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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3일(일) 천주교 성지순례 13차
수원교구-인천교구-의정부교구를 순례하고자 파스칼과 마리아는 싼타페를 타고 새벽 일찍 집을 나섰습니다. 어제부터 내린 비 오늘 오후 늦게까지 내리다 개이겠다고 예보된 날씨.
비는 내리고 있었습니다. 오늘 첫 순례지 수원교구 요당리까지 S.T.map은 288km로 약3시간20분이 소요될 것임을 예상해 주었습니다.
달려가는 고속도로 주변 산야가 비와 안개에 젖어 푸르름의 아름다움은 한 폭의 동양화를 그려주었고 짙어가는 봄의 기운을 느끼게 하였습니다. 비가 내리는 중부고속도로 인삼랜드에 들러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경부고속도로 안성에서 평택-안성 간 고속도로로 빗길을 달려 청북IC를 통과하여 S.T.map 따라 도착한 요당리 성지에 9시35분 도착하였습니다. 가랑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습니다. 넓은 성지에는 온통 분홍색, 붉고 흰 연산롱과 철쭉들이 을긋불긋 활짝 피어 있었습니다. 느티나무숲, 단풍나무숲, 터널 길(묵주기도 길)로 2010년5월11일 봉헌된 성전(성당)과 성인 장주기요셉 동상, 순교자 묘역 등을 둘러볼 때 경기도에서 많은 순례자들이 도착하였습니다.
77)곳 : 수원교구 요당리. 경기도 화성시 양감면 요당리 191-1(9시35분~10시10분)
요당리 성지는 신유박해를 기점으로 서울과 충청도 내포 등지의 신자들이 피난하면서 형성된 교우촌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이렇게 형성된 교우촌은 양간공소라 불리며 갓등이(현재의 왕림)와 은이공소(현재의 양지)와 깊이 연계되어 활발하게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파하였다. 또한 바닷물의 유입으로 뱃길이 열렸던 이곳의 지리적 특성상 충청도와 경기도 내륙 서울을 잇는 선교 루트의 교두보 역할을 하였던 곳으로 추정되고 있을 뿐 아니라 기해년(1839년)과 병인년(1866년)에 일어난 박해로 수많은 신자들이 순교한 신앙의 요람지였다.
10시10분에 출발, 남양성지까지 23km. S.T.map 따라 낮은 야산 들녘을 헤매다 39번 도로로 진입하여 338(322)번 도로로 화성시 남양동에 있는 남양성지에 10시50분 도착하였습니다. 많은 차량들이 주차되어 있는 주차 광장에 “화성시 화성팔경 관광안내:제8경 남양성지... ” 입간판 보고 푸른 숲이 짙은 산속에 넓고 아늑하게 위치한 남양성지.
잔디광장 옆 푸른 가로수 나무 아래 봄꽃(연산홍과 철쭉 등)이 화사하게 피어있는 길을 올라 성체 조배실,그리스도상, 박지환요한 신부님상과 미사가 봉헌중인 성당... 돌묵주가 설치되어 있는 묵주기도의 길을 둘러 내렸습니다.
가랑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습니다.
78)곳 : 수원교구 남양. 경기도 화성시 남양동 1704(10시50분~11시25분)
남양 성모성지는 병인박해(1866년) 때의 순교지이며, 1991년10월7일 묵주기도의 동정 마리아 기념일에 성모 마리아께 봉헌되어 한국 천주교내에서는 처음으로 성모성지로 공식 선포된 곳이다. 남양 성모성지에는 성지 전체에 20단 묵주를 펼쳐 놓은 듯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지름 0.7m 크기의 돌 묵주 알들이 4.5m 간격으로 놓여있어 순례자들은 그 묵주 알들을 한 알씩 짚어가며 걸어서 묵주 기도를 바칠 수 있다. 남양 성모 마리아상은 한국적인 느낌의 아름답고 자비로우신 어머니의 모습으로 어린 예수님께서 어머니를 꼭 붙들고 있는 독특한 디자인으로 구성되어있다. 화성시에서 화성 8경중의 하나로 지정하였다.
11시25분 24km거리의 수원(북수동성당) 성지로 출발. S.T.map 따라 남양동에서 313번 도로-98번 도로-43번 도로로 수원역을 지나고 수원성지 팔달문을 지나 43번 도로 약500m 우측에 위치한 “수원성지 본당(옛. 포도청 자리)” 표지석 있는 북수동성당에 12시 도착하였습니다.
