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금정 물회
속초의 영금정 해안가, 다시 찾은 이름 없는 횟집에서 물회를 시켰다. 1년 전, 물회는 사기에 가깝다는 나에게 그 집은 물회의 진수를 보여 주었다. 엉성한 비닐 천막은 그대로인데 그 사이 얼굴에 황달이 오고 간경화로 임산부처럼 배가 부어오른 횟집 사장은 반갑다며 웃었지만 힘든 걸음으로 주문을 받았다.
수족관은 뒷마당에 있었는데 사장은 큼지막한 방어 한 마리를 집어 들더니 손에 든 고무 방망이로 녀석의 대가리를 내리쳤다. 빗맞았을까, 방어는 죽지도 않고 기절도 하지 않고 펄쩍 뛰어 저만치 달아났다.
힘들게 자라 자수성가하여 평생 물회를 만들었다는 사장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방어를 잡으러 다니고 방어 역시 넓은 뒷마당을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누가 누구를 잡으려는 것일까, 아니, 누가 누구를 죽이려는 것일까. 살려는 서로의 몸부림이 서로를 죽이는 이 투명한 역설.
물회에 기대어 살아왔던 사장은 이제 물회에 붙들려 죽어가고 있었다.
내 기억에 선명하게 새겨진 두 생명의 사투는 살아 있으므로 아름답고 죽어가므로 슬픈, 모든 존재에 대한 연민과 사랑. 그리고 생명의 유지와 소멸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그리고 1년 후 다시 찾은 그 집은 문을 닫았다. 사투는 막을 내렸다.