가로만 활용한다는것은 정말이지 안타깝다.
애이불비 Again
<15 애이불비 II>
전작에 이어서 다시 등장한 애이불비의 속편 <애이불비2>는 현악세션과 리듬 프로그래밍,그리고 사물놀이,가야금의 배열로 마지막 트랙 답지 않은 커다란 스케일을 보여주고 있다.<애이불비>와 비슷한 스타일의 멜로디 진행에도 불구하고 이 곡이 예전 <애이불비>보다 듣기에 편한 것은,예전의 날카로운 현악세션과 무미건조한 기계적 프로그래밍이 약해지고 가야금과 약해진 피아노소리가 그의 보컬에 힘을 실어주기 때문이다.그래서 전작에서는 곡에 밀려나는 느낌이었던 감성은 어느 정도 균형을 회복한다.
하지만 그의 정신적인 사상을 이어가는 곡이자,이 앨범에서도 실험적인 면모가 이어지고 있다는 증거로는 너무 간결하다.4분 11초가 끝난다음에 얼마든지 사물놀이와 가야금의 비중을 키워서 몰아갈수도 있었을 것이다.이것은 <애이불비>라는 곡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창법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과 함께 이 마지막 트랙에서까지도 그가 대중성과의 접점을 찾아내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결론
표면적으로 보이는 열 다섯 트랙이나 된다는 점외에도 이 앨범이 특별하게 보이는 것은 그동안 신승훈의 앨범에서 활약하던 작곡가 김형석의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사실 <아이 빌리브>의 작곡 파트너인 김형석은 (그 역시 댄스곡에서는 그렇게 탁월하지 못하지만) 발라드의 편곡에서 신승훈의 스타일을 가장 잘 알고있는 파트너가 아닌가 생각되고,또 이 앨범의 두어군데에서 그의 빈자리가 아쉽기는 하다.
하지만 박근태-나원주-황성제의 삼각편대는 이 앨범에서 정말 종횡무진 활약한다.특히 요즘 장르불문하고 여러 진영에서 뛰어난 감각을 보이는 황성제나 박근태는 김형석의 빈자리를 충분히 메꿀만한 역할을 해낸것이 아닌가 싶다.세 작곡가중에 가장 감성적인 면이 뛰어난 나원주도 거의 모든 곡의 Piano에외도 두 곡을 매끈하게 편곡하며 실력을 발휘했다.
다만,항상 앨범의 후반부에 무게감을 실어주며,신승훈의 보컬리스트로의 장점을 새삼 느끼곤 했던 스탠다드 재즈 스타일의 곡이 없다는 것은 큰 안타까움이다.5집의 <I Love You>,6집의 <나의 하루>,8집의 <우연>,7집에는 딱히 그런 곡을 쓰지 않았지만 잘 편곡된 <Over the Rainbow>로 목소리를 맛깔스럽게 뽑아내기도 했었다.만약 <사랑해도 될까요>자리에 8집의 <우연>처럼 부드럽고 낭만적인 음색을 발휘하고,그러면서도 곡의 질적으로도 떨어지지 않는 곡이 들어갔다면 이 앨범은 그의 디스코그라피에서 정말 한 획을 그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개인적으로는 그간 가장 높이 평가했던 5집에 맞먹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앞에서 댄스뮤직에 대해서 상당한 아쉬움을 토로했지만) 신승훈이 댄스뮤직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그리고 새로운 장르를 시도함에도 대중적인 접점을 찾아내려고 하는 이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댄스뮤직은 발라드로 구성된 앨범의 지루함을 덜어주기 위해서,그리고 공연에서 공연장을 찾아주는 팬들과 신나는 무대를 만들기 위해서 들어가는 것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그리고 가만히 지켜보면 그는 철저하게 자신을 대중가수라는 틀에 맞추어가는게 아닌가 싶다.
여담삼아서,아주 개인적인 이야기를 한토막 해보려고 한다.7집 <Desire to fly High>가 나왔을 무렵,본인의 주변에는 타이틀곡 <전설속의 누군가처럼> 때문에 그 앨범을 사지 않은 사람이 의외로 많았다.굉장히 흥미롭게 생각하며 그 이유를 묻자 그들은 대답했다.
"발라드가 아니잖아"
아주 정확하게 신승훈이라는 가수의 현재 상황에 대해서 이해할수 있는 대답이라고 생각한다.음악적 다양성을 원하는 동시에 소리없는 절대 다수는 그에게 '발라드'를 원한다.축축 쳐지던,궁상맞던,신파스럽던,좋은 평을 받지 못하던 말이다.그래서 그들의 기억속에 함께했던 90년대 한때의 감성을 되살리고 싶어한다.그리고 확실히 대중이라는 접합점을 잃어버리면 대중음악은 가치가 없다.다시 말해서 신승훈의 음악은 스타일이나 기술에 대한 천착보다는 리스너들이 좋아할 멜로디에 더 주의를 기울인다.다만,신승훈정도되는 뛰어난 멜로디 메이커라면 자기 색깔과 대중적인 기호의 균형을 얼마든지 더 '세련되게' 잡아갈수도 있을것이라는 생각에서 안타까웠던것 뿐이다.어쨌든 <Ninth Reply>는 몇군데 아쉽기는 해도 그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주었다.그리고 그는 이제 막 아홉구비를 돌았다.
-YJ (www.freechal.com/ummaya)
p.s
그러고보니 제가 트플에 발을 디딘지도 제법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항상 트플에 와서 좋은 글을 읽고 조용히 사라지고는 했었는데..
그래도 마음속으로는 언제고 한번은 회원리뷰게시판에 글을 올려보리라고 다짐을 했더랍니다.
그때부터 김동률씨나 신승훈씨,윤상씨,이승환씨에 대해서 써보고 싶었는데..
이번에 개인적으로도 여유로운 때에 마침,앨범도 나와서 신승훈씨 앨범에 대해 쓰게되었습니다.
워낙 크고 트인 공간이라 부담감이 이만저만이 아니지만 한번 감히 올려봅니다.
무척이나 장황하기만 했지 형편없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행복하세요..
첫댓글 뭐 전문 평론가는 아닌듯 싶지만... 이런일을 하는사람덜은 정말 오래 못살것같다는 느낌이... 하나 하나 꼬치 꼬치 요것 저것 재고.....9집리뷰내용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갠적으로 평론가들에겐 좋은 감정이 안생기는건 어쩔수 없다. 아니 이런일을 하는사람덜은 불쌍하다는 생각이 문득드는것이..
음악을 듣고 즐기는것이 아니라 음악속을 파해치고 분석하고,,,,,,,,,,,, 그냥 좋아서 좋으니까 이런일을 하는거겠지만.........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기에,이렇게 비평할 줄 아는 사람들이 있는 거 같아요~ 애정이 없다면, 비수처럼 싹싹 앨범 전체를 칼질할 시간 조차 아까웠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