“순교자의 거룩한 피 수원성지-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수원성지” 표시된 성당. 많은 교우들이 교중미사를 봉헌하고 성당을 나서고 있었습니다. 신부님께 순례객이라 말씀드렸더니 반겨주시며 축복을 주셨습니다. 수원순교자 현양비, 심데시데라또 신부 기념비, 성체 조배실, 천주교 박해 때 사용했던 형구 등을 둘러보고 정문 앞 오늘의 김밥집에서 점심을 먹고 수원성지 내 북수동성당을 떠났습니다.
79)곳 : 수원교구 수원(복수동성당). 수원시 팔달구 복수동 316(12시~12시50분)
수원성지는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되었고 천주교 성지로 선포되었는데. 포도청... 등 수원 화성 성곽 전체가 세계문화 유산이면서 성지이다. 수원성지에는 박해시대에 수원 화성에서 순교한 일흔여덟 분(치명일기)과 수많은 무명 순교자들의 순교정신을 기리고 있는데 그 가운데 지 다두를 비롯한 수원성지 순교자 여덟 분의 시복운동을 벌이고 있다. 6.25 때 순교한 심응영 뽈리데시데라도 신부는 수원 최초 고딕식 성당이며 근대식 건축인 수원성당을 지었는데 6.25를 거치며 유실되어 복원 예정이다.
12시50분 다음 순례지 약11km 떨어진 손골 성지로 S.T.map 따라 정문 앞 43번 도로 우측으로 “장안문” 지나서 경기지방 경찰청 지나 43번 도로 좌측으로 진입하여 가는 개발지역의 도로(도로 번호 없음) 오직 S.T.map을 따라 가는 수 밖에... 도로에 나타난 “손골 성지” 이정표를 따라간 손골 성지에 13시15분 도착하였습니다. 아직 개발이 되지 않았으나 새로운 집들이 많이 지어져 있는 골짜기 속에 위치한 손골 성지. “시성31주년 기념. 제7회 손골 성지 순교자 현양대회. 2015년5월6일(수) 오전 11시” 프랜카드가 걸려 있는 성지 내 꽃잔디, 자산홍이 피어있는 돌계단을 올라 순교자(무명 순교자)의 묘역과 작은 성당을 둘러보았습니다.
80)곳 : 수원교구 손골.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동천동 734(13시15분~13시35분)
손골 성지는 광교산에 있던 교우촌이다. 박해시대 지방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신자들과 기해박해(1839년) 전후에 서울 가까이로 이동하여 교우촌을 이룬 것을 생각할 때 손골 교우촌도 이 시기에 형성된 것 같다. 손골 교우촌은 프랑스 선교사들이 입국하여 언어와 풍습을 익히며 선교 준비를 하는 곳이었으며 또한 이곳에서 피정도 하고 쉬기도 하였다.
손골에서는 특별히 성 도리 신부와 성 오메트르신부를 기념한다. 도리신부는 한국에서 머문 시간의 거의 대부분을 손골에서 지냈고 손골에서 체포되어 순교하였고, 오메트르 신부는 손골을 포함한 수원교구 지역에서 사목하다가 체포되어 순교하였다. 손골에는 도리신부 기념관과 오메트르의 집이 있다.
13시35분에 출발하여 수리산 성지까지 30km를 S.T.map 따라 개발지역(수지구) 도로로 43번 도로로 되돌아와 수원시내 경기지방경찰청 가기 전 우측으로 동수원IC로 진입하여 영동고속도로 인천 방향으로 가다 북수원IC로 나왔습니다.
1번 도로로 안양시내로 비산 사거리에서 좌 회전하여 삼덕공원지나 등산객들 내려오는 골짜기 속으로 깊숙하게 계곡 따라 들어서 100번 고속도로 밑을 지나 바로 위치한 수리산 성지에 14시45분 도착하였습니다. 약간 강한 비가 쏟아지는 “수리산 최경환 성지. 담배촌” 표지석 “성 최경환(프란치스코) 동상 눈물로 씨 뿌리던 사람들이 기쁨으로 곡식을 거두리라”표지석있는 성지 성당. 큰 은행나무 아래 “최경환 고택성당”을 둘러보았습니다.
81)곳 : 수원교구 수리산.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안양1동 1151-6(14시45분~15시5분)
수리산은 최양업신부의 부친인 최경환 프란치스코 성인의 묘소가 있는 곳으로 신유박해 이후 많은 신앙 선조들이 박해를 피해 모여와 살았던 유서 깊은 교우촌이다. 본래 충청도 청양 다락골 사람이었던 최경환 성인은 장남 최양업이 신학생이 되어 마카오로 떠난 휴 고발을 빙자한 협잡꾼들로 인해 가산을 탕진하고 유랑 길을 나서 이곳저곳을 헤매다 이곳 수리산에 정착하게 된다. 최경환 성인은 1839년 기해박해 때 붙잡혀 감옥에서 옥사했으며 그 후 부인 이성래 마리아도 치명했다.
15시5분. 27km 떨어진 인천 반주골 성지로 출발하였습니다.
안양 1번 도로 비산 사거리로 되돌아와 좌회전하여 서울 방향으로 가다 110번 고속도로로 진입하여 신천IC를 통과 100번 고속도로 시흥IC 방향으로 가다 S.T.map 따라 16시10분에 반주골 성지 도착 지점에 도착하였습니다. 성지를 찾을 수가 없어 관할 성당(만수1동 성당)에 전화 후 관할 성당에 도착하여 상세한 설명을 듣고 정수장 위 담장 임도 따라 올라선 능선에 배수장과 전통 정자(전망대)가 있었습니다.
그 옆 숲속에 “한국 천주교 선각자 평창 이공 베드로 승훈 지묘” 묘비와 묘가 있고 그 아래 “장남 이택규의 묘” “삼남 순교자 이신규(마티아)의 묘”를 둘러보았습니다.
82)곳 : 인천교구 반주골(이승훈 묘). 인천시 남동구 장수동 산131-1
(16시10분~17시5분)
이승훈은 1756년 태어나 24세의 젊은 나이에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벼슬길을 단념하고 마재 정씨 가문 정약용의 누이동생과 결혼하여 그들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게 된다. 당대의 석학 이벽과도 교분을 갖게 된 그는 1784년 북경에서 세례를 받고 한국 최초의 영세자가 된다. 영세 후 이벽 정약전 형제, 권일신 등에게 세례를 풀고 한국천주교회를 창설하는데 밑거름이 되었다. 1785년 명례방 집회가 형조의 관헌에게 적발되어 을사 추조 적발 사건이 발생하자 그는 천주교 서적을 불태우고 벽이문을 지어 첫 번째 배교를 한다. 1786년 다시 교회로 돌아왔다. 1801년 신유박해로 4월8일 참수되었다. 1981년 반주골에 안장되어 있다. 그는 천진암의 묘역으로 이장되었다.
17시5분에 인천에서 강화도 갑곶 성지까지는 50km 거리. 차도로 내려 S.T.map 따라 100번 고속도로로 진입하여 가다 문산.킨텍스 77번 도로 방향으로 내려 77번 도로-98번 도로-48번 도로로 강화대교 건너 강화대교 교차로에서 좌측 갑곶 돈데길로 들어선 18시20분 갑곶 성지에 도착하였습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글귀가 새겨져 있고 “천주교 인천교구 갑곶 성지” 현판이 있는 정문을 들어서 “천주교 인천교구. 갑곳 순교성지 50주년 기념 영성센터”(성당 등 부대시설)와 박순집 베드로의 묘 등... 곳곳을 둘러보았습니다.
83)곳 : 인천교구 갑곶. 인천시 강화군 갑곶리 1000(186l20분~18시40분)
강화는 수도 방어의 요충지로서 고려시대부터 외세가 격렬하게 충동해 온 역사의 현장이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조선정부가 프랑스인 성직자 9명을 처형한 책임을 물어 강화도를 점령하고자 했던 프랑스 함대가 바로 이곳 갑곶 돈대로 상륙. 강화성과 문수산성을 점령했다. 결국 프랑스군은 후퇴했으나 이로 인해 강화지방에는 한국천주교회의 가장 극심했던 박해의 하나로 기억되는 병인박해가 시작되게 된다. 갑곶 돈대에서 보이는 바다 건너편의 백사장에서 많은 신자들이 이슬로 사라졌다.
오늘 성지 순례는 이곳까지 18시40분에 출발하여 가까운 거리에 있는 강화읍에서 하룻밤을 지내기로 하고 숙소를 정하였습니다. 오늘의 주행 거리는 464km.
첫댓글 아이고 정말 대딘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